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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혼 : 배명훈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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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배명훈
  • 출판사 : 문예중앙
  • 발행 : 2013년 07월 22일
  • 쪽수 : 260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27804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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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서로가 서로에게 별이 되는 곳,
막막한 우주에서 지구로 띄우는 '청혼'의 편지


"보고 싶었어." 하고 내가 너에게 말했을 때,
네가 나에게 "나도." 하고 대답해주기까지의 시간이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던 그 순간을, 나는 행복이라고 기억해.
네가 사랑한다고 말할 때 단 한 순간도 망설임 없이 대답해줘도
너에게 닿는 데 17분 44초가 걸리고,
또 거기에 대한 너의 대답이 돌아오는 데 17분 44초가 더 걸리는
지금의 이 거리를 두고 내가 가장 숨 막히는 게 뭔지 아니?
그건 대답이 돌아오기 전까지의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데서 오는 갑갑함이야.
─본문 중에서

[타워][신의 궤도][은닉][총통각하]에 이르는 작품들을 통해 세계와 존재에 대한 고민, 촌철살인의 현실풍자를 기발한 상상력으로 그려왔던 배명훈 작가가 이번에는 '청혼'의 편지로 한 편의 소설을 완성했다. 우주에서 지구의 연인에게 띄우는 한 통의 편지로 이루어진 소설 [청혼]은, 우주공간에서 벌어지는 소리 없는 전쟁과 로맨스를 교차시킨, 아름답고 슬픈 프로포즈이다.
배명훈 작가는 지구와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공간인 '우주'의 스케일에 로맨스를 담았다. 아득한 시간과 거리의 벽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서로에게 별이 될 만큼 멀리 있는 두 사람의 '보통의 연애' 속에 흐르는 섬세한 감정선은 배명훈 작가의 다른 어떤 소설에서도 아직 만나지 못했던 '서정성'을 보여준다.
천체물리학, 군사학 등 배명훈 작가가 꾸준히 탐독해온 지식들이 이야기를 탄탄하게 받쳐주어 우주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더욱 구체적이고 현실감 있게 살아난다. 시간과 공간이 무한히 팽창된 우주 속에서 '나'와 '그녀'의 존재뿐만 아니라 그들의 외로움과 사랑, '응답의 문제'는 더욱 또렷하게 드러난다.
우주에 대해 가장 아름다운 상상을 떠올리게 하는 문장, 사랑이 가져오는 두려움과 외로움, 애틋함이 촘촘히 엮여 있는 이 고백의 편지는 시간과 존재, 사랑에 대해 본질적인 물음을 던지며, 때때로 멈추어 우주와 인간, 사랑과 외로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지구까지 날아서 170시간,
아득한 거리의 장벽을 넘어 너에게 닿기를......


빛으로 딱 30초 거리만 떨어져 있어도 내 눈에 보이는 풍경이
30초 뒤에도 그대로일 거라고는 확신을 못해. 이미 진실이 아닌 거지.
거리가 멀수록 모든 게 왜곡돼서 결국 그 어느 것도 투명하게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 오는 거야.
빛의 속도로 30초. 그게 얼마나 먼 거리인지 실감이 나니?
―본문 중에서

막막한 우주공간에서 정체불명의 적과 대치하고 있는 궤도연합군의 작전장교인 '나'. 우주에서 태어난 '나'는 날 때부터 중력을 느껴본 적 없이 우주공간에서 살아왔다. 그런 '나'의 여자친구는 지구출신으로 현재도 지구에 살고 있다. '나'는 중력을 감당하기 힘들지만, 그녀와 함께할 수 있다면 지구에서라도 살 각오가 되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주에서의 이 전쟁이 끝나야만 한다.
궤도연합군에 공격을 해오고 있는 적은 그 정체가 뚜렷이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지구에서는 예언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연합군 사령관인 데 나다 장군이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의심하여 감찰군을 파견하고, 사사건건 감시하고 통제하는 감찰군 덕분에 누가 진짜 적인지 알 수 없는 미묘한 상황으로 흘러간다.
적의 공격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함대를 정비하는 동안 휴가를 받은 '나'는 여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170시간을 날아 지구로 가지만 떨어져 있던 거리만큼 뭔가 서먹해진 관계 속에서 그녀에게 마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 채 아쉬움을 느끼며 귀환한다.
몇 차례 전투가 벌어지는데 적은 마치 시간을 건너오는 것처럼 알 수 없는 곳에서 나타나 공격하고 사라지곤 한다. '나'는 정정당당하지 못한 적의 존재와 누구와 싸우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전쟁에 대해 회의를 품게 되고, 그 무렵 지구에서부터 그 먼 거리를 날아 그녀가 찾아온다.......

찾아왔다. 네가 그렇게 말했어.
지구에서 거기까지, 그렇게 먼 거리를 건너 나를 만나러 왔다고.

표면적으로는 '한 통의 편지'인 이 소설 속에서는 다양한 감정의 겹들이 펼쳐진다. '나'는 중력을 당연하게 느끼며 살아온 지구의 여자친구에게 무중력 상태에서 태어나고 살아온 자신의 이야기를 건넨다. 태생의 본질적인 차이에서 오는 다름에 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 대해.

우주에 나오면 위아래 방향이 없어져서 우주 멀미를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던 너의 말이 떠오르곤 해. 예전에도 다른 사람들한테서 그런 말을 들은 적은 있었지만 그때는 그게 어떤 느낌인지 이해하려고 해본 적이 없었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너도 역시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는 남의 일같이 느껴지지가 않아. 아, 너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구나. 같은 우주에 갇혀 사는데도 우리는 전혀 다른 우주에서 사는 것 같구나 하고 새삼스럽게 깜짝깜짝 놀라기도 해. ―본문 중에서

또 우주라는 공간이 얼마나 넓고 아득한지, 그 무(無)의 공간 속에 조난당해 있는 듯한 기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대기가 없기 때문에 소리 없이 벌어지는 우주공간에서의 전투가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 아름답지만 차마 아름답다고는 말할 수 없는 광경을 눈앞에 그리듯 묘사한다.

나는 나도 모르게 감탄하고 말았어. 그렇게 아름다운 광경이 또 있었던가. 번쩍번쩍, 그 거대한 거리의 장벽을 가로질러갈 때마다 온 우주를 다 밝힐 듯 요란하게 반짝이는 우주의 빗줄기. 버글러 기동 중인 동료 함선들. 루시퍼 입자에 이끌려 아마도 연옥 입자를 짙게 흩뿌리며 지옥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에 양쪽 함선들이 내뿜는 마지막 불꽃. 이걸 너에게 꼭 한번 보여주고 싶다고 말해도 괜찮은 걸까. 아니면 우주 어디에서도 다시는 이런 광경이 펼쳐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해야 옳은 걸까. ―본문 중에서

천체물리학, 군사학 등 배명훈 작가가 꾸준히 탐독해온 지식들이 이야기를 탄탄하게 받쳐주어 우주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더욱 구체적이고 현실감 있게 살아난다. 시간과 공간이 무한히 팽창된 우주 속에서 '나'와 '그녀'의 존재뿐만 아니라 그들의 외로움과 사랑, '응답의 문제'는 더욱 또렷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더 아프고 절실해진다. 작가가 굳이 저 먼(모두가 멀다고 생각하는) 우주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펼쳐놓은 이유일 것이다. 그렇게 시간과 존재, 사랑에 대해 본질적인 물음을 던지는 이 소설은, 때때로 멈추어 우주와 인간, 사랑과 외로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본문중에서

아무튼 지구 출신들은 이상해. 프라이팬을 닮은 가짜 대지에 발을 딛고 서는 순간, 어떤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고 소리를 지를 정도로 열광을 해. 아래와 위가 있다는 건 신의 축복이라면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원초적인 윤리는 근친상간에 관한 금기가 아니라 위와 아래를 구분하는 능력이래. 사람의 귀는 내면에서 들려오는 자아의 소리나 양심의 소리를 알아듣기 훨씬 이전에 중력이 몸을 끌어당기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나.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는 할 말이 없어져. 처음에는 저게 무슨 소린가 했는데, 요즘은 그런 순간마다 자연스럽게 네 생각을 해. 네가 느끼는 세상도 그렇겠지? 우주에 나오면 위아래 방향이 없어져서 우주 멀미를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던 너의 말이 떠오르곤 해. 예전에도 다른 사람들한테서 그런 말을 들은 적은 있었지만 그때는 그게 어떤 느낌인지 이해하려고 해본 적이 없었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너도 역시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는 남의 일같이 느껴지지가 않아. 아, 너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구나. 같은 우주에 갇혀 사는데도 우리는 전혀 다른 우주에서 사는 것 같구나 하고 새삼스럽게 깜짝깜짝 놀라기도 해.
(/ p.21)

우리처럼 태어날 때부터 중력을 듣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지구인들의 사지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건강해. 그날 내가 그 광경을 보고 뭐라고 했는지 아니?
“쟤들 뭐냐? 완전 외계인이잖아!”
그런 강인한 사람들이 사는 세계. 나는 지구가 좋았어. 적응하기는 어려웠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내가 지구에 와 있다는 걸 깜빡하고 여기에서 늘 그랬듯 무심코 두 팔로 침대를 밀어서 방 가운데로 떠오르려고 버둥거리고 있었을 때, 살짝 눈을 뜨고 피식 웃던 네 얼굴이 하루에도 몇 번씩 떠올라. 쏟아지던 햇살. 쏟아져내린 건 비였던가. 아름다운 너의 등이 어제오늘 사이에만 수십 번이나 떠올랐어.
(/ p.23)

“보고 싶었어.” 하고 내가 너에게 말했을 때, 네가 나에게 “나도.” 하고 대답해주기까지의 시간이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던 그 순간을, 나는 행복이라고 기억해. 네가 사랑한다고 말할 때 단 한 순간도 망설임 없이 대답해줘도 너에게 닿는 데 17분 44초가 걸리고, 또 거기에 대한 너의 대답이 돌아오는 데 17분 44초가 더 걸리는 지금의 이 거리를 두고 내가 가장 숨 막히는 게 뭔지 아니? 그건 대답이 돌아오기 전까지의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데서 오는 갑갑함이야.
적 함대와 첫 교전을 해보기도 전에 이곳 사람들은 이미 주정뱅이의 모순을 알고 있었던 거야. 35분 28초가 지난 뒤에도 그리운 그 사람의 마음이 그때 그곳에 한결같이 머물러주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을 말이야. 그리고 그 사람의 마음이 옮겨갔다는 것을 아는 데는 또다시 17분 44초가 걸린다는 사실. 그게 우리를 한없이 불안하게 만들었어. 데 나다 장군의 용맹한 휴가 작전 계획도 어쩌면 그래서 나온 건지도 몰라.
마음을 정확하게 조준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어. 주정뱅이 모순이 일어나지 않는 거리까지 재빨리 다가가는 것. 그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그렇게 했어. 그리고 너에게 말했어. 사랑한다고. 그 말을 들은 네 표정을 읽는 데 또 35분 28초가 더 걸렸다면 나는 그만 말라비틀어지지 않았을까.
(/ p.59)

그때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머뭇거리기만 했지만, 그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결국 이런 거였어. 그냥 사랑하는 게 아니고, 내가 날아온 거리만큼, 그 지긋지긋한 우주공간만큼 사랑하는 거라고. 그래서 너를 묶어두고 싶다고. 하지만 그 말은 할 수 없었어. 정말로 너를 묶어두는 게 옳은 일인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런 애매한 입장이었어. 그래서 말할 수가 없었어. 그건 버글러의 모순을 해결한다고 해서 전달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 영혼에 관한 문제였으니까.
(/ p.62)

우주공간에 떠 있는 일이 늘 조난당한 듯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주위의 빈 공간에 비해 우리가 차지하는 공간이 너무나 작기 때문이야. 지구만 한 공간에 우주선 딱 한 대니까. 조난. 그래, 그건 조난이야. 무언가에 깊숙이 잠겨버리고 만다는 뜻이야. 어둡고 고요하며 거대하고 또 막막한 무언가.
그게 뭔지는 콕 집어서 말하기가 어려워. 그건 글자 그대로 아무것도 아니니까.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 자체.
6,400킬로미터야. 무려 지구 반지름 정도 되는 거리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아. 지표면에서 사람은 해안에서 겨우 1킬로미터 떨어진 바다 위에 혼자 버려져도 조난을 당하고 쓸쓸하게 표류하다 혼자 죽는다고 들었어. 우리는 바닷물조차 없는 6,400킬로미터의 우주 한구석에 깊숙이 잠겨 있어. 그 너머에 있는 단 한 개의 점과 그 뒤에 다시 펼쳐진 수천 킬로미터의 아무것도 없는 공간.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공백. 그건 벽이야. 아무것도 가로놓여 있지 않지만, 아무것도 닿지 않아.
(/ p.94)

다시 주둔지를 정하고 수리장비나 휴양선 같은 후방 시설을 그쪽으로 불러들였어. 네가 머물던 옛 휴양선을 다시 보니 마음 한구석에 빈자리가 느껴지더라고. 퇴근 후에 잠깐 그쪽에 들렀는데, 네가 앉아 있던 자리 근처가 일그러진 것처럼 보이는 거야. 거기에 너의 중력장이 남아 있었어. 다른 사람에게는 작용하지 않는, 내 눈에만 보이는 중력장이 말이야.
너는 그런 게 무슨 상관이냐고, 그런 건 없다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여기에 있으면서 나는 지구출신과 나 같은 우주태생 사이의 사소한 충돌을 수도 없이 겪어왔어. 어쩌면 그 둘 사이에는 절대 넘지 못할 벽 같은 게 있는 게 아닐까 의심할 정도로 말이야. 그건 말이지, 사소해 보이기 때문에 더 본질적인 차이일지도 몰라. 그만큼 삶에 밀착돼 있다는 뜻이니까. 은연중에 튀어나오고, 충돌이 생길 때마다 상대가 나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하고 있다고 느끼게 되는 그 무언가. 나만 그런 걸 느끼는 건 아닌 모양인지, 남녀를 불문하고 지구에 애인을 둔 많은 동료들이 그런 고충을 이야기하곤 해. 우리끼리 모여서 그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가 진짜로 지구출신들과는 다른 인종이 돼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
하지만 그건 다 거짓말이었을 거야. 결국 어떤 생각이 든 줄 아니? 나는 네가 남긴 중력장이 싫지가 않았어. 네가 머물다 간 자리에 남아 있는 그 커다란 공백을 더듬어서 네가 내 마음속에서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복원하는 순간, 그런 식으로 다시금 네 존재의 실루엣을 되살려낸 순간, 나는 내가 그걸 얼마나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었는지를 깨달았어. 아, 모든 게 다 원래대로 돌아가기를!
(/ p.189)

저자소개

생년월일 1978.06.05~
출생지 부산
출간도서 30종
판매수 8,804권

2005년 「스마트 D」로 SF 공모전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연작소설 『타워』, 소설집 『안녕, 인공존재!』 『총통각하』 『예술과 중력가속도』, 중편소설 『청혼』 『가마틀 스타일』, 장편소설 『신의 궤도』 『은닉』 『맛집 폭격』 『첫숨』 『고고심령학자』 등이 있다. 2010년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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