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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코스투라 2 : 가장 아름다운 스파이

원제 : Ei Tiempo Entre Costur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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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탄생과 동시에 고전의 반열에 오른 소설!"
    음모와 사랑, 신비와 섬세함, 대담하고 생생한 캐릭터.
    진정으로 읽는 재미를 선사한다.
    ―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을 제친 눈부신 데뷔작!"
    스페인 출간 3개월 만에 15만 부, 누적 45만 부 기록!
    전세계 25개국에 번역된 베스트셀러

    어떤 소설은 태어나자마자 클래식이 된다!
    운명을 개척하고 역사 속으로 뛰어든 [안나 카레리나] [닥터 지바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카사블랑카]의 그녀들이 '시라'에게로 이어진다.


    [라 코스투라]는 가장 낭만적인 시대의 유럽 지도를 거침없이 넘나든다. 전설로만 남아 있는 1930년대와 2차 세계대전 직전의 유럽과 식민지, 긴박감 넘치는 마드리드와 갈 곳을 잃고 정처 없이 떠돌던 보헤미안들이 우글대던 리스본....... 패션 디자인에 천부적 재능을 타고난, 아름다운 디자이너이자 재단사인 시라Sira는 유럽 중심부의 귀족과 패션의 세계, 유럽 각국의 스파이들, 성공과 새로운 삶을 꿈꾸던 도전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정치적 음모와 비밀 첩보의 긴박한 현장을 운명에 새겨 넣는다.
    손에 든 순간 그 시대 속으로 그 인물이 되어 빠져드는, 진정한 서사와 읽는 재미를 오랜만에 만끽하게 되는 [라 코스투라]는 스페인 출간 당시 [밀레니엄]의 스티그 라르손을 뛰어넘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운명을 만나고, 개척하고, 성장해가는 패션 디자이너와 스파이들의 흥미진진한 세계!
    프랑코의 반란이 일어나기 직전인 1930년대 스페인 마드리드. 순수하고 아름다운 시라 키로가는 어머니와 함께 옷 만드는 일을 하며 가난하지만 씩씩하게 살아간다. 어느 날, 약혼자와의 소소한 미래를 꿈꾸던 시라 앞에 운명을 뒤흔드는 두 남자가 나타난다. 난생처음 만나는 아버지 곤살로 알바라도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라미로 아리바스.
    시라는 아버지가 물려준 돈 그리고 라미로와 함께 고향과 어머니와 약혼자를 등지고 새로운 세계를 찾아 떠난다. 머나먼 모로코의 탕헤르에서 낭만적이고 꿈같은 시간을 보내지만, 결국 라미로는 시라를 배신하고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 낯선 땅에 혼자 남겨진 시라는 라미로의 빚까지 모두 떠안는 처지가 되고 만다. 당시 모로코 내 스페인 보호령이던 테투안으로 거처를 옮긴 시라의 삶은 또 다른 기로를 맞이한다.
    갑자기 찾아든 차가운 현실과 배신 앞에 상처받으며 더 강인하고, 더 영리하고, 더 아름답게 변해가는 시라. 그녀는 천부적인 재능과 여러 인연의 도움으로 고급 의상실을 열고 패션 디자이너로서, 재단사로서 새롭게 출발한다. 곧 모로코의 테투안에 거주하던 다양한 유럽 귀족 여성 고객들이 시라의 여러 나라의 여성 고객들이 줄을 잇는다.
    시라가 간신히 위기에서 벗어날 무렵, 스페인 내전은 프랑코의 승리로 막을 내리지만 유럽 대륙에는 전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그 무렵 시라의 운명은 실존인물들과 복잡하게 얽히게 된다. 후안 루이스 베이그베데르(프랑코 정권에서 초대 외무성 장관을 지냈지만, 실체가 거의 알려지지 않은 미스터리한 인물)와 그의 연인이던 로잘린다 폭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대사관 해군 무관으로 근무하면서 스페인 내 첩보활동을 주도하던 앨런 힐가스 등이다. 이들과의 인연으로 시라는 여전히 단골 고객들의 의상을 만드는 동시에, 비밀스러운 대화를 암호로 바꾸어 옷에 새겨 넣으며 영국 정보기관에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 디자이너이자 스파이로서 활약,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여성으로 성장해가는 시라 앞에 나타난 새로운 사랑 마커스는 비밀과 반전의 열쇠를 쥔 채 새로운 사건과 역사의 현장에 뛰어들어 운명을 함께한다.

    이국적인 배경에서 펼쳐지는 사랑과 성장, 품격 있는 역사소설이자 스릴 넘치는 스파이소설

    [라 코스투라]는 유려하고도 날렵한 문체, 빠른 내용 전개를 통해 독자를 가장 낭만적인 시대의 유럽으로, 아련한 향수와 기품이 배어 있는 과거의 현장으로 빨아들인다. 전설로만 남아 있는 아프리카 북부의 식민지, 스페인 내전 직후 독일 세력이 장악한 마드리드 그리고 다양한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 머물다 간 리스본과 모로코를 배경으로 영국 등 각국의 스파이들, 정치적인 음모와 비밀스러운 첩보의 현장, 아름답고 섬세한 유럽 사교계의 귀부인과 패션의 세계까지. 공간과 소재를 넘나들며 한 매력적인 여인의 운명과 사랑, 열정을 펼쳐낸다.
    독특한 소설 구성 양식과 다양한 장르의 혼합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한 여성이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면서 하나의 당당한 사회적 존재로 우뚝 서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성장소설이자, 한 개인의 삶과 1930년대부터 2차 세계대전 직전의 역사적 현실이 교차된다는 면에서 역사소설이기도 하다. 아름답고 매력적이며 강렬한 여주인공의 멜로 드라마, 유럽 중심부의 비밀스러운 권력 암투와 음모, 스파이들의 활약상을 그린 스파이소설로서의 묘미 또한 놓칠 수 없다. 데뷔작인 이 소설을 위해 작가는 스페인과 모로코의 문서고에 보관되어 있는 각종 기록과 논문 등을 섭렵하며 인물과 거리, 풍습, 문화 현상, 패션과 스타일에 이르기까지 당시 생활상을 철저히 고증했다고 한다. 수많은 문학작품에서 다루어온 스페인 내전이 주된 배경이지만, 그에 대한 해석이나 의미 부여가 아니라 철저히 인물과 사건을 중심에 두고 실제 역사와 맞물려 펼쳐 보임으로써 '서사의 재미'에 목말라하는 독자의 갈증을 해갈하는 소설 그 자체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이 소설이 보여주는 가장 독특하고 새로운 문학성은 [에필로그] 부분의 열린 결말이다. 실존인물들의 삶에 대해 간략히 드러내며 1인칭 주인공인 시라의 시점에서 새롭게 재해석하고, 이후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뒷이야기를 주사위놀이처럼 다양한 결말로 열어둔다. 시라는 사랑하는 마커스와 결국 헤어져 각자의 길을 갔을 수도 있고, 평생을 함께했을 수도 있고, 영국 비밀정보국의 지령을 받으며 평생 떠도는 스파이로서의 삶을 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가능성을 향해 열린 우리의 운명은 흘러가는 글에 따라, 한 땀 한 땀 떠가는 바느질에 따라 새로이 직조되고 해체될 수 있음을 상징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서사인 셈이다.
    스페인어로 '라 코스투라'La Costura는 바느질, 재단이라는 뜻이다. 운명과 운명, 인연과 인연, 거대 역사와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과 사람이 한 땀 한 땀 이어지는 서사 본연의 재미를 만끽하게 하는 이 작품은, 긴 호흡에도 불구하고 첫 장을 넘기는 순간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박진감 넘치는 전개 속에 생생하고 매력적인 인물 군상을 생생히 그려내며 문학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걸머쥔 [라 코스투라]를 '탄생과 동시에 고전의 위치에 오른'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추천사

    어떤 소설들은 탄생과 동시에 고전의 반열에 오르는 운명을 타고난다. [라 코스투라]도 바로 그러한 문학작품이다. 음모와 사랑, 신비와 섬세함, 대담하고 생생한 캐릭터. 진정으로 읽는 재미를 선사한다.
    ―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 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최근 들어 가장 눈에 띄는 소설 중 하나.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앞으로 마리아 두에냐스에게 주목해야 할 것 같다.
    ― 로렌소 디아스 / Lorenzo Diaz, 스페인의 사회학자이자 작가,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

    혜성 같이 등장한 수작. 과거 소설의 전통을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 다시 보기 어려운 작품이다. 마드리드, 탕헤르, 테투안, 리스본 그리고 아름답지만 시련의 운명을 타고난 디자이너, 생사를 넘나드는 그녀의 모험, 사랑과 배신, 전쟁과 평화, 스파이들과 망명객들,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는 사기꾼들, 아웃사이더들의 세계, 꿈과 좌절 등, 추악하기 그지없던 그 시대의 모습들을 이보다 더 잘 그려낼 수 있을까? 한번 잡으면 절대로 놓을 수가 없는 책이다. 이 소설이서 뿜어내는 열정 속으로, 손도 쓰지 못한 채 빨려들고 만다.
    ― 페르난도 산체스 드라고(Fernando Sanchez Drago, 스페인의 유명 작가이자 소설가), (엘 문도 El Mundo/ 중도 성향의 스페인 유력 일간지스페인 일간지에서)

    한 시대와 역사 그리고 매력적인 장소들은 지금까지 자기들의 이야기를 해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 하비에르 리오 (Javier Rioyo / 스페인의 언론인이자 시나리오 작가)

    엄청난 소설 하나를 권해드릴 테니까, 내가 숨고를 때까지 잠시만 기다리시라. 제목은 [라 코스투라], 정말 놀라운 작품이다.
    ― 에두아르도 토레스-둘세(Eduardo Torres-Dulce, 스페인의 검사이자 형법학 교수. 법무부 장관도 역임), (엑스판시온 Expansion, 스페인에서 최대 발행 부수를 자랑하는 경제일간지에서)

    모험과 첩보전, 황홀한 매력, 그리고 패션디자인과 열정이 한데 뒤섞인 놀라운 이 문학 칵테일을 한 모금만 맛봐도 권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작품이다. 패션디자인의 세계, 사랑과 배신, 과거 귀족 부인들의 생활상, 이중 스파이...... 이처럼 다양한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져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감탄을 금할 수 없는 작품이다.
    ― 소니아 루에다(Sonia Rueda, 스페인의 언론인이자 도서 비평가), (20분 20 minutos, 스페인의 종합 일간지에서)

    [라 코스투라]에 흠뻑 빠져들려면 30분 정도로 충분하다.
    ― 오늘의 여성 (Mujer Hoy, 스페인에서 발간되는 여성 잡지)

    절묘한 리듬, 기억과 열정으로 가득한 630페이지...... 이로써 마리아 두에냐스라는 소설가는 이미 대성공을 거두었다.
    ― AR (아나 로사 킨타나Revista Ana Rosa Quintana, 스페인에서 발간되는 여성잡지)

    목차

    3부
    4부
    에필로그
    작가의 말
    역자 후기

    본문중에서

    나는 일을 비교적 빨리 배운 편이었다. 손놀림이 좋아서 바늘이나 천의 촉감에도 금방 익숙해졌다. 뿐만 아니라 치수라든지 체적, 옷의 앞면과 가슴 부위, 기장, 진동 둘레, 소맷부리, 바이어스 같은 것들도 쉽게 배웠다. 열여섯 살이 되면서 천을 구별하는 방법을 그리고 다음 해에는 천마다 지니고 있는 고유한 특성과 그것을 앞으로 어디에, 어떻게 쓸 수 있는지에 대해서 배웠다. 중국산 크레이프, 비단 모슬린, 조젯 천, 샹티이레이스 등등. 당시에는 일을 배우는 데 정신이 팔려 세월 가는지도 모르고 지냈다. 가을에는 고급 모직 외투와 춘추복을 만들고, 봄에는 칸타브리아 지방의 라 콘차나 엘 사르디네로*에 휴가 갈 때 입을 수 있도록 가벼운 옷을 만들곤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나는 열여덟 살 그리고 열아홉 살이 되었다. 이제는 옷 만들 때 가장 까다롭다는 부분까지도 혼자서 재단하고 마름질할 정도로 솜씨가 늘었다. 칼라와 옷깃을 붙이는 방법도 배웠고, 또 어디쯤에서 천을 접고 마무리를 해야 하는지도 알게 됐다. 옷 만드는 일에 한창 재미가 붙어서, 천 조각만 잡으면 몇 시간이고 쉬지 않고 일하곤 했다. 심지어는 마누엘라 부인과 엄마도 가끔 내 의견을 물어볼 정도로 나를 신뢰했다.
    (1권/ p.14)

    언젠가는 이그나시오의 따스한 품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삶도 결국엔 무너뜨리고야 말 거라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피할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내 결심은 그 무엇보다도 더 확고했다.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던 결혼식과 공무원 시험 준비, 떨리는 손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쳐나가던 타자 연습 그리고 밤마다 다가올 황홀한 시간, 또 예쁜 아이들을 낳아 기르려던 소박한 꿈도 이젠 모두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일 뿐이다. 나는 그를 떠날 것이다. 아무리 모진 바람을 맞아도 내 결심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1권/ p.25)

    칸델라리아는 아직 잠옷 차림이었던 내 몸 여기저기에 열아홉 개의 권총을 시트 천 쪼가리로 세게 묶었다. 혹시라도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띠 하나로 권총 한 자루씩만 묶었다. 먼저 천으로 권총을 두 번 묶은 뒤, 내 몸에 붙이고 다시 몸 둘레로 두어 번 돌려 감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천의 양쪽 끝을 세게 묶었다.
    “가엾은 것. 뼈밖에 안 남았구나. 살이 없으니 이젠 더 묶을 데도 없어.” 내 몸의 앞과 뒤를 다 묶은 뒤, 그녀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허벅지 쪽에 하면 되죠.” 내가 말했다. 고심 끝에 그녀는 내 의견대로 했다. 마침내 열아홉 자루의 권총이 내 몸 여기저기에 자리를 찾게 되었다. 가슴 아래, 늑골 위쪽, 아랫배와 어깨 그리고 옆구리와 팔, 허리둘레와 허벅지에 권총이 묶여 있었다. 마치 온몸을 흰 붕대로 칭칭 감은 미라 같은 꼴이 되고 말았다. 더구나 그 아래로 무거운 무기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탓에 움직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탓을 할 여유가 없었다. 이런 상태로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도록 빨리 연습을 해야만 했다.
    (1권/ pp.177~178)

    지금 내 곁에 없는 모든 존재들, 즉 라미로와 이그나시오, 엄마 그리고 내가 잃어버린 모든 것, 과거도 때로는 덧없이 자취를 감추어버리지만, 가끔은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워야 할 만큼 격렬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주로 집에 홀로 있을 때나 고즈넉한 오후에 실과 천 조각에 파묻혀 일을 할 때, 아니면 잠자리에 들 때나 펠릭스가 몰래 밤마실 나가 홀로 어둠에 잠긴 거실에 앉아 있을 때마다 그들의 존재는 어김없이 내 마음속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어 와 통째로 뒤흔들어 놓곤 했다. 하지만 한차례 광풍이 휩쓸고 지나가고 나면 대개의 경우 마음이 진정되기 마련이었다. 내가 미친 듯이 일에 매달린 것도 따지고 보면 그런 혼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주문받은 일감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우아한 태도나 말투도 더 완벽하게 익혀야 했다.
    (1권/ pp.286~287)

    “나중에 사랑하는 연인이 생기면 연락주세요. 예쁜 옷을 만들어드릴 테니까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으면, 당장 당신에게 달려오리다.”
    그는 손으로 내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는 부드러운 손길로 내 눈물을 닦아주려고 했지만, 갑작스러운 애무에 놀란 나는 몸을 흠칫하고 말았다. 아! 이런 날이 오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랐건만.
    “거짓말쟁이.” 나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진심이에요.”
    내 얼굴을 어루만지던 그의 손길은 머리를 지나 목덜미로 옮겨갔다. 그의 얼굴이 나에게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토록 소중하고, 아름다운 시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열쇠 소리가 나는 바람에 깜짝 놀라 떨어지고 말았다. 자밀라였다. 그녀는 숨을 헐떡거리며 어설픈 스페인어로 급한 소식이라며 수선을 떨었다.
    “폭스 마님이 말해요. 시라 양 어서 라스 팔메라스로 오래요.”
    이젠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정말로 이별할 때가 온 듯했다. 마커스가 모자를 쓰는 순간, 나는 다시 한 번 그와 진한 포옹을 나누고 싶은 욕망을 억누를 수 없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더 이상 할 말도 없었다. 잠시 후, 그토록 소중했던 그의 존재는 이젠 내 머리에 남긴 키스 자국과 그의 뒷모습 그리고 문이 닫히는 가슴 아픈 소리만 남긴 채, 내 곁에서 아스라이 사라지고 있었다.
    (1권/ p.478)

    “우린 지금 마드리드에서 영국 정보국과 연결된 비밀 첩보망을 구축하는 일을 도와주고 있어. 물론 거기에 가담하는 이들은 정치나 외교, 군대와 하등 상관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야. 사회적으로 알려진 이들도 거의 없고. 그래야 의심을 안 받을 테니까. 하여간 중요한 정보를 알아내면, 곧바로 SOE에 알리는 것이 이들의 임무야.”
    (2권/ p.44)

    “이제 결론을 말씀드릴 때가 된 것 같군요. 짐작하셨겠지만, 시라 양이 수집한 정보는 모두 그런 방식으로 암호화해 우리에게 보내주면 됩니다. 물론 정보를 보낼 때는 가급적 간결하게, 그러니까 단어의 수를 최대한 줄여야 할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끝도 없이 길어질 테니까 말이죠. 그러니까 평소에 내용을 종합하고, 적절히 요약하는 연습을 부단히 해야 할 겁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우리에게 보낼 어떤 정보도 의상 디자인이나 스케치처럼 보이도록 철저하게 위장시켜야 한다는 거죠. 디자이너가 하는 통상적인 작업과 관련된 방식이라면 공연히 의심을 살 일은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너무 드러나게 해서는 안 되겠죠. 겉으로 표가 나지 않을 정도로만 하면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2권/ p.76)

    그러나 내가 들어오고 2분쯤 지난 무렵, 어떤 이가 제일 끝자리에 앉았다. 남자 혼자였다. 남자인 건 분명했지만, 워낙 어두운 탓에 얼굴을 분간하기는 어려웠다. 왠지 그 남자의 모습에 자꾸 신경이 쓰였다. 사실 그 옷차림만 아니었다면 특별히 신경 쓸 일도 없는 평범한 남자였다. 그런데 그는 밝은색 레인코트 차림에 깃을 세우고 있었다. 일주일 전부터 나를 미행하고 있던 그 남자와 꼭같은 차림새였다. 나는 곁눈질로 레인코트 남자의 거동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시선의 방향을 보건대 그는 영화 줄거리보다는 내게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순간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나를 쫓아 이곳까지 온 것이 틀림없었다. 미장원에서부터 미행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집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뒤를 따라온 것인지도 모른다.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여기까지 수백 미터를 걸어오는 동안 내내 뒤를 따라온 것만큼은 분명했다.
    (2권/ pp.150~151)

    거짓말 같은 일이었지만 그 정도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밖에도 그와 함께했던 많은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오후 내내 정처 없이 거리를 돌아다니기도 하고, 축제 전야에 등불 아래서 함께 춤을 추던 모습. 그리고 낙천적인 성격으로 언제나 나를 부드럽게 감싸주던 그와 풋내기 재단사에 불과했던 내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한때나마 막연하게 결혼을 꿈꿨던 남자가 지금은 두려운 존재로 변해 내 앞에 나타났다.
    (2권/ p.157)

    “아! 예쁜 여자들이 돈 몇 푼 받고 헤픈 짓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니까 오해하진 말아요. 이번 작전이 워낙 민감하고 많은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우리로서도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습니다. 그런 임무를 굳이 당신에게 맡긴 것은 그만큼 당신의 능력을 믿고 있기 때문이에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당신은 수려한 외모와 혈혈단신으로 유럽에 건너온 외국인 여성이라는 조건 덕분에 운신의 폭이 그만큼 넓어질 거라는 점이에요. 하지만 당신의 임무가 단지 한 남자를 유혹하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각별히 유념하세요. 하여간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접근해서 다 실바의 신뢰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선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그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해야 해요.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지, 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그때그때 알아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우린 지금까지 당신이 보여준 능력과 경험에 대해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어요. 가령 체계적으로 정보를 수집한다거나, 예상치 못한 상황이 닥쳤을 때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능력 말입니다.”
    (2권/ p.236)

    나 자신의 능력을 분명하게 확인한 이상, 다른 이들이 일방적으로 내 운명을 좌지우지하지 못하도록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온 듯했다. 예컨대, 힐가스는 일언반구도 없이 자기 멋대로 나를 리스본으로 보냈고, 마누엘 다 실바는 쥐도 새도 모르게 나를 처치하려고 했다. 게다가 마커스 로건은 나를 구하려고 위험 속으로 뛰어들었다. 따지고 보면 나는 여태까지 꼭두각시처럼 이들 저들 손에 놀아난 셈이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승리의 영광을 누리는 일이든 벼랑 끝에 내몰리는 일이든, 모두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들의 일방적인 결정대로 움직여야 했다. 결국 나는 그들 입장에서 보자면 장기판의 졸보다 못한 신세였다. 지금까지 단 한 사람도 자신의 생각이나 의향을 내게 속 시원하게 넣어놓은 적이 없었다. 더 이상 그들의 부질없는 꼭두각시 놀음에 같이 놀아날 순 없는 일이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참에 그들의 손아귀에서 과감히 벗어나 내 앞길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일었다. 물론 그러다 보면 길을 잘못 들거나 발이 걸려 넘어질 수도 있고, 또 진창에 빠져 허우적거릴 수도 있을 것이다. 결코 만만치 않은 시련과 역경이 내 앞길에 가로놓여 있으리라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여기가 어딘지, 오늘은 또 무슨 일이 닥칠지 두려움에 떨면서, 그리고 이제 더 이상 그들 손에 끌려 다니며 살 수는 없었다. 대신 나 스스로가 삶의, 그리고 운명의 주인공이 되어야 했다.
    (2권/ pp.371~372)

    우리의 운명은 상황에 따라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될 수 있었다. 어차피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우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은 없을 테니까. 어쩌면 우린 애당초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거나, 아니면 아무도 우리의 존재를 알아보지 못했던 건지도 모른다. 결국 우린 역사의 이면裏面에, 그리고 바느질로 보낸 숱한 세월 속에 파묻힌 채 눈에 보이지 않게 살아온 셈이다.
    (2권/ p.411)

    저자소개

    마리아 두에냐스(Maria Duenas)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
    출생지 스페인 시우다드 레알
    출간도서 2종
    판매수 134권

    스페인의 시우다드 레알에서 태어나 무르시아대학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동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스페인과 미국 등지에서 활발히 연구 활동을 하던 중 첫 작품 [라 코스투라El tiempo entre costuras](2009)를 출간하며 문단과 독자, 언론의 찬사와 호평을 받았다. 현재까지 모두 25개국의 언어로 번역되는 등 큰 성공을 거둔 이 작품은 최근 스페인 [안테나 3] 방송국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어 방영 중이다. 두 번째 작품인 [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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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과 스페인 콤플루텐세 대학교에서 라틴아메리카 소설을 전공했다. 옮긴 책으로 리카르도 피글리아의 [인공호흡], 루이스 세풀베다의 [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 [느림의 중요성을 깨달은 달팽이], 로베르토 아를트의 [7인의 미치광이],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인상과 풍경], 마세도니오 페르난데스의 [계속되는 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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