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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기 전엔 몰랐던 것들 : 한 번도 배우지 못했던 일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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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우리 시대에 일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내 삶을 움직이는 우리 사회의 작동 원리
가장 절실하지만 한 번도 배우지 못했던 일의 경제학


[일하기 전엔 몰랐던 것들]은 택배 기사, 학원 강사, 대학 교수처럼 흔히 볼 수 있는 현실 속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노동력 재생산, 합리적 인간, 노동과 여가, 효용과 비효용 같은 경제학의 개념을 접목함으로써 바로 ‘나’의 노동이 어떻게 규정되고 선택되고 변화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에 더해 경제학 교과서를 비롯한 대중교육이 가진 환상과도 같은 비현실성과 편향성을 지적하며 실제로 한국 사회가 어떤 원리에 의해 작동하는지를 드러내어 보여준다.

경제학 교과서 같은 세상은 불가능하다

경제학에는 왜 주어가 없나?

과학을 닮으려 노력했던 경제학은 세상을 실증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을 택한다. ‘세상은 이래야 한다’가 아니라 ‘세상은 이렇다’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지 않을 때면 시장조정 과정을 통해 균형이 회복된다’라는 식이다. ‘시장조정’이 왠지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과정인 양 묘사된다. 물리학자가 충돌하는 원자의 고통을 염려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장조정 중에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애써 무시한다. 이러한 어법은 교과서 밖 현실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그리고 노동에 대한 묘사에서 두드러진다. 고용과 해고의 유연화를 뜻하는 ‘노동시장 유연화’, 임금 삭감이나 근무시간 연장을 가리키는 ‘경영 효율성 제고’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자연적 실업, 자발적 실업이라는 경제학 개념 또한 실직자, 구직자의 괴로움은 어디에도 없이 2,3퍼센트의 실업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식으로 묘사된다.

완벽한 완전경쟁의 세계, 그 뒷면
미시경제학 같은 교과서에는 노동자가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소비자와 생산자만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때 말하는 생산자는 노동자가 아니다. 그리고 경제학 교과서에서 말하는 소비자는 항상 머릿속에 전자계산기와 여러 상품들의 가격 목록을 지니고 다니면서 매순간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사람이라고 묘사된다. 주어진 한계 아래에서 자기 효용을 극대화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다. 소비자의 효용이 극대화되는 때는 언제인가. 완전경쟁의 상태다. 경제학 교과서에서 완전경쟁은 경쟁 논리가 완벽하게 작동함으로써 소비자에게 최대 이익을 가져다주는 상태라고 정의된다. 그런데, 그 소비자는 바로 경제학 교과서에는 등장하지 않는 노동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소비자가 바로 그 경쟁의 참가자인 것이다. 소비자의 최대 이익은 바꾸어 말하면 그와 거래하는 생산자의 이익이 최소가 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무엇이 빠져 있을까. 저자는 교과서가 노동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침묵은 말해져야 할 것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문제를 드러내지 않고 덮어버린다. 졸업하면 대부분 노동자가 되어야 할 학생들에게 교과서에서 노동의 권리에 관해, 노동 강도에 관해, 노동과 자본의 대립에 관해, 결국 노동 그 자체에 관해 말하지 않는 것이다.

세밀하게 그려낸 잔혹 동화와도 같은 우리 시대 노동의 풍경

[일하기 전엔 몰랐던 것들]은 노동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선택되고 변화해가고 받아들여지는지, 그리고 우리에게 노동은 어떤 의미인지를 큰 줄기로 삼아 저자 개인의 경험과 경제학적 개념을 엮어 한국 사회 풍경을 ‘일’이라는 렌즈로 바라보고 25개의 글 속에 세밀하게 그려낸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저자는 무엇보다 한국 경제가 점점 더 승자독식을 관철하는 구조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대기업이나 고소득층이 부유해지고 나면 이익이 아래로 흘러 확산된다는 이른바 ‘흘러내림 효과(trickle-down)’ 이론을 내세우지만 현실에서는 이익이 위로 빨아올려지는 효과(trickle-up)가 발생한다. 기업은 금융투자와 같이 포트폴리오 분산의 원리에 따라 위험을 쪼갠다. 그들이 위험을 분산할수록 그 중 하나의 점에 해당하는 영세한 자영업자나 노동자가 가진 선택지란 위험집중뿐이다. 시쳇말로 기업이 자영업자에게 ‘빨대를 꽂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 스스로 자기 착취에 내몰리기도 한다. 조업중단점이라는 생산이론의 개념이 무색하게 밤새 문을 열고 손님 하나라도 더 받으려는 식당 주인, 소득의 많은 부분을 밥값과 통신비, 주거비 같은 노동력 재생산에 써야만 하는 직장인들이 바로 그들이다.
위험의 집중, 노동의 자기 착취가 자영업자나 비정규직만의 문제는 아니다. 교수인 저자는 자신의 경험, 대치동 학원 강사, 청계산 자락 식당 주인 등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 노동의 조건은 특정한 지위를 가진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경제 자체가 바로 그 방향으로 수렴되어 감을 보여준다.

고용에서 대신 사용으로: 문자메시지 해고의 의미
노동자의 반대쪽에 있는 사람은 자본가다. 그런데 자본가라는 말 대신 사용자라는 말을 쓴다. 자본가가 노동자를 고용하고 사회적 관계를 맺는 사람이라는 의미라면 사용자는 어떤 제품이나 생산요소를 사용하는 사람이다. 노동과 자본이 맺은 관계는 거래로 탈바꿈한다. 노동자의 인격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비싸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 사면 그만이다. 문자메시지로 노동자에게 해고를 통고하는 것은 관계에서 거래로 변모한 우리 시대 노동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노동이 관계에서 거래로 변화하는 현상은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현상에서 잘 드러난다. 비정규직에게는 4대 보험이나 여타 부담 없이 그때그때 일한 대가만 지급하면 되는 거래가 성립하는 것이다. 노동에 따르는 노동을 숙련하고 준비하는 데 따르는 부수적인 시간과 비용은 온전히 노동자의 몫으로 남게 된다.

보험 사회에서 복권 사회로: 자영업자들의 목숨을 건 도약
자영업자가 3년 이상 사업을 지속할 확률은 25%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나머지 3/4의 사람들은 문을 닫을 만큼 생존 확률이 매우 낮다.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창업을 한다. 왜 그럴까? 뾰족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는 위험 애호가(risk lover)라는 용어가 있다. 사람들은 대체로 안전판이 마련된 상태일 때 위험 애호적인 경향을 보인다. 그런데 반대로 실패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게 빤할 때 오히려 위험 애호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영세 자영업자들이 한 번 실패하면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위험한 선택을 하는 이유도 일자리 기회가 마땅치 않아 밀려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보험의 원리가 사라지고 복권의 원리가 지배하는 것은 비단 자영업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익은 위로, 위험은 아래로: 유흥주점형 경제 모델
룸살롱이라고 부르는 유흥주점은 업주-웨이터-마담-접대부로 이루어지는 위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은 고용-피고용 관계가 아니라 개인 간 거래관계라는 외형을 띤다고 한다. 피라미드형 위계를 유지하면서도 각 단계마다 중간 고리에 해당하는 이들을 제외하면 서로가 서로를 직접 지배하지 않는 방식, 심지어는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 방식으로 조직이 굴러간다. 지입제로 일을 하는 택배 기사, 식품 영업직원, 택시 기사, 발렛파킹 등 많은 형태의 노동이 이와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운영된다. 그러므로 위계의 윗자리를 차지한 기업이나 고용주가 최소화한 거래비용과 위험부담은 위계의 아래쪽에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전가된다.

소비자의 작은 톨레랑스가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자인 동시에 소비자이다. 그리고 소비자로서 자기 편익을 극대화하고자 한다. 저자는 모든 소비자가 자기 개인의 편익만을 추구할 때 결과적으로 저소득-장시간 노동이 강화된다고 말한다. 그러니 죽도록 일해서 겨우 먹고사는 당사자가 바로 나나 내 가족이 될 수 있다는 현실을 직시해보도록 하자고 권한다. 그 안에서 톨레랑스를 발휘하고, 할 수 있는 한에서 부당함을 ‘안 하는 편을 택해보자고’ 요청한다.
이렇듯 [일하기 전엔 몰랐던 것들]에서 저자가 다양한 노동의 풍경을 담아낸 의도는 명확하다. 저자는 이를 ‘노동자’란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 또는 돈을 많이 벌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일하는 이들 모두가 결국엔 노동자라는 사실부터 깨닫도록 하는 것, 경제학 교과서에 등장하지 않는 노동자 사실은 먹고살아보겠다고 오늘도 아등바등 일하는 우리들 대부분임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라고 에필로그에 밝히고 있다. 나 자신이 노동자이면서 멀게만 느껴지고, 공허한 구호로만 느껴졌던 노동, 이 책은 저자의 의도처럼 내 삶에서 노동이 가지는 의미를 확인하는 동시에, 한국 사회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목차

프롤로그 '일'이라는 렌즈로 바라본 세상

1. 세상이 원하는 능력은 따로 있다 / 노동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참으라. 견디라. 순응하라.
알아서 경쟁하라. 스스로 착취하라
"저는 노동자 아니거든요?"
경제학 교과서에 노동자는 없다

2. 게임의 규칙은 당신 편이 아니다 / 노동은 어떻게 선택되는가
철들기 전에 길들다: 대학에서 배우는 것들
관계 대신 거래로, 고용 대신 사용으로
더 많이 일하라. 하지만 당신 몫은 정해져 있다
패자부활전은 없다: 보험 사회에서 복권 사회로

3. 이익은 위로 위험은 아래로 아래로 쏠린다 / 노동은 어떻게 변화하여 왔는가
임금, 생계비에서 노력의 대가로
삶을 위한 일에서 일을 위한 삶으로
부당한 거래: 이익은 위로, 위험은 아래로
메이저리거와 조선족 종업원의 공통점

4. 어떤 일을 하느냐가 당신이 누군지를 결정 짓는다 / 노동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얼마나 더 벌어야 모자라지 않을까?
'카푸치노 나오십니다'의 경제학적 의미
한국경제의 충격흡수 장치
일은 즐거움일 수 없을까?

5. 경제학 교과서 같은 세상은 불가능하다 / 노동은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
모두가 CEO 하면 일은 누가 하지?
교과서가 감춘 것들
가해자는 어디에도 없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노동자와 소비자
정글의 법칙: 굶어 죽지 않을 만큼만

6. 당신을 위한 멋진 신세계는 없다 / 노동은 어디로 가는가
우아하고 완벽한 완전경쟁의 세계
빨대를 꽂아라! 승자독식의 세계
사라진 풍경, 사라진 이름, 사라진 민주주의
변화는 어디에서 오는가

에필로그/ '안 하는 편을 택할' 작은 용기를

본문중에서

경제원론이나 미시경제학 교과서를 들추어보면 노동은 보이지만 노동자는 그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현대 미시경제학에서는 경제 주체를 크게 소비자와 생산자 둘로만 구분한다. 교과서의 배열 순서도 먼저 소비자 행동에 관한 이론이 나오고, 그 다음에 수학적으로는 완벽하게 똑같은 논리 구조를 갖추어 생산자 이론이 나온다. 생산자는 주어진 비용으로 생산량을 극대화하거나 (같은 말이지만) 주어진 생산량을 최소한의 비용으로 생산하기 위해 생산 요소를 구입하고 배치하며 기술을 선택하는 주체로 묘사된다. 쉽게 눈치 챌 수 있듯이 이때 말하는 생산자는 노동자가 아니다.
('경제학 교과서에 노동자는 없다' 중에서/ p.61)

노동력은 그 소유자인 노동자의 인격과 분리되어 필요할 때 사서 쓰고 필요 없어지면 안 쓰면 그만인 일반적인 상품들과 다를 바가 없어졌다. 극단적으로는 언제든 쓰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릴 수 있는 일회용품과도 같아진다. 문자메시지로 다음 날부터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고 통고받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에피소드는 일회용품과 같아진 노동의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시간강사의 지위도 일회용품과 다를 바가 없다. 학기 시작 직전에 원래 담당하기로 했던 과목이 강사 본인과는 아무런 상의도 없이 바뀐다든가, 몇 년째 강의를 나가던 대학에서 아무 연락이 없으면 굳이 따질 필요도 따져볼 수 있는 통로도 없이 ‘해고’를 의미한다든가.
('관계에서 거래로, 고용 대신 사용으로' 중에서/ p.89)

‘죽도록 일해서 겨우 먹고살기’가 자영업이나 최소한의 생계비를 벌기에도 허덕이는 저임금 노동자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노동시장의 조건이 노동자들에게 불리해질수록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은 치열해진다. 그 결과 단순히 돈을 더 벌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내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일을 더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IMF 위기 당시 직장인들 사이에서 자기 책상이 없어질까 봐 두려워 퇴근을 못 하고 야근을 한다는 우스개가 유행했다. 1970년대 여공들이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각성제인 ‘타이밍’을 먹어가며 철야 작업을 해야 했다면 21세기의 직장인들은 힘겹게 얻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불안한 비정규직에서 안정된 정규직으로 전환하기 위해서 자기 노동을 착취하고 있다.
('더 많이 일하라. 하지만 당신 몫은 정해져 있다' 중에서/ p.100)

노동 계약은 인적 속성에 점점 덜 의존하게 되면서 보통의 상품을 사고파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진다. 생산과 유통의 말단부, 전달 부분에서 낮은 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은 점점 더 ‘계약’ 관계에 강하게 끌려 들어오고, 외형상으로는 더 이상 노동자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계약을 맺는 개인사업자’로 변화한다. 좁은 의미의 ‘노동자’가 아니라 ‘노동’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익은 위로, 위험은 아래로 아래로 쏠린다' 중에서/ p.112)

저소득-장시간 노동의 다른 이유 한 가지를 더 들자면 소비자들이 자신의 편익을 극대화하고자 한다는 것, ‘톨레랑스(tolerance)’가 매우 작다는 사실이다. 나를 비롯하여 어느 소비자도 자신이 직접 물건을 사서 들고 오기보다는 자기 집 현관까지, 그것도 빠른 시간 안에 배달되는 상태를 반길 것임에 틀림없다. 물건을 기다리는 소비자가 택배 노동자보다 더한 강도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라 하더라도 이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아니 오히려 본인의 노동이 고될수록 피곤한 일상에 서 조금이나마 벗어나려면 문 앞까지 배달되는 상품을 찾아내야 한다.
('부당한 거래: 이익은 위로, 위험은 아래로' 중에서/ p.140)

경제학에는 노동자는 위험을 싫어하고 고용주는 위험을 감수하므로 그 차이로 말미암아 고용주에게 많은 소득(이윤)이 돌아가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이론도 있다. 그러나 지금 현실은 점점 그러한 이론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노동자들도 위험을 스스로 감수해야 한다. 그에 따르는 실패의 책임도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동시에 실패하건 성공하건 장시간 노동과 살인적인 노동 강도에 시달려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형식적으로는 노동자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계약을 맺는 개인’이다. 물류는 물론 생산에 이르는 경제의 모든 영역을 위에서는 대자본 몇 개가 장악하고 피라미드의 말단부는 이른바 유연한 형태의 노동, 자영업자의 외관을 띤 노동에게 맡기는 구조를 지금의 한국 사회야말로 가장 극적인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다.
('부당한 거래: 이익은 위로, 위험은 아래로' 중에서/ pp.145~146)

경제학에서는 ‘자연적 실업(natural unemployment)’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경제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2,3퍼센트의 실업률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다. 더 심한 경우 ‘자발적 실업’이라는 말도 사용한다. 대학을 졸업하였지만 임금도 낮고 고용 상태도 불안정한 일자리밖에 없어서 취업을 망설이며 더 나은 직장,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대학에 다니면서 상식적으로 기대했던 수준의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이들은 ‘자발적 실업자’들로 불린다.
('가해자는 어디에도 없다' 중에서/ p.219)

모든 노동자는 작업장 안에서는 자본에 고용되어 지휘와 통제를 받으며 일하는 직접생산자다. 하지만 작업장 문을 나서는 순간 매일매일 일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해야 하는 소비자다. 직접생산자인 노동자는 노동시간이 길어지거나 노동 강도가 강화되는 작업 조건 악화에 맞선다. 더 많은 임금과 더 안정적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 다른 노동자들과 단결해 싸우기도 한다. 그러나 소비자로서는 일단 받은 임금으로 가능한 한 값싼 상품을 많이 구입해 노동 능력을 원활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다.
미시경제학 교과서의 첫 장에 등장하는 소비자 이론에서 말하는 ‘예산 제약 하의 효용 극대화’가 그것이다. 이른바 ‘통큰 치킨’이나 ‘마트 피자’가 중소 자영업자의 밥그릇을 빼앗은 대기업의 횡포라는 도덕적 비난에도 대히트를 치며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소비자와 노동자' 중에서/ pp.225~226)

모두가 CEO가 되기만을 꿈꾸지만 현실은 노동자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노동자라는 정체성을 소비자라는 정체성이 종종 압도한다. 자영업자의 문제는 개인사업자, 프리랜서의 형식으로 존재하는 비정규직 노동의 문제다. 이러한 점은 물리학적 원자들의 세계처럼 노동이 실종되고 사람이 사라진 가치판단을 배제하는 경제학에 의해 이론적으로 합리화되는 동시에 현실적인 경향으로서 강화되고 있다.
('정글의 법칙: 굶어 죽지 않을 만큼만' 중에서/ p.236)

완전경쟁은 경쟁 논리가 완벽하게 작동함으로써 소비자들에게 최대의 이익을 가져다주는 상태라고 정의된다. 그러나 그 소비자들 중 다수가 바로 그 경쟁의 참가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완전경쟁은 경제학 교과서에서 바람직한 이상향으로 묘사되며 시장의 효율적인 작동을 가져오는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영세자영업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러일으키는 원인이다.
기원이건 PC방이건 커피전문점이건 완전경쟁을 아름답고 조화로운 세계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경제학 교과서 설명하는 바와 달리 그들의 등에 빨대를 꽂고 이익을 빨아들이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경제가 성장하여 먼저 대기업이나 고소득층이 부유해지고 나면 그 이익이 아래로 넘쳐흘러 전체로 확산된다는 이론이 ‘흘러내림 효과(trickle-down)’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러한 기대와는 반대로 이익이 위로 빨아올려지는 현상(trickle-up)이 발생한다.
('빨대를 꽂아라! 승자독식의 세계' 중에서/ p.252)

경제학에서 말하는 소득분배의 ‘슈퍼스타 이론(superstar theory)’은 이제 거의 모든 분야에서 관철된다. 슈퍼스타 이론이란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에서 최상층부의 슈퍼스타에게만 소득이 집중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중략) 슈퍼스타 현상이 생겨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 산업이나 직종에서 몇 안 되는 슈퍼스타들만으로도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보통신기술의 발전과 세계화의 결과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슈퍼스타 현상이 성립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진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슈퍼스타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지 못한 대부분의 이들은 완전경쟁의 세계로 떨어진다. 얼핏 조화로워 보이는 완전경쟁의 세계, 그 뒤에는 지독할 정도로 불평등한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
('빨대를 꽂아라! 승자독식의 세계' 중에서/ pp.258~259)

저자소개

생년월일 1965
출생지 부산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마르크스 경제학에 수학적 방법을 도입하여 마련한 엄밀한 잣대에 세상사에 대한 너른 관심을 더하여, 인간의 삶과 연관된 다양한 주제를 경제학적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지은 책으로는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기억의 몽타주],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 [프로메테우스의 경제학], [우울한 경제학의 귀환](공저) 등이 있다. 그는 이번 책에서 인간의 삶을 이루는 요소 중 ‘시간’에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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