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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와 춤추다 : 행동하는 지성, 스테판 에셀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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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20세기의 유럽을 온몸으로 살았던 행동하는 지성 에셀 옹의
    파란만장한 일대기이자 유럽의 정치·외교·문화·지성사를 증언하는 탁월한 다큐멘터리!


    스테판 에셀의 행동의 동기를 이룬 것, 그것은 바로 자유입니다. 그러나 참여하는 인간 에셀은 또한 국가의 공복公僕이기도 했고, 자신이 복무한 모든 정부에 충성한 고위 공직자이기도 했으며, 보기 드문 외교관이었고, 1982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부여한 명예직인 ‘종신 프랑스 대사’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문화에 심취한 휴머니스트로 어떤 일에든 열렬히 빠져들 수 있는 사람이었고, 남들을 설득하는 능력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지성은 생동감 넘치고 기민했습니다. 그는 재기발랄한 분이었습니다. 그는 시를 삶의 기술이자 관계의 양태, 일종의 축제로 삼을 만큼 좋아했습니다. 그는 모든 행사에 임할 때 아폴리네르 혹은 롱사르의 시 한 줄을 읊으며 기념하거나 축하하곤 했습니다. 그는 가장 손닿기 힘든 아름다움을 여럿이 두루 공유하는 기쁨으로 만들었습니다.
    스테판 에셀은 이런 분이었습니다. 국경 없는 시민, 헌법 없는 유럽인, 당파 없는 투사, 한계 없는 낙관주의자였습니다. 그에겐 비밀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우리에게 그 비밀을 알려주었습니다. 그의 비밀은 바로 ‘사랑을 사랑하기’입니다.
    _ 프랑수아 올랑드(프랑스 24대 대통령)의 추도사 중에서

    분노-저항-참여의 대명사이자 진정한 세계시민이었던 스테판 에셀,
    이제 고인이 된 그가 후대에 전하는 영원한 자유인의 춤


    1917년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나 2013년 2월 26~27일 파리의 자택에서 거의 한 세기에 가까운 가나긴 삶을 조용히 마무리한 스테판 에셀. 그는 이 시대의 다시없는 어른이자 영원한 자유인,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2010년 만 93세에 쓴 [분노하라]라는 얇은 책 한 권으로 세상의 온갖 불의에 맞서 용감히 저항하고 연대할 것을 호소해 전 세계에 크나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대표적 사상가 반열에 올랐으며, [분노하라]는 프랑스에서 출간 7개월 만에 200만 부, 지금까지 3,500만 부 판매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한편 이 책 [세기와 춤추다]Danse avec le si?cle(쇠이유, 2011)는 에셀이 80대에 지인들의 우정 어린 압력에 못 이겨 집필한 회고록이다. 양차 세계대전과 식민지 국가들의 연이은 독립, 끝없는 분쟁, 인종 갈등, 냉전 등 그 어느 시대보다 치열하고 놀라운 사건들의 연속이었던 20세기를 최전선에서 온몸으로 살아낸 에셀은 누구보다 이야깃거리가 많은 훌륭한 시대의 증인이다. 여기에 더없이 독특한 개인사와 유엔 프랑스 대사를 지내며 다방면에서 펼쳐온 활동상이 유럽의 정치외교사와 어우러져 단순한 회고록이나 자서전을 넘어 20세기 현대사의 한 흐름을 잡아주는 탁월한 역사 다큐멘터리를 완성해놓았다. 한국어판에는 올랑드 대통령의 추도사와 에셀이 주로 활동했던 지역인 유럽, 아프리카, 프랑스, 파리의 지도들, 개인사와 세계사의 중요 지점이었던 부분을 정리한 연보가 곁들여져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언제나 글쓰기보다는 행동을, 향수와 추억보다는 미래를 선호했다"고 밝히는 에셀은 무한한 낙관주의자로서 "바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모두 실현된다고 확신"하는 인물이었다. 또한 유년 시절인 1920년대에 이미 "삶은 창조적 자유가 증대되는 길을 열어줄 때만, 현실을 넘어 현실에 다원적 영향을 미치는 것을 목표로 삼을 때만 비로소 온전한 의미를 지닌다"는 확신을 얻었으며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그 확신과 함께한 자유인이었다.
    독일의 유대인 작가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자유를 가장 중시한 부모님 덕에 어릴 때부터 열린 시야를 갖출 수 있었고 마르셸 뒤샹, 만 레이, 르코르뷔지에, 피카소 등 당대 내로라하는 많은 예술가들과 접하는 행운을 누리는 한편, 열다섯 살에 철학 바칼로레아에 합격하고 스무 살에 파리 고등사범학교에 합격한 엘리트였던 에셀. 그는 꼬마였을 때부터 이미 남다른 자의식과 총명함, 당돌함, 상당한 글재주를 지니고 있었다. 어머니 헬렌이 한때 사랑했던 아버지 친구 로셰의 파커 만년필이 탐이 나 슬쩍했던 어릴 적 일화가 이를 잘 드러낸다.

    피에르 아저씨,
    엊저녁 엄마가 얘기하길, 아저씨가 보기엔 내 만년필이 아저씨가 잃어버린 바로 그 만년필과 이상하리만치 닮았다고 하셨다지요. 이런 우연의 일치가 아저씨뿐만 아니라 저에게도 몹시 난처하게 여겨진다는 것 이해하시겠지요. 아저씨는 내가 이 만년필을 가져갔다고 입증할 수 없고, 저 역시 굳이 이 만년필이 아저씨 것이 아니라고 설득하려 들진 않겠어요. 소용없는 일이니까요. 내가 처한 상황의 곤란함을 아저씨가 이해해줬으면 해요. 제일 곤란한 건, 내가 지금 이 만년필의 출처에 대해 자세히 말씀드릴 수 없다는 거예요. 만년필이 굉장히 필요했을 때 학교 친구에게 돈을 주고 산 것이거든요.
    그러니 모든 오해를 피하기 위해 아저씨가 이 만년필을 그냥 가지셨으면 해요. 아저씨가 그렇게 분명히 알아보신다면 이 물건이 결국 아저씨 집에서 나온 걸지도 모르니까요. 그런 뜻에서 아저씨가 잊고 안 가져간 뚜껑도 여기 동봉합니다. 이 유감스러운 일이 엄마를 화나게 하는 것 이상의 치명적인 결과를 낳지 않길 바라며....... (40~41쪽)

    흔치 않은 성장기를 거쳐 행동하는 지성인이 되기까지

    에셀의 부모는 익히 알려져 있듯 트뤼포의 영화 [쥘과 짐]으로 신화의 반열에까지 오른 ‘세기의 삼각관계’의 실제 모델이었다. 어릴 때 이 기묘한 사건을 목도하면서 에셀은 형 울리히와 달리 이 관계를 불편하거나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건 에셀이 어머니의 기질을 강하게 물려받았기 때문인데 어머니의 기질에는 자유에 대한 갈망, 솔직함, 불손함, 기발함과 시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 게다가 에셀은 인습적 도덕, 특히 성관계와 관련된 도덕을 아주 하찮게 여기는 성향을 물려받기까지 하여, 영화 [졸업]에서나 볼 법한 첫 연애를 통해 성인의 문턱에 들어선다. 이후 입시준비반에서 만난 비티아와 결혼하고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드골 장군이 이끄는 ‘자유프랑스’군에 합류한다.
    레지스탕스의 일원으로 활약하던 중 1944년에 체포되어 부헨발트 수용소에 수감되었으며, 세 곳의 수용소를 거친 끝에 사망자와 이름을 바꾸는 탈출계획이 성공해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이후 에셀은 말한다.

    전쟁에서 벗어나며 내가 느낀 갈증은 결코 해소되지 않았다. 마치 내가 미처 그쪽에 이르기도 전에 시간이 내 안으로 밀려들어오는 것처럼, 나는 살아난 후 50년을 매일매일 강렬하게 살았다. 내 새로운 탄생을, 결정적인 밤을 이겨낸 내 승리를 유익하게 활용해야 한다는 이 욕구는 유년 시절부터 내가 갖추고 있던 준비들을 더욱 단단히 다져주었을 뿐이었다. 먼저 행복해지겠다는 헬렌과의 약속이 있었다. 헬렌은 모두의 행복에 대한 각자의 가장 큰 공헌이 스스로의 행복에 있다고 보았다. 또 내가 세 언어, 세 나라의 시, 세 문화에 열려 있다는 점이 있었다. 이 세 언어의 결합 때문에 나는 결코 맨몸이었던 적이 없으며 진정으로 고독했던 적도 없다. (145쪽)

    유엔이라는 국제무대에서 발견한 중재자의 길

    1946년 외무부 시험에 합격해 외교관 생활을 시작한 에셀은 이후 1948년 유엔 세계인권선언문 작성에 참여하고 샤를 드골, 피에르 망데스 프랑스, 조르주 퐁피두, 지스카스 테스탱, 프랑수아 미테랑, 피에르 모루아, 미셸 로카르 등 당대 최고 권력자들 밑에서 국제사회 관련 일을 맡아 다양한 활동을 펼쳐나간다. 행동하는 유럽 지성의 전위로서 알제리 전쟁기간에는 알제리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한편 불법이민자 문제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해 헌신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물론 성공한 것도 있고 실패한 일도 있었다. 에셀은 자신의 부족함으로 혹은 정부의 의중과 맞지 않아 실패한 사건들을 아무런 포장이나 자기합리화 없이 담담하게 술회한다. 특히 1975년 클로스트르 납치 사건과 1996년 생베르나르 성당 점거 사건에서 맡은 중재자 역할에 실패한 경우가 그러하다. 에셀은 오랜 세월 유엔 대사로 봉직하면서 자신이 새로운 균형의 전달자로 남는 것이 가장 실존적인 선택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러고 보니 나의 탄생 별자리가 천칭자리라는 사실이 떠오른다. ‘천칭’은 라틴어로 ‘리브라’livra다. 이는 의미심장한 어원이다. 프랑스어의 ‘리브르’livre(책)와 ‘리베르테’libert?(자유)가 모두 이 어원에서 파생된 단어다. 천칭이란 끊임없이 가부를 분별하고 무게를 재는 자의 상징인 것이다. 세 살 때 단호히 ‘카디’라는 이름을 선택함으로써 나는 이슬람 판관인 분쟁 중재자 ‘카디’의 소명에 나 자신을 내어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독일인으로 태어나 프랑스인이 된 나는 그 어떤 순간에도, 심지어 체포되어 심문당하는 힘겨운 순간에도 끊임없이 두 문화, 두 국민의 만남을 추구했다고 생각한다. 두 문화, 두 국민이 합쳐지면 과거의 폭력과 미래를 조건 짓는 균형 사이에서 잠재적 중재자가 될 것이다.(418쪽)

    이런 맥락에서 그가 후대에 전하는 마지막 말은 상당한 무게감을 지닌다.

    성공한 중재란 없다. 그러나 중재는 번번이, 그 실패를 통해 또 다른, 더욱 너른 중재의 길을 열어준다. 또 다른 중재도 역시 실패할 것이다. 이렇게 지치지 않고 이어지는 중재와 중재를 통해 우리 인류의 용감한 역사는 쓰이는 것이다. (419쪽)

    스테판 에셀이라는 큰 인물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진정한 자유, 참여, 연대, 드높은 이상에 대한 헌신이었다. 잠든 시대를 일깨운 그의 절절한 호소는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세계시민들에게 보내는 아름다운 초대다. 참된 자유와 젊음, 지성과 겸손, 진심 어린 앙가주망과 노블리스 오블리제로 일관한 용기 있는 삶의 아름다운 표본이었던 스테판 에셀. 그와 같은 인물을 다시 만나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이 회고록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 책에서 독자들은 진정한 세계시민으로 산다는 것과 향후 세계가 지향해야 할 바에 대한 인문적 성찰의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목차

    스테판 에셀을 추모하며 - 올랑드 / 서문 / 들어가는 글

    1. 베를린에서 파리로
    2. 프랑스 소년이 된 독일 아이
    3. 성인의 문턱에 들어서다
    4. 2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
    5. 드골 휘하로
    6. 전시戰時의 런던
    7. 파리에서 벌인 지하활동
    8. 부헨발트와 로틀베로데
    9. 도라 수용소
    10. 외교관이 되다
    11. 미국
    12. 유엔
    13. 프랑스
    14. 피에르 망데스 프랑스
    15. 장 물랭 클럽
    16. 아시아
    17. 알제리
    18. 내 친구 화가 다니엘 코르디에
    19. 세계를 돌다
    20. 아프리카 (1)
    21. 클로스트르 피랍 사건
    22. 이민문제 풀어가기
    23. 제네바 주재 유엔 대사
    24. 좌파가 집권하다
    25. 미셸 로카르 (1)
    26. 미셸 로카르 (2)
    27. 아프리카 (2): 와가두구
    28. 아프리카 (3): 부줌부라
    29. 황혼인가 새벽인가?

    덧붙이는 말 / 옮긴이의 말 / 연보

    본문중에서

    작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내가 펜을 쥐게 될 거라는 생각은 결코 하지 못했다. 나는 언제나 글쓰기보다는 행동을, 향수와 추억보다는 미래를 선호했다. 그러나 내 나이에 이르면 누구든 자신이 살아온 시대의 증인이 되기 마련이다. 내 존재는 세기와 함께 끝나간다. 친구들의 우정 어린 압력(그중에서도 레지 드브레가 계속 나를 채근하고 압박했다)에 못 이겨, 자기 시대의 사건들과 연관된 개인의 운명을 술회하는 쉽지 않은 일에 손을 대게 된 것은 아마 이런 이유에서였으리라.
    (/ p.18)

    교차점을 하나하나 지날 때마다 나 자신과 역사에 대한 내 판단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순진한 믿음이 부정당하고, 환상이 깨지고, 참상을 목격하고 쓰디쓴 결과를 맞은 적도 여러 번이었지만 그래도 내 확신은 변치 않는다. 나는 바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모두 실현된다고 확신한다. 운명이 내게 아낌없이 베풀어준 혜택 중에 크나큰 부분을 차지하는 특권 하나는, 세월이 흐르면서 세상과 그 움직임을 믿는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라본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러한 낙관주의는 더 강해진다.
    (/ p.19)

    집으로 돌아오자, 헬렌은 얼굴이 퉁퉁 부은 채 망연자실해 있었다. 헬렌과 로셰의 관계가 심히 위태로워진 것은 30년대 초, 희망과 환멸, 거부와 회복의 시절부터였으며, 결국 둘의 관계는 비뚤어진 결별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1933년 7월의 그날, 헬렌은 로셰가 제르맨과 비밀리에 결혼했고 아들까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참이었다. 이처럼 오래 끌어온 거짓말을 그녀는 견딜 수 없었고, 보기 드문 폭력 장면이 펼쳐졌다. 헬렌은 권총으로 로셰를 위협했으며 공포에 사로잡힌 로셰는 빠져나오기 위해 권투기술을 발휘했다. 이 난투극이 끝난 후 헬렌은 결코 그를 다시 만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그리고 이 결심을 굳게 지켰다.
    (/ pp.46~47)

    세상은 사방에서 무너져 내렸고, 패배와 승리가 번갈아 이어지고, 전선이 전진했다 후퇴했다 했지만, 오후 5시 무렵이면 우리는 버클리 광장 근처의 펍에서 차를 마셨고, 호화롭게 무장하고 뒤늦게 싸움판에 뛰어든 미국인들을 놀리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제일 우습고 짓궂은 농담은, 세 개의 훈장을 단 어느 미군 병사가 영국인 동료에게 훈장 수여 이유를 묻는 질문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 미군 병사는 대답했다. "첫 번째는 대서양을 건너왔다고 받았지. 두 번째는 작전지역에 확실히 출동했다고 받았고." "그럼 세 번째는?" "성폭행당할 뻔한 여자를 구했어." "아! 어떻게 말인가?" "내가 그렇게 하려다 말았거든."
    (/ p.105)

    기다림은 초조했다. 우리는 공동침실에서 게임을 하고 디츠의 다소 찌푸린 얼굴을 흘끗거리며 초조함을 떨치려 노력했다. 유일하게 음모를 알고 있는 디츠는 내내 침착했다. 플레베는 운이 아주 좋았다. 그의 이름이 세 번째로 호명된 무리에 끼어 있었던 것이다. 탑의 감시의 눈을 속이기 위해 그를 죽어가는 티푸스 환자로 분장시켜야 했다. 그와 신원을 바꾸게 될 마르셀 세니외르는 제시간에 죽어줄 것인가? 그랬다. 플레베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우리가 그 정체성을 바꿔치기할 젊은 전우들에게서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끌어내는 일은 내 몫이었다.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그들의 직업이며 카드에 기록된 특이사항 등을 알아둬야 했다. 그러니까 그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 더 지독하게는 그들이 최대한 빨리 죽어주기를 바라는 게 내 일이었던 것이다. 서로를 알아가는 방법치고는 참 희한한 방법이었다!
    (/ p.122)

    발터와 울브리히트와 함께하며 나는 독일 수용소 수형자들의 오랜 경험에 대해 차츰 눈떠갔다. 그것은 이 참혹하고 특수한 인간의 모험이 펼쳐지는 기반을 형성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수용소 생활의 불건전한 면도 체험했지만, 이따금 우스꽝스러운 일상도 겪었다. 그들이 해준 이야기를 통해 나는 수용소의 기분 나쁜 유머를 알게 되었다. 한 농담은 어떤 노老대령에 관한 것이다. 그는 관대한 배려를 받아 ‘양말 작업반’에 배치되었는데, 그 일에 싫증이 나서 이른바 ‘장미밭’에 들어가려고 수를 썼다. 사실 거기가 작업장 중에서도 제일 끔찍한 곳이라는 건 꿈에도 모르고. ‘장미밭’은 카포와 SS의 조롱을 들으며 야외 변소의 변을 뒤적거려서 화단에 쏟는 일이었다. 발터와 울브리히트는 웃음을 터뜨렸고, 나는 하나 배웠다.
    (/ pp.126~127)

    그런 대화는 거의 언제나 분노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오직, 그릇된 길을 밟아왔으나 올바른 길을 되찾을 수 있고 그러할 것이 분명한 힘을 상대로만 분노하는 법이다. 우리는 기억하기 때문에 항의한다. 재난을 승리로 뒤바꾼 사람, 처칠의 회의주의와 스탈린의 냉소주의에 맞서 유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지켜낸 사람 루스벨트를 기억한다. 내가 프랑스 대표를 맡았던 유엔인권위원회의 회합에서, 위원장 엘리너 루스벨트[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를 만날 때마다, 내겐 테헤란에서, 그 뒤엔 얄타에서, 비록 빈사상태였으나 세계가 어떻게 변화하든 살아남는 강력하고 세계적인 기구에 대한 전망을 펼쳐 보이던 그 놀라운 인물의 모습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그날 펠릭스와 나는 미국 지도자들의 눈먼 어리석음에 대해 분노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창설했던 이 기구에 대한 스스로의 의무를 저버렸다.
    (/ pp.146~147)

    어쨌든 내가 아시아의 향기도 맡아보았고, 베트남 여인들의 우아한 몸매 앞에서 서른일곱 살 먹은 남자가 느낄 법한 설렘도 겪어보았으며, 누구도 길들일 수 없는 베트남 민족의 불굴의 힘도 느껴보았고, 아시아인들이 육체와 감수성과 정신, 이 3자 간의 관계를 서양인보다 훨씬 풍성하게 유지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설령 그것이 아니라 해도 최소한 이런 것들이 내 기억 속 주제로 자리잡은 것은 확실하다. 겪은 바와 꿈꾼 바를 지칠 줄 모르고 섞어주는 믹서처럼.
    (/ p.227)

    세심하게 깊이 파고드는 그에 비하면, 외교관으로서 내 활동은 매우 피상적이고 현실에 미치는 영향도 대단히 한시적인 것 같았다. 엘렌 아르벨레르에게서는 아주 다른 느낌을 받았다. 대학교수들은 바깥세계가 어찌 되어가건 상관없는 매우 상징적인 가치들을 서로 인정함으로써 형성되는 일종의 비눗방울 속에 갇혀 있었다. 외교관들은 최소한 시대의 불행, 나아가 극적 갈등과 맞부딪치기도 한다. 그러한 불행이나 갈등이 그들의 삶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외교관들은 의식에서 그 짐을 쉬이 내려놓지 못한다. 그러나 대학교수들은 아마도 이러한 심각한 일은 면하는 것 같다. 부드러운 펠트 천을 씌운 듯한 그들의 열정은 물론 격렬할 수도 있지만, 집단지도 체제에 좌우된다. 교수들이 연구하는 시간은 우리 외교관들이 일하는 시간보다 충돌이 덜하기에 번민도 덜하다. 나는 마치 고요한 목욕물에 잠기듯이 그들과의 접촉 속으로 잠겨 들어갔다. 하지만 그들은 사물 속으로 깊이 뚫고 들어갈 시간을 가졌기에 사물의 밑바닥을 안다. 나는 언제나 사물의 표면에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내가 세계라 칭한 것이 실은 좀더 깊은 진실이 날씨처럼 변덕스레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반영反影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처럼 우울한 이야기를 깊이 천착할 시간도 없었다. 엘리제궁의 비서실장 클로드 브로솔레트는 런던의 프랑스 레지스탕스 중앙정보·행동담당총국에서 내 상관이었던 피에르 브로솔레트의 아들이었다. 그는 내가 공직 발령을 받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지는 것을 눈여겨보았고, 그런 공백기간을 끝내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977년 봄이 다 갈 무렵 내게 주어진 직책이 제네바 주재 유엔 대사였다.
    (/ pp.301~302)

    1970년대부터 새로운 통계자료는 고려되지 않았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지구를 ‘지구촌’-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기는 하나 틀린 표현-으로 변모시켰다. 전 지구를 포괄하는 마을이라고? 그렇다. 그러니까 본디 국가가 자국 영토 내에서 개별적으로 부과할 만한 규제를 무력화해버리는 것이 이른바 ‘전 지구를 포괄하는’이라는 말에 내포된 실상이다. ‘마을’이라고? 그건 아니다. 왜냐하면 거기엔 분명 우리가 ‘마을’이라고 할 때 으레 떠올리는 공생共生과 연대의식이라는 특성이 없기 때문이다.
    전 지구의 세계화는 현기증이 날 만큼 급속히 진전된다. 그로 말미암은 정체성 위축과 사회적 주변화는 공생과 연대의식을 퇴보시킨다. 그러므로 20세기가 답을 내지 못한 핵심적인 문제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지리적·생태적으로 서로 괴리를 보이는 상이한 문화적 지역들, 즉 세계화로 인해 경제적으로는 상호 의존하게 된 이런 지역들 사이의 관계, 또 하나는 이 격차가 촉발하는 인구이동문제다.
    (/ p.364)

    발라뒤르 정부는 외국인에 관한 입법을 더욱 억압적으로 밀어붙였다. 샤를 파스쿠아 장관은 이미 프랑스 국적을 하자 없이 취득한 사람들에게까지 취득조건을 둠으로써 간접적으로 속지주의를 침해했다. 파스쿠아에 이어 장관이 된 장 루이 드브레는 한 술 더 떠서 ‘불법체류자’ 사냥에 나서기까지 했다. 1996년 그에게 건네진 횃불을 잡기를 끝내 거부한 통탄스러운 그의 고집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분개했다. ‘불법체류자’들의 신분보장을 위한 캠페인에 참가하여 중재자들의 모임에서 더없는 신뢰와 존경을 불러일으키는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경험은 나에게 시민적 참여의 가장 위대한 순간이며 그 뒤로 그런 일에 가장 신경을 쓰게 되었다.
    (/ pp.368~369)

    마침내 빼놓을 수 없는 장소인 와가두구 중앙시장을 방문했다. 그곳을 찾은 외국인들에게 어린 소년들이 반은 거지, 반은 장사치의 모습으로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비록 여행객들에게 물건은 팔아도 비굴하다기보다는 장난꾸러기 같은 아이들이었다. 이렇게 죽 돌아보며 방문을 마치고 나니 작별의 시간, 그리고 이런 접촉에서 가장 난처한 순간, 즉 선물을 받는 시간이 왔다. 너무도 아낌없는 선물들이었고, 도저히 마다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런 선물을 받노라면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차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자 나라는 찾아온 손님으로 하여금 돈을 쓰게 만드는데, 가난한 나라는 온통 베풀어주기만 했던 것이다.
    (/ pp.378~379)

    지난 사반세기 동안 우리는 기술의 모든 분야가 병합적·함수적으로 가속화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여러 문제들이 세계화되고, 위협과 약속 사이에는 걱정스러운 간극이 생기고, 그리하여 우리는 열병을 앓는다. 이처럼 콸콸 흘러내리는 급류 속에서 이제 죽은 시신에서 떨어져나간 팔 한쪽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면 이 근심이 촉발하는 소용돌이 속에서, 근심에 대항할 희망의 메시지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그 희망을 온몸에 담은 사람들과 접촉함으로써 찾을 수 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나는 주로 그런 사람들을 만났다. 강한 확신으로 움직이는 남녀들, 시간의 흐름에서 의미를 찾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지닌 사람들. 어쩌면 도덕적으로 한쪽만을 보는 내가 사시斜視인 탓에 그들의 어두운 면은 간파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비탄에 잠겨 낙담하고 단념하는 사람들에게서 나는 눈길을 돌린다. 그들이 보라고 종용하는 것에 나는 흥미가 없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지닌 장애인지도 모르겠다.
    (/ pp.402~403)

    저자소개

    스테판 에셀(Stephane Hessel)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17.10.20~2013.02.27
    출생지 독일 베를린
    출간도서 8종
    판매수 5,780권

    스테판 프레데릭 에셀은 1917년 10월 20일 독일의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스테판의 아버지 프란츠(1880-1941)는 작가이자 번역가였다. 에셀의 어머니 헬렌(1886-1982)은 저널리스트로서 유명한 여류 명사였다. 부모는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이 1961년에 만든 영화 [쥴 앤 짐]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스테판 에셀은 7살 때인 1924년 부모와 함께 프랑스 파리로 이주하였으며, 1934년부터 1년간 런던정경대학(LSE)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1939년 파리고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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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는 정연靖淵, 불명佛名은 ‘소나’이다. 서울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 프랑스 파리3대학교에서 불문학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쳤다. 여러 출판사에서 해외 도서 기획과 저작권 분야를 맡아 일했으며 출판 기획·번역 네트워크 ‘사이에’를 만들어 해외 도서 번역에 힘쓰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티베트 스님의 노 프라블럼] [달라이 라마, 나는 미소를 전합니다] [정신의 진보를 위하여] [분노하라] [인간이라는 직업]등 다수가 있다. 번역의 길과 수행의 길이 하나 되게 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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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균관대학교에서 불어불문학과 영어영문학을 전공했다. 현재는 대학원에서 번역 이론을 공부하며, 출판・기획・번역 네트워크 ‘사이에’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프리다 칼로], [전장 위의 오르탕스], [헨젤과 그레텔], [칸 : 침묵과 빛의 건축가 루이스 칸], [스캣], [티베트], [폭력이란 무엇인가](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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