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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연구 (하) : 오천년간 조선의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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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의 [조선사연구(朝鮮史硏究)]한글역주본 완간

    1. [조선사연구] 하권의 체제상의 특징

    하권에서는 1936년 "동아일보"의 일장기 말쇄사건으로 위당 선생이 ‘오천년간 조선의 얼’의 원고 집필을 중단할 때까지 연재되었던 제17장 "기루왕 이후 백제와 신라" 로부터 제25장 "신라의 내정과 외치"에 이르는 고구려·백제·신라 관련 역사를 수록하고, 추가로 세 나라의 종교·학문·제사·예문·불교의 유래와 발전에 대하여 문화사적 관점에서 접근을 시도한 "전고 갑"을 제27장에 수록하고 있다. 또, 그동안 초고 형태로 보관되었던 "고구려의 패업과 영락태왕" 부분을 제26장으로 새로 배치하였다. 그리고 부록의 형식으로 위당 선생이 고대사 연구에 투신하게 된 계기와 일제의 역사왜곡을 경계하는 당부의 말을 담은 "조선사연구 부언", 광개토대왕 능비 비문에 대한 연구논문이라고 할 수 있는 "광개토경 평안 호태왕릉 비문 석략", 고구려 관명에 대한 글인 "태대형·대형·소형에 관하여"를 모두 수록하였다. 역자는 이와 함께 최초의 발견 이래 위당 선생을 거쳐 100여 년이 흐른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도 주요한 관심사가 되고 있는 "광개토경 평안 호태왕릉 비문"에 대하여 문법학·어원학적 측면에서 분석·보완한 역주 내용을 추가로 수록하였다.
    하권에서 체제상으로 특기할 만한 점이라면 무엇보다도 지금 이 순간까지도 여전히 논란이 거듭되고 있는 광개토대왕과 그 능비에 관한 내용이 집중적으로 소개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본서 제26장 "고구려의 패업과 영락태왕"과 순한문체 연구논문 "광개토경 평안 호태왕릉 비문 석략", 그리고 역자가 새로 역주한 "광개토경 평안 호태왕릉 비문"이 그것이다. 위당 선생이 단재 선생 이후로 유일하게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우리 역사 왜곡·조작에 맞서 이 일련의 논문을 집필하여 반론을 제기한 이래로 70여 년이 지나는 동안 한·중·일 세 나라에서 광개토대왕과 그 능비에 대한 연구와 비문 해석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양적·질적으로 많은 진전이 있었다. 따라서 새로운 역사적 사실의 발견이라는 측면에서는 "고구려의 패업과 영락태왕"과 "광개토경 평안 호태왕릉 비문 석략"에서 특기할 만한 내용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몇 가지 부분에 있어서는 지금에 와서도 주목할 만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 "고구려의 패업과 영락태왕"에 관하여

    위당 선생의 [조선사연구]는 "동아일보" 일장기 말쇄사건으로 제25장 "신라의 내정과 외치" 를 마지막으로 사실상 중단되었다. 이 "고구려의 패업과 영락태왕" 부분은 원래 위당 선생이 "동아일보" 에 연재해 온 ‘오천년간 조선의 얼’의 기고문으로 집필된 것이다. 그러나 1936년 8월 29일 갑작스러운 "동아일보" 의 정간으로 ‘오천년간 조선의 얼’의 연재가 중단되면서 초고 상태로 다른 곳에 보관되었으나, 1947년 "서울신문" 을 통하여 그동안의 연재 내용을 [조선사연구]라는 제목으로 정식 출판할 때에도 미처 수록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1983년 무렵 연세대학교에서 위당 선생의 저술·시작들을 수집하여 엮고 [담원 정인보 전집]이라는 제목으로 정식 출판할 때 [조선사연구]의 마지막 장으로 수록되면서 비로소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이 장의 기술 내용은 고국원왕 시기의 국내외 정세, 고구려의 서진과 부여회복군의 동진, 신라와의 외교관계, 영락연간의 업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에서 광개토대왕에 관한 기술 부분의 경우 ‘영락’이라는 연호의 역사적 의의와 함께 그의 대외정벌, 백제 정벌, 거란 토벌 등의 대외 정벌 활동을 기술하는 한편 그 이동 경로를 고증하는 데에 역점을 두어 지금의 학계에서도 참조할 만한 내용들이 많다. 단적인 예가 광개토대왕의 정벌 경로를 확인하는 데 있어 중요한 단서가 되는 ‘염(나)수’의 위치에 대한 고증이다. 위당 선생은 염(나)수가 지금의 눈강인데 사학자들이 그 위치를 고증하는 과정에서 혼선을 빚게 된 결정적인 이유로 역대 중국 역사가들이 요동 쪽 해구의 존재만 알고 북동해 저편 해구의 존재는 전혀 알지 못했던 점을 꼽고 있는데, 지금의 학자들도 주의를 기울일 가치가 있다고 본다.

    3. "광개토경 평안 호태왕릉 비문 석략" 에 관하여

    위당 선생은 이 무렵 "고구려의 패업과 영락태왕"과는 별도로 "광개토경 평안 호태왕릉 비문 석략" 이라는 제목의 고구려사 연구논문을 집필하였다. 위당 선생의 제자이자 연세대 교수였던 민영규 선생의 논문에 따르면, 위당 선생이 이 논문을 집필하게 된 결정적인 동기는 1930년대 당시 식민사관에 입각한 일제 관변 학자들의 광개토대왕 비문에 대한 억지해석에서 찾을 수 있다.
    위당 선생은 이 논문에서 능비 비문의 문체상의 특징에 대해서 먼저 소개한 후 문헌 고증과 현지 지형에 주의하면서 해당 비문을 총 7개 단락으로 나누었다. 여기서 그는 "來渡海", "百殘聯侵新羅", "滿其國境", "潰破城池", "以奴客爲民" 등 그 후로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논란이 되고 있는 주요 쟁점들에 대하여 정밀한 분석을 시도하고 말미에서는 일제 관변학자들의 이 같은 억지해석이 "세상이 어지러운 데다 예문의 법도가 사라져 이런 글을 읽는 일이 드물어지고 거기다 편견과 사심까지 끼어들어 멋대로 재단하다 보니 문맥이 뒤틀리고 의미도 딴판으로 변해 버리고 만 것"이라고 질타하였다. 이 논문은 능비 비문의 문구 해석을 놓고 그 후로 많은 학자들에게 계발과 논쟁의 여지를 남겼다.

    4. "전고 갑"에 관하여

    당대 최고의 국학자로서의 위당 선생의 위상이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전고 갑" 부분이다. 위당 선생은 여기서 한·중·일 세 나라의 고금의 문헌·전적들을 폭넓게 활용하여 문화사적 측면에서 고구려·백제·신라 세 나라의 전통신앙·교육제도·국가제의·문학예술·천문역법·문자언어·불교신앙 등의 문화적 현상과 제도들의 유래 및 발전 양상에 대하여 상당한 지면을 활용하면서 심도 있는 탐구와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중국의 ‘삼론종’ 확립에 큰 역할을 한 고구려승 도랑, 불교를 신라에 전파한 아도 등, 당시까지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던 불교 승려들과 불교 경전 및 교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그의 학문적 깊이와 통찰력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5. "정무론" - 우리 고대사 조작을 비판하다

    하권에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부분은 ‘조작을 바로잡는 글’, 즉 "정무론"이다. 위당 선생이 한국 고대사 연구에 나서게 된 동기는 일제 치하의 어용학자들이 식민사관에 입각하여 우리 역사를 조작하려 하는 시도에 맞서기 위해서였다. 물론 [조선사 연구] 자체가 그 같은 위당 선생의 역사적 인식을 반영한 책이지만 이 같은 인식이 집중적으로 반영된 부분이 바로 "정무론" 이다. 위당 선생은 당시의 관변 학자들이 낙랑 유물을 조작했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정무론" 을 써서 일제 식민사관 사학자들의 한국 고대사 조작·왜곡을 경계하였다. 위당 선생은 중국 송대에 옛 비석을 옮기거나 관중 땅의 당대 ‘석경’이 강남의 필원에게 소장된 일, 북조시대의 조각상이 강남의 손성연에게 소장된 일, 촉 땅의 조각상이 남조에 전해진 일 등을 예로 들어 운반·이동이 가능한 물건들은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수시로 위치 변동이나 ‘원산지 조작’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에 지금 그 자리에 있다고 해서 그것을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다고 믿으면 곤란하다고 보았다. ("그 글귀가 하도 반반해서 그 돌을 옮겨 왔다는 것이 너무도 티가 나는데도 그저 ‘여기가 옛 점제이다’라느니 ‘여기가 점제현의 치소 자리이다’라느니 하고 우기고 있으니 어쩌면 이다지도 방자하고 거리낌조차 없을 수가 있단 말인가!") 위당 선생은 또 이런 말로 유물 조작의 가능성을 경계하였다.
    "…… 사방팔방으로 나가서 그 증거가 될 만한 것들을 찾아 언덕이나 고랑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그 속에 위조물이나 조작거리를 슬쩍 끼워 놓은 다음 자기 궤변을 합리화하려고 든다. 심할 때에는 일부러 그런 것들을 묻어 놓고 남들이 발굴하게 하기도 하고 일부러 그런 것들을 버려 놓고 남들이 발견하게 하기도 한다. 또, 어떨 때에는 일부러 그것에 묻은 흙을 털고 닦은 다음 그 글귀를 판독하는 척하다가 뛸 듯이 기뻐하면서 ‘정말 이 땅에서 이런 물건이 나왔네?’ 하고 떠들어 댄다. 그렇게 하면 그 광경을 보는 사람은 청동기나 비석 따위가 줄줄이 쏟아지는 것을 지켜보다 보면 아무리 ‘안다 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전혀 의심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 불순한 목적으로 그런 짓을 벌이다 보니 오로지 자신의 그런 목적을 이루기에만 바쁠 뿐 옳고 그르고는 아예 따지지도 않는 것이다."(842-843)
    "아무 영문도 모르는 사람들은 저들의 작태를 보면서도 저(어용학자)들의 작태를 보면서도 그저 ‘옛 것을 찾는 고생을 하는구나’, ‘역사 고증을 할 준비를 하나 보다’ 하고 여기면서 되려 그들 편을 들어 ‘남들은 우리 역사를 찾는 데에 돈과 공을 이 만큼이나 쏟아붓고 있는데 예전에 이런 일에 종사한 우리네 학자들은 대체 해 놓은 것이 뭐야?’ 하고 개탄만 할 뿐 저들이 그 일에 매달리는 것이 남의 옛 역사를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남의 옛 역사를 허물려는 짓이며 남의 역사를 고증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남의 역사를 없애려는 짓인 줄은 모르기 일쑤이다."(844)

    6. 끝으로 하는 말

    과학과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과 변화를 거듭하는 21세기를 살면서 새삼 느끼는 것은 우리가 그동안 ‘불변의 진실’이라고 굳게 믿던 사실이나 가치들도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역사의 세계도 그러하다. 지금 눈앞에 펼쳐져 있는 유물이나 역사기록만을 역사적 진실 그 자체라고 단정하는 것쯤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진정한 역사학자라면 거기에서 머물지 않고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것들이 ‘누구’에 의해 ‘어떤 경로’를 통하여 ‘그 자리’에 존재하게 되었는지 거침없이 반문하고 또 기존의 결론과 정설에 끊임없이 도전할 줄 알아야 한다.
    위당 선생은 [조선사연구]에서 역사는 곧 민족 ‘얼’의 발현이라고 보았다. 그동안 우리 역사학계 일각에서는 주로 역사방법론에만 집착하여 위당 선생의 ‘얼’ 사관이 "민족 내의 계급투쟁을 간과했다"라거나 "극단적인 정신사관이었다"라고 비판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물론, [조선사연구]에서 위당 선생이 제기한 주장이나 관점들 중에서 문제나 논란이 되는 부분이 있다면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한 가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조선사연구]로 상징되는 위당 선생의 한국 고대사 연구와 그 성과들은 그것이 위당 선생에 대한 긍정이었든 부정이었든, 심지어 위당 선생에 대한 표절이었든 간에 이후의 남·북한 학자들이 역사관을 정립하고 방법론을 모색하는 데에 많은 계발과 자극을 주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위당 선생은 훌륭한 역사학자이며, 또 역사학자로서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으니, 그의 ‘얼’ 사관과 연구 업적에서 수용하고 계승할 것들이 있다면 당연히 그것들을 오롯이 인정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우리 이웃나라는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었다"라거나 "독도가 일본 땅이다"라는 식의 강변을 서슴지 않고 있다. 거기에는 학자로서의 자존심도 객관성도 보이지 않는다. 자신들이 정한 행동강령에 따라 우리 역사를 자의적으로 왜곡하고 또 그것을 기정의 사실로 만들려고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위당 선생은 일제 강점기에 ‘오천년간 조선의 얼’ 집필과 신문 연재, 역사 강연 등을 통하여, 일제의 역사왜곡으로부터 우리의 역사, 우리의 ‘얼’을 지키고자 진심으로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였다. 그로부터 7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 역사학계는 이웃나라의 역사 왜곡으로부터 우리의 역사와 ‘얼’을 지키기 위하여 과연 얼마만큼 노력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반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글: 문성재)

    목차

    "우리국학총서(國學叢書)"를 펴내며
    해 제
    일러두기

    17. 기루왕 이후 백제와 신라
    1. 장령, 사도의 방어시설
    1) 장령(長嶺) 2) 사도(沙道)
    2. 신라의 지속적인 내치 정비와 사치 금지령
    1) 징병 2) 군사 편제 3) 병기 관리
    3. 이때의 백제
    1) 양국의 장단점과 그 원인 2) 나·제 충돌의 재개
    3) 나·제의 거듭된 공방과 수시로 뒤바뀌는 승부
    4) 말갈의 침입을 제지 5) 고이왕의 법제 개혁

    18. 명림답부의 반정
    1. 고구려 태조대왕의 양위와 차대왕의 폭정
    1) 직언자의 수난 2) 태조대왕의 변함없는 우애 3) 왕위 선양
    2. 요해(遼海)의 정세 변화
    1) 국경 방어선의 후퇴 2) 강성해지는 선비(鮮卑) 세력
    3) 백성들의 폐위운동

    19. 고구려의 부흥
    1. 요동 출병과 좌원(坐原) 대첩
    1) 요동 출병 2) 좌원 싸움의 경과
    2. 고국천왕(故國川王)의 치적
    1) 국경을 침범한 공손도의 군사를 대파하다
    2) 세습귀족제도의 붕괴와 을파소의 등용 3) 진대법의 시행
    3. 발기의 자결
    1) 고국천왕의 국상과 왕위계승 문제 2) 발기의 원군 요청과 자결

    20. 수많은 전쟁 속에 개척된 강토
    1. 동천(東川)의 왕위 계승
    1) 동천왕의 생장과 그 사람됨
    2. 활발한 대외정벌과 복잡한 외교관계
    1) 동천왕 초기의 국력 2) 요동 토벌과 위, 오와의 교류
    3. 위나라 관구검의 약탈
    1) 서안평 싸움과 그 관계 2) 낙랑국 통치 문제
    3) 대격돌을 앞둔 양측의 준비와 부여의 국론 분열
    4) 비류수, 양맥곡에서의 위군의 연전연패
    5) 동천왕의 몽진과 유유의 살신 구국
    4. 반도 내의 한인 세력 제거
    1) 과거의 정세 2) 백제의 요해 기습 3) 고구려와 백제의 협공
    5. 평양 천도와 동천왕의 붕어
    1) 대동강 위에 세워진 또 다른 왕성 2) 9월의 국상
    6. 고구려의 성진(城鎭) 확대와 잇따르는 외란

    21. 요해 수복
    1. 첫 단계의 현토 토벌
    1) 미천왕의 왕위 계승 2) 전쟁의 시작
    2. 점차 수복되는 옛 강역
    1) 서안평 수복 2) 낙랑, 대방 두 군의 수복
    3) 극성 출병 4) 난하 부근에서 잇따르는 충돌

    22. 백제의 해상 진출
    1. 요서 패권 쟁탈전
    1) 책계왕과 분서왕의 전사2) 산동의 백제 유적
    3) 녹산에서의 부여 습격 4) 모용씨와의 전쟁 5) 비류왕의 즉위
    2. 요서에 ‘진평’군을 두다
    1) 모용, 우문, 단료의 각축 속에 점차 확장되는 백제의 영토
    2) 전쟁 속에도 이어지는 통상

    23. 고구려와 모용연
    1. 의도된 화친과 석조와의 제휴
    2. 북부의 피습
    1) 고국원왕 이후의 국력 2) 북도(北都)와 우문씨의 관계
    3) 모용연의 침입 4) 무의 북도 대첩과 모용황의 창황한 퇴각
    3. 볼모들의 복수
    1) 고구려의 볼모 2) 이후의 고구려와 부진의 관계

    24. 아아, 대외 진출이 내부 분쟁으로
    1. 고구려의 남도(南都)와 백제
    1) 고구려와 백제의 대립 2) 남도에 집중하다
    2. 치양(雉壤) 싸움에서 평양 공방전까지
    1) 전쟁의 서막 2) 고구려군의 연패와 고국원왕의 전사
    3) 백제의 한수 이북으로의 천도

    25. 신라의 내정과 외치
    1. 어진 임금의 왕위 계승
    2. 심화되는 정치 개혁
    1) 국법 적용에는 친소와 귀천을 따지지 않다
    2) 화백 전통의 제도적 확충 3) 관리의 임용
    4) 중농정책의 지속 5) 호민(豪民)과 외래 민호의 정착
    3. 신라의 해상 방위
    1) ‘동우(東憂)’의 시작 2) 각간 우로의 죽음
    3) 유례왕의 일본 정벌 4) 변방의 성들
    5) 강세(康世)의 농성과 내물왕의 섬멸전

    26. 고구려의 패업과 영락태왕
    1. 고국원왕 전쟁 이후의 국내외 정세와 상호관계
    1) 거란의 당시 위치 2) 후연(後燕)의 두 도읍 화룡과 계의 위치
    2. 고구려군의 서진과 부여 회복군의 동진
    3. 신라와의 관계 회복
    4. 영락 연간의 업적
    1) 즉위와 연호 사용 2) 사방으로 펼쳐진 정벌
    3) 관미성 정벌과 그 위치 4) 거란 토벌의 장거(壯擧)

    27. 전고갑(典故甲)
    1. 종교와 학문에 관한 전고들
    1) 우리 겨레 공통의 종교와 그 종지 2) 학관(學官)제도와 학교시설
    2. 제사에 관한 전고들
    1) 천제(天祭) 2) 국사(國社)와 산천 3) 시조묘
    3. 예문(藝文)에 관한 전고들
    1) 저술과 문헌 2) 문자
    3) 문자의 발전단계 4) 과연 누가 그렸을까
    4. 불교에 관한 전고들
    1) 부진과의 교류와 불교 수용 2) 백제 불교와 인도 승려 마라난타
    3) 도랑(道朗)의 삼론종(三論宗) 확립

    부록1. 조선사연구부언(附言)
    "부언의 서두"
    1. 정무론(正誣論) 상편 2. 정무론(正誣論) 중편
    3. 정무론(正誣論) 하편 4. 정무론 원문
    "부언의 결어(結語)"
    "부언에 다시 덧붙임(附言補遺)"

    부록2. 광개토경 평안 호태왕릉 비문 석략
    부록3. 광개토경 평안 호태왕릉 비문
    부록4. 태대형, 대형, 소형에 관하여
    쉽게 풀이한 《조선사연구》 뒤에
    번역을 마치면서
    위당 선생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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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정인보(鄭寅普, 1893~?)는 근대 국학자, 민족사학자, 독립운동가, 시조시인, 언론인, 정치인. 본관은 동래, 호는 담원, 위당(爲堂) 이다. 1893년 서울 출생. 한학 수학 후 1910년 조선 강화학파의 거두 난곡(蘭谷) 이건방(李建芳)의 제자가 되었다. 어려서 강화학파의 학통을 이은 이건방(李建芳)의 제자로 학문의 기초를 쌓았으며, 20대 때에는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1910~1914년 중국 안동, 봉천, 서간도, 상해 등을 수시로 다니며 신규식, 박은식, 신채호, 김규식, 문일평, 홍명희 등과 교유. 독립운동 비밀결사조직인 동제사(同濟社)에 가입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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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년월일 1965~
    출생지 경남 합천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1965년에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난징대학교에서 [심경 극작 연구], 서울대학교에서 [원간잡극 30종 동결구조연구]로 각각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문사철 분야의 번역 및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그동안 옮긴 책으로는 [중국고전희곡 10선], [중국희곡선집], [고우영 일지매](1~4, 중역), [도화선](1~2),[간전노], [회란기], [진시황은 몽골어를 하는 여진족이었다], [조선사연구], [경본통속소설], [한국의 전통연희](중역)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현대중국의 연극무대], [중국의 종교극 목련희], [명대 희곡의 출판과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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