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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시간』은 저자 특유의 강한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둔 김성종의 비극 추리소설이다. 사창가로 흘러 들어온 어린 소녀와 철모르는 남동생, 어린 소녀를 강간하여 임신시킨 중년 남자의 죽음. 형사의 수사를 피해 도주하던 어린 살인범의 절박한 외침, 형사는 그들을 체포할 수도 없었고 모른 체 할 수도 없는데….

김성종 초기 순수문학 계열의 작품으로 단편으로 발표하였던 것을 장편소설로 개작한 소설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초기 작품이 모두 그랬던 것처럼 6?25 전후 우리나라의 빈곤하고 참담한 현실을 밀도 있게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시종 독자의 폐부를 찌르는 듯한 아픔과 비통한 눈물을 요구함으로써 비극미의 극치를 맞보게 하는 소설이다.
김성종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오병호 형사는 종로3가 사창가 골목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하였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하다가, 남루한 옷차림의 어린 소년이 호객행위를 하는 것을 보고 발걸음을 멈춘다. 어린 소년은 지나가는 손님을 불러들이고 임신한 소녀는 손님에게 몸을 팔고 있었다.
스레기더미에서 발견된 중년의 남자 시체는 이 어린 소녀를 강간하고 임심시킨 자로 밝혀졌다. 사건은 실마리가 하나씩 풀려가고 범인의 윤곽도 어느 정도 파악이 되는데……
오병호 형사는 몹시 고민한다. 남자를 죽인 진범은 임신한 소녀인가, 아니면 어린 소년인가? 오 형사는 그들을 체포할 수도, 그렇다고 모른체할 수도 었었다.
형사의 수사를 피해 도주하던 어린 살인범들은 결국 오도가도 못하게 되자,
“저는 형사 아저씨가 싫습니다”
라는 유서를 남기고 혹독한 눈보라 속에서 꽁꽁 얼어붙은 시체로 발견된다.

소년은 눈 속에 공처럼 뭉쳐져 있었다. 무릎을 가슴에 대고 몸을 오그라붙인 채 새우처럼 옆으로 누워 있는 소년을 보자 병호는 아무 느낌, 아무 생각도 가질 수가 없었다. 다만 자신도 이 소년처럼 자살하고 싶다는 충동만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소년이 끼고 있는 빨간 장갑을 보자 그는 비로소 눈물이 나왔다.
소년은 형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러나 결국 형사를 저주하면서 죽어갔다. 소년은 마지막으로 무슨 꿈을 꾸면서 눈을 감았을까. 얼마나 추웠을까.
그는 소년의 곁에 무릎을 꿇었다.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다.
이윽고 그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면서 떨리는 손으로 소년의 몸에서 눈을 털어 냈다. 그런 다음 소년을 안고 일어섰다.
얼음덩이처럼 굳어 버린 소년의 몸뚱이는 생각보다 아주 가벼웠다. 많이 굶주린 탓인지 앙상한 뼈가 그대로 손바닥에 전해져 왔다.
이 소년은 내가 죽인 것이다. 내가 ?아와 죽인 것이다.
그는 얼빠진 듯 서서 울음을 삼키다가 소년을 안은 채, 마치 자신의 따듯한 몸으로 그 얼어붙은 몸뚱이를 녹이기라도 하려는 듯 꼭 끌어안은 채, 비틀비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쓰레기 더미
어린 소년과 창녀
웨스턴양복점
출 장
임 신
동 정
털장갑
형 사
예 감
심 증
의문의 전보
눈
진 술
위자료
살 인
얼어붙은 시간

그는 바지 주머니 속에 두 손을 찔러 넣은 채 뚜벅뚜벅 걸어갔다. 낡은 가죽점퍼의 등이 구부러져 있는 것이 춥고 피로한 모습이었다. 그는 가끔씩 손을 들어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쓸어 올리곤 했다. 그의 입에서는 허연 김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1월이라 날씨는 몹시 추웠다.
모든 것들이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조금 전에 내리기 시작하던 눈송이가 차차 굵어지고 있었다. 그는 눈송이 하나을 잡으려고 손을 펴서 들었다. 그러나 눈송이는 모두 그의 손을 피해 떨어졌다.
골목길을 거슬러 올라가던 그는 어느 판잣집 앞에 서 걸음을 멈추었다. 판잣집 앞에는 소년 한 명이 발을 동동 구르며 서 있었다. 소년은 빨간 털모자를 쓰고 있었다. 눈이 유난히 까만 소년이었다.
그는 소년에게 미소를 던졌다. 그리고
“야, 꼬마야 이 근방에 사람이 죽었다던데, 어디지?”
하고 물었다.
소년은 호기심어린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아저씨 형사예요?”
소년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소년의 직감력에 놀랐다.
그는 한 발짝 다가섰다. 그리고 웃으며 물었다.
“내가 형사처럼 보이니?”
소년은 장난기어린 웃음을 지으면서 머리를 살살 흔들었다.
“아니오.”
“그럼 왜 형사냐고 물었지?”
소년은 상체를 뒤틀었다. 여전히 장난기어린 웃음을 지은 채,
“그냥 물어 본 거예요.”
하고 말했다.
“이 짜아식, 맹랑하구나. 너 몇 살이지?”
그는 웃으며 손을 뻗자 소년은 뒤로 물러서면서 도망칠 자세를 취했다.
소년의 얼굴에서 금방 웃음이 사라졌다. 대신 굳은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는데 그것이 갑자기 소년을 낯설게, 그리고 나이 들어 보이게 만들었다.
소년은 열두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매우 영리하게 생긴 얼굴이었는데, 옷차림은 몹시 남루했다. 입고 있는 낡은 점퍼의 앞자락에는 까만 땟자국이 흐르고 있었다.
왜 이 소년은 여기에 서 있을까. 그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창가에 어린 소년이 서 있다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못된다. 그것은 다분히 경계해야 할 일이다.
“이런 데 있지 말고 빨리 집으로 가거라. 여긴 너 같은 애가 올 데가 아니야. 빨리 가 봐.”
그러나 소년은 쉽게 움직이려 들지를 않았다.
“왜 올 데가 아니에요?”
소년은 새끼손가락으로 콧구멍을 후비기 시작했다. 손가락 끝에 새까만 코딱지가 달라붙어 나오자 소년은 그것을 허공에다 튕겼다. 그리고 그를 보고 씨익 웃었다.
“어서 가 보라니까.”
“왜요?
“안 가면 잡아갈 거야.”
그가 눈을 부라리자 소년은 입을 삐쭉 내밀었다. 조금도 겁이 없는 표정이었다.
“여기가 우리 집인데 어딜 가요?”
그는 소년이 장난하는 줄 알았다.
“거짓말하지 마.”
“정말이에요. 여기가 우리 집이라구요.”
소년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판자문을 툭 걷어차 보였다. 판자문이 떨어져 나갈 듯 삐걱거렸다.
그는 정색을 하고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턱으로 판자문을 가리켰다.
“정말 너의 집이니?”
소년이 목소리를 높였다.
“정말이에요. 한번 들어와 보세요. 따뜻한 방에 예쁜 색시도 있어요.”
“따뜻한 방에 예쁜 색시라고?”
그는 중얼거리듯 물었다.
그는 갑자기 어안이 벙벙해진 느낌이었다. 그래서 한동안 멍하니 소년을 바라보기만 했다. 따뜻한 방에 예쁜 색시가 있다고? 그 말의 의미를 알고나 그런 말을 하는 것일까? 망할 자식 같으니.
이윽고 그의 눈은 사납게 치켜 올라갔다. 그는 소년의 팔을 움켜잡았다.
“이놈의 자식, 또 그런 말할 거야 안할 거야?”
홧김에 너무 팔을 꽉 움켜잡았던 모양이다. 소년은 아픈지 팔을 빼려고 하면서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면서도 하고 싶은 말을 다했다.
“형사 아저씨한테는 공짜예요.”
“이놈아, 내가 그런 공짜 좋아하는 줄 아니? 다시 한 번 그런 말하면 혼날 줄 알아. 알았어?”
그러나 소년은 대답대신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다시는 그런 말하지 마. 다른 사람들한테도 그런 말하지 마. 알았어?”
그러나 소년은 대답하지 않았다. 강한 반항의 표정이 얼굴에 서려 있었다.
“왜 대답하지 않아? 그런 말할 거야 안할 거야?”
소년은 갑자기 똑바로 눈을 뜨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 표정에서 그는 소년이 절대로 대답하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하는 수 없이 그는 소년의 팔을 풀어 주었다. 그 대신 어깨에 손을 얹고 다정하게 말했다.
“집에 들어가서 공부나 해라.”
“공부는 해서 뭘 해요.”
소년의 대답이 너무도 재빨리 튀어나왔기 때문에 그는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소년은 갑자기 호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더니 허공에다 대고 쏘아 댔다.
땅땅땅!
소리는 요란스럽게 주위를 울렸다.
장난감 총소리였지만 그는 갑자기 당한 일이라 적잖게 놀랐다. 그리고 소년에게 놀림을 당한 기분이 되었다. 무엇이 이 소년을 이렇게 고집스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