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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박정만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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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20일 동안 500여 병의 소주를 마시며 300여 편의 시를 토해 냈다. 접신이자 광기다. 독재 정권의 고문으로 몸도 정신도 망가진 시인은 섬뜩함을 자아내는 표현으로 증오와 울분을 표출한다. 그러나 그 밑변에는 토속적인 가락이 절묘하게 결합해 서정시의 백미를 보여 준다. 부조리한 사회와 시대 현실이 낳은 광증은 현대시의 정체성이자 현대사의 거울이다.

    지식을만드는지식 ‘초판본 한국 근현대시선’은 점점 사라져 가는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을 엮은이로 추천했다.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석을 덧붙였다.
    각 작품들은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서 실었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저본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잡았다. 단,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다.

    박정만은 첫 시집 [잠자는 돌](1979) 이래 생전의 마지막 시집 [슬픈 일만 나에게](1988), 그리고 [박정만 시화집](1988)과 유고 시집인 [그대에게 가는 길](1988) 등 광기로 써 내려간 열 권의 시집에 이르기까지 시에 ‘취해’ 살아왔다.
    그는 1970∼1980년대에 걸쳐 독특한 서정의 영역을 개척한 시인으로, 길지 않은 생애 동안 다양한 시의 양상을 보여 주면서 특유의 시 세계를 형성한 시인이다. 이러한 시 세계는 시인이 겪은 이른바 ‘한수산 필화 사건’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기점으로 보다 선명하게 제시되고 있다.
    이 사건 이후 고전 정신을 계발하던 시인의 내면은 시대의 폭력성에 대한 울분으로 가득 차기도 하고, 생래적 고독감이 심화되어 허무감에 젖기도 하는 등 점차 비극적 서정으로 변모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이 과정에서 시인은 무어라 설명하기 힘든 광기에 사로잡혀 때로는 섬뜩한, 때로는 청승맞은 편편의 시를 장식해 나갔다. 광기로 써 내려간 비극적인 서정의 밑변에는 토속적인 가락이 절묘하게 결합되어 서정시의 백미를 보여 준다. 박정만만큼 서정과 가락을 섬세하고 감각적으로 벼려, 청신하고 영롱한 시를 쓴 시인은 흔치 않다.
    물질의 논리 속에서 서정의 세계를 깊이 있게 개척해 인간의 깊숙한 곳에 묻어 둔 감성을 끄집어 낸 그는 개성적 서정 미학의 세계를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그가 이성적 사유 영역을 벗어나 ‘광기’를 통해 정신적 내부 세계를 보여 준 점은 현대 시를 이해하는 지평을 넓혀 주면서 동시에 현대 시의 새로운 연구 영역에 놓인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목차

    산 아래 앉아
    겨울 속의 봄 이야기
    잠자는 돌
    요즈음의 날씨
    芍藥 꽃밭에서
    어떤 흐린 날
    箴言集
    숨 쉬는 무덤
    古調
    雨後에
    피리 Ⅳ
    피리 Ⅷ
    피리 ?
    우리가 죽어 무지개가 되기까지는
    울보
    思鄕歌
    子規聲
    愁心歌
    說話調
    處容後歌
    井邑後詞
    靑山別曲
    樂學
    六字배기
    노들 강변
    나의 歸巢性
    溪谷에서
    작은 戀歌

    누이를 위한 小曲
    대장장이
    사슬
    오지 않는 꿈
    어느 날의 촛불
    죽음을 위하여
    하염없이
    井邑別詞 Ⅱ
    맹꽁이는 언제 우는가
    義人의 말
    오월의 遺書
    瘀血을 재우며
    道峰을 떠나며
    다시 道峰을 떠나며
    산 일 번지의 술
    작은 사랑의 頌歌
    오늘의 빵
    오늘의 병
    캘린더
    구두 修繕工
    投花 Ⅰ
    投花 Ⅱ
    깊고 푸른 밤
    비뚤어진 입
    기필코 한 주먹만
    만일의 경우
    행복한 잠덧
    웃자란 어둠
    보리 개떡
    저 쓰라린 세월
    눈물의 오후
    고요한 잠으로
    외로운 해석
    형언할 수 없는
    대청에 누워
    오로지 그때
    돌아온 추억
    흐르는 눈물
    실은 평화가 아니라 검으로 왔다
    혼자 있는 밤
    그리운 사람
    쓸쓸한 봄날
    치욕적인 藥
    처절한 아침
    사월과 오월 사이
    쓰라린 봄날
    어느덧 서쪽
    머나먼 들녘
    이 세상의 그물코
    저 젖빛 유리로
    수상한 세월 3
    슬픈 일만 나에게
    무슨 까닭이었을까
    한 떨기 꽃
    녹두빛으로
    너도 없고 나도 없고
    저 강물 속으로
    終詩

    본문중에서

    樂學

    칼을 定하고, 이제 이내 눈을 파겠다.
    아픔은 살 속 깊이 유리의 화살을 꽂고
    狂暴한 저 바다에는 수천의 사금파리.
    밤새도록 꼬리 치는 미친개의 울음소리.
    뜬 피리의 구멍마다 귀를 막고
    귀를 막고 疾風 같은 피를 듣겠다.
    이제 뼈와 살도 모두 파 버리겠다.
    귀뚜라미 하나에 별 하나의 殺人이
    은하의 별자리마다
    그만한 귀뚜라미의 내가 스미어
    그러나 殺人은 하늘까지 닿지 못한다.
    하늘에다 사투리로 삿대질하며
    삿대질하며 이제 이내 肝膽도 싹 파 버리겠다.
    살인 또 살인, 오밤중의 말,
    그러나 잠이 들면 말은 이미 보이지 않고
    죽은 자의 뜰 하나도 얻지 못했다.
    오, 나의 목통이 통째로 울려
    울음 끝에 매달리는 울음의 기쁨.
    이제 저 목청의 한끝까지 피리까지
    하나 남은 숨통까지 아주 싹 파고 말겠다.

    작은 戀歌

    사랑이여, 보아라
    꽃 초롱 하나가 불을 밝힌다.
    꽃 초롱 하나로 천 리 밖까지
    너와 나의 사랑을 모두 밝히고
    해 질 녘엔 저무는 강가에 와 닿는다.
    저녁 어스름 내리는 서쪽으로
    流水와 같이 흘러가는 별이 보인다.
    우리도 별을 하나 얻어서
    꽃 초롱 불 밝히듯 눈을 밝힐까.
    눈 밝히고 가다 가다 밤이 와
    우리가 마지막 어둠이 되면
    바람도 풀도 땅에 눕고
    사랑아, 그러면 저 초롱을 누가 끄리.
    저녁 어스름 내리는 서쪽으로
    우리가 하나의 어둠이 되어
    또는 물 위에 뜬 별이 되어
    꽃 초롱 앞세우고 가야 한다면
    꽃 초롱 하나로 천 리 밖까지
    눈 밝히고 눈 밝히고 가야 한다면.

    瘀血을 재우며

    어혈을 풀기 위해
    한약 한 제를 지어 왔다.
    코 위에 안경을 걸친
    한약방 주인이
    물에다 끓이지 말고
    막걸리를 부어 끓이라 한다.
    술 먹고 大韓民國처럼 망가진
    내 몸뚱이의 내력을
    소상히 알고 있는 듯한 말투다.
    참 용타고 생각하며
    아내는 탕기에 술을 넣어
    약을 달이다.
    펄펄 끓는 물 솥에 수건을 적셔
    내 몸의 어혈 위에 찜질도 하고…
    탕기에선 한밤내 부글부글
    죽음이 들끓는 소리.
    절명하라, 절명하라, 절명하라,
    이를 갈다 이를 갈다
    가슴도 부글부글 소리를 내고…
    분노도 피딱지도 약에 녹아
    하나가 되고…
    어혈은 풀어져서
    내 몸의 피와 살과 뼈에 스미고….

    終詩

    나는 사라진다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박정만(朴正萬)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개성적 서정의 영역을 개척하다가 사라져 간 불운한 시인의 한 대명사다. 박정만은 1946년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났다. 그는 당시 명문이었던 전주고등학교 재학 시절 경희대학교에서 주최한 전국 남녀 고교생 백일장 시 부문에서 장원에 당선하는 등 어린 시절부터 문예 활동을 활발히 했다. 196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 [겨울 속의 봄 이야기]가 당선되어 등단하고 1979년 첫 시집 [잠자는 돌]을 출간하기까지 그는 당대의 민중시와 해체시라는 문학적 주류 속에서 한국적 소멸의 미학과 비애의 정서를 애처로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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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운아 [편저]
    생년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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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국대학교 커뮤니케이션문화학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1년 [시와 시학]에 평론이 당선되어 문학평론가로 등단했다. 저서 및 논문으로는 [외국인을 위한 살아있는 한국현대문화](공편저), [박정만 시선](편저), [박정만 시의 시간의식 연구], [소설 '테레즈 라캥'과 화 '박쥐'에 나타난 욕망과 죄의식] 등이 있으며, [아름다운 정신, 사랑과 슬픔의 변주곡], [겸허한 지혜, 진실한 성찰의 시학], [기억의 무게] 등을 비롯한 다수의 평론을 발표하였다. 경희대 '글로벌한국학 교재개발실' 전임 연구원으로 활동하였으며, 중학교 국어 교과서 집필에도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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