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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씨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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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상처는 우리가 함께 숨 쉬었다는 증거다”
    온몸으로 시를 앓고 열꽃처럼 피워낸
    한 인간의 고독한 성장흔

    “시에 자기 인생 전부를 건 사람”
    2010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에 당선되며 등단한 황혜경의 첫 시집 [느낌 氏가 오고 있다]가 출간되었다. 당시 “다른 이들을 압도할 만큼 뛰어나”고 “2000년대 등장한 젊은 시인들의 단점과 아쉬움을 한 단계 극복하면서 그만의 정수(精髓)를 보여주고 있”다는 평을 받으며 등단한 황혜경의 시 59편이 고스란히 담긴 이번 시집은, 두렵도록 진지하고 반갑게 낯설다.
    오직 시를 위해 스스로를 세상과 격리시켰으나 세상의 잡음이 사라져도 고요하지 않았던 마음을 매번 처음인 듯 다잡고 고행처럼 이겨내다 그 안에서 믿음을 발견하고 머뭇머뭇 웅얼거리며 내디딘 “늦되는” 성장의 흔적,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져온 시인의 간절함이 지금, 여기 “오고 있다.”

    황혜경의 시들은 사방에서 찢기고 시도 때도 없이 독립체로 회귀한다. 그의 말들이 토막 나고 마는 사태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면서, 손쉬운 상징과 타협하지 않고, 그걸 감당하기 위해 얼마나 이를 악물었을 것인가? 그 의지로 황혜경은 삶과 시와 정신을 한꺼번에 아우르고, 자신과 사회를 하나로 묶어서, 적대성의 늪을 통과해온 것이다. 그러니 또한 그가 스스로 낸 길을 얼마나 씩씩하게 걸어갈지 자못 기대되지 않는가?
    - 정과리 / 문학평론가

    “숨어 살기 좋아하는/한 여자”
    구하는 바를 얻기 위해 자신을 극으로 몰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뭐든 스스로 깨닫고 해답을 얻기까지는 그것을 정답으로 온전히 믿지 못하는 나쁜 버릇, 그러므로 나는 언제나 늦되는 아이였다”(2010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당선 소감). 가능한 한 ‘나’와 말을 의심하면서 “손쉬운 상징과 타협하지 않고” 토막 난 말들과 “동강 난 문장들”을 괴롭고도 씩씩하게 마주하는 고집은 자기 시의 독자적인 문법을 얻기 위한 집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총 Ⅲ부로 이루어진 이 시집의 Ⅰ부는 ‘나’와 나의 말로 파고드는 필사적인 노력과 고행에 가까운 고독의 기록이다. 일상은 데자뷔다. 매일매일 반복되며 그러므로 말마저 관성적이다. 시인은 고민한다. “지금 나는 이 복잡한 것을 그저 착잡하다,라고/말해버려도 괜찮을까”([착잡하다]). 그러다 스스로 격리되기를 선택하고 “또/사람들 곁에서 도망친다.” 허투루 쓰는 보통의 말들, “상징의 덫”([어떤 상징])에 걸리지 않으려 “창문도 없는 방으로 이사”([창문도 없는방이라 해도])한 것이다.

    종일 너는 너의 방 안에서 네가 제일 깜깜할 것이며 나쁜 생각들이 틈을 다 메울 것이며 맥이 풀릴 것이다 웅크린 채 들리지 않는 자장가에라도 기대어보고 쪽잠에만 발을 디딜 것이다
    꼿꼿이 걷고 있었겠지만 어둠에게는 친절한 수동태였구나
    너는 어둠과 합치된 채 아는 길도 다 잃을 것이며
    손수건도 없이 소매로 쓱쓱 닦을 것이다 눈물
    이미 써놓은 문장들도 침을 묻혀 어렵게 지워가야만 할 것이다
    독기를 체념처럼 포장하고 속이며 왔구나
    (/ '벌(罰)' 중에서)

    스스로를 유배시킨 시인은 자라고 비우고 채운다. 잠시 멀어진 일상을 되새겨 관조하고 의미를 진단해 고유한 언어로 빚어낸다. 황혜경에게 고유한 언어란 전혀 새로운 말이라기보다 한 단어의 촘촘한 결을 들추어 새롭게 엮는 것이다. 그래서 언뜻 쉬 읽히는 듯해도 단어, 문장은 여러 뜻으로 해석된다. 해석의 여지는 읽어줄 사람을 염두에 둘 때 활발해진다. 시인은 수수께끼처럼 알쏭달쏭한 중언부언일지언정 누군가 숨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여 그 목소리를 들어주길 원하고 있는 듯하다.

    극점과 극점을 오가던 나는
    “극도에 다다르다”를 중얼거리던 사람
    나는 이제 극과 극으로 향하는 자세는 버리고
    우는 마음을 손잡아주는 일이 잘 들어주는 일이라는 걸 아는 자세로
    나를 씻는다.
    (/ '꽃의 뒤편, 샤워의 자세' 중에서)

    “쥐고 있던 1인칭을 조금씩 놓아주는 것, 그것이 삶이라는 것”
    “언어는 살갗이다”(롤랑 바르트). “나(너)는 너(나)의 제2의 피부”([나(너)와 너(나)])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Ⅱ부에서는 나와 너의 관계를 다룬다. 시인은 살갗(피부)을 서로 어루만질 누군가가 필요함을 자각하고 자발적인 격리를 멈춘다. 극도로 고독한 사람은 동시에 누구보다 이해받길 원하는 사람일 것이다. 방 밖으로 나와 누군가를 만나면 “결국 고독한 종들은 말이 과다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느끼고”([느낌 氏가 오고 있다])야 만다. 헤픈 말은 후회를 동반함을 이미 알고 있으므로 아무 사람이 아니라 ‘나’를 끝의 끝까지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숨어 있는 나를 알아봐줄 만한 ‘너’를 찾는다.

    오랫동안 나는 혼자였지만
    나는 너를 생략한 우리였다.
    (/ '우리' 중에서)

    첫번째 관계맺음은 사랑이다. “누구를 묻어줄 때까지 사랑할 것인가 결정하는 일”([순서])은 무엇보다 앞선다. 그러나 사랑은 미덕만큼 흠결도 많아, Ⅱ부에서 유독 자주 등장하는 ‘애인’이나 ‘당신’은 부정적인 표현과 주로 엮인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그림자 연못으로/틀림없이 나를 데려가고 있는” 두려운 사람([동일한 손목])인 애인과 “같은 질문에 시차를 두고 매번 다른 대답을 하는” 못 믿을 사람([길어지는 일시])인 당신이, 특별한 누군가를 찾는 이에게 좌절감을 안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사랑하다가 느끼는 어떤 순간, 마치 연인이 태내에 함께 연결되어 있던 쌍둥이가 아닐까 불가능한 의문을 품게 되는 “함께 온도를 느끼던 무렵”([느낌 氏가 오고 있다])에 대한 기억은 시인이 다음의 관계를 주목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두번째는 출산이다. 유목적적으로 이해하자면 출산은 ‘작은 나’를 낳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여자로서, 엄마로서의 자각은 황혜경에게 화두이지만 “나는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 누구의 여자도 되고 싶지 않았다”([동일한 손목])라며 이 모든 걸 부정하기도 한다. 아마도 그것은 “아직 모르는 느낌에 대하여 침묵”([느낌 氏가 오고 있다])하고자 하는 특유의 정직함 때문일 것이다.

    엄마의 음역이 더욱 아이와 비슷하다지요
    처음의 음색으로 노래 부르며 둥둥둥
    가장 아끼는 것을 내줄 수 있을 때까지
    개더링 드럼은 내가 혼자 두드릴 겁니다
    (/ '개더링 드럼[Gathering Drum]' 중에서)

    종교는 이미 겪은 연인과의 사랑에 좌절하고 아직 겪지 않은 출산을 부정하는 틈에서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관계맺음이다. 절대자는 연인과의 사랑처럼 ‘나’를 실망시키지 않으며 출산처럼 겪지 않아도 시공간을 초월해 ‘나’와 함께한다. Ⅱ부와 Ⅲ부에 걸쳐 나타나는 주문[呪文/注文] 같은 시들은 절대자에게 보내는 애가이자 반성문이다. 지켜봐주는 ‘너’를 위해 시인은 머뭇거리며 웅얼거린다.

    나는 이제부터 영원토록 죄의 기록을 시작하겠습니다 아버지, 잘못했습니다 남은 피로 쓰겠습니다 통회와 자복을 반복하며 암자색 피를 믿으며 벌 받겠습니다.
    (/ '남은 피로 쓰는 반성문2' 중에서)

    “나는 이제야 오고 있다”
    고립되었다가 관계 맺고, 상처받았다가 회복하면서 황혜경의 시는 성장한다. 부끄럽고 후회되는 기억을 되짚으며 절망에서 시작한 시는 Ⅲ부에 이르러 어느덧 좀더 아름다울 (그러나 아직 오진 않은) 다음을 노래하고 있다.

    다음이 내게 오면
    미처 몰랐고 한 번도 보여주지 못한
    아무도 본 적 없는 얼굴을 보여줄게
    다음에 이다음에
    [……]
    그날의 감정보다
    풍부한 감정으로
    (/ '다음의 감정' 중에서)

    또한 형식적으로도 좀더 자유로워져 다른 텍스트를 인용하거나([당신의 주문 달리다굼] [섬세한 말] [받으라 최근의 소식으로]) 선물처럼 누군가에게 헌정([그렇게 그려질 암각화] [烈이 노래한다])한다. 사소해 보이지만 이러한 변화는 ‘나’의 언어가 ‘너’의 살갗에 가닿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부단하고 정직한 노력의 산물일 것이다. 겹겹이 벽을 쌓고 창문도 없는 방 안에 들어앉았던 시인은 “같이 물의 호흡을 느끼는 당신”([물의 당김음])들을 만나 ‘나’를 벗어나고 ‘너’를 배려한다. “단어들을 무책임하게 데려다 쓰지 않겠다”, “먼저 느낄 것이”([시인의 글])라는 다짐은 더욱 견고해졌지만, 이전의 단단함이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을 거”라는 오기였다면 지금의 굳건함에는 “또 흔들면 흔들려줄게,”([느낌 氏 차례])라는 여유가 내비친다. ‘느낌 氏’는 ‘나’를 거쳐, 아픈 나를 헤아려주는 ‘너’를 “눈으로 목소리로 쓰다듬어주”며, “이제야 오고 있다.”

    목차

    시인의 말


    어떤 상징
    물구나무꽃
    두부의 규모
    창문도 없는 방이라 해도
    슬픔을 모르는 사람
    두려움의 근거
    꽃의 뒤편, 샤워의 자세
    나는 시인들이다
    착잡하다
    이미 보았다
    A반의 연필 무덤
    황혜경
    흑시편
    발랄한 습관처럼 O,X
    희뿌옇다
    모호한 가방
    난시의 골목, 별 총총 변주 형태를 포함한 데생
    채색의 저편
    그것을 주홍이라 부를까
    날개는 어디다 두고 왔니 이제 다 왔는데



    나(너)와 너(나)
    길어지는 일시
    취향의 손상
    담장 아래 붉은 담요를 깔고
    입을 수긍하는 밤의 갤러리
    ...
    (이하생략)

    본문중에서

    슬픈 당신에게 나의 슬픈 감정이 전해질까 봐
    내가 꾹 참는다는 것을 알고는 있어요?

    갈 거(去)를 연습했다.
    나는 종국(終局)을 위해 와해의 모형을 수집하고 있었다.
    알고 있다고 믿었던 단어들이 모두 내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
    었을 때
    미진(未盡)은 나를 대변하는 부끄러운 상징어.
    나는 아직도 어둠이라는 단어 하나에 쩔쩔매면서도
    어둠이라는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오로지 합치의 순간을 위해서 써야 한다면 나의 시인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약속은 이것.
    단어들을 무책임하게 데려다 쓰지 않겠다는 것.
    이제 나는 깃들고 스며드는 일에 심장은 물론이고 손과 발을 다 쓸 것이다.
    먼저 느낄 것이다.
    아프다 고프다 슬프다 기쁘다
    살아가는 데 그렇게 많은 말이 필요한 건 아니다.
    나는 네가 보고프다 당신들이 보고 싶다
    그래, 당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는 바로 당신, 그리고 당신,
    그쪽의 당신도, 내게 사랑을 나눠 준 당신들에게 나는 이제야 오고 있다.
    (/ 뒤표지글 중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1973 ~
    출생지 인천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시인 황혜경은 1973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2010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에 [모호한 가방] 외 4편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시집 [느낌 氏가 오고 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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