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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감각의 송곳니로 비루한 일상을 먹어치우는
시간의 포식자


"견자(見者)로서의 시인의 미덕을 충실하게 보여주는 시인"(문학평론가 이혜원) 류인서가 세번째 시집 [신호대기]를 선보인다. 류인서는 2001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한 후 두 권의 시집을 출간하며 '육사시문학상 젊은시인상'(2009), '청마문학상 신인상'(2010)을 연이어 수상했다. 사십대에 등단한 그에게 젊디젊은 상을 안겨준, 일상 속 사물들의 겉모습 안에 감추어진 의미를 감각적으로 생생하게 구체화해내는 특유의 솜씨가 여전하다. 그리고 이번 시집에서는 사라져가는 기억을 되짚기보다 지금을 살아가며 온몸으로 감각한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날카로이 벼려진 이미지에 숨결을 불어넣어 훈김 어린 송곳니 같은 생동감이 느껴지는 시들이 시집 곳곳에 박혀 있다.

임계점을 향해 류인서는 전진한다. 고요를 다스리고, 침묵으로 세계를 조종하고, 도래할 파열의 순간을 기다리는 어떤 짐승의 검은 눈빛이 여기에 있다. 이것이 류인서의 힘이다. 그의 고요는 조화와 균형으로 생성된 것이 아니다. 시인의 감각이 벌어짐과 다묾 사이에서 깊이를 장전할 때, 균형과 조화가 이룩되려는 그 순간, 끓는점 직전에, 류인서의 시는 야수적 감각의 이빨을 드러낸다. 전체성을 물어뜯고 균형과 조화를 배반한 시는 생생한 감각으로 으르렁거린다.
- 장석원(시인)

일상의 틈에 박아 넣은 감각의 송곳니

정신없이 근무하다 커피 한 잔 마시며 숨을 돌리는 것처럼, 바삐 흘러가는 일상에서 시간의 흐름에 탄력을 부여하는 건 틈Break일 것이다. 류인서는 일상을 집요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그 틈을, '사이'를 포착하여 시로 붙든다. "세포와 세포" "꽃과 꽃" "가는귀와 오는귀" "악담과 농담" "흰건반과 검은건반" "사이", 시간과 시간, 공간과 사물, 사람과 사람 사이...... 류인서의 시에서 유독 빈번히 등장하는 사이라는 단어는, 대상 간의 거리가 가깝든 멀든 범위가 넓든 좁든, 삶에서 언뜻 지나치기 쉬운 사소한 틈을 파고들고 봉합하여 숨어 있는 의미를 찾아내려는 시인의 자세를 집약한다.

물(物)이 죽어요 죽음이 죽어요
[......]
물의 목마른 식탁 위에 우리가 차리는 물의 성찬, 목 없는 물의 어깨에서 숲이 자라요 자라 넘쳐흘러요 물 밖으로 밖으로
(/ '분수' 중에서)

소리를 굳혀 소리벽돌을 쌓는다 쌓을수록 모자라는 말들, 자꾸만 남아도는 소음들, 그림자 지는 쪽으로 쓰러지는 웃음과 울음 들의 도미노
[......]
벽돌 속의 입 없는 소리벌레가 조금씩 안을 파먹으며 몸을 키운다
(/ '공벽' 중에서)

눈이 온다
와서
먹어치운다

가등 아래 남자를 먹어치운다
벤치뿐인 벤치를, 거기 붙은 빈자리를 먹어치운다
공터의 이글루 같은 자동차들을 먹어치운다
[......]
저의 근원 북풍의 침대까지 남기지 않고 먹어치운다
(/ '눈' 중에서)

언어를 다듬을 때 류인서의 사이에 대한 애착은 더욱 두드러진다. 첫 행에서 물이 物임을 명시하고 있으나, 그 물은 또한 水로도 읽힌다([분수]). 모자[帽子/母子]([당나귀모자]), 눈[雪/眼] 등 중의를 품은 시구가 던지는 수수께끼에 답하듯 제목과 본문이 서로를 보완하지만, 사뭇 정직해 보이는 제목은 살며시 힌트를 흘리곤 풀이를 독자의 몫으로 놓아둔다.
한 단어의 틈 다음에 주목할 것은 단어와 단어 사이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류인서의 시를 생생하고 조금쯤 유쾌하게 만들어주는 건 "소리벽돌" "소리벌레"([공벽]) 같은 조어다. "달감옥" "커튼나라" "물방울어른들" "어둠물감" 등 아이들의 장난인 양 서로 낯선 단어를 한데 접붙여 제3의 의미를 부여한 조어들은 외따로 떨어져 있을 때 다다르지 못했던 새 의미에 가 닿는다.
이 (류인서식으로 말하자면) '사이벽돌'들은 기둥처럼 강직한 동사와 만나 이상하고 아름다운 시세계를 쌓아 올린다. 같은 동사를, 비슷한 구조의 문장 맺음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세계는 더욱 굳건해진다. 눈이, 사실은 눈 뒤에 숨은 주체가 남자를, 벤치를, 빈자리를, "전화선 너머 국경 너머" 계절과 "저의 시작"까지를 모조리 "먹어치"우는 것을 온몸이 눈[眼]이 된 듯 지켜보면서, 눈[雪/眼]으로 덮인 온통 흰 백지 같은 세상 위에 류인서는 자신의 세계를 세운다([눈]).
류인서가 이 '사이의 신세계'에서 시도하는 것은 손에 잡히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의미를 자신의 말로 붙잡는 일이다. 잠깐 멈추어 의미의 목덜미를 물 시기를 기다린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출발하였으나 시간과 방향이라는 같은 뿌리를 지닌 "어제"-"오늘"과 "동쪽"-"서쪽"이 서로를 향해 다가올 때를, "밀도가 다른 두 공기 덩이"가 "길 가운데서 만"나는 순간을 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라는 전류"가 자신을 통과하는 순간, 무형의 비의(秘意)를 온몸으로 경험하기 위해서.

어제의 벽에 등을 대고 서 있다 오늘의 벽에 등을 대고 서 있다
다중국적자처럼 우리는
달아나도 좋겠지 역주기로 오는 계절과
사수처럼 매달린 제3의 창문에게서
얼굴을 공유하는 화장술에게서

출구를 감추는 불빛들,
나는 무릎에서 흘러내린
기다림의 문턱값을 밟고 서 있다
바람이 열어 보이는 틈바구니에서
마른 유칼리 나뭇잎의 고독한 살냄새가 난다

동쪽에서 꺾은 가지를 서쪽 창에서 피울 수 있을까
화분을 안은 여자의 아이가 손안경을 만들어 다른 곳을 볼 때
그림자들이 살아났다
밀도가 다른 두 개 공기 덩이가 길 가운데서 만난다 전선이 통과한다
우리 몸에 시간이라는 전류가 흐르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을 것이다
(/ '신호대기' 중에서)

"어제의 껍데기"를 극복하는 방법

"백 개의 눈 백 개의 혀를 가진 꽃"(장석주)이 되어 일상의 틈을 비집는 류인서의 시는 항상 온몸이 포착한 현실의 한가운데를 말하기에 신비롭게 시간을 부유한다. 순간이 아닌 과거의 연장으로서의 '오늘'은 "어제의 껍질"([달팽이], p. 54)이며 "참을 수 없이 가벼운"([나비]) 시간의 연장일 뿐이다.

어서 오세요 어머니 오늘이에요
나 지금, 당신이 말한 그 끔찍한 나이에 닿았어요
습관처럼 놓인 생일상을 보세요
(/ '생일' 중에서)

감각의 혼란 속으로 자꾸만 몸을 옮겨 세계를 먹어치워 이미지로 소화시키고자 하는 포식의 욕망은 거기서 비롯된다. "끔찍"하리만치 지루하고 비루하게 이어지는 삶을 유희로서 극복하려는 시인의 시도일 것이다. 멋대로 흐르는 시간을 실제로 멈추게 할 수는 없지만, 인생의 장년기를 맞이하여 일상과 직접 읽고 본 것들을 시로 보존하려는 시인의 욕망은 얼마나 소박하고 정직한가. 눈이라는 신기한 필터를 거쳐 세상의 "검은 부분과 흰 부분"을 짐작하고, 집요하게 바라보아 가슴으로 소화시키는 포식자에게서 "온도 차에 의해 발생하는 공기의 흐름", 바람 같은 시가 나온다. 누군가에겐 흰 것이 여백으로만, 검은 것은 얼룩으로만 보일 수도 있지만 류인서는 모두를 '본다'. 모든 것들이 뭉개진 틈에서 세계를 다시 그리는 류인서에게 "구분은 허상이다. 류인서는 이 모든 것들이 뒤섞여 있는 혼돈의 밑바닥으로 기꺼이 내려"가서 마침내 시간을 잠시, 손에 쥔다.

얼룩말의 검은 무늬와 흰 무늬가 가진 비밀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얼룩말을 우아한 얼룩말이도록 하는 줄무늬들이 실은 열대 사바나의 뜨거운 볕을 견디게 해주는 기능적 장치라는 얘기였다. 검은 부분과 흰 부분의 상이한 열 흡수율, 그 온도차에 의해 발생하는 공기의 흐름―바람이 열을 방사해 체온을 조절해준다는 거였다.
우림과 사막 사이, 얼룩말이 살아가는 경계부의 땅을 생각한다.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 열려 있는 그 제3의 공간, 문학의 공간 역시 그런 곳 아닌가. 얼룩말의 살갗에 가로로 심어진 희고 검은 무늬가 떠오른다. 날마다 다른 파도의 바다처럼,

목차

시인의 말

1부

물이 쏟아지는 붉은 컵
위조화폐
풍선 장수

침묵 수도원
라스푸틴


세컨드 라이프
신호대기
나비
비행의 기원
렌즈
블랙아웃

2부

기침
심부름센터
달팽이
늪구름
봄, 무방향 버스
장마전선

달감옥
울타리
생일
달팽이
호랑이를 찾아서
회전 찻잔
커튼나라
표절

3부

야성
나비선글라스
장물
매직블록
춘천
기차
설화
공벽
색안경
엽서 속의 계절
당나귀 모자
그 쓸쓸함에는 가시가 있다
추문

4부


분수
우주 스페셜
희망 정책
구두 화분
철사천사
구구소한도를 빌리다
파랑새
사바나 뷰티숍
제왕나비
트라이앵글
구리낙타

해설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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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수 0권

시인 류인서는 1960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2001년 계간 [시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그는 늘 왼쪽에 앉는다] [여우]가 있다. 육사시문학상 젊은시인상(2009), 청마문학상 신인상(2010)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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