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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가 사랑한 그림 : 기묘한 그림으로 삐딱한 철학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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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조광제, 전호근
  • 출판사 : 알렙
  • 발행 : 2013년 03월 01일
  • 쪽수 : 356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97779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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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인공의 눈을 벗어버린 “진짜 눈”으로 명화를 다시 보다
    그 철학적 정체와, 외침의 감각을!

    우리는 미술에서 무엇을 철학할 수 있는가?


    "그림을 읽는다"는 말은, "소리 없는 음악을 듣는다"는 말과 같다. 그림은 활자로 돼 있지 않고, 음악은 소리가 없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철학은 그림이 스스로 말하게 한다.
    이 책 [철학자가 사랑한 그림]은 철학을 낳은 미술 작품들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책이다. 하지만, 미술 작품의 신비스러운 비밀을 드러내기보다는 그림의 감각적 충격과 느낌에 언어를 부여해서 그림이 스스로 말하게 한다. 그럼으로써 이제 철학자의 말을 거친 미술 작품은 화랑의 고고한 자리에서 나와 일상의 우리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한다.

    철학의 언어로 읽었을 때 비로소 보이는 그림

    기묘한 그림들과 철학의 획기적 발상이 만났다. 조광제, 전호근, 이현재, 김성우 등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소속 철학자 열한 명이 모여, "철학과 미술의 오래된 만남"의 의미를 재배치해 보았다. 하이데거는 고흐의 '구두 한 켤레'를 만나 예술작품의 근원을 물었지만, 정작 그는 사물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었다. 푸코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통해 원근법의 등장을 인간의 위치에 대한 자각의 문제로 다뤘다. 들뢰즈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자화상'으로 자신의 존재론을 구축했다. 베르그송의 변화의 지각에 관한 이론은 터너와 코로의 그림들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고, 메를로퐁티의 살 존재론은 세잔의 색채에 관한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발터 벤야민은 대중 예술을 통해, 아도르노는 아방가르드 예술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예술의 의미와 관계를 묻게 되었다. 이처럼, 예술은 철학의 미로를 탈출하게 해주는 아리아드네이다.
    필자들은 "철학하는 행위"를 통해, 그림을 보는 것(감상)이 아니라 "읽는다"는 관점으로 접근해 본다. 그림을 그저 눈으로만 봐서는 작품이 품은 뜻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삶을 통한 체험의 무게와 더불어 시공간을 뛰어넘는 이야기를 곁들이지 않고서는 제 모습을 다 드러내지 않는다. 우리가 감각기관인 눈에만 의지할 때 그 정신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사물을 꿰뚫어보는 또 하나의 눈이 필요한 것이다. 전혀 다른 매체였던 그림(미술)과 글(정신, 철학)이 만난다. 그림은 글이 되고 글은 그림이 된다. 그래서 이 책에 실린 기기묘묘한 그림들은, "보아서는 보이지 않고 잘 읽어야 비로소 보인다."
    화가는 감각적인 충격을 던져준다. 철학자는 그 이미지의 본질을 지각한다. 진정한 미술 작품을 통해서, 감각과 진리, 즉 자연과 정신의 불편한 동거는 아름다운 동거로 바뀐다. 이 책이 담고자 하는 주제는, 첫째, 그러한 화가의 외침을 철학이 어떻게 감각하고 있는가이다. 또한 둘째, 철학은 예술의 기억을 어떻게 재배치하고 있는가에 대한 탐색과, 셋째, 철학과 예술의 오래된 관계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시도한다.

    고흐와 하이데거, 벨라스케스와 푸코, 달리와 아도르노......
    미술과 철학의 불편한? 혹은 아름다운 만남!


    미술과 고전의 만남은 꽤 오래되었다. 플라톤은 미술을 철학보다 낮은 위치에 배치했고, 미술을 사유의 전당에서 쫓아냈다. 헤겔은 다시 정신의 세계로 미술을 초대했지만, 여전히 철학과 종교보다는 낮은 단계에 자리매김했다. 니체와 하이데거는 미술을 다시 진리로 나아가는 매체로 삼았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아도르노처럼 현대 사회에서 예술이 가능한지를 묻거나 벤야민처럼 기술복제 시대에서 예술의 가능성을 긍정한다.
    책 한 권보다 그림 한 장의 충격과 경탄이 더 강렬한 경우가 많다. 이 책에서는 철학과 미술의 만남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첫째, 철학은 그림의 강렬한 느낌에 다시 언어를 부여해서 그림이 스스로 말하게 한다. 미학 또는 예술 철학은 이론으로써 미술의 역사적인 운동을 고찰하고 다시 이 성찰을 바탕으로 해서 미학 이론의 변혁을 시도한다. 이 책에 실린 열한 명의 철학자들 또한 자신이 처한 시대적 상황과 연관해서 미술 작품을 삶의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시도하였다. 궁극적으로 철학자는 자신의 삶과 사회적인 삶을 미술 작품처럼 만들려고 한다.
    둘째, 철학자의 정신은 다시 미술가에게로 귀환하기도 한다. 공자의 꼿꼿한 정신과 선승의 해탈의 경지는 추사의 그림(1장, 전호근)과 팔대산인의 그림(4장, 황희경)에서 다시 출현하게 된다.
    셋째, 미술가가 그린 사물이 철학자를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건네기도 한다. 세잔의 그림(2장, 조광제)과 고흐의 그림(9장, 서영화)이 메를로퐁티와 하이데거의 철학으로 인해 인간 중심을 버린 우리에게 존재의 진리를 드러내는 것처럼. 코로의 자연주의적인 풍경화(5장, 류종렬)는 베르그송이 자연에 내재하는 생명의 약동하는 힘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기쁨을 누리게 한다.
    넷째, 미술가의 사실과 왜곡을 철학자는 다시 비판적인 언어로 바꾼다. 버틀러는 쿠르베의 사실주의적인 시선을 통해 남성 중심의 시선을 읽어낸다.(7장, 이현재) 마르크스는 파리 코뮌에 대한 사실적인 분석을 통해 들라크루아 그림의 혁명적인 낭만성이 진정한 혁명을 은폐하는 기억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6장, 조은평) 들뢰즈는 베이컨의 이미지 왜곡이 실은 자본주의적이고 파시즘적인 시각으로부터 탈주하려는 삶의 표현으로 읽는다.(3장, 김범수) 푸코는 벨라스케스의 그림에 통일적이고 선험적인 인간이라는 근대적인 인간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제시함으로써 인간상도 시대에 따라 바뀌는 역사적인 것임을 보여준다.(8장, 이지영)
    다섯째, 미술가의 작업이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철학자는 밝혀준다. 아도르노는 달리의 초현실주의를 평가하면서 현대 사회에서 예술이 가능한지를 묻는다.(11장, 김성우) 이에 반해,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의 가능성을 긍정함으로써 하트필드의 포토몽타주가 지닌 예술의 정치화를 예견한다.(10장, 현남숙)

    '세한도'에 담긴 조선시대의 불멸의 정신
    "우리의 삶 속으로 추위가 온다는 것은 시련인데, 시련이란 우리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해 준다. 날씨가 추워졌을 때 삶의 가치가 비로소 드러난다."
    전호근 교수(1장)가 '세한도'에서 읽은 것은 조선시대의 ‘불멸의 정신’이었다. 그에 따르면, "조선시대의 불멸의 정신은 다름 아니라 성리학의 ‘리(理)’이며 이것이 사대부의 정신이었는데, 그 마지막 정신이 '세한도'에 있다"는 것이다. 창 밖의 세찬 바람도 저 멀리 달아나게 할 정신. 그 정신이 이 세한도에 있다는 것이다. 추사는 단지 ‘그림’만을 잘 그리는 제자보다는 먹이 스며들듯 정신이 깃든 ‘문자향’을 잘 드러낸 제자를 사랑하였다는데, 그 이유를 전 교수는 추사가 그 어느 것보다 더 높게 추구한 불멸의 정신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전 교수는 ‘추사의 '세한도'가 왜 명작인가?’라는 물음에 대해서 그 답을 찾으려고 할 때, 우리는 단지 ‘그림’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문자의 ‘향(香)’이라 할 수 있는 정신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세잔의 '대수욕도', 그 감각적 리듬의 철학적 정체
    조광제 선생(2장)은, 인공의 눈을 벗어버린 진짜 ‘눈’으로 사물을 보라고 한다. "내가 화가 세잔을 ‘만난’ 것은 철학자 메를로퐁티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들을 ‘만난’ 것은 정말 행운이다. 미술과 철학, 철학과 미술을 같은 눈으로 평소와는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로 글을 시작하는 조광제 선생은, 사물들의 존재에 몰두하면서 메를로퐁티의 살 존재론을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세잔이 만년에 그린 그림들은 세잔이 어느 정도로 감각적인 리듬에 크게 심취하게 되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세잔의 감각적인 색채의 표현에 감동하여 자신의 철학을 전개한 메를로퐁티가 있다. 메를로퐁티에 의하면 세잔이 어느 날 생 빅토와르 산의 풍경을 보고 있다가 빠져들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풍경이 내 속에서 자신을 생각한다. 나는 풍경의 의식이다(Le paysage se pense en moi, et je suis sa conscience.)" 동양식으로 말하자면 물아일여(物我一如)의 경지이다. 주체와 대상이 전혀 구분이 안 되는 상태이다. 이 경지는 ‘나’라는 존재가 풍경의 색을 보는 것이 아니라 ‘풍경’이 나를 통해서 자기의 색을 보는 것이다. 지독한 감각의 세계에서 사유는 불필요하다. 메를로퐁티는 자신의 철학을 전개하면서 사유와 대결을 벌인다. 사유 중심의 철학에서 감각 중심의 철학을 구축한 학자가 바로 메를로퐁티이다.

    들뢰즈, 베이컨의 외침을 감각하다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은 초상화를 그리며 얼굴을 ‘해체’시켰듯이 항상 자신의 그림에서 ‘형상을 해체’시킨다. 이 해체를 두고 김범수 교수(3장)는 "이것은 가장 감각적인 상태를 구현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베이컨의 그림에서 "왜 얼굴이 일그러지는가?"라고 다시 묻는다. 여기에 답하려면 들뢰즈의 철학에서 힌트를 얻어야 한다. 김범수 교수는 들뢰즈가 "감각은 심층에서 방출된다"고 말한 점을 강조하면서 베이컨은 "새로운 감각을 구현하는 것"으로서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자화상의 경우 그 밑바탕에서 올라오는 자신의 모습을 그렇게 찌그러진 모습으로 형상화했다고 설명한다. 이 부분이 베이컨의 그림과 들뢰즈의 철학이 만나는 지점이다.
    베이컨이 많은 작품들에서 보여준 시도들은 들뢰즈의 철학에 그대로 적용된다. 특히 들뢰즈의 존재론과 관계하는데 김범수 교수는 "들뢰즈의 존재론은 전통적인 ‘be’ 동사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can’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들뢰즈의 존재론적 ‘can’의 의미는 단순히 무엇을 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역량으로, 생성으로, 창조로 자신의 존재론을 구축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존재론은 베이컨에 와서 새로운 감각을 구현하는 것으로서 회화의 방식이 되었다. 그리고 밑바탕에서 올라오는 자신의 모습을 그렇게 일그러진 모습으로 형상화했다. 들뢰즈는 베이컨의 그림 자체가 자신의 존재론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생각했다.

    '세상의 근원'에 대한 여성주의 철학자의 시선
    얼마 전 우리 사회에서 구스타브 쿠르베의 작품 '세상의 근원'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법적 담론이 이루어졌다. 유명 영화감독이 이 작품을 소재로 영화를 제작한 바 있으며, 방송통신심의위원인 법학자(박경신 교수)가 표현의 자유와 음란물 판단 기준에 관한 법적 토론을 목적으로 이 작품을 블로그에 게재한 것이었다. 이 작품을 여성주의 철학자의 시선으로 보면 어떤 이야기가 가능할까?
    '세상의 근원'은 곧 ‘세상의 근원이 여성의 성기임’을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여성의 성기는 무엇인가?’ ‘여성의 성기는 세상의 근원이다’라고 답하는 것은 결국 동어반복에 불과한 것이다. 이 물음에 대해 철학적으로 답하는 것은 그 ‘무엇’의 본질을 말하는 것이다. 이 물음에 대한 이현재 교수(7장)의 답은 이것이었다. "여성의 성기는 ‘없음’이다." 이 답은 단순한 추론을 넘어선 차원의 해석이다. 이 해석은 쿠르베의 작품에서부터 "여성의 성기는 ‘없음’이다"라는 명제가 직접적으로 도출될 수 없다는 점에서 추론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림 앞에선 감상자의 단순한 느낌도 아니다. 이 해석은 그러한 차원을 넘어선 철학적 해석이다.
    이 교수는 쿠르베를 양가적으로 해석하였다. 하나는 혁명성이었고 다른 하나는 한계였다. 우선, 쿠르베는 남성적인 것의 시선이 감추고 있던 진실을 들추어냈다는 점에서 혁명적이었다. 이교수는 "쿠르베가 여성의 성기를 세상의 근원으로 발견했지만, 그 여성의 성기는 결핍, 없음으로 규정된다"고 말하였다. 여기에는 남성의 우월성을 표현하는 철학적 논리가 그대로 적용되는 데, 그 논리는 바로 ‘있음’으로부터 ‘없음’을 규정하는 이분법적 규정이다. 이 교수는 "여성을 비본질적이고 종속적이기만 한 육체로 보았다는 통념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면서, 여성주의 철학자들이 여성에 대한 이러한 종속적 규정을 벗어날 수 있는 다른 개념을 철학사에서 찾고자 노력해왔고 그 성과를 세 가지로 설명하였다. 그 세 가지 가능성을 찾는 핵심은 여성의 몸이 위계적으로 구분되어 오직 남성만 자기규정성을 가지고 있는 ‘있음’에 의해 수동적으로 규정되는 ‘없음’이 아니라, 여성의 몸이 자체적인 힘을 가지며 스스로 자기 규정성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개념을 찾는 것이다. 그러면서 위의 노력을 통해서 여성의 몸에 대한 기존의 철학적, 남성적 담론을 넘어선 새로운 담론의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는 성과가 마련되었다고 설명하였다. 이 교수는 "위계적인 이분법을 넘어서서 ‘여성의 몸’이라는 개념의 능동적인 자기 규정성을 찾는 것이 여성주의 철학자의 과제"였다고 언급하면서, 이 개념을 찾기 위해 전 세계의 여성주의 철학자들이 끊임없이 노력해 왔음을 이 교수는 강조하였다. 그리고 그 노력의 결과를 플라톤의 ‘코라(chora)’, 이리가레의 ‘두 입술’, 그로츠의 ‘뫼비우스’에서 찾을 수 있다고 제시하였다. 즉, 위의 세 개념을 통해서 남성/여성의 위계적인 이분법을 넘어설 수 있는 여성의 몸에 대한 새로운 규정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목차

    서문 철학과 미술의 아름다운 동거

    제1부 철학자, 화가의 외침을 감각하다

    제1장 '세한도'를 읽는다는 것: 김정희와 사마천 그리고 공자
    제2장 인공의 눈을 벗어버린 진짜 눈: 메를로퐁티, 세잔의 혹은 세잔으로의 길
    제3장 삶을 완성하려는 자, 여백을 즐겨라: 팔대산인의 '묘석도'와 선불교
    제4장 들뢰즈, 베이컨의 외침을 감각하다: 베이컨의 '자화상'와 기관 없는 신체

    제2부 철학, 예술의 기억을 재배치하다

    제5장 기억의 재배치가 필요한 시간: 코로의 '모르트퐁텐의 추억'과 베르그송의 변화의 지각
    제6장 서로 다른 두 혁명: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와 파리 코뮌
    제7장 그러나 정복은 불가능하다: 쿠르베의 세상의 근원과 여성의 몸

    제3부 철학과 예술, 관계를 사유하다

    제8장 운동과 시간, 그리고 인간: 르네상스 원근법과 수태고지 그리고 바로크
    제9장 철학이 말하는 구두, 예술이 보여주는 구두: 고흐의 구두와 하이데거
    제10장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과 정치: 벤야민의 매체 이론과 하트필드의 포토몽타주
    제11장 예술, 미적인 자율성과 사회적 사실 사이: 달리와 아도르노

    본문중에서

    '세한도'의 풍경은 이상하기도 하고 볼품이 없다. 그러나 바로 이 볼품없음이야말로 ‘세한의 풍경’이다. '세한도'는 어떤 면에서든 풍요의 산물이 아니다. 평생 벼루 열 개에 구멍을 내고 붓 천 자루를 닳게 했던 김정희의 필력으로 한 글자를 쓰기도 어려운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 황폐의 끝에서 탄생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추사는 발문을 통해서 ‘세한의 풍경’을 넘어서는 그림을 보여준다. '세한도'가 명작인 이유는 바로 이 그림 한 장에 그가 추구한 불멸의 정신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추사는 늘 ‘문자의 향기’를 강조했다. 따라서 추사의 그림을 감상할 때는 단지 눈에 보이는 ‘그림’에서만이 아니라 문자의 향(香)이라 할 수 있는 ‘정신’을 보아야 한다.
    (/ p.17)

    세잔은 목욕하는 남자들이나 여자들을 많이 그렸고, 수도 없이 데생을 했다. 그 결과 이른바 '대수욕도'라는 제목의 그림들을 많이 남겼다. 이 그림들은 세잔이 말년에 최고의 경지에 올랐을 때 그린 그림들이기에 그 의미가 한층 더하다. 내가 보기에 이 그림은 여러 '대수욕도' 중에서도 색감이 가장 좋은 그림이다. 1900년부터 1905년까지 거의 6년에 걸쳐 완성한, 세로 1미터 32센티미터에 가로 2미터 9센티미터인 제법 큰 그림이다. 세잔이 1906년에 사망했으니, 그의 일생에서 최고의 걸작이라 해야 할 것이다.
    (/ p.41)

    '묘석도'는 세로 34cm, 가로 218cm인 수묵화로 팔대산인이 71세에 그린 작품을 말한다. 베이징 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외에도 '묘석도'는 더 있지만 이것이 가장 유명하다. 한 마리의 약간 살찐 흰 고양이가 바위 위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고 있다. 사방에 연꽃과 난초 등과 같은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을 관상할 마음은 전혀 없어 보인다. 팔대산인은 물과 같이 고요한 마음의 고양이로써 청 왕조의 통치나 세속에 대해 초탈한 작가 자신의 심정을 암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다. 그는 이런 객관적 이미지를 통해 상징적 은유의 수법으로 자신의 주관의식을 교묘하고도 함축적으로 결합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그림을 가만히 감상하고 있으면 그림 속의 고양이처럼 마음이 평온해지며 유유자적한 심정으로 빠져들어간다.
    (/ p.73)

    "나는 공포보다 오히려 외침을 그리고 싶었다." 이 얘기는 베이컨이 내부에서 발생하는 감각을 그리고 싶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외부에서 오는 자극이 아니라 내부에서 발생하는 감각을 그리겠다는 포부는 들뢰즈 철학과 매우 유사하다. 베이컨의 자화상에서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
    (/ p.95)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 1830년 7월 28일(Le 28 juillet 1830: la Libert? guidant le peu-ple)' 1830, 캔버스에 유채, 260×325cm, 파리, 루브르 박물관.
    이 그림은 1830년 7월 혁명이 끝난 이듬해 1831년 5월에 살롱에서 전시되었고 같은 해 프랑스 정부에 팔렸다. 당시 7월 혁명으로 왕이 된 시민왕 ‘루이 필리프’의 궁전 알현실에 걸릴 예정이었지만, 이후에 궁전 미술관에 걸리게 되고 나중에는 주제가 너무 선동적이라는 이유로 들라크루아에게 되돌려 보내졌다고 한다. 결국 들라크루아가 죽은 뒤, 루브르가 1874년에 이 그림을 구입하기 이전까지는 본인이 소장하고 있었던 셈이다. 어쩌면 ‘혁명’이라는 주제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워낙 들라크루아의 그림이 역동적인 까닭도 있겠지만, 역설적으로 혁명을 통해 새로 정권을 잡은 세력들은 한편으로는 그 ‘혁명’이 계속되고 극단화될까 봐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니 말이다. 어쨌든 이 그림은 ‘혁명’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하면서 열정과 두려움을 동시에 가져다주는 것 같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대중적인 작품으로 인식되고 새로운 이미지로 상품화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과연 이 그림이 여전히 이런 면모를 보여줄지는 미지수다.
    (/ p.171)

    터키의 외교관이자 미술품 수집가였던 칼릴 베이의 요청에 따라 그려진 '세상의 근원'(1866)은 헝가리로 갔다가 나치에 몰수당해 독일로 갔다가 또다시 소련에 몰수당했다. 최종 소장자는 바로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 1995년 이 그림은 130년 만에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서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이 그림에서 쿠르베가 발견한 사실은 가려져 왔던 여성의 몸이다. 그는 드리웠던 린넨 시트를 벗기고 오므린 다리를 벌리게 하여 보이지 않았던, 애써 보지 않으려 했던 여성의 몸, 여성의 성기, 여성의 아랫도리를 과감히 드러내 보여준다. 드러난 여성의 몸은 이상적 비율에 맞지도 환상적인 자태를 뽐내지도 않는다. 널브러져 있는 그것은 얼굴도 없으며 우아하지도 않다. 그것은 오히려 망하고 추하며 낯설다. 그러나 쿠르베는 말한다. 보라, 이 사실을! 이 몸을! 세상의 근원을! 세상의 근원은 저기에 있는 여성의 몸이다!
    (/ p.207)

    고흐는 삶의 생동성을 망각하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인, 아라비아 사람이나 루이 15세를 그리는 주류 아카데미즘에서 벗어나, 늙고 가난한 농촌의 사람들에게 그들의 노동과 삶, 그리고 그러한 삶의 터전인 농촌을 되돌려주는 그림을 그리고자 했다. 그리고 고흐의 그러한 생각과 고민의 흔적은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들에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무엇보다 앞으로 함께 보게 될 '구두 한 켤레'(1886)라는 작품에 남아 있다.
    (/ p.267)

    매체가 숨기는 것을 바로 그 매체를 통해 드러내는 작업은 어떻게 가능한가? 하트필드는 그 대답을 포토몽타주에서 찾았다. 포토몽타주는 일반적 합의를 갖지 못하지만 "몇 장의 사진으로 만드는 구성적 그림, 예술 또는 그것을 만드는 과정"을 이른다. '초인 아돌프: 돈을 삼키고 쓰레기를 내뿜다'(1932)는 신체 엑스레이 사진과 히틀러의 사진을 겹쳐서 합성한 이미지인데, 합성 이미지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완성도 측면에서 뛰어나다. 히틀러의 웅변술이 바로 자본가들의 돈을 통해 주조된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 p.295)

    '기억의 지속'은 흐늘거리는 시계를 통해 어느덧 흘러가는 시간을 묘사하고 있다. 그림에는 녹아내리는 듯 흐늘거리는 시계와 꿈꾸듯 나른한 사람의 얼굴과 회중시계에서 탈출하려고 몸부림치는 개미떼가 삭막한 풍경을 배경으로 무질서하게 늘어서 있다. 이러한 풍경은 달리 그 자신이 지니고 있는 무의식적인 꿈의 세계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이 그림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이미지로 시계를 그리게 된 이유는 그때 달리가 카망베르치즈를 먹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달리 자신이 이 그림을 착상하게 된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그는 부드러운 카망베르로 식사한 후 치즈의 ‘극도의 부드러움’에 대해 숙고했다. 그 다음으로 기존에 작업 중이던 포르트리가트의 풍경(황혼 무렵의 절벽과 잘리고 앙상한 올리브 나무)이 새로이 착상한 그림의 배경이 될 것이라고 직감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전등을 켜자 그에게 세 개의 흐늘거리는 시계가 나타났다. 이때 그는 "흐늘거리는 시계는 다름 아닌 시간과 공간에 의해 버려진 카망베르, 즉 편집증적으로 비판적이고 부드러우며 사치스러운 카망베르"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 p.323)

    저자소개

    생년월일 1955~
    출생지 경남 마산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총신대학교 신1955년에 마산에서 태어났다. 지독한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한 탓에 신에 대한 회의와 투쟁 등이 원인이 되어 총신대학 신학과에 입학했으나 줄곧 철학 공부만 했다. 결국 서울대학교 철학과 대학원에 입학하여 신학교 시절 탐닉했던 하이데거 철학을 더 근본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후설 현상학에 몰입했다. 하지만 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허우적거리다 박사과정 시절 메를로퐁티의 몸 철학을 통해 사유의 균형을 잡기 시작했다. [E. Husserl의 발생적 지각론에 관한 고찰]이라는 석사 논문, [현상학적 신체론: E. 후설에서 M. 메를로-퐁티에로의 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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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년월일 1963-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철학 박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대학과 대학원에서 공맹 유학과 조선 성리학을 전공했고, 16세기 조선 성리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희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은사이신 안병주 선생과 함께 [역주 장자]를 펴냈다. 아내와 더불어 [공자 지하철을 타다]를 쓰고, 아이들을 위해 [열네 살에 읽는 사기열전]을 썼다. 또 [대학 강의], [장자 강의], [맹수레 맹자], [번역된 철학, 착종된 근대](공저), [강좌한국철학](공저), [논쟁으로 보는 한국철학] (공저), [동양철학산책](공저), [동서양고전의 이해](공저), [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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