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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 : 박지웅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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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박지웅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 : 2012년 12월 10일
  • 쪽수 : 116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54619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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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새는 긴 가지를 물어 구름과 집 사이에 걸었다”

    ―일상에서 인생으로, 인생에서 문명으로, 문명에서 우주로 확장하는 은유의 향연
    박지웅 두번째 시집 [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


    어느 평론가의 지적처럼 시인에게는 ‘생태계의 시’라는 것이 따로 있지 않다. 시인은 자연의 모든 존재방식으로부터 한시도 눈을 떼지 않기 때문에, 밤낮 쟁쟁 울려대는 자연의 신음소리에 귀기울이기 때문에 시인인 것이다. 시인이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 눈 돌리고 귀기울이는 데는 달리 이유가 없다. 모든 존재가 다른 모든 존재와 연결되어 있음이 그에게는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외따로 발생한 듯 보이는 여러 현상들이 사실은 이리저리 그물처럼 얽혀 있음을 이야기하는 장르가 시이고 또 생태학이니, 생태계의 시라는 표현은 불필요한 동어반복인 셈이다. 요컨대 단절이라는 현상은 허상이고 시인은 그 허상에 맞서 서로의 연결감을 회복시키고자 한다.
    박지웅 시인의 두번째 시집 [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가 출간되었다. 첫 시집 [너의 반은 꽃이다]를 펴낸 지 5년 만이다. 총 62편의 시가 3부로 나뉘어 실렸다. 시어 하나하나에 집중해 시 한 편 한 편을 감상하다보면 독자는 자연스레 시집의 알레고리를, 시인의 총체적 비유를 음미하게 된다. 어느 시로 시작해도 좋다.

    원화둥팡호텔 옥상
    장궈룽의 투신을 시작으로 시는 시작된다
    바그다드로 가는 교량을 확보한 병사들은
    용산지구 참사를 모르고
    자살공격단은 장궈룽의 투신을 모른다
    광둥성에서 전 세계로 확산되는
    괴질은 나를 모르고
    나는 나의 아군이 누구인지 모른다
    전 세계를 도는 봄에게 아군을 물으니
    제 몸에 격추된 곳 많아 확인하기 어렵다 한다
    가끔 오인사격도 있다
    봄과 나, 병사와 괴질, 장궈룽의 투신은
    서로 모르는 사이이므로
    남쪽에선 강의 항쟁이 시작되었다
    검문소가 없는, 또는 있는 모든 곳에서
    옥상이 있는, 옥상이 없는 많은 곳에서
    장궈룽의 투신이 목격되고 있다
    험하면 험한 대로 모양내며 자라날 꽃씨들
    거리와 다투지 않는 것은 꽃과 아이들뿐인데
    꽃을 낳을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
    꽃으로 수비할 수 없는 곳은 더 많다
    (/ '굴레방다리' 전문)

    “봄과 나, 병사와 괴질, 장궈룽의 투신은/ 서로 모르는 사이”이다. 그러나 “모든 곳에서” “많은 곳에서” “장궈룽의 투신은 목격되고 있다”. 시인은 “서로 모르는 가운데 벌어지는 이 모든 사태가 기실은 하나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안간힘으로 알리고 싶”(정병근)어한다. “모르고” 또 “모른다”는 반어를 사용해 시인은 단절감/고립감이라는 허상을 들추어낸다. 일상적 투신은 현대문명의 익숙한 풍경 중 하나다. 시인은 질문한다. 그 투신이 풍경이라는 이유로, 익숙하다는 이유로 나와 아무런 상관도 책임도 없는가? 우리가 바로 그 풍경의 일부 아닌가? 익숙함은 둔감함의 다른 표현 아닌가? 서로가 서로에게 감각을 무디게 단련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절망의 뿌리, 희망
    반대말은 양 극단에서 서로를 지울 기세로 맞서 있다. 그러나 어느 하나가 지워지는 순간 반대편의 다른 하나 역시 지워지고 만다. 구상어든 추상어든 앞에서는 다투지만 뒤에서는 서로 손을 맞잡고 있는 셈이다.

    나 오래전 희망에 등 돌렸네
    희망은 내 등에 비수를 꽂았네
    그러나 그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비극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만이 지켜봐주었네
    언젠가 내가 천천히 무대 끝에 섰을 때
    그가 내밀던 따뜻한 거짓말이 없었다면
    내 삶은 일찌감치 독백과 함께 퇴장했으리
    모든 결심의 든든한 우방이자 배후였네
    그러면서 무대 뒤로는 슬픔을 불러들였네
    어렴풋이 희망이 적이 되리란 걸 알았으나
    어쩌겠나, 그 앞에서 개처럼 꼬리 치던 계획들
    나 희망과 너무 가까웠네
    (/ '내부의 적' 중에서)

    “내 등에 비수를 꽂”은 희망을 탓하지 않는 시인은 “희망에 등 돌”리고 희망을 애도한다. 실체가 없기에 죽을 수 없는 희망은 “손뼉을 받으며 희망으로 돌아”간다. 시인은 희망의 또다른 얼굴을, 절망의 뿌리에 희망이 있음을 발견하고 희망이 “내부의 적”임을 고발한다.
    희망은 두 개의 얼굴로 우리에게 온다. 희망은 성공에 이르는 약관을 보여주면서 ‘실패책임각서’ 같은 것을 쓸쩍 끼워놓는다. (……) 불안한 삶에게 희망은 얼마나 고마운 배려인가. 그러나 희망의 십중팔구는 성공에 이르지 못한다. (……) 희망은 ‘자본의 제국’이 우리에게 먹이는 묘약인지도 모른다. 그런 희망이라니. 시인은 우리가 무심코 수용하는 습관적이고 어용적인 희망에 대해 회의할 것을 요구한다. 스스로에게 중독된 희망, 반성하지 않은 희망은 필요 없다.
    (해설/ '견딤의 궤적, 혹은 무늬' 중에서)

    새와 바람이 그린 지도를 따라 걸었다
    그래서일까. 시인은 “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고 한다. (“걸었다”라는 과거시제 동사는 “걷다”와 “걸다”(연결하다) 모두를 뜻한다.) “라일락에 세 들어 살던” 때 “골목으로 들어온 햇살이 공중의 옆구리에 창을 내면/ 새는 긴 가지를 물어 구름과 집 사이에 걸었다”. 시인은 “새와 바람이 그린 지도”를 따라가고 피어나는 꽃에 밀려 나무 위로 올라가던 그때의 기쁨을 다시 불러낸다. 시인은 어느 인터뷰에서 “잃어버린 집, 떠다니는 집, 사라지는 집 들은 구름을 닮았다. 현실과 이상 사이엔 허망함이 있는데, 나는 그 현실/이상/허망함 사이에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산책이었든 방황이었든 유랑이었든 시인은 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고, 그러는 사이 씌어진 시 한 편 한 편이 두번째 시집 [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를 채웠다.

    시인의 말
    라일락을 쏟았다
    올겨울, 눈과 나비가 뒤섞여 내리겠다

    2012년 12월
    박지웅

    목차

    시인의 말

    1부


    나비를 읽는 법
    푸른 글씨
    가벼운 뼈
    소금쟁이
    물의 방중술
    순간의 미학
    냇물 전화기
    매미가 울면 나무는 절판된다
    칼춤
    우리의 쌀 발음에 대하여
    뼈저린 일
    박쥐
    번개
    피리
    개가 뼈를 물고 지나갈 때
    승부
    선녀와 나무꾼
    그날 생각
    물으면 안 되는 것들
    꿈은 어디에서 오는가
    인연(因緣)의 집
    그대는 가슴속에 있는 방들을 다 열어보았는가

    2부


    라일락 전세
    소리의 정면
    상업의 내력
    오늘의 밥값
    나비도 무겁다
    가족벽화
    북아현동 후기시대
    굴레방다리
    그늘의 가구
    바늘의 눈물
    밥줄
    조무래기따개비
    도깨비시장
    조직의 쓴맛
    택시
    권력의 이동
    오래된 귀가
    천 개의 빈집
    미개한 문명
    그림자들

    3부


    내부의 적
    유랑의 풍습
    무거운 숟가락
    물의 가족
    가축의 정신
    홍시
    세상의 모든 새는 헛소문이다
    역전의 용사를 위하여
    달의 통로
    가위
    올가미
    뒷심
    죄인들
    춤추는 할머니
    합성사진

    나쁜 삶
    유령
    어느 날 환생을 계약하다
    나를 스치는 자

    해설 | 견딤의 궤적, 혹은 무늬
    | 정병근(시인)

    본문중에서

    라일락 전세

    라일락에 세 들어 살던 날이 있었다
    살림이라곤 바람에 뒤젖히며 열리는 창문들
    비 오는 날이면 훌쩍거리던 푸른 천장들
    골목으로 들어온 햇살이 공중의 옆구리에 창을 내면
    새는 긴 가지를 물어 구름과 집 사이에 걸었다
    그렇게 새와 바람이 그린 지도를 손가락으로
    가만히 따라가면 하늘이 어느덧 가까웠다
    봄날 라일락꽃이 방 안에 돋으면
    나는 꽃에 밀려 자꾸만 나무 위로 올라갔다
    주인은 봄마다 방값을 올려달랬으나
    꽃 피면 올라왔다가 꽃 지면 내려갔다
    오래전부터 있어온 일, 나는 라일락 꼭대기에 앉아
    골목과 지붕을 지나는 고양이나 겸연쩍게 헤아렸다
    저물녘 멀리 마을버스가 들어오고 이웃들이
    약국 앞 세탁소 앞 수선집 앞에서 내려 오순도순
    모두 라일락 속으로 들어오면 나는 기뻤다
    그때 밤하늘은 여전히 신생대였고
    그 별자리에 세 들어 살던 날이 있었다
    골목 안에 라일락이 있었는지
    나무 안에 우리가 살았는지 가물거리는

    그림자들

    누구나 빈집 한 채 가지고 산다
    빈집에 들어가 누워 나오지 않으면
    그때 그것을 죽었다고 쓴다
    저 집을 빠져나간 산 육체는 없다
    아니 살아서는 절대 못 나가는 집이다
    토막 나면 토막 난 집에 담기고
    부서지면 부서진 집에 담긴다
    끔찍한 미학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저 집을 빠져나가는 길은 단 두 가지
    눈물이 되거나 핏물이 되는 것
    네가 그렇게 조금 더 살아보고 싶다면
    이제는 차라리 슬픔을 응원하라
    흔들어봐야 죽은 닭대가리 같은 믿음 아닌가
    한 개비 담배만도 못한 안심 아닌가
    재가 되거나 연기가 되거나
    이제는 차라리 증발을 자초하라
    한때 지조 없는 철새길 바랐으나
    비둘기처럼 멀리 날지 않는 그림자들
    잡히지도 않는, 한 걸음 나가면
    한 걸음 들어오는 움직이는 빈집
    모든 바깥이 끌려 들어가는
    캄캄한 안쪽
    (/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부산에서 태어났다. 2004년 [시와사상] 신인상, 200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데뷔했다. 시집 [너의 반은 꽃이다], [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 [빈 손가락에 나비가 앉았다]. 제11회 지리산문학상, 제19회 천상병詩문학상. 제21회 시와시학 젊은시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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