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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딩의 여덟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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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중국문학의 전통과 현대를 해부하며 인간의 절망과 구원을 말하다.
    이 시대의 진정한 휴머니스트로서 세계인이 주목하는 작가 리루이!

    “여러분의 세계는 일곱 날 안에 머물지만,
    나의 세계는 여덟째 날부터 시작된 것이다.”


    비이성적인 광기에 휩싸인 채 저지른 피의 학살 속에서 운명적으로 부침하는 인간의 삶에 대해 리루이는 뼛속 깊이 사무치는 한과 슬픔을 노래한다.

    19세기 말 서세동점의 광풍 앞에 들불처럼 일어난 중국 의화단 운동을 배경으로, 좌절한 민중들의 분노 그리고 이성의 맹목성으로 무장한 선교사들의 충돌이 가져온 돌이킬 수 없는 혼돈, 운명과도 같은 절망, 파멸 속에서 고뇌하는 주인공 장마딩을 통해 인간 존재와 구원을 묻는다!

    태초에 하느님은 첫째 날에 낮과 밤을 만드셨고, 둘째 날에 물을 위아래로 나누어 하늘을 만드셨다. 셋째 날에 풀과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를 만드셨고, 넷째 날에 빛과 어둠을 나누셨고, 다섯째 날에 물로써 생물이 번성케 하셨다. 여섯째 날에 사람을 만드시고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렇다면 장마딩의 여덟째 날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장마딩_ 신앙을 위한 희생과 운명적인 부활!
    레 꼬르비노 주교_ 영원히 중국 땅에 묻히리라!
    장톈츠_ 언젠가는 내 복수를 해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왕석류_ 하늘어미는 참수당한 내 남편 장톈츠를 환생시켜주었어요!


    중국이름 장마딩(張馬丁), 지오반니 마틴은 이탈리아 바랄로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고 고아로서 수도원에서 자랐다. 그는 중국이라는 머나먼 나라에 와서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리라는 사명과 믿음을 지닌 성직자였다. 전통적으로 하늘어미 여와라는 삼신할미를 신봉하는 하늘바윗골(天石村)의 중국인들은 가뭄이 들자 자신들의 토속적인 전래 방식으로 천재(天災)에서 벗어나려고 하다가 천주교 성당과 충돌하게 되고, 그 와중에 장마딩은 치명적인 중상을 입고 쓰러진다.
    레 꼬르비노 주교는 장마딩의 헌신적인 죽음이 하느님이 주신 기적이며 다시없는 선교의 기회로 여겼으며, 그래서 하늘바윗골의 비밀결사 의화단(義和團)의 한 갈래 조직의 우두머리인 장텐츠(張天賜)의 목숨으로 보상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의 의도와는 달리 장마딩은 사흘만에 기적처럼 소생한다. 하지만 레 꼬르비노 주교는 그 사실을 숨기고 장톈츠를 희생시킨다.
    장텐츠의 아내 왕석류(王石榴)는 딸만 둘 낳았고, 남편이 참수당할 때까지 아들을 낳지 못한 죄의식과 아들을 낳아 남편의 복수를 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시달리던 중에 미쳐버린다. 그녀는 광기 속에서 스스로 여와 하늘어미가 속세에 내려온 삼신할미가 되어 삼신할미사당에 살게 된다.
    장마딩은 억울하게 참수당한 장톈츠의 죽음에 대한 진상(眞相)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때문에 레 꼬르비노 주교의 성당에서 쫓겨나고 분노한 민중 앞에 서게 되는데......

    저자 리루이(李銳)는 자신의 절망적인 운명에 반항하고자 창작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문화대혁명이 발발하자마자 홍위병에 참가했지만 곧바로 이어진 상산하향(上山下鄕)운동 속에서 지식청년의 신분으로 시골에 내려가 농민에게 재교육을 받아야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가 생산대에 정착한 뒤에 정치적 박해로 인하여 어머니가 자살하였고, 아버지는 5?7간부학교에서 격리 심사를 받던 중에 제대로 된 의료 진료 한번 받지 못한 채로 사망하였다. 그의 아홉 형제는 중국 전국 각지의 척박한 시골, 산골, 변경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그는 내일을 기대할 수 없는 현실과 쓰라린 좌절 속에서 창작만이 ‘철저하게 심연의 가장 밑바닥에 떨어진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출로라고 여겼고, 그래서 소설을 발표하지 못하면 베이징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리루이는 창작 초기에는 절대로 참회에 대해 자각하고 각성하지 못했다. 그는 뤼량산 두메산골 사람들과 이야기 속에서 개인의 욕망, 고통, 운명과 죽음을 탐구하고, 나아가 역사, 정치, 권력과 폭력에 대해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는 운명에 저항할수록, 죽음을 통해 인간성에 대해 파헤칠수록, 인간의 문제를 작품화할수록, 지성과 양심과 참회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리루이는 ‘중국은 너무 오래도록 무르익은 가을’이며, 폭력과 통제로 점철된 ‘이성 없는 역사’도 오래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리루이가 끊임없이 말하는 ‘뼛속 깊은 체험’은 바로 이러한 역사의식과 자각, 참사람을 추구하는 인생관의 발현이기 때문에, 독자에게 현대인으로서의 현재적 ‘실존’을 깨닫게 한다.
    리루이의 말에 의하면, 그 자신은 “모든 출로가 없는 절망과 반항, 모든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산천 풍경, 민간에서 반복적으로 출현하는 온갖 모습과 반복적인 대비”를 통해서 “가장 이성적인 사람들이 만든 가장 이성 없는 역사가 인류 자신을 옭아맨,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딜레마를 작품화”했다고 한다. 리루이는 집단의 욕망이 광적으로 분출되는 역사 상황에서 내내 말할 권리 없이 사회 주변에서 소외당한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입말을 듣고자 했다. 그럼으로써 타자와 진심으로 소통한다면, 21세기 중국이 나눔의 사회,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리루이는 서구 중심 담론이나 그 문예이론의 영향권 안에 들어가는 것을 중국인과 중국어의 정체성을 스스로 버리는 행위라고 여기기 때문에 ‘서구’, 혹은 ‘현대’나 무슨 ‘이즘’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작가이다. 그러한 그의 작품 속에 서구인이, 그것도 서구의 성직자가 등장하였다. 과거 동양의 중심 국가였던 중국은 1900년 당시 서구 열강의 군사적 위협 아래 놓여 있었다. 바야흐로 봉건 체제는 몰락할 것이고, 도처에서 이민족 왕조와 외세에 저항하는 민란이 끊이지 않는 격동의 시점에서, 타이항 산 하늘어미 강가에서 전통적인 삶과 마을공동체를 지키려고 하는 중국인들과 군사적 우세를 앞세우며 선교를 목적으로 들어온 외국인과의 대립은 불가항력적인 것이었다. 그 격동의 소용돌이에 뛰어든 주인공들 각자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한국 독자는 중국 당대 문단에서 진정한 휴머니스트로서 중국인의 ‘혼’을 부르는 리루이의 작품을 통해서 독창(獨唱)을 고집하는 지성인의 고뇌와 ‘이성 없는 역사’에 대한 참회의식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것이 비단 중국인 가운데 어느 한 개인, 어느 한 작가의 목소리가 아니라 오늘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인 우리 자신이 함께 고뇌해야 할 인간의 문제이며 반성해야할 문제임을 깨달을 것이다.

    [저자와의 인터뷰 中 ]

    삶과 죽음의 파노라마,
    사람은 누구나 예상치 못했던 운명과 마주칠 수 있다.


    비이성적인 광기에 휩싸인 채 저지른 엄청난 피의 학살 속에서 운명적으로 부침하는 인간의 삶에 대해 리루이는 뼛속 깊이 사무치는 한과 슬픔을 노래한다.

    기자: 의화단운동이 배경인 이 작품은 선생님의 다른 소설처럼 서사의 일관된 통일성을 갖고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시시콜콜 들추어내어 말하기보다는 직접적으로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부침하는 인물의 이야기로 들어가서, 그 인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시대를 말하게 합니다. 그래서 작품을 읽다 보면 독자는 작품 속의 사건을 직접 체험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선생님이 이 소설을 창작하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역사 자료는 어느 정도로 준비하셨습니까? 어떤 구상 원칙을 갖고 계셨나요?

    리루이: 어떤 소설이든지 창작하려면 모두 그 나름의 우연성이 있을 수 있지만, 숙성되는 과정을 거치기 마련입니다. 작품은 그러한 구상과 숙성의 과정, 깨달음과 탐색의 결정체인 셈이죠. [장마딩의 여덟째 날]은 나의 몇십 년 동안의 창작 경험이 축적된 결과라고 할 수 있고, 내가 역사에 대해 끊임없이 되돌아보고, 반복적으로 탐색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등산에 비유한다면, 만반의 준비를 마친 뒤에 새로운 고지까지 올라가 본 것이지요. 만약 여러분에게 충분한 능력이 있고 행운이 따른다면, 여러분은 온갖 굽이치는 산들을 내려다볼 수 있는 훨씬 높은 정상에 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절대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에는 여러분이 푹 쉴 수 있는 그렇게 영원히 편안한 ‘절정’은 없습니다. 여러분은 겹겹이 쌓인 까마득히 깎아지른 절벽과 그 절벽 허리를 휘감은 구름을 금방 보게 될 테니까요.
    문화대혁명을 쓰고, 유토피아에 대한 환멸을 쓰고, 국민당과 공산당의 역사적 충돌을 쓰고, 신해년의 천지개벽할 변화를 쓴 뒤에 나는 뿌리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 다시 한 번 역사의 가장 어두운 심연의 바닥으로 돌아가 보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은 도대체 어떠한 정신적 곤경에 처했었는지? 사람이 지닌 그런 끔찍한 잔인함과 그런 가없는 자비로움은 대관절 어디서 온 것인지? 삶은 도대체 자구의 능력이 있는 건지, 아예 없는 건지? 만약 사람의 이상이 모두 객소리라면, 사람의 잔인함이 모두 다 진실이라면, 사람으로서 ‘사람됨’의 도리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나는 그러한 것들을 파헤쳐 보고 싶어서 의화단운동이 일어난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갔습니다. 그저 역사 이야기와 역사적인 사건만 본다면 사실 이 세상에 소설가는 필요 없을 것입니다. 그 뿌리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 그 원인을 파헤치고 캐묻는 것이 오히려 나 자신의 정신적 구속救贖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 해 전에 나는 [장마딩의 여덟째 날]이란 제목을 나의 창작노트에 적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서너 해 전쯤에 그 소설 전체를 이끌어 갈 묘지명을 써 놓았답니다.

    여러분의 세계는 일곱 날 안에 머물지만,
    나의 세계는 여덟째 날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 제목과 묘비명은 내 마음속 한 자리를 차지하며 한시도 떠나지 않았답니다. 나는 하늘을 나는 새는 곧 사라지고 뜬구름은 먼 곳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것을 안답니다. …… 나는 아무것도 없는 백지에서 모든 것이 용솟음치면서 뿜어져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원래는 선교사의 아들이 중국에서 겪는 운명을 쓰려고 했습니다. 그랬다면 지금보다 훨씬 스펙터클한 소설이 되었겠지요. 그래서 저는 부딪칠 수 있는 모든 세부 사항을 찾아보고 또 꼼꼼히 읽어 보았습니다. 관련 서적을 읽을수록 참고 자료를 뒤질수록 두툼하게 쌓이더군요. 나는 내가 거친 파도 출렁이는 드넓은 바다로 뛰어들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의화단운동에는 여러 가지 은폐된 것과 자기 나름의 몫을 가진 ‘역사적 사실’이 있습니다. 가톨릭은 중국에서 환영을 받기도 하고 거부되기도 했으며, 군함과 대포를 앞세운 무력과 폭력 때문에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습니다. 잡초처럼 무성한 중국 백성의 토속 신앙과 전통 사회 등등. 무슨 뾰족한 방법은 없었습니다.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가능한 한 많이, 읽고 또 읽었습니다. 가톨릭을 이해하기 위해서 나는 [성경]을 통독했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었습니다. 위대한 성경과 여와의 창세 이야기에 감사드립니다. 그것들이 나에게 심오한 영감을 주었고 창작 욕구를 끓어오르게 해 주었습니다. 이 소설을 쓸 때에 나는 이러한 원칙을 정하였습니다. 아방가르드하지 않기, 실험하지 않기, 언어게임하지 않기, 기교적 상투에 빠지지 않기, 광기에 빠지지 않기, 그리고 절대 조롱하지 말고 깨끗하게 정면 돌파하자고요.

    기자: 선생님의 소설을 읽을 때에, 작중 인물들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가운데 전형적인 인물들이 있어요. ‘유식지사’는 권위적인 면에서 특별히 중국인의 전체적인 성격을 지닌 인물은 아닙니다. 태평한 시대에는 계몽이니 현달이니 하는 미명 아래 그 고장의 우두머리격인 신사나 선비 같은 인물이 시골마다 마을마다 있기 마련 아닙니까? 그들은 지방의 종법제도 안에서 뼈대 있고 학식을 갖추고 예의를 지키는 선비나리 아니면 도령들이었지요. [장마딩의 여덟째 날]의 저멀리 유럽에서 온 젊은 선교사 장마딩도 예외일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사내들은 양심적이지만 마음이 여려서 쉽게 슬픔에 젖곤 합니다. 왕도를 가장한 폭력이 판을 치는 어지러운 세상에서 이런 성격을 지닌 인물은 십중팔구는 목숨을 잃게 됩니다. 그들은 때로 애상에 젖은 나머지 정의를 위해 용감히 죽음으로 나아가는 대장부 같은 역할을 자처하지요. 이런 점에 대해 선생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리루이: 나의 소설을 그렇게 꼼꼼히 읽어 주신 데 대해, 또 스스로 파멸의 길로 나아가는 인물의 비극을 보셨다니 감사드립니다. 솔직히 그런 지식인은 자기 눈앞의 세계만을 불태웠을 뿐입니다. 이 비극적이고 절망적인 표현은 나로서는 뼈에 사무치게 체험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폭력은 인간 내면의 깊은 곳에 감추어진 가장 추악한 인간성이 폭발한 것이었습니다. 유사 이래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난 것은 원시적인 몽둥이와 돌멩이부터 한 치의 오차를 허용하지 않는 인공위성의 탄도미사일까지, 각기 다른 원인과 조건이 있고, 각기 다른 면모와 이유가 있지만,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말살할 수 없는 인간성 자체의 탐욕과 잔인함에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는 피안은 아예 없어요. 차안만 있고 영원히 회복되지 않는 차안만 있습니다. 자비와 박애가 폭력이 기승을 부리는 세상의 흐름을 막았던가요? 오히려 폭력과 혼란이 갈마드는 시대가 사람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보잘것없고 가엾은 존재인지를 깨우쳐 준 것입니다. 지금은 세계화와 최첨단 과학기술의 시대이긴 하지만, 인간의 고귀함과 존엄이 모든 최첨단 과학기술과 세계적인 도살과 약탈을 막아주지는 않습니다. 사람으로서 사람됨은 터무니없어서는 안 된다고요? 천만에요. 나는 허망하고 허무맹랑한 피안에 안주하기보다는 진실하고 냉혹한 차안에서 한껏 사는 것만 못하다는 것을 뼛속 깊이 알고 있습니다. 살다 보면 혹시 자기반성의 가능성도 생기지 않을까요?

    기자: 선생님 소설의 이미지에서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은 죽음의 서사일 것입니다. 장면 묘사는 아주 고요해요. 폭풍 전야처럼 말이에요. 전통적인 문인풍의 ‘하늘에 묻다問天’같은 느낌도 드러냅니다. [장마딩의 여덟째 날]의 죽음은 종교충돌 사건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직접적으로 순교殉敎 혹은 구속 같은 상투적인 해석을 쉽게 내리지 않을까요? 소설의 후반부가 특히 흥미진진합니다. 죽음을 묘사한 몇몇 장면들이 강하고 빠른 리듬을 따라 그대로 종이 위에 드러나 있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역동적이고 격정적인 죽음 앞에 홀연히 나타난 마을의 영웅이 홀로 적진에 뛰어들어 성당을 초토화시키는 장면 같은 것은 전통 희극의 요소를 적당히 가미한 것이라고 봅니다. 위령제를 드리는 맛이 제법 드러나는데, 혹시 선생님의 의도적인 설정인가요?

    리루이: 그건 나의 의도적인 설정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 그런 것입니다. 중국 땅에서 의화단운동이 일어난 직접적인 원인은 쉼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 종교충돌 사건에 있습니다. 내가 앞에서 말한 대로, 인간성의 어떤 부조리한 면이 종교적인 충돌 속에서 그야말로 사람의 속을 알 수 없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눈을 멀뚱히 뜨고 본 똑같은 사람들이 하지만 단지 신앙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더없이 숭고하고, 이유가 충분하고 정당하게 걷잡을 수 없는 격정에 휩싸인 채 사람을 죽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지구촌이라고 부르는 세계에서 벌어진 가장 황당무계한 일입니다. 모든 자비심을 담고 있는 어떤 교의로도 해석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나는 순교자의 숭고함을 쓴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러한 숭고함과 신성함 때문에 인간 자신이 빚어내는 곤경과 환멸을 쓴 것입니다. 어쩌면 그 옛날 노자가 도덕, 윤리, 이상과 감정에 대해 시원스레 표현한 말이 진상을 직시한 ‘참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천지는 너그럽지 않아 만물을 흙으로 빚은 개로 여깁니다. 만약 태양계, 은하계조차도 그저 흙으로 빚은 개처럼 일반 탄생과 소멸의 순환에 불과하다면, 아니 솔직히 망망한 우주에서 사람은 바닷물에 빠진 좁쌀 한 알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왜 자신이 고상하지도 않고 영원히 존재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까? 우리가 정말 고민해야 할 문제는 순간순간의 삶을 어떻게 사람답게 살 것인가, 그 문제가 아닌가요? 그것은 신앙적이고 과학적이고 모든 위대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 해도 영원히 회피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내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만약 사실과 이야기만을 본다면, 이 세상에서 소설가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 머리 위에는 아름다운 비단에 놓인 수처럼 온갖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이 있고, 삶과 죽음과 탄생과 소멸은 순간순간마다 발생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억만년 동안 쉬지 않을 윤회가 있습니다. 사람의 난제는 이런 삶과 죽음과 탄생과 소멸의 순환 속에서 사람은 영원히 홀로 어떠한 일에도 관여하지 않고 살 수는 없고, 영원히 소리 소문 없이 원하는 대로 스스로 태어났다 스스로 사라질 수도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러한 ‘보잘것없음’에 대한 자각이 사람과 만물을 구별하게 했고, 또 사람에게 피하기 어려운 고통을 뼛속 깊이 느끼게 했습니다. 소설가가 자신을 깊이 표현할 수 없다면, 타인과 자신 때문에 자기 시간을 애써 낭비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글을 쓰는 사람의 최소한의 본분이고 글을 쓰는 사람의 최고의 추구이기도 합니다.

    기자: [장마딩의 여덟째 날]은 이야기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명명命名 같은 일도 생생하게 구현되는데요, 주교가 젊은 선교사에게 ‘장마딩’이란 중국식 이름을 골라서 지어 주지 않습니까? 그건 전부터 구상한 장면입니까?

    리루이: [장마딩의 여덟째 날]은 사람에 관한 알레고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알레고리의 문체적인 특징의 하나는 바로 최소한의 문자로 풍부한 알레고리를 표현하는 데에 있습니다. 눈에 확 띄이면서도 풍부한 연상을 일으키는 제목은 패러디나 알레고리의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장마딩이란 이름을 고른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서양과 중국 두 지역에서 모두 아주 일반적이고 가장 흔히 접하는 이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어의 ‘지오반니 마틴’은 영어의 ‘존 마틴’이고, ‘존요한’은 서양 사람에게 가장 흔하고 가장 일반적인 성이잖습니까? [성경]에도 나오는 이름입니다. 영어 ‘존John’의 발음이 중국어 ‘장’의 발음과 아주 비슷합니다. 장씨는 중국 성씨 가운데 가장 흔하고 가장 일반적인 성씨입니다. 이렇게 두 지역에서 가장 흔하고 가장 일반적인 성씨를 함께 합쳐서 지금과 같은 이름이 생겼습니다. 중국과 서양을 합하여 하나로 만든 이름을 가진 인물의 등장이 바로 자기편과 적 양쪽에서 한꺼번에 쫓겨난 뒤에 죽음의 궁지에 몰린 것입니다.
    선교사로서 장마딩은 삶과 죽음이 나뉘는 종교분쟁 속에서 진상을 밝히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교회를 나오는 대가를 치르고, 또 친아버지와 다름없는 레 꼬르비노 주교를 배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주교어른이 굳게 닫아 버린 대문은 장마딩을 하느님의 세계 밖에 놓이게 합니다. 그때부터 장마딩이 내딛는 걸음걸음은 모두 혼자 독자적으로 가는 자기구속自己救贖의 길이고, 장마딩이 내딛는 걸음걸음은 모두 독자적으로 홀로 걷는 한 사람의 창세기입니다. 가시관도 없고 십자가도 없으며 심지어 둘러싸고 구경하는 구경꾼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영원보다 훨씬 더 먼 곳으로 걸어가고, 심연보다 훨씬 깊은 어둠 속으로 걸어간 것’을 슬프게 탄식합니다. 그는 임종할 즈음에 갈기갈기 찢어지는 심정으로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사람이라야 가장 멀리까지 퍼지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지요.

    기자: 선생님과 부인 장윈蔣韻, 1954~ 은 유명한 작가입니다. 최근에 따님 디안笛安, 1983~ 도 작가가 되었고 작품도 타이완의 독자에게 선을 보였습니다. 온 가족이 작가가 되셨는데요, 독자들은 선생님의 집안 풍경이 참으로 궁금할 것 같습니다.

    리루이: 사실 우연한 일이에요. 우연히 소설을 쓰는 부모를 만났고 소설을 쓸 줄 아는 딸이 태어난 것이지요. 그래서 한 가족 세 식구가 똑같이 글을 쓰는 작가 집안이 된 것입니다. 부모가 우연히 쌍둥이나 세쌍둥이를 낳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요? 나와 장윈의 창작은 모두 자기 부모하고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어요. 모두 스스로 터득한 것입니다. 디안의 창작도 그 애 자신이 배워서 한 것입니다. 물론 이런 딸아이를 하늘이 내려 준 것은 그야말로 행운입니다. 부모로서 우리는 이제껏 우리의 그러한 행운에 대한 기쁨을 감춘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딸로서 디안은 아마 하루빨리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 창작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다행히 딸아이 스스로 부모의 그늘에서 아주 빨리 벗어났습니다.
    온 식구가 모두 창작하기 때문에 좋은 점은 서로에게 첫 번째 독자가 될 수 있고, 때로 솔직히 비평하고 직접적으로 쓴 소리를 가장 잘 해 줄 수 있는 첫 번째 평론가라는 것에 있지요. 이런 부분은 다른 사람들은 갖기 어려운 장점이랍니다. 온 식구가 모두 작가이기 때문에 나쁜 점은 단조로움을 피하기 어렵다는 점이지요. 세 사람이 모두 독서와 창작 사이만 오락가락하잖아요? 실제로는 일상의 다른 취미를 더 갖기 어렵고 세상의 희한한 볼거리를 더 많이 구경하지 못해요. 어쩌겠어요? 할 수 없지요. 여러분의 이 인터뷰 때문에도 나는 정월부터 펜을 들고 무엇인가를 긁적거리기 시작했거든요.

    목차

    한국어판 서문

    제1장 하늘어미 강
    제2장 삼신할미사당
    제3장 호치키스 소총
    제4장 촛불
    제5장 돌배
    에필로그

    ‥옮긴이 후기
    ‥중국어판 서평
    ‥작가약력
    ‥작품연표
    ‥수상경력

    본문중에서

    지오반니, 사람은 하나같이 모두 보잘것없단다. 우린 모두 죄를 지었어. 하느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고 싶다면, 우린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일을 해야만 한다. 우리에게는 이런 의무만 있을 뿐이다. 우린 하느님께서 하지 않은 일에 대해 왜냐고 물을 권리는 없단다.
    (/ p.33)

    아이고 서방님! 제가 진짜 형님한테 면목이 없어요. 저는 잉얼과 자오얼, 달랑 딸 둘만 낳고, 형님한테 아들을 낳아주질 못했어요. 제가 형님한테 손을 이을 아들 하나를 낳아 주지 못했어요.
    (/ p.47)

    이 관은 내가 일부러 이탈리아에서 가져온 것이요. 내가 쓰려고 준비했던 거란 말이오. 나는 다시는 유럽으로, 내 나라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정했소. 이미 하늘어미 강에서 죽기로 결정했단 말이오.
    (/ p.96)

    마리아 수녀님. 애써 설명하지 않으셔도 되요. 누군가의 어머니였다는 것이 잘못은 아니에요. 한없는 사랑에 이유 같은 건 필요 없어요.
    (/ p.106)

    실은 그랬어. 더는 먹을거리를 찾을 수가 없었거든. 나도 다른 방법이 없었어. 살려면 사람을 먹는 방법밖에 없었어.
    (/ p.158)

    지금도 우리는 제법 잘 어울리는 파트너입니다. 선생님은 육신을 치료하고 저는 영혼을 치료합니다. 모두 사람에 관한 일이 아닙니까? 마지막 심판이 도래할 때 우리는 육신과 영혼이 함께 천국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답니다.
    (/ p.167)

    그럼 어째서 바로 나타나지 않고 왜 오늘까지 미루다가, 일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를 때까지 미루다가, 살인사건을 다 처리할 때까지 미루다가, 왜 이제야 나타난 거요?
    (/ p.200)

    그래, 내 사람이야. 틀림없이 내 사람이 온 거야. 내 남편 톈츠가 살아 돌아왔어! 톈츠, 톈츠, 여보, 마지막에 옥수수 죽도 먹이지 못했어요! 우리 삼심할미도 목숨이 아까우셨던 게죠. 내가 내 남편을 나한테 빨리 돌려주지 않으며, 다시 보내 주지 않으며, 내가 할멍의 사당을 불태워 버리겠다고 했거든요!
    (/ p.225)

    이 모든 게 다 내가 자초한 것이다. 이 모든 게 다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이 모든 게 다 내가 감당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내가 길을 잃은 것이고, 나에 대한 징벌이고, 내가 돌아가야 할 길이다.
    (/ pp.269~270)

    난 정말이지 멍청해. 롄얼, 너를 깨워서 뭘 하겠어? 네가 깨나면 뭘 하겠니? 이 세상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자신이 얼마나 가련한지를 보라고 너를 깨우다니!
    (/ pp.289)

    어째서 또 저예요? 어째서 또 저예요? 왜 내 남편, 내 피붙이로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텐츠가 목숨을 버렸어요, 그래도 부족해요? 또 내 아기까지 버려야 해요?
    (/ pp.342)

    저자소개

    생년월일 1950.9~
    출생지 중국 베이징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저자는 스웨덴 한림원이 주목하고,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하는 세계적인 명성과 더불어 중국 당대 문단에서 ‘합창을 거부’하고 자신의 창작 경향을 지킴으로써 예술성과 독창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는 서구 문학담론과 이즘의 수용과 모방을 거부하고 중국 문학의 토속성과 전통성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전형적인 중국 작가다. 또한 자유로운 문예 창작활동을 통제하는 정치적인 검열과 그러한 어용담론을 전면적으로 거부하며 오로지 작품으로 외로운 싸움을 하는 몇 안 되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중단편소설집 [뿌리 깊은 땅(厚土)], [태평풍물(太平風物)], 장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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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외국어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서 리루이 소설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경희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특히 문화대혁명 이후의 현대문학을 연구하고 있다. 역서로는 리루이의 [장마딩의 여덟째 날張馬丁的第八天], [바람 없는 나무無風之樹], 베이다오의 [한밤의 가수午夜歌手], 궈원빈의 [만사형통吉祥如意](공역), 쉬원웨이의 [문학@타이완文學@台灣](공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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