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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기 시집 『차우차우』. 이 책에 수록된 시들은 시인이 살아온 지난 날의 이야기와 생각들이 담겨 있다. 고향의 아름다운 산과 들, 그리고 맑은 개울이 흐르는 것처럼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신춘문예 최고령 당선자의 젊디젊은 첫 시집

문학의전당 시인선 139
김진기 시집
《차우차우》

김진기 시인의 작품들은 ‘힘’이 세다. 그 무엇보다 진솔한 ‘경험’에 기반(基盤)했기 때문이다. 시의 세 가지 ‘원천’을 거론하게 되면, 모티브의 주요한 발생 지점을 중심으로 ‘경험’, ‘기억’, ‘상상력’으로 분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 분류의 문제점은 이론적으로는 흠잡을 데가 없지만, 실제 창작과정을 설명하기에는 너무 추상적이라는 데 있다. 실제로는 ‘체험’, ‘추억-회고’, ‘가상-상상’ 등으로 바뀌어야만 ‘동기(motive)’가 ‘동기화(motivation)’되고 시작 과정의 연쇄가 자연스럽게 흐르게 된다. 물론 작품의 ‘제재’가 ‘동기화’되면, ‘경험/기억/상상력’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하나의 시상(詩想) 속에서 혼합, 융합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는 다르게 말하면, ‘정신’이 ‘언어’ 속으로 녹아드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이해한다면, 김진기 시인의 시적 자산은 ‘체험’이 주류가 되고, 그 운용법은 ‘동기화’ 이후 시상을 끌어나가는 방법이라는 측면에서 ‘알레고리(allegory)-우유(寓喩)’라고 볼 수 있다.

소나무 아래 앉아 시집을 읽고 있는데
눈이 자꾸 글을 벗어난다
그때 가을바람 한 무리가 지나가면서
책장 위에 무엇인가 툭, 떨어뜨린다
바늘이다
어릴 적 할머니가 쓰시던 눈에 익은 그 바늘
끝은 아직 뾰족하다

밤마다 남폿불을 밝히고 내 양말을 깁던 할머니
그때마다 내 뒤꿈치도 따끔거렸지만
머릿속은 실타래처럼 풀려
글이 저절로 눈 속으로 들어왔다
바늘 끝이 환했다

할머니의 바늘을 책갈피에 꽂고
시집을 읽는다

시가 눈에 들어온다
-「솔잎 바늘」 전문

경제적 논리로는 ‘쓸모없음’을 통해 현 사회와 체제를 비판해온 시라는 예술에서 ‘자산’, ‘운용법’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충분하다. 하지만 필자는 하나의 ‘용어’란 하나의 ‘개념’에 들어맞고, ‘이해’라는 목적에 충분히 사용될 수만 있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이번 시집 『차우차우』는 어느 모로 보나 시인 김진기의 시적 자산인 진솔하고 풍부한 ‘체험’이 제대로 활용될 수 있는 방식(운용법)을 찾아 시인의 시작(詩作) 목적을 달성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백인덕(시인)

[추천글]

김진기는 시적 대상을 포획하여 자아화하는 능력이 탁월한 시인이다. 그가 대상을 포획하는 방법은 여간 부드럽고 따뜻하기 이를 데 없는데, 그 비유가 사뭇 재미있고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식당에서 반찬으로 따라 나온 어린 굴비의 촉촉한 눈자위를 보고 연민을 느끼기도 하고, 굴비가 자신을 “빤히 쳐다본다”는 상상으로 젓가락을 가늘게 떨기도 한다. 목욕탕에 가서는 손등과 손바닥 잔주름에서 자신의 인생사 기록을 세밀하게 들춰보기도 한다. 해안의 주상절리를 연필로, 바다를 푸른 종이로, 파도를 지우개로 비유하는 광대한 상상력은 독자의 눈을 시원하게 할 것이다. 역동적으로 포획한 대상에 자아를 일치시키는 김진기의 물아합일(物我合一)의 시학은 오랜 인생의 경험과 지혜가 빚은 연금술이다.
-공광규(시인)

서늘하구나, 차우차우여. 후덕하고 틀수한 태산준령의 용모가 이 말에 얼비쳤음을 부인할 수 없다. 김진기는 우리네 세사(世事)의 풍정을 거짓됨 없이 온후하고 분식(粉飾)없이 웅숭깊게 보아낸다. 그는 이 땅에 온 티베트의 사자개처럼 크게 꾸짖지 않고 오히려 다감하게 품어줄 줄 안다. 소나무 아래서 시집을 읽고 거기 떨어진 솔잎으로 책갈피를 삼듯 자연과 교유할 줄 안다. 삶과 죽음을 격절(隔絶)시키지 않고 우리네 일상에 갈마든 정서로 진밥과 고두밥을 깜냥껏 나누어 먹인다. 태산준령에 머물던 사자개의 눈빛이 해발 고도 영(zero)의 우리들 소소한 세상살이로 내려와 마음을 나누고 있다. 그러니 차우차우의 시는 우리네 세속을 노래함에도 숭엄(崇嚴)의 경지라 불러도 좋으리라.
-유종인(시인)

시인의 말

제1부
어린 굴비
빈손
추간판탈출증
나목들의 도시
복병이 산다
기러기 아빠
탄전지대
송장놀이
어르신은 힘이 세다
담석과 겨루다
그리운 철길
말벌의 잔치
농수로
겨울 나는 법
산 그림자 문 닫으러 온다

제2부
투명한 사리
차우차우
주상절리대(柱狀節理帶)
삼월에 내리는 눈
진흙 쿠키
소리의 뒷장
수탉이 우는 밤
강물엔 주름이 없다
스승을 모시고 집으로 오다
복사기 속 지하갱도
대나무 주걱
말레이꼬마
저 세상에도 방세는 있다
블랙데이
놋숟가락이 떴다

제3부
솔잎바늘
3분 행복
반 평 여인숙
고요한 굴뚝
실버들의 요가시간
아파트는 외롭다
안개 눈
잔치국수
정조의 앞뜰
그 남자의 심근경색
생밤
은행잎과 은행
익숙한 환경
유닛체어에서 눈을 감고

제4부
텃세
잠자는 안경
잡초 허리 꺾기
체외충격파쇄석기
화이트데이
가시엉겅퀴의 효능
새와 닭 사이에서
겨울 막차
판매전략
베란다에 덕장이 열려요
고두밥, 진밥
모녀빵집
추모공원
헌차와 신형 리모콘

해설
성찰(省察)과 위로(慰勞) - 선순환(善循環)의 시적 존재론
백인덕(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