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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 : 이승희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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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이승희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 : 2012년 10월 31일
  • 쪽수 : 108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54619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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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아직 살아 있는 내가 이미 죽은 내게 건네는 애도의 노래”
    -우울과 어둠을 견디게 하는 맨드라미의 붉은 힘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갔다. 계절은 언제 그랬냐는 듯싶게 무채색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여름 동안 숨 막히게 푸르던 잎들은 짧은 가을 동안 급히 옷을 갈아입고 비명처럼 색이 바래다가 힘없이 떨어진다. 그런 계절이다. 가을과 겨울 사이. 저녁 어스름 무렵. 어둠으로 들어가는 입구 같은 날들이다. 이런 스산한 계절에 지난 계절의 화려함을 간직한 듯한 붉은 자줏빛 시집이 찾아왔다. 계절의 변화에 아랑곳없이 거기, 여름날의 쨍한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한 채, 마치 [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 피어난 듯.

    2006년 첫 시집 [저녁을 굶은 달을 본 적이 있다] 이후 6년 만에 이승희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가 출간되었다. 첫 시집에서 시인은 가난한 시절에 대한 기억, 고단한 현실에 대한 응시 속에서 궁극적인 삶의 거소(居所)를 더듬어 찾아가는 여정을 섬세하고 투명한 목소리로 담아낸 바 있다. 화려한 파격이나 손쉬운 초월에 기대지 않고, 경험적 충실성과 서정적 회감(回感)의 원리로 단단하고 생기 넘치는 그의 작품들은 이후 이승희 시인의 시적 행보를 주목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부정적인 곡괭이보다 긍정적인 호미”(정호승 시인)를 사용하여 시를 짓는다는 평을 들은 바 있는 시인이지만, 이번 시집은 상실과 절망, 죽음의 이미지들이 도처에서 읽는 이의 발목을 잡아 깊은 우울 속으로 빠지게 한다.
    첫 시집에서부터 드러났던 시인의 식물적 교감은 이번 시집에 이르러 맨드라미로 피어난다. 맨드라미는 7,8월, 뜨거운 한여름에 개화하는 꽃이다. 그 여름은 시인에게 젊음과 생명의 느낌보다 상처와 상실의 계절이었던 듯하다. 시인은 죽음의 충동과 이미지들 사이에서 여름을 건넌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뜨거운 상처와 우울 속에서 붉게 피어난 꽃이 있었으니, 맨드라미이다. 암울했던 시인의 여름에, 붉게 핀 맨드라미는 그 존재 자체로 기대어 울고 싶은 의지처가 된다.

    맨드라미가 맨ㆍ드ㆍ라ㆍ미로 피는 동안
    죽은 발톱을 생각했다
    나는 언제부터 죽은 발톱으로 걸었나
    밥 먹다 말고 토해버린 생
    역겨운 냄새 속에서
    미처 소화되지 못한 이름처럼
    까맣게 살이 오른 죽음들
    발톱에 가득 모여 있다
    맨드라미가 까만 발톱을 만진다
    아빠 먼저 죽지 마
    연두는 꽃이 져도 연두란다
    먼저 죽지 마 혹은 목매달고 사이로
    정신없이 몇 번의 계절이 지나갔다
    여름은 너무 뜨거웠다고
    맨드라미 붉은 손목에서 난 오래 잠들고 싶다고
    (/ [여름] 중에서)

    붉은 맨드라미를 안고 울었던가 그 여름
    세상 어떤 아름다운 문장도
    살고 싶지 않다로만 읽히던 때
    그래 있었지
    오전과 오후의 거리란 게
    딱 이승과 저승의 거리와 같다고
    중얼중얼
    폐인처럼
    저녁이 오기도 전에
    그날도 오후 두 시는 딱 죽기 좋은 시간이었고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 울어보았다
    (/ [그리운 맨드라미를 위하여] 중에서)

    “세상 어떤 아름다운 문장도/ 살고 싶지 않다로만 읽히던” “너무 뜨거웠”던 그 여름은 이미 시인에게 푸른 것을 찾을 수 없는 계절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찾아온 이 계절, 어둡고 스산하고 쓸쓸한 겨울 초입의 느낌으로 시인은 그 여름을 지나왔는지 모른다. 이러한 계절을 비집고 붉은 꽃을 피웠으니, 마치 요즈음 길가에서 붉은 맨드라미를 만난 것만큼이나 시인에겐 자신 앞에 나타난 맨드라미가 거짓말 같았을 것이다. 그래서 닭 볏처럼 길게 늘어진 꽃 모양이 꼭 잡아 놓치고 싶지 않은 손목으로 시인에게 닿았으리라. 온통 늙거나 시들고 죽음을 향해 가고만 있는 것들 사이에서 붉은 생명력을 보여주는 맨드라미는 아이(딸)의 이미지와 겹치곤 한다. 맨드라미와 아이, 그리고 시가 있기에 시인은 여름의 우울을 건널 수 있었다.

    사는 게 그런 게 아니라고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 밤. 난 내 우울을 펼쳐놓고 놀고 있다. 아주 나쁘지만 오직 나쁜 것만은 세상에 없다고 편지를 쓴다.
    (/ [여름의 우울] 중에서)

    꽃이 지는 소리처럼 네 무릎가를 적시는 장물의 아침처럼 그렇게 열 손가락 끝이 빨갛게 울어버린 밤이 지나면, 네 몸에서 핀 꽃을 보게 될 거야. 그리고 네 손톱에 자라는 흰 달이 다시 널 마중 나올 때까지 행복할 거야. 그 흰 달이 기억하는 꽃의 이름, 상처가 아물면 꽃이 핀다는 걸 알게 될 거야.
    (/ [봉숭아 물들다-솔에게 2] 중에서)

    “우울을 펼쳐놓고” 편지를 쓰며 노는 것은 시인에게 시를 짓는 일일 터. 그것이 우울을 견디는 시인의 방식이고, “아주 나쁘지만 오직 나쁜 것만은 세상에 없다”는 것이 시인이 하고자 하는 말일 것이다. “상처가 아물면 꽃이 핀다는 걸” 알기에 이제 시인도 맨드라미, 그 붉은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아직 내 몸에 남아 있는 상처와 죽음에 애도를 표하는 일은 피할 수 없다. 그처럼 “아직 살아 있는 내가 이미 죽은 내게 건네는 애도의 노래”는 다시금 그 상처와 아픔 속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우울하고 쓸쓸할 수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우울과 쓸쓸함이 빛나는 이유는 “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 내 앞에 피어 있다는 “지금도 어디선가 제 키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이승희의 이번 시집은 뼛속까지 쓸쓸하다. 쓸쓸함은 낡아서 쓸모없어지거나 버려진 존재로부터 비어져 나오는 것이기도 하고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려 바닥난 존재의 상실감에서 스며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그의 이번 시집을 읽는 내내 쓸쓸한 바람이 불고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따뜻한 불빛과 붉은 꽃들에 대해 노래할 때조차도 어디선가 쓸쓸하고 우울한 바람이 불어왔다. 이승희의 두 번째 시집을 읽는 일은 그렇게 우리가 언젠지도 모르게 잃어버린 시간들과 쓸쓸히 대면하게 한다. 그것은 마치 거울을 보다 문득 마주하게 된 눈가의 주름이나 기미처럼, 책갈피에서 우연히 발견한 번진 글씨 자국처럼 낯설고 우울하고 쓸쓸하다. 깊은 상실감과 우울감에 빠져들게 한다는 점에서 이승희의 이번 시집은 아직 살아 있는 내가 이미 죽은 내게 건네는 애도의 노래로 읽을 수 있다. 그의 시에서 삶과 죽음은 그렇게 손을 잡고 하나가 된다.
    (/ 해설 [아름다운 상실의 노래] 중에서)

    목차

    시인의 말

    1부
    맨드라미는 지금도
    제목을 입력하세요
    늙은 토마토는 고요하기도 하지
    봄비는 그렇게 내린다
    그리운 귀신
    다시 봄비는 내리고
    그림자들
    110-33
    버려진 가방 같은
    부치지 못한 편지
    화분
    내 삶의 전부이신 막막함이여.
    그날
    연신내 약국 앞 포장마차에는
    아무도 듣지 않고 보지 않아도 혼자 말하고 빛을 뿜어내는 텔레비전 한 대가 있는 헌책방

    2부
    봉숭아 물들다
    어느 여름날
    여름의 우울
    동물원에 태양이 지루하게 떠 있는 동안
    여름의 대화
    호텔 캘리포니아 혹은 늙은 선풍기의 노래
    여름이 나에게 시킨 일
    살 속은 적막하다
    맨드라미 피는 까닭은 맨드라미 정원
    맨드라미 손목을 잡고
    나는 당신의 허기를 지극히 사랑하였다
    핏물
    붉다
    빈방 있음

    3부
    안녕
    그리운 맨드라미를 위하여
    가족사진
    여름
    나는 뭉쳐지지 않는 구름
    시절, 불빛
    갈현동 470-1 골목
    갈현동 470-1번지 세인주택 앞
    불빛에 쓴다
    저녁 불빛을 따라 걷다
    코뮌
    빗방울에 대고 할 말이 없습니다
    발바닥에 관하여, 내가 모르고 있는
    밤의 고양이 몰리의 퀼트

    4부
    막막함이 물밀듯이
    쫌 쫌 쫌
    마음 비워진 집이 담벼락에 기대어 울고 있습니
    마음을 만드는 게 아니었음을
    상처라는 말
    절벽 가는 길
    꽃이 지거나 지지 않거나
    오, 행복하여라
    비를 맞는 저녁
    하루살이
    다시 비를 맞는 저녁
    지겨워...살고 싶다는 말은
    라디오 소리는 흘러 어디로 가나
    내 마음의 수몰지구
    낮술

    해설/아름다운 상실의 노래(이경수, 문학평론가)

    본문중에서

    밥 먹이고
    옷 입히고
    반짝이는 머리핀 두 개쯤 꽂아주고
    붉은 네 손목을 잡고 아주 오래도록 걷고 싶었다
    .
    폐허 속으로
    들어온
    천진난만
    나는 줄 게 아무것도 없어서

    즐겁게
    노는 동안
    폐허로 살아낼 수 있었던 것
    .
    정직하게 울었고
    맨드라미가 피었다.
    그랬단다, 아가야
    솔아

    2012년 가을
    이승희
    (/ '시인의 말' 중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1965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으며, 1997년에 [시와사람]으로, 1999년에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저녁을 굶은 달을 본 적이 있다]가 있으며, 동시집 [달에게 편지를 써볼까](공저)와 동화집 몇 권을 펴냈다. ‘서쪽’ 동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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