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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Q 210 김웅용 : 평범한 삶의 행복을 꿈꾸는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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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21세기 위대한 지성(Great Mind of the 21st Century)],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10인]에 선정!
    IQ 210! “2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의
    평범하지 않은 삶의 이야기와 평범한 행복을 위한 꿈꾸기

    1. 평범한 행복을 꿈꾸는 천재 이야기


    45년 전 일본의 후지TV는 1967년 12월 2일 “2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고 불렸던 한국의 4살짜리 꼬마 김웅용의 놀라운 재능을 보여줌으로써 수많은 일본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그리고 국내외 언론으로부터 ‘인류의 보물’, ‘세 살짜리 피타고라스’ 등으로 불리며 8세 때는 미국 NASA의 선임 연구원으로 일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어느 순간 ‘실패한 천재’라는 낙인을 받고 김웅용은 세인의 기억에서 멀어졌다.
    그러나 2006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인명사전 [ABI(American Biographical Institute)]에 [21세기 위대한 지성(Great Mind of the 21st Century)]으로 선정된 김웅용은 2012년에는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마이크로소프트(MS)의 공동창업자 폴 앨런 등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10인]에 선정되어 또다시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IQ 210 김웅용――평범한 삶의 행복을 꿈꾸는 천재]는 우리가 ‘IQ 210 천재’라 부르는 김웅용이 겪은 평범하지 않은 삶의 이야기와 평범한 행복을 위한 그의 꿈을 담고 있다. 45년 전 당시 후지TV에서 근무하던 저자 오오하시 요시테루는 수십 년에 걸친 집념의 추적 끝에 우리 기억에서 사라진 천재와 그 동안 그가 겪었던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2. ‘세 살짜리 피타고라스’, 꼬마 김웅용의 어린 시절

    물리학 교수인 아버지와 의학교수인 어머니――두 사람은 생일(1934년 5월 23일)이 같을 뿐 아니라 혈액형(A형)도 같다――그 사이에서 태어난 김웅용은 출생시 몸무게가 2.7킬로그램으로 평균보다 약간 작게 태어났지만, 신체 성장이 빨라 100일에 19개의 이가 났고, 생후 3개월 즈음에 엄마, 아빠라고 말했고 8개월 때는 장기를 배웠다고 한다.
    만 1살 때는 한자를 읽고, 2살 때 받은 지능검사에서 IQ 200이라는 놀라운 수치가 나왔고 1969년 6월 12일에 미국 전문가의 테스트를 통해 IQ 210이라는 판정을 받아 이것이 영국에 본부를 둔 기네스 사무국에 전해진다.
    그 후 국내외 언론으로부터 ‘인류의 보물’, ‘세 살짜리 피타고라스’ 등으로 불리며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던 김웅용은 만 3세에 미적분을 풀었다. 3세 때는 그간 쓴 글과 그림을 모아 [별한테 물어 봐라]라는 책을 출판했다.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별한테 물어 봐라]는 베스트셀러였다. 당시 광고에는 이런 말이 덧붙여져 있다. “3世 天才가 불러일으킨 이 絶讚! 人氣!” 광고를 낼 당시에만 46판을 찍고 있었던 그 책은 10만 부가 팔렸으며, 세계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별한테 물어 봐라]는 영어와 독일어로 쓰인 글과 직접 그린 그림, 일기, 동시, 작문, 편지, 그리고 양친의 육아비화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동시 부분에는 다음과 같은 동시가 실려 있다.

    “크리스마스는 X자 교회 안은 十자, 크리스마스 날은 X자를 쓰고 사람들은 목에 十자를 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十(더하기) 하지 말고 X(곱하기) 해야 한다. 그러면 이 세상에 광명이 올 것이다”
    “지금은 우리나라는 분수 셈한다. 지금은 우리나라는 소수 셈한다. 그러나 분수와 소수는 합해서 한 개의 자연수가 됩니다. 남북통일 만세”

    4세 때 한양대 과학교육과에 청강생으로 입학한 김웅용은 5세 때는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일본어 등 4개 국어를 구사했다. 4세 때는 일본 후지TV에 출연해 도쿄공업대학의 야노 켄타로 교수가 내는 적분 문제를 단숨에 풀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2명의 도쿄대 학생이 김웅용과 함께 문제에 도전했으나 김웅용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한국의 김웅용의 천재성이 TV를 통해 일본 전역에까지 알려진 순간이었다. 일본에서는 이후 김웅용의 책 [별한테 물어 봐라]를 번역 출간한 것은 물론, [4세의 대학생]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8세 때인 1970년에는 그의 천재성을 파악한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초청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콜로라도 주립대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수료한 후 1974년부터 NASA 선임 연구원으로 일했다.

    3. “웅용은 천재 소년에서 평범한 소년이 되었다”

    만 1살 때 한자를 읽고 4세라는 어린 나이에 적분 문제를 푸는 등 천재성을 보였으나 사춘기를 지나 대입 체력 검사에 나타난 김웅용에 대해 한국의 매스컴은 일제히 대입 검정시험에서 하위로 겨우 합격했다는 뉴스와 함께 “김웅용은 천재 소년에서 평범한 소년이 되었다”고 보도한다.
    촉망받는 신동으로 평가받으며 승승장구하던 김웅용은 미국에서 1978년 돌연 귀국하였고, 1979년 대입 체력장이 있던 날 충격적인 모습으로 다시 등장했다. 서울 시내의 영훈고등학교에서 실시된 체력검사장에 김웅용이 나타났던 것이다. 어머니 유명현과 함께 수험장에 나타난 김웅용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10년 만이었다.
    신장 165센티미터. 체중 55킬로그램. 스포츠형 머리에 상하 흰 체육복 차림이었다. 왼쪽 가슴에는 사진이 붙은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얼굴은 창백하고 핼쑥한 모습이었다. 체력검사는 100미터 달리기, 턱걸이, 공 던지기 등 5과목이었다. 김웅용의 100미터 달리기 기록은 15초 8. 공 던지기는 45미터. 턱걸이는 겨우 2회. 그 결과 김웅용은 100점 만점에 31점을 받았다. 김웅용은 1977년도에 고등학교 자격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그 2년 뒤에 대학입학 검정시험에도 응시한 것이다.
    김웅용의 평균점은 65점이었고, 그 결과 합격자 2,763명 중 2,420등이었다. 하위로 겨우 합격한 것이다. 이에 대해 그의 아버지는 동아일보의 기자에게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아들은 시험 준비를 전혀 하지 않은 상태에서 검정고시를 보았다. 백지 상태에서 자신의 실력을 시험해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일부러 그애가 자신 있는 과목인 수학과 물리를 빼고 상업과 지학을 선택한 것이다.”
    체력장 당시의 왜소한 체격에 당황한 듯한 표정의 사진 한 장과 함께 국내의 매스컴은 일제히 대입 검정시험에서 하위로 겨우 합격한 김웅용의 기사를 내보냈다. 그 중심 내용은 “김웅용은 천재에서 평범한 소년이 되었다”였다. 그와 동시에 ‘집안에 가둬놓고 키워졌다’, ‘바보?정신병자가 됐다’ 등의 악성 소문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일이 대응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온갖 낭설에 그는 차라리 침묵을 택했고, 그 이후 그에게는 ‘실패한 천재’ 라는 오명이 뒤집어씌워졌다. 그리고 그는 세상에서 잊혀졌다.

    4. 평범한 길 위에 선 천재의 행복

    김웅용은 1970년 8세 때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초청으로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학에 갔다. 그 후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 학위 과정을 수료하고 1975년부터 NASA의 전임 연구원으로 일했다고 한다.
    그러나 1978년에 갑자기 귀국했다. 그는 귀국 이유에 대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또래도 친구도 없이 NASA가 주는 과제를 수행하는 쳇바퀴 같은 생활에 질려 돌아왔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국립 충북대학교에 입학하여 물리학의 세계에서 토목공학의 세계로 이동했다. 그리고 박사학위 취득 후에는 모교와 연세대학교의 강사로 교단에 섰다. 또한 카이스트 강사 겸 국토환경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리학 분야의 논문을 발표했다.
    “김웅용 씨는 국토환경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연세대와 충북대 등에서 강의를 하는 등 바쁜 일상 속에서도 국내외의 학술지에 수리분야 등의 논문을 90여 편 게재, 그 결과 세계적인 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렸다.”는 신문기사와 함께 그는 다시 세인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2006년 김웅용은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인명사전인 [ABI(American Biographical Institute)]에 [21세기 위대한 지성(Great Mind of the 21st Century)]으로 선정된 것을 비롯, 국제인명센터(IBC) 선정 [토목?환경공학분야 올해의 국제교육자], 국제인명센터(IBC) 선정 [21세기 우수 과학자 2000]에 뽑힌 것이다. 또한 2012년 8월에는 슈퍼스칼러(SuperScholar)에서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마이크로소프트(MS)의 공동창업자 폴 앨런 등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10인]에 선정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김웅용은 “너는 천재이기 때문에 평범한 행복을 바라서는 안 된다. 안됐지만 어쩔 수 없다. 천재는 천재의 길을 가야만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그러나 지금의 김웅용은 그것과는 전혀 다른 인생항로를 자신의 의지로 개척하여 걷고 있다.
    김웅용은 아인슈타인 같은 물리학자는 되지 않았지만, 긴 숙성의 시간을 거쳐 [21세기 위대한 지성]이 되었고, 사랑스런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행복한 가정을 얻었다.
    ‘IQ 210’은 그에게 자랑스러운 훈장이 아니었다. 일찍이 국내 언론들은 그에게 ‘실패한 천재’라는 딱지를 붙여놓았다. 하지만 ‘60년대 신동’에 대한 언론의 추적과 일방적인 기사를 뒤로하고, 성인이 된 김웅용은 자신이 갖고 있었던 ‘어떤 능력’은 닫아 놓은 채 전혀 다른 삶의 길 위에 선 것이다.
    현재의 그는 자신의 목표는 “현재의 삶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 삶을 ‘쟁취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또한 말한다. 그러면서 “흔히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많이 치우칠수록 ‘성공’이라고 생각하는데 ‘안 치우치고 그대로 사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평범함이죠. 그 평범함 속에는 건강도 있고 가족의 평안함, 주변 친구들이나 이웃들에 대한 친밀한 관계도 있습니다. 그게 계속 유지되어야 내가 평범하게 살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

    5. 김웅용이 말하는 ‘IQ 천재’ 그 이후의 삶

    2012년 8월 말,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슈퍼스칼러(SuperScholar)’는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10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김웅용 씨의 이름이 스티븐 호킹 등과 함께 거론되면서 ‘김웅용이 누구냐’라는 화제가 떠올랐다. 그리고 9월 7일, MBC 스페셜이 그의 이야기를 [IQ 210 천재 김웅용]이라는 제목으로 다루면서 다시 김웅용이라는 이름이 주요 포털 인기 검색어 상위에 떠올랐다.
    올해 봄, 그의 책 준비를 위해 두 차례 이루어진 김웅용 씨와의 인터뷰를 이 책에 부록으로 수록하여 현재 그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인터뷰는 2012년 3월 31일, 김웅용 씨가 근무하는 충북개발공사 사무실에서 진행되었다. 아래는 그 요약이다.

    어릴 적에 후지TV에 출연해서 미분 적분을 푸신 거나, 이전에 아버님께서 핵물리학 전공을 시키겠다, 그런 말씀을 언론 인터뷰에서 하셨던 것이 떠오르는데……. 스스로 경험하신 것에 비추어봤을 때 그건 본인이 원한 게 아니라는 건가요.
    “반은 그렇고 반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드네요. 나사(NASA) 연구소에 계속 있었으면 논문쓰기가 훨씬 편해졌을 겁니다. 논문이라는 것도 학계에 발표할 때는 임팩트 팩터(Impact factor)라는 것을 줘요. 임팩트 팩터가 뭐냐하면 얼마만큼 가중치를 두느냐 하는 건데요. 가점지수, 인용지수라는 것이 있어요. 내가 쓴 논문을 다른 사람들이 많이 인용한다면 그만큼 노벨상에 가까워지는 거죠. 나사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나오는 논문은 임팩트 팩터가 크기 때문에, 우리나라 웬만한 데는 다 갔을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대학교수를 하고 싶다면, 나사에서 한 편만 내면 큰 도움이 되었겠지요.”

    후회되지 않으세요? 돌아오신 게.
    “처음에는, 딱 막혔을 때 후회했었습니다. 어떻게 먹고 사나. 그런데 후회보다도 거기 있었던 시간이 더 힘들었어요. 처음에는 다른 사람이 왜 그걸 부러워하지 하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부러워할 수도 있겠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당시로 다시 돌아가서 또 갈 거니 하면 안 갑니다. 군대와 같아요. 남자라면 군대는 한 번 다녀와야 할 곳이라고 생각하지만, 지금도 ‘그 당시로 돌아가 볼래?’라고 묻는다면 두 번 다시 가기 싫다, 그런 느낌입니다.”

    평범한 사람이 생각하는 것은 이거예요. 3~4살 때 미분 적분을 풀었다면 열 살, 열한 살, 스무 살이 되면 얼마나 더 높은 성취를 하겠나, 그런 생각을 했을 텐데. 그런 질문을 많이 듣지 않았나요.
    “많이 들었죠. 이전에 저는 동물원의 원숭이였어요. 그리고 지금도 계속 원숭이로 만들려고 하고. 그것은 어쩔 수 없어요.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일이니.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원숭이가 아니었어요.”

    대학을 가지 않겠다는 생각은 해보신 적 있습니까?
    “안 갈 수가 없었어요. 안 가면 살아갈 수가 없었죠. 직장을 잡을 수 없는데, 이야기에서 벗어나는 것 같지만 대학 졸업장이 없으면 어디도 못 가요. 오래 전 이야기이지만…… 예전에는 육군사관학교 근처 농촌경제연구원 뒤에 카이스트라고 있었어요. 거기 취직하려고 갔었지요. 연구를 하면서도 돈은 벌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너는 이러 이러한 자격증, 그런 자격증이 없어서 안 된다는 거예요.”

    그게 언제쯤입니까?
    “1977년쯤입니다. 미국에서 오자마자 여기 있어야겠다, 취업하겠다고 들어갔더니 그런 이야기를 들은 거예요. 그때만 하더라도 큰 연구소도 없고 하여 찾아갔더니 그렇게 이야기를 하더군요. 대학 졸업장이 있어야 한다기에 초?중?고 검정고시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대학에 가서 4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거예요. 4년의 시간을 단축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것은 구조상 될 수가 없었어요. 160학점인가를 따야 했습니다. 한 학기라는 기간이 있고, 정해진 시간에 학과 수업을 이수해야 학점을 딸 수 있어요. 1주일에 세 시간 이상 수강을 해야 6개월 이후에 3학점을 받습니다. 160학점은 4년이라는 시간이 있어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중간에 문제 터지고 기사 터지고, 대학에 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지고…….”
    김웅용 씨가 말하는 ‘문제의 기사’는 1979년 대학 입학 체력시험장에 기자들이 나타나 취재한 사건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당시 언론들은 해외에 나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그가 왜 국내에 들어와 대학시험을 봤는지, 그리고 고입 검정고시 성적이 왜 낮았는지에 대해 집중 보도했다. ‘실패한 천재’ 이야기는 이때 만들어졌다.

    취업이 어려워지는 이유는 뭘까요?
    “일자리는 적은데 취업을 원하는 인구가 많기 때문이라는 식의 모범답안 말고 제가 주목하는 것은 경쟁이 문제입니다. 유치원서부터 경쟁을 하게 하니, 그렇게 되는 겁니다. 경쟁이라는 것이 먼 데를, 큰 데를 보고 하게 해야 하는데, 바로 눈앞의 것과 경쟁을 시키는 거예요. 그러면 협력은 할 수 없게 되지요. 내가 이 사람과 함께 잘해서 한 단계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옆 사람을 밟고 올라가야 한다는 사고가 만연해져 있다는 거죠.”

    많은 사람들이 ‘김웅용 스토리’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남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끝’을 보았다는 것이지요. 그 ‘끝’의 공허함을 겪고 내려와서 삶의 의미를 새롭게 바라본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많은 아이들이 이유도 모르면서 끝없는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부모 마음이라는 게, 남들이 혹은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더 해주고 싶어 애들에게 조금 더 좋은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어 하지요, 그러면 애한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건 맞아요. 그렇게 해주면 좋죠.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건 부모의 욕심이에요. 마음은 이해합니다. 내가 못 해보는 것을 자식에게 시켜주겠다, 자식에게 최상의 조건을 만들어주겠다는 그 마음은 어느 부모나 다 갖고 있겠죠. 그런데 문제는 과연 이게 최상인지를 생각하지 않는 거예요. 돈이 비싸면 최고로 알죠. 가장 거품이 많이 끼어 있는 것이 교육, 특히 영재교육이에요. 부모에게 물어보면 ‘경쟁률이 굉장히 치열하다’고 답합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들어가면, 그 아이들이 나중에 무엇을 할 거라는 막연한 느낌뿐이라는 겁니다. 영재 개념도 문제인데, 수학, 과학밖에 없어요. 음악에 대한 뛰어난 감성을 키우려면 뉴욕 필하모니 같은 데도 가 봐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비용은 낭비라고 생각하고, 엉뚱한 데 투자를 하다 보니 가뜩이나 모자란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게 되지요. 게다가 시간으로 때우려고 하니 문제가 생깁니다. 전혀 영재교육이라고 할 수 없어요.”
    “……영재교육의 90%는 시간 낭비입니다. 그 필요성을 증명할 수가 없어요. 이론이나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물론 제가 깊숙이는 모릅니다만 경험과 직관만으로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반드시 꼭대기에 올라서야 성공이라는 생각 자체가 틀린 거예요.”

    언제부턴가 ‘성공하세요’라는 말을 덕담으로 많이 씁니다. 그러니까 김 선생님이 생각하는 진짜 성공이라는 건 사회에서 이야기되는 것과 조금 다른 것이라고 이해하면 되겠죠?
    “예. 분명히 10년이나 20년 전쯤에는 현 시점의 성공에 해당하는 사람이 아닌데도, 정말 존경받는, 그래서 나도 이 사람처럼 되고 싶다, 그런 사람이 사회 곳곳에 있었던 것 같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아요. 아무튼 그때는 성공에 대한 판단기준이 달랐다고 저는 보거든요. 지금은 점점 더 얼마나 유명해졌나, 돈을 얼마나 많이 벌었냐를 기준으로 옮겨가는 것 같아요.”

    결국 성공의 기준이 돈으로 바뀌었다는 거군요.
    “명예가 부 아래로 들어간 겁니다. 영재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을 보면 특히 수학을 잘하는 학생들이 보입니다. 한데 그 부모는 아이가 수학을 잘해서 사회에 공헌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좋은 대학교에 가서 돈을 많이 벌라는 거예요. 부모님들이 저를 만나서 하는 말이 그런 요령을 가르쳐주기를 원한다는 겁니다.”

    김웅용 선생님의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구체적인 목표가 뚜렷하게 정해진 것은 없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이 삶이 계속 유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내 목표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당연한 것을 왜 목표로 삼느냐’고 말을 합니다. 제 말은 그 당연한 것이 어려운 일이고, 평범이라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거지요. 평범한 삶을 산다는 게.”

    그게 정말 어려운 일인가요?
    “어렵죠. 그것은 쟁취해 나가야 합니다. 한쪽으로 치우칠수록 성공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치우치지 않고 사는 것이죠. 그게 평범함입니다. 평범함 속에는 건강도 있고 가족들의 평안함도 있어요. 또 주변 친구들, 이웃들에 대한 사랑도 있습니다. 잘 지내는 거예요. 안 싸우고. 그런 게 계속 유지되어야 내가 평범하게 있을 수 있는 거예요. 또 빚도 져서는 안 되고. 빚을 졌더라도 조금 지나면 갚을 수 있도록 예견이 되어야 합니다. 돈을 좇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됩니다.”

    인터뷰 말미에 김웅용은 평범한 삶의 행복에 대해 다음처럼 들려주었다.
    “부인은 남편한테, 남편은 부인한테 서로 기대고 사는 것이죠. 두 사람 다 건강해야 평범해지는 거죠. 아프면 계속 근심을 갖고 있을 것 아니에요. 건강도 챙겨야 합니다. 저는 지금 당뇨가 있어서, 아주 건강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저 스스로는 괜찮아요. 하지만 아내 입장에서는 불안할 겁니다. 담배 피우는 것도 그렇고, 퇴근하면 다른 약속 없이 집에 와서 앉아 있으면 좋아할 것 같은데, 과연 그렇게 되면 행복해지는 것인지, 또 그건 아닌 것 같거든요.(웃음)”
    “중요한 것은 불행이 찾아오지 않도록 순간순간의 행복을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나에게 ‘지금은 어떻게 지내세요’라고 묻는다면, 웃으며 ‘행복합니다’라고 대답할 겁니다. 더 이상은 없어요. 뭐가 있겠어요.”

    목차

    한국어판 서문
    프롤로그

    제1장 2011년 봄, 기내에서

    천재를 만나러 가다
    4살짜리 꼬마, 도쿄대생을 이기다
    인류 역사상의 천재들
    김웅용의 부모를 설득한 ‘엄마와 아이의 후지TV’
    한자를 읽는 1살짜리 꼬마
    김웅용이 태어난 시대
    3살 때 출판한 [별한테 물어 봐라]
    역대 천재의 IQ 순위와 뇌의 무게
    천재가 되는 방법?
    일본에서의 마지막 TV 출연

    제2장 1983년 가을, 김웅용 21세

    [기네스 북]에서 김웅용의 이름이 사라졌다
    김웅용을 찾는 여행, 제1탄
    “아들 얘기는 지금 하고 싶지 않다”
    김웅용이 다시 한 번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이유
    조기 교육의 공적과 허상
    천재 교육―내 주변 사람들의 예
    천재의 길을 걷게 하겠다
    “거짓말도 한 방편”
    천재의 기구한 운명
    오오노 프로듀서 덕분에
    “지금은 조용히 지켜봐 주세요”
    “그렇습니까? 그가 평범한 사람이 됐습니까?”

    제3장 2011년 봄, 김웅용 48세

    김웅용, 다시 한 번
    한국의 교육―입시 학원·대학 진학률 1위
    세월 속에 묻힌 단서
    아버지에 대한 반발?
    일본대지진과 ‘21세기의 위대한 지성’

    제4장 2011년 봄, 한국

    미시마 유키오와 김웅용
    여전히 가로막고 있는 부모라는 장벽
    이것이 한국의 영재교육
    만날 수 있다, 만날 수 없다, 만날 수 있다
    김웅용의 직장에 도착
    제5장 드디어 찾았다!

    김웅용은 “안에 있습니다”
    그 사진이 궁지에서 구출해 주었다!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 된 김웅용
    김웅용과 위너
    평범한 행복을 발견한 천재
    남겨진 중요한 임무

    제6장 2011년 봄, 일본

    오오노 프로듀서의 부재 이유
    또 하나의 재회
    여행의 마지막

    에필로그
    맺는말

    부록 2012년 봄, 한국

    김웅용이 말하는 ‘IQ 천재’ 그 이후의 삶 | 정용인

    저자소개

    오오하시 요시테루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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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매수 0권

    저 [IQ 210 김웅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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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어일문학을 전공하고, 일본 문학을 더 깊이 연구하고자 일본으로 건너가 분쿄대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한 뒤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무의식을 지배하는 말』, 『매일매일 긍정하라』, 『머니 스위치』, 『누구나 끝이 있습니다』, 『깔보는 사람의 심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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