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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정치사상의 토대 2 : 종교개혁의 시대[양장]

원제 : Foundations of Modern Political Thought 2: The Age of Reform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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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새로운 시대를 여는 근대사상의 물결, 그 격동하는 역사를 추적하는
    [근대 정치사상의 토대 2]

    종교개혁기 유럽의 종교와 정치에 나타난 사상의 파노라마!
    근대를 향한 논쟁과 투쟁의 역사를 조망하다.


    중세 후기와 근대 초기 정치사상이 어떻게 변용되고 연관되었는지 그 과정과 맥락을 해설한 책. 에라스무스와 모어, 멜란히톤, 루터, 칼뱅, 츠빙글리, 카스텔리오, 몽테뉴, 보댕 등을 비롯한 종교개혁기와 절대주의 시대의 주요 문헌들을 정리했다. 또한 이들 문헌들이 신/구 기독교 사이의 종교전쟁과 어떻게 연관되면서 절대주의를 싹틔우고 국가라는 근대적 개념을 형성했는지 그 과정을 짚었다.

    스키너는 방법론적으로 존 오스틴의 언어의미론을 원용하여 고전적 텍스트를 당대의 정치사회적 맥락과 저자 자신의 관심이 지향하는 방향에 초점을 맞추어 해석해야 한다는 맥락주의를 주창하고 있다.

    스키너가 보는 서양 근대 정치사상의 특징은 자유, 세속화, 국가 이성, 주권 등의 요소를 포함한다. 자유의 이념은 근대 이전에도 작동하고 있었으며, 정의나 공익의 실현과 같이 추상적인 원칙을 존재 근거로 삼는 국가 개념은 근대의 개막과 더불어 출현하였다. 자유의 이념이 국가 이성이라는 발상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또는 신에 대한 순종이라는 개념이 어떤 맥락과 경로를 거쳐 수동적 복종, 수동적 저항, 혁명적 저항 등 서로 판이한 발상으로 변용되는지 등, 스키너는 이것들의 연관성에 초점을 맞춰서 근대 정치사상의 특징을 바라보고 있다.

    스키너의 [근대 정치사상의 토대]는 서양 근대 정치사상이 무엇인지, 그것이 태어나는 과정에서 어떤 논쟁과 투쟁이 있었는지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종교개혁기 유럽의 종교와 정치 사이에서 나타난 다양한 상념, 그 중에 어떤 것이 현실 속의 질서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한국의 정치에서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 단체의 영향력이 전면으로 부각되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종교개혁기 유럽의 정치사상을 이해하는 것은 현재 한국의 종교와 정치의 관계를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목차

    일러두기
    역자 해제: 스키너의 시야에 잡힌 서양 근대 정치사상

    제1부 절대주의와 루터의 종교개혁

    01 루터주의의 원리
    제1절 신학적 전제
    제2절 정치적 함축

    02 루터주의의 선구자들
    제1절 인간의 결함
    제2절 교회의 결함
    제3절 교회의 권력: 신학적 논쟁
    제4절 교회의 권력: 평신도의 반란

    03 루터주의의 확산
    제1절 초기의 선전가들
    제2절 급진파의 이탈
    제3절 세속 권위의 역할
    제4절 종교개혁의 강제

    제2부 헌정주의와 대응종교개혁

    04 헌정주의의 배경
    제1절 공의회주의의 전통
    제2절 법률적 전통

    05 토머스주의의 부활
    제1절 토머스주의자들과 그 적들
    제2절 교회에 관한 이론
    제3절 정치사회에 관한 이론
    제4절 이단자들에게 대한 응수

    06 헌정주의의 한계
    제1절 발본적인 시각
    제2절 절대주의적 시각

    제3부 칼뱅주의와 혁명의 이론

    07 저항의 의무
    제1절 루터주의 급진파의 발전
    제2절 칼뱅주의에 대한 루터주의의 영향
    제3절 칼뱅주의 급진파의 발전

    08 위그노 혁명의 맥락
    제1절 관용의 전망
    제2절 절대주의의 대두
    제3절 헌정주의의 재기
    제4절 몽테뉴와 스토아주의
    제5절 보댕과 절대주의

    09 저항의 권리
    제1절 민중혁명 거부론
    제2절 실정법에 대한 호소
    제3절 자연법에 대한 호소
    제4절 민중혁명 옹호론

    결론
    더 읽을거리

    퀜틴 스키너 연보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찾아보기

    본문중에서

    옮긴이의 말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으로 스키너의 ??근대 정치사상의 토대?? 1권(르네상스)을 번역해서 한길사를 통해 출판한 것이 2004년이었다. 이제 다시 같은 재단의 지원으로 이 책 2권을 출판하게 되니, 묵은 짐을 덜어놓는 듯한 기분이다.

    처음 1권의 번역을 시작한 지 12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완역본을 내게 되었지만, 아직도 부족한 대목들이 많이 눈에 띈다. 가장 큰 문제는 문장의 구성이다. 일반적으로 모든 번역 작업에서는 불가피하게 한국어에서 종전에 용례가 없는 형태의 구문들을 만들어내야 한다. 특히 이 책처럼 시대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우리와 다른 환경에서 출현한 사상의 영역을 다루는 경우에는, 논의되는 개념들도 대중에게는 익숙하지 않는 것이 많고, 더구나 그러한 개념들을 서로 연결하는 방식 또한 한국적 사유에서는 생경한 것이 많다. 한국어의 기존 용례에서 나타나지 않았던 개념과 발상을 독자들이 너무 큰 부담을 지지 않고도 이해할 수 있는 한국어로 옮기는 것이 번역자의 임무일진대, 이 임무를 만족스럽게 수행했다고 자처하기에는 부끄러운 상태에서 책을 내게 되었다. 외국어 문헌의 번역에 대해 사회적 관심이 좀 더 일어나 더 많은 시간과 지성과 열의와 인력이 투자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 책에서 스키너는 유럽의 종교개혁기에 정치생활과 사회조직에 관해서 어떤 발상들이 태어났고, 그것들 사이에 어떤 논쟁이 벌어졌는지를 살펴본다. 이러한 내용들이 유럽에서 근대국가의 형성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저자가 근대국가와 중세국가의 차이를 드러내는 데 성공했는지에 관한 논쟁은 '해제'에서도 언급했듯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이론적인 차원의 논쟁과는 별도로, 종교개혁기 유럽에서 종교와 정치 사이의 관계에 관해 얼마나 다양한 상념들이 대두되었고, 그 중에 어떤 것들이 현실 속의 질서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는 실마리로서 이 책이 커다란 공헌이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특히 한국의 정치에서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 단체의 영향력이 전면으로 부각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종교개혁기 유럽의 정치사상에 관한 이해는 현재 한국의 종교와 정치에 대해서도 깊은 함의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번역 작업을 지원해준 학술진흥재단, 연구년을 허락해준 전북대학교 및 정치외교학과의 교수진, 초역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준 뉴질랜드 와이카토 대학교에 감사를 드린다. 원고를 읽고 교정해 준 모티브북의 양미자 대표, 그리고 나머지 자질구레한 사항들을 깔끔하게 정리해서 책을 출판해 준 한국문화사의 관계자 여러분들께도 감사를 드린다. 이 외에도 수많은 개인들과 단체들로부터 유형무형의 도움을 받았다.

    2012년 7월
    건지산록에서
    박동천

    (/ '옮긴이의 말' 중에서)

    스키너의 시야에 잡힌 서양 근대 정치사상

    제1절 서론

    퀜틴 스키너의 <근대 정치사상의 토대>(Foundations of Modern Political Thought,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8)는 르네상스를 다룬 제1권과 종교개혁을 다룬 제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권의 한국어 본은 2004년에 한길사에서 나왔고, 본 번역본은 제2권이다. 제1권에 붙인 해제에서는 스키너의 맥락주의 방법론을 다뤘기 때문에, 여기서는 제2권의 주제인 종교개혁만이 아니라 제1권의 주제인 르네상스와도 관련해서, 스키너가 바라보는 서양 근대 정치사상의 토대를 논의하기로 한다.

    스키너가 보는 서양 근대 정치사상의 주된 특징에는 자유, 세속화, 국가이성, 주권 등의 요소가 포함된다. 하지만 이런 요소들을 평면적으로 나열하는 것은 그의 논지가 아니다. 근대의 초입에 새로운 형태로 대두한 자유의 개념이 어떻게 다른 하나의 근대적 개념인 국가이성이라는 발상과 연관되어 있는지, 또는 신에 대한 순종이라는 개념이 어떤 맥락에서 어떤 경로를 거쳐 수동적 복종, 수동적 저항, 혁명적 저항 등의 서로 판이한 발상으로 변용되는지 등, 스키너의 시선은 단편적인 요소관념의 발굴을 지나 그러한 요소관념들이 서로 맺는 연관에 초점을 맞춰서 근대 정치사상의 특징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므로 이 해제에서는 우선 스키너가 부각하는 근대 사상의 주요 요소관념으로서 자유, 세속화, 국가이성, 주권 등을 제시하되, 그러한 요소관념들 사이에서 실제로 나타났던 연관의 고리를 바로 이어 드러냄으로써 그것들 각각이 근대적 개념으로서 함유했던 특징적인 의미를 형상화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여기서 연관의 고리라 함은 보완관계일 수도 있지만 긴장관계일 수도 있다. 아래 제2절 자유와 세속화, 제3절 자유담론과 국가이성(ragione di stato), 제4절 주권과 레비아탄(Leviathan) 등이 이러한 노력에 해당한다.

    다음으로는 이와 같은 요소관념들이 상호 연관되는 경로들을 살펴본다. 제5절에서는 저항의 의무와 권리라는 관념을 다루는데, 이는 전근대 기독교 정치사상을 지배하던 수동적 복종이라는 아우구스티누스적 관념이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근본적으로 재검토된 결과로 태어나 개신교 정치사상의 중핵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게 된 관념이다. 스키너는 수동적 복종이라는 관념에 대한 재검토가 매우 다양한 이유에서 출발해서 다양한 갈래로 전개되었음을 추적하고 나서, 그러한 와중에 헌정주의라고 하는 발상들이 태어났음을 밝히고 있다. 이어서 제6절에서는 저항의 의무와 저항의 권리를 살펴보는데, 이는 국가이성이라는 관념이 한편으로는 군주주권 및 심지어 절대군주라는 발상으로 이어지고, 다른 갈래로는 공동체에 해를 끼치는 존재에 대해 저항하는 것이 기독교도의 의무라는 발상으로도 연결되며, 나아가 더욱 적극적으로는 부당한 압제에 저항하는 것이 기독교도에게 하나의 권리라는 관념이 태어난 결과가 된다. 즉, 판단의 주체로서 인간 정신이 부각된 결과, 국가라고 하는 정치공동체의 존립과 번영을 기약하기 위한 이성의 역할이 주목을 받게 되고, 나아가 그러한 “국가이성”이라는 관점에서 절대주권의 이론이 나올 수 있었던 동시에 심지어 폭군살해의 이론까지도 나올 수 있게 된 것이다.

    본 해제에서 세 번째로 다룰 주제는 스키너가 사상사를 이해하는 방식과 관련된다. “근대” 정치사상의 토대를 탐사해 들어가는 스키너의 시도는 전근대 또는 중세와 근대 사이의 구분 또는 불연속을 암묵적으로라도 전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실제로 <근대 정치사상의 토대>를 추적할 때에는 전반적으로 중세 사상과 근대 사상을 연속되는 흐름 안에 배치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상사에서 시대를 구분할 기준이 무엇이냐는 난문이 자연스럽게 대두한다. 스키너의 맥락주의 방법론이 <근대 정치사상의 토대>를 규명한다는 작업과 어떻게 어울릴 수 있느냐는 질문도 이와 긴밀하게 연관된다. 즉, 정치이론이 주어진 상황에 대한 하나의 타개책으로 제시되는 1차원적 의미에 더해서 여타 정치이론들과 경합 또는 협력하는 과정, 나아가 해당 정치이론에 의해 발생한 정치 환경의 변화에 그 정치이론이 다시 적응하는 과정에 착목하는 시선이 근대와 전근대의 구분을 어떻게 포착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이를 제7절에서 다룬다.

    제2절 자유와 세속화

    서양 근대 정치사상의 계기로서 자유와 세속화를 지목하는 견해는 이 주제에 관한 논의에서 하나의 표준이라 할 만하다. 스키너는 단순히 자유와 세속화를 근대 정치사상의 특징으로 거론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이념들이 르네상스 시대에 본격적으로 발굴된 배경과 경로 몇 가지를 세밀하게 추적하는 한편, 그 결과로서 다시 어떤 다른 이념을 배태하기에 이르렀는지를 살피고 있다.

    자유라는 이념은 멀리서부터 연원을 찾자면 고대 로마의 자유인이라는 개념과 신분의 구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스키너는 이와 같은 연원은 일반적인 배경으로 깔고, 특히 11세기 말에 나타나기 시작해서 12세기에 번성하기 시작한 북부 이탈리아의 도시공동체에서 공화파들이 영주의 지배 및 신성로마황제의 통치권에 대항해서 개발한 논거에 주목하면서 서술을 시작한다.

    이 논거의 단초를 스키너는 사소페라토의 바르톨루스에서 찾는다. 이탈리아의 도시공동체(civitates)들이 왕국(regnum)에 대해서 어떤 지위를 가지느냐는 질문에 관해 바르톨루스는 명목적으로는(de jure) 주권이 왕, 즉 신성로마황제에게 있지만, 사실상으로는(de facto) 자체의 제반사를 스스로 해결해왔음을 지적했다. 이러한 지적의 바탕에는 “법과 사실이 충돌한다면 법이 사실에 맞도록 수정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깔렸었다(I, 92).

    이 생각은 자유라는 이념을 구성하는 핵심요소이다. 법조문을 어떻게 정하더라도 그것이 실제 상황에서 적용되기 위해서는 해석이라는 매개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때 이것이 해석자의 단순한 변덕에 그치지 않고 법의 해석이 되기 위해서는, 해당 조문이 무엇을 위해서 법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는지를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해당 법조문의 정신 또는 목적에 관한 고찰이 반드시 필요하게 된다는 뜻인데, 이 고찰의 주체는 형태적으로 한 개인 또는 여러 개인들의 영혼이 아닐 수 없다. 해석을 왕이 하든, 개별 법관이 하든, 아니면 한 사람의 시민이 하든, 법의 정신과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에 관한 해석은 정당한 이치에 맞아야 한다는 요청이 항상 수반된다. 그리고 정당한 이치라 함은 어떤 개인 또는 개인들에 의해서 정당하다고 판단된 이치, 또는 판단될 수 있는 이치를 가리킬 수밖에 없다.

    이러한 관점은 황제의 명령에 대해 도시공동체의 시민들이 이치를 따질 수 있는 여지를 허용할 수밖에 없다. 나아가 바르톨루스는 공동체가 스스로 주권을 가진다고 하는 시비 프린켑스(sibi princeps)의 개념을 개발하는 데까지 나아갔다(I, 97). 물론 법과 사실이 충돌할 때 법이 사실에 맞도록 수정되어야 한다는 발상은 바르톨루스 자신의 개념에도 적용될 수밖에 없다. 즉, 시비 프린켑스라는 개념이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살핀다는 것은 그 후 현실의 역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살피는 것과 같은 일이다. 하지만 법이 무엇인지, 법조문이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지에 관해 이치를 따질 여지가 인정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각 개인이 이성의 잠재적인 주체로 인정된다는 뜻을 가진다.

    이치를 따지기 시작하는 계기는 수사학의 발전에 의해서도 마련되었다. 중세 수사학은 아르스 딕타미니스(ars dictaminis, 언설의 기술)로서 스스로를 자리매김한 가운데, 사적/공적 서한이나 문서 및 연설에서 인사말, 서론, 서술, 주장, 결론 등, 다섯 가지 구성요소로 이뤄진 형식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I, 133). 수사학 교사들은 모범적인 서한들(formulae)을 예시함으로써 형식적 완결성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하지만 모든 글에는 내용이 담기기 마련이기 때문에, 형식적 본보기들을 통해 그 안에 담긴 정치적 관념들도 자연스럽게 전파되기 시작했다. 봉콤파뇨(Boncompagno da Signa)는 모범적 서한 모음집을 내면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담아내기 시작했고, 이어서 역사 서술에서도 이와 같은 방법을 활용했다. 단순한 연대기라는 형식을 취해 중립을 가장했지만, 사건의 선별과 배열에 자신의 지향을 녹여 넣은 것이다(I, 133~139). 나아가 수사학 교사 출신의 저자들이 정치가 또는 정치공동체를 직접 겨냥해서 조언서를 발표하는 데까지 이른다.

    이와 같은 변화들은 13~14세기에 일어나기 시작해서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 운동이 본격화될 때까지 이어졌다. 그러므로 스콜라주의의 학풍 역시 자유라는 이념을 표현하는 방향으로 바뀌는 조짐이 나타났다(I, 제3장). 그리하여 스키너는 예컨대 스콜라주의 교육을 받은 마르실리우스(Marsilius)가 <평화의 수호자>를 저술했다는 사실, 그리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기본적으로 조언서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여기에는 세속화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세속화라는 용어는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사용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것으로서, 이익추구가 반드시 불신앙 또는 부도덕의 징표로 간주될 필요는 없다는 발상의 전환을 가리킨다. 베버는 그 책에서 주로 루터와 칼뱅의 개혁신학에 초점을 맞췄지만, 그들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마키아벨리 역시 정책적 판단을 인도하는 원칙은 도덕보다 이익이어야 한다는 취지를 주창했다. 그리고 이보다 약 2백 년 전에 이미 마르실리우스는 교회의 강제적 관할권을 부인했었다. 이는 도덕이나 신앙의 가치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과 신앙에서 추앙되는 덕목들이 상호충돌하기 때문에 실존적 선택을 인도하지 못한다는 이치를 밝힌 것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들은 이치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들이 이치라고 생각하는 바에 해당한다. 세속화가 사회질서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는 지금도 논쟁 중이다. 서양 근대 정치사상의 토대를 추적하는 작업과 관련해서 중요한 점은 공익과 사익을 구분하고, 공익은 뭔가 도덕적인 반면에 사익은 천한 것으로 경멸하던 종래의 발상에 대해, 나름의 이치를 근거로 도전장을 내미는 경향이 이미 중세 말부터 확산되었다는 데 있다.

    제3절 자유 담론과 국가이성

    개별 시민들이 법과 정치에 관해 이치를 따질 수 있다고 했을 때, 바로 이어서 대두되는 문제는 인민 사이에 파당과 부패가 발생하는 문제이다. 스키너는 스콜라주의 학자들과 인문주의자들이 공히 공화정에 주목함으로써 이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했다고 본다. 이 해제에서는 스콜라주의의 대표로 마르실리우스, 인문주의의 대표로 마키아벨리를 예시적으로 살펴본다.

    마르실리우스는 <평화의 수호자>에서 정치공동체의 평화를 수호하는 주체로 인간 입법자를 상정한다(I, 188~197). 그런데 인간 입법자는 시민 전체를 가리킬 때도 있지만 “보다 비중 있는 일부(valentior pars)”를 가리킬 때도 있다. 이 때문에 후일 많은 논란이 일어났지만, 이는 마르실리우스가 생각을 정리하지 못한 탓이 아니라, 오히려 공동체의 본질에 관해 그가 매우 심오한 이해에 도달했다는 증거로 봐야 한다.

    왜냐하면 언어적으로 쉽게 하나의 공동체를 상정하기는 쉬운데, 실제 그 공동체는 많은 개인들로 구성된다. 그리고 각 개인들이 자신의 의견을 가지고 나름의 이치를 내세우면서 자신을 정당화한다. 이렇게 다양한 의견과 이치 중에서 무엇이 이치에 맞으며 무엇이 공동선인지를 식별해내야 하는데, 이를 본체론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제도나 절차는 원래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마르실리우스에게는 이 주제 자체에 이처럼 핵심적인 난점들이 수반된다는 사실이 새롭지 않았다. 왜냐하면 교회가 무엇이냐고 했을 때에도 정확히 똑같은 난점들이 따라나오기 때문이다. 단순히 교황청의 직위가 교회를 대표할 수는 없고, 헌금 액수라든지 출석 빈도만으로도 그 기준을 삼을 수는 없다. 교회가 무엇인지를 언표적으로 정의한다고 했을 때, 콩그레가티오 피델리움(congregatio fidelium, 신심 있는 자의 모임) 정도가 최선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정형화는 동어반복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신심 있는” 자가 누구냐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대답을 회피하는 셈이 된다. 그렇지만 언표의 수준에 머무르는 한, 즉 정치이론의 차원에 머무르는 한, 이와 같은 동어반복은 결국 어떤 지점에서든 발생하지 않을 수 없다(박동천, 2008). 공동선, 평화, 신앙, 이치, 진리, 등등, 이러한 개념이 표상하는 내용의 핵심적 알맹이는 언표에 의해 포착될 수도 없고 제도에 의해서 보장될 수도 없는 것이다.

    인민 사이의 부패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관한 인문주의자들의 논의도 결국 동일한 난제를 만나게 된다. 마키아벨리 시대 피렌체의 지식인들은 이 문제에 관한 해법을 대체로 두 갈래에서 찾았다. 한 갈래는 제도적 처방으로서, 지도자(Doge), 소수의 회의체(Senato), 다수의 회의체(Consiglio Grande)가 서로 견제와 균형을 통해 국정을 운영하던 베네치아 헌정을 본받는 것이었다. 이는 집정관, 원로원, 민회로 구성되었던 고대 로마의 공화정과 형태적으로 똑같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베네치아 헌정을 넘어 그 이상을 추구해야 한다고 봤다.

    제도와 다른 갈래의 해법은 시민의 덕성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시민 가운데 누구에게 덕성을 기대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다시 갈래가 생긴다. 예컨대 구이치아르디니(Guicciardini)는 실제적 경험에 근거한 회의주의적 태도를 바탕으로 오티마티(ottimati, 귀족들로 이뤄진 파당 중 하나)의 역할을 중시했다. 일반 민중의 정서는 워낙 잡다하고 종잡을 수 없기 때문에 그들에게 덕성을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반면에 마키아벨리는 부패를 자유의 부족과 연관시켜서 생각했다.(I, 360~ 363).

    이런 생각은 곧 비르투(virtu)에 대한 강조로 나타나는데, 여기에 주목한다는 것은 위에 마르실리우스를 논의하면서 부각했던 난점을 다시 만나게 된다는 뜻이다. 비르투란 시민적 긍지와 애국심이라는 감성에서 나온다. “도시의 이익을 자신의 이익으로 동일시하고, 자기가 가진 최고의 역량을 도시의 자유와 위대함을 확보하는 데에 바치도록” 인도하는 것이 비르투이다. 그렇다면 도시의 이익은 무엇인가? 그것을 식별하는 비르투를 보유하고 있는 시민과 그렇지 못한 시민은 누가 어떤 기준으로 변별해낼 것인가?

    마키아벨리에게 이 질문이 대단히 어려운 고민거리였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스키너가 주석하고 있듯이, 그는 <군주론>에서는 군주의 비르투에 집중했던 반면에 <로마사 논고>에서는 시민 개인들의 비르투에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이렇게 설정된 비르투라는 것은 말하자면 “공공의 혼”과 사뭇 흡사하다. 행복한 경우만 모으면 공공의 혼을 갖춘 군주의 사례들 못지않게 공공의 혼을 갖춘 인민의 사례들도 찾을 수 있다. 불행한 경우를 모으면 악독하거나 어리석은 군주의 사례들만큼 부패한 인민의 사례들도 찾을 수 있다.

    나는 이 지점이 이론으로 정치를 규명할 수 있는 한계를 표시한다고 생각한다. 이 난문의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는 오로지 정치적 실천을 통해, 실존적 선택에 따르는 위험부담을 온전히 감수하고 알아낼 일이다. 마르실리우스도 마키아벨리도 이 지점이 정치이론의 한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명료하게 인식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대신 시민들 가운데 “보다 비중 있는 일부” 또는 비르투를 갖춘 일부를 통해서 공공의 혼이 표현되고, 그럼으로써 정치사회가 인도되기를 희망했다.

    이러한 희망은 마침내 국가이성(reason of state)이라는 개념을 탄생시켰다. 이 개념은 이탈리아어 ragione di stato라는 형태로 구이치아르디니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고, 1589년에는 보테로(Giovanni Botero)에 의해 <국가의 이성>이라는 제목의 책이 나오기에 이른다. 구이치아르디니는 풀리지 않은 수많은 질문을 가슴에 품고 고민하는 암울한 지식인의 전형으로서 어떤 주장도 강력한 신조의 형태로 내놓은 적이 없다. 이미 16세기 후반만 해도 마키아벨리라는 이름이 워낙 악명을 떨쳤기 때문에, 보테로는 마키아벨리와 차별화에 무척 애를 썼다.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알프스 산맥을 넘어 북부로 전해진 이후, 잉글랜드의 모어(More), 엘리어트(Elyot), 스타키(Starkey), 네덜란드의 에라스무스(Erasmus), 프랑스의 장티예(Gentillet), 에스파냐의 리바데네이라(Ribadeneyra) 등, 수많은 인문주의자들이 국가의 이익을 위해 정의의 명령을 무시할 수도 있다는 발상을 공격했다(I, 505~510).

    하지만 이들의 공격은 주로 마키아벨리의 악명과 관련되는 대목, 즉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든지, 군주는 거짓도 서슴지 말아야 한다는 등의 측면에 집중된 것이다. 이렇듯 통속적 마키아벨리주의에 대한 비판은 개별적 판결에서 정의의 실현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시각, 다시 말해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시각을 본질적으로 담고 있었다. 그리고 개인의 자유를 강조할수록, 그 자유가 정치사회 안에서의 자유라는 점에서 정치사회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가이성이라는 이념이 도리어 하나의 필수적인 사항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국가라는 것이 어떻게 괴물(leviathan)이 아닐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근대 정치사상은 어떤 식으로든 답을 내놓아야 한다.

    제4절 주권과 레비아탄

    이탈리아 도시공동체의 주권이 황제에게 있는지 아니면 도시의 시민체에게 있는지를 따진다는 것은 곧 이치를 발견해서 드러낼 잠재적인 역량이 개인에게 있다고 하는 자유의 이념을 함축한다.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은 도시에게 주권이 있다는 논증을 위해 각 도시의 실제 역사를 탐구하는 한편 로마법을 해석하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했다. 이러한 전략은 북부 르네상스로 전파되어, 각 나라 역사의 세세한 부분들을 새로이 조명하고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이 개발되는 흐름으로 이어졌다. 바르톨루스가 로마법을 시대에 맞게 해석해야 한다고 봤던 것처럼, 성경 역시 “역사에 입각하여 접근할 필요가 있고 다른 증거들에 의하여 보완되거나 필요하다면 수정되어야 하며 심지어는 인문주의적인 문체로 보다 시대에 맞도록 다듬어 새로 씌어져야 할 작품일 따름”(I, 434)이라고 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시도들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곧 개인적 자유와 정치적 권위 사이의 긴장을 어떻게 해소할 것이냐는 질문이다. 이탈리아 도시공동체와 황제 사이에 주권을 두고 벌어진 논란은 곧 유럽의 모든 지역공동체와 황제 사이의 관계, 또 지역공동체와 교황청 사이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함축한다. 그리고 이는 다시, 범위를 유럽 전체로 잡든, 개별 왕국으로 잡든, 지역 또는 도시공동체로 잡든, 개인의 자유와 정치적 권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함축한다.

    인문주의자들이 염두에 둔 개인의 자유라는 것은 건강하고 정의로운 삶을 영위할 자유였지 부패할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은 시민적 덕성이 무엇인지를 규명하고, 그러한 덕성을 증진할 수 있는 제도와 교육을 탐색했다. 하지만 시민의 자유를 위해 덕성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하면, 마찬가지로 군주의 권위 역시 덕성을 전제해야 할 일이었다. 나아가 여기서 “덕성”이 무엇인지도 단순히 권력에 의해 규정될 수는 없고 어디까지나 이치에 따라서, 즉 성경과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한 위해서 인간에 의해 발굴되어야 할 일이었다. 이탈리아 인문주의자들이 군주귀감용 저술과 조언서를 내놓았듯이, 북부의 인문주의자들 역시 미래의 군주를 어떻게 교육해야 할 것인지 그리고 군주뿐만 아니라 정신(廷臣)과 행정관들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수많은 견해들을 밝힌 것이다(I, 제8장). 이와 같은 연구들은 “시대의 불의”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I, 제8장 제2절), 덕목이라는 것이 무엇인지(I, 제8장 제3절), 그리고 덕목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I, 제8장 제5절)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자유로운 개인들 사이에서 공동성이라는 것을 어떻게 설정하고 구현해 낼 것이냐는 질문은 후일 홉스와 로크 등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탐구되는 주제고, 그 결과 그들이 사용했던 “사회계약”이라는 사고방식과 연관되는 질문으로 이해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봤듯이, 이미 중세의 시민법학자들 그리고 스콜라주의 학자들이 전개한 논의에서도 이 질문의 핵심 부분은 포함되어 있었다. 법의 본질이 무엇이며 법이 어떻게 시행되어야 하는가, 교황의 세속적 관할권이 어느 정도 인정되어야 하는가, 등의 질문을 이치에 따라 따져봐야 한다는 태도는 도시뿐만이 아니라 교회 역시도 단순히 운명처럼 주어지기만 한 것이 아니라, 도시생활 및 교회생활 가운데 적어도 상당히 많은 부분들은 인간이 능동적으로 기획하고 구성해야 할 요소들이라는 함의를 가졌던 것이다.

    기독교 신학은 사악한 군주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는 정치적 질문을 고래부터 회피할 수가 없었다. 교황이 세속적 관할권을 행사하는 한, 이 질문은 곧 사악한 교황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과 같다. 교회법이라는 것은 “악을 자유롭게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기를 원하는 “로마 가톨릭주의자들이” “기독교 세속 군주의 관할권에서” 벗어나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라고 본 루터의 견해가 바로 그러한 질문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가 교황을 우두머리로 세운 데에는 지상의 일 또는 세속적 사업에 대해 어떤 정규적인 관할권을 포함하는 의미가 전혀 들어 있지 않”으며, 그러므로 “만약 교황이 지상의 일에 간여한다면” 그것은 단지 “남의 농작물에 낫을 대는 짓”에 불과하다고 역설했던 오컴의 입장과 통한다. 이와 같은 오컴의 입장은 로버트 홀코트, 리미니의 그레고리, 피에르 다이이, 장 제르송, 그리고 장 메르, 가브리엘 비엘 등, 이른바 비아 모데르나(via moderna, 근대의 길)를 주창하고 실천한 추종자들을 거쳐서 루터에게 전달되었다(II, 제2장 제1절). 교회를 신심 있는 사람들의 모임(congregatio fidelium)으로 이해한 것은 루터를 위시한 종교개혁운동가들의 공통된 태도로서, 이미 루터 이전에 마르실리우스라든지 오컴에 의해서도 강조된 바가 있었다.

    국가이성이라는 개념이 전체주의로 발전해서 국가라는 이름의 레비아탄이 얼마나 지독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까지는 아직 몇 백 년의 시간이 더 지나가야만 했다. 그러나 국가가 하나의 레비아탄일 수 있다는 잠재력만큼은 홉스가 실제로 그 비유를 사용하기 훨씬 전 이미 중세에서부터 여러 사람들에 의해 감지되고 있었다. 특히 스키너는 국가이성이라는 발상 안에 그러한 괴물의 모습이 잠복하고 있었다는 사실, 아울러 그러한 괴물의 모습은 개인의 자유에 사람들이 눈을 뜨고, 그리하여 정치사회를 하나의 공동기획으로 설정하는 사고방식의 출현과 더불어 잉태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렇게 잉태된 괴물의 그림자는 수많은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과 종교개혁운동가들에 의해 저항의 이론이 개발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제5절 헌정주의의 발전

    기독교도는 사악한 군주를 만났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고전적인 답은 사도 바울의 명령, 즉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력에게 복종하고 모든 권력은 다 신이 정한 바로 간주하라고 한 명령이었다("로마서" 13장). 이 명령은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수동적 복종의 이론으로 발전했다.

    종교개혁 운동이 근대 정치사상의 토대로 발전해간 경로는 사실상 수동적 복종의 이론에 대응해서 다양한 신학이론들이 개발된 역사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스키너는 제2권 제2부, 즉 제4장에서 제6장을 할애해서 이 주제를 추적한다. 헌정주의의 바탕으로 그가 주목하는 요소들은 중세 교회의 조직과 관련해서 출현한 공의회주의 사상과 부당한 재판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간헐적으로 나타났던 저항의 이념이다.

    스키너가 추적하는 공의회주의 이론의 시발점은 12세기 말에서 13세기 초까지 활약했던 교회법 이론가 후구치오이다. 후구치오는 만약 교황이 이단에 빠진다면 추기경들이 총공의회를 소집할 권력을 가져야 하고, 총공의회는 다시 교황을 심판할 재판정의 권위를 가진다고 주장했다(II, 제2장 제3절). 마르실리우스 역시 공의회주의 이론을 주창했고, 이러한 입장은 후일 제르송, 알멩, 메르 등에게 이어진다. 교회 조직에 관한 공의회주의 이론은 물론 후일 정치사회에서 의회를 기반으로 삼은 헌정주의 이론의 모태가 된다.

    아울러 투데스키스와 같은 사람의 교회법 이론 역시 후일 헌정주의에 중요한 기초가 된 논증 하나를 제공했다. 투데스키스는 “폭력으로 저항하더라도 죄를 면할 수 있다”고 한 이노켄티우스 4세의 언명을 인용하면서, 판사에 대한 저항의 이론을 정당화했다. 정의롭지 못한 방식으로 재판을 진행한 판사를 만났을 때, 일단 항소의 절차를 밟은 다음 그래도 정의가 구제되지 못한다면, 바로 폭력을 통한 저항이 가능하다는 것이다(II, 제4장 제2절).

    물론 이와 같은 견해들은 하나의 일반적인 정치이론으로서 제창된 것이 아니라, 특별하고 개별적인 상황에서 때로는 그럴 수도 있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즉, 중세에서 “교황이 이단에 빠졌다”거나 “판사가 정의롭지 못하다”는 판단은 아주 극단적인 사정에서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단순히 어떤 몇 사람 개인의 불만만 가지고 성립할 수는 없었다. 스키너가 잊지 않고 지적하듯이, 투데스키스만 하더라도 논의를 하급법원의 판사에 국한했던 것이고, 최고의 판관에 해당하는 왕이나 교황에게 폭력으로 저항할 수 있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과거에 단편적으로나마 이와 같은 논증들이 있었기 때문에 후일 종교개혁가들에게는 훌륭한 전거가 될 수 있었다.

    가톨릭 교회를 수호하려던 세력, 즉 제수이트로 대표되는 대응종교개혁 진영은 이처럼 불온한 주장들을 무찌르기 위해 부심했다. 비토리아, 데소토, 수아레스 등은 토머스주의의 입장에서 비아 안티쿠아(via antiqua)를 옹호하면서, 루터파의 신조들을 배격했다. 하지만 이러는 와중에 자연법의 이론이 개발되고, 나아가 자연상태(status naturae)라는 개념까지도 창안되기에 이른다(II, 제5장 제3절). 토머스주의자들은 한편으로 오직 성경(sola scriptura)에만 의거한다는 루터파에 반대하여 교황제의 전통이 군주정의 형태라는 주장을 펼쳤고, 섭리를 우선시하는 루터파에 반대해서 인간 이성의 역할을 부각하느라 신성법과 별도로 자연법이라는 개념에 주목한 것이었다. 그러나 자연법 및 자연상태라는 개념은 발굴되면 될수록 교황제 또는 절대주의 이론에 대해 발본적인 도전의 근거가 될 수 있는 함축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의 예는 사유 재산제와 관련된 논의이다. 토머스주의자들은 사유 재산제가 만민법(ius gentium)이라고 생각하면서 당연시했는데, 만민법을 무엇으로 봐야 하는지는 아퀴나스 본인에서부터 혼란의 여지가 많이 남아 있었다. 만민법은 일면 올바른 이성 자체 또는 그 현현으로부터 연역되는 일련의 명제이어야 할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단순히 널리 인정되는 판례의 모음인 것 같기도 했기 때문이다. 만약 사유 재산제가 후자처럼 인간이 정한 실정법의 한 양상일 뿐이라고 한다면, 재산 소유자의 권리를 개폐하더라도 자연적 정의에 대한 직접적인 위배는 아니라는 결론이 나올 수 있었다. 실제로 이러한 추론은 나중에 재세례파 및 수평파에 의해 발굴되고 동원된다.

    대응종교개혁 이론가들이 헌정주의자는 아니었고, 인민주권과는 더구나 거리가 멀었다. 오컴주의자들이 신의 뜻과 성경을 들먹이면서 기성 권위에 도전하자, 토머스주의자들은 아퀴나스의 합리주의를 끌어와서 전통과 관습을 옹호하려 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한 가지 쟁점을 염두에 두고 개발된 논거라도 개발자의 의도와는 다른 함의를 풍부하게 지닐 수 있다. 헌정주의적 발상의 씨앗들이 개혁파에 의해서는 의도적으로 발전된 반면에, 토머스주의자들에 의해서는 우연적으로 발굴되었다.

    제6절 저항의 의무와 저항의 권리

    루터는 종교개혁이 정치혁명으로 번져가기를 원하지 않았다. 칼뱅 역시 전체적으로는 절대적 무저항의 입장을 견지했다. 그렇지만 어떤 상황에서 어떤 상대의 말 또는 행동에 얼마나 순종하고 얼마나 저항할 것이냐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대단히 다양한 선택지를 담고 있는 주제에 해당한다. 위그노 전쟁 기간에 칼뱅주의자들 사이에서 혁명의 이론이 개발되기까지 적어도 두 가지의 중간단계 개념이 나타난다.

    첫째는 수동적 저항, 즉 불복종이라는 개념이다. 하위 행정관에게 상급자가 부당하고 잔혹한 명령을 내릴 때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빈틈이 많다. 특히 기독교도의 신앙에 어긋나는 명령, 가령 무고한 시민을 살해하라든지, 아메리카 원주민을 짐승처럼 취급하라는 명령이라도 순종해야 한다고는 말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이와 같은 경우라도 상급자를 상대로 직접 투쟁한다는 것은 전통적인 위계질서를 정면에서 부인하는 셈으로 순종의 의무에 위배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단, 상급자를 상대로 싸우지 않더라도 명령의 집행을 무한정 미루거나 회피하거나 직책에서 사임하는 방식으로 복종하지 않을 길은 어느 정도 열려 있다.

    기독교도들에게 순종의 의무라는 것은 존재하는 모든 권력은 신의 서임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바울의 언명에 근거한다. 하지만 기독교도들에게는 동시에 신앙을 지켜야 한다는 보다 포괄적인 의무도 있다. 악행을 저지르지 말아야 할 의무, 나아가 악행을 저지해야 할 의무도 기독교 신앙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그러므로 부당한 권력에 저항해야 할 의무는 순종의 의무만큼이나 기독교도라면 누구도 그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본다면 순종과 저항 사이의 양자택일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어떤 권력에게 어느 정도 어떤 방식으로 순종할지 아니면 어느 정도 어떤 방식으로 저항할지가 진짜 문제로 떠오르게 된다. 수동적 저항이라는 개념은 순종과 저항 사이에 이처럼 맥락과 상황에 따른 다양한 선택지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계기였다.

    둘째, 행정관들에게도 수행해야 할 직무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도 저항의 여지를 열어 주는 여러 갈래의 논의가 가능해진다. 모든 권력이 다 신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하위 행정관들의 권력도-왕이나 고위 귀족의 권력과 마찬가지로-신의 서임을 받은 것이라는 주장이 가능하다.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외적의 침략을 방비하고 물리쳐야 할 의무를 군주가 신에게서 받아 그 직무를 수행하듯이, 행정관은 자신의 관할권 안에 있는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상급자의 부당한 처사를 방비하고 물리쳐야 할 의무가 있다는 주장이 성립하는 것이다.

    국가 관료제 내부의 상호견제라고 하는 헌정주의적 발상은 실제 칼뱅의 저작에서도 편린들이 나타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칼뱅의 전반적인 입장은-루터와 마찬가지로-순종의 의무를 강조하는 데 있다. 전제자의 폭정이라도 인민이 순종해야 하는 까닭은 그것이 인민의 죄악에 대한 신의 경고이자 징벌이기 때문이다. 전제자가 출현했을 때 기독교도 인민은 가장 먼저 자신들의 죄악을 돌아보고 회개를 서두르는 것이 신의 뜻에 충실하게 따르는 길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칼뱅도 행정관들의 역할에 관해서는 여지를 남긴다. 하위 행정관들에게도 공영 사회를 보살필 임무가 맡겨졌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만일 그런 행정관들이 우리에게 신의 선물로 주어졌다면, 군주를 직무 안에 머물도록 견제할 수 있고 심지어 선하고 거룩한 정부를 떠받친다는 이름 아래 군주에게 강제를 행할 여지마저 인정한 것이다.

    위그노 혁명 이론에 맞서서 절대주의 이론을 옹호한 보댕도 저항의 의무를 특별한 경우에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II, 제8장 제5절). 정당한 주권자에 대한 신민의 공개적인 저항은 어떤 것도 용인될 수 없다고 역설하는 와중에서도 두 가지 조건을 덧붙여서 여지를 남긴 것이다. 하나는 자격이 없는 주권자, 즉 찬탈자는 전체 인민 또는 그들 가운데 누구에 의해서든지 합법적으로 살해될 수 있다(Bodin, 1962, 219). 다른 하나는 설사 정당한 주권자라 할지라도 전제정으로 흘러가는 경우, 외국의 군주가 개입하는 방식으로 대항하는 것은 합법적이다(Bodin, 1962, 220~ 221).

    권력의 원천을 신으로 보든 이성으로 보든 관습으로 보든 인민으로 보든, 통치자에게 정의를 세우고 평화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가 없다. 이에 대해서 어떤 유보조건도 달지 않은 정치이론가는 많지만, 부당한 통치자에게는 폭력을 통해서라도 저항할 수 있다는 결론으로 바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부당한” 통치자인지 아닌지를 누구든 맘대로 판단하고 그에 따라 무기를 들도록 허용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정치사회의 기본 질서를 부인하는 셈과 같다는 우려 또한 타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론적인 차원의 우려이다. 프랑스의 위그노, 즉 칼뱅주의자들은 여러 차례 군주와 관용의 원칙 아래 타협책을 모색했었다. 그렇지만 타협책이 공포되자마자 압제가 강화되는 배신을 겪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사정에서는 순종의 의무보다 저항의 의무가 강조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하여 오트망, 모르네이, 베자 등은 능동적 저항의 이념, 즉 저항의 권리와 혁명의 이론을 주저 없이 주장하게 되었다. 그들은 중세의 시민법/교회법 이론과 스콜라주의적 전적들, 그리고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과 대응종교개혁가들의 신토머스주의 저술들에서 때로는 간헐적으로 때로는 본격적으로 개진되었던 기존의 개념들과 논증들 가운데서 훌륭한 전거를 찾아 자신들의 입장을 정당화하는 데 활용했다. 단, 프랑스의 위그노 혁명가들은 저항권의 근거를 종교적 의무에서 찾았지만, 스코틀랜드의 뷰캐넌은 거의 후일의 로크와 흡사한 정도로 사회계약으로부터 직접 도출되는 권리로 파악하고 있었다.

    제7절 연속 또는 불연속

    지금까지 스키너가 <근대 정치사상의 토대> 1권과 2권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을 일부 간추려서 정리해봤다. 그는 자유, 세속화, 정치의 독립, 주권, 국가이성, 국가이성에 대한 우려, 헌정주의, 저항의 의무, 혁명 이론, 등등을 근대 정치사상의 요소들로 바라보면서, 동시에 당대의 현실적 과제에 대처하고자 하는 각 이론가들의 동기와 필요에 따라 이러한 요소관념들이 선별적으로 결합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던 양태를 훌륭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러한 성공과는 별도로 그가 표면에서 거론하지 않는 문제를 두 가지 살펴보는 것으로 이 해제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하나는 역사의 연속성 또는 불연속성과 관련된다. 스키너가 근대 정치사상의 토대로 서술하는 내용들은 지금까지 위에서 살펴봤듯이 모두가 중세의 시민법/교회법 이론과 스콜라주의 신학과 논리학에 연원이 있는 것들이다. 자유의 이념, 인간에게 이성의 권능이 있다는 믿음, 정치의 영역과 종교의 영역이 똑같을 수는 없다는 생각, 정치적 권위가 모종의 공동성에 봉사해야 하며 만약 그렇지 못할 시에는 비판이나 견제 또는 심지어 저항을 통한 교정이 필요하고 정당하다는 관념 등은 중세뿐만 아니라 사실은 고대에도 다양한 저자들에 의해서 익히 알려진 요소들이다. 이렇다고 할 때 근대라는 것은 어디서 시작하며 어떤 특징으로 구성되는가?

    다른 하나는 스키너의 맥락주의적 방법과 관련된다. 그는 이 책의 출판 이후 진행된 논의를 회고한 2006년의 글에서도 콜링우드를 인용하면서, “어떤 철학 문서를 해석할 때 가장 밝은 방법은 그 문서가 일군의 특정한 질문에 대한 응답이었다고 보고 거기서 다뤄지는 질문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말한다(Skinner, 2006, 240). 그러므로 마르실리우스든 마키아벨리든 수아레스든 베자든, 그들이 주장한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이 당대의 현실이 제기하는 어떤 질문에 응접하고 있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는 얘기다.

    제1권에 달았던 해제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I, 28~29), 오크쇼트(1980, 452)가 바로 이 문제를 지적한 바 있었다. 즉, 국가 및 국가이성이라는 개념이 이 시기에 탄생해서 성장한 것은 아마도 사실이겠지만, 그들이 근대 정치사상의 “토대”를 놓으려는 의도를 가졌을 수는 없지 않겠느냐는 질문이다. 특히, 그들이 당대의 문제에 응접하기 위해 각자 자기편의 입장을 옹호하는 논증을 개발하고 있었다고 보면 볼수록, 그들의 의도 안에서 근대 정치사상의 토대라는 의미를 어떻게 발굴할 수 있을지는 까다로운 난문으로 남게 된다.

    스키너는 오크쇼트가 자기를 “‘진정한’ 정치이론이라면 철학적으로 자율성을 가지는 일정한 영역을 점유한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꾸짖었다”고 자리매김한다(Skinner, 2006, 244).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는 오크쇼트의 취지가 아니다. 오크쇼트는 “자기 영토를 다스리는 주권자”라는 의미의 국가개념이 “몰인격적인 권력기구”라는 의미의 국가개념으로 바뀌는 변환이 과연 그 시기에 (또는 그 이후 다른 시기에라도) 일어났다고 보는 이유를 캐묻고 있는 것이다. 통치자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언설로는 “진실의 명령”이라든지 “신성한 공동체”, 기타 등등, 다양한 명분이 간판으로 걸릴 수 있다. 실제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시기에 그처럼 다양한 간판들이 내걸렸던 것도 사실이다. “몰인격적인 권력기구”라는 국가개념은 그 가운데 하나였고 그 후로도 다양한 명분 가운데 하나였던 것이지, 그것이 근대로의 시대적 변환을 가리키는 징표일 수는 없다는 것이 내가 이해하는 한 오크쇼트의 질문이었다.

    스키너도 “근대 정치사상의 토대가 구성된 일과 근대 유럽의 국가개념의 성립을 동일시할 수 있다고 보았던 내가 얼마나 생각이 짧았었는지 약간은 충격”(Skinner, 2006, 237)이라고 말함으로써, 여기에 도사리고 있는 난문을 어느 정도는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오크쇼트의 질문에 답할 길이 없지는 않은 것 같다. “근대”라는 개념이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는 의미의 한계를 구획하는 것이 그것이다.

    역사적으로 나타난 실례 가운데 몰인격적인 권력기구에 가장 가깝다고 봐야 할 전체주의 국가들도 사실은 몰인격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히틀러나 스탈린의 정권도 수많은 인격적인 요소들에 의해 좌우되었고, 명분과 실제 사이에 수많은 모순과 괴리들이 있었다. 어떤 개별적인 개인들과 집단들의 요구와 불만을 배척할 때 정권은 공동체 전체의 목적과 가치를 내세우는 것이며, 바로 그때 몰인격성이라는 명분을 동원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오크쇼트의 지적은 매우 적확하다. 역사가가 어떤 시대 어떤 지역의 어떤 국가를 “자기 영토를 다스리는 주권자”로 설정하더라도 그 국가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는 몰인격적인 목적이 동원될 수 있다. 역사가가 다른 시대 다른 지역의 다른 국가를 “몰인격적인 권력의 기계장치”로 자리매김하더라도, 그 국가는 여전히 “자기 영토를 다스리는 주권자”라는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것이 근대의 특징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차이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근대라는 개념이 몽땅 허상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오늘날 독일연방과 이 나라가 자리 잡고 있는 지역에 11세기에 존재했던 국가 또는 국가들의 모습을 비교할 때 아무 차이가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뿐이다. 중앙집권의 정도, 중앙집권을 효과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개발되어 작동하고 있는 수많은 관료제적 장치들, 그러한 중앙집권이 왜 필요하며 어디에 도움이 되는지를 설득하기 위해 발굴되고 전파된 수많은 정치이론들이 중세 사회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스키너가 근대 정치사상의 본격적인 계기로 자주 언급하는 홉스와 로크의 사회계약론은 분명히 17세기 이후 영국의 정치발전을 추동한 중요한 동력이었던 것이 분명하고, 나아가 그 후에는 유럽을 지나 다른 대륙의 여러 나라에까지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그런 점에서 개인의 자유에 대한 강조라든지 세속국가의 이념 등은 근대국가의 특징으로 간주하는 것이 충분히 정당하다.

    하지만 이러한 특징에 주목해서 시대를 구분할 적에는 비트겐슈타인(1953, §66)의 언표를 염두에 두는 것이 바람직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구기 게임에는 승패가 있다; 그러나 아이가 벽에 공을 던졌다가 다시 받고 있을 때에는 이 특징이 사라진다. 기량과 운이 작용하는 대목들을 살펴보라; 그리고 체스의 기량과 테니스의 기량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보라. 이제 둥글게-둥글게와 같은 게임을 생각해보라; 여기에는 즐겁게 논다는 요소가 있는 대신 얼마나 많은 특징들이 빠지는가! …… 서로 겹치기도 하고 얼기설기 엮여 있기도 한 유사성들의 복잡한 연관을 볼 수 있다 : 어떨 때는 전반적인 유사성이고 어떨 때는 세부적인 유사성이다.”

    말하자면, 19세기의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등과 11세기 중세 유럽의 왕국이나 공국들을 구분하는 경계는 예컨대 구기 경기와 육상 경기를 구분하는 경계에 비견할 수 있다면, 15세기의 영국과 13세기의 영국을 비교하는 일은 축구와 럭비를 비교하는 셈과 흡사하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대조를 통해 어떤 결정적이거나 보편적인 유사성이나 차이를 발견해야 한다고 미리 정해놓고 시작해서는 성과를 얻을 확률이 도리어 낮아질 것이다. 축구와 럭비가 다른 구기 종목이라는 관념은 기본적으로 현재 우리의 언어공동체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관념이다. 두 종목 사이의 차이를 굳이 설명해야 한다면 아주 여러 갈래의 설명이 또한 가능하다. 그렇다고 해서 두 종목 사이에 유사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두 항목을 구분할 때에는 두 항목 사이에 유사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차이를 부각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근대의 국가개념과 중세의 국가개념 사이에도 당연히 유사성이 많지만, 그렇다고 그 사이에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단, 이때 차이라는 것은 서로 겹치기도 하며 서로 얼기설기 엮여 있기도 하고, 어떨 때는 전반적인 차이이고 어떨 때는 세부적인 차이인 것이다.

    제8절 결론

    스키너는 2006년에 고백하기를 “이런 식의 역사를 쓰는 일에는 요즈음 관심이 줄어들었다”고 했다(Skinner, 2006, 237). 이런 식의 역사란 “국가 안에서 또는 국가에 대항해서 개인들이 자연권을 보유한다는 관념을 수반하는 주권 국가의 개념”이 언제 출현했는지 연원을 규명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런 작업에 관심을 가지고 탐구에 몰두하는 역사가들은 작은 수가 아니다.

    그렇지만 서양의 근대가 무엇인지, 언제 어떻게 시작되어 어떻게 발전했는지에 대한 관심은 어쩌면 영국의 지식인에게보다는 한국의 지식인에게 더욱 궁금한 질문인지도 모른다. 중세 말 근대 초기에 유럽 도처에서 나타났던 백가쟁명에 가까운 여러 갈래의 정치이론들을 맥락에 비춰서 조명한 스키너의 작업은 그러므로, 유럽의 지식인 사회에 대한 공헌인 데 비해서 한국의 지식인 사회에 대한 공헌이라는 점에서도 결코 손색이 없다. 따라서 이 책이 영어로 출판된 지는 이미 30여 년이 지났지만, 2004년의 1권에 이어 이제 2권까지 마무리하는 역자의 작업이 학문적으로는 물론이고 실천적으로도 어느 정도는 의의가 있다고 자부한다.

    이 책에서 스키너가 거론하고 있는 개별적인 정치이론가들의 저술 및 각각의 시대적 맥락이 가지는 의미에 관한 해석은 물론 다양성이 허용될 수밖에 없는 영역이다. 즉, 근대 정치사상의 토대를 스키너가 제대로 찾았는지, 또 르네상스와 종교개혁기의 정치이론들을 스키너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따져 물을 때 스키너의 저서가 표준이 될 수는 없다. 실제로 스키너의 해석에 관해서는 많은 후속 논란이 있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란들은 결국 개별 사상가들에 관한 해석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반적인 논의와 중첩되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 양이 많기 때문에, 이 해제에서는 다루지도 않았고 문헌목록을 안내하지도 않았다. 가령 루터나 칼뱅이나 마키아벨리나 마르실리우스의 해석에서 스키너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알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그런 독자는 이미 서양정치사상사를 직업적인 이유에서든 순수한 학구적인 이유에서든 전공하고 싶은 사람일 테니까, 스키너에 관한 논의에서 출발하기보다는 루터나 칼뱅이나 마키아벨리나 마르실리우스 등, 해당 정치이론가 장본인에서부터 출발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본 해제에서 중점을 둔 사항은 서론에서 밝혔다시피 근대 정치사상의 특징이라고 통상 간주되는 요소관념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러한 관념들이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라는 시대적 배경 위에서 서로 주고받은 영향의 고리들을 스키너가 어떻게 부각하고 있는지이다. 물론 이 해제는 책 내용 가운데 쉽게 드러낼 수 있는 몇 가지 점만을 다뤘기 때문에, 상세한 내용은 반드시 책 전체를 읽어야 파악이 가능할 것이다. 스키너의 <근대 정치사상의 토대> 두 권에 담겨 있는 내용들이 과연 얼마나,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서양 근대 정치사상의 토대에 해당하는 것인지를 둘러싸고는 앞으로도 많은 논의가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독자에게는 이 책이 서양 근대 정치사상이 무엇인지, 그것이 태어나는 과정에서 어떤 논쟁과 투쟁이 있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서양의 근대에 관해 이해가 깊어질수록 한국의 근대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며, 앞으로의 역사가 근대의 연장이 될지 아니면 탈근대의 개막이 될지와 상관없이, 미래를 조망하는 시야를 넓히는 데에도 커다란 기여가 되리라고 확신한다.

    (/ '역자 해제: 스키너의 시야에 잡힌 서양 근대 정치사상' 중에서)

    저자소개

    쿠엔틴 스키너(Quentin Skinner)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40~
    출생지 영국 랭카셔 올덤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퀜틴 스키너(Quentin Skinner, 1940~ )는 영국 랭카셔의 올덤에서 태어났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였고, 1965년부터 2008년까지 케임브리지 대학의 정치학과와 역사학과에 재직했다. 케임브리지대학교 근대사 흠정강좌 담당 교수와 크라이스트대학 선임연구원을 지냈고, 현재 런던대학교 퀸메리칼리지에서 인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1979년 울프슨 저작상을 수상한 ≪근대 정치사상의 토대The Foundations of Modern Political Thought≫(전 2권)를 포함, 여러 언어로 번역된 수많은 저서를 출간했다. ≪홉스 철학에서 이성과 수사학Reason and Rhetoric in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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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어바나-샴페인)에서 1994년에 정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논문은 플라톤의 [국가]를 비트겐슈타인의 시각에서 독해한 "Socrates' Simile of the Cave"이다. 2001년부터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철학, 서양정치사상사, 민족주의 등을 강의하고 있다. 역사, 철학, 정치, 그리고 윤리와 도덕을 포괄하는 넓은 영역에 관심이 있고, 특히 흄에서 콜링우드, 비트겐슈타인, 윈치로 이어지는 인식론을 연구하고 한국 사회에 소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덧붙여 영국식 자유주의 사상 및 제도의 발전과정과 민족주의에 관해서도 탐구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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