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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지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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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인간의 본질을 묘파한 원초적 이야기들!
    20세기 초 단편 문학의 거장 잭 런던의 대표 단편선


    잭 런던은 20세기 초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작가이자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문화 아이콘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잭 런던은 [강철군화]로 대변되는 사회주의 운동권 작가의 이미지와 [야성의 부름]으로 대변되는 아동문학 작가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한겨레출판에서 출간하는 잭 런던 소설집 [불을 지피다]는 작가가 어린 시절부터 겪어온 경험(통조림 공장 노동자, 굴 양식장 해적, 해적 감시 순찰대원, 원양어선 선원, 부랑자 생활 등)들을 통해, 원초적이고 단도직입적인 문장으로 인간성의 본질들을 조금 더 다양하게 표현했던 단편소설들을 보여주는 책이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회적이고 우화적인 단편들과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클론다이크 이야기들을 통해 잭 런던의 다채롭고 폭넓은 문학 세계를 조금 더 가까이에서 이해하고자 한다.

    근대문학의 전통과는 궤를 달리하는 이야기 세계의 진정한 이야기꾼, 잭 런던

    잭 런던은 만 40세라는 길지 않은 생애 동안 많은 중편과 장편을 썼지만, 200편에 가까운 단편도 쓴 작가였다. 그는 하루에 '1,000단어'씩 쓴다는 원칙을 고수하려 했는데, 환산해보면 5년 동안 단편을 매주 한 편씩 써야 200편이라는 숫자가 나오게 된다. 직업 작가로서의 경력이 20년이 채 되지 않고, 중?장편뿐 아니라 저널리스트로서 많은 르포와 사설을 썼고, 종군기자로서 러일전쟁을 취재하고, 여러 차례 범선을 타고 남태평양을 여행했으며, 10년 남짓 대규모 농장을 운영하기까지 한 걸 보면, 대단히 활동적인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번역가 이한중 씨는 잭 런던이라는 작가는 근대문학의 전통과는 궤를 달리하는 이야기 세계의 진정한 이야기꾼이라고 이야기한다. 정규교육을 꽤 받기도 했고 명문대학을 잠시 다니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그는 어려운 가정에서 외롭게 자라며 주로 독학을 했고, 10대 초반부터 혹독한 노동을 체험했으며, 일찍 집을 나와 맨몸으로 세상과 부딪치며 살았던 경험과 모험의 작가였다. 그러했기에 통조림 공장 노동자, 굴 양식장 해적, 해적 감시 순찰대원, 원양어선 선원, 부랑자 생활 등 다양한 경험을 했던 잭 런던은 그런 경험에다 온갖 분야에 대한 호기심들을 다양한 단편에 담았으며, 문학적인 전통보다는 대중잡지의 번영기에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야기를 꾸며내는 데 몰두했고, 자신의 경험이나 영감만으로 부족할 때에는 소재를 사들이기도 했다.
    그는 사회주의자이면서도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했고, 이민자나 제3세계인에게 온정적이면서도 인종주의적 편견을 보이기도 하는 모순적인 면모 때문에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개인적인 모순을 뛰어넘는 뛰어난 작품들로 100년 이후에도 살아남은 작가다. 그것은 그가 전하는 이야기의 힘 덕분일 것이고, 그만큼 그의 이야기가 한 개인의 머리에서 나온 상상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삶의 구체적 실상과 인간의 본연을 잘 담아낸 보편적인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부조리한 세상과 맨몸으로 맞선 잭 런던이 삶의 냉혹함을 담아내다

    잭 런던의 단편들은 특징적이게도 삶의 냉혹함과 강인함과 생존을 보여주면서도 판단을 유보하는 경우가 많다. 조지 오웰이 잭 런던의 최고작이라 말하는 [그냥 고기]에서 두 명의 도둑은 보석을 크게 한탕 터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둘 다 보석을 독차지할 마음에 상대를 동시에 독살한다. 이야기는 두 남자가 바닥에 쓰러져 죽는 것으로 끝이 난다. 거의 아무런 논평이 없고 '교훈'도 전혀 없다. 이런 사건은 우리 삶의 한 단편이며, 지금 세상에서도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프란시스 스페이트 호]에서는 침수된 배의 굶주린 선원들이 식인(食人)이라도 하자는 결단을 내리고서 용기를 내어 어린아이를 죽인다. 그런데 아이를 죽이자마자 다른 배가 넘실넘실 다가오는 게 눈에 들어온다. 그들을 구출해주는 다른 배가 나타나되 어린아이를 죽이기 전이 아니라 후에 나타나게 하는 게 잭 런던의 특색인 것이다.
    [스테이크 한 장]에서는 늙은 권투선수가 최후의 일전을 벌인다. 상대는 젊고 혈기 왕성한 신인이지만, 경험은 부족하고, 늙은 권투선수는 스테이크 한 장을 제대로 먹지 못해 상대를 완전히 쓰러뜨릴 수 있는 마지막 일격을 가하지 못한다. 권투와 체력 자체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경쟁 사회의 비열함과 냉혹함에 대한 작가의 인식이, 아울러 '패자에게 화 있으리(vae victis. 승자가 패자의 굴욕을 강조할 때 쓰는 라틴어)'라는 격언을 자연의 법칙으로 받아들이려는 작가의 본능적 경향성이 이 작품에 모두 표현되어 있다. 잭 런던에게는 냉혹한 상황의 전개 자체를 즐기는 듯한 측면이 있다. 젊은이가 늙은이를 죽이고 강자가 약자를 죽이는 것은 가차 없는 법칙에 의해서며, 인간은 자연의 힘에 맞서거나 다른 인간에 맞서 싸워야 하는데, 살아남기 위해 의지할 것은 자신의 강인함뿐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책에 실린 잭 런던의 단편을 크게 분류하자면, 일확천금의 꿈을 노리던 가난한 사람들이 알래스카 접경인 캐나다 유콘 주의 클론다이크 강 유역으로 몰려들던 골드러시 때의 체험을 배경으로 하는 출세기의 작품들과 그 이후의 사회적인 문제의식이 많이 반영된 후기작들로 나눌 수 있다. 다양한 주제와 문제의식이 반영된 후기작들을 이 책의 1, 2부에 소개했고, 3부에 클론다이크 이야기들을 담았다. 여기에 실린 대부분의 소설들이 시대를 초월하여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느낌을 준다.

    1부 사회적인 이야기에서는 젊음 대 노년의 알레고리로 쓴, 늙은 권투선수의 비애를 담은 [스테이크 한 장], 작가 자신이 경험했던 혹독한 소년 노동을 다룬 [배교자], 오늘날에도 다른 모습으로 재연되고 있는 이주노동자의 참상을 다룬 [시나고], 제3세계 출신 이민자로서 차별받으면서 혁명자금을 모으며, 혁명을 꿈꾸는 청년을 다룬 이야기 [멕시칸]들을 들려준다.
    2부 우화적인 이야기에서는 두 명의 도둑이 보석을 크게 털고, 서로 속이다가 서로 속는 이야기 [그냥 고기], 작가 자신이 매우 아꼈다는 감각적인 두 폭의 그림 같은 작품 [전쟁], 극한의 상황에서 약자를 식인(食人)의 희생물로 삼았던 실화를 재구성한 [프란시스 스페이트 호(號)], 당시에도 심각했던 고삐 풀린 자본주의의 폐단과 거짓된 지식인의 비굴한 꼬락서니를 그린 [강자의 힘]을 담았다.
    3부 클론다이크 이야기에서는 젊은 시절에 무리에서 이탈당한 늙은 순록의 최후를 목격한 에스키모 노인의 죽음을 다룬 에스키모 고려장 이야기 [생의 법칙], 북극에서 극한 추위에 목적지까지 가려는 사람의 사투를 다루고 있는 [불을 지피다], 늑대의 피까지 먹으면서 살고자 했던 식욕에 대한 엄청한 애착을 가진 인간의 이야기 [생에의 애착]들을 보여준다.
    뒤에 부록으로 조지 오웰이 잭 런던에 관한 서평적 서문을 실었고, 그가 살아온 시절에 대한 이야기와 사진을 담은 연보도 볼 수 있다.

    추천사

    영하 50도의 혹한에서 얼어 죽는 사람이나 영상 50도의 혹서에서 말라죽는 사람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면 후자를 택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앞의 것은 잭 런던이 백 년도 더 전에 이미 썼다. 더할 나위 없이 생생하고, 무정하리만큼 담담하게. 이 책의 표제작이 된 [불을 지피다] 얘기다.
    이 외에도, 필사적으로 삶을 쥐고 놓지 않는 [생에의 애착]에서건, 죽음을 지혜롭게 수락하는 [생의 법칙]에서건, 잭 런던은 삶과 죽음 앞에서 징징대지 않는다. 우리의 삶이 접속사로 이어지는 긴 문장이라고 한다면, 어떤 서술어가 쳐들어와도 스스로 주어의 자리에 가서 서겠다는 거다.
    [스테이크 한 장]이나 [프란시스 스페이트 호]를 비롯한 많은 작품들에서도 우리는 부조리한 세상과 맨몸으로 맞서는 터프한 작가의 초상을 본다. 세상은 백 년 전보다 더 교활하게 부조리해졌지만, 터프한 작가들은 드물어졌다. 그런 이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럴 땐 다시, 잭 런던을 읽는다.
    - 신형철 / 문학평론가

    목차

    1부 사회적인 이야기
    스테이크 한 장 / A Piece of Steak(1909)
    배교자 / The Apostate(1906)
    시나고 / The Chinago(1909)
    멕시칸 / The Mexican(1911)

    2부 우화적인 이야기
    그냥 고기 / Just Meat(1907)
    프란시스 스페이트 호(號) / The "Francis Spaight"(1911)
    전쟁 / War(1911)
    강자의 힘 / The Strength of the Strong(1911)

    3부 클론다이크 이야기
    생의 법칙 / The Law of Life(1900)
    불을 지피다 / To Build a Fire(1908)
    생에의 애착 / Love of Life(1905)

    부록: 조지 오웰이 본 잭 런던
    잭 런던 연보
    옮긴이 후기

    본문중에서

    사람은 본래 정해진 수만큼만 싸울 수 있다. 그건 게임의 철칙과도 같다. 어떤 사람이 평생 백 번을 싸운다면, 다른 사람은 스무 번을 싸우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각자에게 체질과 근성에 따라 정해진 숫자가 있으며, 그 수만큼 싸우고 나면 그것으로 끝인 것이다. 그랬다. 톰 킹은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많이 싸울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났으며, 그가 감당할 수 있었던 가혹한 싸움의 몫보다 훨씬 많은 수를 싸웠다. 심장과 허파를 터질 듯하게 만들던 그런 싸움들 때문에 정맥은 탄력을 잃었고, 근육은 뻣뻣해졌다. 대담성과 지구력은 소진되었고, 견디면서 애를 쓰느라 뇌와 뼈가 다 지쳐버렸다. 그랬다. 그는 다른 누구보다 잘 싸웠다. 그의 오랜 상대들 중에 아직까지 선수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예전에 타이틀을 보유했던 선수들 중에 마지막으로 남은 이였다. 그는 그들의 선수 생명이 끝나는 것을 두루 지켜보았으며, 그들이 그렇게 되도록 일조하기도 했다.
    ('스테이크 한 장' 중에서/ pp.17~18)

    샌델은 패하느냐 겨우 버티느냐의 기로에 서 있었다. 어지간한 펀치 한 방이면 그는 쓰러져서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게 분명했다. 그 순간 톰 킹은 쓴맛을 다시며 아쉬워했다. 마지막 한 방을 먹이기 위해 스테이크 한 장이 필요했다는 아쉬움이었다. 그는 마지막 한 방을 날리기 위해 분발했지만, 펀치가 충분히 묵직하지도 빠르지도 않았다. 샌델은 휘청거리면서도 쓰러지지 않았고, 뒤로 물러나 로프에 기댄 채 버텼다. 킹은 비틀비틀 다가가 생명이 다하는 순간과도 같은 고통을 느끼며 또 한 번 펀치를 날렸다. 하지만 그의 몸은 이미 그의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싸우겠다는 의지뿐이었으며, 그마저도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턱을 노리고 휘두른 주먹이 어깨까지밖에 가지 못했다. 더 높이 휘두르려고 해도 지쳐버린 근육이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다.
    ('스테이크 한 장' 중에서/ pp.33~34)

    “8만 번을 버려도 한 달에 100만 번이야. 1년이면 1,200만 번이고. 직조실에선 그보다 두 배를 움직였어. 1년 동안 2,500만 번 움직인 거야. 그런 식으로 100만 년은 움직인 것 같아.”
    “그러다 한 주 동안 꼼짝도 안 했어. 몇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 동작도 안 했지.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몇 시간이고 그냥 그대로 있으면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말이야. 그렇게 행복했던 적이 없어. 나한텐 여유라는 게 없었어. 늘 움직이기만 했지. 그래가지곤 행복해질 수 없어. 이제 다시는 그렇게 안 할 거야. 그냥 가만히 있으면서 쉬고, 또 쉬고, 그리고 더 쉴 거야.”
    ('배교자' 중에서/ pp.62~63)

    그때 상사가 날카롭게 명령을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초는 급히 눈을 감았다. 칼날이 내려오는 걸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느낄 수 있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크뤼쇼가 한 말이 떠올랐다. 크뤼쇼의 말은 틀렸다. 칼은 간질간질한 촉감이 아니었다.
    ('시나고' 중에서/ pp.87~88)

    하지만 리베라는 살아남았고, 몽롱하던 정신도 돌아왔다. 다 똑같았다. 증오스러운 그링고들은 모두 비겁했다. 최악의 순간에 리베라의 뇌리에는 다시 환영들이 번뜩 스쳐 갔다. 저 멀리 사막 끝에 기다란 철길이 가물거렸다. 헌병대와 미국 경찰들, 형무소와 유치장, 급수탑 아래의 목마른 부랑자들. 리오블랑코 파업 이후의 기나긴 여행에서 겪었던 온갖 고생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그리고 갑자기 찬란한 붉은 혁명이 고국 땅을 휩쓰는 광경이 보였다. 그는 총을 위해 싸우고 있었다. 그 자신이 총이었다. 그는 곧 혁명이었다. 그는 온 멕시코 인민을 위해 싸우고 있었다.
    ('멕시칸' 중에서/ pp.121~122)

    맷은 간신히 의자가 있는 데까지 와 주저앉았다. 그는 무릎을 감싸고 웅크린 채 살을 찢는 듯한 고통과 싸웠다. 이윽고 발작이 멈추자 그는 완전히 기운을 잃고 오한에 몸을 떨었다. 그는 짐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려고 간신히 눈을 떴고, 짐이 바닥에 가만히 누워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멋있게 독백도 하고 농담도 하고 삶을 비웃어주려고도 했으나 말이 되지 않는 소리만 간신히 나올 뿐이었다.
    ('그냥 고기' 중에서/ p.155)

    가련한 요리사는 마침내 결심했는지 오브라이언의 손목에 칼을 대고서 톱질하듯 켜기 시작했다. 절단된 정맥이 드러나 보였다. 설리번은 그 아래에 튜린 뚜껑을 바짝 갖다 댔다. 잘린 정맥에서는 붉은 피가 조금도 나오지 않았다. 피가 한 방울도 없었다. 정맥이 말라붙었던 것이다. 아무도 입을 떼지 못했다. 물결에 배가 넘실거릴 때마다 말없이 굳은 사람들의 모습이 함께 오르내렸다. 모두의 시선이 산 사람의 말라붙은 혈관에 고정되었다. 믿을 수 없고 괴기스러운 광경이었다.
    ('프란시스 스페이트 호' 중에서/ p.166)

    그는 그것이 모든 생명에서 구현되는 것을 보았다. 수액이 올라오는 것…… 버드나무가 초록 잎눈을 틔우는 것, 누런 잎이 떨어지는 것, 이런 것들만 보더라도 온 생명의 역사를 알 수 있었다. 자연이 개체에게 부과한 임무가 하나 있긴 했다. 그 임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그 개체는 죽었다. 임무를 수행해도 죽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자연은 개의치 않았다. 자연에게 복종하는 개체는 얼마든지 있었는데, 이때 언제나 살아남고 또 살아남는 것은 복종하는 개체들이 아니라 복종 그 자체였다. 코스쿠시의 부족은 아주 오래된 부족이었다. 그가 어릴 때 알았던 노인들은 그들 이전의 노인들을 알았다. 그러니 그의 부족은 살아 있는 것이었고, 그것은 부족 구성원들의 복종을 뜻했다. 그들은 잊힌 과거가 되었고, 묻힌 곳조차도 기억되지 않지만 말이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들은 부분적이고 일회적인 사건이었다. 여름 하늘의 구름처럼 사라져갈 존재들이었다. 코스쿠시 역시 그런 에피소드였으며, 곧 사라져갈 터였다. 자연은 개의치 않았다. 자연은 생에 하나의 책무만을, 하나의 법칙만을 부여했다. 생의 책무는 영속되게 하는 것이었으며, 그 법칙은 죽음이었다.
    ('생의 법칙' 중에서/ pp.210~211)

    결국 그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양손을 확 떼어냈다. 타오르던 성냥 다발은 눈밭에 떨어지며 피시식 꺼져버렸으나 자작나무 껍질에 불이 붙었다. 그는 이 불씨에다 마른풀과 잔가지들을 올려놓기 시작했다. 양 손목 사이에 낀 채 들어 올려야 해서 땔감을 고를 수는 없었다. 썩은 나뭇조각이나 잔가지에 붙은 덜 마른 이끼들은 최선을 다해 입으로 떼어냈다. 그는 우스꽝스러워 보일 정도로 불을 조심스럽게 다루었다. 불이 곧 생명인 만큼 절대 꺼뜨릴 수 없었다. 피가 제대로 돌지 않아 몸이 마구 떨리기 시작했고, 그의 동작은 더 우스꽝스러워졌다. 그러다 넓적한 푸른 이끼 한 덩이가 그 작은 불꽃 위로 떨어졌다. 그는 손가락으로 이끼를 제거하려고 했으나 오한 때문에 손가락을 너무 깊이 찔러 넣고 말았다. 그 바람에 손가락이 작은 불꽃의 불씨를 건드렸고, 불붙은 풀과 잔가지들이 흩어져버렸다. 그것들을 그는 다시 모아보려고 했으나 아무리 애를 써도 몸이 떨려서 소용이 없었고, 잔가지들은 속절없이 흩어지고 말았다. 흩어진 잔가지들은 하나씩 연기를 내뿜으며 꺼져버렸다. 불 피우기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는 무심히 주위를 둘러보다가 개를 보게 되었다. 개는 잔해만 남은 불의 건너편 눈밭에 앉아 있었다. 웅크린 몸을 앞뒤로 움직이기도 하고, 앞발을 번갈아가며 살짝 들기도 하면서 개는 몹시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불을 지피다' 중에서/ pp.236~237)

    오후 늦게 그는 뼈다귀들이 흩어져 있는 곳을 지나가게 되었다. 늑대들이 사냥감을 해치워버린 잔해였다. 불과 한 시간 전만 해도 살아서 깩깩 소리를 지르며 달아나던 어린 순록이었다. 그는 뼈들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잘 발라 먹어 반질반질하고, 아직 핏기가 남아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나 또한 이 하루가 끝나기 전에 저렇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이란 게 그런 거겠지? 헛되고 덧없는 것. 고통은 산 자만이 느낄 수 있다. 죽음에는 아픔이 없다. 죽음은 잠과 같은 것. 멈춤이고 휴식이다. 그런데 왜 순순히 죽으려 하지 않는가?
    ('생에의 애착' 중에서/ p.261)

    저자소개

    잭 런던(Jack London)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876 ~ 1916
    출생지 미국 샌프란시스코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미국 작가인 잭 런던은 마흔 살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장편소설 19편과 18권의 단편집, 수백 편의 기사, 에세이, 비평 들을 남기며 파란만장했던 짧은 생애를 아낌없이 살다 갔다.
    사생아로 태어나 의붓아버지의 성인 ‘런던’을 따르게 된 그는 미국의 산업이 급속도로 성장하던 시기에 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일찍이 살기 위해 일을 해야 했다. 신문 배달원, 통조림 공장 직공, 물범잡이 배의 선원 등 온갖 육체노동과 방랑으로 소년 시절을 보냈고, 스무 살 때 캘리포니아 대학에 입학하지만 집안 사정으로 한 학기 만에 자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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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년월일 1970~
    출생지 부산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나는 왜 쓰는가] [산처럼 생각하라] [숨 쉬러 나가다] [온 삶을 먹다] [불을 지피다] [울지 않는 늑대] [인간 없는 세상] [글쓰기 생각쓰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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