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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백의 대가 : 크메르 루즈 살인고문관의 정신세계

원제 : Le Maitre Des Aveu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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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1만2000명을 죽인 S-21 교도소장
    그는 과연 인간인가, 악마인가
    인간성의 기이한 본성과 시대의 진실을 밝히는 다큐, 아니 차라리 스릴러!
    국제 전범재판을 전문적으로 취재해온 프랑스 저널리스트의 작품


    “그땐 혁명이 죄수들을 한 명씩 없앤다는 의미였으니까요. 저는 혁명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고 제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어요. 저는 평생
    뭔가를 할 때마다 확실하게 처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여기며 살았습니다.”
    (/ '두쿠의 법정 진술' 중에서)

    “1만2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S-21 교도소에서 죽었으니 눈은 두
    배가 되겠군요. 나는 적어도 2만 4000개가 넘는 눈동자들이 피고인을
    따라다닌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숨을 곳이 세상 어디에 있겠습니까?”
    (/ '희생자 가족의 증언' 중에서)

    2009년 3월, 프놈펜. 깡 켁 이우란 이름보다 두크로 더 유명한 고문 및 사형 책임자는
    뚤슬렝 S-21에서 1만2000명이 넘는 사람을 죽였다. 그랬던 그가 드디어 국제 재판소
    앞에 홀로 서는 순간을 맞이했다. 희생자들의 가족 앞에, 또 자기 자신과 홀로 마주하게
    된 두크는 정확한 수치를 측정하기조차 어려운 대학살,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중대한
    범죄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자백의 대가]는 폴 포트의 크메르 루즈에
    가담한 사형집행인의 범상치 않은 운명에 대해 들려준다. 하지만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매
    공판에서 예기치 않은 놀라운 에피소드가 불거지면서 한 편의 ‘인간 희극’이 펼쳐진다.
    저자 티에리 크루벨리에는 기자의 예리한 관찰력과 필력을 바탕으로 무엇보다 연극적
    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법정에서 일어나는 한 편의 드라마를 우리에게 이야기해준다.

    책 소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는 역사나 심리학 같은 학문의 미해결 과제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각종 연쇄살인과 전쟁범죄 등을 통해 그 잔인성을 목도하면서 어떻게 인간이 저럴 수 있을까 탄식하지만, 어느 순간 그 잔인성을 능가하는 사건이 다시 우리 앞에 저질러 질 때는 아연해지면서 인간의 본성 자체에 대한 깊은 두려움과 절망의 심정을 품게 된다. 프랑스 갈리마르에서 2011년에 출간한 [자백의 대가Le Maitre Des Aveux]는 우리에게 1975년에서 1979년까지 4년 동안 캄보디아를 통치했던 크메르 루즈가 자행한 끔찍한 대학살의 실체를 더욱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S-21 교도소와 일명 ‘킬링필드’로 불리는 ‘쯔엉 엑’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처절한 증언은 독자들 또한 어느새 재판을 참관하는 한 사람이 되어 전범재판 과정을 지켜보게 만든다.
    이 책의 제목 ‘자백의 대가’란 중의적인 의미에서 사용되었다. 첫째는 두크라는 인물이 자백을 받아내는 데 천부적인 소질을 갖추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물론 자백은 대부분 거짓자백이며 그것을 끌어낸 것은 극도로 잔인한 고문과 협박이었다. 그의 소질은 바로 모든 인간적인 감정을 버리고 교도소 수감자들을 죽음의 뻘로 밀어낼 수 있었던 사이코패스적 기질인 셈이다. 둘째로 ‘자백의 대가’라는 의미는 다른 한편으로 이 두크라는 인물이 법정에서 보여줘 사람들을 놀라게 한 뛰어난 재능을 의미한다. 그는 비상한 기억력으로 30년도 더 지난 일들을 기억해냈으며, 자신이 저지른 일들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법적 그물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는 정치적 고백으로 일관했다. 제목 ‘자백의 대가’에는 바로 이러한 악마적 마에스트로라는 이미지가 심겨져 있는 셈이다. 실제 법정에서는 두크가 가짜로 즐거워한 연기가 들통나기도 했다. 두크는 그가 일한 교도소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세 명 가운데 한 사람에게 억지로 동포애를 표현하려고 했는데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아 가짜로 즐거워하는 연기가 들통난 적이 있었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두크의 신경질적인 웃음에 당혹스러워했다. 어느 순간 상황 파악을 한 두크가 얼른 손으로 입을 막더니 흥분을 가라앉혔다. (/ pp.29~30)

    이 책을 쓴 프랑스 작가 티에리 크루벨리에는 S-21 교도소의 최고 책임자였던 두크란 인물을 재판한 프놈펜의 전범재판 과정에 실제로 참여하면서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내용을 이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작가는 법률 매거진 [인터내셔널 저스티스 트리뷴]의 수석 편집인을 지냈으며 캄보디아뿐만 아니라 르완다, 시에라리온, 콜롬비아, 보스니아 등 세계 여러 곳에서 일어난 반인륜적인 범죄와 대학살을 다룬 국제 재판에 참여하며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프랑스 출신의 기자로는 티에리 크루벨리에가 유일하게 프놈펜 전범재판에 참여했다. 이 소송은 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재판이었다. 전체주의를 지향한 공산주의 정권이 자행한 대량 학살을 유엔 산하의 국제 재판소가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계속 묘사하는 바에 따르면 두크는 대화를 주도하고 통제할 줄 아는 사람이다. 상대 주장을 인정하기도 거부하기도 하면서 신경질적인 목소리와 위엄 있는 목소리를 잘 선택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음을 아프게 하는 대화를 요리조리 피했다. 어떤 날에는 S-21에서 실행된 의료 실험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두크의 부하였던 수 티와 프락 칸이 그 부분에 대해 말했다. 자료보관실에서도 의료 실험을 했다는 증거 자료가 발견되었다. 하지만 두크는 자신이 그 일에 전부 개입하지는 않았다고 반박했다. 닐 논 재판장은 피고인에게 이 실험이 진행된 것을 알고 있었는지 물었다. 두크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으면서 차분하게 대답했다. “네, 알고는 있었습니다. 죄수들 중 몇몇이 외과 수술의 실험 대상이 된 적이 있었어요. 혈액을 채취한 사례도 있고요. 하지만 수혈 사실에 대해서는 입장이 다릅니다. 예심 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수혈은 낫이 관여한 문제이고 저는 그 일에 대해서 아는 게 없습니다. 계속 과거를 생각하다보니 상관에게 전화 한 통을 받은 기억이 떠오르긴 합니다. 전투원들에게 수혈을 시켰는데 피부 염증이 일어났다고 했어요. 그것도 제가 저지른 범죄 행위라면 그렇다고 하겠군요.”(/ pp.388~389)

    역자 전혜영 씨는 “이 책을 번역하는 동안 나는 피고인 두크란 인물에 대해 이토록 자세하게 알 수 있는 책이 존재할까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고 밝힌다. 그 정도로 프랑스 저자의 정보 수집 능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는 것이다. 저자가 두크란 인물의 생애와 관련된 정보를 다방면으로 수집한 흔적이 책 곳곳에 역력하게 드러난다. 크메르 루즈에 소속되기 전, 수학 교사로 살았던 젊은 시절은 물론 민주 캄푸치아를 위한 혁명주의자로서 활동할 당시의 모습과 크메르 루즈가 쇠퇴기를 겪으면서 외국으로 건너가 살게 된 과정, 그리고 다시 캄보디아 감옥에 수감되어 재판을 받기까지 한 개인의 파란만장한 삶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연속되는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공판이 진행되는 동안 저자가 예리한 관찰력을 발휘해 피고인 두크의 심경과 태도의 변화를 꼼꼼하게 묘사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두크 외에도 증인으로 참여한 여러 국적의 생존자들과 변호사, 검사, 판사, 방청인들의 반응도 놓치지 않고 생생하게 글로 전달하려고 했다. 그러하기에 독자들은 실제로 법정에 앉아 있는 것처럼 생생한 현장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두크를 옹호하는 입장과 혐오하는 입장이 팽팽하게 대립되면서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감이 점점 고조되었다. 법률 관계자들과 인권 변호를 위해 싸우는 운동가들 사이의 치열한 논쟁, 두크의 담당 변호사인 프랑수아 루와 까 사웃의 대조적인 입장 차이 또한 이 책의 내용을 흥미롭게 만드는 자극제 역할을 한다.
    두크는 S-21 교도소에서 어떻게 죄수들의 자백을 받아냈을까?
    먼저 두크는 자백할 때까지 계속 전기고문을 가했다. 한번은 심문관이 죄수에게 다짜고짜 “너는 반역자”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밀 회의를 몇 번이나 열었는지 물었다. 남자가 완 낫에게 말했다. “넌 횟수를 반드시 기억해내야만 한다. 앙카르가 실수를 할 리 없으니 너는 반역자가 틀림없어.” 심문관은 자백을 받기 위해 전깃줄을 꺼냈다. 완 낫의 눈에 벽에 걸린 비닐봉지가 들어왔다. 봉지에 핏자국이 선명하게 있었다. “자, 말해! 몇 번이나 모임을 열었냐고?” 대답을 못하자 첫 번째 전기 방전이 시작되었다. 결국 완 낫은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심문관이 그의 얼굴에 물을 붓자 완 낫이 정신을 차렸다. 그 후 두 번째 전기 고문이 이어졌고 그는 또 기절하고 말았다. 그렇게 여러 번의 전기 고문이 계속되었다. 완 낫은 자신이 고문을 한 자들에게 뭐라고 대답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 pp.52~53)
    수형자들은 천장에 붙은 도마뱀붙이와 곤충이 입안으로 떨어지길 기다렸다. 그렇게 견디기 힘든 비인간적인 생활을 한 달 동안 버텼다. 엄격한 교도관의 허락 없이는 자리에 앉을 수도 없었다. 칠판에 준수해야 할 사항이 적혀 있었는데, 죄수들은 말을 해서도 안 되고 남의 이야기를 들어서도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귀리로 만든 보잘것없는 식사가 아침 8시와 저녁 8시에 각각 제공되었다. 한방에 갇힌 죄수들은 깊이 15센티미터의 사각 철통 하나에 든 음식으로 배를 달랬다. 완 낫은 피부병에 걸려 수시로 피부를 긁었다. 그는 천장에 달라붙어 있는 도마뱀붙이gecko[크기가 작은 도마뱀의 일종]가 떨어지기만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기도 했다. 하지만 떨어지면 감시인의 눈을 피해 얼른 잡아먹는 것이 관건이었다. 실수로 들켰다가는 죽도록 맞아야 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완 낫의 자리는 창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도마뱀과 각종 곤충을 바로 잡기에는 거리가 멀었다. (/ p.63)
    뚤슬렝의 고문관들 중에는 ‘차가운’ 고문팀과 ‘뜨거운’ 고문팀이 있었다. 죄수의 심리를 이해하는 것이 ‘차가운 팀’이 하는 일이다. 두크는 “다른 심문관들도 저처럼 집요하게 질문해 자백을 받아냈는지는 모르겠어요. 어쨌든 저는 심문관들을 교육할 때 일단 말로 답을 이끌어내는 것이 원칙이라고 가르쳤어요”라고 말했다. 그다음 절차가 고문이다. 하지만 많은 심문관이 구두로 하는 심문보다는 육체에 가하는 고문에 더 치중했다. ‘뜨거운 팀’에 속하는 심문관들은 전기 고문 외에도 자신들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고문을 죄수들에게 가했다. 저작 팀의 일원이었던 프락 칸의 설명에 따르면, 차가운 팀은 구두 심문을 하되 극도로 집요하게 했다. 그러나 춤 메이의 시각은 그와 달랐다. 그는 상황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죄수가 심문관을 보는 날에는 언제나 육체적인 고문이 이어졌어요. 구두 심문만 있었던 적은 없습니다. 항상 뜨거웠지 차갑거나 미지근한 심문만 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 p.77)

    S-21 교도소에는 어린아이 사망자만 적어도 700명에 달했다. 카트라이트 판사는 두크에게 S-21 교도소에서 사망한 아이가 전체 사망자의 1퍼센트를 차지하는 것이 맞는지 물었다. 그러면서 이 통계에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자료를 제시했다. 기록에 따르면, 하루에 160명의 아이가 처형장으로 이송되었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었다. “확실히 1퍼센트는 넘을 겁니다.” 수학자 출신의 두크가 대답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판사가 그의 말에 동의했다. 목소리에서 불편한 심경이 그대로 드러났다. (/ pp.175~176)
    심지어 두크는 자신의 매부 2명도 사형에 처했다. 두크의 매부 2명은 그가 S-21 교도소를 관리하던 시기에 감옥에서 처형을 당했다. 매부 중 한 명은 두크가 직접 개입해 처형을 관리하기도 했다. 그는 캄퐁톰 주에서 정치경찰의 부책임자로 역시 크메르 루즈를 위해 사형집행인으로 일해왔다. 같은 무리의 손에 당한 격이었다. 두크는 매부를 앞에 두고 자신이 첫 심문을 맡았다. 자신의 상관인 손 센에게 질책을 듣기 전에 자기가 먼저 처리하려던 속셈이었다. 그는 그때의 상황에 대해 설명하면서 개인적인 감정을 노출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전 매부를 매우 침착하게 대했어요. 하지만 매부가 자꾸 새로운 실수를 연발하자 저도 참기가 힘들었어요. 그를 살려줬다가는 제가 위험한 상황에 빠질 판이었어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가족이 위기에 빠질 것 같았죠. 그래서 매부를 체포해 감옥살이를 시키며 심문관들에게 심문과 고문을 명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p.179)

    외국인 78명도 사형되었다. 크메르 루즈는 자신들의 범행이 외부로 알려질까 두려워 벽안의 사내들도 서슴지 않고 살해했다. 재판이 열리던 어느 날 형을 잃은 동생이 참석해 “두크 당신이 싼 똥을 강제로 먹이는 상상도 했어요”라고 발했다.
    베트남인을 제외하고 적어도 78명의 외국인이 S-21 교도소에서 사망했다. 아랍인 1명과 인도인 5명 그리고 29명의 태국인이 목숨을 잃었다. 그 외에도 인도네시아의 자바인 1명과 라오스인 1명, 미국인 3명, 프랑스인 3명, 호주인 2명, 영국인 1명, 뉴질랜드인 1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나머지 사람들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다. (중략) “S-21 교도소에 있었던 케리 해밀은 제겐 세상 누구보다 멋진 형이었어요. 열여섯 살 때 감옥에서 찍었다는 사진을 처음 보았는데 그 뒤로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요. 그 사진 때문에 잠도 잘 못 잘 정도였어요. (중략) 두크, 당신의 몸을 으스러뜨리고 싶었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당신의 음낭에 전기 충격을 가한 다음 당신이 싼 똥을 강제로 먹이는 상상도 했어요. 익사하기 직전까지 물고문을 시키고 목을 칼로 베어버리는 상상도 했어요. 당신이 직접, 그 고통을 겪길 바랐어요. 제발 부탁이니 지금 제가 하는 질문에 꼭 솔직하게 답해주세요. 제 형을 기억하세요?” “서양인이 4명 있었어요. 하지만 영국인 존만 기억나요. 아주 친절한 사람이었죠. 해밀 씨를 직접 만난 적은 없어요. 그가 아주 상세하게 자백했고 저는 쓴 그대로 믿었습니다. 존과 케리는 거의 같은 시기에 사망했어요. 시체는 소각해서 재로 만들었는데 정확한 날짜는 기억이 나질 않아요. 두 사람이 자백한 직후였던 것만 생각나네요.” (/ pp.195~201)
    드디어 저자는 쯔엉 엑, 우리가 킬링필드라고 알고 있는 처형장의 풍경을 묘사하기 시작한다. 죄수들은 목 뒤를 굴대로 내려치면 꺽 소리도 못하고 죽었다.
    호송차는 저녁 6시쯤 쯔엉 엑을 향해 출발했다. 바로 처형하는 곳으로 교도소에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다. 쯔엉 엑에 도착한 죄수들은 하나씩 나무로 지은 집 안으로 이송되었다. 불이 들어오도록 모터를 돌렸는데 어떤 사람들은 불을 켜기 위해서가 아니라 안에서 나는 소리가 바깥에 들리지 않도록 일부러 시끄러운 소음을 내는 모터를 작동시킨 것이라고 회상했다. 한편, 사형집행인들은 횃불과 함께 사형에 쓸 도구를 들고 둥글게 판 구덩이 가장자리에 모였다. 포격을 맞은 것처럼 땅이 푹 꺼져 있었다. 사형집행인은 집 안에 있던 죄수를 한 사람씩 사형장으로 끌고 갔다. 그전에 사형수에게 새로운 거처에 데려왔다고 말하며 안심을 시켰다. 그래야 조용한 분위기에서 죄수를 죽일 수 있었다. “일단 죄수에게 구덩이 옆에 무릎 꿇고 앉으라고 명령해요. 그런 다음 죄수의 목 뒤를 굴대로 내려칩니다. 마지막으로 목을 벤 다음 옷을 벗기고 수갑을 풀어줘요.” (중략) 물론 두크는 사형수의 목을 어떤 방식으로 베는지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는 있었다. 말을 하는 동안 그의 음성이 저음으로 낮아졌다. (/ pp.205~208)

    두크의 자백

    죄수들의 자백을 받아내는 데 일가견이 있었던 두크가 세월이 흘러 이제는 심문을 하는 입장에서 심문을 받아야 하는 피고인이 되었다. 책의 서두에서 묘사되는 재판의 시작 장면에서 두크는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제 본명은 깡 켁 이우Kaing Guek Eav이지만 혁명군에 들어가면서부터 두크Duch란 이름을 썼습니다. 저를 포함해 부모님과 식구들, 제 조국의 국민을 자유롭게 한다는 명분으로 혁명군에 가담했지요. 하지만 궁극적으로 제 조국은 참담한 비극을 겪어야 했고 17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한 인간으로서, 정의를 믿는 한 사람으로서 제가 몸담았던 캄푸치아 공산당이 이 모든 불행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조차 불가능했어요. 도망쳐 나올 수도 없었고 무조건 상급 기관의 명령에 복종해야 했으니까요. 저는 감옥에서 사람들을 심문하는 일을 주로 했어요. 결코 내 손으로 누군가를 죽인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죽이진 않았어도 분명 저 대신 다른 사람이 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죠. 단지 제 손에는 펜이 들려 있었고 제 손놀림이 한 사람의 생사를 결정했어요. 제가 심문한 죄수에 대한 평가를 상부에 보고했으니까요. 저는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평가서를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위에서는 죄수들의 자백을 근거로 새로운 범죄자를 체포하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었죠. 저는 혁명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고 제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어요. 솔직히 말하면 그 당시엔 혁명 세력이 세운 정권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세월이 한참 흐른 지금,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온몸에 소름이 돋는군요. 제가 1만2000명이 넘는 사람을 죽이는 데 함께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부끄럽습니다.” (/ pp.23~24)

    두크는 치명적인 실수 두 가지를 저질렀다. 그것은 그가 수학자의 편집증적 실력을 발휘해서 꼼꼼하게 기록한 교도소의 각종 심문문서와 정부와 주고받은 문서 등을 폐기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예술가를 살려뒀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이 개입한 범죄 행위와 관련된 수천 페이지의 문서를 내버려둔 채 교도소를 떠났다. 또 자신에게 등을 돌리고 말 매우 위험한 화가를 죽이지도 않았다. 완 낫이 S-21에 있을 당시 그린 그림들은 모두 사라졌다. 하지만 해방 후에 그가 그린 그림들이 박물관에 전시되면서 후대 사람들이 공포스러운 상상을 떠올리는 데 일조했다. S-21이 가져다주는 공포, 고문과 처참한 형벌을 받아야 했던 죄수들의 삶은 30년의 세월이 지나 14장의 그림으로 남았다. 어떤 증언이 생존에 성공한 예술가가 남긴 작품보다 더한 위력을 지닐 수 있을까. 현재 박물관을 찾는 방문객들은 전시된 그림들을 보며 머릿속에 지울 수 없는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 p.308)

    성폭행, 구타, 전기충격, 배설물 먹이기……인간이 인간에게 이럴 수 있는가?
    혁명에 눈을 뜨게 해준 최초의 멘토인 꺼 낌 훗과 그의 혁명 동지인 아내는 S-21에서 모진 고문으로 몸이 상한 상태에서 결국 목숨을 잃었다. 꺼 낌 훗은 심한 구타와 전기 충격을 받은 것도 모자라 배설물을 삼켜야 하는 고문까지 받았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감옥에 있으면서 막대기로 성폭행을 당했다. “우리는 두크가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는 점에 동의할 것입니다. 그 일이 어쩔 수 없이 필요했다고 여기며 사악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조직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피고인이 자필로 쓴 글을 보면 알 것입니다. 죄수를 죽이라는 지시 사항이 담긴 글이 발견되었습니다. 그 문서를 보면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나 후회의 흔적이 전혀 없고 냉정한 태도로 일관한 업무의 효율성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17명의 죄수가 나온 한 명단을 살펴본 결과, 9명은 어린아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크는 ‘펭은 명단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여라’라는 간단한 지시 사항만 적었습니다.” (/ p.471)

    공산주의의 유토피아적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반인륜적인 행동마저 정당화시킨 크메르 루즈의 대학살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하다면, 전범자 두크를 재판하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전달한 이 책은 더 할 나위 없는 지식의 보고가 될 것이다.

    목차

    1. 세계가 주목한 재판
    2. 깡 켁 이우의 탄생
    3. 채소를 수확하다가 끌려가다
    4. 고등학교를 개조한 살인공장 S-21
    5. 차가운 고문과 뜨거운 고문
    6. 양치기 개
    7. 몸이 으스러지도록 구타하라
    8. 대단한 일벌레
    9. 살인자의 수사학
    10. 폴 포트는 숭고했다
    11. 처형장에 끌려가던 날
    12. 불에 달군 쇠막대기를 콧구멍에
    13. 독재 정권에서 학살자란 더할 나위 없는 직업
    14. 캄보디아인의 사고방식
    15. S-21에서 죽은 78명의 외국인
    16. 쯔엉 엑 혹 은 킬링필드
    17. 왜? 왜? 왜?
    18. 예술가들, 목숨을 건지다
    19. 두크의 청년 시절
    20. 두크의 교사 시절
    21. S-21의 전신 M-13
    22. CIA 아니면 KGB
    23. 폐허의 장소에 가다
    24. 안롱벵, 살인자들의 마지막 은신처
    25. 타 목의 상
    26. 죽음의 라인
    27. 프놈펜에서의 탈출
    28. 두크의 부하 몸 나이의 침묵
    29. 풍 떤 교수가 불러일으킨 파문
    30. 제발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게
    31. 지식인의 비극적 운명
    32. 한 엘리트의 죽음
    33. 왜 곧바로 죽이지 않았을까
    34. 두크는 정신질환자가 아니다
    35. 물의 축제
    36. 민주 캄푸치아의 역설
    37. 두크의 죄
    38. 변호의 대가 vs 자백의 대가
    39. 지랄맞은 감동을 준 유창한 웅변술
    40. 선고

    역사적인 지표
    감사의 글
    옮긴이의 말

    저자소개

    티에리 크루벨리에(Thierry Cruvellier)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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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의 저널리스트로 전범들에 대한 국제재판을 전문적으로 취재해왔다. 펴낸 책으로 [실패한 자들의 재판: 르완다를 위한 뉘른베르크 재판인가](2006) 등이 있다. 지은이는 예리한 관찰력과 필력을 바탕으로 현장에서보고 들은 것을 긴박감 넘치는 묘사와 예리한 질문으로 바꿔내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 그가 찾아다녔던 법정에서 일어난 것은 늘 한 편의 드라마였으며 지은이는 민감한 연극적 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우리에게 당시에 일어난 일이 어떤 종류의 것이었는지를 들려준다. 그것은 법정 안에서의 일들을 넘어서서, 피고인의 개인적 삶에 대한 치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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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렌(Rennes) Ⅱ대학에서 불문학 석사, 박사 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잡지와 어린이 책을 번역하는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며, [환경위기 지도], [세계 농작물 지도], [세계 분쟁지도], [늑대의 숨겨진 삶], 세계 기후 지도], [사람은 왜 죽나요], [선과 악], [철학 맛보기 26], [페달을 밟아라] 등 많은 작품을 번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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