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얽힘의 시대 : 대화로 재구성한 20세기 양자 물리학의 역사[양장]

원제 : The Age of Entangl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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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양자 물리학의 역사를
한 편의 대하 다큐멘터리로 만들다


[얽힘의 시대]는 20세기 양자 물리학의 역사를 대화로 재구성한 것이다. 자료 수집과 집필 기간만 장장 8년 반. 프롤로그와 36막으로 구성된 본문 및 에필로그 원고는 2300매, 핵심이 되는 물리학 용어 설명과 본문을 가득 채운 인용문의 출처를 세세히 밝힌 미주만 해도 근 1000매에 이를 정도로 장대한 책이다. 여기에 주연과 조연, 단역으로 등장해 다양한 개성을 드러내는 수많은 물리학자들의 삶과 이론을 주제별로 찾아보도록 종횡으로 연결된 인덱스가 30여 쪽에 이른다.
이 책은 시간적으로는 20세기 초 양자론 태동기부터 양자 얽힘 현상을 입증하고 실제 적용되고 있는 21세기 초까지를 그린다. 공간적으로는 20세기 전반기엔 독일, 스위스, 덴마크 등 유럽이 중심 무대이고, 후반기엔 나치 치하에서 대거 미국으로 망명한 물리학자들 때문에 주무대가 미국으로 바뀐다. 여기에다 얽힘 현상을 밝히는 데 주연 중 한 사람인 데이비드 봄이 머물던 브라질까지 무대가 넓어진다.
내용은 서로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 두 개의 주제와 과정으로 전개된다. 전반부인 16장까지는 20세기 전반기 과학계에 혁명을 몰고 온 양자역학 자체에 이야기의 초점이 맞춰진다. 막간 이야기를 지나 17장부터 시작되는 후반부는 기존 양자역학에 대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과정과 그 일환으로 밝혀진 양자 얽힘 현상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양자역학의 태동에서 양자 얽힘의 입증에 이르는 약 한 세기를 그린 이 책은 수많은 등장인물이 그 시대의 역사적 맥락 하에서 겪게 되는 시대적 고민도 풍부하고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 아인슈타인을 비롯해 여러 과학자들이 나치 치하에서 겪게 되는 탄압과 갈등, 특히 나치의 "유전적으로 손상된 자손을 금지하기 위한" 법안의 통과로 다운증후군을 앓던 아들을 총으로 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 에렌페스트의 이야기는 야만적인 시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또 오펜하이머의 제자인 데이비드 봄이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혀 외국을 전전하면서 외롭고 힘겹게 자신의 이론을 구축해 나가는 과정, 그리고 존 벨을 위시한 젊은 과학자들이 자유분방하고 열정적인 정신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가는 장대한 이야기가 서로 얽히고설키면서 유유히 흘러간다.
이렇게 해서 이 책은 양자론과 물리학자들의 삶이 한데 어우러져 풍성하고 드라마틱한 한 편의 대하 다큐멘터리가 되었다. 여기에다 저자의 시적이고 서정적인 묘사, 물리학자들만이 표현할 수 있는 물리 이론에 비댄 재치 있고 유쾌한 농담이 곁들여져 읽는 재미를 더한다.

대화와 인용으로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재현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어떤 개념을 강의실에서 설명하듯이 소개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물리학 교과서에서 받는 느낌 때문에 물리학은 틀 속에 갇히고 말았다. 교과서 속의 물리학은 진공 밀폐된 상자 속에 들어 있는 완벽한 조각상처럼 보인다. (...) 하지만 이들에게서는 인간미라든가, 해결하지 못한 질문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인식을 좀체 찾아볼 수 없다. 실제로 물리학은 인류가 시작하긴 했지만 결코 끝나지는 않을 탐구의 과정이다. (...) 교과서에 나와 있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설명 때문에 각 개념의 과거와 미래를 보여 줄 온갖 구불구불하고 기이하고 매력 넘치는 길들이 제대로 드러날 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이 책은 이론 설명을 중심에 둔 것이 아니라 이론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 그 속에 물리학자들의 삶을 녹여 내면서 생명력 있는 이야기로 그려 내고자 했다. 논문, 신문, 잡지, 책, 편지, 비망록 등 온갖 출처에서 나온 인용문들로 가득 찬 책이 된 것도 정확한 사실 기록과 생생한 묘사를 위해서였다. 그리하여 책 전체가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현장감을 뿜어낸다. 저자는 책 서두에서부터 '대화'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양자역학이 어떤 천재가 마술과도 같은 방정식을 풀어서 내린 결론이 아니라 숱한 천재 과학자들의 고뇌, 영감, 대립과 반목, 그리고 모색의 과정임을 보여 준다. 저자가 마치 과학자들 간의 대화에 끼어들어 각자의 이야기를 '중계'해 주는 듯한 서술 방식을 취한 것도 박제된 역사가 아니라 살아 있는 역사의 현장을 재현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이런 방식은 특히나 여러 과학자들의 집단적인 협력과 동시에 반목의 결과이기도 한 양자역학의 참 모습을 진솔하게 그려 내게 했다. 다만 이해하기가 그리 만만치 않은 주제를 '생중계' 방식으로 전개하다 보니 내용이 이리저리 얽히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일반 독자들을 양자역학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게 하기에 손색이 없다. 과학적 명제나 원리를 단순명쾌한 설명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이론을 둘러싼 위대한 과학자들의 고군분투 과정 속에 그려 내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이야기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얽힘' 현상을 파헤치고
실험물리학의 성과를 보여 주다


이 책은 20세기 가장 미묘하고 지적인 양자역학의 세계를 흥미롭고 정교하게 재창조한 서술 방식도 독특하지만 '얽힘(entanglement)' 현상을 집중적으로 파헤친 책이라는 점도 큰 의미가 있다. 현재 양자역학에 관한 책은 많이 소개되어 있지만 양자 얽힘을 주제로 삼은 책은 참고할 만한 게 별로 없다. 또 기존에 양자역학을 다룬 책이 많기는 하지만 주로 코펜하겐 해석을 중심으로 양자역학을 설명하거나, 조금 더 나아가 코펜하겐 해석과 실재론자와의 대립을 다루는 정도에 그쳤다. 그런 의미에서 양자 얽힘이라는 주제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20세기 전반기의 양자역학의 전모와 국소적 실재론자와의 대립, 그리고 이 대립의 결과로 드러난 불가사의한 비국소성 즉 얽힘의 세계를 그려 낸 것은 이 책의 중요한 특징이다.
더불어 이 책이 20세기 중후반에 이루어진 신예 과학자들의 활약상, 특히 실험 물리학자들의 활약상에 상당한 비중을 할애하고 있다는 점도 색다르다. 양자역학을 둘러싼 20세기 전반기까지의 이론 대립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양자역학의 불완전한 해석에 만족하지 않고 도전장을 던진 데이비드 봄, 존 벨 등의 활약상과 실험 물리학자들이 양자역학을 실제로 검증해 나가는 과정이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포착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노력을 통해 양자역학이 단지 원리적으로 어떤 한계만을 정하는 이론이 아니라 양자 얽힘 현상의 발견, 이를 통한 양자 컴퓨터나 양자 암호 작성법 등 놀라운 응용 사례로 이어진다는 점을 보여 주는 것도 이 책의 미덕이다.

추천사

아주 재미있고 감격스러울 정도로 독창적인 과학의 역사.... 이 책은 과학의 주역들이 복잡다단한 개성으로 펼쳐 나간 흥미로운 삶을 되살려 낸다. 20세기 물리학을 다룬 대중적인 역사서 가운데 한 권으로 너끈히 자리 잡을 작품이다.
- 돈 하워드, [네이처]

반짝거리는 독창적인 책. 길더는 이론과 인물을 독자에게 함께 전달하는데, 이는 미국의 물리학자 제레미 번스타인이 [뉴요커]에 소개한 과학계의 풍경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한다. 길더는 실험 물리학자들의 세계도 멋지게 그려 내고 있다.
- 피터 갤리슨, [뉴욕 타임스 북 리뷰]

물리학의 골칫거리인 양자 얽힘의 역사를 재치 있고 매력적이고 정확하게 그려 낸 작품. 양자역학의 역사나 기초에 관한 책은 많다. 전문적인 책도 있고 역사적인 측면을 다룬 책도 있지만 길더만큼 독특하게 이 주제를 다룬 책은 없었다. 그녀는 이런 측면들을 종합적으로 묘사하면서 양자 얽힘이라는 현상 자체의 양자적 기이함에 초점을 두고 이 현상을 흥미롭고 알기 쉽게 소개하고 있다. 나를 사로잡은, 정말 마음에 드는 책이다.
- 조너선 P. 도울링, [사이언스]

루이자 길더가 기품 있는 서술과 시적 열정 그리고 정곡을 찌르는 은유적 표현으로 얽힘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기에, 잠시나마 내가 양자역학을 이해했다고 여길 뻔했다.
- 매트 리들리, [게놈]의 저자

루이자 길더는 지적 모험의 이야기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그 주역들을 생생하게 살려 낸다. 심오하고 아름답고 아주 독창적인 책이다.
-조지 존슨, [세상의 비밀을 밝힌 위대한 실험]의 저자

목차

삽화 목록
독자에게 드리는 글
들어가며: 얽힘
1 베르틀만의 짝짝이 양말 1978년과 1981년

논쟁 1909~1935년

2 양자화된 빛 1909년 9월~1913년 6월
3 양자화된 원자 1913년 11월
4 종잡을 수 없는 양자 세계 1921년 여름
5 시가전차에서 1923년 여름
6 빛 파동과 물질 파동 1923년 11월~1924년 12월
7 영화관에 간 파울리와 하이젠베르크 1925년 1월 8일
8 헬고란트의 하이젠베르크 1925년 6월
9 아로사의 슈뢰딩거 1925년 크리스마스~1926년 새해 첫날
10 당신이 관찰할 수 있는 것 1926년 4월 28일 그리고 여름
11 괴상하기 짝이 없는 양자 도약 1926년 10월
12 불확정성 1926년 겨울~1927년
13 솔베이 회의의 라이벌 1927년
14 회전하는 세계 1927~1929년
15 솔베이에서 다시 만난 아인슈타인과 보어 1930년
막간의 이야기: 붕괴 1931~1933년
16 실재에 대한 양자역학적 설명 1934~1935년

탐색 그리고 고발 1940~1952년

17 프린스턴에 날아든 소환장 1949년 4월~6월 10일
18 전쟁 중의 버클리 대학 1941~1945년
19 프린스턴의 양자론 1946~1948년
20 강의를 정지시킨 프린스턴 1949년 6월 15일~12월
21 양자론 1951년
22 숨은 변수 그리고 도망 1951~1952년
23 브라질에서 만난 봄과 파인먼 1952년
24 전 세계에서 온 편지들 1952년
25 오펜하이머에 맞서다 1952~1957년
26 아인슈타인의 편지 1952~1954년
봄 이야기에 덧붙이는 에필로그 1954년

발견 1952~1979년

27 변화의 물결 1952년
28 불가능 증명을 통해 증명된 것 1963~1964년
29 약간의 상상력 1969년
30 결코 단순하지 않은 실험물리학 1971~1975년
31 설정이 바뀌다 1975~1982년

얽힘 현상의 전성기 1981~2005년

32 슈뢰딩거 100주년 1987년
33 셋까지 세기 1985~1988년
34“‘측정’에 반대하여”1989~1990년
35 이것이 실질적인 용도로 쓰일 수 있다는 말인가? 1989~1991년
36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으며 1997~2002년
37 어떤 불가사의, 아마도 1981~2006년
에필로그: 다시 비엔나에서 2005년
용어 설명
보충 설명

참고문헌
감사의 말
찾아보기

본문중에서

내가 20세기 양자물리학자들의 회고록과 전기를 처음 탐독하기 시작하던 때에는 마치 영화를, 그것도 등장하는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나 실감 나고 이야기가 어디로 흐를지 점칠 수 없는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과학의 힘이 역사의 굴곡을 헤쳐 나가서 순수한 지식에 다다르는 능력이라고 할 때, 이 지식은 확고한 열정을 품은 채 특정 시기와 장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 번에 하나씩의 난제들을 해결해 나감으로써 얻어진다. 과학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그 외의 방향으로는 진행되지 않는 까닭은 상황 때문이다. 이 말이 십중팔구 진실임은 (육체와 무관한 뇌가 아니라) 등장인물과 (진리를 향한 맹목적인 전진이 아니라) 반전이 가득한 이야기 흐름을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 pp.11~12)

두 실체는 늘 상호작용을 하며 서로 얽힌다. 두 실체가 광자(빛의 작은 알갱이)든 원자(물질의 작은 알갱이)든 아니면 먼지 티끌, 현미경, 고양이 또는 사람처럼 원자로 이루어진 큰 물체든 마찬가지다. 얽힘 현상은 이 실체들이 그 밖의 다른 어떤 것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 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일어난다. 하지만 그 미세한 작용에 비해 고양이나 사람은 너무 크기 때문에 우리는 그 영향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19)
그는 셜록 홈스와 마찬가지로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놀랍도록 명쾌한 뜻밖의 판단을 내리곤 했다. "존 벨은 누구나 그렇다고 여기는 견해를 당연시하지 않고 '어떻게 그걸 아십니까?'라고 곧잘 묻곤 했지요." 그의 스승이었던 지난 세기의 위대한 물리학자 루돌프 파이얼스 경의 말이다. 초기의 공동 연구자는 그를 이렇게 기억했다. "존은 어떤 주장이 나와도 그 밑바탕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늘 탁월했어요. 게다가 아주 단순한 추론으로 오류를 집어냈답니다." 1978년까지 100편이 넘게 나온 그의 논문들은 그러한 탐구의 목록이자 그 결과 찾아낸 오류 아니면 보물들이다.
(/ pp.28~29)

아인슈타인은 그해 마지막 날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아직 광양자 문제의 해답을 찾지 못했다. 가장 좋아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줄기차게 시도할 것이다." 하지만 1910년 12월에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다. "복사파의 수수께끼는 풀릴 기미가 없다." 1911년 봄에 그는 절친한 친구인 공학자 미켈레 안젤로 베소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이 양자란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를 더 이상은 캐묻지 않겠네. 또 그에 관한 이론을 구성하려는 시도도 더는 하지 않겠네. 이제 내 머리로는 아무런 진전을 이룰 수가 없으니 말일세."
그는 3년 반의 시간을 오로지 광양자 연구에만 매진했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1911년 6월에는 새로운 문제로 방향을 돌렸다. 자신에게 가장 큰 성공을 안겨 준 문제였다. 1912년에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적었다. "현재 나는 오로지 중력 문제에만 몰두하고 있네."
(/ p.58)

에렌페스트가 아인슈타인을 처음 만났을 때 옆에 있던 라우에는 그에게 이렇게 경고했다. "아인슈타인의 말을 듣다가 질려 죽지 않도록 주의하게. 그렇게 하는 걸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그렇다고 기가 꺾일 에렌페스트가 아니었다. 두 번째 만났을 때 에렌페스트와 아인슈타인은 안개 낀 무더운 언덕을 단출히 걸으면서 무려 닷새 내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기 며칠 전에 아인슈타인이 산속에서 자신의 연구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에 열성적인 물리학자들이 몰려들었다. 여기서 에렌페스트는 예리한 질문을 이해가 될 때까지 집요하게 계속 던졌다. "이제 알겠네!"라며 의기양양하게 외치는 소리가 폰 라우에의 귀에도 생생하게 들렸다.
(/ pp.60~61)

얼마 전에 아버지를 잃은 보어는 자기보다 열네 살이나 많은 러더퍼드와 금세 가까워졌다. 둘 다 천성적으로 사교적인 지도자였다.(러더퍼드는 자기 밑의 연구원들을 북돋우려고 "믿는 사람들은 주의 군사니"란 찬송가를 엉터리로 크게 부르기를 좋아했다.) 또 둘 다 야외 활동 체질에다 축구를 즐겼다.(보어의 형제인 하랄은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다.)
1912년 여름 영국에 머물던 기간이 끝나 갈 무렵 보어는 자신이 세운 원자 가설을 러더퍼드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건 지금까지의 모든 실험 결과를 타당하게 설명할 수 있을 듯한 유일한 가설입니다. 플랑크와 아인슈타인이 개념적으로 제시한 복사의 메커니즘을 이 가설이 확인해 주는 것 같습니다." 러더퍼드는 어떤 이론이라도"술집 여종업원에게 설명할 수 없는 한" 불완전한 것이라고 여기는 터여서, 보어의 가설에는 수정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 p.70)

파울리가 입을 히죽 벌렸다. 그러고선 살라미 소시지를 한 조각 베어 먹은 뒤 풀 위에 비스듬히 기대고 누워 말했다. "가끔 내가 그 다음 단계를 내놓을 사람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그의 눈은 마치 부처님처럼 거의 감겨 있었다. "그런데"-눈이 다시 번쩍 뜨였다-"굉장히 통일성 있는 체계를 갖춘 고전물리학에 물들어 있지 않으면 길을 찾기가 더 쉬울 거야. 너희 둘은 그런 점에서 확실히 이점이 있어." 이어서 심술궂은 미소와 함께 덧붙였다. "그렇다고 지식의 부족이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아." 하이젠베르크는 이 교묘한 험담에 대해 상당히 에두르는 표현으로 반응했다. 이제 그만 돌아가자고 말했을 뿐이다.
(/ p.80)

잠시 후 파울리가 도착해 혼자 투덜거렸다. 곧이어 부드러운 바람이 마치 평온한 날에 졸졸거리며 흐르는 개울물처럼 그를 맞이하자 아래 호수가 눈앞에 들어왔다. 그는 선 채로 가볍게 몸을 흔들면서 신비스러운 눈길로 발헨 호수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마침내 파울리가 정적을 깼다. "지금 너희들에게 물리학의 두 가지 요소를 알려 줄 참이야. 오늘 강의 주제는 속력 곱하기 질량, 즉 운동량이야." 그러더니 자전거에 올라타 산길을 내려갔다. 라포르테와 하이젠베르크도 웃음을 터뜨리고선 자전거로 뒤쫓았다.
(/ pp.86~87)

아인슈타인과 보어, 양자론의 본질을 찾아 평생을 고군분투할 운명인이 둘은 3년 전에 처음 만났다. 보어가 플랑크와 함께 베를린에 머물 때였다. 파업으로 전차가 다니지 않자 아인슈타인은 약 15킬로미터를 걸어서 달렘 교외에 있는 플랑크의 집으로 가서 보어를 데리고 저녁을 함께 먹으러 그의 집으로 돌아갔다. 전후의 식량 부족은 그처럼 심각했다.
아인슈타인과 그의 가족-그 무렵에는 두 번째 아내 엘사와 아내가 낳은 두 딸-은, 아인슈타인이 보어에게 보낸 감사 편지에서 묘사한 대로 보어가 가져온 "아직도 젖과 꿀이 흐르는 노이트랄리아(Neutralia, 네덜란드가 중립국이어서 일종의 농담처럼 쓴 말-옮긴이)"에서 나온 음식으로 저녁을 차렸다.
(/ pp.91~92)

"살아오면서 자네처럼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큰 기쁨을 주는 사람을 만난 적은 별로 없었네." 1920년 아인슈타인은 보어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에서 이렇게 적었다. "에렌페스트가 자네를 왜 그토록 좋아하는지 이제야 알겠네. 지금 나는 자네가 쓴 위대한 논문들을 연구하고 있는데, 그러는 중에-특히 어딘가에서 막혔을 때-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내게 설명을 해 주는 자네의 모습을 떠올리며 즐거워하고 있네. 자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는데, 특히나 과학적인 문제에 대한 진지한 태도가 인상적이었네."
(/ p.92)

좀머펠트는 모자를 쓰고 있지 않을 때면 젊은 시절 발트 해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술 마시고 싸움이나 하는 이들과 어울리며 생긴 이마의 긴 상처가 보였다. 그의 어머니는 지적이면서도 활기찬 편이었으며 어머니보다 훨씬 연상의 의사인 아버지는 주머니에 언제나 딱정벌레, 조개껍질 또는 호박(琥珀) 덩어리를 넣고 다니며 자기 아들에게 보여 주었다. 그런 덕분에 좀머펠트는 위대한 물리학 교수가 되었으며 (일반상대성이론이 구상되는 동안 줄곧 아인슈타인과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자신의 강의에 상대성이론과 양자론을 처음으로 포함시켰다. 그는 1906년에 자신의 주도로 뮌헨에 이론물리학연구소를 설립하기 전까지 과소평가되긴 했지만 10년 동안 광물학, 탄광학과 토목공학 학생들에게 순수수학을 가르쳤다. "그분은 학생들을 위해 시간을 낼 수 있는 남다른 능력을 지녔다."고 막스 보른은 나중에 회상했다. 스키도 같이 타고 커피숍도 같이 가고 학생들이 돈이 없으면 돈도 마련해 주었을 정도다. "교수와 학생 사이의 그런 아름다운 관계는 좀체로 보기 힘든 것입니다."라고 아인슈타인은 1909년에 좀머펠트에게 쓴 편지에 적었다.
(/ pp.93~94)

"요즘 자네 활약이 대단하더군." 아인슈타인이 보어에게 말한다. 보어는 멋쩍은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렇게 답한다. "과학적인 면에서 보자면 나는 평생 과도한 행복과 절망 사이를 오가고 있다네. (…) 둘 다 알겠지만 (…) 논문을 쓰기 시작할 때는 희망에 부풀고 뿌듯함을 느끼지만 결국은 발표를 하지 않고 만다네." 보어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왜냐하면 양자론이라는 이 끔찍한 불가사의 앞에서 내 견해가 늘 바뀌기 때문이네." "나도 알지." 좀머펠트가 말한다. "물론 알고말고." 아인슈타인은 눈을 거의 감은 채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그 벽에 부딪혀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네. 정말 끔찍하게 어려운 문제지." 아인슈타인이 다시 눈을 뜬다. "요즘은 양자론과 씨름하다가 잠시 기분 전환용으로 상대성이론을 다룰 뿐이네." "하지만, 알다시피 모든 게 아주 흥미롭네." 좀머펠트도 끼어든다. "한창 젊은 내 제자 하이젠베르크가 이런 희한한 모형을 생각해 냈는데 말일세…."
(/ pp.98~99)

셋은 차에서 내려 거리로 나온다. 그래도 날씨가 좋은 데다 느릅나무 가로수가 심어진 큰길 옆에 있는 벤치에 나란히 앉았으니 그리 운이 나쁜 것도 아니었다. "아인슈타인 박사, 빛이 일반적인 의미에서 어느 정도라도 입자의 성질을 가진다는 것을 정말로 증명할 수 있다면" 보어는 주변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계속 말한다. "자네는 회절격자 사용이 불법으로 인정되는 법률이 통과될 수 있다고 정말로 믿는가?"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아인슈타인이 되묻는다. "만약 빛이 오로지 파동의 성질만을 갖는다는 것을 자네가 증명할 수 있다면, 광전지 사용을 막아 달라고 경찰에 신고할 수 있는가?"
"물론이지. 하지만 이 말은 꼭 해야겠네." 이 표현은 보어의 연구소에서는 유명한 구절이다. 보어가 덴마크어에서 독일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특이하게 말하기 때문에 생긴 버릇이다. "현재 우리는 빛과 물질 사이의 상호작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네."
(/ pp.101~102)

슈뢰딩거가 코펜하겐에 있는 보어네 집의 손님용 침대에 누워 기침을 하고 있었다. 열이 나서 붉어진 얼굴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옆에서 돌보고 있는 보어 내외는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차와 수프를 날라다 주는 아내 마르그레테 곁에서 보어는 말했다." 하지만 슈뢰딩거 박사, 자네도 양자 도약이 일어난다는 걸 인정해야 하네. (…)"
둘은 사흘째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보어가 역에서 슈뢰딩거를 데려온 이후 줄곧 그랬다. 마르그레테와 연구소의 맨 위층에 살고 있던 하이젠베르크의 하루는 이 두 고집불통이 완전히 망쳐 놓았다. 대화와 식사 그리고 산책을 할 때마다 걸핏하면 보어와 슈뢰딩거가 설전을 벌였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보어는 사람들을 대할 때 아주 사려 깊고 친절했지만" 하이젠베르크는 이렇게 적었다. "내가 보기에 요즘 그는 뻔뻔하기 그지없는 미치광이 같다. 즉 자신이 실수를 할 수도 있다고는 결코 인정하려 들지 않는 사람으로 보인다. 둘의 토론이 얼마나 격렬했는지, 그리고 각자 자기 이론에 대한 확신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전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둘이 하는 말마다 그런 냄새가 물씬 풍겼다."
(/ pp.163~164)

몇 주 후 에렌페스트는 암스테르담에 있는 바터링 교수 병원에 있는 대기실로 들어갔다. 그 연구소는 다운증후군에 걸린 열다섯 살 난 그의 아들 바실리를 돌보는 곳이었다. 히틀러는 얼마 전에 "유전적으로 손상된 자손을 금지하기 위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 첫 활동으로 '우수한 인종'을 낳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조직적으로 불임수술을 시켰다. 곧이어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장애 아동에 대한 '자비로운 죽음'이 시작되었다. 이 일은 의사가 자기 병원에서 행했다. 에렌페스트는 데스크로 가서 네덜란드어로 말했다. "나는 파울 에렌페스트인데 내 아들 바시크를 만나러 왔습니다." 늘 부르던 대로 자기 아들의 별명을 댔다. 수납원이 전화를 하고 있을 때 에렌페스트는 나란히 늘어선 똑같은 의자 중 하나에 조용히 앉았다. 간호사가 바시크를 대기실로 데려왔다. 아버지를 보자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늦은 9월의 한낮에 둘은 병원에서 걸어 나와 근처 공원으로 갔다. 그곳에서 많은 이들이'물리학계의 양심'으로 아끼던 에렌페스트는 권총을 꺼내더니 먼저 아들을 쏘고 이어서 자기를 쏘았다. 나중에 부치지 않은 편지 한 통이 에렌페스트의 책상에서 발견되었다. 날짜는 1933년 8월 14일로 한 달이 약간 넘어 있었다. 내용은 이랬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삶의 짐을 이끌고 앞으로 몇 달 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네. (…) 자살을 하게 될 것이 분명하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내가 서둘지 않고서 평온하게 자네들에게 편지를 썼다는 사실을 그 무렵에 떠올리고 싶네. 내 인생에 참으로 소중했던 친구가 되어 주었던 자네들에게 쓴 이 편지 말일세. (…) 근래에 나는 [물리학의] 발전을 이해하며 따라가기가 더욱 어려워졌네. 애를 써 보아도 더욱 나빠만 지고 엉망진창이 되네. 결국 난 절망 속에서 포기하고 말았네. (…) 그러자 완전히 '삶에 지쳤네.'(…)"
(/ pp.251~252)

저자소개

루이자 길더(Louisa Gilder)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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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매사추세츠 주에서 태어났다. 2000년에 아이비리그 대학 중 하나인 다트머스 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몇 년 동안 캘리포니아의 한 염소 농장에서 젖 짜기와 치즈 만드는 일을 하면서 8년 반 동안 자료를 수집하고 이 책을 썼다. 책을 쓰는 동안 와이오밍 주 옐로우스톤 국립공원 근처에서 영화관의 영사기사로 일하기도 했다. 현재 매사추세츠 주 버크셔 힐의 산자락에서 동물들을 기르며 생리학 관련 새 책을 쓰고 있다.
그는 도식적이고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시대와 사회 속에서 협력과 갈등을 겪는 살아 있는 과학자들의 모습을 보여 주고자, 그들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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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환경과 생명 운동 관련 시민단체에서 해외 교류 업무를 맡던 중 번역가의 길로 들어섰다. 과학과 인문의 경계에서 즐겁게 노니는 책들, 그리고 생태적 감수성을 일깨우는 책들에 관심이 많다.
옮긴 책으로 [교양인을 위한 수학사 강의], [마음의 그림자], [뉴턴의 시계], [그리스 로마 신화를 보다 1, 2], [부정 본능], [우주비행사의 지구생활 안내서] 등이 있다. 저글링을 하면서 즐겁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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