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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우한테 잘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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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나의 고독한 두리안 나무] [라구나 이야기 외전]의 작가
    박영란 신작소설


    코끼리 발목을 잡고 있는 끈.
    그거 누가 끊어야 하는지 아냐?
    그래, 자기 자신! 자신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자신뿐.


    필리핀인 아버지를 부끄러워하는 나는 ‘삶은 나에게 다정하지 않아’ 푸념하는 엄마와 단둘이 산다. 아버지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결국 결손가정의 혼혈아로 태어난 자신에 대해서도 부정하고픈 아픔을 감추고 있다. 부유한 집안에, 과학고는 거뜬하게 입학할 수 있는 화려한 스펙을 갖고 있는 녀석은 자신을 혼자 두고 한 달의 절반 이상을 해외여행 하는 부모보다 배에 육종을 매달고 낑낑거리는 애완견 ‘몽’에게 더 마음을 주며 늘 ‘답답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헬로키티 입이 왜 없는 줄 알아?
    어렵다. 새끼야, 뭔데?
    말하지 말라고.
    듣기만 하라고.
    듣기만?
    그래서, 헬로키티가 어떻게 된 줄 알아?
    모르지.
    자살했대.
    자살? 왜?
    말을 못하니까.
    말을 못한다고 자살을 해?
    헬로키티 일가족이 모두 자살했어.
    아무리.
    실은 속 터져 죽은 거야. 자살이 아니고.
    끔찍하다.
    누가 더 끔찍한 거 같냐.
    누구라니?
    헬로키티를 만든 사람이냐. 헬로키티 자신들이냐.
    와, 짜식, 오늘 또 힘들게 하네.

    확연한 집안의 경제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녀석과 나는 입이 없어서 답답해 속 터져 죽은 헬로 키티의 죽음을 절대 공감하며 키득대는 친구 사이이다.
    J학원의 과학고 입시 준비반에서 만난 녀석과 나는 각 학교에서 톱으로, 공부 꽤나 한다는 아이들과 함께 열심히 입시 준비를 하는 한편으로는 도둑질이라는 일탈로 어긋난 휴식을 취하며 짜릿해한다. 학원가에서 최고 강사로 손꼽히는 강과가 자신들의 목표인 일류대 엘리트 코스를 졸업하고 학원가에 다시 돌아온 현실. 입시의 강박감과 불확실한 미래가 아이들을 엉뚱한 일탈로 내몬 것이다. 도둑질이 발각되었을 때에도 당사자인 아이들은 제외되고 학원과 부모에 의해 모든 문제가 처리된다. 그들에겐 오직 공부에 집중하여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것만이 목표로 주어진 것이다. 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만이 아이들의 몫인 것이다.
    녀석이 마지막 보낸 문자의 영우는 누구인가?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학원가로 돌아와 명강사가 된 강과는 돈을 많이 모으면 모나코 왕국에 가서 ‘여행자를 위한 여관’을 할 거라고 했다. 강과는 공부의 극한을 맛보았기 때문에 어떤 어려운 일도 겁나지 않는다고 했다. 강과의 꿈인 여관에 녀석과 내가 “00에게 잘해줘”라고 이름 짓고, 아무렇게나 가져다붙인 이름이, “영우에게 잘해줘”였음을 나는 이제야 떠올린다. 그때 녀석이 말했다. “코끼리 발목을 잡고 있는 끈은 누가 끊어야 하는가? 자기 자신… 자신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자신뿐.” 녀석이 끊어내려고 했던 것은 아무런 전망도 없이 오직 익숙해져야만 하는 하나의 세계였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엘리트 코스를 제대로 걷고자 몸부림치는 아이들 내면의 번민은 어른들에 의해 만들어진 낡은 세계의 몰락을 의미하며, 아이들은 새로운 희망, 길을 찾고자 한다.
    소설은 현실의 많은 ‘영우’에게 박영란 작가 특유의 섬세한 심리 묘사와 문장으로 말하고 있다. 너 자신에게 잘해줘, 라고. 어른들의 의해 기획된 삶보다는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아이들에게 자기 자신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뿐이라고 말이다.

    줄거리
    3년 전 J학원 과학고 입시 준비반에서 나와 녀석은 만나 함께 공부한다. 녀석은 180 키에 엄청난 지방 덩어리를 소유한 ‘자이언트 코끼리’. 나는 유쾌하고 박학다식하지만 다소 관조적이고 고독한 녀석과 붙어 다니게 된다.
    지역 지주인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녀석과는 달리 나는 불법체류자였던 필리핀인 아버지와 결혼한 엄마 사이에서 태어났고, 지금은 대형 마트에서 열심히 일하며 생계를 꾸려가는 삶에 만족하는 엄마와 단둘이 산다. 나의 아킬레스건은 이주 노동자인 외국인 아버지. 가족을 부양하지 못한 무책임한 아버지의 존재는 부정하고만 싶다.
    공부만이 남들과 똑같아질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하는 나는 마땅치 않아 하는 엄마를 설득해 힘들게 과학고 준비반 학원에 등록하여 다니고 있지만, 녀석은 몇 년째 학원가의 터줏대감으로 막강한 수상 실적과 집안 배경 덕에 ‘신족’으로 분류되며 다니고 있다. 하지만 화려한 ‘스펙’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늘 절대 고독에 침잠해 있다.
    4월 어느 날, 나를 포함한 올림피아반 아이들 열 명은 지구과학 교재를 도둑질하면서 짜릿한 쾌감을 맛본다. 이후 아이들은 전사가 되어 문구점, 편이점 등에서 물건을 훔치며 임박해오는 KBO(한국 생물 올림피아드) 시험 날짜와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나와 녀석은 죄책감에 한두 번으로 그만두었지만 일부 아이들의 도둑질은 계속 되고, 결국 발각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 죄는 녀석에게 옴팡 뒤집어씌워지고…… 다행히, 사건은 녀석의 아버지 ‘힘’으로 무마되었지만, 몇 년째 학원가 생활을 했던 녀석에게는 이미 그와 같은 전례가 있었으며, 사람들은 학원가의 모든 문제를 녀석과 연결시켜 버린다.
    KBO 시험 12일을 남겨놓고 건너편 U학원 여학생이 옥상에서 투신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그 범인으로 녀석이 지목된다. 진실이 밝혀지고 무마되었지만 녀석은 학원가에서 종적을 감추고, 나와는 아주 가끔 안부 문자만을 주고받는다.
    나는 잠시 경험한 학원가 생활로 과학고에 꼭 가야 하는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다시 학원가로 돌아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일류 강사 강과를 보며 결국 자신이 힘들여 하는 공부의 종착지가 학원 강사인가, 목표를 잃게 된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를 사랑해서 결혼했고 한때나마 아버지가 남자였음을 고백하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에 응어리져 있었던, 아버지의 존재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접게 된다.
    올림피아드 반 열 명 중 세 명과 녀석은 과학고에, 그리고 나는 일반고에 진학했다. 그러나 해가 바뀌어서 일반고 1학년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녀석의 문자를 받게 되고, 그리고 또다시 시간이 흐른다. …
    나는 간신히 서울에 있는 대학에 붙었고, 녀석에게 ‘영우한테 잘해줘라’ 문자를 받는다. 영우가 누굴까?

    작가의 말
    엄살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일찍 알아버린 사람들 이야기가
    나를 찾아오는 이유는 아마도, 나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니 오만할 필요도, 겸손할 필요도 없는 일을 나는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다만 이야기와 마주할 때 '어떤 정직'을 유지하려 애쓸 뿐입니다.

    본문중에서

    아버지를 생각하면 나는 무기력 상태에 빠지고 만다. 떠올리기도 전에 나를 좌절시키는 사람. 한때 불법체류자였던 남자. 불법체류자 신분을 벗어나기 위해 엄마와 결혼했다는 오명을 벗지 못한 사람. 그런 사람이 나의 아버지다. 겁먹은 듯 커다란 눈동자, 구부정한 등 때문에 더욱 작아 보이는 키, 똑같은 옷을 입어도 한국인이 아니라는 티를 숨길 수 없는 동남아 풍 체격, 아무리 능란하게 해도 어딘지 서툰 한국말, 그런 사람이 내 아버지다.
    (/ p.28)

    저녁식사 후 우리는 문구점으로 몰려갔다. 그리고 몇몇 놈은 컬러 펜이며 컴퓨터용 지우개 따위를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왔다. 마구잡이 식이었다. 그 물건들이 꼭 필요한 것도, 딱히 갖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런 아슬아슬한 순간의 긴장을 즐기는 일에 몰두했다. 물건을 주머니에 집어넣는 쪽이든, 그런 아이를 보호해준답시고 몸으로 가려주는 시늉에 열을 올리는 쪽이든, 뒤따라 다니면서 망이랍시고 봐주는 쪽이든 긴장된 순간을 즐기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모두 열기에 휩싸였다.
    (/ p.79)

    라면을 먹으면서 강과는, 나중에 언젠가는 모나코 왕국에 가서 ‘여행자를 위한 여관’을 할 거라고 했다. 물론 돈을 많이 번 후에. 그리고 강과는 공부의 극한을 맛보았기 때문에, 어떤 어려운 일도 겁나지 않는다고 했다. 공부의 극한을 맛본 놈과 그렇지 않은 놈의 인생이 같을 것 같냐? 했다.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고 했다. 인생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가 다르다는 거였다.
    (/ p.146)

    아무것도 모르면…… 이 세상에 대해서 아무 고민도 없으면 도리어 행복을 찾기 쉬워. 아주 단순하게. 우리 엄만 골치 아픈 건 딱 질색이지. 그래서 나도 질색하지. 아들이 아니라, 참고 견뎌야 하는 괴상한 생물체로 생각하거든. 난 키메라니까. 하긴 뭐, 낳기 싫은 아이를 인공수정 방식으로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강제 탄생시켜 키우려니 힘든 거지. 그것도 괴물을 둘씩이나. 게다가 형은……. 아무튼 이 괴상한 생물체인 나를 양육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를 뭔가로 풀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 우리 엄만. 온갖 종류의 백이니 구두니 실내장식 같은 걸로. 크루즈 여행도 그 일환으로 벌이는 행사인 셈이지.
    (/ p.191)

    우리가 문제 풀이에 열중하는 사이 부모들이 호출되었다. 우리가 일으킨 사건은 학원장과 부모들과 피해자들이 해결하고 있었다. 우리는 아무 상관도 없어 보였다. 사건의 중심인물인 여섯 아이들은 물론이고 우리 넷도 더 이상 그 일로 불려 다니지 않았다.
    (/ p.217)

    엄마는 아버지가 남자로 보이더라고 했다. 까무잡잡하고, 왜소하고, 눈만 커다란 필리핀 남자가 어느 날 사람으로 보여서 결혼했다고 했다.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필요가 없었다. 아버지가 남자로, 사람으로 보였다는 말은 사랑했다는 말인 것이다. 나는 그 순간 어른이 되어버렸다.
    그날 이후 나는 아버지의 전화를 피하지 않았다. 더 이상은 아버지 때문에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었다. 아버지가 엄마가 사랑한 남자였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 이후 적어도 나는 아버지를 창피해하지는 않게 되었다.
    (/ p.244)

    그거 생각해봤냐?
    녀석이 물었다.
    뭘.
    강과가 한다던 그 ‘여행자를 위한 여관’ 이름.
    전혀. 너는?
    ……네 인생에 잘해줘!……어때.
    나쁘진 않네. 그런데 ‘인생’, ‘꿈’ 이런 단어들은 너무 적나라하게 쓰면 뭔가 분위기가 없지 않냐? 은유가 있어야지. 감추는 듯, 속사정이나 숨겨진 의미가 있는 듯, 그런 이름으로.
    (/ pp.264~265)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경북 영양
    출간도서 11종
    판매수 2,308권

    장편소설『편의점 가는 기분』과 『다정한 마음으로』『못된 정신의 확산』외에 여러 장편을 펴냈고, 단편집『라구나 이야기』가 있다. 동화 『옥상정원의 비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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