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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쳐가는 노래 : 제21회 대산문학상 시 부문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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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두권의 시집을 통해 낯선 화법에 실린 선명하고 감각적인 이미지와 독창적인 은유의 세계를 펼쳐 보이며 최근 우리 시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시인으로 떠오른 진은영 시인의 세번째 시집. 4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현실세계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 속에 사회학적 상상력과 시적 정치성이 어우러진 새로운 감각의 세계를 선보인다.

    특별한 사랑의 감각, 고요하게 떨리는 시

    2000년 [문학과사회]로 등단한 이후 두권의 시집을 통해 낯선 화법에 실린 선명하고 감각적인 이미지와 독창적인 은유의 세계를 펼쳐 보이며 최근 우리 시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시인으로 떠오른 진은영 시인의 세번째 시집 [훔쳐가는 노래]가 출간되었다. 4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현실세계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 속에 사회학적 상상력과 시적 정치성이 어우러진 새로운 감각의 세계를 선보인다. 2011년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그 머나먼] 외 5편([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훔쳐가는 노래] [망각은 없다] [아름답게 시작되는 시] [오래된 이야기])을 비롯하여, 철학적 사유와 성찰이 깃든 매혹적이고 환상적인 언어와 감각적이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간명한 표현들로 정제된 총 50편의 시편이 저마다 강렬한 인상을 새긴다.

    세상의 절반은 붉은 모래/나머지는 물//세상의 절반은 사랑/나머지는 슬픔//붉은 물이 스민다/모래 속으로, 너의 속으로//세상의 절반은 삶/나머지는 노래//세상의 절반은 죽은 은빛 갈대/나머지는 웃자라는 은빛 갈대//세상의 절반은 노래/나머지는 안 들리는 노래([세상의 절반] 전문)

    ‘사회참여와 참여시 사이에서의 분열’을 창작과정의 문제로 고민해온 진은영 시인은 "아름답고 동시에 정치적인 시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는 몇 안되는 시인"(신형철)으로 꼽힌다. 2000년 이후 등단한 많은 젊은 시인들이 그렇듯이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에 관심을 보여온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무엇’과 ‘어떻게’를 적절하게 결합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문학적 글쓰기와 현실정치의 간극 속에서 문학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어떻게 만나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여실히 보여준다.

    홍대 앞보다 마레 지구가 좋았다/내 동생 희영이보다 앨리스가 좋았다/철수보다 폴이 좋았다/국어사전보다 세계대백과가 좋다/아가씨들의 향수보다 당나라 벼루에 갈린 먹 냄새가 좋다/과학자의 천왕성보다 시인들의 달이 좋다//멀리 있으니까 여기에서//(...)//엘뤼아르보다 박노해가 좋았다/더 멀리 있으니까/나의 상처들에서//연필보다 망치가 좋다, 지우개보다 십자나사못/성경보다 불경이 좋다/소녀들이 노인보다 좋다//더 멀리 있으니까//(...)//혁명이, 철학이 좋았다/멀리 있으니까([그 머나먼] 부분)

    삶의 한 지점에 발을 딛고 선 시인은 타성의 울타리 안에 갇힌 관습적이고 지루한 일상에 고착된 시선을 거두고 진실에 가까운 삶의 실체를 보고자 한다. 가까이 있는 상처를 들여다보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더 멀리 있는 낯선 삶을 들여다보는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상처가 치유될 수 있다고 보는 시인은 "어떤 이야기가,/어떤 인생이,/어떤 시작이/아름답게 시작된다는 것은 무엇일까"([아름답게 시작되는 시])를 생각하며, "가장 낡은 변두리에서 흘러나오는 더운 하수 같은 노래"가 흐르고 "미로처럼 생긴 거리들에서 일제히 떠오르는 빨간 풍선 같은 소망"([Bucket List])이 이루어지는 ‘혁명’과 ‘철학’의 세계로 시야를 넓혀간다.

    옛날에는 사람이 사람을 죽였대/살인자는 아홉개의 산을 넘고 아홉개의 강을 건너/달아났지 살인자는 달아나며/원한도 떨어뜨리고/사연도 떨어뜨렸지/아홉개의 달이 뜰 때마다 쫓던 이들은/푸른 허리를 구부려 그가 떨어뜨린 조각들을 주웠다지//(...)//그건 오래된 이야기/옛날에 살인자는 용감한 병정들로 살인의 장소를 지키게 하지 않았다//그건 오래된 이야기/옛날에 살인자는 아홉개의 산, 들, 강을 지나/달아났다/흰 밥알처럼 흩어지며 달아났다//그건 정말 오래된 이야기/달빛 아래 가슴처럼 부풀어오르며 이어지는 환한 언덕 위로/나라도,/법도, 무너진 집들도 씌어진 적 없었던 옛적에([오래된 이야기] 부분)

    사회참여와 감각 사이의 갈등 속에서 새로운 시적 화법에 "시의 정치성에 대한 자신만의 오랜 고민"(함돈균)을 담아온 시인은 동화적인 상상력과 알레고리를 접합하여 국가폭력이 합법적으로 자행되고 ‘살인자’가 오히려 당당하게도 버젓이 "살인의 장소"를 점령하는 오늘의 현실을 환기한다. "나라도,/법도, 무너진 집들도" 제대로 씌어지지 못하는 시대, "내가 보았던 모든 것이 거짓말인 것 같"([이 모든 것])고, "모두가 공범자, 맛의 죄인들"([아주 커다란 호박에 바치는 송가])인 이 비루한 시대의 상처를 선연하게 드러내며 시인은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기적이 일어"([기적])나기를 바란다.

    내 죄를 대신 저지르는 사람들에 대해/내 병을 대신 앓고 있는 병자들에 대해/한없이 맑은 날 나 대신 창문에서 뛰어내리거나/알약 한 통을 모두 삼켜버린 이들에 대해//(...)//불어가는 핏빛 바람에 대해/할 말이 있다//나 대신 이 세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희망하는 이들과/나 대신 어두워지려는 저녁 하늘/들판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검은 묘비들/나 대신 울고 있는 한 여자에 대하여([고백] 부분)

    ‘삶과 정치의 실험이 문학적 실험에 선행되어야 한다’고 믿는 시인은 통제와 억압의 질서를 해체하고 모순투성이의 이 세계에 간섭하고자 한다. "문학과 정치, 영혼과 노동, 해방에 대하여"([멸치의 아이러니]) 끊임없이 고민해온 시인은 결연한 의지로 "신문이 시처럼 읽히는 둥근 십자로"와 "망루에서 죽은 자에게/빌딩처럼 멋진 묘비를 세워주는 도시"([지도를 찾아서])를 찾아서 "신비한 질병과 미지의 악취"가 풍기는 "텅 빈 광장"([망각은 없다])으로 나선다. 그것은 곧 ‘다른 이름’이 아닌 ‘시인’으로서 자신의 "얼룩"과 "천부적인 더러움"([나의 아름다운 세탁소])을 기꺼이 내보이며 ‘진실된 감정과 자신만의 독특한 음조로 새로운 노래를 찾아’가는 노정에 다름아닐 것이다.

    우리의 갈비뼈 하나를 뽑아/진실을 만드세요, 하느님/그녀와 손잡고 나가겠습니다([거리로] 전문)

    추천사

    인생을 시로 잘게 분할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기다란 선분을 무수한 작은 점들로 나눈 것처럼 될까? 그 점들을 다시 합치면 원래의 선분이 될까? 그렇게 산술적으로 딱 떨어질까? 진은영의 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인생을 시로 분할하면 감각의 무한소수로 이루어진 이야기들이 탄생한다. 한편의 시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하나의 삶이 드러난다. 긴 선분을 나누면 더 기나긴 선분이 나타난다. 이것이 시의 수학이요 마술임을 진은영의 시는 증언한다. 이때 진은영의 시가 시작하는 삶이란 내게 주어진 삶으로부터 너무나 머나먼 동시에, 더 가까이 두고, 더욱 간절히 사랑하고 싶어지는 그런 삶이다. 이 세계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기어이 이 세계에 속해 있는 삶이다.
    나는 몇년 전 진은영에게서 단어들을 선물로 받은 적이 있다. 그녀는 자신의 시에서 단어들을 골라 나에게 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 낯선 단어들을 사용하여 시를 썼다. 카이로에서 팔레스타인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생을 마감한, 가난한 시민이자 슬픈 시인인 어떤 사람에 대한 시였다. 만약 가난한 시민들과 슬픈 시인들로 이루어진 공동체가 있다면, 그들이 진은영의 단어들을 작은 돌처럼 주머니 안에 넣고 다닌다면, 가끔 그것들을 꺼내 양식으로 삼을 수 있다면, 장담컨대 그들은 행복할 것이다. 말하는 돌들을 교환하기, 단어와 단어로 맺은 우정, 이것이 이 비참한 세계에서 내가 진은영과 나눈 기쁜 협약이다. 그녀의 시를 통해 독자들 또한 그녀와 우정을 나누기를, 부디 행복해지기를.
    - 심보선 / 시인

    목차

    제1부 이 모든 것
    있다
    오필리아
    아케이드
    이 모든 것
    청춘 4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쓸모없는 이야기
    영화처럼
    훔쳐가는 노래
    망각은 없다
    음악
    예언자
    토끼를 조심하라구?
    그 머나먼
    아름답게 시작되는 시

    제2부 공정한 물물교환
    인식론
    후크
    공정한 물물교환
    방법적 회의
    오월의 별
    그런 날에는
    노을
    전생
    어떤 보병
    불안의 형태
    갇힌 사람
    시인의 사랑
    N개의 기억이 고요해진다
    파리에서의 한달
    지도를 찾아서
    슬픔의 작은 섬
    세상의 절반

    제3부 지난해의 비밀
    그냥, 판도라 상자
    기적
    오래된 이야기
    단식하는 광대
    우리에게 일용할 코를 주시옵고
    지난해의 비밀
    고백
    빌뇌브의 피에타
    죽은 이의 평화
    거리로
    몽유의 방문객
    돈 후안
    Bucket List
    아주 커다란 호박에 바치는 송가
    멸치의 아이러니

    그리하여, 어느날
    자스민

    시인의 말

    본문중에서

    시인의 말

    서른살 무렵,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 카프카가 죽은 나이까지는 살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런데 하느님은 내 소원을 잘못 알아들으신 것 같다. 카프카가 쓴 것처럼 쓸 수 있을 때까지 살게 해달라는 이야기로. 그리하여 나는 그 누구보다 오래 살고, 어쩌면 영원히 살게 될지도 모른다. 이 불미스러운 장수와 질 나쁜 불멸에 나는 곧 무감해질 테지. 문학은 나에게 친구와 연인과 동지 몇몇을 훔쳐다주었고 이내 빼앗아버렸다. 훔쳐온 물건으로 베푸는 향응이란 본래 그런 것이지, 지혜로운 스승은 말씀하실 테지만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소중한 것을 전부 팔아서 하찮은 것을 마련하는 어리석은 습관을 여전히 버리지 못했다.

    2012년 8월
    진은영

    (/ '시인의 말' 중에서)

    세상의 절반은 붉은 모래/나머지는 물//세상의 절반은 사랑/나머지는 슬픔//붉은 물이 스민다/모래 속으로, 너의 속으로//세상의 절반은 삶/나머지는 노래//세상의 절반은 죽은 은빛 갈대/나머지는 웃자라는 은빛 갈대//세상의 절반은 노래/나머지는 안 들리는 노래
    (/ '세상의 절반' 전문 중에서)

    홍대 앞보다 마레 지구가 좋았다/내 동생 희영이보다 앨리스가 좋았다/철수보다 폴이 좋았다/국어사전보다 세계대백과가 좋다/아가씨들의 향수보다 당나라 벼루에 갈린 먹 냄새가 좋다/과학자의 천왕성보다 시인들의 달이 좋다//멀리 있으니까 여기에서//(...)//엘뤼아르보다 박노해가 좋았다/더 멀리 있으니까/나의 상처들에서//연필보다 망치가 좋다, 지우개보다 십자나사못/성경보다 불경이 좋다/소녀들이 노인보다 좋다//더 멀리 있으니까//(...)//혁명이, 철학이 좋았다/멀리 있으니까
    (/ '그 머나먼' 부분)

    옛날에는 사람이 사람을 죽였대/살인자는 아홉개의 산을 넘고 아홉개의 강을 건너/달아났지 살인자는 달아나며/원한도 떨어뜨리고/사연도 떨어뜨렸지/아홉개의 달이 뜰 때마다 쫓던 이들은/푸른 허리를 구부려 그가 떨어뜨린 조각들을 주웠다지//(...)//그건 오래된 이야기/옛날에 살인자는 용감한 병정들로 살인의 장소를 지키게 하지 않았다//그건 오래된 이야기/옛날에 살인자는 아홉개의 산, 들, 강을 지나/달아났다/흰 밥알처럼 흩어지며 달아났다//그건 정말 오래된 이야기/달빛 아래 가슴처럼 부풀어오르며 이어지는 환한 언덕 위로/나라도,/법도, 무너진 집들도 씌어진 적 없었던 옛적에
    (/ '오래된 이야기' 부분 중에서)

    내 죄를 대신 저지르는 사람들에 대해/내 병을 대신 앓고 있는 병자들에 대해/한없이 맑은 날 나 대신 창문에서 뛰어내리거나/알약 한 통을 모두 삼켜버린 이들에 대해//(...)//불어가는 핏빛 바람에 대해/할 말이 있다//나 대신 이 세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희망하는 이들과/나 대신 어두워지려는 저녁 하늘/들판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검은 묘비들/나 대신 울고 있는 한 여자에 대하여
    (/ '고백' 부분 중에서)

    우리의 갈비뼈 하나를 뽑아/진실을 만드세요, 하느님/그녀와 손잡고 나가겠습니다
    (/ '거리로' 중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1970~
    출생지 대전광역시
    출간도서 18종
    판매수 5,419권

    1970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를 나오고 같은 대학원에서 니체와 나가르주나를 비교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0년에 [문학과사회]로 등단하여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 등의 시집을 냈다. 문학이론서 [문학의 아토포스]와 철학서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등을 출간했으며, 현재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에서 문학상담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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