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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사물들 : 이현승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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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이현승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 : 2012년 07월 30일
  • 쪽수 : 120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54618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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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삶은 늘 위로인지 경고인지 모를 손을 내민다”

    친애하는 망측한 사물들이 빚어내는
    우습고 슬픈 농담의 세계…


    현실을 충실히 재현하고자 하는 시들은 상투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일회적인 시적 감흥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현실을 깊이 있게 읽어내면서 그 이면의 풍경까지도 보여줄 줄 아는 시인이 있으니 그중 한 사람, 이현승의 신작 시집 [친애하는 사물들]이 출간되었다. 전작 [아이스크림과 늑대] 이후 5년 만이다. 4부에 걸쳐 총 60편의 시를 담았다. 전작에서 ‘아이스크림’과 ‘늑대’를 내세워 욕망의 소멸과 생성, 삶에 침투하는 온갖 양가적인 사태들을 보여준 바 있듯, 이번 시집에서도 이런 양가성, 즉 ‘친애하는 망측한 사물들’에 특별히 날을 세우고 그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탐색한다.

    거의 없는 나

    참신한 이미지로 무장한 은유 혹은 파격적인 시 형식 없이, 유머와 지혜의 강고한 외피만으로 너끈한 이현승의 시 세계. 그는 사색을 멈추지 않으며 생의 밑바닥까지 침잠해간다. 관조적 시선으로 인간과 사회 구조의 양면을 전면적으로 성찰하면서 ‘우리 시대에 개인은 있는가’ ‘세계 안에 나로서 존재하는 것은 가능한가’ 묻는다.

    그가 과묵한 이유는 한 번도
    그에게 대답할 시간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정말 그가 과묵한 이유는
    아무도 그에게 묻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

    누구든 그에게 말한다
    언제부터 여기 있었죠?
    조금만 가까이 다가오세요
    너무 다가올 필요는 없구요
    (/ [그믐] 중에서)

    사회와의 불협화음을 일으킴으로써 개인의 특수성을 획득하던 인물들은 이제 더이상 찾아볼 수 없다. “포기를 받아들이는 것만이/ 삶을 지속하는 유일한 조건이 된다.”([까다로운 주체]) 시스템과 자본의 손에 이끌려 피로와 무력감만이 남은 자아에게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낮에 켜진 전등처럼 우리는 있으나마나.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파리채 앞에 앉은 파리의 심정으로
    우리는 점점 더 희박해진다.

    부채감이 우리의 존재감이다.

    (……)

    삶은 여전히 지불유예인데,
    우리는 살면서 한 가지 역할놀이만 한다.
    채무자채무자채무자채무자채무자
    (/ [있을 뻔한 이야기] 중에서)

    어쩌면 모든 것은 ‘기술’의 문제

    비유이기도 하고 실제이기도 한 이 고단한 ‘역할놀이’를 충실히 수행하며 이현승의 화자들은 “우리는 최선을 다해 무너져가고 있을 뿐”([시 [농담]을 위한 삽화])일지 모르겠다 읊조린다. 그러다 그들은 한 가지 문제의식을 품는다. “어쩌면 모든 것은 기술의 문제”인 걸까?([살인의 기술])
    시집에는 세 가지 ‘기술’이 등장한다. 살인의 기술, 사육의 기술, 대화의 기술. 화자들은 이 세 가지 기술을 강구한다. 살인의 기술을 익혀 연쇄살인범이 되는 것, 그리하여 “결정적으로 무너지”는 것([살인의 기술]), 혹은 “굴욕과 식욕을 구분하면서/ 똥개는 비로소 개가 된다”는 사육의 기술([똥개]), 그것은 “식욕과 투기심”을 “생의 은유”로 여기며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망연함으로 밥을 넘”기게 한다([살인의 기술]).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은 우리가 아니므로/ 불같은 성미를 건드리지 않는 지혜로” “핏빛 아름다운, 천 하루의 퀼트”를 완성하는 세헤라자데의 기술은 어떤가([대화의 기술]). “사자를 위해 어떤 포즈로 쓰러지는 것이 좋겠는가”를 고민하는 양처럼([근본주의자]) 말이다.
    시인 정한아가 해설에 썼듯 “우리는 아직 바닥에 닿지 않았고, 우리는 계속 떨어지고 있는 중이고, 완료되지 않는 추락 속에서 빚어지는 것은 몸에 새긴 추락의 가장 섬세한 디테일과 그 감각의 흔적들”이다. 이현승의 화자들은 “추락의 순간들을 자기의 온 감각들을 동원하여 놓치지 않고 기억하려 한다. 그렇게 그의 가장 빛나는 기술, 감각과 성찰의 동시적인 기술(記述)이 완성된다.”

    씁쓸하고 진지한, 그러나 역시 우스운 유머로 단련될 것

    이현승은 첫 시집에서 일찍이 유머를 권한 바 있다. “당신이 아직 유머를 갖지 못했다면, 감히 권한다/ 단련될 것을, 푸르뎅뎅한 독이 살 속으로 파고들 때까지”([찰리의 저녁식사]). 무상하고 비루한 일상,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우연한 상황이 만들어내는 아이러니한 결과들에 대응하기 위한 방법이다. 찰리 채플린과의 저녁식사를 마친 그는 이번 시집에서 이렇게 덧붙인다. “웃음은 현재를 살아가는 데 소용되는 비용이다./ 입맛 없이 우겨넣는 식사처럼 그것은 몸에 좋다”([시 [농담]을 위한 삽화]).

    끈끈함이란 파리들의 우정이네
    같이 밑바닥을 기어본 자들의 것이지
    날개가 피부든 손톱이든 간에
    그 날갯짓이 경박하든 말든
    그것은 떠오르는 데 도움이 되네

    밑바닥 생활을 벗어나면 곧장 천상인 듯
    날갯소리 힘차지만
    한낱 파리 날개일지라도
    누가 먼저 비상할 때 위험해지는 것이 바닥의 생리라네

    바닥을 벗어나면 다른 바닥이 기다릴 뿐
    껌딱지처럼 질기게 들러붙은 것이 밑바닥이지
    호구에는 천상 고단함이 따르고
    피곤은 업종을 가리지 않네
    (/ [누아르] 중에서)

    “도축의 시간”, 당신은 당신의 가죽을 칭찬하는 말을 들으며 “한없는 감사함과 부끄러움을 느끼며/ 약간 어색하게, 그러나 계속 웃고 있을 수밖에 없”다([도축의 시간]). 이 시집 곳곳에서 발견되는 이러한 비극적인 희극성은, 갑갑한 삶에 작은 틈을 만들어준다. 그 틈 안에서 당신은 “내일 없이 사는 것”이 “우리의 삶이고 저항이며”,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죽어야만 한다”는 깊은 침잠에 빠져볼 수 있다(같은 시). “눈을 감고 숨을 죽인 채 당신은 어디로든 떠날 수 있지만/ 당신은 결국 당신에게로 돌아온다”([침대의 영혼 2])는 사실을 깨달으며.
    이렇듯 당신을 둘러싼 친애하는, 이 망측한 사물들과의 관계 속에 삶이 내미는 위로인지 경고인지 모를 손을 잡고 여기를, 오늘을 살아내는 것, 채플린처럼 “가리는 울음과 드러내는 웃음이 반반 섞”인 표정을 지어보는 것([눈물의 원료]),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삶이라는 환멸을 견디며 최소한의, 그러나 최선의 인간적 선(善)에 가까워지는 일일지 모른다.

    목차

    시인의 말

    1부

    젖지 않는 사람
    돌멩이
    라디오
    따뜻한 비
    굿바이 줄리
    일인용 잠수정
    살인의 기술
    맛의 근원
    얼굴의 탄생
    비의 무게
    갈증의 구조
    연루
    까다로운 주체
    눈물의 원료
    야행성
    도축의 시간

    2부

    지나친 사람
    뉴스의 완성
    영하의 인사
    그믐
    놀이공원
    천국의 아이들
    있을 뻔한 이야기
    시 [농담]을 위한 삽화
    누아르
    대화의 기술
    에일리언
    똥개
    몰두의 방식
    클레멘트 코스

    3부

    다정도 병인 양
    용의주도?오은에게
    나머지의 세계
    부자유친
    에이프릴
    성분들
    불효자는 웁니다
    침대의 영혼 2
    드라마 전용관
    활주로
    근본주의자
    신중하게
    암전
    초심자들

    4부

    궁금해
    근원적 골짜기
    무중력 실험실
    5분 후의 바람
    순간 박물관
    밤벌레처럼
    친애하는 사물들
    눈사람 학교

    包乳 혹은 哺乳
    낭떠러지
    만두방에서 사라진 사람들
    밥집 골목
    식탁의 영혼 2
    좋은 사람들
    돌아와요 거북이

    해설 │ 거기 수심이 얼마나 됩니까?
    정한아(시인)

    본문중에서

    우리는 상처를 만드는 사람이면서
    치유에 대해 이야기하고
    상처를 받은 사람이면서
    자신을 힐난하는 데 그토록 많은 시간을 바친다.

    징후와 예후만으로 이루어진
    위독의 자리마다
    모든 과장과 생략과 시치미.

    진짜 같은, 의 핵심은 같은인데
    진짜 같은 공포와 피로가
    살갗에 제 발자국을 마구 찍는데
    진짜는 없고 발자국만 있다.

    위독의 자리,
    훌륭한 칼잡이가 된다는 것,
    훌륭한 칼놀림이란
    죽이면서 또한 구하는 것.

    그것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2012년 여름
    이현승
    (/ 시인의 말 중에서)

    젖지 않는 사람

    죽은 사람의 가슴에 귀를 가져다대듯이
    나는 화분에 물을 주면서 귀를 기울인다

    의심은 물줄기를 따라 뿌리들의 어두운 층계에 머문다
    화분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귓속은 물을 채우기에는 너무 작은 용기이다

    죽어가는 나무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저녁은 제 물줄기를 부어 텅 빈 집을
    수족관처럼 빈틈없이 채운다

    이럴 때 가장 어두운 동굴은
    눈 속에 있는가 귓속에 있는가

    어떻게 돌고래들은 해안을 향해 헤엄치기 시작하고
    어떻게 나무는 스스로 죽을 결심을 하는가
    어떤 범람이 나무에게서 호흡을 빼앗은 것인가

    다정도 병인 양

    왼손등에 난 상처가
    오른손의 존재를 일깨운다

    한 손으로 다른 손목을 쥐고
    병원으로 실려오는 자살기도자처럼
    우리는 두 개의 손을 가지고 있지

    주인공을 곤경에 빠뜨려놓고
    아직 끝이 아니라고 위로하는 소설가처럼
    삶은 늘 위로인지 경고인지 모를 손을 내민다

    시작해보나마나 뻔한 실패를 향해 걸어가는
    서른두 살의 주인공에게도
    울분인지 서러움인지 모를 표정으로
    밤낮없이 꽃등을 내단 봄 나무에게도
    위로는 필요하다

    눈물과 콧물과 침을 섞으면서 오열할 구석이,
    엎드린 등을 쓸어줄 어둠이 필요하다
    왼손에게 오른손이 필요한 것처럼
    오른손에게 왼손이 필요한 것처럼

    살인의 기술

    결정적으로 무너지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고 나는 쓴다.
    몸을 앞쪽으로 기울이고 바람 속을 지나가는 사람처럼
    텅 빈 중심을 향하여 나는 걸어왔다.
    어쩌면 모든 것은 기술의 문제.

    죽은 사람의 초대를 받는 잔칫집에서는
    소화제나 화투장 같은 것을 준비해두는 법이지만
    식욕과 투기심이 생의 은유가 되기 위해서는
    사육의 기술이 필요하다.

    나는 악해지기 위해서도 소명받아야 한다는 것을,
    연쇄살인범으로부터 배운다.
    원한도 분노도 없는 살인에는 무엇이 빠져 있는가.
    어째서 현장검증에는 살인의 기술만 있고 즐거움은 없는가.
    두번째를 위해 힘을 아껴두는 것을 주도면밀하다고 하는가.

    사고와 무친에 대해 생각하는 자가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망연함으로 밥을 넘길 때
    사육의 기술은 최대의 힘을 갖는다.
    미래를 살아내느라고 내 청춘은 소진되었다고 나는 쓴다.
    (/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시인, 경희대 강사. 시집으로 아이스크림과 늑대, 친애하는 사물들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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