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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홀 : 박지리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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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박지리
  • 출판사 : 사계절
  • 발행 : 2012년 07월 27일
  • 쪽수 : 275
  • ISBN : 9788958286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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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우리 삶의 무수히 많은 맨홀들!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합★체》의 작가 박지리의 두 번째 작품 『맨홀』. 자기 안에 괴물처럼 도사리고 있는 구멍에 빠져 버린 소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열여덟과 열아홉의 봄을 죽음으로 맞아야 했던 소년. 열여덟의 봄에는 그토록 죽이고 싶었던 아빠가 16명의 목숨을 구한 소방 영웅이 되어 세상을 떠났다. 아빠만 없으면 엄마와 누나와 함께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간병 일을 하느라 집에 들어오지 않는 엄마와 공연을 핑계로 잦은 외박을 하는 누나 때문에 소년은 이유 모를 분노에 사로잡혀 방황한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버지와 닮은 모습이 되어간다. 결국 소년은 열아홉 살 봄에 살인을 저지르고 청소년 보호관찰소에서 지내게 되는데….

출판사 서평

열여덟과 열아홉, 두 번의 봄을 죽음으로 맞아야 했던 한 소년이 있다. 열여덟의 봄은 그토록 죽이고 싶었던 아빠가, 그러니까 “집을 불길 속 공포로 몰아넣은 악인이 죽음을 무릅쓰고 열여섯 명 목숨을 구한 소방 영웅”이 되어 세상을 떠났다. 아빠만 없으면 엄마와 누나와 함께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나’는 이유 모를 분노에 사로잡힌 채 방황한다. 열아홉 살 봄에 나는 ‘살인’이라는 죄를 저지르고 청소년 보호관찰소에서 지내고 있다.『맨홀』은 이곳의 생활과 ‘나’의 어두운 과거에 대한 기록이 씨실과 날실처럼 엮이면서 우리 모두 안에 숨어 있는 커다란 ‘구멍’을 드러내 보여준다. 자기 안에 괴물처럼 도사리고 있는 구멍에 빠져 버린 소년이 스스로를 속여 가며 비밀스럽게, 아주 오랫동안 간직해 온 ‘맨홀’의 어두운 기억은 독자들에게 동정과 연민,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합체』 작가 박지리의 두 번째 작품『맨홀』은 청소년소설에서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매력을 전해줄 것이다.

『합★체』 작가 박지리의 두 번째 책
‘키 크는 비기’를 전수받기 위해 계룡산으로 심신수련을 떠나는 쌍둥이 형제의 성장담을 담은『합★체』로 박지리라는 1985년생의 신인 작가가 청소년문학판에 나타났을 때, 심사위원(오정희·박상률·김중혁·김종광)들은 심사평에서 “이미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다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만큼 ‘난쟁이’ 아버지를 둔 아이들의 성장에 대한 열망과 안타까움, 사람의 가치를 외모로만 판단하는 사회 풍토에 대한 비판 등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모험과 무협이라는 코드로 맛깔나게 버무린『합★체』는 신선하고 독특했다. 작가의 두 번째 작품 『맨홀』은 『합체』와는 완전 다른 매력으로, 훨씬 더 깊고 풍성해진 이야기로 ‘소설가’로서 작가의 위치를 단단히 다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살인에 관한 작은 이야기
국내 청소년소설에서 ‘죽음’이라는 주제는 이제 새로울 것도 없는, 흔하디흔한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자살과 가족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는 많지만 ‘살인’을 다룬 경우는 없었다. 고등학생이 살인을 저지르다니! 박지리의『맨홀』은 살인에 관한 이야기다. 고3, 열아홉의 나이에 살인자가 되어 버린 소년의 이야기인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살인은 용서받지 못할 죄악임에 틀림없지만,『맨홀』의 문제적 주인공 ‘나’에게는 어느 누구도 비난을 가할 수 없다.『맨홀』은 이런 ‘나’의 고백을 통해 부조리한 삶, 불가해한 인간 존재를 맨홀이라는 커다란 구멍을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실존적 물음에 관한 소설이기도 하다.

고등학생 다섯 명이 네팔인 불법 체류자를 살인해 기소되었다. 그중 한 명인 ‘나’는 1년 전 봉재 공장 화재 사건 당시 열여섯 명의 목숨을 구하고 화재현장에서 사망한 의로운 소방영웅의 아들이다. ‘나’는 아버지 덕분에 보호관찰 1년 정도로 끝날 형을 선고받을 것이고, 이 형은 16주 동안 재활센터에서 지낸 다음 결정될 것이다.
나는 청소년 보호관찰소 ‘한마음 청소년 센터’에서 직업훈련과 축구, 면담 등으로 이루어진 시간표대로 생활한다.『맨홀』은 시설에서 재활 치료를 받는 현재 ‘나’의 생활에 대한 기록과 ‘나’의 어두운 과거, 즉 살인사건이 일어나기까지의 시간이 ‘나’의 무의식의 기억에 따라 재구성된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나’는 아버지의 동료 소방대원들과 생존자들의 도움으로 다른 아이들과 달리 국선변호사가 아닌 유능한 변호사의 변호를 받는다. 또 이 사람들은 나에게 선처를 내려 달라는 탄원서를 판사에게 보냈고, 2학년 때 담임은 내가 본래 착한 아이였는데 아버지를 잃은 후 새로 사귄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변했다는 편지를 써주었다. 변호사는 내가 저지른 살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하루아침에 아버지를 잃은 상심에서 비롯된 사건이었다고 나를 변호했다. 또 피고가 맨홀에 아버지의 훈장과 감사패를 넣어 둔 것 역시 아버지를 너무 사랑해서 보물처럼 숨겨 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나’는 늘 아버지를 죽이는 꿈을 꾸었고, 아버지가 죽은 후에야 살인자가 되는 망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빠는 평생 폭력과 의처증으로 온 가족을 불길 속 공포로 몰아넣으며 살았는데 죽음을 무릅쓰고 열여섯 명 목숨을 구한 소방 영웅이 되어 하루아침에 온 국민의 존경을 받는 존재가 된다. 엄마는 자신이 당하는 폭력을 숨기고 위장한 채 이혼하지 못하는 이유를 나와 누나에게 전가하고, 폭력을 당한 다음 날에도 어김없이 남편의 출근 준비를 돕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아빠와 한방에서 잤다. 누나는 살려 달라는 엄마의 비명 소리와 아빠의 더러운 욕설에도 자신은 절대 울지 않아야 하는 역을 맡은 거라며 집에서 연극을 하더니 실제로 연극배우가 되어 다양한 삶을 살아간다. 나는 우리 가족의 정체가 드러날까 전전긍긍하며 스스로 선생님과 친구들이 속한 ‘정상적인 세계’에서 떨어져 나와 외톨이로 지냈다.
이제 ‘아빠의 죽음’으로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차 있던 나는 누나와 엄마가 ‘아빠’의 존재를 감사패와 훈장으로 미화하고, 그동안의 일들은 은폐하려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를 괴롭히던 유일한 악인이 죽었고, 집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평온해졌는데” 요양원에서 간병 일을 하느라 집에 들어오지 않는 엄마와 공연을 핑계로 잦은 외박을 하는 누나 때문에 스스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분노에 휩싸인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버지와 닮은 모습으로’ 엄마와 누나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폭언을 퍼붓고 폭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엄마와 누나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 셋은 봉합의 전문가들이었다. 특히 엄마는 있었던 일을 없었던 일로 만드는 데에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새벽까지 얻어맞고도 다음 날 아침 그 사람을 위해 태연히 아침 밥상을 차렸던 엄마와 학교에서는 누구보다 더 제대로 된 집안을 딸인 것처럼 연기를 했던 누나, 보고 들은 더러운 것들을 몸 안에 꽉 가둔 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나. 우리 세 사람은 발광에 가까웠던 내 난동 역시 침묵으로 잘 봉합해서 아예 없었던 일로 만들어 버렸다. -본문 187∼188쪽

하지만 나 역시 아버지 덕분에 ‘자랑스러운 소방영웅’의 아들이 되어 처음으로 선생님과 아이들의 관심을 받으며 학교생활을 해나가고, 김기진, 한성제, 최연 등 기진이들과도 어울리게 된다. 버려진 쓰레기와 들풀이 무성한 하천의 빛바랜 보라색 소파는 우리의 아지트가 된다. 나는 이곳에서 희주라는 여자 친구를 만나 사랑을 키워 나가기도 한다.

어두운 기억의 저장고, 맨홀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누나와 함께 달아나던 피난처이자 세상에서 유일한 나의 동지였던 누나와의 추억이 깃든 안식처 맨홀. 누나는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공사장에서 ‘맨홀’을 발견하고, 나는 누나와 함께 이곳에서 유년의 추억을 키워 나간다. 그런데 누나는 어느 날 갑자기 훌쩍 커 버린다. 갑자기 어른이 된 누나. 우리는 비밀스런 고통을 함께 겪은, 서로가 서로에게 이 세상의 유일한 동지였는데, 누나에게는 자신만의 관심사가 생겼고 어려운 책을 읽기 시작했으며 맨홀에서의 귀신 놀이 같은 것은 시시해져 버렸다.

누나의 작별로 맨홀은 나에게만 남겨졌다. 나는 누나가 없는 긴 오후에 혼자 맨홀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그리고 누나 나이가 되자 나도 선택해야 했다. 맨홀을 떠날 건지 이대로 계속 머무를 건지. 하지만 어쩌면 나에겐 누나와 달리 애초부터 선택권 같은 게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누나가 맨홀을 떠났을 때의 나이를 훌쩍 넘어서까지 여전히 맨홀 뚜껑을 열고 있었다. 98쪽

나는 맨홀에서 발견한 강아지 ‘달이’를 동네 고물상에 맡겨 놓고 혼자 돌보고 있으며, 이제는 ‘나’만의 집으로 남겨진 맨홀에 희주와 달이를 데리고 드나들며 작은 행복을 맛본다. 하지만 이곳에 아버지의 훈장과 감사패를 갖다 버린 순간, 맨홀은 더 이상 평화와 안식의 공간이 아니다. 맨홀은 이제 필사의 힘을 다해 빠져나오고 싶었지만 결국엔 내 영혼이 송두리째 잠식당하고 마는, 괴물 같은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있는 어두운 구멍으로 남는다. 그리고 결국 이 맨홀에 나는 죽은 자의 시체를 갖다 버린다.

정상적인 세계의 아웃사이더, 이방인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스스로 아웃사이더가 되기로 작정한 사람이다. 시설에서 축구를 할 때는 늘 골키퍼를 맡아 “중앙선 너머 이쪽 편에 남겨진 유일한 저쪽 선수”가 되기도 하고, 희주가 말하듯 기진이들과 어울릴 때도 일부러 겉돌려고 작정한 애처럼 군다. 심지어 기진이 오토바이에 올라탈 때도 나의 자리는 맨 뒷자리다.

(……)그때 내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지금 앉은 이 자리가 내 삶 자체라고. 어떤 관계에서든 맨 끄트머리에 앉아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앞사람의 허리를 붙들고 있는 이 모습이 바로 나 자신이라고. 어느 구간에선 팔에 힘도 빠지고 그렇게 버티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꼴사나운 것 같아 그냥 이대로 손을 놓아 버릴까 하는 충동도 들었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멋지게 포기에 성공한 적이 없었다. -215∼216쪽

‘나’는 스스로 생각해도 복잡하고 음흉한 인간이어서 기진이들이 어두운 과거와 복잡한 가족사를 꺼내 놓는 앞에서도 여전히 자랑스러운 소방관 아들 노릇을 한다. 남들이라면 부끄러워 데려가지도 못할 ‘파키’(내가 다니는 학교 학생들은 동남아에서 온 것 같은 외모의 외국인들을 모두 파키스탄에서 온 사람을 뜻하는 말인 ‘파키’라고 불렀다.)들의 열악한 집단 거주지에 있는 자기 집에 당당히 나를 데려가는 희주 앞에서도 나는 비열하게 내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다.
‘나’는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동시에 어느 누구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내 감정조차 나 자신에게 드러내지 않으려 하고, “조금이라도 신이 나면 오히려 금방 우울하고 슬퍼”지며, 타인에 대해서도 연민과 분노라는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발생하기도 한다. 하천에 버려진 검은 봉지에서 발견한 강아지 시체를 보며, 강아지 주인의 입장에서 이해해 보려 하다가도 결국엔 분노를 터뜨리며 오열한다.

……더러운 인간들.
사랑할 줄도 모르면서 쉬지 않고 애를 낳고 개를 기르는 더러운 인간들.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학대하고 머리를 쓰다듬고 다시 걷어차는 역겨운 인간들. 밥을 먹다가도 언제 손이 날아올지 몰라 숨죽이고 있게 만드는 인간들. 겁먹은 눈동자를 보면서 자기가 대단한 존재라도 된 양 희열을 느끼는 변태 같은 인간들. 죽어야 할 사람들은 당신들이야. 검은 봉지에 담겨 하천 쓰레기장에 버려져야 할 사람들은 악마 같은 당신들이라고. 79-80쪽

우리의 아지트인 하천의 보라색 소파를 차지하고 있는 파키들과 시비가 붙어 나는 파키에게 구타를 당한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그 파키를 변호하면서 파키들의 반격이 정당방위였다고 생각한다. 기진이들이 ‘나’를 때린 파키를 찾아내 복수를 하자고 부추겨도 나는 시큰둥할 뿐이다. 기진이들이 그 파키를 찾아냈다고 하천의 보라색 소파로 불러낼 때만 해도 나는 ‘살인’은 생각지도 못했다.

한번 빠지면 돌아올 수 없는 구멍
‘나’에게 있어 삶이란 부조리한 것이고, 인간 존재 역시 불가해한 것이다. 내가 그토록 죽이고 싶어 했던 아빠는 영웅이 되어 죽었고, 아버지가 사라지고 난 다음에도 집안 분위기는 변하지 않았다. 그토록 두려워하고 경멸하던 폭력을 자신이 똑같이 가족들에게 행하고 있음을 알게 될 때의 절망감이란.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그토록 증오하던 아버지의 이름을 빌려서야 내 인생을 구제받을 수 있게 되었다.
시설에서 돌아온 ‘나’는 집에서도 완전한 불청객이 된다. 내 죄를 감추기 위해 쓴 캡 모자는 나 자신을 ‘파키’처럼 느끼게 한다. “정식 체류 허가도 없이 남의 땅에 들어온, 실제론 존재하지만 법적으론 존재하지 않는 그런 애매한 구멍에 끼어 있는 처지”가 된 것 같다. 이제 맨홀 구멍은 사람들이 막아 버렸지만, 내 안의 구멍은 무엇으로도 도저히 막을 수 없을 것 같다.
작가가「작가의 말」에서도 밝혔듯이, 어쩌면 이 이야기는 우리가 사는 곳의 무수히 많은 맨홀들 가운데 하나의 이야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처럼 우리 모두에게는 보이지 않는 구멍이 있다. 모두가 자기만의 아픔과 어둠이 있으며, 『맨홀』의 ‘나’처럼 진정한 자아와 위장된 자아 사이에 커다란 구멍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특히나 이유 없는 반항과 증오가 아물지 않은 채 삶의 한 시기를 예민하게 넘어서야 하는 십대라면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현실에서 소외되어, 사회에서 스스로를 소외시킨 채 이방인으로 살아가던 ‘나’ 자신이 마주한 것은 실존의 체험이다. 이는 맨홀이나 블랙홀, 어두운 구멍 등 강렬한 이미지로 상징화되어 나타난다. 또 이 구멍은 혼자 힘으로 막아낼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맨홀』의 주인공인 ‘나’는 이름이 없다. 이것은 누구나 그런 구멍에 빠지면 『맨홀』의 ‘나’처럼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든 ‘나’처럼 우연히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범죄의 잠재적 가능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나’처럼 삶에 대한 애정을 지니고 있는 동시에 그 삶이란 것이 얼마나 절망적이고 부조리한지 아프게 자각하며 살기 때문이다. 이렇듯 불가해한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작가가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던지는 하나의 커다란 질문이기도 하다. 『맨홀』의 ‘나’가 시설에서의 면담에서 우주에 구멍이 몇 개나 있는지, 사람 몸에 구멍이 몇 개나 있는지 묻는 것처럼.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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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중에서

엄마와 누나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 셋은 봉합의 전문가들이었다. 특히 엄마는 있었던 일을 없었던 일로 만드는 데에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새벽까지 얻어맞고도 다음 날 아침 그 사람을 위해 태연히 아침 밥상을 차렸던 엄마와 학교에서는 누구보다 더 제대로 된 집안을 딸인 것처럼 연기를 했던 누나, 보고 들은 더러운 것들을 몸 안에 꽉 가둔 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나. 우리 세 사람은 발광에 가까웠던 내 난동 역시 침묵으로 잘 봉합해서 아예 없었던 일로 만들어 버렸다. -본문 187∼188쪽

누나의 작별로 맨홀은 나에게만 남겨졌다. 나는 누나가 없는 긴 오후에 혼자 맨홀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그리고 누나 나이가 되자 나도 선택해야 했다. 맨홀을 떠날 건지 이대로 계속 머무를 건지. 하지만 어쩌면 나에겐 누나와 달리 애초부터 선택권 같은 게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누나가 맨홀을 떠났을 때의 나이를 훌쩍 넘어서까지 여전히 맨홀 뚜껑을 열고 있었다. 98쪽

(……)그때 내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지금 앉은 이 자리가 내 삶 자체라고. 어떤 관계에서든 맨 끄트머리에 앉아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앞사람의 허리를 붙들고 있는 이 모습이 바로 나 자신이라고. 어느 구간에선 팔에 힘도 빠지고 그렇게 버티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꼴사나운 것 같아 그냥 이대로 손을 놓아 버릴까 하는 충동도 들었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멋지게 포기에 성공한 적이 없었다. -215∼216쪽

……더러운 인간들.
사랑할 줄도 모르면서 쉬지 않고 애를 낳고 개를 기르는 더러운 인간들.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학대하고 머리를 쓰다듬고 다시 걷어차는 역겨운 인간들. 밥을 먹다가도 언제 손이 날아올지 몰라 숨죽이고 있게 만드는 인간들. 겁먹은 눈동자를 보면서 자기가 대단한 존재라도 된 양 희열을 느끼는 변태 같은 인간들. 죽어야 할 사람들은 당신들이야. 검은 봉지에 담겨 하천 쓰레기장에 버려져야 할 사람들은 악마 같은 당신들이라고. 79-80쪽

저자소개

생년월일 1985

1985년 출생. 상명대학교 역사콘텐츠학과를 졸업했다. 세계고전이나 추리소설, 만화책을 좋아한다. 하지만 소설가를 꿈꾼 적은 없다. 그래서 아직 소설이 뭔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잘 모른다. 모르면서도 뭔가를 쓰긴 쓴다. 두 번째 이야기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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