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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명주』는 매일 매일 먹는 밥이지만 그걸 가까이 들여다보면서 밥알 한 알 한 알의 모양새나 촉감을 세심하게 살펴본 적은 없는 우리들에게 방명주의 사진작업은 이 작고 사소한 음식이 얼마나 제각기 자신의 목소리를 가진 사랑스러운 존재들인가를 보여준다. 화면 가득 빼곡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탱글탱글한 곡식들이 부드러운 조명을 받아 따뜻하게 빛난다.

● Works
14 매운땅 Redscape
42 부뚜막꽃 Rice in Blossom
76 스토리지 Storage
102 헬리오폴리스 Heliopolis
120 마리오네트 Marionette
148 큐폴라 Cupola
162 트릭 Trick

● Text
08 일상의 주름을 쓰다듬는 섬세한 손길 _ 조선령
176 방명주의 사진세계 _ 전영백
186 프로필

방명주의 사진세계
바라봄에 차이가 있다. 사진작가 방명주의 눈은 예사롭지 않다. 특색이라 한다면 그 보는 시각의 폭이 놀랍도록 다양하다는 점이다. <마리오네트>전(2004년 금산갤러리)에서 보듯, 거대한 대형마트의 반복적인 쇼핑카트를 멀리서 큰 스케일로 조망한 작업이나, 끝없이 늘어서 있는 야외 공연장의 의자, 그리고 대형건물의 냉각탑을 포착한 작업의 시각은 거시적이다. 개인을 통제하는 현대사회의 조직적 힘과 체제의 권력을 시각적으로 나타낸 작업이다. 작업은 이러한 거대담론의 질서 속에 조정당하는 의식조차 없이 사는 현대인의 아이러니를 드러내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대상에 지나치게 근접하여 자세히 포착하는 미시적 시각을 작가의 <부뚜막꽃>(2005)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밥을 얇게 펴 찍은 사진에서 매일 접하는 밥알들은 먹는 음식이 아니라 하나의 회화를 구성하는 미적 입자들이 된다. 매일의 대상들이 일상적 조망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 때 그같이 평범한 사물들은 몰라볼 정도로 낯설다. 요컨대, 그의 작업은 일상적 대상에의 가시거리를 지나치게 가깝게 하거나 멀리하여 낯선 효과를 잘 살려낸다.
방명주는 낯선 효과를 위해 빛을 중점적으로 활용한다. 사진작가에게 빛은 생명과도 같은 것이라 어느 사진이든 빛을 얘기할 수 있겠지만, 이 작가가 사용하는 빛은 단순하지 않다. 그리고 이런저런 다양한 작품을 해도 작가가 의도하는 바에 일관성이 있는데, 이 점이 방명주의 작가적 집중력을 높이 살 수 있는 점이다. 그의 관심은 이를 테면, 라캉(Jacques Lacan)이 말하는 시각 구조를 들어 논의하기가 적합하다. 작가가 즐겨 쓰는 방식으로, 빛을 오브제의 저편에서 이편으로 쏘아 역광으로 투사시키는 것을 들 수 있는데, 이는 일상의 오브제를 진공상태에 놓은 듯한 효과를 가져온다.
피사체를 배치하는 X-ray 사진판이나 실험실의 유리기구 같은 것이 자연의 시간을 정지시키는 듯하나, 이것을 찍는 사진이 다시한번 순간을 동결시킨다. <마리오네트>(2004)에서 보는 콩깍지이며 탐폰이며 콘돔은 빛과 작가의 눈 사이 중간쯤 걸려있는 듯, 보이지 않는 스크린에 걸려있는 듯, 그 선명한 색채와 섬세한 형태를 신비롭게 드러낸다. 미시적 시각이 포착하는 정적인 순간은 요컨대 과학 실험대의 긴장감을 연출한다. 학부에서 화학을 전공한 작가답게 실험실의 조명과 면밀한 관찰력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이 빛을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사물을 다르게 보이게 하는 빛이다. ..... 전영백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일상의 주름을 쓰다듬는 섬세한 손길 - 방명주의 사진작업에 대하여
매일 매일 먹는 밥이지만 그걸 가까이 들여다보면서 밥알 한 알 한 알의 모양새나 촉감을 세심하게 살펴본 적은 없는 우리들에게 방명주의 사진작업은 이 작고 사소한 음식이 얼마나 제각기 자신의 목소리를 가진 사랑스러운 존재들인가를 보여준다. 화면 가득 빼곡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탱글탱글한 곡식들이 부드러운 조명을 받아 따뜻하게 빛난다. 하나 하나가 모두 다른 모습과 다른 온기와 매끈함을 갖고 있다. 빈속을 채워주는 원래의 임무답게 탐스럽고 맛깔스럽게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매일 놓여 있던 식탁이나 밥그릇이란 장소에서 벗어난 밥알들이 생소하면서도 아름답다. 흑미밥이나 끈적하게 뭉쳐져 있는 밥덩어리들은 조금 더 낯설고 기이한 느낌을 주긴 하지만 소소한 이 일상의 음식에 던지는 작가의 보드라운 손길은 비슷하다. 2005년에 발표했고 2008년에도 시도한 <부뚜막꽃> 연작들이다. 음식들이 공처럼 둥글게 모여있는 2008년 연작에서는 밥이나 뱅어포, 각종 양념들이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세포처럼 주변과 고립된 피사체로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여전히 이 피사체를 감돌고 있는 따뜻한 빛들 때문에 이것들은 실험대상처럼 보인다기보다는 크리스마스 시즌의 털실뭉치처럼 보드라운 감각을 전한다.
정작 작가 방명주는 이 작품이 결혼한 뒤 주부로서 부엌에서 보내야했던 나날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특별히 힘들었던 일이 있었다기보다는 결혼한 여자라면 누구나 느껴야 하는 그런 조금은 답답한 일상, 바깥에서 어떤 일을 하건 결국은 돌아와 부엌 주변을 맴돌 수 밖에 없는 그런 매일의 경험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작가가 어떤 대상을 작품에 담을 때 그것이 좋든 싫든 어쩔 수 없이 자기가 붙들고 씨름해야 했던 것이라면 그 대상들을 좀더 시니컬하거나 차갑게 그리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거기다 페미니즘에 좀더 깊이 발을 들여놓은 작가들이라면 부엌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과 거기에 등장하는 음식이나 사물에 대해 아예 비판적인 눈길을 던졌을 것이고. 하지만 방명주의 작품 속에서 밥이나 냉장고 속의 각종 음식들, 혹은 이번 전시에 사용된 붉은 고춧가루들처럼 부엌에 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