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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의 선물 1 : 선물로 보는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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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심경호
  • 출판사 : 책문
  • 발행 : 2012년 06월 15일
  • 쪽수 : 520
  • ISBN : 9788931575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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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국왕과 사대부를 이어 준 선물의 미학

    선물은 마음과 마음을 맺어주는 끈이다. 그렇기에 선물에는 주술의 힘이 깃들어 있어, 달콤한 말과는 다른 어떤 힘을 발휘한다. 밸런타인데이에 수많은 사람들이 달콤한 선물을 사기 위해 열광하고, 그날 전해진 선물은 화이트데이에 또 다른 선물로 변신한다. 아이들이 크리스마스에 큰 양말을 걸어 놓고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며 잠을 설치는 것도 선물이 가진 위력과 달콤함을 알기 때문이리라. 이처럼 우리는 선물의 위력을 매순간 실감하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620년 전에 탄생해 519년 동안 나라를 다스린 조선의 역대 국왕들은 누구에게 어떤 선물을 보냈을까?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어떻게 활용했을까?
    조선 왕조를 이끈 27명의 국왕들은, 사대부나 외국 사신들에게 증여한 유형무형의 선물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고, 사대부에게 일정한 권력을 위임하는 방식으로 함께 나라를 다스렸다. 그런데 조선시대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국왕으로부터 선물을 받은 이들은 신료, 공신, 종실, 부마, 지방관 등 사대부와 왕실 등 고위층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역대 국왕들은 군인, 백성, 귀화인, 외국사절, 자신을 길러준 유모, 궁궐의 시녀에 이르기까지 필요에 따라 다양한 인물들에게 선물을 증여했다.
    한편 특정한 개인뿐만 아니라 나라에 공을 세운 공신들을 함께 묶어 포상한 경우도 많았다. 선조는 재위 37년인 1604년에 이순신, 권율, 원균, 김시민, 이정암 등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선무공신’이라는 칭호를 내렸다. 또 역대 조선의 군신 관계를 훑어 내려가다 보면, 권력 다툼과 연관된 선물 사례도 다양하게 등장한다. 예종은 1468년 유자광이 남이를 모함해 일어난 ‘남이의 옥사’를 다스리는 데 공을 세운 37명에게 익대공신의 칭호를 내리고, 엄청난 물품과 함께 궁중의 술을 내려 주었다.
    하지만 국왕의 선물과 관련된 슬픈 역사의 기록도 있다. 단종은 계유정난의 공신들에게 세조의 반대편에 섰던 사람들과 그 연좌인들의 집을 내려 주었는데, 즉위년인 1452년 4월 27일에는 명신(名臣) 김종서의 집을 시녀 내은이(內隱伊)에게 내려 주었다. 또한 조선 조정은 역적의 집과 가솔들을 몰수하여 공신들에게 배분했는데, 여성들도 그 배분의 대상이었다. 역적죄로 몰려 공신들의 여종이 된 이들을 공신비(功臣婢) 혹은 공신비첩(功臣婢妾)이라고 했는데, 윤근수의 [월정만필]을 보면 단종의 왕비 송씨가 관비가 되었을 때 그녀를 공신비로 삼아서 받으려 한 공신도 있었다.
    조선의 국왕들이 이렇게 선물 증여를 통해 신하들에게 신뢰?격려?감사의 뜻을 표현하면, 신하들은 문서나 의식, 혹은 행동으로 국왕에게 충성을 서약했다. 국왕으로부터 물품을 하사받은 신하들은 반드시 그 은혜에 감사하는 사은전(謝恩箋)을 작성하여 올렸다. 도성에 거주할 때는 궁궐로 가서, 국왕이 부르면 사은의 예를 올리고 부르지 않으면 궁궐의 일정한 곳에서 사은례를 올렸다. 사은전에는 미사여구를 많이 사용했는데, 물품을 하사받은 데 대한 감사와 국왕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내용 등이 담겨 있었다.
    이처럼 국왕의 선물은, 국왕과 신하들을 이어주는 소통의 통로였으며 매개물이었다. 이 책은 조선시대 500여 년 동안 이런 역할을 해온 선물의 증여를 들여다봄으로써, 정치권력과 선물은 어떠한 관계를 맺어 왔으며, 바람직한 소통 방식과 선물 수수는 어떤 형태여야 하는가에 관한 화두를 던진다.

    이 책에서 다룬 국왕의 선물 증여

    국왕의 선물은 관직과 마찬가지로 사회와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공기(公器)였다. 때문에 그것을 어떤 장(場)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하는가 하는 것은 국왕의 권력 행사로서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태조는 동북면에 산재한 조상들의 무덤들을 보살피고 동시에 그 지역의 행정조직을 정비하기 위해 도선무순찰사 정도전에게 동옷을 내렸다. 세종은 선왕의 뜻을 이으면서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강역을 확정하기 위해 함길도 도절제사 김종서를 보내면서, 자신이 입고 있던 홍단의를 내려 주었다. 문종은 병약했지만 총명하고 인자한 군주로서, 부왕의 뜻을 이어 함길도를 안정시키기 위해 상중에 있던 이징옥을 기복시키고 의복을 내려주었다.
    조선의 국왕은 공신과 대관(大官), 세신(世臣)을 대우하여 국가 권력의 기반을 안정시키려고 하였다.
    태조는 공신 조준에게 두 번이나 초상을 하사하고 정도전에게 그 찬(贊)을 짓게 하였다. 태종은 공신 하륜에게 궁중의 의원을 내려 보내어 존문(存問)하였다. 세종은 강원도 이천의 온천에 행차했을 때 도승지 이승손 등 시종신에게도 온천욕을 하사했다. 세조는 신숙주에게 소주 다섯 병을 부치고 정인지 등 조정 신하들에게 춘번자 삽모를 하사하여 혁명 이후 군신 관계를 새로 맺어나갔다. 예종은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유자광에게 초구 한 벌을 내려 주고 공신들의 비를 세워 주라고 명했다. 성종은 자신의 장인 한명회에게 압구정시를 내려 주었고, 선왕 이래 서적의 편찬과 문화 창달에 공을 많이 세운 달성군 서거정에게 호피를 하사했으며, 외직에 잠시 나가 있었던 영안도 관찰사 허종에게 보명단을 내려 주었다. 연산군은 좌의정 성준에게 탑호를 내려 주어 변함없는 충성을 요구했으며, 인종도 좌의정 홍언필에게 산증의 처방약을 내려 주면서 왕권을 보호해 주길 기대했다. 중종이 홍문관 수찬 조광조에게 털요 한 채를 내린 일, 명종이 조식에게 약재를 내리면서 상경을 종용한 일, 선조가 원접사로 나가는 이이에게 호피를 내려 주고 호성공신이면서 향촌에 칩거하고 있는 유성룡에게 백금을 내린 일, 광해군이 자신의 등극에 큰 힘이 되었던 좌의정 정인홍에게 표석을 내린 일, 인조가 이경석에게 황감 열 개를 내린 일, 효종이 성묘하러 가는 김육에게 요전상을 하사한 일, 효종이 세자 시절의 사부 윤선도에게 성균 사예의 벼슬을 주고 역마를 타고 올라오게 한 일과 산림의 거두 송시열에게 [주자어류]를 내사한 일, 숙종이 남인의 지도자 허목에게 궤장을 내린 일, 경종이 진주 겸 주청 정사로 중국에 갔다가 돌아오자마자 유배되어 섬에 있던 이건명에게 안구마를 하사한 일, 정조가 세손 시절부터 자신을 보호한 홍국영에게 초피?사모?이엄을 내린 일, 세손 시절의 스승 서명응에게 특별히 고비를 하사한 일, 영조가 이인좌의 난 이후 정국을 안정시킬 방안을 모색하여 자문했던 정제두에게 낙죽을 수시로 내린 일, 정조가 정약용에게 [시경]의 문제를 숙제로 내고 규장각의 각신 이만수에게 목극나막신을 하사한 일, 순조가 국구 김조순에게 내구마로 시상한 일, 헌종이 4년 만에 권돈인에게 원보 해임의 청을 들어준 일, 철종이 자신을 옹립하는 데 기여한 정원용의 회혼례에 장악원의 이등악을 내린 일 등등은 국왕의 편에서 현량(賢亮)한 신하와의 제우(際遇)를 희원했음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국왕은 부마나 종친과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서도 노력하여, 그 경우 선물을 크게 활용했다. 영조가 부마 황인점에게 저택을 선물한 것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한편 국왕은 문치와 중흥을 위해서도 선물을 활용했다. 태종은 교서관의 홍도연에 궁온선온을 내려 흥을 돋우어, 이후 국왕이 문한(文翰)의 관서에서 행하는 공연(公?)에 찬조하는 관례를 만들었다. 성종은 독서당의 문신들에게 수정배를 선물했고, 명종은 신하들에게 서총대 연회를 내렸다. 세종은 [찬주분류두시]를 편찬케 하고 그 자문에 응한 시승 만우에게 옷을 하사했다. 성종은 주자청 당상관 이유인에게 놋쇠솥을, 천문학원 이지영에게 명주저고리를 하사했다. 인조는 [선조실록]을 수정하는 일을 맡은 이식에게 도원의 그림이 그려진 부채를 내렸다. 영조는 기술자 최천약에게 은그릇과 유기그릇을 내려 주었다. 정조는 이덕무에게 웅어와 조기를 내려 주었다.
    국왕은 지방 민간의 삶에 대해서도 각별한 관심을 가져, 질병을 퇴치하고 재해를 막거나 지역공동체를 결속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였는데, 그 경우 선물을 자주 활용했다. 곧, 문종은 전염병이 창궐하는 황해도에 벽사약을 내렸고, 예종은 호랑이를 쏘아 바친 적성현 정병에게 동옷 한 벌을 내렸다. 현종은 유랑민을 잘 구호한 광주목사 오두인에게 말을 내려 주었으며, 숙종은 황해도 연안의 이정암 사우에 은액을 하사했다. 영조는 이인좌를 체포한 신길만에게 상현궁을 하사해서 백성들의 충성심을 고취시켰다.
    그러나 국왕의 권력이 미약하거나 국왕이 혼암하여 잘못된 선물을 내린 일도 있었다. 정종은 격구에 늘 함께 한다는 이유로 조온에게 말 한 필을 하사했고, 단종은 계해정난 이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김충·인평 등의 집을 양녕대군·효령대군 등에게 내려 주었으며, 광해군은 부질없이 종계변무의 일을 재차 거론한 허균에게 녹비 한 장을 내렸다.
    조선의 국왕은 외교적으로 국가의 위신을 지키기 위해 갖가지로 노력하였다. 세종은 명나라에 대해 국격에 맞는 사절을 보내라는 무언의 압력으로 [황화집]을 간행하여 명나라 사신에게 증정했다. 성종은 유구 사신을 칭하는 하카다 출신 일본인에게 조선의 토산품을 내려서, 일본, 대마도, 유구와의 외교적 관계를 신중하게 이어나갔다.
    광해군은 명나라의 요구로 후금과 전투하러 나가는 강홍립의 군사에게 몸을 덥힐 목면을 하사했다. 인조는 후금의 징병 요구를 거절한 책임을 지고 심양으로 떠나는 최명길에게 갖옷을 내려, 전대(專對)의 책임을 지웠다. 또한 일본의 에도막부가 일광(日光?닛코)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영혼을 모신 사당에 봉헌할 동종을 요구했을 때, 교린의 의리와 동아시아의 질서를 고려하여 그 요구를 들어 주었다.
    대한제국의 고종은 최익현에게 돈 3만 냥을 선물하고, 양무위원 이기에 대한 징계를 사면하는 한편, 일제의 압력으로 퇴위하여 상왕이 되어 있을 때는 유길준에게 용양봉저정을 하사하면서,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하지만 국권을 강제로 빼앗긴 순종은 의병들을 토적으로 규정하고 일본 거주민들을 위문하는 한편, 일본군 주차사령부에 1,000원을 하사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조선 국왕은 국왕의 권력과 국가의 주권을 외세에게 넘겨주었기에, 공기(公器)를 적절하게 활용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로써 조선 500년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

    목차

    책머리에

    1장 태조, 동북면 도선무순찰사 정도전에게 동옷을 내리다 1
    2장 태조, 공신 조준에게 화상을 하사하다
    3장 정종, 격구에 능한 조온에게 말 한 필을 하사하다
    4장 태종, 교서관의 홍도연에 궁온을 내리다
    5장 태종, 공신 하륜에게 궁중 의원을 내려 보내다
    6장 세종, 시승 만우에게 옷을 하사하다
    7장 세종, 함길도 도절제사 김종서에게 입고 있던 홍단의를 내려 주다
    8장 세종, 도승지 이승손에게 온천욕을 하사하다
    9장 세종, 중국 사신에게 [황화집]을 선물하다
    10장 문종, 함길도 도절제사 이징옥을 기복시키고 의복을 내려 주다
    11장 문종, 전염병이 창궐하는 황해도에 벽사약을 내리다
    12장 단종, 김충·인평 등의 집을 양녕대군·효령대군 등에게 내려 주다
    13장 세조, 신숙주에게 소주 다섯 병을 부치다
    14장 세조, 정인지에게 춘번자 삽모를 하사하다
    15장 예종, 유자광에게 초구 한 벌을 내려 주다
    16장 예종, 공신들의 비를 세워 주라고 하다
    17장 예종, 호랑이를 쏘아 바친 적성현 정병에게 동옷 한 벌을 내리다
    18장 성종, 한명회에게 압구정시를 손수 적어서 내려 주다
    19장 성종, 주자청 당상관 이유인에게 놋쇠솥을 하사하다
    20장 성종, 달성군 서거정에게 호피를 하사하다
    21장 성종, 천문학원 이지영에게 명주 저고리를 하사하다
    22장 성종, 영안도 관찰사 허종에게 보명단을 내리다
    23장 성종, 유구 사신을 칭하는 일본인에게 조선의 토산품을 내리다
    24장 성종, 독서당의 문신들에게 수정배를 선물하다
    25장 연산군, 좌의정 성준에게 답호를 내리다
    26장 중종, 홍문관 수찬 조광조에게 털요 한 채를 내리다
    27장 인종, 좌의정 홍언필에게 산증의 처방약을 내리다
    28장 명종, 조식에게 약재를 내려 보내다
    29장 명종, 신하들에게 서총대 연회를 내리다
    30장 선조, 원접사 이이에게 호피를 내려 주다
    31장 선조, 호성공신 유성룡에게 백금을 내리다

    부록1 _ 조선시대 국왕의 선물 증여에 관하여
    부록2 _ 이 책에서 다룬 국왕의 선물 증여
    도판목록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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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중에서

    정난에 가담하고 새 정권에 참여한 사람들과 역적을 잡은 사람들은 포상을 받았다. 하지만 정난에 죽임을 당한 사람, 새 정권에서 배제된 사람들은 ‘식은 재’가 되었다.
    대대로 조선 조정은 역적의 집과 가솔들을 몰수하여 공신들에게 배분했다. 여성들도 그 배분의 대상이었다. 역적죄로 몰려 공신들의 여종이 되는 것을 공신비(功臣婢) 혹은 공신비첩(功臣婢妾)이라고 했다.
    윤근수의 [월정만필]에 보면, 단종의 왕비 송씨가 관비가 되니 신숙주가 공신비를 삼아서 자기가 받으려 했다. 그러나 세조가 그의 청을 듣지 않고, 송씨를 궁중에 들어오게 하여 정미수(鄭眉壽)를 기르라 명했다. 정미수는 정종(鄭悰)과 문종의 딸 경혜공주(敬惠公主)사이에 태어났으며, 뒷날 중종반정 때 공을 세운다.
    (중략)
    이듬해 예종 원년(1469년) 1월 10일(을축)에 상당군 한명회는, 난신의 처첩과 자녀를 공신에게 주어 노비를 삼게 하는 것은 율문(律文)에 기재되어 있고, 세조 때도 그 처첩과 자녀 및 전지를 모두 공신에게 주었다는 이유를 들어, 남이의 처첩도 공신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했다. 1월 21일(병자)에는 남이의 금은(金銀)을 적몰하여 정업원에 주도록 했다. 1월 26일(신사)에는 남이의 남양 전지를 봉보부인 김씨에게 내려 주었다. 봉보부인은 외명부의 종1품 품계로, 임금의 유모에게 주던 작위였다.
    그해 2월 7일(임진)에는 더욱 잔혹한 일이 일어났다. 예종은 의금부와 장례원에 전지하여, 역적죄에 연루된 이들의 처와 첩, 계모, 첩의 딸, 누이, 조이(召史) 33명을 모두 공신들에게 나누어주라고 명했다. 이로써 서른세 명의 여인이 나락으로 굴러 떨어졌다.
    [용재총화]에 보면 정난공신으로 정2품에 이른 봉석주는, 조정에서 난신(亂臣)의 처첩을 공신에게 노비로 줄 때, 자색이 있는 여인을 구해 첩으로 삼고 밤낮으로 마음껏 마시며 지냈다고 한다. 봉석주는 나중에 모반죄로 죽임을 당했으니, 정난으로 고통 받는 집안의 처첩을 유린한 벌을 받았는지 모른다.
    (/ '12장 단종, 김충·인평 등의 집을 양녕대군·효령대군 등에게 내려 주다' 중에서)

    유성룡은 호성공신이었지만 선조 37년 10월의 삼공신 회맹연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그래서 선조는 그 이듬해 정월에 특별히 백금을 하사한 것이다.
    유성룡은 임진왜란 이전인 선조 23년(1590년) 5월, 49세에 우의정이 되었고, 종계변무의 공으로 수충익모광국공신(輸忠翼謨光國功臣) 3등, 풍원부원군( 原府院君)에 봉해졌다. 이듬해에는 좌의정이 되었고, 이조판서를 겸했으며, 대제학도 겸했다. 그해 명나라에 왜의 실정을 통보하자고 요청했고, 형조정랑 권율을 의주목사, 정읍현감 이순신을 전라좌수사(全羅左水使)로 천거했다. 선조 25년(1592년)에는 특명으로 병조판서를 겸하고 도체찰사가 되었다. 이때 세자 책봉을 건의하여 광해군이 세자가 되었다.
    윤국형(尹國馨 1546~1611년)의 [문소만록(聞韶漫錄)]에 따르면, 임진년 4월 그믐에 대가(임금의 수레)가 도성 문을 나가서 종일 비를 맞으며 임진강에 이르러 배를 탔을 때, 선조가 정승 유성룡에게 이르기를, “경이 항상 나라의 방비가 소홀하다고 경계하더니, 마침내 이 지경에 이르렀구려.”라고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선조가 시종이 지닌 소주 한 병을, 뱃사공이 지닌 사기 종지로 한 잔씩 돌렸다. 저물녘에 동파역에 이르렀을 때 밤비가 죽죽 내렸으나 사람들이 모두 굶고 잤다. 선조가 먹을 음식도 군사들에게 뺏기게 되어 찬성 최황이 쌀 두 말을 바쳤다고 한다.
    (/ '31장 선조, 호성공신 유성룡에게 백금을 내리다' 중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1955.12.23~
    출생지 충북 음성
    출간도서 40종
    판매수 4,489권

    1955년 충북 음성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국문과와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일본 교토대학 문학연구과 박사과정(중국문학)을 수료하고 교토대학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1998년 국문학연구회 논문상, 2002년 성산학술상, 2006년 시라카와 시즈카 기념 제1회 동양문자문화상, 2011년 연민학회 학술상을 수상했으며 한국학술진흥재단(현 한국연구재단) 선정 제1회 인문사회과학 분야 우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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