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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펀치 : 제5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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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제5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기준영 장편소설 [와일드 펀치]


    한국소설의 참신한 상상력을 발굴하기 위해 창비가 제정한 창비장편소설상의 5회째 수상작인 기준영 장편소설 [와일드 펀치]가 출간되었다. [와일드 펀치]는 담담하고 절제된 대화들로 여백의 서사를 선보이고, 성숙한 소설적 시선으로 현대인이 실감할 수 있는 공감과 소통의 문제를 내세우면서 서사적 울림으로 확장해가는 역량을 높이 평가받았다('심사평' 중에서/ pp.260~261). 2009년 등단작 '제니'로 문단에 신선한 긴장감을 불어넣었던 신예작가 기준영은 이번 첫 장편에서 여전히 개성 넘치며, 한결 풍성해진 감수성으로 앞으로의 행보에 기대를 갖게 한다.

    우연의 토크쇼, 절묘한 조화

    “여보, 내 팔자엔 손님이 끓나봐.”
    “왜, 자기 태경이 좋아하잖아?”
    강수가 심통 부리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아니, 난 지금 팔자 얘길 하잖아.”
    “당신 팔잔 늘어진 팔자지. 내가 머슴처럼 일을 하니까.”
    “자기 지금 오버야. 오늘은 내 손님도 있다고 말하려던 참이었어.”
    (…)
    “당신 갑자기 처제가 생겼어.”
    현자는 마치 우리한테 아이가 생겼어,라는 듯 은근하게 말했다.
    (/ pp.15~16)

    [와일드 펀치]는 언뜻 뚜렷한 서사가 존재하지 않는 듯한 독특한 플롯과 분위기를 지닌 소설이다. 이야기는 중산층 부부 ‘강수’와 ‘현자’의 결혼기념일에, 이 부부의 이층집으로 강수의 친한 동생 ‘태경’과 현자의 어린 시절 의자매 ‘미라’가 찾아오며 다소 갑작스레 시작된다. 등장인물들의 감각적인 대사가 돋보이는 이 소설은 이야기의 의도적 분절과 장면전환 연출로 영화적인 느낌을 준다. 인물들의 대사 속에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며 ‘서사’가 아닌 ‘장면’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전개는 일견 토크쇼의 한 대목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함축적인 대화 속에 숨겨진 등장인물들의 사연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독자의 소설적인 상상력을 요하며 여기에 이 소설을 읽는 남다른 재미가 있다. 첫 만남 이후 진부한 약속의 말 없이 자연스럽게 시작된 태경과 미라의 연애처럼 이 소설은 별다른 설명과 군더더기는 생략한 채 세련된 솜씨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쓸쓸하다가도 어느새 따뜻해지고 건조하다가도 한순간 서정적인 대화들은 충돌하고 때로 어긋나며 한잔의 ‘와일드 펀치’처럼 묘한 조화를 이룬다.

    가족이라는 낯설고 따듯한 기적

    한편 우연히 시작된 네 남녀의 이야기는 기댈 곳 없는 소년 ‘우영’이 끼어들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어느날 갑자기, 전혀 다른 과거를 안고 얽히게 된 이 인물들에게는 고된 가족사라는 공약수가 있다. 각자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부재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이들은 서로의 생채기를 공유했다 멀어지고 다시 어루만지는 위안의 여정을 되풀이한다. 자신의 기억 속에서 유사한 상처를 떠올림으로써 타인의 상실과 아픔에 연민을 느끼는 유대감의 형성 과정은 상당히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미라와의 인연으로 우영이 인물 관계도의 한 축에 들어오게 된 것은 우연이지만, 이 소년이 강수와 태경이 공유한 아픔을 치유하는 중요한 계기로 부각되는 결말은 이들의 만남이 결코 우연만은 아님을 넌지시 암시한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외로운 소년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고, 그 위로가 다시 소년을 험한 세상에서 지켜줄 울타리가 되는 마지막 장면에서 세심한 독자는 위로의 순환을 목격한다. 낯선 타인으로 만난 그들은 그렇게 서로에게 ‘가족’이라는 기적이 된다.

    남편에겐 그 두 사람이 깊은 물길을 헤치고 걸어나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태경이 울면서 우영을 택시에 태우고는 자신도 올라탔다. 병원으로 가는 길에 남편은 태경이 왜 그렇게 서러워하는가 생각했다.
    태경은 그날 밤의 일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골목에서 우영일 업고 나오는데, 빗속에서 강수 형밖에 안 보였어. 강수 형이 날 보고 울더라고. 자기가 울고 있는 것도 모르고 형이 애처럼 울잖아, 옛날처럼. 근데, 우영이, 걘 참 어이없어. 이 피투성이를 끄집어당기니까 얘가 그러잖아. 나 못 일어나요. 내가 안된다고 꼭 일어나야 한다니까 자기는 땅바닥이래. 땅바닥이 왜 일어나요, 그러잖아. 남한테 맞고 술주정은 나한테 하고 그 꼴이 참 지랄 맞잖아, 얘랑 나랑.”
    그렇게 미라와 태경, 소년과 그의 엄마, 개 한마리가 우리 집에 왔다.
    (/ pp.244~245)

    [와일드 펀치]에서 인물들이 스쳤다 헤어지고 흩어졌다 다시 모여드는 중요한 공간적 배경인 이층집은 “혈연이나 제도의 끈끈함 없이, 각자의 고독을 존중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가는 다정한 친교의 세계”('해설' 250면)다. 이 소설에서 ‘가족’이란 완전한 해답이 아니라, 다양한 틈새를 지니고 있는 불완전한, 그리하여 어쩌면 새로운 가능성을 지닌 열려 있는 공동체이다. 현대인의 소외와 고립의 양상을 그리되 삭막하지 않고, 공동체와 소통을 꿈꾸면서도 섣불리 희망을 찾지 않는 점은 비슷한 주제의식을 가진 다른 소설들과 변별되는 이 소설만의 특징이다.

    [와일드 펀치]는 정형화된 가족의 틀을 탈피한 대안적 가족서사, 익숙한 문법에 얽매이지 않는 삐딱한 연애서사, 건전함을 강요하지 않는 색다른 성장서사를 품고 있다는 점에서 읽는 이에 따라 다층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근래 보기 드문 풍요로운 텍스트이다. 자칫 자극적인 눈요깃감으로 그치고 말 사건의 연쇄에 휩쓸리지 않고 독자들이 문학을 통해 타인의 고통에 참된 애도를 체험할 수 있도록 중심을 잃지 않는 태도에서 이 작가의 믿음직한 문학적 소신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러니까, 현자는 놀라워해야 했다. 길 잃은 소년의 삶이 이 배에 올라 먼바다를 보기까지 필요한 기적에 대해서. 아름다운, 슬픈, 초라한, 아픈 순간들과, 거기 깃들었다가 사라지는 빛과 어둠에 대해서. 그녀는 앨범 마지막 장에 우영이 적어 보낸 글귀에 다시금 귀기울여보았다.

    당신이 누군지 모릅니다. 당신을 기다립니다.
    (248면)

    추천사

    사물과 상황을 장악하는 문체의 아우라에서 소설가의 개성이 축조된다고 본다면, 기준영은 매우 돋보이는 재능을 지닌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고단한 일상의 무게를 담담하게 견뎌내는 성숙한 소설적 시선은 이 작가가 지닌 가장 큰 미덕으로 다가왔다. 인물의 개별적 사연들을 자기만의 목소리로 끝까지 조율하면서 현대인이 실감하는 관계의 소통의 문제로 서사적 울림을 확장해가는 과정에서 이 작가의 역량과 미래적 가능성이 발견된다.
    - 권여선 백지연 윤성희 정지아 한기욱 / 제5회 창비장편소설상 심사위원

    목차

    1부
    Intro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
    주인 없는 집
    일년 전, 토크쇼
    전생의 반대편
    10개월 전, 이 소파의 내력
    몸의 하루, 마음의 하루
    숨어 있기 좋은 채널
    6개월 전, 내겐 전부인 무엇
    남과 여
    다시 6개월 전, 내겐 전부인 무엇
    다시, 남과 여
    5개월 전, 파우더핑크색 벽지를 바른 식당
    Outro

    2부
    Intro
    존과 폴과 루시의 나날들
    누군가는 불편한
    오늘이 처음인 사람들처럼
    따뜻한 온음표
    머물던 자리
    과거가 많은 엑스트라
    당신과 당신의 합
    골목길에서 널 기다리네
    Outro
    상상의 안식일

    해설|백지연
    심사평
    수상소감

    본문중에서

    “여보, 내 팔자엔 손님이 끓나봐.”
    “왜, 자기 태경이 좋아하잖아?”
    강수가 심통 부리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아니, 난 지금 팔자 얘길 하잖아.”
    “당신 팔잔 늘어진 팔자지. 내가 머슴처럼 일을 하니까.”
    “자기 지금 오버야. 오늘은 내 손님도 있다고 말하려던 참이었어.”
    (…)
    “당신 갑자기 처제가 생겼어.”
    현자는 마치 우리한테 아이가 생겼어,라는 듯 은근하게 말했다.
    (/ pp.15~16)

    남편에겐 그 두 사람이 깊은 물길을 헤치고 걸어나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태경이 울면서 우영을 택시에 태우고는 자신도 올라탔다. 병원으로 가는 길에 남편은 태경이 왜 그렇게 서러워하는가 생각했다.
    태경은 그날 밤의 일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골목에서 우영일 업고 나오는데, 빗속에서 강수 형밖에 안 보였어. 강수 형이 날 보고 울더라고. 자기가 울고 있는 것도 모르고 형이 애처럼 울잖아, 옛날처럼. 근데, 우영이, 걘 참 어이없어. 이 피투성이를 끄집어당기니까 얘가 그러잖아. 나 못 일어나요. 내가 안된다고 꼭 일어나야 한다니까 자기는 땅바닥이래. 땅바닥이 왜 일어나요, 그러잖아. 남한테 맞고 술주정은 나한테 하고 그 꼴이 참 지랄 맞잖아, 얘랑 나랑.”
    그렇게 미라와 태경, 소년과 그의 엄마, 개 한마리가 우리 집에 왔다.
    (/ pp.244~245)

    저자소개

    생년월일 1972~
    출생지 서울
    출간도서 13종
    판매수 2,769권

    2009년 문학동네신인상에 단편소설 [제니]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연애소설] [이상한 정열], 장편소설 [와일드 펀치]가 있다. 창비장편소설상, 문학동네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언론사 추천 및 수상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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