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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초기 조선의 농업 : 식민지근대화론의 농업개발론을 비판한다[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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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허수열
  • 출판사 : 한길사
  • 발행 : 2011년 12월 28일
  • 쪽수 : 400
  • ISBN : 978893566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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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어떤 이론의 안경을 쓰고 보느냐에 따라 세상은 전혀 다르게 보인다”
    식민지근대화론의 오류를 규명하는 허수열 교수의 치밀한 연구성과


    “식민지근대화론의 역사관은 U자 곡선으로 요약된다. 조선후기에 쇠퇴국면에 빠져 있다가 구한말과 일제 초에 바닥을 친 뒤 발전국면으로 반전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닥이 낮으면 낮을수록 U자는 더 선명해진다. 이 책이 1910년 부근의 조선의 농업을 주제로 삼고 있는 까닭은 식민지근대화론의 바닥 인식이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허구에 가득 찬 것임을 밝히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실증적 연구를 통해 식민지근대화론의 양 날개, 즉 조선후기 위기론과 일제시대 개발론을 모두 비판하려고 한다.”
    - 허수열

    식민지근대화론의 비판에 대한 반비판
    [일제초기 조선의 농업](2011, 한길사)은 평범한 제목과는 달리, 한국 근현대 농업에 전반을 대상으로 식민지근대화론과 치열한 공방을 벌이는 매우 논쟁적인 책이다. 저자 허수열 교수(충남대·경제학)는 [개발 없는 개발](2005)을 펴낸 이후 식민지근대화론 측에서 제기된 비판 중에서 농업부문과 관련된 것을 반비판할 목적으로 다시 이 책을 저술했다. 결론적으로 말해, 식민지근대화론의 그간의 비판은 어느 하나도 타당하지 않고, 따라서 [개발 없는 개발]에서 주장된 내용이 여전히 타당하다는 것을 밝히려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식민지근대화론의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실증하는 것으로 가득 차 있다.

    왜 일제초기 조선의 농업인가
    : 식민지근대화론이 주장하는 바닥의 실체

    한국 근현대 경제의 변화에 대한 식민지근대화론의 인식은 U자형으로 정리될 수 있다. 즉 조선후기에 대해서는 조선 스스로 몰락했다는 ‘조선후기 위기론’을 주장하였고, 개항 이후 일본이 조선에 진출하면서 개발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여 그것이 해방 후의 한국경제 발전의 역사적 배경이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일제 초기 언저리를 경계로 하여 그 이전에는 몰락, 그 이후에는 발전이라는 역사상, 바로 그것이 ‘식민지근대화론’의 역사관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식민지근대화론의 이러한 주장은 그들 스스로가 말하고 있듯이 한국 역사학계를 매우 당혹스럽게 만들어 버렸다. 해방 후 한국 역사학계는 일제시대의 식민사관을 청산하는데 주력해 왔다. 식민지근대화론은 이런 노력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었고, 일본의 조선지배가 원천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소략한 언급을 제외하면 사실상 식민사관과 다를 바 없는 것으로 되돌아가버렸다. 식민지근대화론의 최근의 연구동향을 보면, 그들은 조선후기가 어떻게 쇠망하게 되었는가를 밝히거나, 일제시대에 조선경제가 얼마나 빨리 개발되었으며 조선인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었는가를 밝히는데 주력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일제초기의 조선의 농업인가?
    일제초기는 압도적으로 농업이 중심적인 사회였고, 식민지근대화론에서 말하는 U자 곡선의 제일 바닥에 해당한다. 식민지근대화론은 이 바닥에 해당하는 일제초기의 조선의 농업생산을 과소평가함으로써 전체적으로 U자 곡선을 선명하게 하려고 하였다. 바닥이 낮으면 낮을수록 조선시대 위기는 더 뚜렷해지고, 일제시대의 개발도 한층 더 뚜렷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제초기의 조선의 농업을 들여다보면, 식민지근대화론이 주장하는 바닥의 실체를 가장 잘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누구의 주장이 “광기서린 증오의 역사소설”인가
    : 소설가 조정래와 이영훈 교수의 논쟁

    허수열 교수는 식민지근대화론의 농업관에 대한 비판은 우선 조정래 소설가와 서울대 이영훈교수 사이의 논쟁으로부터 시작한다. 이영훈교수는 뉴라이트 계간지인 [시대정신] 2007년 여름호와 가을호 두번에 걸쳐 조정래 소설가의 [아리랑]이 전혀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는 허구(fiction)라는 점을 밝히려 하였다. 이 두 글은 제목 자체부터 섬뜩하다. 2007년 여름호는 제목이 “광기 서린 증오의 역사소설가 조정래 · 대하소설[아리랑]을 중심으로”라는 것이었고, 가을호는 “김제 역사의 본류에 진입 못하고 이방인으로 맴돈 조정래와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구별조차 못하는 MBC · 조정래와 MBC의 반박에 대한 재반박”이라는 제목이었다. 이 두 글은 지금도 [시대정신] 홈페이지에서 읽어 볼 수 있다(http://www.sdjs.co.kr/sub1a.php). 허교수는 자신의 책을 읽기 전에 꼭 이 글을 먼저 읽어 보기를 권하고 있다. 이영훈교수의 비판은 지도나 문헌 등의 사료를 근거로 하는 비판이기 때문에 이 글을 읽으면 정말 [아리랑]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오로지 조정래 소설가의 광기 서린 증오의 역사관에서 씌어진 것처럼 여겨질 것이다.
    허수열교수는 이러한 이영훈교수의 주장이야말로 광기서린 증오의 역사소설이라고 보았다. 조정래소설가와 이영훈교수 사이에서 논쟁이 되었던 사항들을 하나씩 하나씩 검토하여, 이영훈교수의 거의 대부분의 주장이 사실(fact)이 아니라 허구(fiction)이고 일종의 소설임을 밝혀낸다. 이영훈교수는 일제초기 이 지역에 존재하던 수많은 수리시설들이 러일전쟁 이후 이 지역에 진출한 일본인들에 의해 축조된 것이라고 주장하였지만, 허수열교수는 그것이 조선 재래의 수리시설이었음을 밝힘으로써 김제?만경평야 지역에 대한 식민지근대화론의 역사 인식이 얼마나 허황한 것인가를 보여준다.

    이영훈 교수의 벽골제 방조제설은 근거 없는 허구
    조선 재래의 김제?만경평야지대의 농업개발 상태를 무시하고 러일전쟁 이후 이 지역으로 진출한 일본인들의 개발만을 강조하는 식민지근대화론의 역사 인식의 문제점은 벽골제를 방조제라고 주장하는 이영훈교수의 생각에서 절정에 달한다. 벽골제가 방조제라면 그 둑 아래 지역 (지금의 김제?만경평야의 대부분)은 바닷물이 들락거리는 갯벌이 되어버리고, 그것이 저수지의 둑이라면 그 둑 아래 지역은 벽골제로부터 관개 받는 비옥한 경지로 될 것이다. 방조제설은 한국 최대의 평야지대인 김제?만경평야지대를 갯벌로 간주해버리는 것이고, 따라서 거기에는 조선재래의 농업개발은 존재할 수 없게 된다. 허수열교수는 이영훈교수의 방조제설이 전혀 근거가 없는 허구임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입증하였다.

    일제초의 부정확한 조선총독부 통계는 수정되어야 한다
    식민지근대화론과 허수열교수 사이의 논쟁은 1910~1917년간의 조선총독부의 농업통계에 대한 해석에서 다시 첨예하게 맞붙는다. 허수열교수에 따르면 조선총독부의 농업통계는 1909년부터 공표되기 시작하였는데, 그 당시는 아직 통계조사를 위한 체계가 갖추어져 있지 않았고, 따라서 통계가 부정확하고 불충분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토지조사사업이 완료되는 1918년 이전까지 조선의 경지면적에 대한 통계가 매우 부정확했다는 것은 그 이전 시기와 그 이후 시기의 경지면적 통계를 비교해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또 인구통계도 1925년 인구 센서스가 이루어지면서 비로소 정확해지기 시작했고, 그 이전의 인구는 부정확했다고 보는 것은 누구나 다 동의하는 바이다. 경지나 인구에 대한 통계도 부정확한데, 그 땅 위에서 생산된 생산물의 통계가 정확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일제초기의 농업통계가 부정확했다는 점은 조선총독부 스스로 1918년판 및 1919년판 조선총독부 통계연보에서 과거의 통계들을 수정한 것을 보더라도 명백하다.
    문제는 조선총독부가 2번에 걸쳐 수정함으로써 농업통계가 정확해졌을까 하는 점이다. 식민지근대화론에서는 이 수정의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입장이고, 허수열교수는 그 수정이 여전히 불충분하다는 입장이다. 허수열교수는 식민지근대화론에서 추계한 조선의 실질농업생산액의 변화를 보았을 때, 1918년을 경계로 그 이전과 그 이후가 변화추세가 뚜렷이 구별되는데, 그 까닭은 식민지근대화론에서 추계를 행하면서 조선총독부 통계가 가진 문제점을 충분히 수정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얼핏 생각하면, 1910년대 초의 농업생산 통계의 수정이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아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식민지근대화론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일제시대 조선경제는 1910~1918년간 및 1930년대 두 시기에 걸쳐 매우 급속히 성장한 것으로 나타난다. 허수열교수의 주장이 타당하다면 일제시대의 성장은 1930년대만 남게 되는데, 1940년대에 일본 전쟁경제가 붕괴하면서 조선경제도 붕괴하였기 때문에, 개발의 효과는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일제초기의 통계의 수정에 의해 일제초기의 개발이 통계적 허구라는 것이 입증된다면, 식민지근대화론이 주장하는 일제시대의 급속한 개발이라는 것이 사실상 무의미한 것으로 되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일제초기 급속한 개발, 즉 ‘농업생산의 급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때문에 식민지근대화론에서는 허수열교수의 저서 [개발 없는 개발]이 출간된 이후 이 부분에 대해 집중적인 비판을 가해왔다. 허수열교수는 이 기간의 생산의 증가가 통계상의 허구라고 주장한 반면, 식민지근대화론에서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식민지근대화론에서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로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로 1910년대는 제1차 세계대전의 호경기 기간이고, 따라서 농업생산이 급증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로 러일전쟁 이후 일본인들이 조선에 진출하면서 수리시설이 확충되고, 개간과 간척에 의해 경지면적이 확대되었으며, 밭을 논으로 바꾸는 지목변경이 활발해짐으로써 농업생산이 증가하였다. 셋째로 1910년대에 우량품종이 급속히 보급됨으로써 농업생산이 급속히 증가할 수 있었다.
    허수열교수는 이런 주장들이 객관적 사실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때로는 논리적으로 또 때로는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비판한다.
    우선 제1차 세계대전(1914~19년)이 일본 역사상 유례없는 호경기 시절이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1914년은 불황의 바닥이었고, 조선의 물가가 평년수준을 벗어나게 되는 것은 1917년 이후였다. 1918~20년간에는 물가가 폭등하는데 이때가 바로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호경기가 뚜렷한 기간이었다. 따라서 제1차 세계대전의 호경기를 이유로 1910~1917년의 농업생산의 급증을 설명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일제초기의 농업생산량 증가는,
    1920년대 산미증식계획의 기간 동안의 증가보다 빠를 수 없다

    1910~17년간에 경지면적이 확대되었고 지목변환이 이루어진 것도 명백한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조선총독부가 조선의 농업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는 1920년대 이후에 한층 더 뚜렷하게 나타난 것들이었다. 조선의 농업생산을 증대시키기 위한 조선총독부의 노력은 1920년 산미증식계획이 시작되어 1926년 그것이 산미증식갱신계획으로 바뀌어져 세계대공황으로 인해 사실상 중단되는 1930년대 초까지 추진되는데, 이 기간 동안 조선의 농업부문에는 1910년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집중적인 투자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 투자의 핵심은 수리조합에 의한 관개개선이었지만, 개간과 간척 및 지목변환도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만약 경지면적의 확대나 지목변환에 의해 미곡생산이 급증했다면, 그 시기는 토지조사에 주력하던 1910~18년간이 아니라 미곡증산정책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1920년대 이후가 되어야 마땅하다. 따라서 이 점에서는 1910~17년간의 농업생산의 증가가 1920년대 이후의 농업생산의 증가보다 더 빠를 수는 없는데, 식민지근대화론에서 추계한 실질농업생산은 1910~17년간이 훨씬 더 빠르게 증가하고, 1920년대는 사실상 정체하는 것으로 추계되어 있는 것이다. 1910~17년간에 급증하도록 추계된 것이 잘못이고, 따라서 이 추계에 따르면 1910년에 가까이 갈수록 농업생산이 과소평가되는 것으로 된다. 비료의 사용방법이나 사용량과 관련된 측면에서도 마찬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우량품종의 보급에도 농업생산량 증가는 없었다
    1910~17년간의 시기에 일제시대의 다른 시기에 비해 훨씬 빨리 증가한 요인으로 사실상 유일한 것은 이 시기의 우량품종의 급속한 보급밖에 없다. 이 우량품종이라는 것은 대부분 일본종인데, 일본에서 다수확성이 입증된 것들이었다. 1910년대에는 이 다수확 품종인 우량품종의 보급률이 매우 빠르게 증가하였기 때문에, 조선의 단보당 평균생산량도 급증하게 될 것이고, 따라서 재배면적에 변함이 없다고 하더라도 조선의 미곡생산량은 급증하게 된다는 것이 식민지근대화론의 주장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논리를 토대로 1910년대에 우량품종이 급속히 보급된 것을 인정하면서도 평균생산량이 정체적이라고 보는 허수열교수의 주장은 논리적 모순이라고 비판하였다. 그러나 허수열교수는 식민지근대화론에서 사용한 바로 그 자료를 사용하면서도 그 해석은 정반대였다. 즉 1910~29년간의 조선총독부의 농업통계에서 통계의 정확성이 특히 의문스러운 1910~1913년간의 4개 연도를 제외한 나머지 연도에 대해 미곡의 단보당 평균생산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량품종이 급속히 보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단보당 평균생산량은 사실상 정체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우량품종이 조선에서는 실제로 그 효과를 특별히 발휘하지 못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식민지근대화론의 논리에 따른다면, 단보당 생산량이 월등히 높은 우량품종이 급속히 보급된 1914~29년간에도 단보당 평균생산량이 급속히 증가되어야 마땅한데, 그 통계 어디에서도 그런 것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요컨대 식민지근대화론의 논리야말로 오히려 사실에 반하는 모순이라는 것이 허수열교수의 주장이었다.

    두락당 지대량 급락이 두락당 생산량 급락으로 볼 수는 없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허수열교수는 식민지근대화론의 장기적 농업관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있다. 식민지근대화론에서는 조선후기에 농업생산이 붕괴되었다고 생각하고, 그 근거로서 토지생산성이 급락한 것을 들고 있다. 그리고 이 토지생산성의 급락은 다시 두락당 지대량의 급락을 토대로 하는 것이었다. 두락당 지대량은 1두락(마지기)의 논에서 생산된 미곡 중에서 지주가 수취하게 되는 양을 의미하는데, 식민지근대화론에서는 지대율이 변함이 없었다고 가정하여 두락당 지대량의 변화가 바로 두락당 생산량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였는데, 조선후기에 이 두락당 지대량이 급락하였기 때문에 두락당 생산량이 급락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허수열교수는 조선시대의 지대율에 대해서는 명백하지 않기 때문에 일단 이것을 논외로 한다고 하더라도, 지대수취방법의 변화에 따른 지주 수취 몫의 변화가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식민지근대화론을 비판한다. 즉 두락당 지대량 자료는 거의 대부분이 경상도와 전라도지역에서 발굴된 것인데, 이 두 지역에서는 19세기 동안 지대수취 방법이 타조법에서 집조법으로 크게 변화하였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타조법에서는 생산된 미곡을 지주와 소작인이 반반씩 나누어 갖되 지주가 종자와 세금을 부담하는 방식이었던 반면, 집조법에서는 생산된 미곡 중 지주가 1/3을 차지하고 그 대신 종자와 세금은 소작농이 부담하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이런 지대수취방법의 변화만으로도 전체 미곡생산량 중에서 지주가 수취하는 몫이 크게 줄어들 수 있는데, 이런 점들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허수열교수는 19세기 말에 일시적으로 미곡생산량이 급감한 때가 있었지만, 장기적으로 식민지근대화론에서 주장하는 것 같은 추세적 격감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생산량의 본격적 증가는 일제시대가 아니라 1955년 이후 비로소 가능하게 되었다
    한편 식민지시기에도 1930년대에 미곡생산량이 상당히 증가하였지만, 1940년대에 다시 크게 감소하고, 이런 상태가 1940년대 말까지 지속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해방 당시의 남한의 미곡생산량은 일제초기의 그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고, 남한의 미곡생산량의 본격적인 증가는 일제시대 농업제도의 가장 큰 특징인 식민지적 지주제가 1955년 농지개혁의 완료로 청산되면서 비로소 가능하게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즉 1920~55년간의 미곡의 평균생산량과 1975~2008년간의 평균생산량을 비교해 보면, 후자가 전자의 약 2.5배에 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1955~75년간의 20여 년간 한국의 미곡생산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따라서 이 시기를 한국의 농업혁명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라고 보았다.

    목차

    책을 내면서

    제1장 문제의 제기- 사실과 허구
    제2장 1910년대 초 김제.만경평야의 수리시설
    제3장 벽골제
    제4장 미곡 생산량과 가격
    제5장 토지개량
    제6장 개량농법
    제7장 농업생산성의 장기적 변화
    제8장 맺음말- 과장된 위기 그리고 과장된 개발

    부표1 일제시대 조선의 개간면적과 간척면적(누계) 추계
    부표2 일제시대의 관개면적 벼노하
    찾아보기

    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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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쿄토대학 초빙외국인학자와 미국 하버드 대학 visiting scholar를 지냈으며, 현재 충남대학교 경상대학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근대경제사가 전공이며, 그 중에서도 특히 일제시대의 조선경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오고 있다. [개발 없는 개발], [일제하 조선에 있어서 일본인 토지소유규모 추계], [韓國經濟의 近代化 始點] 등의 논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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