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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맨발이다 : 신성일 Lif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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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판사 : 문학세계사
  • 발행 : 2011년 12월 02일
  • 쪽수 : 359
  • ISBN : 9788970755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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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신성일의 삶을 이야기하다!

거침없이 맨발로 달려온 한국 영화계의 살아 있는 전설, 신성일의 에세이『청춘은 맨발이다』. 이 책은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와 함께 한국의 문화예술 연대기, 한국의 영화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1960년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한 이래 6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한 시대를 움직인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스타인 저자는 이 책에서 스타의 은밀한 사생활을 들려주며 영화, 사회, 문화 쪽은 물론 정치, 권력의 어두운 구석까지 보여준다.

출판사 서평

1. 한 시대를 움직인 최고의 스타이자 우리 현대사의 산 증인이 들려주는 리얼 스토리!

거침없이 맨발로 달려온 한국 영화사상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스타, 우리 시대의 자유인 신성일! 그는 1960년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한 뒤 〈맨발의 청춘〉 〈초우〉 〈만추〉 〈안개〉 등 506편의 영화에서 주연하며 60~70년대 청춘스타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상대역으로 출연한 여배우는 118명에 달한다. 단연코 한 시대를 움직인 최고의 무비 스타이자 우리 현대사의 산 증인이라 할 수 있다.
‘청춘은 맨발이다’라는 책의 제목처럼 신성일은 하루를 25시로 놓고 뛰어왔다. 고등학교 2학년 무렵 집안이 풍비박산되어 빚쟁이들에게 주먹과 발길로 구타당한 신성일은 다시는 이런 수모를 당하지 않으리라 이를 악물고 무작정 상경(上京)하였지만 대입에서 잇따라 떨어지고, 방황은 계속됐다. 하지만 1960년대 초 그에게 최고의 영화배우가 되는 운명이 주어졌고, 한 해에 40~50편의 주연을 맡으면서도 무쇠 기계처럼 거침없이 나아갔다.
이 책 속에는 청춘스타로 세상에 이름을 알리고, 당대 최고의 여배우 엄앵란과 올린 세기의 결혼식, 성공일로의 영화계 생활과 그 후 정치 입문에 이은 수감생활 등 영화보다 더 극적이고 흥미로운 신성일의 자전적 스토리가 담겨 있다. 또한 시비가 생기면 어떤 사람과도 한판 붙는 스타일인 그의 성격처럼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속 시원히 털어낸 한국 현대 문화, 정치계의 주요 인물과 사건들이 파란만장하게 펼쳐진다. 그렇기에 『청춘은 맨발이다』는 그의 자서전인 동시에 ‘한국의 문화예술 연대기’며 ‘한국의 영화사’가 된다.
수십 년 발꿈치를 들고 뛰어다닌 신성일의 엄지발가락은 흉측하게 튀어나와 있다. “젊은놈들 하나도 안 무섭다”고 큰소리치는 그는 요즘도 매일 달리기와 아령으로 몸을 만들며 ‘무섭게’ 운동한다. 70대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 과대포장되거나 과소평가되고 있는 인물이나 사건들에 대해서도 바로잡고자 했다. 또한 그는 이번 책을 통해 ‘인생은 혼자 걸어가는 것이다’, ‘정면으로 돌파하라’, ‘긍정적인 생각으로 어려움을 이겨내라’는 메시지로 젊은 세대와도 소통하고자 했다.
특히 이 책을 통해 고 김영애와의 가슴 속에 간직한 사랑 이야기를 그녀의 사진과 함께 봉인하여 처음으로 공개하며 자신의 심정을 드러내었다. “아무도 모르게 단 한 장의 사진을 간직해 왔다. 엄앵란도 모르는 미공개 사진이다. 약속대로 그 사진과 함께 〈청춘은 맨발이다〉(중앙일보, 일간스포츠 연재)에서 못다 한 김영애와의 사랑 이야기를 이번 단행본에 공개한다. 어떤 비난이 쏟아질지라도 두렵지 않다. 그 사랑을 있는 그대로 독자들에게 들려드리는 것이 내 의무이다.”

2. 피할 수 없는 운명 그리고 사랑

신성일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빚쟁이들을 피해 서울로 무작정 상경하여 생활하던 중 우연히 한국배우전문학원에 들어갔고, 신상옥 감독이 운영하던 ‘신필름’에 들어가 배우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때 신상옥 감독으로부터 ‘뉴스타 넘버 원’이란 뜻의 신성일(申星一)이란 예명을 받게 된다. 성은 신상옥 감독의 성인 신(申)을 썼다. 신성일이 하루아침에 탄생한 스타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지만 사실 험난한 밑바닥 생활부터 올라온 배우이다. 1960년 1월 1일에 개봉한 〈로맨스 빠빠〉가 히트했지만 그후 4, 5년 동안 별다른 작품에 출연을 못한 그는 사무실에서 바쁜 신 감독을 대신해 전화를 받았다. 그 덕분에 당대 유명한 영화계 인사며 영화담당 기자들과 친해졌고 그때 영화계에서 한자리 차지하는 데 필요한 인맥과 실무경험과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후 영화배우 30년, 정치인 10년 세월 동안 그는 무수한 인물들과 인연을 맺으며 한국 현대사의 한복판을 거침없이 가로질렀다. 1960~70년대 충무로에서 영화와 함께 청춘을 보냈고, 90년대 중반부터 약 10년간 정치인의 삶을 살았던 신성일이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그간 겪어온 사건과 시대, 사람을 돌아보았다.
특히 엄앵란과의 만남에서부터 결혼과 별거 그리고 단란했던 이태원 시절의 이야기들이 상세히 기술된다. 1963년 늦가을 경기도 가평군 청평호에서 영화 〈배신〉 촬영장에서의 키스 사건과 자신이 더 다친 줄도 모르고 부상당한 엄앵란을 병원까지 호송했던 사건으로 신성일은 한 살 연상인 엄앵란의 마음속에 확실한 ‘남자’로 각인되었다. 그러는 가운데 어머니가 찍은 며느릿감은 재일동포 여배우 공미도리였다. 신성일 모르게 양가 부모 사이에 혼담이 오가기도 했다. 하지만 공미도리보다 엄앵란과의 인연이 더 강했던 것이다. 두 사람은 결국 세기의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하지만 3,500여 명의 하객들이 워커힐 퍼시픽 홀을 덮쳐 통제 불능 상태가 되어, 앙드레 김이 정성스럽게 지어준 웨딩드레스는 짓밟히고, 화환은 넘어지는 등 난장판 결혼식이 되었다.
이태원 181번지는 신성일, 엄앵란의 보금자리일 뿐더러 영화 관계자들이 좋아하는 장소가 되어 항상 시나리오를 들고 찾아오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또한 그 집은 귀한 선물을 주었는데 그들의 세 아이 모두 그 집에서 태어났다. 큰딸 경아(1965년생), 아들 석현(1967년생), 작은딸 수화(1970년생)다.

3. 추억 속의 스타들

영화 인생 50년, 그간 수많은 별이 뜨고 스러지는 가운데 신성일의 기억 속에 남는 사람도 무척 많다. 그 중에서도 가수 나훈아와의 인연은 특별하다. 지금은 대단한 가수 반열에 올라 있지만 당시 나훈아는 시커멓고 여드름투성이 신인이었다. 그런 나훈아에게 신성일이 “너 여드름 고치는 방법을 알려줄까? 나이 먹은 여자와 연애해봐.” 하며 놀렸는데, 실제로 그렇게 하여 여드름을 치료했다고 자랑하였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있고 얼마 뒤에 나훈아는 배우 고은아의 사촌인 이모 씨와 결혼한 상태로 공군에 입대했다. 그런데 입대 생활 중에 나훈아가 김지미, 가수 J와 외도를 하고 있다는 투서가 공군방첩대(OSI)에 들어왔다. 나훈아는 통사정을 하였고 주영복 공군참모총장과 막역한 사이였던 신성일, 엄앵란의 도움으로 겨우 무마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나훈아와 김지미의 결혼이 발표됐다.
신성일과 함께 가장 많은 작품을 한 여배우는 윤정희로 무려 99편에 함께 나왔다. 엄앵란 다음으로 속내를 터놓을 수 있는 여배우인 것이다. 그녀의 이름 윤정희는 예명(본명 손미자)이었지만,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시〉에선 ‘미자’라는 본명을 사용했다. 신성일은 그녀와 한 편의 영화를 더 찍어 그녀와 함께 하는 100편의 영화를 채우고자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물론 성사가 된다면 노년의 두 배우는 혼신의 힘으로 연기 인생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지 않을까? 어떤 영화가 될지 기대가 크다.
신성일이 주연한 영화 주제가를 불렀다가 상대역까지 한 여가수가 둘 있다. 정훈희와 패티김이다. 정훈희는 1971년 박종호 감독의 〈들개〉에서 여주인공으로 데뷔했다. 신성일이 동네 건달 역을, 정훈희가 이발소 면도사 역을 맡았다. 들개 같은 인간이 면도사를 건드리는 이야기인데 정훈희와 키스하는 장면이 있었다. 키스 신을 끝낸 정훈희의 말이 재미있다. “신성일 아저씨가 키스하자고 덤비는데 너무 놀라 눈이 뒤집어졌어요.”
1972년 〈이별〉은 패티김ㆍ길옥윤 부부의 이별을 암시하며 최대 히트곡이 되었고, 패티김은 1974년 영화 〈속(續) 이별〉에 출연했다. 패티김은 신성일과 키스한 장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생긴 얼굴이 다가오는데 어쩔 줄을 몰랐어. 나중에 영화를 보니까 내 눈이 사팔뜨기가 됐더라고.”
조영남을 생각할 때 신성일은 지금도 웃음과 함께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한다. 조영남은 신인 시절부터 전혀 신인 같지 않았다. 한마디로 버르장머리가 없는 후배였다. 조영남은 대선배들 앞에서도 다리를 꼬고 앉았을 정도였다. 그럴 즈음 사건이 났다. 부산 국도극장 쇼 무대를 준비 중이던 신성일에게 조영남은 소파에 드러누워 발을 꼰 채 “형님, 옷 참 좋~습니다. 한남동 양부인 집에 가면 커튼 옷감이 다 그런 거던데요.”라고 한 것이다. ‘양부인’이라면 술집 여자다. 엄앵란이 최고 옷감으로 지어준 옷을 그런 데 비유하다니, 신성일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조영남을 바닥에 팽개친 후 몸을 밟았다. 물론 그 후에 조영남 리사이틀 공연 때 꽃다발을 전하며 사과했다고 한다.
1976년 가을 무렵 전북 정읍에서 추석 쇼로 〈탈선 춘향전〉이 무대에 올려졌다. 향단이 역을 맡은 백금녀가 급한 일로 갑자기 상경해 향단이 역은 공석이었다. 보조사회자인 이주일이 신성일의 권유로 향단이 역을 맡았다. 이주일의 독무대였다. 〈탈선 춘향전〉에서 보여준 이주일의 종횡무진한 활약은 지방 쇼단장들에게 금방 소문이 났고, 이주일은 그걸 계기로 단독 MC로 뛰어올랐다. 그는 무명 딱지를 떼고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내며 TV 방송과 코미디계의 황제가 되었다.
그 밖에 태현실과의 엉뚱한 스캔들, 1960년대 중후반 윤정희ㆍ문희ㆍ남정임의 1세대 ‘여배우 트로이카’ 시대와 1970년대 중반 장미희ㆍ정윤희ㆍ유지인의 ‘2세대 트로이카’ 이야기 등 한국을 대표했던 여배우들과의 추억이 펼쳐진다.

4. 신성일을 만든 명감독, 그들의 영화 같은 인생

오늘의 신성일을 있게 한 단 한 사람을 꼽으라면 당연 신상옥(1926~2006) 감독이다. 신성일은 1959년 신필름(신상옥 감독의 영화사)의 신인 공채로 배우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그 당시 별명이 ‘영화에 미친 야생마’였던 신 감독의 열정에 큰 영향을 받았다. 신성일은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 그리고 오수미 세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했다.
정진우 감독은 ‘영화는 카메라가 펜이나 마찬가지다. 카메라로 써내려가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철학으로 촬영했다. 국내 영상영화(시네 포엠)의 시초라 할 수 있다. 신성일과 동갑인 정진우 감독은 〈배신〉 촬영 당시 신성일과 엄앵란의 키스를 최초로 지켜본 목격자다. 그는 1966년에만 〈초연〉, 〈하숙생〉, 〈초우〉, 〈악인시대〉 등 다섯 작품을 한꺼번에 찍으며, 무려 22일 동안 못 자고 촬영했다고 한다. 최고 인기감독이었던 그는 과격한 성격과 거침없는 말투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정진우 감독은 신성일이 ‘영화인’이란 타이틀을 붙이는 유일한 사람이다.
마음이 맞는 파트너로 신성일은 이만희 감독을 꼽았다. 눈빛만 봐도 통할 정도로 이 감독과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하드보일드한 청춘영화를 만드는 데 그 둘보다 더 어울리는 단짝은 없었다. 신성일과 이만희 감독의 만남은 이 감독의 스타일을 바꾸는 전환점이 됐다. 그 전까지 이 감독은 주로 장동휘ㆍ박노식ㆍ최무룡 등 선배 배우들과 작품을 많이 했다. 그는 작품에 변화를 줘야 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 이후 나온 〈만추〉(1966), 〈원점〉(1967), 〈휴일〉(1968) 등은 둘의 호흡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
신성일이 최고로 꼽는 영화 〈만추〉 뒤에는 이만희 감독과 여주인공 문정숙의 애틋한 사랑이 있었다. 서로에게 반했지만 그들에겐 각각 배우자와 아이가 있었고 문정숙과 누구보다 친했던 엄앵란은 ‘이루어질 수 없는 애절한 사랑’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어진 또 다른 사랑 문숙은 이 감독이 1974년 〈태양 닮은 소녀〉에서 데뷔시킨 신인배우였고, 두 사람은 그 작품을 통해 연인이 되었다. 그런데 이 감독은 1975년 봄 〈삼포 가는 길〉을 편집하던 중 충무로 중앙대 성심병원으로 실려 갔다. 간암 말기였다. 1975년 4월 13일 입원 열흘 만에 세상을 떴다. 문숙은 이 감독 무덤에 절하며 눈물을 흘렸다. 20대 초반의 문숙과 이 감독의 나이 차이는 23살이었다. 문숙은 몇 년 전 자서전을 통해 이 감독과의 사랑을 고백하였다.
1969년 신성일과 윤정희는 〈포옹〉의 남녀 주인공으로 조문진 감독과 호흡을 맞추었다. 어느 날 그가 무언가 촬영을 요구했는데, 신성일은 모르는 체하고 현장을 떠나버렸다. 조 감독은 작품이 끝난 후 한 주간지에 “톱스타(신성일) 다루기도 힘들고, 건방져서 감독하기 힘들다”는 인터뷰를 했다. 기분이 나빠진 신성일은 그 후 조 감독과의 영화를 피하려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영화 〈두 아들〉을 같이 찍으며 가까워졌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조문진 감독은 1986년 〈젊은 밤 후회 없다〉에서 신성일의 아들 강석현을 데뷔시켜 그 해 대종상 신인상 수상의 영광도 안겨주었다.

5. 사나이 가는 길- 정치권에서 만난 사람들

1964년 11월 서울 워커힐에서 열린 신성일ㆍ엄앵란 결혼식은 그야말로 ‘세기의 결혼식’이었다.
그때 육영수 여사가 신부에게 결혼 선물로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을 선물하였다. 60년대 엄앵란 스타일을 유행시킨 그녀의 전속미용사가 고(故) 육영수 여사의 미용사로 발탁되어 청와대에 입성했던 인연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미용사는 영부인의 허락을 받고 휴가를 낸 뒤 신부의 머리를 해줬다고 한다.
15대 대선이 끝난 후에는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를 만나게 됐다. 1998년 4월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에 박 대표가 한나라당 후보로 나오게 된 것이다. 박 대표는 아무 연고가 없는 달성군으로 내려오는 고속도로에서 신성일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엄앵란과의 결혼식 때 김소월 시집을 선물해주신 육영수 여사를 떠올리며 “어머님ㆍ아버님을 생각해서라도 내가 전력을 다해 도와드리겠다”고 답한 신성일은 선거운동 기간 17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박 대표와 함께 선거판을 누볐다. 박 대표가 정계에 발을 내디딘 순간이었다.
신성일의 인간관계는 정파를 초월했다. 1960년대에는 이후락ㆍ박종규ㆍ김형욱 등 청와대 실력자들과도 친분을 쌓았고, 야권의 김상현 신민당 의원과도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었다. 1967년 가을 무렵 신인 윤정희와 함께 영화 〈강명화〉를 밤샘 촬영할 때 김상현 의원은 배우들을 먹이려고 포장마차와 그 주인까지 통째로 빌려왔다고 한다.
1970년 9월 30일, 신민당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에서 YS(김영삼 전 대통령)를 누르고 후보로 확정된 바로 다음 날 한밤중에 DJ(김대중 전 대통령)는 김상현 민주당 의원과 함께 이태원 신성일 집을 찾아와 캠프에 합류해 달라며 문화예술정책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DJ는 “오른쪽에 김상현 의원, 왼쪽에 신 동지, 전국에 유세 다니세”라고 말하였고 신성일은 정치자금까지 내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를 걱정한 엄앵란이 고위층 지인과 함께 만류해 무산된 적이 있다.
박태준 회장은 6ㆍ25 당시 신성일이 살던 집(대구시 인교동 253번지) 하숙생이었고, 열 살 어린 신성일은 경북중 1학년생이었다. 학교는 1학기 마치고 군 기지로 접수됐다. 학생들은 개천 근처 기와공장을 가교정(假校庭)으로 삼아 공부했다. 그때 단기교육을 받으러 대구로 내려온 사람이 박 회장과 한무협 장군(당시 두 사람 모두 중령)이었다. 한 장군과의 인연도 각별한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찾아와 정치를 함께하자고 제안했을 때, 불안을 느낀 엄앵란이 그 사실을 알려서 신성일이 DJ와 손잡지 못하도록 한 바로 그 사람이었다.
1971년 무렵 가택연금 시절의 JP와도 추억이 있다. 당시 연금된 JP와 부인 박영옥(박정희의 질녀) 여사를 감히 찾아갈 수 있는 배포를 가진 사람이 거의 없었을 때 신성일은 빨간 무스탕을 몰고 청구동을 방문하곤 했다. 집에 들어가면 JP는 “바둑이나 두지”라며 아무 말 없이 바둑판 앞에 앉았다. JP는 가만히 앉아서도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훤하게 아는 정치가이자 예능인이며 로맨티스트였다.
이외에도 신성일은 김종필 전 총리와 이후락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의 ‘콩고물 발언’의 진상, 국회의원 낙선의 후폭풍과 세 번의 도전으로 금배지를 달기까지의 과정, 대가성 정치후원금을 받은 죄목으로 수감되어 지낸 구치소에서의 이야기들도 담담히 들려준다.

지난 2007년 2월 출옥 이후 신성일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은발의 베토벤 머리로 파마를 한 것이다. 수감 생활 중 윤정희ㆍ백건우 부부가 선물해준 베토벤 관련 책을 읽고 자유로운 베토벤의 삶에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20대부터 철저한 자기관리를 해온 그는 74세임에도 불구하고 젊은이 못지않은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MBC 4부작 특별드라마 ‘별일 없이 산다’에서 하희라와 멜로 연기를 해 화제를 모았으며 올해는 모 회사(피자)의 CF 모델로도 활약하고 있다.
책 출간을 앞 둔 2011년 11월 12일 오후 2시 반 경북 영천 임고면 레이포드 컨트리클럽 인코스 13홀에서 신성일은 74세의 나이에 처음으로 홀인원을 했다. 그는 “홀인원 기운이 3년 간다는 말이 있는데 책 출간을 앞두고 좋은 징조다”라며 활짝 웃었다.
자서전 준비로 한동안 외부활동을 삼갔던 신성일은 12월 10일 오후 1시 광화문 교보문고 팬사인회를 시작으로 방송 출연 및 강연 등 빽빽한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목차

1.맨발의 청춘

열망은 기적을 만들어낸다.
새벽 구둣발에 맞았던 아픈 기억·15 / 그래, 서울로 가자·18 / 신상옥 감독이 다짜고짜 물었다 “나하고 3년 고생할래?”·22

나의 야망은 또래 젊은이를 훨씬 뛰어넘는 것
적赤과 흑黑·25 / 풋내기 배우 데뷔 시절·27 / 굴욕의 시간·29 / 〈성춘향〉 VS 〈춘향전〉·32

최고가 되려면 최고를 벤치마킹하라
국립극단 탈출기·35 / 〈아낌없이 주련다〉 주연 제안, 내 인생 두 번째 기회가 왔다·37 / “넌 배신자…” 소리 뒤로 하고 신필름을 박차고 나왔다·39 / 나의 모델, 앤서니 퍼킨스·42 / 오토바이 사고·44 / 통영 구타사건·47

한국 영화계의 새로운 별
〈만추〉의 추억·53 / 다시 만난 신상옥 감독·54 / 대한민국 스포츠머리의 원조·59 / 촬영 기간 18일, 〈맨발의 청춘〉은 급조된 흥행작이었다·61 / 태종대의 비극·64 / 코끼리의 비극·68

24시는 부족하다, 25시의 삶
지프차 난투극·71 / 장동휘의 개입·73 / 심장마비 1분 전·76 / 이어령의 〈장군의 수염〉·77 / 충무로의 여걸, 전옥숙·79 / 영화와 주먹, 〈폭로〉·81 / 베트남 전쟁·84

움직이는 기업, 신성일
한국 스타 시스템 원조가 나와 엄앵란·87 / 납세왕 신성일·89 / 가장 특별한 두 개의 상·91 / 베를린 영화제에 가다·94

별들의 고향
초보 감독 이장호, 소설책 들고 영화 찍다·96 / 40만 관객의 흥행 기록·99

필름 공장에서 영화감독, 배우협회장까지
전량 수입하던 필름 “공장 세우자” 결심·101 / “내 영화 올려달라” 무릎을 꿇었다-영화감독 신성일·105 / 대박 꿈꾸던 〈러브 스토리〉 카피작·107 / 사생결단-배우협회장 선거, 주먹 출신 장동휘와 붙다·109 / 극적인 역전승·112

2. 아낌없이 주련다

내 남자, 내 여자
청평호 키스 사건·117 / 여자를 보호하는 남자·119 / ‘충무가’ 2층 구석방은 둘만의 아지트-스키야키 데이트·121 / 어머니가 찍은 며느릿감은 재일동포 여배우였다·123

피할 수 없는 운명, 세기의 결혼식
스파이 작전·126 / 5층 호텔 외벽을 타고 잠입·129 / 빅 뉴스-“나 임신 3개월이래”·131 / 워커힐 호텔에서 결혼하는 첫 커플·133 / 난장판 결혼식-웨딩드레스는 짓밟히고, 화환은 넘어지고·135 / 외설 시비 영화들·137

별거
“나가” 한마디에 아내는 친정으로·140 / 장모와의 신경전·143 / 엄앵란의 선택·145 / 깊은 고부 갈등 그리고 어머니의 따귀·146 / 복싱영화 두 편·149

스타의 가족-단란했던 이태원 시절
“와 이래 뜨겁습니꺼”-일제 보온병·152 / 한국에 몇 대 없던 에어컨, 동네에서 구경왔다·154 / 엄앵란의 복귀작·157 / 서귀포로 날아온 득남의 낭보·159 / 북한 공작원의 협박·161 / 세 남매·163 / 스타 부모 탓에 아이들은 외출을 꺼렸다·165

내 인생의 여인들
첫사랑 혜화동 여인·169 / 깜짝 생일선물·171 / 어머니의 눈물·174 / 김영애, 운명적인 만남·176 / 가슴 떨리던 기다림·179 / 보고 싶은 마음·181

좋은 사람들과 더불어
앙드레 김의 추억·183 / 경북고의 영광·185 / 경북 영천 성일가(星一家)·187 / 사냥개 순례·189 / 개와 고양이의 시간·191 / 박 실장과 허리우드극장·193 / 노루 사냥·195 / 언제나 건강한 청춘·198

3.내 추억 속의 스타들

여배우들
나훈아의 초년 시절·203 / 김지미와 최무룡·205 / 김지미의 재혼과 이혼·208 / 남정임 보호작전·210 / 윤정희의 비밀·214 / 청순 가련한 매력의 고은아·217 / 태현실과의 엉뚱한 스캔들·219 / 2세대 트로이카+1·221

명감독의 영화 같은 인생
정진우 감독과 문희의 〈초우〉·224 / 영혼의 파트너 이만희 감독·226 / 매력적인 괴짜 이만희 감독·228 / 이만희 감독과 하드보일드한 액션·233 / 이만희와 문정숙·237 / 이만희 감독의 눈물·239 / 이만희와 문숙·241 / 신상옥 감독·244 / 신상옥과 오수미·246 / 조문진 감독·248 / 임권택 감독의 〈길소뜸〉·250 / 장길수 감독의 〈레테의 연가〉·252

가수들
패티김의 춤 솜씨·254 / 최희준과 하숙생·256 / 건방진 쌍두마차 조영남·258 / 이봉조와 현미·260

그때 그 사람들
선배 최무룡·263 / 이민자의 유혹·265 / 문학 세례 정연희·266 / 신봉승의 청춘영화 ·268 / 성우의 전성시대·270 / 권투선수 서강일·272 / 배우와 국회의원, 신영균·274 / 코미디계의 황제, 이주일의 등장·276 / 트위스트 김·278

4.사나이 가는 길

정치 입문
DJ의 방문·283 / 영리한 내조자 엄앵란·285 / 10년 뿌리친 정치 유혹, 도와달라 큰절에·287

JP와 박태준
JP 연금 시절, 청구동에 가면 말없이 바둑만 뒀다·290 / 만능 예능인, 로맨티스트 JP·292 / 우리 가족의 은인, 박태준·294 / 내겐 어머니가 둘·296

나의 인맥 그리고 남양주종합촬영소 건립
김상현-감동의 포장마차·299 / 한여름의 추억-벌거벗은 이낙선 장관·301 / 촬영장에서 체포된 김지하 그리고 백기완의 3만 원 영치금·303 / 남양주종합촬영소 건립, 방해자는 충무로 제작자들·305 / 여야 인맥 총동원, 마침내 따낸 20억·307

정치에 대한 열망
앞치마 두른 엄앵란-‘사람 모으는 건 식당이 최고’·310 / “전두환, 대통령 되면 나라가 망합니다”·312 / 민정당·민한당 입당 제안, 다 뿌리치다·314 / 11대 국회의원 선거에 ‘신성일’은 없었다·315

국회의원 낙선 후폭풍
선거 패배로 현실을 깨닫다·318 / 친구의 배신·320 / 파친코 왕의 몰락·322 / 아버지의 마음·324 / 박철언·이회창·박근혜·327

세 번째 도전, 금배지를 달다
국회의원 당선·329 / 정치인의 명암·331 / 폭풍인생 신성일·333 / 명동을 걸으며·335

【서문】 맨발로 ‘정면돌파’한 나의 인생, 나의 사랑·5
【아내 엄앵란이 본 남편 신성일】 사랑하는 부부 이전에, 삶의 동지·339
신성일 출연, 감독, 제작 영화 목록·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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