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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 스와라지 [양장/개정판]

원제 : HINDU SWARA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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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이 책의 원전은 1909년 [Indian Opinion]에 발표된 간디의 구자라트(Gujarat)어 칼럼 ‘Hindu Swarj’입니다. [Hind Swaraj](The Navajivan Trust, 1938) 판본을 참조해 모두 번역했습니다.

오늘의 인도를 알려면 인도의 독립운동사를 알아야 하고 독립운동의 역사를 알려면 독립운동을 주도한 인도 국민회의(Indian National Congress)를 알아야 한다. 인도 국민회의를 알려면 국민회의의 위대한 지도자였던 간디(Mohandas Karamchand Gandhi, 1869∼1948)의 [힌두 스와라지(Hindu Swarj)]를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간디를 중심으로 하여 인도 국민회의의 자치활동을 고찰해 보는 것은 오늘의 인도를 이해하는 데 있어 효과적인 접근방법인 것으로 사료되어 간디의 [힌두 스와라지]를 번역하게 되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국민회의 활동 발달 단계는 3단계로 나뉜다. 첫 단계는 인도 독립 운동의 발생기간인 1885년부터 1905년까지다. 두 번째 단계는 1905년부터 1920년까지로 국민저항의 구체적 표현으로 스와데시(Swadeshi, 국산품 애용)와 보이콧(Boycott, 외국 상품 배척) 문제로 국민회의의 온건파와 강경파로 나누어져 활동하던 기간이다. 세 번째 단계는 1920년부터 1947년 독립하기까지의 기간이다. 이 기간은 간디를 중심으로 한 국민회의의 독립운동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논지를 전개하는 편의상 국민회의의 첫 단계인 독립운동의 발생기를 먼저 요약하고 본 역서인 간디의 [힌두 스와라지]에 대한 내용을 해설하고자 한다.
인도가 영국의 통치를 받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플라시(Plassey) 전쟁(1757) 때문이었다. 그 후 동인도 회사는 프랑스 세력을 축출하고, 시크 왕국을 최종적으로 1849년에 멸망시켰으며, 1857년 세포이 반란을 계기로 무굴 왕조를 멸망시켰다. 1858년 인도는 영국 직할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1877년 빅토리아 여왕이 인도 황제를 겸해 인도 제국이 성립되었다.
1870년대 이후부터 인도의 정치 현실에는 주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네 번에 걸친 광범위한 기근으로 인해 인도의 농민생활은 최악의 상황에 이르렀다. 여기에다 무거운 지대(地代)와 고리대금업자들의 횡포 등으로 인해 규모는 작지만 산발적인 농민폭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벵골 지방의 파브나(Pabna) 폭동(1873), 데칸(Deccan) 폭동(1875), 봄베이 지방의 파드케(Phadke) 폭동 (1878∼1879) 등이 그것이었다. 일반 대중의 경제적 빈곤과 농민 폭동 등이 지식층의 불만 요인과 한데 어우러져 인도를 무정부 상태로 몰아넣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되었던 것이 인도 국민회의(Indian National Congress)의 창설이었다. 그리하여 인도 국민회의는 1885년 12월 28일 봄베이에서 창설되었다.

인도 국민회의를 창설하는 데 직접적 공헌을 한 인물은 인도인이 아니라 영국인 흄(Allen Octavian Hume, 1829∼1912)이었다. 그의 생각으로는 영국과 인도와의 관계에서 최선책은 영국이 인도 민중과 협조 체제를 갖추는 것이었다. 인도 민중의 심각한 불만이 폭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영국 정부가 의회정치를 위한 훈련의 장으로서 국민대표 기관을 수립해 인도인들에게 합법적인 정치활동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흄은 생각했다. 영국에 의해 주도된 인도 국민회의의 목적은 표면적으로는 각기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민족주의 정치가들의 우호를 증진하고 종교·지역·인종·계급간의 화합 등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인도 지식인들 사이에 팽배한 민족의식과 반영감정에 대한 해소 및 인도 국민의 불만을 토로할 수 있는 배출구를 마련해 줌으로써 대영제국의 인도 통치에 대한 안전을 보장하려고 했던 의도였다.
시작 무렵의 인도 국민회의는 첫 회기에 72명의 대표를 가진 온건한 단체였다. 국민회의는 적어도 그 초기에 있어서는 온건하고 정부에 협조적인 단체로 출발했다. 참가 대표들의 교육 정도와 직업 등을 살펴볼 때 국민회의는 영어교육을 받은 중간계급의 활동 무대였다. 1900년까지 국민회의 조직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고 새로운 계층에 속하는 진취적인 참여자들은 국민회의를 자신들의 열망을 대변하는 기관으로 생각했다. 국민회의의 주요 지지기반은 소수의 봄베이의 사업가들과 벵골의 지주계층을 포함하는 새로운 지적 직업 종사자들이었다. 1900년까지 흄을 포함한 세 명이 한 해에 한 번씩 개최되는 국민회의 연례회의의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국민회의가 출범한 후 처음 한 세대 동안은 바네르지(Surendranath Banerjee, 1848∼1925), 나오로지(Dadabhai Naoroji, 1825∼1917), 고칼레(Gopal Krishna Gokhale, 1866∼1915) 등이 중심이 된 이른바 온건파가 지배했다.
온건파는 영국의 점진적이고 합법적인 정치 전통을 찬양하면서 폭력 혁명을 비난했다. 그들은 완전 자치나 독립을 주장하는 대신 대영제국의 충실한 신민(臣民)으로서 영국의 모범적인 대의정치 제도를 배워 이를 인도에서 실현하려고 했다. 온건파의 탁월한 지도자였던 고칼레는 영국인에 비하여 인도인이 정치적으로 무능력함을 인정하면서 “모든 정치적 발전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우리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기 전에 얼마 동안의 도제(徒弟) 기간을 거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민회의 첫 단계의 운동 주류였던 온건파들은 단지 제안이나 비판, 그리고 긍정적인 건의의 방법을 통해 그들의 희망사항을 총독정부에 개진하는 식의 소극적 운동을 했다. 그들의 요구사항은 군사비와 조세의 과대 책정에 대한 삭감, 인도인을 장교로 채용해 줄 것, 인도직물 산업의 보호와 영구정액제(永久定額制)의 확대 실시, 인도 유학생 파견, 인도문관 시험 제도의 개선과 입법참사회의 확대 등이었다. 이러한 운동에 총독은 반발했으나 인도 민중들은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이와 같이 상설적인 조직체로 결성된 인도 국민회의는 영국의 본래 의도와는 달리 매년 전국의 주요 도시를 순회하면서 점차 많은 정치조직과 지도자들을 흡수해 인도 독립운동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영국이 자신의 안전판으로서 역할을 기대하며 창설했던 국민회의는 영국의 지배를 벗어나고자 하는 독립운동의 장이 되고 말았다.

20세기에 들어 영국의 인도 지배는 더욱 강경해져, 1905년 커즌(George N. Curzon, 1899∼1905 재임) 총독은 벵골 분할령을 발포해 이 지방에의 민족 운동을 억압하고자 했다. 벵골은 동부와 서부 벵골, 비하르, 그리고 오리사 지역이 포함된 7천8백만 명의 인구를 가진 비대한 지방이었다. 영국이 분할하는 표면적 이유는 관할구역이 방대하고 인구가 너무 많아서 행정능률이 오르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실제적인 이유는 정치의식이 높고 민족적 자각이 다른 어느 곳보다도 높은 반영운동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벵골의 분할은 즉각적으로 그 지역 주민들과 국민들의 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인도 국민회의에 강경파가 등장하게 되었다.
강경파는 틸라크(Bl Gangdhar Tilak, 1856∼1920), 라이(Lajpat Rai, 1865∼1928), 팔(Bipin Chandra Pal, 1858∼1932), 고시(Aurobindo Ghosh, 1872∼1950) 등이 중심이다. 강경파는 영국인 통치자로부터 선심(善心)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인도인의 요구에 의해 양보할 수밖에 없도록 압력을 가하자는 것이었다. 그들이 희망했던 것은 충성스런 신민(臣民)으로서 대영제국 안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외로운 투쟁 운동을 통해 인도의 완전 자치를 성취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1860∼1870년대부터 네 번에 걸친 광범한 기근으로 인한 반영제국주의 감정의 팽배, 1904∼1905년의 러일 전쟁에서 일본의 승리가 가져다준 서구 세력에 대한 자신감 등의 요인이 상승 작용했다.
강경파들은 인도 고대 문화의 부흥을 주장하면서 종교적 신앙심과 애국심 등을 반영 감정으로 유도했다. 틸라크는 자유의 획득이 종교적 의무라고 주장했다. 그는 종교만이 애국심을 조장시킬 수 있다고 믿고 행동의 근거를 [기타] 힌두교에서 3대 경전의 하나로 여기는 [바가바드기타(Bhagavadgt)]의 약칭.의 3종 요가 가운데 카르마 요가(Karma-yoga)에서 찾았다. 틸라크는 새로운 민족주의를 위해서 전통적인 힌두 감정과 마라타인의 애국심을 이용했다. 그는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서 무굴 제국에 항거한 마라타족의 영웅 시바지(Shivaji, 1627∼1680) 예배식을 부흥시켰고 간파티(Ganpati) 축제를 장려했다. 틸라크는 온건 노선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으며 영국은 아첨을 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압박을 받아야 할 대상이라고 믿었다. 틸라크는 푸나에서 자신이 경영하는 마라타어로 된 [Kesari]와 영문 주간지 [Mahratta]를 통해 자치운동을 전개했다.
벵골 분할 조치에 대한 국민회의의 반영(反英) 운동은 스와데시 및 보이콧 운동, 국민교육 운동, 스와라지[Swarj, 자치(自治)]의 4대 슬로건을 내걸고 민중의 지도에 나섰다.
이와 같이 벵골 분할 조치에 대한 저항 운동에서 강경파의 활동이 뚜렷했다. 국민적 지지를 얻었던 스와데시 및 보이콧 운동에 있어서도 국민회의에서 온건파와 강경파가 대립되었다. 강경파의 대표들이 주장했던 바와는 달리 바네르지와 고칼레 등의 온건파 지도자들은 훨씬 소극적이고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스와데시는 반영 운동이 아니며 보이콧 운동도 특정한 목표에 한정해 사용해야 할 무기일 뿐 국민감정이 극단주의로 흐르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 온건파의 입장이었다. 스와라지 문제를 놓고도 양파는 대립했다. 스와라지라는 말을 온건파는 대영제국 안에서의 자치로 해석했고, 강경파는 제국 밖에서의 완전 자치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영국 정부가 인도의 부흥에 단호하게 반대하고 있다는 느낌은 이후 몇 년 동안 일련의 폭력을 주도한 벵골의 테러분자를 고무시켰을 뿐만 아니라 반정부 감정을 크게 고양시켰고 그에 상응하여 틸라크의 추종자들을 증가시켰다. 이 감정이 확대되어 1907년, 국민회의의 수라트(Surat) 대회에서 드디어 국민회의의 조직이 온건파와 강경파로 분열시키고 말았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온건파가 강경파를 국민회의에서 축출했다. 김선근, [인도 독립운동의 길로서의 Karma-Yoga] [[인도철학] 22집(서울 인도철학회, 2007), 64∼69쪽].

인도 국민회의가 1907년 수라트 대회에서 온건파와 강경파로 분열된 후 인도 전역에는 자치(Home-Rule)의 물결이 일고 있었다. 이와 같은 정신이 남아프리카에서도 널리 퍼지고 있을 무렵 간디가 남아프리카 [인디언 오피니언(Indian Opinion)] 독자들에게 ‘인도의 자치’라는 주제를 ‘Hindu Swarj’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것이 본서다.
이 책은 1909년 12월 11일과 18일 [인디언 오피니언]에 발표한 간디의 구자라트어 칼럼 ‘Hindu Swarj’를 [Hind Swaraj](The Navajivan Trust, 1938) 판본을 참조해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인디언 오피니언]은 트란스발(Trans- vaal)의 사티아그라하(Satygraha) 진리파지(眞理把持), 신을 믿고 추구하려는 삶의 방식. 투쟁을 대표하며, 일반적으로는 남아프리카에 거주하는 인도인들의 불평불만을 드러내는 매체였다. 간디는 독자들에게 진정한 인도의 자치란 무엇인가를 제시하려고 스스로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기에 쓴 글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간디는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를 조국에 봉사하는 것, 진리를 찾는 것, 그리고 그 진리에 따르는 것이라고 했다. 만약 간디가 주장한 논리가 옳다고 증명된다면 다른 사람들도 조국을 위해서 그의 견해를 채택하기를 바란다고 요청했다.
이런 간디에게 [힌두 스와라지]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 이 글이 쓰인 것이 그의 나이 마흔한 살 때(1909)다. 1893년부터 남아프리카에서의 ‘진리실험’을 정리하고 진리 실험의 장을 인도로 옮겨가기 5년 전 인생의 대 전환기에 쓴 것이다.

이 책의 주된 주제는 목차를 통해서 알 수 있으며, 그 주요한 메시지는 그의 글 결론 부분에서 주장한 다음의 원칙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 진정한 자치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2. 자치를 향한 길은 수동적 저항을 전개해야 합니다. 수동적 저항은 영혼의 힘이며 사랑의 힘입니다.
3. 이런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모든 면에서 스와데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4.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해야 하는 것은 영국인을 반대하거나, 복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힌두 스와라지]는 그의 [자서전]과 더불어 간디의 주저 가운데 하나다. 인도의 자치라는 뜻의 [힌두 스와라지]는 간디 개인에겐 인도 독립운동의 출사표이며, 인도인의 입장에서는 인도의 독립선언서에 해당하고, 인류 전체에게는 복음서라고 할 만하다. 이 글은 간디 나이 마흔한 살에 쓰인 것으로 당시 식민지 인도의 긴급한 정치적 요청에 답한 글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류의 세계사적 운명에 대한 그의 진단과 고심의 산물이다.

이 책은 원래 구자라트(Gujarat)어로 쓰인 것이다. 구자라트어는 대화형식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더 잘 어울린다는 점과 어려운 주제를 다룰 땐 대화 형식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점을 두고 편집했다고 한다. 그래서 옮긴이는 대화 형식의 글인 까닭에 모두 존댓말로 번역했다. 주석은 옮긴이의 주석이다.

간디는 변호사 시절 프리토리아로 가는 차 안에서 쫓겨나던 순간을 인류의 모욕이자, 일생에서 가장 창조적인 경험으로 여겼다. 이는 ‘능동적인 저항’으로 인도 국민회의를 이끌며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힘이 되었다. 그의 자서전과 함께 주저로 꼽히는 [힌두 스와라지]는 의무에 충실하고 진리에 따르기 위한 그의 고뇌가 담긴 책이다.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제1장 국민회의와 그 의원들
제2장 벵골의 분할
제3장 불만과 불안
제4장 스와라지란 무엇인가?
제5장 영국의 상황

제6장 문명
제7장 왜 인도는 식민지가 되었는가?
제8장 인도의 상황
제9장 인도의 상황: 철도
제10장 인도의 상황: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

제11장 인도의 상황: 법률가
제12장 인도의 상황: 의사
제13장 어떤 것이 진정한 문명인가?
제14장 인도는 어떻게 독립할 수 있을까?
제15장 이탈리아와 인도

제16장 폭력
제17장 수동적 저항
제18장 교육
제19장 기계
제20장 결론

옮긴이에 대해

본문중에서

Real home-rule is self-rule or self-control.
The way to it is passive resistance: that is soul-force or love- force.
In order to exert this force. Swadeshi in every sense is necessry.

진정한 자치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자치를 향한 길은 수동적 저항을 전개해야 합니다. 수동적 저항은 영혼의 힘이며 사랑의 힘입니다.
이런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모든 면에서 스와데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 검은 양 중에서)

저자소개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Mohandas Karamchand Gandhi)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869~1948
출생지 인도 포르반다르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평범한 소년이었던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Mohandas Karamchand Gandhi, 1869∼1948)는 현 구자라트 주의 포르반다르에서 태어났다. 부친인 카람찬드 간디는 상처를 거듭하여 네 번 결혼했는데, 그 네 번째 아내인 푸틀리바이아와의 사이에 얻은 3남 1녀 중 간디는 막내였다. 간디의 가문은 인도의 카스트 상으로 상인 계급인 바이샤에 속해 있었다. ‘간디’라는 말은 힌디어로 식료품상을 의미한다.
간디는 중산계급의 대두라는 역사적 물결과 종교적 개혁이라는 새로운 종교운동이 일고 있을 무렵 조부로부터는 고결한 성품을, 부친으로부터는 무욕의 실천인 무소유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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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1946~
출생지 경상북도 금릉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김선근은 1946년 경북 금릉에서 출생했다.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에서 공부해 문학사와 문학 석사,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도덕 및 종교교육 교육학석사, 2003년 인도 바나라스 힌두대학교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국대학교 인문과학대학 철학과와 인도철학과 학과장으로 재직했으며 현재는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1991년부터 1994년까지 인도 네루 대학교 한국학 담당 교환교수였고, 2005년 8월에는 일본 류코쿠대학에서 교환 강의를 했다. 1991년 외무고등고시위원(국민윤리),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인도철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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