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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두 살에 부르는 노래『친구 내 오랜 친구들』. 편지마을 동인 작품집 22주년 기념 작품집이다. 편지가 사라져가도 그 그리움은 그대로 남아 있고 때로는 반송되어 온 편지가 더 애틋함을 전하는듯, 화려하지는 않지만 잔잔한 향기가 배어있는 글들이 담겨있다.

스물두 살에 부르는 노래

1. 스물두 살

사람이 태어나 스물두 살이 되면 어른이다. 어른이 되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모든 것을 책임지는 그야말로 완전의 나이에 드는 시기이다. 우정국에서 주최한 전국 어머니 편지쓰기 대회에 입상한 사람들이 모여 이 모임을 만들었다.
편지마을 식구들은 창조를 꿈꾸며 같은 생각과 아름다운 마음으로 글쓰기를 쉬지 않고 이어오고 있다. 편지쓰기 대회에서 입상을 하였다면 너 나 할 것 없이 어느 정도 글쓰기에 자신이 있는 회원들이다. 그들은 그 자리에 머물지 않고 좋은 선생님을 찾아 글쓰기 공부에 매진하여 각종 문예지를 통해 등단을 한 회원도 있고, 실력은 넘치지만 아직 등단을 미루고 있는 회원도 있다.

2. 각자의 보따리를 풀다

이십 년 전 심었던 은행나무가 올해 처음으로 열매를 맺었다. 거친 비바람 속에서도 의연히 자란 은행나무의 기개를 보면서 ‘편지마을’또한 그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은행알이 여물어 가듯 가슴에 품었던 열정들을 한데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초고를 보면서 때로는 감동하고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질곡의 순간을 슬기롭게 이겨낸 이야기 앞에서 마음이 숙연해 지기도 했다. 작품 하나하나를 대할 때마다 편지마을 회원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것보다 더 큰 즐거움이 있을랴. 편지마을은 스물두 해라는 짧지 않은 세월을 거쳐 오면서 작가와 시인들을 속속 배출하였으며, 지금도 그 길을 열심히 달려가고 있다. 문학을 하는 사람은 아름답다. 내 안에 아름다움이 없다면 아름다운 글은 탄생되지 못할 것이다. 편지마을이 아름다운 까닭이다.
편지라는 개념 자체가 희석되어 가는 요즘, 문자와 이메일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어도 우리들 마음속에 편지는 늘 거기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편지마을 동인 작품집 ‘친구, 내 오랜 친구들’은 편지가 사라져가도 그 그리움은 그대로 남아 있듯이, 때로는 반송되어 온 편지가 더 애틋함을 전하듯이 그런 우리네 시원적 정서가 가득한 작품집이다.(김언홍)

1. 시가 있는 옹달샘을 지나
강진규 - 희망을 찾아서 외 2편
김송포 - 소나무 외 2편
박신영 - 우리 둘이는 외 2편
서금복 - 멍울 외 2편
이루다 - 할미꽃 외 2편
홍정희 - 가지 않는 길 외 2편
황시은 - 봄비 외 2편

2. 수필이 있는 오솔길을 걸으며
구선녀 - 여름 바닷가 풍경
김언홍 - 뒤돌아 보니
김여화 - 강냉이
김은향 - 어머니, 사랑합니다
박귀순 -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박상희 - 깔끔탕의 진숙아줌마
박신영 - 어머니의 꽃밭(박명심)
배복순 - 퇴장
서애경 - 이천 원과 육천 원
성기복 - 매일 떠나는 희망 여행
손광야 - 성주산에서 만난 사람
송정순 - 턱만 믿고 산다
신태순 - 여름 바다 외 1편
심미성 - 엄마의 틀니
양정숙 - 그리움
엄정자 - 하늘나라 당신께
이경희 -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이계선 - 꿈꾸는 노년의 생활
이미경 - 통 큰 여자
이연재 - 미국 여행기
이음전 - 그 섬, 그 소녀
장은초 - 어머니에게 쓰는 참회록
장현자 - 비누에 얽힌 그때 그 시절
정정성 - 돌담 앞에서
차갑수 - 세월을 환불 받은 번개팅
최미옥 - 몸값
최영자 - 산행 외 1편
하호순 - 십 년을 추억하며 외 1편
황보정순 - 담쟁이넝쿨

연밥/김송포

난 가장 어두운 진흙에서 태어났어
보호 받은 시절은 찬란했어
나의 존재는 어머니 가시고 희미해지기 시작했어
햇발이 아래게를 훑고 지나가면
몰랐던 아픔을 느끼곤 했지
까만 구덩이에서
우산을 받쳐 주던 당신
통증은 가라앉기 시작했어
아직도 발을 굴러야 하는 것 알아
풀잎 사이로 아랫녘의 아우성 들어 줄 수 있어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질척이며 고인 물,
어미의 무덤에 벌써 꽃이 피었다고
난 이제 몸을 틀어 산고 중인데.
쭉정이같이 빈 껍질
입을 벌려 뿌리를 뻗쳐 줄거야
물이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면
화려한 관을 씌워
당신의 먹이가 되어 줄 거야.

씀바귀/박신영

그 남자는
늙은 어머니의 몸에서 빠져 나와
봄을 만났다 생명은
태어나면서부터 온갖 미각에 길들여지다
마침내 맛을 잃었다
나는
이미 떠나버린
그 남자의 어머니를 찾아
긴 겨울의 터널을 헤쳐 나와
시장 골목을 기웃거렸다
달래, 냉이, 쑥
저마다
새순을 먼저 내밀다 묶여온 장바닥에
알몸으로 쭈그리고 앉아 있는
저승을 넘어온 그 남자의 어머니
장바구니에 담아 집으로 돌아와
쓴맛을 우려내는 동안
어느새
두 아이의 아비가 된 그 남자
밥벌이하느라 지쳐
늦은 밤까지 술잔 부딪치다
다 꺾어진 까칠한 입맛
단번에 일으켜 세우셨다
삼월 초나흘
그 남자의 생일상이 푸르다.

여보!
우리도 결혼할 때 당신이 혼수품을 못하게 해서 아무것도 안하고 결혼했지만 지금까지 부족함 없이 오히려 어려운 이웃을 도우면서 행복하게 잘 살아왔지요.
우리 사무엘도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다는군요. 우리 엄마 살림이 많아서 나누어 쓰면 되니까 몸만 오라구요. 아, 참! 며칠 전 사무엘 꿈에 오셔서 평생 살아줘서 고맙고 행복했다고 전해 달랬다면서요? 저도 당신 생전에는 당신보다 훌륭한 사람 많아 보이더니 지금은 보이질 않네요. 우리 착한 3남매와 살면서 여행으로 추억거리도 많이 만들어주고 믿음의 유산을 남겨 주어서 정말 고마워요. 욕심 부리지 않고 주님의 뜻 받들어 바른 마음으로 잘 살게요.
여보, 사랑해요. 2011년 5월 4일 당신의 아내 드림
-엄정자 「하늘나라 당신께」중에서

약국에서 벌어진 일도 그런 뼈저린 후회 중의 하나다.
내가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무렵의 어느 날이었다. 어머니와 시내 양장점에서 교복을 맞추고 오는 길이었다. 버스를 기다리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약을 사야 한다며 어머니는 약국에 들르셨다. 약국에는 우리 말고도 손님이 몇 더 있었는데, 어머니는 약사에게 다짜고짜로
“각시통 하나 주세요.”라고 하셨다.
약사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각시통이 뭐냐고 되물었다. 약 이름이 생각이 안 나신 어머니는 약 뚜껑에 각시가 그려져 있으니 막무가내로 그 약을 달라는 거였다. 그때 내 머리를 퍼뜩 스쳐가는 게 있었다. 바로 안티프라민 연고를 말씀하시는 거였다. 예전에 유한양행에서 판매되던 안티프라민 연고 뚜껑에는 간호사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각시통은 안티프라민 연고를 이르는 거라고, 내가 약사에게 말했을 때 약사는 물론, 약국에 있던 손님들까지 배를 잡고 웃었다. 말 그대로 포복절도였다.

-장은초 「어머니에게 쓰는 참회록」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