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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의 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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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시인이 곧 시고, 시가 곧 자신인 고통스런 꿈의 실현!

「문학과지성 시인선」 301호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부터 399호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까지 모두 99권의 시집, 83명의 시인들의 작품으로 구성된 시선집「문학과지성 시인선」 400호『내 생의 중력』. 문학과지성에서는 매 백 번째 시집을 그 이전 1호에서 99호까지의 시집에서 각 한 편씩을 뽑아 시선집으로 엮고 있다. 이번 시선집은 ‘시인의 초상’을 주제로 하여 각각 시인들이 선정하여 스스로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들을 엮은 것으로, 시인의 내면을 가늠하는 데서 출발하여 큰 감동과 울림을 전해주는 시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최승자의 ‘쓸쓸해서 머나먼’, 강정의 ‘아픔’, 이수명의 ‘창문이 비추고 있는 것’, 문태준의 ‘그맘때에는’, 이병률의 ‘사과나무’, 김이듬의 ‘푸른 수염의 마지막 여자’, 유희경의 ‘면목동’ 등의 시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출판사 서평

시로 쓴 시인의 초상 『내 생의 중력』
문학과지성 시인선은 첫 시집을 펴낸 지 12년 후 100호 『길이 끝난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김주연 엮음, 1990)를 출간하였고, 그 후 7년 후에 각 시집에서 서시의 성격을 띤 작품들을 골라 모은 200호 『詩야 너 아니냐』(성민엽 엮음, 1997)를, 그리고 다시 8년 후에 ‘사랑’을 테마로 한 시 한 편씩을 선정하여 엮은 ‘사랑 시집’ 300호 『쨍한 사랑 노래』(박혜경, 이광호 엮음, 2005)를 출간하였다. 매 백번째 시집을 그 이전 1~99번까지의 시집에서 각 한 편씩을 뽑아 ‘시선집’으로 엮어온 전통을 이어, 이번에 400번째로 발간되는 『내 생의 중력』 역시 301번부터 399번까지 총 99권의 시인 83인의 작품을 선하여 엮었다.
문학과지성사 대표이자 인하대학교 국문과 교수인 문학평론가 홍정선과 『문학과사회』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문학평론가 강계숙이 편집위원을 맡은 이번 400호의 테마는 ‘시인의 초상’이다. 300번대에 발간된 시집의 시인들이 각자 스스로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한 작품을 선해주었다. 강계숙은 이번 시집의 해설 「간절하지, 돌고래처럼」에서 “시인의 얼굴을 보는 일은 시의 몸을 더듬는 길이며, 시에 이르는 첩경은 시인의 내면을 가늠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설파하며 “시로 쓴 시인의 초상이 때로 더 큰 감동과 울림을 주는 이유는 이로부터 기인한다”고 역설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독자들은 “시인이 곧 시고, 시가 곧 시인인 불가능한 사건의 도래, 그 고통스런 꿈의 실현”을 이번 시집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한국 현대 시의 살아 있는 역사
300번대에 시를 발표한 시인들을 등단순으로 배치한 이번 시집의 차례만 살펴보아도, 문학과지성 시인선이 지금까지 이어져올 수 있었던 힘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1978년 문학과지성 시인선의 첫번째 시집을 낸 황동규와 시력 50년을 넘긴 마종기를 필두로, 한국 시의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한 김혜순과 최승자, 1990년대 한국 시를 이끌었던 함성호, 박형준, 이원, 김소연 등을 거쳐, 기존의 문법을 해체하며 2000년대의 새로운 시세계를 펼쳐 보인 김행숙, 김민정, 황병승, 김경주, 그리고 2008년에 등단하여 문학과지성 시인선 400권을 통틀어 첫 1980년대생 시인인 유희경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 시의 흐름을 고스란히 안고 새롭게 흐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400호가 나오기까지, 33년간 399권 시집의 총 판매 부수는 400만 부가량이다. 물론 극히 일부의 이야기이지만, 최근 화제로 떠올라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책의 판매 부수를 떠올리면 그 시간과 종수에 비해 미약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수치이다. 그러나 문학과지성 시인선은 흔들림 없이, 절판 없이, 33년을 꾸준히 걸어왔다. 그리하여 여전히, 기형도 시집 『입 속의 검은 잎』(현재 판매 부수 약 30만 부), 이성복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현재 판매 부수 약 12만 부), 황지우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현재 판매 부수 약 10만 부) 등이 세대를 거슬러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고, 문태준, 심보선 시인 등의 시집도 1만 부 이상 판매되면서 시를 향한 독자들의 관심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결코 수치로만 말할 수 없는 무수한 작품이 저마다의 고유한 자리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는 것이 문학과지성 시인선의 가장 큰 힘이다. “한 나라의 상상력의 영토는 국가 총면적보다 넓다. 이 400권의 시집이 품고 있는 상상력의 나라는 최소한 남한의 면적보다는 더 넓을 것이다”라고 말한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말을 다시 여기 옮기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늘 시와 같이 살면 시와 같은 삶이 될까, 안 될까. 우리는 영원히 시를 ‘포기’하지 말기”라는 그의 이어지는 말에 기대를 걸어보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다.

한편, 故오규원의 디자인, 故김영태와 이제하의 캐리커처로 구성된 문학과지성 시인선은 그동안 황토색(1호~99호), 청색(100호~199호), 초록색(200호~299호), 밝은 고동색(300호~399호)으로 백번대마다 테두리의 바탕색을 바꿔왔는데, 400번대의 색은 깊은 바다 빛을 연상시키는 군청색으로 결정되었다. 그 외 시집의 본문 서체와 크기, 자간과 행간, 글줄 길이, 여백 등은 바뀌지 않았다. 표지에 실리는 캐리커처도 시인의 개별적인 요구가 없는 한 이제하 시인이 계속 그려나갈 것이며, 제본의 형태나 본문의 구성도 이전의 형태를 유지한다. 이는 문지 시인선의 귀중한 전통을 견실히 이어가겠다는 문학과지성사의 의지의 표현이기도 할 것이다.

목차

향(香)ㆍ황동규
북해의 억새ㆍ마종기
광휘의 속상임ㆍ정현종
둑과 나ㆍ오규원
가을 맨드라미ㆍ홍신선
무명씨(無名氏)ㆍ김형영
타마리스크 나무 아래ㆍ신대철
정각암 수련꽃ㆍ한승원
통ㆍ이하석
마네킹ㆍ조창환
꽃을 위한 노트ㆍ김명인
한려수도의 유람선이 말했다ㆍ장영수
회화나무 그늘ㆍ이태수
춘추(春秋)ㆍ김광규
빈 거미집에 대한 빈 단상ㆍ문충성
고래의 항진ㆍ박남철
전세계의 쓰레기여 단결하라ㆍ김혜순
쓸쓸해서 머나먼ㆍ최승자
새벽 세 시의 사자 한 마리ㆍ남진우
나는 나를 묻는다ㆍ이영유
말 없는 나무의 말ㆍ이재무
영목에서ㆍ윤중호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ㆍ정일근
알 수 없어요ㆍ황인숙
퀵 서비스ㆍ장경린
혹독한 기다림 위에 있다ㆍ김윤배
풍장ㆍ최영철
저토록 저무는 풍경ㆍ박주택
꽃밭에서ㆍ송찬호
새벽 발굴ㆍ허수경
연못ㆍ장석남
모순1ㆍ조은
머리맡에 대하여ㆍ이정록
상황 그릇ㆍ박라연
레바논 감정ㆍ최정례
자미원 간다ㆍ조용미
보이저 1호가 우주에서 돌아오길 기다리며ㆍ함성호
천사가 지나간다ㆍ박정대
오리ㆍ이윤학
책상ㆍ박형준
풍경ㆍ양진건
영웅ㆍ이원
아픔ㆍ강정
반가사유ㆍ류근
파리ㆍ조인선
이것은 사람이 할 말ㆍ김소연
꽃범벅ㆍ서상영
창문이 비추고 있는 것ㆍ이수명
당신의 텍스트1ㆍ성기완
꿈속의 생기ㆍ윤의섭
아프리카 식 인사법ㆍ이장욱
나무를 지나서ㆍ임선기
적도ㆍ연왕모
그맘때에는ㆍ문태준
인중을 긁적거리며ㆍ심보선
사과나무ㆍ이병률
나를 닮은 얼굴들ㆍ곽효환
미루나무ㆍ유종인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ㆍ김선우
물속의 돌ㆍ이철성
앵두가 뒹굴면ㆍ김영남
거울 속의 눈사람ㆍ이경임
빈 화분ㆍ김점용
기록 보관소ㆍ권혁웅
환(幻)ㆍ이기성
지구의 끝ㆍ신해욱
해변의 얼굴ㆍ김행숙
피 속을 달린다ㆍ최치언
젖이라는 이름의 좆ㆍ김민정
가위놀이ㆍ이민하
휘파람새ㆍ이준규
친애하는 비트겐슈타인 선생께ㆍ진은영
내리막길의 푸른 습기ㆍ이승원
새떼를 베끼다ㆍ위선환
푸른 수염의 마지막 여자ㆍ김이듬
적기(赤記)ㆍ장석원
나는 자전거를 타고ㆍ하재연
회전목마가 돌아간다 Sick Fuck Sick Fuckㆍ황병승
무반주 계절의 마지막 악장ㆍ최하연
주저흔ㆍ김경주
뼈ㆍ이근화
면목동ㆍ유희경

해설 | 간절하지, 돌고래처럼ㆍ강계숙
수록 시인 소개

본문중에서

정확히는 해안이 아니었어.
북해를 하염없이 내려다보고 있는 능선,
그 언덕에 핀 지천의 은빛 억새꽃이
며칠째 메아리의 날개를 내게 팔았지.
저녁 바람을 만나는 억새의 황홀을 정말 아니?

그래도 가을 한 자락이 황혼 쪽에 남았다고
암술과 수술을 구별하기 힘든 억새꽃이
뺨 위의 멍 자국만 남은 내게 다가와
만발한 집착은 버려야 한다고 중얼거렸다.

나는 왜 오래 장소에만 집착하며 살아왔는지,
내가 사는 곳에는 사철 열등감만 차 있고
눈이 올 듯 늘 어둡고 흐려야만 안심을 했지.
그래서 순천에서 만난 억새는 놀라움이었어.
북해에 살던 그 풀들도 친척이 된다는 말,
얼마나 내 묵은 심사를 편하게 해주었던지.

나는 이제 아무 데나 엎드려 잠잘 수 있다.
하루 종일 자유롭게 길 떠나는 씨를 안을 꽃,
꽃이라 부르기엔 눈치 보이던, 북해의
외딴 억새도 고향의 화사한 피의 형제라니!
저녁이면 음정이 같은 메아리가 된다니!

변하지 않는 시야에 서 있는 귀향의 끝,
평범하게 말 없이 살자고 약속했던 그대여,
끝없는 추락까지 그리워하며 잠들던 그대여,
나도 안다, 우리는 아직 여행을 끝내지 않았다.
내가 찾던 평생의 길고 수척한 행복을 우연히
넓게 퍼진 수억의 낙화 속에서 찾았을 뿐이다.
_마종기, 「북해의 억새」[『하늘의 맨살』(376)에서]

오늘도 나는 낡은 오토바이에 철가방을 싣고
무서운 속도로 짜장면을 배달하지
왼쪽으로 기운 것은 오토바이가 아니라 나의 생이야
기운 것이 아니라 내 생이 왼쪽을 딛고 가는 거야
몸이 기운 쪽이 내 중심이야
기울지 않으면 중심도 없어
나는 오토바이를 허공 속으로 몰고 들어가기도 해
길을 구부렸다 폈다
길을 풀어줬다 끌어당겼다 하기도 해
오토바이는 내 길의 자궁이야
길은 자궁에 연결되어 있는 탯줄이야
그러니 탯줄을 놓치는 순간은 절대 없어

내 배후인 철가방은 안팎이 똑같은 은색이야
나는 삼류도 못 되는 정치판 같은 트릭은 쓰지 않아
겉과 속이 같은 단무지와 양파와 춘장을
철가방에 넣고 나는 달려
불에 오그라든 자국이 그대로 보이는
플라스틱 그릇에 담은 짜장면을
랩으로 밀봉하고 달려
검은 짜장이 덮고 있는 흰 면발이
불어 터지지 않을 시간 안에 달려
오토바이가 기울어도 짜장면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것
그것이 내 생의 중력이야
아니 중력을 이탈한 내 생이야

표지판이 가리키는 곳은 모두 이곳이 아니야
이곳 너머야 이 시간 이후야
나는 표지판은 믿지 않아
달리는 속도의 시간은 지금 여기가 전부야
기우는 오토바이를 따라
길도 기울고 시간도 기울고 세상도 기울고
내 몸도 기울어
기울어진 내 몸만 믿는 나는
그래 절름발이야
삐딱한 내게 생이란 말은 너무 진지하지
내 한쪽 다리는 너무 길거나 너무 짧지
그래서 재미있지
삐딱해서 생이지 절름발이여서 간절하지
길이 없어 질주하지

달리는 오토바이에서 나도 가끔은 뒤를 돌아봐
착각은 하지 마 지나온 길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야
나도 이유 없이 비장해지고 싶을 때가 있어
생이 비장해 보이지 않는다면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온몸이 데는 생의 열망으로 타오르겠어
그러나 내가 비장해지는 그 순간
두 개의 닳고 닳은 오토바이 바퀴는 길에게
파도를 만들어주지
길의 뼈들은 일제히 솟구쳐오르지
길이 사라진 곳에서 나는
파도를 타고 삐딱한 내 생을 관통하지
_이원, 「영웅」[『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334)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1953

1953년 예천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2년 '문학의 시대'를 창간하면서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역사적 삶과 비평', '신열하일기', '카프와 북한 문학', '프로메테우스의 세월', '인문학으로서의 문학' 등이 있으며, 대한민국문학상(신인상), 소천비평문학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생년월일 1973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국문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2년 창비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등단했고, 현재 '문학과사회'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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