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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겔장의 서류들

원제 : DIE AKTEN DES VOGELSA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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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사라진 공간, 부서진 기억
잊기 위해 되살리는 애도의 글쓰기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독일 시적 사실주의의 대가
빌헬름 라베가 들려주는 전원 교향곡


문학동네가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으로 독일 시적 사실주의의 대가 빌헬름 라베의 [포겔장의 서류들]을 출간했다. 루카치가 “진정한 사실주의자”라고 언급했던 작가, 동시대 독일 작가보다 콘래드나 멜빌, 조이스 등의 작품에 더 가까이 있다고 평가받는 작가, 빌헬름 라베의 작품이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다.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시리즈는 빌헬름 라베를 필두로, 작품과 텍스트, 소설과 담론, 문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허무는 동시에 생성해나가는 작가들의 다채로운 작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획일화된 자본주의 시민사회와 목가적 삶을 꿈꾸는 개인
일상과 시가 어우러진 라베풍 전원 교향곡

"그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그는 세상을 극복했고 오로지 홀로 죽었다."

라베는 프로이센이 덴마크, 오스트리아, 프랑스와 벌인 전쟁과 소독일 통일(1871), 산업혁명 등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대변혁의 시기를 살았다. 시대적 혼란과 소요 속에서도 조용한 소시민적 생활을 영위했던 그는 작품을 통해 당시 사회의 문제와 대결하고자 했다. 이러한 그의 문제의식은 “당시 사회를 묘파한 날카로운 비평가”(헤르만 헬머스), “시민사회의 세속화된 현실에 개입하려고 애쓴 당시 독일의 유일한 사실주의 작가”(요아힘 보르트만)라는 평가로 이어진다. [포겔장의 서류들]은 산업혁명과 독일통일 이후 자본주의가 득세한 독일사회를 배경으로, 시민적 가치관의 변화와 시민계급의 정체성 혼란을 집중적으로 논한 라베의 후기 대표작이다. 소설 속 화자이자 서류 작성자인 칼 크룸하르트는 자본주의 이전의 목가적인 세계와 이후의 세속화된 현실 사이, 서로 다른 두 세계관과 가치관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고뇌하며 글쓰기를 통해 사투를 벌이는 작가로서의 라베 자신을 닮았다. 칼은 시민사회의 규범과 윤리를 충실히 준수하면서 살아가지만, 그 사회에 내재된 모순과 체제적 결함에 부딪쳐 부서지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따뜻한 연민, 고독한 영혼이 꿈꾸는 일탈과 시적 비상에 대한 동경, 전원마을에서 보낸 유년시절을 향한 향수를 가슴에 품은 채 평생을 묵묵히 살아간다. 그가 객관적 문서의 형태로 기록하고자 하는 지난날들의 모든 기억은, 진부한 일상과 아름다운 시가 어우러진 전원 교향곡이 되어 때로는 평온하게, 때로는 거세게 흐르며 그의 마음과 글을 흐트러뜨린다.

헤세의 데미안, 브론테의 히스클리프가 교묘하게 섞인 개성적 인물의 창조
"그는 약속을 지켰다. 그 소녀를 놓아주지 않겠다는 것과
그녀가 잘못 올라간 곳은 어디든 따라 올라가겠다는 그 약속을."

칼 크룸하르트가 글쓰기를 통해 복원해내고자 하는 중심인물인 펠텐 안드레스는 어려서는 ‘끔찍하고도 무익한 놀이’를 일삼는 괴짜였고, 사춘기 시절엔 교실의 수업보다 문학적 일탈에 열중하는 문제아였다. 성인이 되어서는 ‘어리석은 계집애를 위해 자기 어머니와 조국, 밝은 장래가 약속된 고향땅을 등지고 미치광이 여행을 떠났다’고 손가락질 당한다. 그러나 그가 그토록 꿈꾸고 갈망하던 헬레네는 미국의 백만장자와 결혼하고, 그녀와 함께 보낸 어린 시절의 이상향, 포겔장은 산업혁명을 겪으며 목가적인 풍경을 잃고 변모해간다. 그는 ‘푹 자고 싶다’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일종의 아우토다페(화형식)를 거행한 뒤 아무 소유도 없이, 완전히 냉정해진 채 죽기를 원한다. 그는 자기 소유물을 완전히 파괴하기 위해 그로테스크한 약탈 축제를 벌이는데, 이는 시민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관습과 문화, 윤리를 거스르는 야만적인 행위다. 그러나 칼과 헬레네는 펠텐이 ‘세계정복자의 길을 가고 그로부터 승리한 후에 죽었다’고 이야기한다. 칼에게 있어 펠텐은, 세계와 존재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싱클레어의 데미안과 같은 존재다. 또한 펠텐은 하나의 사랑 혹은 돌이킬 수 없는 유년시절을 위해 홀로 세계에 맞서 싸운다는 점에서 [폭풍의 언덕]의 히스클리프에 가까운 인물이기도 하다. 라베는 데미안과 히스클리프를 혼합한 듯한 새로운 인물 유형을 통해 시민사회라는 제한된 환경에서 한 개인이 자신의 이상에 따라 자아실현을 이룰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의 정도를 시험한다. 숱한 가능성들로 점철되었던 펠텐의 생은, 산업화와 자본화로 인본주의적 가치관을 상실한 19세기 독일 시민사회를 통과하면서 실패와 죽음으로 귀결되고 만다. 라베는 그의 비극적인 죽음을 통해 ‘실체’와 ‘가상’이 뒤바뀐 세상을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19세기 시적 사실주의와 20세기 서술 기법의 기묘한 공존
"나는 더이상 그와 단둘이 한 지붕 아래 살 수 없다. 그래서 계속 쓰는 것이다……."

독일의 사실주의는 현실을 모방하는 미메시스적 성격뿐 아니라 상상력에 기초한 작가의 자유로운 창조력을 일컫는 포이에시스적 성격도 지닌다. 시학 영역의 대표주자인 라베는 “모든 시문학은 상징적이다. 현실에 대한 묘사는 기껏해야 재미있는 읽을거리에 불과하다. 나는 심연에서 지속적인 것을 끄집어내어 그것을 일상의 현실 위로 들어올린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일상의 대화 속에 녹아든 상징적인 색채는 19세기를 뛰어넘는 현대적인 서술 기법과 조우하면서 라베풍의 독특한 시적 사실주의를 구현한다. 서술자인 칼은 이야기하는 동시에 회상하며, 그 회상을 옮겨 적음으로써 두 개의 시공간을 엮는다. 그는 두 개의 시공을 오가며 관조적인 태도와 평정심을 잃는데, 이러한 그의 심적 동요와 혼란은 그가 작성하는 서류에 그대로 반영되어, 객관적 사실을 전달하는 서류의 목적과 정체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서술행위 자체가 묘사된 서류는 ‘더이상 서류가 아닌’ 것이 되고, 서술행위가 서술주체가 되는 역전이 발생한다. 결국 ‘포겔장의 서류들’은 합리적인 용도를 지닌 객관적 문서가 아닌, 글쓰기 자체를 위한 공간으로 남겨진다. 이 글쓰기는 사라진 공간과 부서진 기억을 온전히 잊기 위해 그것을 문자의 형태로 되살리고자 하는, 애도의 의식이 치러지는 공간이다. “나는 더이상 그와 단둘이 한 지붕 아래 살 수 없다. 그래서 계속 쓰는 것이다……”라는 칼의 고백 속에는, 되돌릴 수 없는 유년시절 혹은 지난날을 향한 지독한 향수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존재 일반을 애잔하게 바라보는 라베의 따스한 시선이 스며 있다. 동시에 이는, 그 무게를 딛고 살아내기 위해 그가 제안하는 하나의 윤리적 해법이기도 하다. 다음 세대를 위해 칼이 기록한 ‘포겔장의 서류들’은, 세대를 넘어 그것이 지속적으로 쓰여지기를 바라는 라베의 염원을 담고 있다.

추천사

유머를 이해하는 작가는 누구인가? 벽 또는 고상한 관중의 두뇌에 미세한 바늘을 꽂는 사람,
자신의 시대와 지나간 모든 시대의 옷가지를 거기에 거는 사람이다.
- 빌헬름 라베

라베는 자신의 꿈들을 작품에 구현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사실주의자다.
그는 꿈과 꿈의 실현을 현실과의 생생한 연관성 속에서 본다.
- 게오르그 루카치

라베의 소설은 동시대 독일 작가인 슈티프터나 슈토름, 마이어, 프라이타크, 폰타네보다 오히려
조지프 콘래드, 허먼 멜빌, 제임스 조이스, 토마스 만의 소설에 더 가까이 있다.
- 폴크마 잔더

목차

포겔장의 서류들


해설
빌헬름 라베 연보

본문중에서

그는 그때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말할 줄 알았다. 그는 어떤 왕국의 주인이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왕국은 이 세상에 속한 곳이 아니었다. 나는 이것을 서류로 갖고 있다. 서류에 걸맞은 양식은 아니지만. 나는 작성되지 않은 것, 기록되지 않은 것, 도장 찍히지 않은 것, 봉인되지 않은 것에서 이 모든 것을 꺼내어 그것들이 사실임을 보증한다.
(/ p.67)

이 서류들을 오래 붙잡고 있을수록, 이 종이 위에 쏟아놓은 것이 더 분명하고 명확하게 내 감각과 사고 속으로 들어올수록, 윗사람과 아랫사람에게 인정받은 나의 좋은 사무용 문체는 사라져간다! 지금까지 지극히 냉정했던 문체가 이제 허깨비 같은 것이 된다. 서류더미들은 진동한다. 사방 벽에 있는 서류철 속에서 점점 더 위태롭게 진동하더니 기어이 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릴 듯한 표정을 짓는다. 나도 어쩔 수 없다. 처음으로 이 책상에서, 그렇다, 이 책상에서 내 손에 들려 있는 펜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 p.76)

그는 나의 친구였고 나는 그의 친구였다. 나는 그의 인생을 함께 겪었다. 하지만 여기 이 문서들 앞에서, 페이지가 한 장씩 넘어갈수록 그에 대해 말하는 과제를 수행하기엔 내가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엄습한다. 나는 내가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루었다. 그는 세상이 말하는 것처럼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그렇지만 속에서 그에 대한 질투심이 솟지 않게 정신을 차려야 한다! 오늘 내가 그의 무덤 앞에서, 나를 포함한 우리 세계에 대한 그의 압도적 승리로 끝난 소송의 무미건조한 기록자가 되는 것 외에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p.107)

살라스 이 고메즈에서의 죽음, 당시 펠텐 안드레스는 외로운 죽음을 원했다. 하지만 세계 정복자의 길을 가고 그로부터 승리한 후에 그렇게 되고자 했다. 그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그는 세상을 극복했고 오로지 홀로 죽었다.
(/ p.109)

나는 이 원고를 어떻게 시작했던가! 일정을 기록하는 수첩에 쓰듯 이 기억에서 저 기억으로 냉정하고 솔직하게, 정말 공정하게 쓰겠다고 다짐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어느 정도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결말에 이르겠다는 확신을 갖고 시작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낮이건 밤이건 펜을 쥐면 이 글이 어떻게 풀려나가는 건가? 이 모든 것이 나를 내 자신에게서, 내 삶의 영역에서 끄집어내어 어딘가로 데리고 가더니 죽은 친구의 세계 속에 나를 세워놓지 않았는가! 나는 내 어깨 위로 그의 단단한 손을 느낀다. 세상을 극복한 듯한 그의 웃음소리가 줄곧 내 귓가에 맴돈다. 아, 내가 이것을 제대로 종이에 옮길 수만 있다면! 하지만 내겐 그럴 능력이 없다. 그래서 스스로 짊어진 짐이 종종 너무도 버거운 책임이 된다.
(/ p.119)

순진하게 웃는 눈에는 승리의 확신이, 입가에는 악동의 면모가 엿보이는 자―신들과 포겔장의 총아, 경솔한 은총의 세상을 극복한 자가 나타났다.
(/ p.124)

포겔장 출신의 유년 시절 친구는 약속을 지켰다. 그 소녀를 놓아주지 않겠다는 것과 그녀가 잘못 올라간 곳은 어디든 따라 올라가겠다는 그 약속을.
(/ p.128)

나는 더이상 그와 한 지붕 아래 단둘이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세상으로 불러냈다. ……내 가슴과 머릿속에서 그는 언제나 편하기만 한 동거인은 아니었다.
(/ p.185)

하지만 (여기서 거의 아흔에 가까운 그녀의 눈이 전장을 바라보는 늙은 사령관의 눈처럼 반짝 빛났다) 이번에도 내게 기쁨을 주었다오. 그는 당신들 중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였지만 또 가장 용감한 자이기도 했으니 말이오. 너무 예민한 신경을 타고난 게 안쓰러웠지요. 그리고 그렇게, 그렇게, 그렇게 살아야만 했고, 당신들 모두의 바보로 종말을 맞거나 정신병원에서 종말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렇게, 그렇게 죽음을 맞아야만 했기에 너무도 안쓰러웠지.
(/ p.228)

저자소개

빌헬름 라베(Wilhelm Raabe)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
출생지 독일 브라운슈바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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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1년 독일 브라운슈바이크 지방의 에셔스하우젠에서 태어나 1910년에 죽었다. 법관 서기였던 아버지를 일찍 여읜 뒤 막데부르크 서점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문학작품을 두루 탐독했다. 베를린 대학에서 철학과 역사, 문학 수업을 청강하던 1856년 야콥 코르비누스라는 필명으로 첫 소설 [슈페를링 골목의 연대기]를 발표했다. 슈투트가르트 시대에 발표한 3부작 [배고픈 목사](1864)), [아부 텔판](1867), [시체 운반 수레](1870)로 비관주의적 색채가 드리운 독특한 작품세계를 인정받았고, [포겔장의 서류들](1896)을 비롯해 68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1884년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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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독어독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독일 튀빙겐 대학에서 빌헬름 라베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독문학번역연구소에 재직하면서 연세대, 숭실대, 홍익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유년시절의 정체성] 으로 제7회 한독문학번역상을 수상했고, [피스터의 방앗간] [포겔장의 서류들]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4]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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