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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열전 2 [양장/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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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박일봉
  • 출판사 : 육문사
  • 발행 : 2011년 10월 05일
  • 쪽수 : 704
  • ISBN : 978898203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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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사기(史記)]에 대하여

    [사기(史記)]는 사마천(司馬遷)의 찬저(撰著)로서, 청(淸)의 건륭(乾隆) 연간(年間)에 중국의 정사(正史)로 정해진 ‘이십사사(二十四史)’의 머리에 위치하는 역사서(歷史書)다.
    처음에는 사마천(司馬遷)이 ‘태사공서(太史公書)’라고 이름 지었지만 삼국시대(三國時代) 이후 [사기(史記)]라 일컬었다.
    그 구성은 ‘본기(本紀)’ 십이 권(卷), ‘표(表)’ 십 권, ‘서(書)’ 8권, ‘세가(世家)’ 삼십 권, ‘열전(列傳)’ 칠십 권으로 도합(都合) 일백삼십 권이다.
    ‘본기(本紀)’는 황제(黃帝)로부터 한(漢) 무제(武帝)까지 역대 왕조의 제왕(帝王), 즉 고대 중국 통솔자들의 편년사(編年史)이고 ‘세가(世家)’는 제왕을 떠받드는 제후국(諸侯國)의 열국사(列國史)이며, ‘열전(列傳)’이란 ‘본기(本紀)’에 이어지기도 하고 혹은 ‘세가(世家)’에 이어져 역사를 채색하는 개인(個人)의 기록(記錄)으로서 전기집(傳記集)인 동시에 각양각색의 인간상(人間像)을 상징한 것이기도 하다.
    ‘표(表)’는 연표(年表)고 ‘서(書)’는 제도사(制度史)다.
    ‘본기(本紀)’에서 ‘열전(列傳)’까지는 모두 다른 성격으로 기술되어 있으나 전체를 하나로 정리하면 종합사(綜合史)가 된다. 이와 같은 역사서(歷史書)의 기록 형식을 ‘기전체(紀傳體)’라 하는데 그 형식은 반고(班固)에게 이어져 [한서(漢書)]가 작성되고 다시 그 뒤의 모든 정사(正史)로 이어지게 되었다.
    중국 역사서 기록 형식에는 ‘편년체(編年體)’라 하는 또 하나의 형식이 있다. 그것은 송(宋)의 사마광(司馬光)이 [자치통감(資治通鑑)]에서 완성한 형식으로 기전체(紀傳體)는 편년체(編年體)와 함께 역사서 기록의 기본 형식이 되어 왔다.
    [사기]는 사마천 원저(原著) 그대로의 형식과 내용으로 현재까지 전해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사마천이 기록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죽간(竹簡)이며 그것을 가죽끈으로 철(綴)한 것이다. 열전 맨 마지막 부분인[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에 의하면 그것은 정(正)·부(副) 두 본(本)으로 되어 있는데 정본(正本)은 명산(名山)에 보관하여 망실(亡失)에 대비하였고 부본(副本)은 경사(京師)에 보관하여 후세(後世)의 군자(君子)를 기다렸다고 한다.
    그러나 굳이 후세를 초들 것까지도 없이 한대(漢代)에도 [사기]를 면학(勉學)하고 초사(抄寫)하는 사람도 있었고 누차 이동함에 따라 가죽끈이 끊어지기도 하고 혹은 죽간 자체가 더렵혀지기도 하고 분실되기도 해서 차츰 탈간(脫簡)이나 착간(錯簡)이 있었을 것이다.
    전(全) 일백삼십 권 가운데 일찍이 한대(漢代)에는[효경본기(孝景本紀)] 제11,[효무본기(孝武本紀)] 제12,[예서(禮書)] 제1,[악서(樂書)] 제2,[병서(兵書, 지금의 律書)] 제3,[한흥이래장상명신연표(漢興以來將相名臣年表)] 제10,[삼왕세가(三王世家)] 제30,[부근괴성열전(傅?Ø成列傳)] 제38,[일자열전(日者列傳)] 제67,[귀책열전(龜策列傳)] 제68 등 열 권은 그 전권(全卷) 또는 일부분이 빠져서 저소손(?少孫)이 그것을 보충했다고 전한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사기 주석서(註釋書)는 남조(南朝) 송(宋) 때 사람인 배인(裵?)의 찬저(撰著)인 [사기집해(史記集解)] 일백삼십 권이다. 사마천(司馬遷)의 시대부터 약 육백 년이 경과한 이 시대에는 [사기]가 상당히 읽혔던 것 같은데 탈간(脫簡)·착간(錯簡) 또는 서사(書寫) 때의 오기(誤記) 등으로 초본(抄本)이 각기 달라서 그것을 통일하는 주석서(註釋書)가 필요했을 것이다.
    수(隋)·당(唐) 시대가 되니 종이에 서사(書寫)된 [사기]가 몇 가지 나타나 당대(唐代)에는 사마정(司馬貞)이 [사기집해(史記集解)]를 근거로 [사기색은(史記索隱)] 삼십 권을 짓고 또[삼황본기(三皇本紀)]를 보충하여 이에 주석을 붙였다. 그 후 장수절(張守節)이 다시 [사기정의(史記正義)] 일백삼십 권을 지었다. 이것은 고실(故實)을 널리 인용하여 음의(音義)도 타당하다고 알려졌다.
    이 [색은(索隱)]과 [정의(正義)]의 출현이 대체적으로 지금의 [사기]를 결정했다고 볼 수 있다.

    사마천(司馬遷)에 대하여

    [사기]의 찬저자(撰著者)인 사마천은 자(字)를 자장(子長) 또는 태사공(太史公)이라고 하였다. 사마씨(司馬氏)는 원래 기록관(記錄官)의 가문이었으며 천(遷)은 한(漢)의 태사령(太史令)이었던 사마담(司馬談)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생년(生年)은 일설에 의하면 경제(景帝) 중원(中元) 5년(기원전 145년)이고 다른 일설에 의하면 무제(武帝) 건원(建元) 6년(기원전 135년)인데 여기서는 전자(前者)를 따르기로 한다.
    천(遷)은 천부적인 자질을 타고났다. 그는 어릴 적부터 전적(典籍)을 가까이했으며, 이십 세가 되던 무제(武帝) 원삭(元朔) 3년(기원전 126년)에는 남방(南方)의 강회(江淮) 땅에서 시작하여 한(漢)나라의 거의 전역을 주유(周遊)하면서 민정(民情)을 자세히 살피고 사적(史蹟)을 견학했다. 사마천은 자라면서 이렇듯 역사가로서 소양을 쌓아갔다. 그런데 무제(武帝) 원봉(元封) 원년(元年, 기원전 110년)에 아버지 담(談)이 죽었다. 그해에 무제(武帝)는 한실(漢室) 최초의 봉선(封禪)의 예(禮)를 태산(泰山)에서 행했는데, 기록을 맡은 태사령(太史令)인 담(談)에게 봉선(封禪) 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자 스스로 분사(憤死)한 것이다.
    담(談)은 죽기 직전, 태사령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기록을 행하지 못하고 죽는 원통함을 아들 천(遷)에게 호소하며 상고(上古) 이래의 역사를 쓰라고 유언했다. 그때 천(遷)의 나이 삼십육 세였는데 그는 아버지에게,
    “소자(小子) 불민(不敏)하오나 아버님께서 하시던 일의 경위와 구문(舊聞)을 남김없이 논술(論述)하여 조금도 결여된 부분이 없도록 하겠습니다.<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
    라고 맹세했다.
    그 후 3년 뒤인 원봉(元封) 3년, 천(遷)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태사령에 임명되어 그 직무인 역(曆)의 개정에 종사하게 되었는데 상대부(上大夫) 호수(壺遂) 등과 함께 태초(太初) 원년(元年, 기원전 104년)에 태초력(太初曆)을 정하고 드디어 [사기] 저술에 착수했다.
    그런데 천한(天漢) 2년(기원전 99년)에 이사장군(貳師將軍) 이광리(李廣利)를 따라 흉노 정벌에 나섰던 이릉(李陵)이 흉노의 포로가 되어 한(漢)의 위광(威光)을 손상시키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릉은 뛰어난 장군이었지만 불과 오천의 보병부대(步兵部隊)로 흉노 토벌에 나섰다가 기마부대(騎馬部隊)를 주력으로 하는 팔만의 흉노에게 포위되어 어쩔 수가 없었다.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상태에 빠진 이릉은 부하들을 독려하여 용전분투(勇戰奮鬪)해서 적병 만여 명을 살상하였지만 칼은 부러지고 화살은 바닥나 결국 부하들은 전멸하고 자신은 화살에 맞아 실신 중 흉노에게 붙잡혔던 것이다.
    한나라 조정에서는 이릉을 처벌하기 위한 회의가 열렸을 때 천(遷)은 무제(武帝)의 뜻을 살피지 않고 이릉을 변호했다. 그 때문에 무제(武帝)의 격노를 사서 이듬해인 천한(天漢) 3년에 하옥되고 궁형(宮形)에 처해졌다. 천(遷)의 억울함은 헤아리고도 남음이 있다.
    천(遷)은 그 억울함을 가슴 깊이 간직한 채 [사기]의 저술에 더욱 몰두하여 8년 뒤, 무제(武帝) 정화(征和) 2년(기원전 91년)에 드디어 완성했다. 그때 천(遷)의 나이 오십오 세였다. 천(遷)은 그 후 수년이 지나 육십 세를 전후해 죽은 것으로 추측되는데 그 연도가 언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이상과 같은 사마천의 약전(略傳)으로 알 수 있는 것처럼 먼저 아버지의 죽음이 [사기]의 저작(著作) 동기가 되고 이릉 때문에 빚어진 화(禍)로 인하여 천(遷) 자신의 내심(內心)에서 넘쳐나는 열정이 더해져 완성된 역사서이기는 하지만 탁월한 소양과 극한의 시련으로 단련(鍛練)된 한 인간의 삶 자체가 녹아 있는 저작임은 말할 것도 없으리라. 그리고 그것은 무시무시한 결의를 가지고 쓰인 것이리라.
    [임소경(任少卿)에게 보고하는 글]이 그러한 사실을 웅변으로 말해 주고 있다.[임소경에게 보고하는 글]은 사마천이 태시(太始) 4년(기원전 93년)에 친구인 익주자사(益州刺史) 임안(任安, 字는 少卿)에게서 받은 편지에 대해 정화(征和) 2년에 보낸 답서(答書)다.
    이보다 먼저, 천한(天漢) 3년에 궁형(宮刑)에 처해진 사마천은 무제(武帝)에게 그 재능을 인정받아 태시(太始) 원년(元年)에 출옥한 후 중서알자령(中書謁者令)에 임명되었지만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는 통분을 곰곰이 되새기면서 [사기]를 만드는 일에 전념했다. 임안(任安)에게서 온 편지는 묵살되었다.
    그런데 정화(征和) 2년, 여태자(戾太子)의 반란 ― 이른바 무고(巫蠱)의 난 ― 이 일어나 익주자사(益州刺史)에서 요직인 호북군사자(護北軍使者)로 전임된 임안(任安)이 자신의 직무와는 관계없는 이 사건에 말려들어 하옥되고 사형에 처해지게 되었다.
    [임소경에게 보고하는 글]은 임안(任安)이 처형되기 직전에 그에게 받은 편지에 대한 답서(答書)로 사마천이 쓴 것이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겁이 많고 마음이 약해서 조금이라도 더 목숨을 연장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출처진퇴(出處進退)의 분수(分數)는 알고 있습니다. 어찌 뇌옥(牢獄)에 갇히는 치욕에 빠져있을 수만 있겠습니까? 미천한 노복(奴僕)이라도 자결(自決)하고자 할 것입니다. 더구나 궁지에 몰린 내가 자결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은인(隱忍)하며 살아남아 분토(糞土) 속에 갇힌 것 같은 지금의 처지를 참고 있는 것은 마음속에 맹세한 일을 완성하지 못한 것이 유감스럽고 이대로 죽어서는 내 문장(文章)이 후세에 전해지지 않을까 애석(哀惜)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 나타난 사마천의 심경은 부끄러움을 생각한다면 자살함이 마땅하겠으나 궁형이라는 큰 치욕을 당하면서도 그 욕됨을 참고 살아남아 있는 것은 [사기]를 후세에 남겨야 한다는 자신의 결의를 임소경에게 하소연하는 것이기도 하다.
    죽음에 못지않은 치욕을 자나 깨나 되씹으며 참고 살아남아 어떻게 해서라도 [사기]를 완성하고 싶은 심정을 사마천은 임안(任安)에게 알렸던 것이다.
    사마천에게 임안은 벗이라고는 하지만 그리 대단한 친구 사이는 아니고 말하자면 서로 얼굴을 아는 정도의 우인(友人)인 듯하다. 사마천은 평상시에 그러한 문안 등에 신경을 쓰지 않았던 듯하다. 그래서 편지를 받고도 답장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2년 남짓 세월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답장을 썼다. 그 답장 속에서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을 열어 보인 것이다. 무슨 까닭이었을까? 그 이유는 자신의 답장을 받을 자격이 임안에게 갖추어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마천에게 편지를 보낸 태시(太始) 4년, 임안은 [사기]를 쓰기 위해 치욕을 참고 살아가는 사마천을 이해하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정화(征和) 2년의 임안은 이미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더없이 정당하게 이릉(李陵)을 변호하다가 생각지도 못한 궁형에 처해졌던 사마천처럼, 아무런 과실이 없는데도 사형에 직면하지 않으면 안 될 인간의 비애를 심각하게 되새겨 볼 처지에 놓였던 것이다. 요컨대 사마천에게 편지를 받을 자격을 갖춘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런 까닭에[임소경에게 보고하는 글]이 쓰였을 것이다.
    즉 [사기]는 역사서이기는 하지만 역사적 사실만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역사의 주인공인 인간 그 자체를 맹렬히 추적한 책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본기(本紀)]에서도[세가(世家)]에서도[열전(列傳)]에서도 명백하게 일치되며, 읽고 또 깨달아야 할 점이다.

    목차

    제38 부ㆍ근ㆍ괴성열전(傅ㆍ懃ㆍ ?成列傳)
    제39 유경ㆍ숙손통열전(??ㆍ通列傳)
    제40 계포ㆍ난포열전(季布 ㆍ蘭圃列傳)
    제41 원앙ㆍ조조열전(袁?ㆍ早朝列傳)


    (중략)
    제67 일자열전(日者列傳)
    제68 귀책열전(歸責列傳)
    제69 화식열전(貨飾列傳)
    제70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

    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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