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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라자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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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라자드가 미국인이면? 프랑스나 독일 사람이면? 그러면 되는 거야?”
    경쾌하고 도발적인, 세상에 던지는 다섯 가지 물음표


    아동, 청소년 문학 분야에서 활발한 창작 활동을 펼쳐왔으며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작가 배봉기의 성장소설집 [안녕 라자드]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문지 푸른 문학’ 시리즈로는 열여섯번째 권이자 첫번째 소설집이기도 한 이 책에는 표제작인 [안녕 라자드]를 비롯해 총 5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표제작 [안녕 라자드]는 본격적인 다문화 시대를 맞이한 우리에게 그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오는 소설이다. 대학 교수인 아빠와 약사인 엄마, 일류대학교를 졸업한 후 소신에 따라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누나를 둔 윤호. 동성애 등과 같은 주제도 식사 자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화제에 올릴 수 있는 열린 분위기의 가족이 자랑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모든 면에서 우상이었던 누나가 어느 날 방글라데시 출신의 작고 검은 라자드를 남자 친구로 소개하려고 하면서 화목하고 완벽했던 가족의 풍경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누나는 어색하게나마 웃었지만, 나머지 가족은 전혀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엄마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강서영! 너 우리한테 왜 이러는 거야? 이러면 안 되잖아. 갑자기 이게 뭐니? 엄마 아빠 혈압 높여 쓰러지게 만들 작정이라도 한 거야? 느닷없이 근본도 모르는 사람을 들이대면서 초대를 해? 도대체 저 사람, 어느 나라 사람이니?”
    어색한 웃음이 사라지면서 누나의 얼굴이 차갑게 변했다. 목소리도 싸늘했다.
    “방글라데시! 근데 그게 왜 중요한데? 근본? 라자드가 미국인이면? 프랑스나 독일 사람이면? 그러면 되는 거야? 백인이면? 그러면 괜찮은 거야? 그게 아니라서 지금 이러는 거냐고?”
    (/ 본문 중에서)

    라자드라는 한 개인에 대한 누나의 신뢰와 판단은 윤호네 가족에게 그 어떤 의미도 없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관계없이 그저 “검고 가난한 나라의 라자드”일 뿐이다. 평소와는 달리 외면과 침묵으로 일관하는 아빠와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는 엄마에 이어 윤호마저 라자드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표시하자 누나는 미리 싸두었던 짐을 들고 망설임 없이 집을 나가버린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가족의 상징이었던 누나의 부재를 계기로 하여, 윤호네는 마치 레고로 만든 집처럼 부서지고 말았다.
    어쩌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폐쇄적 공동체일 ‘가족’은 해당 사회에 내재한 윤리 규범과 상식 및 갈등을 고스란히 표출하는 즉자적 거울의 역할도 담당한다. 일례로 위의 인용문 중 엄마가 방어 기제로 사용하는 이른바 ‘근본’이라는 것,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익숙한 그러나 모호한 판단 가치 중 하나가 아니던가. 이것이 바로, 라자드로 인해 빚어진 주인공 윤호네 가족의 균열을 단지 소설 속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함께 수록된 [삼촌과 사는 법]은 살인죄로 17년 동안이나 교도소에 있었으며 존재조차 몰랐던 삼촌이 출소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가족 간의 갈등과 화해를 나직한 방식으로 전달한다. 주인공인 민수와 동생 민지는 물론이고 엄마조차도 삼촌과 제대로 대면한 적이 없다. 교도소, 그리고 살인자라는 이미지를 떨칠 수 없는 엄마와 막냇동생을 돌보고 싶은 아빠와의 충돌은 멎을 줄 모르고, 수차례의 다툼 후 엄마는 끝내 어린 민지를 데리고 친정으로 간다. 아빠와 민수가 덩그마니 남아 삼촌과 함께 살게 된 것이다.

    잠시 후, 삼촌이 불쑥 말했다.
    “고맙다 민수야.”
    “뭐가?”
    “사실은 말이다. 사실은……”
    삼촌이 휴우― 한숨을 쉬고 말을 이었다.
    “……민수 네가 없었으면, 너도 외갓집에 가버린 상태였다면, 나는 여기를 나갔을 거다. 아무리 형이 잡아도, 나가서 어떻게 살던지 이 집을 떠나고 말았을 거야. 나 때문에, 나 하나로 형이 가족 모두와 떨어져 사는 것을 어떻게 견디겠냐. 민수 네가 아빠 곁에 있어서, 네가 나를 삼촌으로 봐줘서, 내가 이렇게 마음잡고…… 아무튼 고맙다.”
    (/ 본문 중에서)

    인간이 지을 수 있는 죄에 경중을 따질 때, 살인은 가장 무겁고 깊은 죄에 해당할 터다. 의도한 것이었든 그렇지 않았든 다른 사람의 생명을 앗았던 이를 우리는 내부 구성원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삼촌이라고는 하나 생면부지인 타인과 진배없는 데다 그가 지은 죄로 인해 두렵기까지 한 대상과 주인공 민수가 함께 살아가는 과정을 보며 용서와 화해, 그리고 포용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인간이기에 가능한 이 윤리적 덕목들이 사실 우리에게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에 대해 새삼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 또한 달라지지 않는다. 어찌 보면 실로 무거울 수 있는 주제임에도, 작가는 고등학생 ‘민수’의 시선을 통해 이를 담백하고도 완곡하게 녹여냈다.

    다른 3편의 소설들 역시 저마다의 색깔과 무게를 개성 있게 담았다. 용산 참사를 소재로 한 [어둠 속의 아이]는 물론이고 학업과 입시가 주는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점차 자신의 본모습도, 올곧게 키워가야 할 인간성도 상실할 위기에 처한 아이들의 모습을 그린 [괴물 연습]과 [고백] 등은 이 소설집이 머리와 가슴 모두로 답해야 할 질문지이기도 함을 명징하게 드러낸다.

    “이런저런 문제들에 의문을 갖고 질문을 하는 작은 계기라도 되면 좋겠다”는 작가의 말을 굳이 빌려오지 않아도 될 만큼, 책에 수록된 5편의 소설은 서로 다른 다섯 가지 물음을 우리 청소년들에게 던진다. “거꾸로 물속에 처박힌 것처럼, 그래서 숨이 팍팍 막혀오는 것처럼, 온몸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청소년들이지만 자신을 비롯해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싼 현실의 마디들과 발 딛고 서 있는 세계에 끊임없이 질문하고 나름의 고민을 이어가는 것이야말로 ‘성장’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한 시절을 함께 살아낸다는 것, 하여 동시대를 더불어 호흡한다는 것에 대한 ‘지금, 우리, 여기’의 고민을 때로는 경쾌하게, 때로는 진중하게 담은 소설집이다.

    목차

    어둠 속의 아이
    안녕 라자드
    괴물 연습
    삼촌과 사는 법
    고백

    작가의 말

    본문중에서

    그런데, 아니었다.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그 풍경들과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잊혀지지 않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희미해져야 하는데, 더 뚜렷해지는 것 같았다. 그 골목들, 텅 빈 가게들, 검은 옷들, 타오르는 불길과 울부짖는 사람들의 벽화, 찬 바람만 부는 공터.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울고 있던 하얀 옷의 아이.
    꼭 내가 그 아이를 춥고 어두운 곳에 버려두고 도망치고 만 것 같았다.
    (/ '어둠 속의 아이' 중에서)

    솔직히 누나가 라자드를 사귄다는 것을 이해하고 싶지 않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또 그렇게 말할 수도 없다.
    “이유가 무엇이지?”
    누나는 그렇게 물을 것이고, 윤호는 대답할 말이 없다. 라자드가 방글라데시 사람이어서 싫고, 얼굴이 검어서 싫다고 대답할 수는 없다. 그건 누나와의 대화에서 답이 될 수 없다. 이성적으로, 그리고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이유는 타당한 이유가 아니니까. 그건 억지에 불과하니까.
    (/ '안녕 라자드' 중에서)

    ‘나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나는 정우를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빨리 잊기 위해서, 잊고 내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절박하고 집요하게 글을 쓰려고 했던 것이다. 가장 친했던 친구가 죽었는데,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는데, 나는 그 이유도 모르고 있는데……
    그런데도 내가 빠져 있었던 감정은 내 걱정, 나 자신에 대한 불안이었다. 앞으로의 학교생활에 대한 막막한 불안과 두려움 말이다.
    (/ '괴물 연습' 중에서)

    이틀 후에 삼촌이 온다!
    십칠 년 동안이나 감옥에 있었던 삼촌이다. 아무리 그런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았던 감옥 풍경이 떠오른다. 그 살벌한 회색의 콘크리트 공간에서 사는 사람들. 얼굴에는 칼자국 같은 것이 벼락 무늬처럼 지나가고, 검붉은 팔에는 시커먼 문신들이 뱀처럼 꿈틀거린다. 그 감옥에서 그런 사람들과 십칠 년을 살아온 삼촌이 오는 것이다. 그 삼촌과 같이 살아야 한다. 이건 정말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민수는 솔직히 불안하다. 두렵다. 삼촌이 오는 것이 불안하고, 삼촌과 같이 사는 것이 두렵다! 민수도 민지처럼 엄마를 따라 외갓집으로 가고 싶다. 삼촌에게서 도망치고 싶다!
    (/ '삼촌과 사는 법' 중에서)

    “모르겠어, 엄마? 그래서 학교에서 쫓겨나기라도 하면, 무기정학이라도 먹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엄마는 눈에서 실핏줄이 터질 정도로 일을 하고, 나 하난데, 내가 그렇게 되면 엄마는…… 내가 어떻게……”
    말을 하다 보니 내 목소리가 물기에 젖고 아래로 처지고 있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 씨…… 내가 무얼, 어떻게 할 수 있냐고?”
    엄마는 갑자기 얼음물에 담근 손으로 뺨이라도 한 대 세차게 얻어맞은 듯한 표정이 되었다. 마치 온몸이 그대로 굳어버린 것 같았다.
    (/ '고백' 중에서)

    작가의 말

    달리는 말이 있다.
    그 말은 눈가리개를 하고 있다. 눈가리개는 앞만 보고 질주할 수 있도록 채워진 것이다. 그 말은 목표 지점을 향해 가장 빠르게 효율적으로 달릴 수 있을 것이다. 오직 정면만 보고 달리고 달릴 테니까.
    그 말은 직선으로 뻗은 앞길만 볼 수 있다.
    양쪽에 펼쳐져 있는 들판과 숲은 볼 수 없다. 물론 하늘도 땅도 볼 수 없다. 따라서 들판에 피어 있는 풀과 꽃, 숲의 나무, 푸른 하늘의 구름을 볼 수 없다. 땅의 뭇 생명도 볼 수 없다. 볼 수 없으니 느낄 수 없고, 생각도 할 수 없다.

    ‘작가의 말’을 쓰려고 할 때, 눈가리개를 한 채 달리는 말에 대한 생각이 자꾸 떠올랐다. 이 ‘불행한 말’의 이미지에 우리 청소년들의 모습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뚜렷한 형상으로.
    점수와 대입이라는 ‘절대’ 목표를 향해 직선으로 달려야만 하는 모습들. 잠시라도 한눈을 팔 수 없게 집과 학교, 학원에서 온갖 종류의 채찍질을 당하는 모습들.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문제들에 대하여 보고 느끼고 생각할 틈이나 여유조차 없는, 저 숨 막히는 질주의 모습들.
    그래서 우리 청소년들은 의문을 갖는 것도 질문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와 사회가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는지? 우리가 만나야 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그 삶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자연과 인간, 세계와 사회에 대해 의문을 갖고 질문을 하게 될 때 비로소 진정한 배움의 길은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질문들이야말로 삶을 풍요롭고 의미 있게 하는 것이 아닌가. 질문을 하지 못하는, 하지 않는 삶은 결국 빈약하게 쪼그라들고 말 것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우리 교육의 현실과 청소년들의 모습은 참으로 안타깝고 너무도 가슴 아프다.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을 쓰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소설이 의미 있는 질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우리 청소년들이 좀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나마 숨을 고르면서 느끼고 생각하고, 그래서 이런저런 문제들에 의문을 갖고 질문을 하는 작은 계기라도 되면 좋겠다고.’
    그런 작품들이 되었는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독자 여러분의 몫이다. 다만, 작가로서는, 이 소설들이 독자 여러분과 서로 마주 보기를 바랄 뿐이다.

    이 소설집이 나오기까지 적절한 조언을 주신 최시한 교수님께 감사드리고, 꼼꼼하게 원고를 다듬어준 문지 편집부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저자소개

    생년월일 1956~
    출생지 전라북도 남원
    출간도서 31종
    판매수 19,781권

    대학과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공부했습니다. 소년중앙문학상과 계몽문학상 공모에 동화로 등단했습니다.
    그동안 쓴 책으로 동화 [나는 나] [실험가족] [무지개 색 초콜릿] [철조망과 농구공] [손톱공룡] [별빛아이] [마법 주문을 외워라] 등과 동극집 [말대꾸하면 안 돼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청소년소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사라지지 않는 노래] [안녕 라자드]와 청소년희곡집 [UFO를 타다]가 있습니다. 현재 광주대학교문예창작과 교수로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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