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편결제, 신용카드 청구할인
카카오페이 3,000원
(카카오페이 결제 시 최대할인 3천원 / 5만원 이상 결제, 기간 중 1회)
PAYCO(페이코) 최대 5,000원 할인
(페이코 신규 회원 및 90일 휴면 회원 한정)
북피니언 롯데카드 30% (27,090원)
(최대할인 3만원 / 3만원 이상 결제)
EBS 롯데카드 20% (30,960원)
(최대할인 3만원 / 3만원 이상 결제)
인터파크 NEW 우리V카드 10% (34,830원)
(최대할인 3만원 / 3만원 이상 결제)
인터파크 현대카드 7% (36,000원)
(최대할인 3만원 / 3만원 이상 결제)
NH쇼핑&인터파크카드 20% (30,960원)
(최대할인 4만원 / 2만원 이상 결제)
Close

다산의 재발견 : 다산은 어떻게 조선 최고의 학술 그룹을 조직하고 운영했는가?[양장]

소득공제

2013년 9월 9일 이후 누적수치입니다.

판매지수 207
?
판매지수란?
사이트의 판매량에 기반하여 판매량 추이를 반영한 인터파크 도서에서의 독립적인 판매 지수입니다. 현재 가장 잘 팔리는 상품에 가중치를 두었기 때문에 실제 누적 판매량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판매량 외에도 다양한 가중치로 구성되어 최근의 이슈도서 확인시 유용할 수 있습니다. 해당 지수는 매일 갱신됩니다.
Close
공유하기
  • 저 : 정민
  • 출판사 : 휴머니스트
  • 발행 : 2011년 08월 22일
  • 쪽수 : 756
  • ISBN : 9788958624103
정가

43,000원

  • 38,700 (10%할인)

    2,150P (5%적립)

할인혜택
적립혜택
  • I-Point 적립은 출고완료 후 14일 이내 마이페이지에서 적립받기한 경우만 적립됩니다.
  • 추가혜택
    배송정보
    •  당일배송을 원하실 경우 주문시 당일배송을 선택해주세요.
    • 서울시 강남구 삼성로 512변경
    • 배송지연보상 안내
    • 무료배송
    • 해외배송가능
    주문수량
    감소 증가
    • 이벤트/기획전

    • 연관도서

    • 사은품(2)

    책소개

    더 가까이 만나는 정약용

    다산 정약용의 전남 강진 귀양살이는 18년, 40세에서 57세에 이르기는 시기였다. 개인에게는 불행이었지만 조선의 학문을 위해서는 축복의 시간이었다. 지난 5년간 다산에 관한 자료를 찾아 방방곡곡을 뒤진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1801∼1818년까지 전남 강진 유배 시기 다산의 편지와 연구과정을 통해 역사, 문화적 흐름 속에서 다산을 재구성했다. 문집 뿐아니라 다산의 친필편지까지 샅샅이 살펴, 정약용의 친필 편지 150여통을 4개 영역, 22개 논문으로 엮었다.

    저자는 다산의 생생한 육성이 담겨 있는 편지를 개인적 맥락뿐만 아니라 시대 상황과 맞물린 역사, 문화적 흐름 속에서 살펴봤다. 그것을 통해 정제된 글만을 모아놓은 문집 등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뜨거운 인간'으로서의 다산의 면모를 재구성했다. 특히 유배지에서 탁월한 제자들을 배출하며 조선 최고의 학술 그룹을 이끌었던 교육법의 비밀을 오늘의 언어로 소개했다.

    집요하게 때로는 '비굴'하게 자료를 수집한 덕분에 이책은 기존의 다산 연구에서는 접하기 힘든 다산의 속내를 보여준다. 다산초당의 원모습을 그린 것으로 보이는 '다산도(茶山圖)'나 성리학자였음에도 승려인 혜장, 초의와 교류하며 쓴 글, 딸을 위해 그린 '매조도(梅鳥圖)' 등 자유물로만 묵혀 있었다면 영영 사장됐을 이야기들이 빼곡하다.

    출판사 서평

    인문학자 정민, 다산의 생생한 육성을 담은 친필첩을 발굴하다
    ― 다산 친필 편지의 발굴과 연구, 집필로 이어지는 필드 워크


    역사의 현장 속으로 뛰어들어 전근대 자료와 사투를 벌이고, 자료 발견의 기쁨으로 연구에 몰두하여 논문을 쓰고, 여러 편의 논문을 새로운 관점으로 넓게 조망하거나 깊게 파고들어, 과거를 현재에 적용하는 연구와 집필을 지속하고 있는 인문학자 정민. 그가 근 5년 이상 집요하리만큼 다산의 자료를 발굴하고 연구한 글 22편을 모아 엮은 [다산의 재발견]을 펴냈다. 이 책은 1801~1818년까지 강진 유배 시기 다산의 생생한 육성을 담은 친필 편지를 발로 뛰며 찾아내, 이를 연구하고 정리하여 '사람 냄새 나는' 다산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책이다.
    다산의 강진 유배 시기, 그의 나이 40세에서 57세에 이르는 시기에 교유했던 수많은 제자, 승려, 자녀에게 쓴 시, 산문 등의 조각난 친필 편지(서첩)의 퍼즐을 앞뒤의 역사적 맥락, 좌우의 문화적 맥락, 전후의 개인적 맥락 속에서 맞춰내 다산의 면모를 재구성하고 있다. 다산 친필 편지의 발굴과 연구, 집필로 이어지는 다산 정약용 필드워크는 우리 시대 인문정신의 정수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지난 4, 5년간 나는 한사코 다산만 쫓아다녔다. 이제 그간의 글을 모아 엮으면서 이 글에 바탕이 된 자료들을 찾아 헤매던 시간들을 정리해볼 필요를 느낀다. 나 자신 자료를 구하려고 동분서주한 기억들을 갈무리하는 한편, 현장 공부의 중요성에 대해 후학들에게 몇 마디 군말을 덧붙이는 것도 의미 없지 않겠다는 판단에서다. 이는 소중히 간직해온 귀한 자료를 선뜻 혹은 우여곡절 끝에 제공해주어, 다산학의 새 지평을 여는 보람을 얹어주신 소장자 여러분에 대한 내 작은 예의의 표시이기도 하다.
    ('서설:다산의 자취를 찾아 헤맨 여정' 중에서 / pp.17~18)

    4년 넘게 몰입해온 다산 관련 논문을 한자리에 모았다. 다산 친필이 있다는 말만 들으면 어디든 찾아갔다. 새 자료를 수소문해서 만나고, 정리해서 번역하고, 논문으로 썼다. 손에 못 넣으면 안절부절 몸이 달았다. 곁에서 보다 못한 아내가 혀를 찼다. 도도하던 사람이 자료 앞에선 왜 그렇게 속도 없이 비굴해 지느냐고, 보기 민망하다고 나무랐다. 그런 소리를 들은 다음 날도 친필 편지 한 장이 나왔다는 소식에 하던 일 비켜두고 카메라를 들고 달려갔다. 그렇게 모은 자료로 쓴 논문이 20편을 퍽 넘겼다. 지금도 나는 새 자료 소식만 들리면 어디고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다.
    (머리말 중에서 / p.5)

    새로 발굴한 다산 친필첩으로 다산학의 새 지평을 열다

    지은이가 5년 이상의 연구 기간 동안 발굴하고 찾아낸 다산의 친필 편지는 150여 통이다. 황상에게 준 다산의 친필 편지 31통을 모은 [다산여황상서간첩(茶山與黃裳書簡帖)], 혜장과의 교유 내용이 담긴 [견월첩], 다산이 월출산을 등반하고, 백운동의 12경을 친필로 써주고, 앞뒤에 초의를 시켜 [백운동도]와 [다산도]를 그리게 해 첨부한 [백운첩(白雲帖)], 다산이 호의에게 보낸 편지첩 [매옥서궤(梅屋書?)], 다산과 은봉의 교유를 담은 [만일암지(挽日菴志)] 등이다.
    그의 다산 연구는 2006년 겨울 첫 선을 보였다.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이다. 이 책은 다산 정약용의 지식 생산 메커니즘을 일목요연하게 매뉴얼화하여 다산을 지식편집의 관점으로 묶어내 주목받았다.
    이번에 발간된 [다산의 재발견]은 그 두 번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새로 발굴한 다산 친필첩을 '다산의 강진 강학과 제자 교육', '다산의 사지 편찬과 불승과의 교유', '다산의 공간 경영과 생활 여백', '다산 일문의 행간과 낙수' 4개의 영역으로 분류하여 22개의 논문으로 깊이 있게 각론화했다. 또한 각각의 글을 가로세로로 엮으며 횡단하고 있어 강진 유배기의 다산학을 깊고 넓게 들여다보고 있다.

    다산은 대단히 곰살궂은 사람이었다. 그의 취미는 조각 천이나 종이를 오려 공책을 만들고, 거기에다 정성스레 글씨를 써서 선물하는 것이었다. 이런 취미는 그의 아들에게도 그대로 대물림되어, 부자가 남긴 아름다운 서첩이 참 많다. 이런 자료들은 어쩐 일인지 대부분 문집에 수록되지 않았다. 연대도 분명하고, 사연도 진진해서, 이런 자료들이 다산학의 결락된 부분들을 메워주고 채워주는 것이다.
    ('서설:다산의 자취를 찾아 헤맨 여정' 중에서 / p.49)

    다산은 어떻게 조선 최고의 학술 그룹을 조직하고 운영했는가?

    다산은 1801년 강진에 귀양 와서 1818년 여유당으로 돌아갔다. 40세에서 57세에 이르는 시기였다. 개인에게는 불행이었지만, 조선의 학문을 위해서는 축복의 시간이었다. 강진에서 다산은 훗날 다산학단(茶山學團)으로 일컬어지는 제자들을 양성하고, 500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을 함께 완성하였다. 학문의 불모지였던 강진에 경이의 눈길이 쏠렸다. 학술사에서 불가사의로 일컬어지는 놀라운 성과는 제자들의 헌신적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했다. 다산 없는 제자나 제자 없는 다산은 어느 경우든 상상하기 어렵다. 다산은 초당 정착 초기 정약전에게 보낸 편지에서 제자들에 대해 "양미간에 잡털이 무성하고, 온몸에 뒤집어쓴 것은 온통 쇠잔한 기운뿐"이며, 발을 묶어놓은 꿩과 같아 "쪼아 먹으라고 권해도 쪼지 않고 머리를 눌러 억지로 곡식 낟알에 대주어서 주둥이와 낱알이 서로 닿게 해주어도 끝내 쪼지 못하는 자들"이라고까지 말했다. 다산은 그들을 도대체 어떻게 가르쳐서 단기간에 조선 학술사에서 달리 유례를 찾기 어려운 놀라운 학술집단으로 변모시킬 수 있었을까?

    다산의 제자 교학방식을 단계별, 전공별, 맞춤형, 실전형, 토론형, 집체형 등 여섯 범주로 나누어 살폈다. 단계와 수준에 따라 효과적인 로드맵을 제시하고, 제자의 개성을 고려하여 전공을 정해주었다. 성격이나 신분을 따져 각자에게 맞는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부단한 실전 연습 과정에서 작은 성취도 진작(振作) 고무시켰고, 태만은 매섭게 야단쳤다. 토론을 통해 문제의식을 예각화하고, 작업의 핵심가치를 장악했다. 그러고는 조직적인 시스템을 갖추어 집체 작업을 대단히 효율적으로 완수해냈다. 그 결과 잔털이 부숭부숭하던 촌학구들이 중앙 학계에 내놓아도 조금도 꿀리지 않는 큰 학자로 성장할 수 있었다. 다산이 제자 훈련과정을 자신의 작업과정과 일치시킨 점도 놀랍다. 다산은 작업의 원동력을 제자를 통해 얻었고, 제자들은 스승의 방법론과 작업 과정에 동참하면서 작업의 노하우를 익혔다. 서로 윈윈의 모양새를 갖추었던 것이다. 다양한 방식들의 이상적인 조합이 작업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시너지 효과를 창출했다. 다산의 교학 방식은 오늘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대단히 체계적이다.
    ('강진 강학과 제자 교학 방식' 중에서 / pp.13~14)

    다산 친필 편지, 19세기 다산이 일거수일투족을 복원하다

    조선에서 문집을 편찬할 때 편지글은 편집 작업을 거친다.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을 배제하는 것이다. 편지의 내용 외에 글을 쓰는 사연, 쓴 날짜 등을 삭제한 뒤에 문집에 게재한다. 지은이가 새로 발굴한 다산이 직접 쓴 150여 통의 친필 편지는 현재까지 전해지는 문집에 없는 것이 많다. 그런 자료에는 당시의 개인의 성정, 편지글의 사연, 날짜가 고스란히 남아 있어 자료적 문화적 가치가 상당하다.
    이러한 편지들은 그 동안 볼 수 없거나, 보이지 않던 곳의 앞뒤가 이어지고, 이야기가 복원되고, 인과의 사연이 맥락에 따라 구성된다.
    제자, 자녀에게 쓴 편지글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혜장, 초의 등의 승려와 교유한 글도 상당하다. 즉 불교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다산이 승려들과 친하게 지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성리학을 공부하는 선비로서 승려와 나눈 편지는 스스로 검열하여 문집에서 누락시켜야만 했다. 이런 사연을 담은 편지들이 발굴되면서 문화사의 빈자리가 메워진다. 이렇게 진열장 안에 핏기 없이 놓여 있던 편지 한 장, 시 한 수가 하나하나 모이자 자료들 나름대로 방향을 제시하게 된다. 무관하던 것들 사이에 네트워크가 생겨나고, 다른 방식으로 소트되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그려내는 과정에서 두 가지는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연구 과정을 통해 그때까지의 지은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그것을 통해 사람들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인문학자 정민의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자료들로 하여금 스스로 말하게 하는 지은이의 연구 및 저술 방식이다. 엄밀한 이론 하에 다양한 자료들을 끼워넣는 것도 아니고 수많은 자료들을 들이대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지은이는 스스로 가장 본질적이라 믿는 관점으로 다양한 자료들을 배열함으로써 그 자료들이 이리저리 부딪치게 만드는 것이다.

    흩어졌던 자료들이 숨어 있다가 한꺼번에 튀어나와 한 실에 서 말 구슬이 꿰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2003년 학고재에서 개최한 [유희삼매]전에 전시되고, 같은 제목의 책에 도판으로 수록된 [여성화시첩(與聖華詩帖)] 10수는 시문집에는 누락된 작품이었다. 흥미롭기는 한데, 앞뒤 맥락이 닿지 않고 내용 중에 이해가 안 되는 대목도 있었다. 이성화란 이름을 이리저리 찾아봐도 다른 기록이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앞서 말한 이을호 박사 구장 [정다산선생행서첩]을 강기욱 선생을 통해 받고 내용을 검토하는데 흥미롭게도 [송이성화장귀서(送李聖華將歸序)]란 글이 실려 있었다. 필치나 글씨 크기로 보아 같은 시기에 다산이 한 사람에게 써준 글씨였다.
    2009년 6월 인사동 공화랑에서 [안목과 안복]이란 이름으로 전시가 열렸다. 그 얼마 전 유홍준 선생과의 대화에서 다산 관련 자료 이야기를 나눈 일이 있었다. 이를 기억한 유 선생께서 공화랑에 다산 글씨가 나왔는데, 가서 한번 보라는 전갈을 주셨다. 그쪽에 자료를 보여주라고 이야기를 해두겠노라고 했다. 바로 달려가서 보니 [여성화초천사시사첩(與聖華苕川四時詞帖)]이었다. 수신자가 이성화였다. 액자의 유리 때문에 일단 본문만 알아볼 수 있도록 촬영해 와서 검토에 들어갔다. 앞서 [여성화시첩]을 읽었을 때 맥락이 닿지 않던 말이 뒤쪽 [여성화초천사시사첩]을 읽으니 비로소 소연해졌다. 둘은 원래 묶여 있던 하나의 서첩이었다.......원래 하나의 첩에 묶여 있던 것이 셋으로 떨어져 전혀 다른 문맥으로 전해오다가, 근 200년 만에 한자리에 다시 만나 비로소 조리와 문맥을 갖추게 되었던 셈이다.......다산이 자꾸 내게 무언가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서설:다산의 자취를 찾아 헤맨 여정' 중에서 / pp.34~36)

    사람 냄새 나는 다산을 눈앞에서 만나다

    이 책은 성인(聖人)이자 최고의 지식인 다산을 다른 방식으로 말하고 있다. 매일 희로애락을 겪고 한탄하는 범부 다산이었다. 즉 사람 냄새 다산을 보여줌으로 최고의 지식인 다산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제자를 외면하고 제자가 배신하는 갈등(서설, 다산여황상서간첩 등), 유배지에서 낳을 딸 홍임 모녀에 얽힌 사연(매조도 등), 편지 내용과 함께 적혀 있는 편지를 쓰는 사연 등을 번역, 탈초, 해설하면서 다산을 가까이에서 만나게 해준다.

    앞서의 [매조도]가 딸에게 준 것이었다면, 이 [매조도]도 딸을 위해 그린 것은 아닐까? 다산은 초당 생활 중에 얻은 소실에게서 홍임(弘任)이란 딸을 두었다. 혹시 이 딸을 염두에 두고 그린 그림이 아닐까? 이렇게 가정하고 다시 시를 읽는다.
    마르고 썩어 새 움을 못내는 등걸은 다산 자신이다. 내 인생에 봄날은 다시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묵은 등걸에서 홀연 푸른 가지가 뻗어나와 꽃을 피웠다. 뜻하지 않게 맺은 새 인연을 이렇게 말했다. 그 사이에서 딸이 태어났다. 어디선가 날아든 채색 깃털의 작은 새다. 그림의 수신자인 '종혜포옹'은? 말할 것도 없이 바로 다산 자신이다. 그냥 준다고 하지 않고 굳이 '의증'이라 한 것은 이 때문이다. 증여의 행위는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소실과의 사이에서 갓 태어난 딸을 마음에 두고 그린 그림인데, 드러내놓고 밝히기는 뭣해서 '의증'한다고 말꼬리를 흐렸다.
    딸을 시집보내고 그림과 시를 그려준 뒤, 잇달아 소실에게서 딸을 얻었다. 당시 다산은 해배의 명령이 이미 내려진 상태라 집행 통보만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안 있어 내가 이곳을 떠나게 되면, 저 어린 것이 여기 혼자 남아 하늘가를 맴돌며 울겠지. 그 생각을 하니 마음이 짠해서 갓 태어난 딸을 위해 똑 같은 크기의 그림 한 폭을 더 그렸던 것이다.
    ('다산이 딸을 위해 그린 '매조도' 두 폭' 중에서 / pp.484~485)

    다산 친필 편지를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보여주다

    지은이는 이 책에 다산 친필 편지의 생생한 원 자료를 컬러로 수록하여 자신이 겪었던 시행착오를 후학들이 되풀이 하지 않게 하였다. 다산의 자료를 한껏 공유하면서 생생하고 생산적인 질문으로 질문의 경로가 바꾸어지길 기대한다. 여러 자료 중 서첩은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짧은 서첩은 책의 본문에서 보여주었고, 긴 서첩의 경우는 원 자료의 생생함을 느낄 수 있도록 일명 '병풍접지(5개)'를 하였다.

    목차

    머리말
    서설
    제 1부 : 다산의 강진 강학, 제자 교육
    1 다산 강진 강학과 제자 교학방식
    2 ‘다산여황상서간첩’의 내용과 자료가치
    3 정약용과 강진 시절 제자 황상
    4 초의에게 준 다산의 당부
    5 다산의 선문답

    제 2부 : 다산의 사지 편찬과 불승과의 교유
    6 다산과 은봉의 ‘만일암지’
    7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다산 친필 서간첩 ‘매옥서궤’에 대하여
    8 다산과 혜장의 교유와 두 개의 ‘견월첩’
    9 새로 찾은 다산의 ‘산거잡영’ 24수
    10 차를 청하는 글-다산의 걸명 시문
    11 대흥사 천불전 부처의 일본 표류와 조선표객도

    제 3부 : 다산의 공간 경영과 생활 여백
    12 다산 정약용의 이상주거론
    13 일민미술관 소장 ‘다산송철선증언첩’에 대하여
    14 다산의 초당 경영과 공간 구성
    15 다산의 평생구학론-이성화에게 준 3종 친필첩을 중심으로
    16 다산 정약용의 부자론
    17 다산이 그린 두 폭의 매조도

    제 4부 : 다산 일문(逸文)의 행간과 낙수(落穗)
    18 신헌의 ‘금당기주’와 다산의 일문
    19 다산과 이인행의 남북학술 논쟁
    20 다산이 이강회의 이름으로 추사에게 보낸 편지
    21 정학연의 공후인시첩고
    22 1805년 정학연의 두륜산 유람 시문
    23 초의의 눈보라 속 수종사 유람

    본문중에서

    4년 넘게 몰입해온 다산 관련 논문을 한자리에 모았다. 다산 친필이 있다는 말만 들으면 어디든 찾아갔다. 새 자료를 수소문해서 만나고, 정리해서 번역하고, 논문으로 썼다. 손에 못 넣으면 안절부절 몸이 달았다. 곁에서 보다 못한 아내가 혀를 찼다. 도도하던 사람이 자료 앞에선 왜 그렇게 속도 없이 비굴해 지느냐고, 보기 민망하다고 나무랐다. 그런 소리를 들은 다음 날도 친필 편지 한 장이 나왔다는 소식에 하던 일 비켜두고 카메라를 들고 달려갔다. 그렇게 모은 자료로 쓴 논문이 20편을 퍽 넘겼다. 지금도 나는 새 자료 소식만 들리면 어디고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다.
    (머리말/ p.5)

    다산의 제자 교학방식을 단계별, 전공별, 맞춤형, 실전형, 토론형, 집체형 등 여섯 범주로 나누어 살폈다. 단계와 수준에 따라 효과적인 로드맵을 제시하고, 제자의 개성을 고려하여 전공을 정해주었다. 성격이나 신분을 따져 각자에게 맞는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부단한 실전 연습 과정에서 작은 성취도 진작(振作) 고무시켰고, 태만은 매섭게 야단쳤다. 토론을 통해 문제의식을 예각화하고, 작업의 핵심가치를 장악했다. 그러고는 조직적인 시스템을 갖추어 집체 작업을 대단히 효율적으로 완수해냈다. 그 결과 잔털이 부숭부숭하던 촌학구들이 중앙 학계에 내놓아도 조금도 꿀리지 않는 큰 학자로 성장할 수 있었다. 다산이 제자 훈련과정을 자신의 작업과정과 일치시킨 점도 놀랍다. 다산은 작업의 원동력을 제자를 통해 얻었고, 제자들은 스승의 방법론과 작업 과정에 동참하면서 작업의 노하우를 익혔다. 서로 윈윈의 모양새를 갖추었던 것이다. 다양한 방식들의 이상적인 조합이 작업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시너지 효과를 창출했다. 다산의 교학 방식은 오늘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대단히 체계적이다.
    (강진 강학과 제자 교학 방식/ pp.13~14)

    자료들을 찾아 헤매던 시간들을 정리해볼 필요를 느낀다. 나 자신 자료를 구하려고 동분서주한 기억들을 갈무리하는 한편, 현장 공부의 중요성에 대해 후학들에게 몇 마디 군말을 덧붙이는 것도 의미 없지 않겠다는 판단에서다. 이는 소중히 간직해온 귀한 자료를 선뜻 혹은 우여곡절 끝에 제공해주어, 다산학의 새 지평을 여는 보람을 얹어주신 소장자 여러분에 대한 내 작은 예의의 표시이기도 하다.
    (서설:다산의 자취를 찾아 헤맨 여정/ pp.17~18)

    다산은 대단히 곰살궂은 사람이었다. 그의 취미는 조각 천이나 종이를 오려 공책을 만들고, 거기에다 정성스레 글씨를 써서 선물하는 것이었다. 이런 취미는 그의 아들에게도 그대로 대물림되어, 부자가 남긴 아름다운 서첩이 참 많다. 이런 자료들은 어쩐 일인지 대부분 문집에 수록되지 않았다. 연대도 분명하고, 사연도 진진해서, 이런 자료들이 다산학의 결락된 부분들을 메워주고 채워주는 것이다.
    (서설:다산의 자취를 찾아 헤맨 여정/ p.49)

    저자소개

    생년월일 1960~
    출생지 충북 영동
    출간도서 55종
    판매수 81,911권

    충북 영동 출생. 한양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모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지식경영에서 한국학 속의 그림까지 고전과 관련된 전방위적 분야를 탐사하고 있다.
    그동안 연암 박지원의 산문을 꼼꼼히 읽어 《비슷한 것은 가짜다》와 《고전 문장론과 연암 박지원》을 펴냈다. 18세기 지식인에 관한 연구로는 《잊혀진 실학자 이덕리와 동다기》《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과 《다산선생 지식경영법》《다산의 제자 교육법》《다산 증언첩》《18

    펼쳐보기

    저자의 다른책

    전체보기
    펼쳐보기

    언론사 추천 및 수상내역

    이 책과 내용이 비슷한 책 ? 내용 유사도란? 이 도서가 가진 내용을 분석하여 기준 도서와 얼마나 많이 유사한 콘텐츠를 많이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비율입니다.

      리뷰

      9.5 (총 0건)

      기대평

      작성시 유의사항

      평점
      0/200자
      등록하기

      기대평

      10.0

      교환/환불

      교환/환불 방법

      ‘마이페이지 > 취소/반품/교환/환불’ 에서 신청함, 1:1 문의 게시판 또는 고객센터(1577-2555) 이용 가능

      교환/환불 가능 기간

      고객변심은 출고완료 다음날부터 14일 까지만 교환/환불이 가능함

      교환/환불 비용

      고객변심 또는 구매착오의 경우에만 2,500원 택배비를 고객님이 부담함

      교환/환불 불가사유

      반품접수 없이 반송하거나, 우편으로 보낼 경우 상품 확인이 어려워 환불이 불가할 수 있음
      배송된 상품의 분실, 상품포장이 훼손된 경우, 비닐랩핑된 상품의 비닐 개봉시 교환/반품이 불가능함

      소비자 피해보상

      소비자 피해보상의 분쟁처리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따라 비해 보상 받을 수 있음
      교환/반품/보증조건 및 품질보증 기준은 소비자기본법에 따른 소비자 분쟁 해결 기준에 따라 피해를 보상 받을 수 있음

      기타

      도매상 및 제작사 사정에 따라 품절/절판 등의 사유로 주문이 취소될 수 있음(이 경우 인터파크도서에서 고객님께 별도로 연락하여 고지함)

      배송안내

      • 인터파크 도서 상품은 택배로 배송되며, 출고완료 1~2일내 상품을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 출고가능 시간이 서로 다른 상품을 함께 주문할 경우 출고가능 시간이 가장 긴 상품을 기준으로 배송됩니다.

      • 군부대, 교도소 등 특정기관은 우체국 택배만 배송가능하여, 인터파크 외 타업체 배송상품인 경우 발송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배송비

      도서(중고도서 포함) 구매

      2,000원 (1만원이상 구매 시 무료배송)

      음반/DVD/잡지/만화 구매

      2,000원 (2만원이상 구매 시 무료배송)

      도서와 음반/DVD/잡지/만화/
      중고직배송상품을 함께 구매

      2,000원 (1만원이상 구매 시 무료배송)

      업체직접배송상품 구매

      업체별 상이한 배송비 적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