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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트는 도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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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언젠가는 글자가 날아가지 않고 새겨지는 날도 있겠지요?”

    서사를 꿈꾸는 ‘나’와 모던하고자 하는 ‘도련님’의 만남
    삶과 소설, 그 사이에서… 힌트는 백가흠이다!


    “이 세계에서 여전히 자행되는 불쾌하고 불편한 진실을 불쾌하고 불편한 방식으로 적나라하게 까발”(문학평론가 심진경)렸던 작가가 있다. “낭만성이 제거된 남성적 폭력성과 가학적이며 또한 피학적인 장면들, 그리고 주변부적인 삶의 고통”(문학평론가 이광호)이 그의 작품을 가득 채웠고, 그것은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한 인물들이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상태로 천박한 본능만 남은 채 “비루한 동물극장”(문학평론가 김영찬)을 이루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일들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그럼에도 나와 상관없는 일이기에 그 내부로는 들어가보지 않고 단순히 자극적인 사건일 뿐인 이야기들이, 그의 단단한 언어와 힘 있는 서사와 만나 핍진하게 그려지면서 더 이상 나와 먼 이야기가 아닌 내가 살고 있는 이 땅 위의 사회병리적 현상으로 던져졌다. 이것이 그의 작품이 불편하면서도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그리고 또한, 2000년대 한국 문단에서 백가흠의 등장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다.
    백가흠의 세번째 소설집 [힌트는 도련님]이 전작 [조대리의 트렁크] 이후 4년 만에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이번 소설집은 백가흠의 소설 쓰기에 대한 변화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전작들과는 또 다른 기대를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또한 그 변화는 백가흠의 소설을 사랑한 독자에게도, 그의 행보에 관심을 기울여온 평단에도 귀한 발견이 될 것이므로, 이번 소설집을 향한 기대에 값하게 될 것도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그의 소설 쓰기에는 과연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힌트는 도련님”이다.

    첫번째 소설 [그리고 소문은 단련된다]는 한 소읍에서 갑자기 사라진 두 여인에 대한 소문이 또 다른 소문을 양산해내는 과정을 통해, “현실이 소문을 낳지만, 소문이 점점 이상한 방식으로 확대되어 그것이 다른 현실을 낳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이것은 소문의 사회학으로 읽을 수도 있지만, 좀더 깊이 들어가보면 “현실이 언어(소문, 소설)를 낳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현실을 만들어내고, 소문이란 결국 그 사회집단이 만들어낸 언어이자 또 다른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언어사회학의 영역으로 확산된다. 여기서 장르와 문법에 대한 백가흠의 날카로운 자의식이 탄생한다. 그리고 그것은 소설가로서의 자신의 ‘근원’을 더듬는 작업으로 이어지는 듯 보인다. “드물게 보는 소설적 정석의 글쓰기”(문학평론가 김윤식)라는 평을 받은 [그런, 근원]은 불우한 가족사를 가진 ‘근원’이라는 인물이 죽어가고 있는 어머니를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자신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어느 날 사라진 아버지와 그로 인해 흔들린 집안에서 ‘근원’과 동생 ‘근본’은 파란만장한 삶 속으로 내던져진다. 자신을 낳았지만 외면하고 가버린 어머니가 뒤늦게 병들어 자신을 찾자, 그는 무리하게 돈을 구해 험한 길을 오랫동안 걸어 어머니를 찾아간다. 그것은 자신이 처한 현실의 근원을 찾아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잊고 지냈던 자신의 감정과 모습을 조금씩 되찾으며 자신의 이름처럼 스스로가 ‘근원’이었다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깨닫게 되는 것이다. 군더더기 없이 탄탄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소설적 정석의 글쓰기” 안에서, 백가흠은 어쩌면 가장 ‘근원’적인 고민의 여정을 시작했는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질문하는 것이다. 자신의 소설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래서”라는 인과와 상관없는 접속사로 말이다. 무서운 독서 편력을 가진 노인 앞에, 젊은 날 노인이 가르쳤던 죽은 소설가 ‘백’이 나타난다. 곰팡이 가득 핀 방에 앉아 줄이 바뀔 때마다 글씨가 사라지는 고통스러운 글쓰기를 하는 ‘백’과 책을 쌓아 서재의 입구를 막고 스스로를 영원히 책 속에 유폐시키는 노인의 모습은 끊임없이 이어가야 하는 글쓰기와 독서의 무거움과 공허함을 동시에 환기시킨다. 그렇다면 ‘자신의 소설이 어디로 가야 하느냐’는 질문의 답은 무엇일까. 쉽사리 답을 찾지 못하는 작가가 얻은 유일한 힌트가 이때 등장한다. 소설 쓰기의 한계에 다다른 소설가가 일인칭으로 등장하는 표제작 [힌트는 도련님]에는 소설 쓰기의 방법을 둘러싼 딜레마가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현실의 우스꽝스러운 백 도령인 ‘나’와 ‘나’를 분석하려는 모더니스트인 ‘나’는 함께, 서사를 꿈꾸는 ‘나’를 억압한다. 그렇다면 이들 중 소설을 쓰는 주체는 누구인가. 백가흠의 세번째 소설집 안에서는 그 주체가, 스스로를 분석하는 ‘모더니스트’가 확실해 보인다. ‘도련님’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이 모더니스트의 욕망이 백가흠 소설 변화의 핵심인 것이다. 한편 자전소설로 발표된 [P]에서는 자전적 소설 쓰기가 얼마나 여러 겹의 서사적 욕망이 작동하는 공간인가 하는 것을, 소설 내부에서 또 다른 소설을 쓰고 그것을 다시 소설 속에서 삭제하는 일종의 소설적 퍼포먼스를 통해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 선상에서 백가흠이 그렸던 기존의 폭력적인 남성들이 어떻게 변모했는지 살펴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이다. 키가 150센티미터밖에 되지 않는 데다 회사에서는 무시를 당하는 마흔넷의 이혼남 영업사원의 이야기를 담은 [그때 낙타가 들어왔다], 월남전 고엽제 피해자로 사회적으로 거세된 원덕 씨의 비참한 삶과 죽음을 고통스러운 몸의 이미지로 신랄하게 그려 보이는 [통(痛 )]이 그러하다. 백가흠이 이전에 보여주었던 여성에 대한 공격적 폭력성이 조금 남아 있는 유일한 소설로는 [쁘이거나 쯔이거나]가 있다. 코리안드림을 가지고 한국으로 시집을 온 어린 베트남 처녀 ‘쯔이’가 당하는 성적 착취를 냉정하게 묘사하고 있는 이 작품은, 그러나 농촌 총각들이 처한 성적 소외의 충격적인 고발로 읽히기도 한다.

    2001년,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며 문단에 들어와 그만의 색깔로 한국 소설의 젊은 기운을 불어넣었던 백가흠. 그가 등단 10년을 맞는 2011년, 그가 보여주는 변화에 10년 전의 신선함과 놀라움을 다시금 느낄 수 있다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닐 것이다. 힌트를 손에 쥐고 그의 소설을 차근차근 읽어나가는 일이 즐거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목차

    그리고 소문은 단련된다
    그런, 근원
    그래서
    힌트는 도련님
    그때 낙타가 들어왔다
    통(痛)
    쁘이거나 쯔이거나
    P

    해설 그리고 소설은 단련된다_이광호
    작가의 말

    본문중에서

    일흔을 앞둔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제야 널찍한 집을 갖게 되었다. 아니 갖게 될 것이다. 지난겨울 시작한 두 분의 집짓기는 여름이 된 지금도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았다. 집을 짓는다는 것이 어떤 철저한 계획 아래, 준비된 설계 도면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내 부모가 짓고 있는 시골집은 그런 것과는 무관해 보인다. 그들이 짓고 있는 집이란, 생활이고, 삶이며,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인생의 한 부분 같다. 그들은 돈이 생길 때마다 황토 벽돌을 사다가 방을 만들고, 돈이 떨어지면 공사를 멈추었다가, 다시 여유가 생기면 창에 새시를 달고 화장실에 타일을 까는 식이니, 어떤 근사한 집에서의 안위를 염두에 둔 집짓기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분명한 것은 그 과정에 즐거움과 사명감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드디어 올 장마가 시작되기 전 1층이 완공되었다).
    무심한 큰아들이 아버지의 예순아홉번째 생일을 맞아 잠깐 집을 찾았을 때, 아버지는 스케치북 하나를 보여주었다. 그곳엔 빼곡하게 스케치와 메모가 되어 있었다. '장독대'에 대한 도면에는 ‘무릎이 편치 않은 어머니가 최대한 무리하지 않고 한번에 올라설 수 있는 높이로 맞출 것’이라는 메모가, ‘마당’ 도면에는 ‘두 개의 화단을 만들 것, 어머니의 채소밭과 아버지의 꽃밭을 마주 보게 조성, 화분들은 마당 한가운데 모아 또 하나의 꽃밭’이라는 메모가 적힌, 우리가 아는 설계도와는 다른 그것을 보면서, 그간 자연스럽게 터득한 그들만의 미와 앞으로의 꿈 같은 것을 얼핏 짐작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스케치북을 보며 나는 무심한 아들이자 조금 그저 그런 인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어머니는 2층에 내 작업실을 만들 거라며, 방학 때마다 창작 공간을 찾아다니는 나를 그때만이라도 집에 붙들어놓을 수 있는 묘책을 궁리해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버지의 소박한 서재였다. 평생 처음으로 갖게 된 아버지의 서재는(서재가 따로 없어서 아버지의 책 때문에 우리 집은 언제나 비좁았다) 안방 안, 가장 은밀한 곳에 숨어 있었다. 봄엔가, 아버지가 전화를 걸어서는 집에 있는 자신의 책을 버려도 좋은지 물은 적이 있었다. 가서 보니 작은 서재를 꾸미는 데 많은 책들이 버거웠던 모양이다. 내가 물려받게 될 책들은 창고에 잘 정리되어 있었다. 어머니 말로는 그 은밀한 방에 들어가면 몇 시간씩이고 나오질 않는다고 하니, 말년에 아버지가 또 다른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 어머니가 짓고 있는 집을 위해 내가 한 일이라곤, 용돈을 조금 쥐여주고, 모든 창에 우드블라인드를 달아준 정도다. 돈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것, 그게 내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 얍삽함의 극치인 셈이다.

    소설도 하나의 집을 짓는 것과 같다. 터를 잡고, 기초 공사를 하고, 무너지지 않게 기둥을 튼튼히 박고, 원하는 방향으로 창을 내기도 하고, 취향에 따라 인테리어도 하는 집짓기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작업이다. 4년여 지어온, 세번째 소설집을 바라본다. 집이란 모름지기 내 아버지의 스케치북 도면에 그려진 것처럼 자연스러운 배려가 가득해야 하는데, 곰곰 살펴보니 그런 면면이 보이지 않는다. 마치 어렸을 때, 뽑기 같은 것을 하면 나오는 ‘다음 기회에’나 ‘꽝’을 뽑아든 느낌이다.
    부모가 짓고 있는 집과 내가 지은 집의 차이에 대해 골똘해진다. 집을 짓는 데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에는 간절함과 절실함, 가장 자연스러운 인테리어, 분수에 맞는 장식들, 실용성 등 여러 가지가 있을 테지만, 무엇보다 집 안에서 살아야 할 사람에 대한 사랑이 제일이다. 생각이 거기에 이르니, 내가 지은 집에 무엇 하나 자신이 없다. 내 인물들에 대한 사랑에 자신 없어지는 순간이다. 그러니 내가 지은 집 같지 않고 낯설기만 하다. 다음 기회에, 내 부모가 지은 시골집 같은 사랑으로 가득한 소설을 꼭 짓겠다고 다짐만 해본다.

    해설을 써준 이광호 선생께 한없는 고마움을 전한다. 원고를 맡아준 후배 김필균에게는 위로와 축복. 마지막으로 내 소설을 기억해주고, 참아주고, 읽어주는 소중한 독자들에게 오래 참았던 인사를 남긴다.

    2011년 여름
    원주에서 백 가 흠 拜
    (/ '작가의 말‘ 중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1974~
    출생지 전북 익산
    출간도서 18종
    판매수 3,341권

    1967년 대구 출생. 200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귀뚜라미가 온다』 『조대리의 트렁크』 『힌트는 도련님』 『사십사』, 장편소설 『나프탈렌』 『향』 『마담뺑덕』 등이 있다.

    언론사 추천 및 수상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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