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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짐짓, 말하지 못했던 우리의 감정에 대해
    “참을 수 없는 감정
    말은 그렇게 배우는 것이지”


    “느낌은 어떻게 오는가”
    당신의 설렘은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당신의 느낌은 어느 순간 손아귀에 감싸인 채 분명해지는가? 당신 가슴의 요동과 눈자위 현기증은 무엇으로 인해 증폭하는가? 구태의연한 질문 몇 가지로 시작하는 데는 시를 읽고 쓰는 이유가 결국 여기에 담겨 있다 생각해서다. 무수한 시인이 나름의 시를 쓰고, 시집을 묶고, 평자와 독자들이 읽어내는 일의 전모가 그러하다. 여기에는 2000년대 초중반, 탈서정과 탈문법, 전위와 키치와 그로테스크, 자폐와 불화로 주목받기 시작한, 비주류이면서 어느 틈에 주류가 되었던 그 흔한 명명인 ‘미래파’도, 그들의 시적 세례와 전위를 배반으로 모색하며 무리지어진 ‘포스트-미래파’도, 세계와 내면의 황홀한 폐허를 겸손한 서정으로 끌어안는 시인들 모두가 함께한다. 그들 모두 세계와 끊임없이 불화하며 자존감을 지켜내는 시 문학과 함께한다.

    그렇게 10년을 지나 오늘에 이른 한국 시는, 여전히 자신의 시작에 몰두하고 하나하나 온전한 세계로 그려가는 데 열심인 새로운 靑年들이 등장했다. 끝없이 새로운 언어를 찾아 실험하고 부딪치고 좌절하고, 낯익은 것을 낯설게 변주하고, 세상의 무수한 비밀을 캐물으며, 연대기의 한 페이지를 날것 혹은 문학적 상상력으로 갱신하는 일이 詩라면, 이 시의 다른 이름은 싱싱하고 푸른 靑春, 少年의 눈이다. 다시 한 번, 시 속에서 마음의 동요와 궤적을 좇고 또 시에 투영된 읽는 이 자신의 모습을 목도하는 일은 평범한 일상을 눈부신 빛으로 거듭나게 한다. 그래서 여기, 문학과지성 시인선의 393번째 선택은 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로 당선하며 등단한 유희경의 첫 시집 [오늘 아침 단어](문학과지성사, 2011)다. 문학과지성 시인선을 통틀어 첫 1980년대생 시집이다.

    소년의 눈물, 청년의 사랑, 그의 연대기
    2008년 벽두, 신춘문예 당선으로 첫 선을 보인 시인 유희경은 “지금 손에 쥔 내 손의 온도가 낯설다. 이것은 누구의 것일까. 모든 두근거림의 뿌리를 보고 싶었다”라며 당선소감을 밝혔다. 그렇게 ‘모든 두근거림의 뿌리’를 살펴보고자 했던 시인의 일상은 고백과 묘사, 대화와 앞서간 이의 시선을 두루 관통하며 반복된다. 그 흔한 유머나 집요한 말놀이, 이미지의 극단이나 그로테스크한 상징 대신, 익숙한 언어로 익숙한 감정을 묘사하고 세련하는 일상의 방식으로 먹먹한 슬픔, 그 통증에 대해 말한다.

    ‘지금은 그저 假定의 시간’
    그때 너는 어떤 생각을 했던 것일까 사막,이라고 적을 수밖에 없는 깊은 밤의 처지를 생각했을 수도 있다 거리의 대부분이 자취를 감췄을 때도 너는 걷고 있었다고 확신한다 어떤 영혼도 버틸 수 없는 사람은 대개 그러하다 그날 밤은 떠올리지 않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다[...] 세상이 검게 변하는 순간에 아무것도 없고 너만 있고 멀리 오후의 개가 짖는 소리 정말 이제 사람들은 창문의 한 귀퉁이를 발견할 것이다 언제 묻었는지 모를 붉고 선연한 자국이 사람의 모습 같아서 그들은 한동안 소곤댈 것이다 누군가는 시간과 함께 몰래 기록해둘 그 소문 속 이야기를
    (/' 낱장의 시간들' 중에서)

    얼핏 죽음을 편애하는 시적 화자는 “밤의 입장에서 죽음의 고독을 탐색”한다. 그리고 가정된 미래 속의 죽음과 그에 대한 사유는, 유희경의 시에서 “‘너’의 산책, 즉 미래로 무한히 열린 ‘나’의 죽음을 시 쓰기의 경험”으로 확장해간다(조연정). 짐작건대, 시 쓰기의 고뇌는, 백지에 검은 글자를 박아 넣는, 찰나에 각인된 장면과 기억을 머릿속과 가슴속을 오가는 담금질로 뱉어놓아야만 그나마 “버려진 종이” 신세를 면할 수 있기에, 죽음만큼이나 무겁고 무력하며, 새까만 한밤처럼 아득하고 거대한 고독일 수밖에 없을 터.

    “結晶되지 않은 決定”-낯익은 낯선 감정의 이야기
    유희경의 첫 시집 [오늘 아침 단어]에 실린 63편의 시들은 낯익은 그러면서 낯선 감정의 무늬와 열기로 가득하다. 무겁게 내려앉는 통증의 이야기에서 어룽대는 은빛의 눈물과 새벽이슬 속에 피어난 수줍은 꽃의 미소를 ‘숨김없이 남김없이’ 오롯하게 그려내 줄 아는 따뜻한 한 시인이 탄생했다. 그가 ‘슬프고 먹먹하고 설레고 안타깝고 외롭고 결연한 밤’을 내내 걷고 또 걸어, “신비 혹은 공포 그러니 어둑하고 고요한 아침 노래하는 새들의 노래 파고들어 팽창하는 음악 그 음악의 힘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당신이 눈이 떴을 때 창문에 닿아 있는 햇살 평평한 정신 그리고 [...] 기억하고 있겠지만 結晶되지 않은 決定 동전처럼 아무렇게나 보이지 않는 뒤 가려진 앞”(뒤표지 시인의 산문)을 하나 빠짐없이 우리에게 선사한다.

    어쩌면 시의 본질은, 순간의 느낌을 화인처럼 붙들고 사는 시인의 차가운 눈과 더운 가슴에 있을지도 모른다. 일찍이 시인 이성복은 “느낌은 어떻게 오는가/ 꽃나무에 처음 꽃이 필 때/ 느낌은 그렇게 오는가 /꽃나무에 처음 꽃이 질 때/ 느낌은 그렇게 지는가// 종이 위의 물방울이/ 한참을 마르지 않다가/ 물방울 사라진 자리에/ 얼룩이 지고 비틀려/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있다”([느낌], [그 여름의 끝], 1990)고 했다. 일상의 순간을, ‘공중의 시간’을 영원의 기억으로 안을 수도 있는 그 마술과도 같은 느낌, 시는 바로 그렇게 우리에게 온다.

    유희경의 시들은 “미래의 시간이든 과거의 시간이든, 자신이 부재한 풍경으로부터 ‘生前의 감정’을 추출”하고 있다. “내가 없는 시간” 속의 감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전부 나였다”라는 말로밖에 달리 형용할 길이 없는 감정으로부터, 그는 가까스로 한 단어 한 단어 길어 올리고 있다. 시작되지 않은 과거와 끝나지 않은 미래라는 황야의 시간을 떠돌며 그가 매일 아침 생각해보는 한 단어, 그것은 어쩌면 ‘시’일지도 모른다
    (/ 조연정 해설 '최초의 감정' 중에서)

    목차


    꿈속에서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K
    한편
    소년 이반
    어떤 연대기

    당신의 자리
    心情
    내일, 내일
    낱장의 시간들
    금요일
    버린 말

    우산의 고향
    들립니까
    심었다던 작약
    궤적
    지워지는 地圖
    이웃 사람
    오늘의 바깥
    너가 오면
    화가의 방


    코트 속 아버지
    오늘은
    11월 4일
    그만 아는 이야기
    폭설
    어쩔 수 없는 일
    손의 전부
    속으로 내리는
    나는 당신보다 아름답다
    벌거벗은 두 사람의 대화
    우산의 과정
    비밀의 풍경
    아이들은 춤추고
    다시, 지워지는 地圖
    악수
    이 씨의 낡은 장화
    나와 당신의 이야기
    같은 사람
    검은 고요
    그해 겨울


    빛나는 시간
    해줄 말
    어떤 장면
    소년
    불행한 반응
    닿지 않은 이야기
    우산의 반대말
    B
    염소의 숲
    보내지 못한 개봉 엽서
    서른
    텅 빈 액자

    옛날 사람
    공중의 시간
    부드러운 그늘
    그때 우리는
    맑은 날
    나이 어린 조각들
    면목동

    해설| 최초의 감정(조연정)

    본문중에서

    1.
    이 시는 정박한 시간에 대한 것이다
    미열에 들떠 휴지로 창문을 닦았을 때
    계절은 너무 자주 시작되었다
    공중을 조립하기 위해 덩치가 큰 사내들은
    도시를 떠났다 곧 그들이 떨어뜨린
    공중의 부속이 땅을 흔들 것이다
    거실의 시계는 멈추고 나는 침대에 누워
    초라한 병에 시달리는 가족사를 생각한다
    죽일 년놈들이 되어 잠든 우리

    2.
    가끔, 弱視의 꿈을 꾼다
    죽은 아버지 음성, 심장의 크기를 키운다
    아무도 없이 소리만 들리는 풍경 느닷없이
    늙어버린 길은 힘없이 팔을 떨구고
    천천히, 숨을 끊는다 그러니 나는
    식욕보다 나쁜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
    혼자서 지어두었던 아들의 이름은 이미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니 아버지
    내게 말 걸지 마세요

    3.
    검은 눈빛을 가진 나의 아들이
    빛을 주워 담기 위하여 古宮의 뜰로
    간다 오, 언제나 태양은 가득하다
    그러나, 나는 그늘이 좋았으므로
    강낭콩 싹 한 번 틔어보지 못한 끈기로
    늘 그늘을 키운다 이름 없는 나무들은
    죽기 직전에 숲을 만든다지 그러므로
    나무는 못된 무덤 나는
    네가 나무 악기로 태어나기를 바랐다
    너의 아비는 유명하지 않은 악보
    엄마란 음악을 듣는 사람
    고모는 조금만 슬퍼도 우는 아이였다
    그러니 아들아, 어깨란 닮아지는 것이 아니라
    훔치는 것이다 기억해두어라 세상은
    어떤 각오로 태어나야 하는 것인지

    4.
    공을 잃어버린 아이들은 공을 사랑하고
    우리는 그들을 추억한다 누구나 잃어버린
    공터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법 늑대 같은 순간이
    폭발한다 깔깔대며 달아나는 공을 찾아 사라지는
    아이들 내게 맞는 어깨란 없다 뼈라는 이 오래된
    遺傳 먼 미래의 유골이 분말이 되어
    쏟아진다 빈 몸을 털어 내일을 장만해야 한다
    나는 검은 봉투 같은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 '공중의 시간' 중에서)

    고이면 좋겠어
    잠든 도시의 가슴팍에
    의심이란 거지 우리가
    찾아볼 수 없는 흔적

    이렇게 끝내주는 소리는
    천년 전의 것
    용서하라 모든 이빨을
    비가 내일을 잡아 뜯고
    눈썹을 파르르 떨어
    써놓은 문자를 내놓는다

    쏟아져 내리는, 입말
    놀라는 눈과 감기는 물

    비가 내리는 만큼
    입을 다문 사람
    그게 아니더라도
    이런 날씨 앞에서는
    누구나 넓고 너무 투명하다

    떠오른다 침묵하지 않는,
    하고 싶은 말 지우고,
    젖어간다 모서리부터
    (/ '우산의 반대말' 중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1980~
    출생지 서울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2007년 희곡 [별을 가두다]로 데뷔했으며, [실선] [부부의 식탁] [별을 가두다] 등을 무대에 올린 바 있다. 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분에 당선되어 시인으로도 활동 중이다. 시집 [오늘 아침 단어]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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