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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나쁜 피] 김이설 새 장편소설!
    “현실의 어디를 움켜쥐어야 벗어날 수 있을까”


    기대도 절망도 품을 수 없다
    다만, 버티고 견디고 뜨겁게 이겨낼 뿐…

    언제나 처음만 힘들었다. 처음만 견디면 그다음은 참을 만하고, 견딜 만해지다가, 종국에는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처음 받은 만 원짜리가, 처음 따른 소주 한 잔이, 그리고 처음 별채에 들어가, 처음 손님 옆에 앉기까지가 힘들 뿐이었다. 따지면 세상의 모든 것이 그랬다.
    버티다 보면 버티지 못할 것은 없었다.
    (/ 본문 중에서)

    200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처음으로 발표한 장편 [나쁜 피]를 2009년 동인문학상 최종심 후보작 4편에 올리며 쟁쟁한 선배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서 크게 주목을 받았던 소설가 김이설이 두 번째 장편소설 [환영]을 출간했다. 동인문학상 최종심에 올라갔을 때 심사위원회에서는 “2006년 등단 이후 지금까지 소설집 한 권 묶지 않은 신예가 첫 장편으로 단숨에 동인문학상 본선에 진출했다”며 “간결하고도 긴장감 넘치는 문체로 첫 문장부터 독자를 사로잡는 솜씨가 일품”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김이설의 작품은 환상이나 꿈을 현란하게 요리하거나 내면의 세계를 난해하게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를 정면으로 파고든다. 신작 장편소설 [환영]은 문예계간지 [자음과모음](2010년 봄호~2010년 여름호)에 분재되었던 소설로, ‘가족’을 위해 몸과 마음을 던져 고통스러운 현실과 치열하게 싸워나가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마치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건조하면서도 사실적인 묘사들은 맹렬한 스피드와 강한 흡입력으로 불편한 현실을 직조해낸다. 그 ‘불편함’ 속에 담긴,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냉소와 그와 대비되어 보이는 삶에 대한 뜨거운 의지는 [환영]이라는 소설을 통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거대한 울림으로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고단한 현실은, 오늘도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지독한 삶의 무게를 묵묵히 받아들이며 또 하루를 살아가는 여자, 윤영


    시와 도 경계의 표지판이 멀리서도 번쩍였다. 안녕히 가십시오. 반대 차선에서는 어서 오세요, 라고 쓰여 있을 터였다. 아침마다 안녕히 잘 가시라는 말 때문에 다른 세계로 들어선 것 같았다. 그런데 밤이 되어 되돌아오는 여기도 다른 세계 같았다.
    (/ 본문 중에서)

    인간의 삶에 부여되는 행복은 과연 누구에게나 공평할까. 견디기 힘들 정도로 불행이 겹쳐서 다가올 때 우리는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 김이설 작가의 장편소설 [환영]을 다 읽는 순간 이런 물음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대물림되는 경제적 결핍과 비참한 현실의 반복, 작중 인물인 윤영의 눈앞에 닥친 일들은 상상하기조차 힘겹다. 매일 아침 시와 도의 경계를 가르는 ‘안녕히 가십시오’라는 표지판을 보며 다른 세계로 발을 들이는 윤영. 그곳은 항상 ‘어서 오세요’라고 그녀를 ‘환영’하는 듯하지만, 다른 세계에서의 그녀는, 그리고 밤이 되어 다시 돌아오는 이 세계에서의 그녀는 그저 이방인일 뿐이다.

    [환영]은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는 무능력한 남편 대신 생계를 위해 젖먹이를 떼어놓고 돈을 벌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계속해서 제자리걸음만 반복하게 되는, 한 가족의 가장이자, 어머니이자, 여자인 윤영의 이야기다. ‘돈’ 때문에 가족을, 생활을, 몸을 잃어야 했던 윤영의 참혹한 현실은 소설 안에서 노골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드러난다. 대를 이어 내려온 가난과 남편의 무능력이 그녀에게 가져다준 것은, 줄기는커녕 오히려 계속해서 늘어만 가는 빚과 당장의 생활비조차 없어서 결국에는 젖먹이를 떼어놓고 몸을 팔아가면서까지 일을 해야 하는 현실이다.

    “듣기 싫어! 미안하단 말은 공짜지! 당신이 뭘 안다고! 시끄러워!”
    내가 소리를 지르자 아이가 기겁을 하고 제 아빠의 품에 안겼다. 앉아 있는 남편에게 마주 안긴 아이의 등이 숨을 쉴 때마다 파닥거렸다. 아이가 뒤집고, 이가 나고, 기어 다니고, 혼자 앉고, 말을 시작하는 걸 지켜본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남편이었다. 씻기고, 먹이고, 재우고, 놀아주는 것도 남편이었다. 아이에게 아빠는 엄마였다. 벽에는 아이의 낙서들이 액자처럼 붙어 있었다. 못 보던 장난감도, 그림책도 구석에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 본문 중에서)

    윤영에게는 탈출구가 없다. 빚더미에 올라앉은 친정 가족들은 그 모든 책임과 의무가 마치 윤영에게만 있는 것처럼 걸핏하면 윤영에게 돈을 요구하고, 무능력한 남편은 애를 보거나 살림을 하면서 얼굴색만 좋아질 뿐 이렇다 할 삶의 대책을 내놓지 못한 채 모두 윤영에게 떠넘긴다. 게다가 별채에서 맞이하는 손님들, 왕백숙집 사장과 그의 아들마저 그녀를 성적 노리개로만 여기며 견디기 힘든 모욕감을 던져준다. 윤영의 앞에 놓인 삶은 이렇게 읽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고 불편하다. 윤영은 항상 자신 때문이 아니라, 윤영과 함께 호흡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서, 즉 타의에 의해서 자신의 삶 전체가 흔들리지만, 그것을 또 묵묵히 받아들임으로써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한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픽션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잘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의 삶의 질적인 차이는 상상을 초월한다. 치열하게 싸워도 올라갈 수 없는 나무가 지금 이곳에는 엄연히 존재한다. 김이설 작가는 이번 소설 속에서 이러한 불공평한 현대사회의 이면을, 자의든 타의든 삶의 벼랑 끝에 내몰려 기본적인 인간 윤리마저 말소된 듯한 인간들을 상대하며 삶을 이끌어나가야 하는 윤영의 모습을 강렬하면서도 간결한 문장으로 재현함으로써 바로 우리가 눈감고 싶은 불편한 현실에 직면하게 한다.

    추천사

    한자리에 앉아 숨죽이고 읽다가 마지막 장을 덮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지독하고 또 지독하다. 김이설의 그녀는 생에 대하여 아무것도 품지 않는다. 기대도 절망도 없다. 어설픈 환상도 어쭙잖은 환멸도 없다. 입구도 출구도 없이 끝없이 이어진 길을 그저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여자. 그러고 보니 언제 우리가 그 여자를 한번 눈여겨본 적이나 있었던가? 식당에서 마트에서 기계처럼 그림자처럼 조용히 움직이는 여자, 들꽃도 풀꽃도 되지 못하는 여자, 낭만적 반성도 윤리적 각성도 할 틈 없이 고단한 그 여자의 맨 얼굴을. 그 여자는 적어도 비겁하지 않다. 아무 데로도 도망치지 않는다. 지독하고 또 지독하게, 여기 그 여자의 이름을 또박또박 불러준 작가의 진심을 나는 믿는다.
    - 정이현 / 소설가

    목차

    1. 왕백숙
    2. 그따위의 나날들
    3. 삼복더위
    4. 최악과 최선
    5. 어서 오세요

    작가의 말

    본문중에서

    남편의 얼굴은 부옇게 살이 올라 있었다. 아이는 자고 있다. 책상 위는 아침과 그대로였다. 무슨 수를 써야 한다면 그게 오늘이어야 했다. 나는 냅다 밥상을 뒤집었다. 남편의 벌린 입에서 밥풀이 후둑 떨어졌다.
    참을 만큼 참고도 더 참아야 하는 건 가족이었다. 남은 반찬만 갖다 버릴 것이 아니라, 필요 없는 식구도 갖다 버렸으면 싶었다. 앓아누웠던 아버지가 죽기까지 그 생각을 버린 적이 없었다. 걸핏하면 용돈 좀 보내달라는 준영이나 빚 독촉 전화를 대신 받게 하는 민영도 마찬가지였다. 밥만 축내면서 밤이면 취하다시피 잠든 마누라 배 위에 올라타 남자 행세 하려는 남편도 꼴 보기 싫었다. 가족이어서 더 그랬다.
    화가 치솟으면 나도 모르게 밥상을 뒤엎고, 물건을 던졌다. 한번 상을 엎으니, 다음은 어렵지 않았다. 내 화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에게 이런 기질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렇게 불같이 화를 내면 남편은 어쩌지 못하고 아이만 끌어안고 오도카니 서 있었다. 먹여 살려야 하는 저 둘 때문에 울고 싶었다.
    (/ pp.46~47)

    별채의 천장을 보며 누워 있으면 남자의 거친 숨소리 사이사이 찰박거리는 물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들리지 않던 그 소리가 점점 커지고, 선명하게 들리다가, 나중에는 콸콸콸 쏟아지는 소리로 들렸다. 내가 물속에 있는 것처럼 세상이 온통 물소리로만 채워진 것 같았다.
    일을 끝내고 별채에서 나오면, 나는 꼭 물가에 들러 한동안 서 있곤 했다. 물은 느리고, 또한 무심하게 흘렀다. 시간도 그렇게 흐르기 마련이라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쪼그려 앉아 손을 씻었다. 차가운 물에 손을 담그면 정신이 번쩍 들었고, 나는 다시 왕백숙집 여자가 될 수 있었다.
    (/ p.59)

    도로의 차는 대부분 물가의 식당으로 들어갔다. 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은 대체로 우리 같은 사람들일 것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몸을 써야만 하는 사람들, 몸 아니면 돈 버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 다른 방법을 차마 꿈꿔보지 못한 사람들, 다른 이들에게는 가능한 꿈이라는 것도 모르는 사람들. 구부정한 허리로 느린 걸음을 걷는 이들이었다. 이모님은 언니에게 어떻게 된 건지 자세히 말하라고 다그쳤다. 얼마나 진행이 된 것이냐, 고칠 수는 있느냐, 보험 같은 건 들어뒀느냐…….
    수술 같은 건 꿈도 꾸지 마. 우리 같은 형편에 아프기까지 해? 그게 가장의 도리니? 엄마가 누운 아버지를 내려다보며 매몰차게 말했다. 남은 식구들 고생시키고 죽기만 해봐. 내가 먼저 죽일 거야. 아픈 아버지는 대거리를 하지 않았다. 그게 엄마 속을 더 뒤집는 모양이었다. (……) 나와 민영은 시도 때도 없이 소리 지르는 엄마를 말리지 못했다. 민영의 등록금을 구하려고 온 식구들이 한창 혈안이 돼 있었다. 그런데 병원비와 약값까지. 답이 없었다. 아버지도 간암이었다. 얼마나 아팠는지 자기 발로 찾아가 검사를 받고 알게 된 병명이었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라는 말을 아무도 하지 않았다.
    (/ pp.76~77)

    저자소개

    생년월일 1975~
    출생지 충남 예산
    출간도서 14종
    판매수 11,547권

    1975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6년 [서울신문]에 단편 [열세 살]로 등단했으며, 소설집으로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과 장편소설 [나쁜 피] [환영] [선화] 등이 있다. 제1회 소나기마을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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