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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웹진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 - 곡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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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한국문학의 최전선, 그 뜨거운 에너지를 만난다!
한국 소설의 젊은 열기를 느낄 수 있는 열한 편의 목소리


한국문학의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호흡과 언어를 발굴하고 이를 문학 독자와 온라인상에서 나누고자 한 [웹진문지](http://webzine.moonji.com). 1년 동안의 그 소중한 첫 결실이 [제1회 웹진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이라는 이름으로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제1회 수상작인 이장욱의 [곡란]을 비롯해 총 11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는 본 작품집은 지난 40여 년 동안 한국문학의 전통과 전위 및 인문지성의 요람으로 튼실히 역할해온 문학과지성사가 [웹진문지]를 통해 일구어낸 빛나는 성과다.
“매달 첫 주를 기준으로, 지난 3개월 내에 발표된 중단편소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을 [이달의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게재하고 그중에서 매년 2월 최종 수상작을 가려 뽑는 방식으로, 1년 내내 웹진을 통해 심사의 과정과 내용이 중계되는 초유의 문학상”인 동시에 “등단 7년차 이하의 신진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측면에서, 각종 신인문학상을 제외한다면 현재 활동 중인 작가들 가운데 가장 젊은 세대에게 주어지는 작품상”이기도 한 [웹진문지문학상]의 그 첫번째 수상작품집을 통해, 바로 지금 우리 앞에 있는, 한국문학의 가장 뜨거운 젊은 숨결을 느낄 수 있다.

11편의 [이달의 소설] 선정작은 등단 7년차 이하의 작품이라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었다. 힘 있는 신인의 등장을 알린 [이달의 소설] 첫번째 선정작인 정용준의 작품에서 시작하여 신인답지 않은 소설적 완성도와 서사적 이미지를 보여준 김성중, 최은미, 이유의 작품, 그리고 독창적인 문체 미학과 소설적 개성을 보여준 김유진, 김선재의 작품, 빼어난 단편 구성력과 주제의식의 수준을 보여준 이홍, 정소현의 작품과 한국소설의 현재의 흐름을 각기 다른 방향에서 주도하고 있는 이장욱, 황정은, 최제훈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심사위원들에게는 웹진에 떠 있는 이 11개의 별자리를 바라보는 것 자체가 가슴 벅찬 일이었다.
(/ [심사 경위] 중에서)

심사 경위 및 심사평

심사 경위


[웹진문지문학상]은 한국문학사상 최초로 웹진이라는 인터넷 공간을 통해 1년 동안 심사의 과정이 중계되고 결과가 발표되는 문학상이다. 매달 첫 주를 기준으로, 지난 3개월 내에 발표된 중단편소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을 [이달의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게재하고 그중에서 매년 2월 최종 수상작을 가려 뽑는 방식으로, 1년 내내 웹진을 통해 심사의 과정과 내용이 중계되는 초유의 문학상이다.

이 상은 등단 7년차 이하의 신진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측면에서, 각종 신인문학상을 제외한다면 현재 활동 중인 작가들 가운데 가장 젊은 세대에게 주어지는 작품상이다. 또한 [이달의 소설]에서는 신진 비평가들(강동호, 김나영, 김남혁, 백지은, 송종원, 양윤의, 조연정, 조효원)이 매달 2명씩 작품 선정에 참여하여, 심사위원의 구성에서도 최신의 문학적 흐름을 주도하는 비평적 감각을 수용하고 있다. 이런 특징은 독자적인 서버와 도메인으로 한국문학과 인터넷 공간의 접속을 시도하는 [웹진문지] 자체의 성격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제1회 [웹진문지문학상]의 최종 수상작 심사는 2010년 ‘3월의 소설(정용준-[가나])’에서 2011년 ‘1월의 소설(김선재-[독서의 취향])’에 이르기까지 모두 11편의 [이달의 소설]을 대상으로 [웹진문지] 편집위원 6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이 참여하여 지난 1월 27일~28일, 이틀에 걸쳐 1차 심사가 진행되었다. 11편의 소설들은 이미 [이달의 소설] 심사를 통해 선정되고 검증된 작품들이기 때문에 한국문학의 최전선의 에너지와 성취도를 보여주는 것들이고, 따라서 그 안에서 우열을 가린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선택에 가까운 작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사위원들은 [웹진문지문학상]의 미래와 정체성을 고려하면서, 어려운 문학적 선택을 해야만 했고, 2월 초로 이어지는 치열한 토론의 과정 끝에 이제 수상작을 선정하게 되었다.

11편의 [이달의 소설] 선정작은 등단 7년차 이하의 작품이라는 공통점에고 불구하고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었다. 힘 있는 신인의 등장을 알린 [이달의 소설] 첫번째 선정작인 정용준의 작품에서 시작하여 신인답지 않은 소설적 완성도와 서사적 이미지를 보여준 김성중, 최은미, 이유의 작품, 그리고 독창적인 문체 미학과 소설적 개성을 보여준 김유진, 김선재의 작품, 빼어난 단편 구성력과 주제의식의 수준을 보여준 이홍, 정소현의 작품과 한국소설의 현재의 흐름을 각기 다른 방향에서 주도하고 있는 이장욱, 황정은, 최제훈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심사위원들에게는 웹진에 떠있는 이 11개의 별자리를 바라보는 것 자체가 가슴 벅찬 일이었다.

6명의 심사위원이 각각 3~4편의 추천작을 선택하고, 다시 그중에서 심도 있는 토론으로 서로를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 최종 수상작으로 이장욱의 [곡란][[한국문학] 2009년 겨울호 발표, [고백의 제왕](창비, 2010) 수록]을 결정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웹진문지문학상]의 정체성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할 수 있었고, 심사위원들은 등단 7년차 이하라는 규정과 웹진을 통한 중계라는 성격에 이미 이 상의 정체성이 반영되어 있다고 보고, 철저히 ‘작품상’의 성격에 충실하고자 했다. 이장욱의 [곡란]은 생의 끝에서 만나는 삶의 아이러니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 독창적인 플롯과 문제의식의 복합성, 흥미로운 위트의 공간에 이르기까지, 지금 이곳의 한국문학이 원하는 요소들을 모두 갖춘 폭발적인 매력을 뿜어내는 작품이다. 최종 수상작과 [이달의 소설] 선정작 작가들 모두에게 깊은 경의를 표하며, 다음 시즌의 이 풍요로운 문학적 축제를 다시 기다린다.
-[웹진문지] 편집위원 및 [웹진문지문학상] 심사위원 일동

심사평 (가나다 순)

지난 1년 동안 [이달의 소설]을 선정하는 일은 즐거우면서도 매번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는 작업이었다. 한국소설의 가장 진취적이며 모험적인 시도가 그곳에 있었고, 뚜렷한 개성과 작가적 관점이 다양한 지류를 형성하며 새로운 흐름을 준비하고 있는 곳이 그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가벼운 흥분과 기대에 찬 예감이 작품을 읽고 선별하는 과정에 늘 잇따랐고, 기대가 컸던 만큼 때론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남기도 했으며, 때론 예상치 못한 반가움과 기쁨을 경험하기도 했다.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문학사에서 ‘젊음’은 통상 새로움, 신선함, 재기발랄, 독창성, 새 세대를 지칭한다. 그것이 이제 막 등장한 신인이나 신진이기에 저절로 부수되거나 부과되는 것이 아님은 자명하다. 등단년도, 생물학적 나이, 작품 활동 기간은 ‘젊음’과 하등 상관이 없다. 그보다는 이들의 작품에서 발견케 되는 날카롭고 뚜렷한 문제 제기, 그것에 천착하는 심도 깊은 의식의 추이, 고유의 서사화로 소설의 가치와 위상을 지키려는 진지한 자세와 고민이 각 작품마다 강한 설득력을 지닌 채 완미한 형태로 구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작품은 모두 ‘완숙한 치열함’에 달하고 있었다. 지난 1년간 이들에게서 읽어낸 이 ‘완숙한 치열함’이야말로 부인할 수 없는 문학적 ‘젊음’의 증표일 것이다.

후보작인 11편 중 이러한 특징을 가장 잘 보여준 작품들로 정소현의 [실수하는 인간], 최제훈의 [괴물을 위한 변명], 정용준의 [가나], 이장욱의 [곡란]에 주목하였다. [실수하는 인간]은 단편소설이 발휘할 수 있는 장르적 묘미를 잘 살린 작품으로 꼽을 수 있다. 의도된 망각 속으로 빠져드는 연쇄 살인범의 분열된 내면의식은 폭력의 발원지가 문명 그 자체이며, 그러한 폭력의 발생과 병리적 행사로부터 자유로운 이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환기시킬 뿐만 아니라 그 같은 분열의 형상을 중층화된 서사를 통해 절묘하게 통일시킨다. 최제훈의 [괴물을 위한 변명]은 한국소설에선 다소 생소한 영역인 메타소설의 가능성을 꾸준히 실험해온 이 작가의 일관된 주제의식과 시도가 집약되어 있는 작품이다. 허구의 생성은 어떻게 구조화되는지, 작가의 존재를 참과 거짓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는지를 예리하게 묻고 있다. 더불어 대중에게 이미 널리 알려진 소설을 해체하여 새롭게 재구축하는 과정은 이야기 자체로서도 매우 흥미롭다. 정용준의 [가나]는 탈국가, 탈민족 시대의 역사적 본질을 어느 가난한 외국인 노동자의 쓸쓸한 죽음을 통해 통찰하고 있다. 세계체제의 구축과 무차별적으로 동질화되는 거대 문명 세계는 죽음조차 부재하는 소외계층의 전방위적 확산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이 소설은 조용히 고발한다. 국경을 초월한 소설적 상상력의 현주소를 새롭게 가늠케 하는 작품으로서도 의의가 크다. 이장욱의 [곡란]은 죽음의 실존적 의미와 그 다양성을 조명함으로써 역으로 현재 우리 삶의 가치가 어떻게 회복 가능성을 잃고 추락하고 있는지를 되비추고 있다. 자살을 자진해서 택한 자들이 정작 다가온 죽음 앞에서 비루한 행태를 고스란히 노출하는 장면은 자유의지의 존엄성은 한낱 헛것이며, 그것이 이미 헛것이 되었을 때부터 산 자들은 모두 죽은 자, 즉 유령으로서 살아가는 자들임을 강하게 역설한다. 주제의식의 강렬함과 밀도, 그와 대비되는 무심한 어조와 희극적인 문체, 극적 긴장감의 조성과 엉뚱한 발산의 교차 등은 완성도 면에서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최종 심사 대상작 중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지만, 작품성을 가장 우선하여 평가한다는 기준에 비추어 볼때, 이장욱의 [곡란]을 최종 선정작으로 결정하는 데 흔쾌히 동의하였다. 당선자에게 진심 어린 축하의 말을 보낸다.
- 강계숙 / 문학평론가

지난 1년간 게재된 11편의 [이달의 소설]을 심사하는 작업은 당대의 젊은 한국소설이 이룬 성취와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집약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즐거움을 맛보게 해주었다.

몇 년 전에 문학의 정치성이라는 해묵은 문제가 비평의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적이 있었다. 소설들을 읽으면서 다시 이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다. 소설은 어떤 식으로든 현실에 반응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다만 현실과 대결하고 현실에 비판적으로 개입하고자 하는 소설적 시도는 최소한 다음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할 것이다. 소설의 비판적 개입은 첫째,―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절대로 진부해서는 안 되고, 둘째, ‘허구’라는 매체적 특성을 통해 더욱 빛을 발휘할 수 있는 방식이어야 한다.

소설 고유의 길 가운데 하나의 가능성은 탈현실적 상상력에서 찾아지는데, 그것은 오늘의 소설에 지배적인 양상으로 나타난다. 익사한 시체의 미학(정용준, [가나]), ‘혼령’이 깃든 여관방(이장욱, [곡란]), 머리통을 잘라내는 미용 가위(이유, [커트]), 가라앉는 항아리들의 지반 위에 세워진 도시(황정은, [옹기전]), 우연들의 기이한 끌림(정소현, [실수하는 인간]), 태아 시절의 기억(최은미, [눈을 감고 기다리렴]), 존재와 환각의 경계적 체험(김선재, [독서의 취향]). 이러한 기법들은 탈리얼리즘적인 동시에 리얼리즘적인데, 우리에게서 현실 감각과 신뢰를 빼앗아가는 21세기 현실의 부조리하고 비현실적인 운동이 그 속에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잠실 스타디움을 거대하고 기괴한 비현실로 그려내는 [나의 메인스타디움](이홍), 재개발로 헐리는 허름한 시장 바닥의 건물을 세계의 구원을 가져올 성전으로 만드는 [게발 선인장](김성중), 헤어진 남자의 집에서 함께 살면서 그와 새 여자친구의 관계를 관찰하는 여자에 관한 소설 [희미한 빛](김유진) 모두 이러한 비현실의 감각을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최제훈은 일상의 일부가 되어버린 환상성(프랑켄슈타인)의 해체를 통해, 또 다른 의미에서 현실의 비현실성을 환기한다.

나는 특히 이장욱, 최제훈, 김성중, 정소현의 소설에 주목했다. 이장욱의 [곡란]은 여관에서의 동반자살이라는 현실적 소재에서 출발하면서 반드시 죽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결코 죽음에 도달할 수 없는 인간이 죽음의 불가해성 앞에서 가지는 양가적 감정을 절묘하게 형상화한다. 최제훈의 [괴물을 위한 변명]은 문화적 통속화에 대한 예술적 저항이 얼마나 흥미로운 방식으로 전개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면서 한국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해간다. 김성중의 [게발 선인장]은 인간 삶의 의미와 무의미가 불가분의 관계로 엮여 있다는 생의 근원적 아이러니를 위트 있는 목소리와 뛰어난 서사적 구성 속에 표현해내고 있다. 정소현의 [실수하는 인간]은 세계에 의해 결정되어가는 존재로서의 인간에 관한 이야기이다. 마치 시간 논리를 거슬러서 현재가 과거를 결정하는 것과 같은 섬뜩한 반전의 순간에 소설의 전언은 빛을 발한다.
- 김태환 / 문학평론가

‘첫번째’ 웹진문지문학상 수상작을 고르는 일이었다. 게다가 각각의 작품이 모두 해당 시기에 나온 작품들 중 이미 가장 젊고 훌륭한 작품으로 인정받은 상태였다. 신중해야 했고, 또 짐작대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오랜 논의 끝에 김성중([게발 선인장]), 이장욱([곡란]), 이홍([나의 메인스타디움]), 정소현([실수하는 인간]), 정용준([가나]), 최제훈([괴물을 위한 변명])의 작품들이 물망에 올랐다. 열한 편의 작품들 중 여섯 편을 남겼으니 갈 길이 멀었지만, 그런 와중에도 개인적으로는 김유진의 [희미한 빛]과 황정은의 [옹기전]에 대한 미련을 쉽게 떨쳐버리기 힘들었다. 희미한 빛에 ‘대해’ 쓰는 것이 아니라, 문장을 (마치 회화처럼) 아예 희미한 빛이 ‘되게’ 만들려는 김유진의 실험은, 소설가 또한 시인과 마찬가지로 자의식적으로 언어를 다루는 자라는 사실을 각별히 되돌아보게 하는 데가 있었다. 황정은의 [옹기전]은 버려지는 옹기들이라는 소재로 한국적 모더니티의 파행성을 예리하게 꼬집는 소설적 장치가 돋보였다. 두 작품 다 나로서는 두고 떠나기 아까운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다른 심사위원들에게도 두고 떠나기 아까운 작품들은 있었을 것이다.

김성중의 [게발 선인장]은 신인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삶과 종교’라는 육중한 주제를 무리 없이 다룬 수작이다. 정소현의 [실수하는 인간]은 사회가 어떻게 우리를 실수하게 하고, 선한 주체를 결국엔 연쇄살인범의 지경에까지 몰고 가는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이홍의 [나의 메인스타디움]은 86아시안게임을 배경으로 한국의 근대성이 어떤 허위와 발버둥 위에 세워졌는지를 사소한 에피소드 하나로 적나라하고 차갑게 풍자한다. 정용준의 [가나]는 끔찍하게 아름다운 작품이었는데, 문체의 서정성과 다루고 있는 소재의 처절함이 묘하게 대비되면서 읽는 내내 물리적이고 육체적인 감응을 불러일으키는 재주를 부렸다. 최제훈의 [괴물을 위한 변명]은 그가 내내 해오던 문화사적 소설 쓰기, 혹은 타자들의 계보학적 탐구가 이제 완전히 물이 올랐음을 과시한다. 이미 매 시기 가장 젊고 훌륭한 작품임을 인정받았던 만큼 이 작품들 중 하나만 남기는 일에는 오랜 논의와 숙고가 필요했다.

결국 선택의 순간, 나는 이장욱의 [곡란]을 남겼다. 모두 수작이었으므로, 특별히 이 작품이 다른 작품보다 월등해서 이 작품에 표를 던진 것은 아니었다. 죽음이라는 주제를 치밀한 구성과 모호한 어조로 그려내는 재주도 남달랐지만, 그보다는 이 작품이, 3D 시대의 주체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에 대한 소설적 대응으로 읽혔기 때문이었다. [곡란]은 절대적 타자로서의 죽음에 대한 반원근법적이고 입체파적인 탐구이다. 소설이 이차원으로 이루어진 문자들의 연쇄를 넘어, 삼차원 혹은 사차원의 시공을 다룰 수 있는가? 이 첨예한 소설사적 질문을 나는 이장욱의 [곡란]에서 읽는다. 수상자에게 축하를 전한다. 그리고 지난 한 해를 빛낸 다른 열 명의 작가들에게도.
- 김형중 / 문학평론가

지난 일 년 동안 우리 소설계의 가장 앞자리에서 전위적인 상상력과 스타일로 한국문학의 새로운 탈주와 혁신을 모색한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을 한데 모아 다시 읽는 일은 무척 흥미로웠다. 물론 매달 선정 과정을 함께했고, 그 이후에도 웹진문지의 독자들과 함께 이 소설들에 꾸준한 관심을 보여왔기 때문에 더 그랬을 것이다. 아마도 2010년대의 한국문학은 이 젊은 작가들에 의해 정녕 21세기적인 소설의 새로운 길을 열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세상과 인간 읽기와 이야기 짓기의 고통을 향유하면서, 저마다의 개성과 특장을 활달하게 길어 올리는 방식들이 참으로 어지간했다. 아마도 이들이 더욱 날카로우면서도 사려 깊은 눈길과 더욱 지독한 손길로 21세기 소설 길을 열어 나간다면, 우리는 더욱 행복한 소설 읽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옹기전](황정은)과 [나의 메인스타디움](이홍)은 유년 화자의 이야기이다. 근대 이후의 개발 과정에서 속절없이 묻힌 것, 망각된 것, 무관심의 영역으로 밀린 것, 바로 그 사용가치의 이야기를 옹기의 사연을 빌어 담담하게 펼치고 있다. 주제적 관심도 의미심장하려니와 분위기를 만들어 독자로 하여금 상상과 공감의 대화로 소설에 동참하게 하는 황정은만의 스타일이 독특하다. 이홍의 아이는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고 있다. 아시안게임이 있던 해에 메인스타디움에 갈 수밖에 없었던 아이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적 일상에 삼투된 일련의 동원 체제들, 그러니까 은밀함에서 노골적인 국면에 이르기까지의 그 동원 체제들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현실의 제반 국면과 구체적 요소들을 흥미로우면서도 치밀하게 짜는 스토리텔링 방식을 잘 갖춘 작가임이 분명하다. 그런 아이들이 대학엘 갔는데도 여전히 사정이 좋지 않은 것이 지금 우리가 당면한 쓰디쓴 현실이고. [게발 선인장](김성중)은 마르크스와 성서를 함께 읽기 시작했다는 대학 초년생 시절의 성장기이다. 말씀이 토대를 구축하는 사이비 교주의 흥행과, 토대가 말씀을 구축하는 사이비 교주의 사기 행각을, 복합 렌즈로 포착하고 있다. 흥미와 가독성, 서사적 설득력을 두루 갖춘 가작이다. 성장기가 그러했으므로 상처는 깊을 수밖에 없다. [독서의 취향](김선재)은 현실과 사랑에서 두루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나인 것과 나 아닌 것(안나), 너인 것과 너 아닌 것(안네) 사이의 카오스를 그려낸 소설이다. 현실적인 것과 심리적인 것의 중층적 교호 과정이 언어의 겹에 의해 잘 형상화된 작품이다.
상처가 더 깊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 몇 가지 길이 있다. 우선 죽음을 성찰하는 메멘토모리의 상상력과 관련되는 길이 있을 수 있겠다. 과연 [실수하는 인간](정소현)에는 죽음들이 넘쳐나고 있다. 이 작가는 삶과 죽음에 필연성이 없듯이, 태어나게 함과 죽게 함 또한 필연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어처구니없는 연쇄살인범의 탄생 과정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곡란](이장욱)은 “죽음만이 삶을 전체적으로 되비추는 거울”이라면서 죽음만으로 충만한 죽음이 아니라 삶으로 회귀하는 죽음의 의미를 밝히려는 극한적인 사투 과정을 아이러니컬하게 그리고 있다. 물론 당장 답을 묘출하기 어려운 서사 질문임에 틀림없으나 우리 시대의 삶과 죽음 전체를 놓고 전면적 성찰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던 다부진 서사적 의지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죽기 아니면 이야기 만들기라는 것이다. [괴물을 위한 변명](최제훈)은 죽음보다 더 병든 것처럼 보이는 현실을 이야기로 치유하려는 문화적 의도를 보이는 소설이다. 있는 현실에서 재현할 만한 가치 있는 이야기를 발견하기 어려울 때, 이야기와 삶의 죽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문화공학적 서사 전략을 나름대로 터득한 작가답게, 프랑켄슈타인 이야기를 중층적으로 포개놓으면서 이야기 만들기와 이야기 읽기의 즐거움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비단 이야기 만들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지금, 여기에서 긴요한 윤리적 탐문의 절차 또한 합당하게 들어 있는 수작이다.
물론 각 작품별로 해당 작가에게 좀더 수고로움을 요청해야 하는 문제들도 논의된 것이 사실이다. 장단점들을 숙의하면서 우리는 난형난제라는 말을 떠올렸고, 그래도 한 편을 정해야 했기에 상대적으로 공분모가 더 많은 [곡란]을 제1회 웹진문지문학상 수상작으로 초대하자는 데 합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실상 이장욱 씨를 비롯한 열한 분 모두가 수상자이다. 수상을 축하하며, 당신들에 의한 우리들의, 새로운, 멋진, 소설 세계를 기대해본다.
- 우찬제 / 문학평론가

[이달의 소설]에 선정된 11편의 소설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지금의 한국문학이 보여줄 수 있는 문학적 가능성의 최대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11편의 소설들은 등단 7년차 이하의 작가들의 작품이라는 조건을 떠올리지 않아도, 그 신선함의 감각을 충분히 체감할 수 있다. 그 중에서 다시 어떤 작품을 수상작으로 결정한다는 것은 문학적으로 무모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제도는 존재하고, 문제는 이런 문학적 선택이 ‘제도로서의 문학성’에 어떤 균열을 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최제훈의 [괴물을 위한 변명]은 최제훈이 시도하고 있는 메타 텍스트적인 서사적 모험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혼종적 이야기 구성 능력을 따라가다 보면, 특유의 위트와 이야기의 다성악적 축제를 경험하게 된다. ‘프랑켄슈타인’의 서사를 재구성하는 방식도 흥미롭지만, 그 안에서 원작에 잠복해 있던 요소들을 전복적으로 재배치하여 다층적인 현재적인 질문을 만들어 낸다. 거기서 마주하는 것은 소설적 욕망의 어떤 심연이다. 이홍의 [나의 메인스타디움]은 매력적인 성장의 모멘트를 보여준다. 86아시안게임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한 ‘아이’의 희비극적인 성장체험은 어른들의 공허한 욕망과 유사한 구조를 닮아가는 것이지만, 이 소설의 장점은 그것을 관제적 국가축제 안에 도사린 거대한 욕망과 겹쳐서 보여주었다는 점에 있다. 마지막 순간 '메인스타디움'에 갇힌 아이가 경험하는 공포와 공허는 한 개인의 것이면서, 한 시대의 무의식을 관통한다. 정소현의 [실수하는 인간]은 실수로 태어나 실수의 연속으로 점철된 인간의 이야기다. 그 이야기 속에서 인간의 행위를 둘러싼 내적 동기의 허구성을 드러내면서 주체성의 기반을 허물어버리는 흥미로운 아이러니에 이르게 한다. 그 아이러니를 만들어내는 것은 다름 아니라 이 소설의 지극히 심드렁한 어조이다. 그 어조 때문에 주인공의 실수로 인한 살인은 소설적 임팩트를 만들어내며 삶의 동기에 대한 착란을 응시하게 한다.

수상작으로 결정된 이장욱의 [곡란]은 작가의 소설적 역량이 무서운 속도로 뻗어나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여관이라는 닫힌 공간을 배경으로 죽음을 선택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 사이의 어긋남, 사태의 진실과 훔쳐보는 관찰자 사이의 어긋남을 대비시킨다. 이 어긋남들은 죽음이라는 또 다른 환상을 둘러싼 삶의 피할 수 없는 아이러니를 대면하게 만든다. 그 착각과 오해 속에 죽음처럼 지속될 삶의 무거움을 위트로 들어 올리는 이 소설의 성취는 제1회 [웹진문지문학상]의 수상작이 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수상작뿐만 아니라, 11편의 [이달의 소설] 선정작 모두에게 한국소설의 가능성을 믿게 해준 것에 감사한다.
- 이광호 / 문학평론가

2010년 3월부터 2011년 1월까지 [이달의 소설]로 선정된 11편의 소설을 대상으로 한 ‘웹진문지문학상’ 심사는 물론 쉽게 끝날 리 없었다. 그 곤란이 좋은 소설들 중에서 가장 좋은 소설을 뽑는다는 것에서, 요컨대 ‘좋은 소설’과 ‘가장 좋은 소설’의 위계상의 차이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오해다. 매달 ‘이달의 소설’을 선정할 때도 결국 그때그때마다 가장 좋은 소설이 무엇인가를 고민했던 것이지, 그저 좋은 소설이 무엇인가를 고민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심사는, 말하자면 가장 좋은 소설들 중에서 단 한 편을 선택하는 일이었고, 그래서 과연 ‘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까지 이르러 서로 간에 밑천이 바닥난 뒤에야 가까스로 결론에 이를 수 있었다.

이장욱의 [곡란]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장소를 배경으로 한다. 그 장소가 바로 곡란 여관이다. 인터넷 자살 사이트에서 만나 자살을 결행하기로 계획한 세 사람이 해병대 출신 주인의 뜨악한 시선을 받으며 여관 문을 열고 들어선다. 그들이 자살하고 안 하고를 떠나 이미 곡란 여관에는 혼령이 떠돌고 있다. 그건 아무리 귀신 잡는 해병대 출신이라고 해도 쫓을 수 없다. 그곳은 귀신뿐 아니라 언젠가 거쳐 간, 지금은 부재하는 사람들까지 한꺼번에 등장하는 난장(亂場)의 공간이다.
곡란 여관은 왜 그런 공간이 된 것일까? 어쩌면 그 이름 때문인지도 모른다. 네온사인이 고장난 탓인지 ‘목란’이라는 이름이 ‘곡란’으로 보인다는 것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곳은 언어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공간이다. 수상한 투숙객들이 들어간 방을 도청하는 주인의 귀에 도통 의미를 알 수 없는 단어들이 띄엄띄엄 흘러든다. 그들의 대화가 해독불능인 이유는 싸구려 도청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대화 자체가 “그러니까 인생이란 게…… 코끼리는 코가 긴 짐승이지요. 코뿔소는 코에 뿔이 있는 짐승이고. 메아리는 메아리, 소리가 울리고”와 같이 끊어질 듯 이어지면서 알 수 없는 말들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자살을 위해 모인 투숙객 중에는 죽어가는 노인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 지망생이 있다. 그 소설의 주제는 “죽음만이 삶을 전체적으로 되비추는 거울이다, 죽음을 대면하지 않고는 삶에 대해 한 마디도 할 수 없다”따위로 요약될 것이었다. 그러나 돈은 떨어져 가고 소설은 끝나지 않으며, 그는 “죽음에게는 죽음만이 관심이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죽음에 대해 쓴다는 건 허망한 일이 아닌가”라는 회의에 이른다.
맞는 말이다. 일체의 언어화를 거부하는 것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까 작가 지망생은 불가능한 일을 꿈꿨던 것이고, 아마도 그 때문에 절망해서 자살을 결심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곡란]의 작가가 그 불가능한 일에 다시 도전하고 있다. [곡란]은 언어화를 거부하는 것을 언어화하기 위해 새로운(이상한, 독특한) 언어로 씌어진 소설이다. 그 점에서 가장 좋은 소설 중 단 한 편의 소설이 될 자격이 있다.
- 이수형 / 문학평론가

수상 소감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를 두 번 잃는다. 한 번은 에우리디케의 죽음으로, 다른 한 번은 하데스에서 그녀를 데리고 나오다가 뒤를 돌아보았기 때문에.
이 유명한 이야기는 나에게 글 쓰는 밤을 생각하게 만든다. 저 첫번째 상실은 글이 시작되는 곳이 아닌가. 어떤 상실과 결핍, 그리고 그리움의 시간이 시작되는 곳. 물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신을 환하고 명백하고 안전한 지상에서 빼내어 어둠 속으로 몰아넣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만날 수 없을 테니까.
그렇다면 두번째 죽음은 글이 끝나는 곳일 터이다. 나는 지상으로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뒤돌아본다. 하지만 뒤를 따라오던 그것은 아직 어둠을 빠져나오지 못한 채이다. 우매한 나는, 그것을 잃는다. 뒤돌아보았기 때문에, 그것은 내 눈앞에서 처연히 모래처럼 흩어져버린다. 이미 잃었던 사랑을, 인간의 진실을, 세계의 본모습을, 다시 잃는다.
나는 밤의 마음으로 바라본다. 나는 무엇을 한 것인가? 무엇을 쓴 것인가? 희끗 그 얼굴을 보았다고 생각했으나, 내가 본 것은 정말 무엇인가?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린 그것을 되찾을 수 없을 것 같은 느낌, 다음 글을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은 허망한 기분에 빠지는 건 그 무렵이다.
나는 가만히 중얼거린다. 응, 자신을 믿어볼 수밖에. 기다릴 수밖에. 다시 걸어갈 수밖에. 그 어둠 속으로. 두 번의 상실을 반복한다 하더라도. 이번에도 유혹을 참지 못하고 뒤돌아보겠지. 모래처럼 흩어지는 것의 얼굴을 온전히 기억해낼 수 없을 거야. 하지만 내 앞에서 사라져가는 그 캄캄한 진실들은 나를 매혹시킬 것이다. 차갑고 냉정한, 밤의 대기 속에서.
*
고맙습니다. “사물들은 어둠 속에서는 빛깔을 갖지 않는다”는 고대의 문장을 떠올립니다. 글쓰기도 사랑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합니다. 빛과 말과 조명 속에서야, 사물도 글도 사랑도 자신의 빛깔과 화사함을 얻습니다. 오늘 이 상은 제게 분에 넘치는 화사한 빛깔을 주었습니다. 게다가 첫 회라니요. 저는 잠시 그 신선한 느낌에 젖어듭니다.
하지만 다시, 빛깔을 갖기 이전의 어둠 속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캄캄한 존재로서, 무엇도 아닌 존재로서, 벽을 짚고 천천히 걸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선후배 작가들께, 독자들께, 친구들에게, 자못 명랑한 표정으로 인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장욱

목차

책 머리에

제1회 웹진문지문학상 수상작
2010 4월 이달의 소설 이장욱- [곡란]

이달의 소설

2010년

3월 정용준- [가나]
5월 최제훈- [괴물을 위한 변명]
6월 김유진- [희미한 빛]
7월 이유- [커트]
8월 김성중 - [게발선인장]
9월 황정은 - [甕器傳]
10월 이홍 -[나의 메인스타디움]
11월 정소현 - [실수하는 인간]
12월 최은미 - [눈을 감고 기다리렴]

2011년
1월 김선재 - [독서의 취향]

심사 경위
심사평

본문중에서

그런데 주인공이 죽음에 가까이 가면서 고희성은 약간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죽음에게는 죽음만이 관심이 있는 게 아닐까. 죽음은 삶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는 건 아닐까. 죽음은 죽음 자체를 밀고 나가는 힘으로만 충만한 것은 아닐까. 이상하게도 이 의문은 고희성의 머리에 접착제처럼 달라붙어 떠나지 않았다. 고희성은 중얼거렸다. 죽음에게만 관심이 있는 죽음이라니. 죽음으로만 충만한 죽음이라니. 그렇다면 죽음에 대해 쓴다는 건 허망한 일이 아닌가. 삶으로 회귀하지 않는 죽음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고희성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집요하게 달라붙는 생각에 시달리다가 텅 빈 방에서 비명을 지르곤 했다. 어느 날 밤에는 소설 속의 노인이 꿈에 나타나 고희성의 목에 노끈을 감기까지 했다. 여든이 넘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완력이었다. 고희성은 목이 졸려 컥컥대다가 퍼뜩 깨어났다. 이부자리를 걷고 일어나 거울을 보면, 정말 노끈 자국이 희미하게 보이는 듯했다. 고희성은 제 목을 어루만지면서 컴퓨터를 켰지만 단 한 글자도 써내려갈 수 없었다. 고희성은 결정적인 무엇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 이장욱, [곡란] 중에서)

하비바, 나는 당신이 좋아했던 노래가 되었다. 나는 지금 당신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있다. 나는 바람보다 가벼워졌다. 나는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는다. 국경을 넘어 마을로 향한다. 가나가 만지고 있을 초원의 풀 위로, 새 떼가 뒤덮는 하늘 위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당신의 머리 위로, 그리고 당신의 말라버린 성대 속으로. 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좋겠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 정용준, [가나] 중에서)

“제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빅터 형은 생명을 창조하겠다는 거창한 계획을 늘어놓으면서 그 동기에 대해서는 은근슬쩍 얼버무렸어요. 이상하지 않던가요? 구체적인 설명도 없고 그럴듯한 이상이나 야망도 안 보이고. 단지 ‘행복하고 뛰어난 수많은 생명체들이 나로 인해 탄생하게 될 것이다’라는 두루뭉술한 선언이 전부였죠. 뭐였을까요? 빅터 형은 막연히 신이 되고 싶었던 걸까요? ……아니에요. 형님은 말이죠, 신을 거부하고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되고자 했던 겁니다.”
(/ 최제훈, [괴물을 위한 변명] 중에서)

나는 메일함에 저장해놓은 B의 편지를 모두 지웠다. 나는 B에게 고국으로 돌아가라고 말한 것이 내가 아님을 후회했다. 이곳에서 너를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노라, 말해주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더불어, 돌아간 고국에서도 너를 받아줄 곳은 아무 데도 없다는 것을 꼭 말해주고 싶었다. 그가 나에게 하듯, 그에게 진심을 말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그가 고국에 돌아가고 나서도 나는 끝까지 진심을 말해주지 않았다. 나는 지금이야말로 침묵할 때라고 생각했다. 내가 B에게 보냈던 편지 중 그가 수신확인을 하지 않은 몇 통의 편지들을 찾아 지워버렸다. 그가 편지를 읽지 않은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입을 다물어야 했다.
(/ 김유진, [희미한 빛] 중에서)

당당하고 천진한 딸아이의 두 눈동자를 보는 순간 나는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역시 내 딸이다. 나는 죽어도 터득 못할 재미를 딸아이는 이미 알아버렸다. 어금니 사이에 단단하게 물려 있던 살얼음이 녹자 가득 고였던 눈물이 흘러내린다. 이유 없이 흘러내린 맑은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낸다. 잠시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뿜어낸다. 목구멍에 단단하게 엉켜 있던 뭉텅이가 사라졌음을 깨닫는다. 주변은 아무것도 변한 게 없지만 내 눈엔 완전 달라 보인다.
(/ 이유, [커트] 중에서)

이 모든 것이 그간 얻어먹은 밥과 할머니와의 우정이 빚어낸 강요된 공명심 때문이었다. 알량한 양심에 시달리는 나날이 이어지자 개입을 요구하는 상황에 새삼 짜증이 밀려왔다. 얹혀사는 주제에 폭력까지 휘두른 노인이 기가 막혔고 온갖 추문을 퍼뜨리는 이모가 입을 닫고 있는 것도 혐오스러웠다. 나는 이 골목에서 단 한 명, 할머니만 빛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 성녀의 저토록 무지하고 어리석은 모습을 보니 마음이 답답했다. 그들은 제자리에 붙박인 채 돌던 궤도를 이탈하지 않을 것이다. 움직여야 하는 건 나였다.
(/ 김성중, [게발선인장] 중에서)

남자는 삽을 바닥에서 뽑아내 그걸 끌며 천천히 내 주변을 돌았다.
어쨌든 옹기는 맡기고 꼬맹인 가라. 우리가 묻어주마. 우린 이 일을 어제도 했고 오늘도 했으니 내일도 할 거다. 전문가들이란 말이다. 지금이라면 아직 묻을 수 있다. 자리가 있다. 언제나 있다. 어떻게 있느냐. 지반이 가라앉는다. 옹기란 무겁잖아. 반년쯤 지나면 이전에 묻은 옹기가 가라앉아 자리가 난다. 덕분에 우린 계속 묻는다. 어제도 묻고 오늘도 묻고 내일도 묻고. 그렇게 묻어서 뭐 난리난 적 있냐. 이렇게 묻고도 세상은 멀쩡하다. 당장 어떻게 되는 일 없다.
(/ 황정은, [甕器傳] 중에서)

우와! 아이와 동생이 탄성을 질렀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아시안게임도 하고 올림픽도 한다는데, 좀팽이처럼 구닥다리 차를 타고 다닐 순 없어서, 이 아빠가 너희를 위해 근사한 차를 쫙 뽑아왔다. 어때, 마음에 들지? 차안엔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가 울렸다. 아이와 동생이 깔깔대며 박수를 치는 동안 아빠의 새 차는 잠실 메인스타디움 앞의 드넓고 황량한 8차선 도로를 질주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자란 서울이, 아이의 작고 여린 어깨 옆으로 빠르게, 너무나 빠르게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 이홍, [나의 메인스타디움] 중에서)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인터넷 기사를 검색했다. 자신을 용의자로 지목한 것이 실수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정 기사는 나오지 않았고, 용의자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짤막한 기사가 추가로 검색되었다. 하룻밤에도 그의 마음은 여러 번 바뀌었다. 자신이 한 일이 아니니 경찰서에 떳떳하게 가야겠다는 생각과 지금처럼 여인숙에 숨어 살아가면 아무도 자신을 못 찾아낼 거라는 생각이 계속 교차했다. 혼자 남아 자신이 엄마를 살해했다고 오해하고 있을 여동생을 생각하면 무고함을 증명해야 하겠지만 아직은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 정소현, [실수하는 인간] 중에서)

문밖에서 들려오는 할머니 목소리였다. 머리맡 언저리에서 엄마의 기척이 느껴졌다. 한 번도 포근하게 감긴 적 없이 매몰차게 미끄러져가던 엄마의 냄새였다. 이마의 반창고에서는 자꾸만 피가 배어나왔고 몸을 뒤척일 때마다 이불 속에서 살이 상하는 것 같은 들척지근한 비린내가 났다. 나는 이불 밑에서, 눈을 감고, 오래오래 기다렸다. 엄마가 그 방을 나갈 때까지.
(/ 최은미, [눈을 감고 기다리렴] 중에서)

비현실적인 공간과 상황이었다. 꿈속에서 꾸는 꿈처럼 아득했다. 안나는 전생에 나를 지나간 인연처럼 멀었다. 물론 나와 안나는 그런 사정과 상관없이 사랑하는 사이였다. 우리가 하나가 아닌 둘이 되는 순간은 매번 찾아왔지만, 나가 생각하기에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딱 한 번 안나는 그건 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사정에 따라 변하는 사랑은 사정을 가장한 다른 사정일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그러나 비록 지켜야 할 규칙과 질서를 거스를 힘은 없었지만 누구보다 진심을 다하는 나로서는 그 말을 인정할 수 없었다. 자신의 사랑을 의심하는 안나에게 섭섭하기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가 안나를 사랑하는 건 진심이었다. 나는 사정에 따라 달라지는 사정이 사랑과는 상관없음을 안나가 이해하리라 믿었다. 진심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 김선재, [독서의 취향] 중에서)

지난 40여 년 동안, 한국문학의 전통과 전위 및 인문지성의 요람으로 튼실히 역할해온 문학과지성사가 온라인 공간에서의 소통 가능성을 모색하는 한편 변화된 문화 환경에서 문지의 스펙트럼을 좀더 넓은 공간으로 개방하기 위해 기획된 문화웹진 [웹진문지]. 2010년 초봄에 선보인 [웹진문지]가 지난 1년의 성취 가운데 가장 빛나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1년간 매달 이어지는 열띤 지상 중계를 통해 한국문학의 젊은 목소리를 응원했던 [웹진문지―이달의 소설]이 드디어 제1회 웹진문지문학상 수상작을 발표하게 된 것이다.

[웹진문지]는 문지의 정체성과 인문학적 성취를 보다 많은 대중독자들과 나누고자 하는, 문지의 가장 실험적이고 열린 공간이자 새 얼굴이고 힘 있는 실천이며 소설을 중심으로 한 특정 문학 장르의 발표 지면으로서의 제한된 역할을 넘어서, 다양한 문화 매체의 언어들과 인문 담론들이 서로에게 길을 트고 서로의 언어들을 안으로부터 변화시키는 융합의 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앞으로도 우리는 이 융합의 자리에서 전위의 언어들이 대중의 감각과 만나는 장면을 보게 될 것이며, 성찰적 지성이 생활세계의 실감들과 접속하는 장면을 만날 것이다. 이 공간에서 장르와 매체의 위계와 경계는 사라지고, 인간과 문화에 대한 모든 언어들은 자기 내부로 향하는 말이 아니라, 웹 공간에서의 익명의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또 다른 생성의 언어들이 될 것이다. 문학과 인문학의 창의적인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기 위해서, 이 공간은 지금 여기의 웹 사용자들을 향해 무한대로 열려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

한국문학의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호흡과 언어를 발굴하고 이를 웹진의 문학 독자와 나누기 위해 [웹진문지문학상]―이달의 소설―을 예심과 결심을 거쳐 심사하고 선정하여 매달 1일에 [웹진문지]의 새 창에 소개해오고 있다. [웹진문지]의 편집위원과 신진 비평가들로 구성되는 선정위원들이 등단 7년차 이하의 젊은 작가의 중단편 중에서 그 계절의 개성적이고 문제적인 작품을 선정하여 인터뷰와 선정의 말 등을 통해 소개하는 공간으로, 매달 선정된 작품 가운데 매년 초 단 한 편의 최종 수상작을 선정하여 [웹진문지문학상]을 시상한다. 한국문학의 최전선의 에너지를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뜨거운 자리이기도 한 것이다. 그 첫 영광의 얼굴은 작가 이장욱의 [곡란]이다.
(/ [책머리에] 중에서)

저자소개

이장욱(Lee, Jang-wook)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68~
출생지 서울
출간도서 32종
판매수 13,446권

2005년 제3회 문학수첩작가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고백의 제왕』 『기린이 아닌 모든 것』, 장편소설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 『천국보다 낯선』 등이 있다. 문지문학상, 김유정문학상, 제1회, 제2회, 제4회, 제6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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