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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섬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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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전상국
  • 출판사 : 민음사
  • 발행 : 2011년 05월 27일
  • 쪽수 : 292
  • ISBN : 9788937483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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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전쟁과 분단의 뼈아픈 역사를 전혀 새로운 젊은 감각과
    현재진행형의 생생한 언어로 그려 내다
    불통의 상처에서 소통의 치유로 다가서는 이야기의 향연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이야기꾼 중 하나인 작가 전상국의 신작 소설집 [남이섬]이 나왔다. [온 생애의 한순간] 이후 6년 만에 펴낸 소설집 [남이섬]에는 두 편의 중편과 세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이 책은 등단한 지 49년째를 맞이한 작가의 통산 열 번째 소설집이라 그 의미가 사뭇 남다르다. 전상국은 [작가의 말]에서 “[남이섬], [지뢰밭] 등을 통해 뒤늦게나마 내 본래의 관심사 언저리에 “돌아와 거울 앞에 선” 것만으로도 큰 얻음이”라고 고백하며 “나름의 소설 미학 찾기에 힘을 들였다.”고 밝혔다.
    또한 “[아베의 가족]의 비극을 겨레와 더불어 앓았던 작가답게 전쟁과 분단으로 인해 받아야 했던 상처의 이야기와, 그 상처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치유하려는 서사 기획은 전상국에게 언제나 진행형”이라고 말한 문학평론가 우찬제는 “20세기의 고단한 역정과 맥락을 헤아리면서 불통의 상처에서 소통의 치유로 나가려는 서사적 수고를 아끼지 않은 대표적 작가”라고 지적하며, [남이섬]이 “한국 문학의 깊이를 더욱 심원한 것으로 만들고 그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고 평했다. 때로는 성찰의 언어로, 때로는 정념의 언어로, 감성의 언어들이 교감하고 삼투되면서 수사학적 상승효과를 발하는 소설집 [남이섬]은 파토스와 로고스가 농밀하게 교호하는 단편 미학의 절정을 빚어낸 최고의 소설집으로 우리에게 기억될 것이다.

    오랫동안 인간 내면의 선과 악을 천착하며 미학적 울림을 이끌어 낸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 “돌아와 거울 앞에” 서다

    21세기 이후 전상국의 소설 작업은 사람과 사람, 혹은 사람과 자연 사이의 허물없는 소통 가능성을 탐문하는 데 집중된다. 그 과정에서 세상과 인간을 성찰하는 작가의 원숙한 시선과 생철학을 느낄 수 있다. 실험적인 젊은 탈주의 감각만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삶의 심연이 작가의 철학적 깊이와 혜안을 통해 이야기의 향연으로 완성된 것이다.
    이번 소설집 [남이섬]을 관통하는 작가의 서사적 질문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고통스러운 역사에서 비롯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인간 개개인의 노력은 어떻게 전개되어야 하는가? 상처의 역사성과 개인성의 복합적 소통 문제로, 한국전쟁과 관련된 [지뢰밭], [남이섬], [드라마 게임] 등에서 던지는 공통 질문이다. 둘째, 진실의 소통은 가능한가? [춘심이 발동하야]에서 관심을 집중한 질문으로, 실제의 삶과 허구적 삶, 즉 인생과 소설 양면에 걸친 진실의 소통 방식과 근원적으로 관련된다. 셋째, 인생의 허망함 혹은 허무는 초극 가능한 것인가? 또는 그것을 초극하거나 견디게 하는 윤리는 무엇인가? 이는 [남이섬]에서도 중층적으로 제기되며, [꾀꼬리 편지]에서 보다 인상적으로 펼쳐진다.
    중편 [남이섬]은 한국전쟁 당시 남이섬을 무대로 한 격동 속에서 극적으로 목숨을 건진 두 인물 김덕만과 이상호를 통해 역사적 상처를 견디며 치유하는 하나의 환각적 방식과, 치유되지 못한 실존적 상처가 과도하게 덧났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비극적 단면을 겹의 이야기로 보여 준다. 한국전쟁 당시의 죽임과 죽음의 상처가 인상적으로 각인된 소설이 [남이섬]이라면, 살아남은 자들의 그 상처에 대한 윤리를 인상적으로 강조한 작품이 중편 [지뢰밭]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마음의 지뢰밭을 거두고 교감의 지평을 넓혀, 비극적 과거를 치유하고 희망의 미래를 기획할 것을 진정성 있게 제의한다. 오랫동안 분단 시대를 체험하고 성찰한 작가 전상국이 찾은 실천선(實踐善)이요, 실천윤리의 단면이라 할 수 있다.
    단편 [드라마 게임]은 어린 시절 미군기의 폭격으로 부모를 여읜 후 평생 땅굴을 파는 두더지 인생 허선구와 양갈보란 질시와 천대를 감내하며 동생 허선구와 그 가족들을 뒷바라지한 허정임의 삶을 통해 역사적, 실존적 상처를 조망하고 치유를 시도한다.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풍속소설의 일종이기도 한 단편 [춘심이 발동하야]는 성춘양에게 전략적으로 이혼당하고 “발광 같은 춘심 발동”을 보이다가 행방이 묘연해진 안병신의 수소문담이 펼쳐진다. 이 소설에서 문제적인 것은 진실이 소통되지 않는 인간관계가 편만화되어 있음을 환기하는 대목이다. 그 어떤 것도 진실의 소통과는 무관하기에, 인물의 실종담은 곧 진실의 실종담과 겹쳐지는 것이다.
    열망하던 두 남자 초헌과 우목을 차례로 떠나보낸 한 여인의 사랑과 그리움이 아름답게 그려진 단편 [꾀꼬리 편지]는 “노년의 연애 감정을 그윽하면서도 열정적이고, 곡진하면서도 애잔한 파동으로 넘쳐 나고, 슬프면서도 아름답고, 정서적이면서도 생태적인 파토스와 로고스가 농밀하게 교호하는 소설”이다. 문학평론가 우찬제는 “노년기의 연애 감정 혹은 그리움이나 기다림의 감수성을 이토록 섬세하고 그윽하고 아름답게 그릴 수 있을까.”라고 말하며 “오로지 은발이 성성한 노년 세대의 영혼과 감수성을 진솔하게 투사할 수 있는 시선만이 포착할 수 있는 곡진한 ‘은빛 그리움’의 세계와 그 꽉 찬 그리움을 역설적으로 비워 내는 투명한 비움의 웅숭깊은 패러독스를 보여” 준다고 상찬했다.
    이렇게 한 편 한 편 빼어난 수작으로 가득한 소설집 [남이섬]은 한국 문학이 더 이상 청년 문학에만 집중할 수 없음을 온몸으로 증명해 보인다. 또한 전쟁과 분단의 뼈아픈 역사를 전혀 새로운 젊은 감각과 현재진행형의 생생한 언어로 그려 낸 문제적 작품으로서 우리 문단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추천사

    소설집 [남이섬]은 심원한 은빛 상상력으로 빛난다. 한국전쟁과 같은 역사적 동인에 의한 상처이든, 사회적 맥락에서 불통의 현실에 의한 상처이든, 실존적인 죽음으로 인한 상처이든, 상처 받아 ‘마음의 감기’를 앓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섬세하고 너그러운 손길과 말길을 작가는 사려 깊게 보여 준다. 그러면서 상처 받은 상징적인 감기 환자들에게 치유와 소통의 감기(感起)를 부여하기 위한 넉넉한 상상의 도정을 펼친다. 그 과정에서 오랜 경륜을 바탕으로 사람살이와 세상과 자연에 대한 전면적 성찰의 감각과 깊이로 풀무질한 ‘은빛 상상력’이 돌올하게 부각된다. 한국 문학이 더 이상 청년 문학에만 집중할 수 없음을 작가 전상국은 조용하면서도 뜨거운 상징으로 웅변하고 있는 셈이다.
    - 우찬제 / 문학평론가·서강대 국문과 교수

    목차

    꾀꼬리 편지
    남이섬
    춘심이 발동하야
    지뢰밭
    드라마 게임

    작가의 말
    작품 해설
    마음의 감기와 은빛 상상력_ 우찬제(문학평론가·서강대 국문과 교수)

    본문중에서

    드디어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늙음과 죽음이 모두 없어졌다는 생각조차 없다는 절간의 말씀처럼 모든 것을 관통하여 하나 되기, 그 없음이 바로 죽음이 아니겠는가. 화살이 시위를 벗어나 과녁에 맞는 그 순간까지가 인생일 터. 화덕을 거쳐 기계 공이로 빻은 뼛가루가 이렇게 산 사람의 손가락을 통해 술술 빠져나가 바람으로 물로 사라지는 이 투명한 비움.
    우목의 가족이 돌아간 뒤 유골 함을 열고 그가 생전에 좋아하던 백합나무 밑에서부터 목련나무 숲 전체로 뼛가루를 뿌리기 시작한다. 초헌 때는 잘 몰랐는데 우목의 뼛가루는 손을 대기 어려울 정도로 뜨겁다.
    뼛가루에 아직 머물고 있는 우목의 온기, 화덕의 열기가 아직 식지 않고 있는 것이겠지만 이 순간 이 열기가 우목의 마지막 몸이며 마음이라는 감회에 젖는다. 산행 때 오르막길에서 이따금 부축해 주던 그 손길의 온기가 아닌,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인 우목의 몸과 마음 전부를 온전히 만지는 뜨거움이다. 아직 이승에 발을 끌고 있는 자의 이 더러운 미련. 허리를 펴는 순간 나는 가벼운 어지럼증으로 이마를 짚는다.
    샘물이 솟아나듯 생명이 태어나는 것 막을 수 없고 구름이 흩어지듯 허무로 돌아가는 것 막을 수 없나니. 지금 복사골 계곡을 졸졸거리는 저 물과 수천 년 전 흘러갔던 그 물이 무엇이 다르겠는가. 먼저 간 초헌은 어디 있고 지금 뼛가루로 흩어지는 우목은 또 어디에 머물 것인가. 말을 떠나 있는 이 지극한 슬픔도 슬픔을 지닌 사람이 사라지기도 전에 이미 잊힐 터. 슬픔 중 가장 큰 슬픔이 마음이 죽는 일이라 했던가. 우목의 뼛가루가 손가락에서 다 빠져나가자 생전의 그 형체가 기억에서 아득히 멀다.
    (' 꾀꼬리 편지' 중에서/ pp.37∼38)

    1950년대의 남이섬은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도피처요, 유토피아였을 것이다. 아버지의 땀이 밴 남이섬의 농사터를 다시 찾아 나룻배를 띄운 이상호 씨나 상점의 물건을 배달하기 위해 잠깐씩 섬에 들르는 김덕만 씨도, 끝까지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는 나미에게도 그 섬은 세계와의 단절이며 자기 찾기의 유일한 공간이었을 터. 갇힘으로써 열리는 욕구 분출의 해방구. 그 속에서 벌거벗은 몸으로 행위 예술을 한 그네들이야말로 그 시대의 아티스트.
    그네들을 만나기 위해 1950년대로 가는 타임머신에 오른다. 정확히 57년 전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남이섬을 오가는 유람선을 타기 위해 줄을 선 동남아시아 관광객들의 표정이 밝다. 일본 여행객들이 줄어든 대신 중국이나 대만, 태국 등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내국인들보다 많다고 했다. 여러 나라 말이 뒤섞여 왕왕거리는 나미공화국 전용 유람선이야말로 시공을 넘나드는 환상 연출에 그만이다.

    메타세쿼이아와 은행나무 등 정연하게 뻗은 조림 길을 모두 지우고 밤나무와 버드나무 우거진 거친 숲을 만든다. 갈대와 부들이 무성한 수변을 위해 그 갈대숲이 있던 자리의 펜션과 호텔 건물도 모두 지워야 한다. 섬 한가운데 드넓은 밭이 있고 그 한쪽에 두어 개의 오두막집이 보인다. 꿩 두어 마리가 까무러치는 소리를 내며 숲에 내리꽂힌다.
    그 웃음소리다. 상호는 그 웃음소리를 못 들은 척 감자밭에서 김매기를 한다. 이제 자갈돌이 몇 개 날아올 것이다. 어느 날은 이제 겨우 씨가 앉기 시작한 감자 몇 포기가 뽑힌 걸 발견한다. 허리 높이만큼 자란 옥수수가 여러 대 꺾이는 수도 있다. 하루는 수확을 앞둔 팔뚝만 한 마가 수십 개 뽑혀 그 중동이 모두 부러져 있었다. 나미가 그런 장난을 벌일 때마다 상호는 몸 한구석이 불끈불끈 솟아오른다. 그는 호미를 집어던지고 나미의 행방을 찾기 시작한다. 그네는 갈대숲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이다. 물속에 있을 때는 대부분 벌거벗은 몸이다.
    갈대밭이나 물속에 있는 나미를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상호 역시 나미를 애써 잡으려 하지 않는다. 술래잡기하듯 할금거리며 도망치는 나미를 몇 번 잡아 본 적도 있었다. 상호에게 잡힌 나미는 도망치던 모습의 그네가 아니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온몸을 와들와들 떤다. 때로는 고함을 내지르며 살쾡이처럼 암팡진 얼굴을 한다. 그 표정만 보고도 그것이 분명한 거부 의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네가 스스로 곁에 다가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네는 대충 한 달에 한 번쯤 높은 웃음소리를 내며 주변을 맴돌았다. 그 기척을 모른 척 무시하고 있으면 그네 스스로 곁에 다가온다. 그리고 더 기다려야 한다. 섣불리 나섰다가는 그네의 웃음 걷힌 서늘한 눈길과 마주친다. 그러다 어느 날 그네가 그의 손을 잡아끈다. 갈대밭 아니면 물속이다. 갈대와 물이 그네들의 몸을 한데 섞어 어루만진다. 아주 잠깐 그 열락의 시간을 위해 상호는 한 달을 그렇게 기다린다.
    (' 남이섬' 중에서/ pp.78∼80)

    일흔다섯, 비록 그 목소리에 회한이 짙게 배어 있긴 해도 그 부리부리한 눈은 뭔가 큰일이라도 칠 것 같은 총기로 빛났다.
    “저도 정년으로 학교를 떠날 때만 해도 잘 몰랐는데 요즘 와서 제가 지금 어디를 어떤 모습으로 걸어가고 있는지, 저를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바로 그겁네다. 그러나 내 경우는 그게 좀 심하다 싶은 거야요. 여북하면 정신과 병원을 찾아가지 않았겠습네까. 그게 바로 우울증이라는 거야요. 병이 더 깊어지기 전에 스스로 한번 노력해 보는 것도 좋다고 하데요.”
    그 사람의 얘기가 본론을 건너뛰어 어떤 핵심에 이르고 있다는 느낌. 모르는 척 먼 산을 바라보는 것도 도리가 아닐 터.
    “그동안 마음속 지뢰밭 때문에 마음고생이 크셨다는 거 잘 알겠습니다.”
    그 사람은 입에 대려던 술잔을 그대로 내려놓으며 내 눈에 자기 눈을 맞췄다.
    “지뢰밭이라고 하셨습네까?”
    굳이 에두를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저 역시 그때 일로 해서 항상 마음이 꺼림했다 그 말씀입니다.”
    육이오 때 형의 실종으로 인해 우리 가족들이 겪은 마음고생이 만만치 않았다. 큰손자에 대한 할머니의 맹목적인 사랑과 달리 아버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형의 실종에 대해 쉬쉬 감추는 쪽을 택했다. 형이 학도병으로 나갔을 것이란 추측과 달리 어느 날 형의 부재가 우리 식구들 얼굴에 그늘을 지우기 시작했다. 형이 실종된 지 꽤 오랜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정보기관 사람들이 우리 집을 몇 번 찾아오면서부터였다. 야가, 북쪽에 살아 있을는지도 몰라. 아버지가 어머니한테 귓속말하는 것을 엿들었다. 간첩 얘기가 나오기만 해도 아버지는 기겁을 해 라디오를 껐다. 내가 사범 학교에 입학을 할 때도, 졸업을 하고 선생으로 임용될 때도 신원 조회 문제가 늘 매끄럽지 않았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저는 고향에 갈 생각만 해도 늘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점염된 것일까. 지금까지 남들한테 하지 못한 이야기를 주절주절 꺼내고 싶은 충동이었다. 며느리의 수태 소식이 있기 전만 해도 고향 찾는 발길이 그렇게 무거웠다는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 마음에 죄진 것이 있다면 이참에 다 털어 버리고 싶은 그런 심정이었다.
    “57년 전 마을에서 있었던 그 일들이 나이가 들수록 왜 새록새록 떠오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린 나이라 그때 뭔가를 잘못하지도 않았을 건데 말이지요.”
    “장 선생님, 왜 잘못하신 게 없다고 하십네까. ㅎㅎ, 그 현장에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죄가 되는지 그걸 모르시는 거야요?”
    “그때 그 현장에서 본 걸 얘기하지 않고 산 죄를 말씀하시는군요.”
    “말씀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거야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그 얘기라 그겁네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지뢰 표지를 무시하고 선을 넘었다가 목숨을 잃었던가. 목숨까지는 건졌다 해도 평생을 마음의 불구로 구차스레 산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문제는 지뢰가 있다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겨우 그 표시만 내걸 뿐 그것을 제거할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제 지뢰는 이 땅에서 어떤 금기를 위한 세뇌용 상징으로 존재한다. 지뢰 표지 하나 걸어 놓고 수십 년간 이 땅을 으스스한 금기 구역으로 갈라놓은 것이다.
    문제는 내 안에 더 많았을 것이다. 벌써 오래전에 내 마음속에서 제거했어야 할 지뢰였다. 안에 지니고 있으면 그게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걸 털어 버릴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되도록 지뢰밭을 멀리하며 산 일이 죄라면 죄일 수도 있다.
    지뢰는 숨 쉬고 있다. 그것이 살아 있기 때문에 더 무서웠다.
    (' 지뢰밭' 중에서/ pp.207∼209)

    저자소개

    생년월일 1940.03.24~
    출생지 강원도 홍천
    출간도서 30종
    판매수 9,830권

    196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이후 ‘분단’과 ‘전쟁’이 낳은 상처와 그 치유에 대한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현재 김유정 문학촌 촌장이다. 대표작 [아베의 가족] [남이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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