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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귀신 [양장]

원제 : 看得見的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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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폭력과 죽음을 뚫고 호쾌하게 날아오른다!”
    알레고리와 번뜩이는 환상의 21세기 요재지이

    남자와 여자, 중국 대륙과 타이완 섬, 과거와 현재, 환상과 실재…
    이 모든 상극적 질서를 초월해 날아오르는 여자귀신들

    “여자귀신들은 평범한 여성이 할 수 없는 엄청난 복수를 감행한다.
    하지만 사실 이 소설의 중심은 복수를 마친 이들이 어떻게 자유를 찾아가느냐 하는 데 있다.
    이들 여자귀신 다섯은 모두 어둠의 극치를 경험하고 나서 새로운 출구를 찾게 된다.”
    - 리앙


    문학동네가 4월 28일에서 4월 30일까지 인천문화재단 주최 ‘제2회 AALA(아시아/아프리카/라틴)문학포럼’의 초청작가로 한국을 찾는 타이완의 여류소설가 리앙李昻의 [눈에 보이는 귀신看得見的鬼]을 출간했다. 현재 타이완 문단에서 부동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의 2004년 발표작이다.

    지난 30년간 그녀는 정치체제에 대한 저항과 우상파괴적이고 과감한 성적 묘사로 매번 큰 논란을 일으켰고 그 탓에 온갖 시비와 비난에 시달렸던 작가다. 특히 제1회 [연합보聯合報] 소설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남편을 죽이다殺夫](2003)는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백정에게 팔려가 성 노리개로 유린당하다 끝내 남편을 죽이게 된다는 내용의 소설이 발표되자 온갖 비난이 쏟아졌고 적잖은 문학계 인사들이 이에 가세했다. 심지어 일부 독자들은 생리대나 팬티를 보내어 작가에게 모욕감을 주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작품성을 인정받아 일본어, 영어, 프랑스어, 스웨덴어 등 10개 언어로 번역되고, [아주주간]이 선정한 ‘100대 중국문학’에도 선정되어 그 명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이 작품은 1991년 한국에서도 [살부]란 제목으로 출간된 바 있다).

    이번에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눈에 보이는 귀신]은 작가 스스로 “빛에서 어둠으로 나아가는 단초”가 됐다고 밝힌 바 있는 작품이다. 이 장편소설에는 여자귀신이 펼치는 다섯 편의 모험담이 실려 있다. 이 다섯 편의 이야기는 각기 독립성을 지니면서도 묘한 내적 연관성을 지닌다. 예를 들면, 1장에 나오는 ‘월진/월주’는 죽은 뒤 소금더미에 갇혀 오랜 세월을 지내다 일제 강점기에 깨어나 타이완이 파괴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불견천’과 거기에 살고 있는 귀신인 ‘월현/월홍’의 운명을 걱정한다(본문 34쪽). 처음 이 대목을 접한 독자는 어리둥절하고 무슨 소린가 의아해진다. 하지만 그 의문은 3장에서 저절로 풀린다. 이런 식으로 독립성은 지닌 이야기가 작은 실마리로 서로 연결돼 큰 이야기가 되도록 구성한 것이 이 작품의 특징이다.

    다섯 편의 귀신 이야기는 동, 북, 중, 남, 서의 순서로 되어 있는데, 일반적으로 익숙한 동서남북 순서를 취하지 않은 것은 작가의 의도에 따른 것이다. 동쪽에서 시작해 서쪽으로 종결되는 구조는 처음과 끝이 없는 무궁한 순환의 역사를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작가는 소설에 나오는 여자귀신을 한 가지 이름이 아닌 ‘월진/월주’([나라의 동쪽-정번파의 귀신]의 주인공)나 ‘월현/월홍’([나라의 서쪽-여행하는 귀신]의 주인공)같이 두 가지 이름을 병렬 표기해 지칭함으로써, 이들이 특수한 개인을 넘어선 여성 일반을 가리키는 복수적인 존재임을 드러낸다. 그러면서 중국이란 거대한 제국의 주변부 타이완 섬의 운명과, 그 주변부의 주변부에 해당하는 여성계층의 역사적 운명을 환상적인 이야기체로 그려서 보여준다. 여자귀신들이 저마다 품은 사연들은 그대로 타이완의 역사가 되고 여성의 역사가 되고, 타이완의 정체성과 여성의 미래를 질문하는 밑바탕이 된다.

    몇 년 사이, 한국 문단에도 중국어권 주요 작가들이 속속 번역되어 널리 읽혔다. 하지만 타이완 작가는 열외의 대상이었다. 생각해보면, 타이완 근대사는 우리 한국 근대사와 여러모로 비슷하다. 민주화 시기뿐 아니라 군부독재의 암흑기를 거친 것도, 산업화를 추진해 단기간에 물적 성장을 이룬 것도 참 닮았다. 게다가 정서적이고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홍콩과 더불어 타이완이,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영향이 드리워진 중국 대륙보다 한층 더 우리에게 친근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상하리만치 타이완 문학을 등한시해왔던 게 사실이다. 리앙의 [눈에 보이는 귀신]은 이런 풍토를 쇄신할 만한 훌륭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던 타이완의 독특한 성질과 아름다운 풍속이 선연하게 드러나 있다. 작가는 귀신들의 우화적인 모험을 통해 해묵은 양안 문제의 역사적 연원과 본질을 이야기하고, 그 너머에 있는 자율적인 인간(이는 억압의 상태에 처한 모든 인간으로 확장할 수 있는 대표성을 지닌 존재)의 존재와 그를 구속하는 억압을 말한다. 그럼으로써 작가는 ‘정치政治’와 ‘성性’이란 이중의 질곡을 어떻게 풀 것인지 파고들어, 어둠을 뚫고 저편의 ‘출구’로 나선다.
    줄거리
    1557년, 포르투갈 선원들이 타이완 해협을 지나다가 우연히 이 섬을 발견하고는 탄성을 내뱉었다. “Illa Formosa!”(봐라! 아름다운 섬이다.) 이리하여 ‘포르모자’가 이 섬을 통칭하는 이름이 되었다. 그러나 작가가 그려 보인 타이완 섬의 이야기는 아름답다기보다 비극적이고 끔찍하고 참혹하다. “귀신들의 나라에는 영토는 없고 귀신들의 울음소리만 음산하다”는 그녀의 말처럼 암울하기 그지없다. 이 귀신들은 과거부터 전해지는 전설로, 현재의 환상으로 타이완 곳곳에 출몰한다.
    이 소설의 배경은 ‘루청鹿城’이라는 가상의 항구도시이다. 이 ‘루청’은 작가의 고향인 ‘루강鹿港’에서 빌려온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속에서 ‘루청’이란 도시는 한때 중국 대륙과 활발한 상업 교류로 번화했던 항구였지만 모래가 쌓이며 수심이 낮아지고 암초에 가로막혀 결국 퇴락해 작은 배가 오가는 곳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루청은 한때의 영화를 간직하고 몰락의 길을 걷는 타이완 섬의 축소판이다. 소설은 이 루청 항구를 중심으로 각 방위의 다섯 여자귀신들 사연을 이야기해주는 것으로 진행된다.

    1장 [나라의 동쪽-정번파의 귀신]
    여자귀신 ‘월진/월주’는 원래 만춘루라는 유곽에 팔려갔던 창녀다. 그녀는 자신의 땅을 되찾으려다 ‘홍모번’ ‘생번’ ‘한인’ 사이의 반목을 조장했다는 혐의를 받고 고문을 당하고 처형되어 억울하게 죽는다. 관원들은 그녀를 발가벗겨 알몸으로 산길 초입에 내다버린다. 그곳을 지나던 사람들이 뿌린 소금으로 그녀는 점점 두꺼운 소금더미에 갇혀 기나긴 세월을 보내게 된다. 그렇게 몸을 숨기다 깨어난 그녀는 어느 날 타이완을 휩쓴 도박 열풍에 휘말려 뜻밖의 숭배를 받는다. 그러나 그 숭배의 과정은 우스꽝스럽고 처참하며 역설적이다. 이 이야기의 서술과 묘사는 극한을 달린다. 고문을 묘사하는 대목은 전근대 형벌의 잔혹성을 여실히 보여줄 만큼 끔찍하고 처참하다. 하지만 여자귀신이 소금더미 속에서 자신의 발을 보려 애쓰는 환상은 폭소를 자아낸다. 작가는 이렇게 이질적인 감정들을 절묘하게 한데 뒤섞는다. 특히 그녀의 몸에 뚫린 상처의 숫자로 복권당첨 번호를 알아맞히는 도박꾼들의 열정은 과거는 돌보지 않으면서 이윤만 쫓는 어리석은 현대인의 어이없는 초상에 대한 기막힌 풍자이다.

    2장 [나라의 북쪽-대나무의 귀신]
    두번째 귀신은 건륭 ? 가경 연간에 애를 낳다 죽은 여자귀신이다. 한몸에 두 목숨이 달려 있다 하여, ‘일시이명一屍二命’으로 불리는 귀신이다. 그녀는 중국 남부의 탕산에서 자신을 넘어뜨려 죽이고 도망친 한의사를 쫓아 타이완까지 온다. ‘한약자선’으로 불릴 만큼 의술이 뛰어난 한의사는 타이완에 오자마자 생계유지 목적으로 젓가락 공장을 열어 쏠쏠한 재미를 맛본다. 속이 빈 대나무들을 잔뜩 쌓아두고 사람들도 여럿 고용해 공장을 점점 키울 정도로 사업은 튼튼히 자리를 잡는다. 하지만 어느 날부턴가 젓가락 재료로 쌓아둔 대나무더미 위에 여자 하나가 서 있는 모습이 목격된다. 급기야 이상한 소리도 들려오기 시작한다. 여자귀신이 대나무를 불어댄 것이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하나둘 젓가락 공장을 떠나버리고 아무도 그 집을 찾지 않게 된다. 사람들은 계동에 빙의한 그녀의 억울한 사연을 전해 듣고, 왕야의 힘을 빌려 초도 의식위령 의식을 거행하여 그 억울한 원한을 풀어준다. 그리고 왕야는 최후판결에서 ‘한약자선’의 아내가 ‘일시이명’의 아기를 낳을 것이라고 예언하는데, 실제로 이듬해 한의사의 아내는 아기를 낳았고, 이후 ‘한약자선’의 의원은 크게 번창한다.

    3장 [나라의 중심-불견천의 귀신]
    세번째 여자귀신 ‘월홍/월현’은 ‘월선’이라고도 불린다. 그래서 시종 그녀의 이름은 ‘월홍/월현(선)’으로 지칭된다. 그녀는 하늘을 볼 수 없는 귀신이며, 섬 최고의 번화가였던 우푸로 상점들 지붕 위에 설치한 덮개지붕 ‘불견천不見天’에 산다. 불견천은 ‘구강풍’이라 불리는 세찬 비바람과 뜨거운 열대의 햇볕을 막기 위해 설치한 섬나라 특유의 덮개지붕이다. 그녀는 살아생전 ‘성창행’이란 비단 가게를 운영하는 서향세가의 규수로 뛰어난 글 솜씨를 자랑하던 재원이었다. 그러나 서문경 같은 어느 건달 놈의 꾐에 넘어가 불명예를 뒤집어쓰고 집 안 우물에 몸을 던져 자결을 해 귀신이 되었다. 그녀는 귀신이 된 뒤, 갈 곳이 없어 전전하다 옛날 부모님이 점포를 운영하던 우푸로의 불견천에 거처를 틀게 된다. 그리고 마죽과 가는 월도 가지를 붓 삼아 명청대에서 일제 강점기까지 300여 년의 역사를 핏물로 아로새긴 뒤 일제의 침략으로 철거되는 불견천과 운명을 같이한다. 오랜 역사를 거치며 이런저런 민란으로 붕괴 위기에 직면한 불견천을 구해내는 장면은 한 편의 활극을 보는 듯 박진감 넘친다. 하늘로 날아올라 불화살을 막고 우푸로를 구하는 과거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끝내 굴복하게 되는 최후까지, 불견천의 귀신은 이 소용돌이 속에서 여성이 어떤 역할을 했고 어떻게 투쟁했는지 뛰어난 우의로 펼쳐 보인다. 이 3장의 활달한 서사는 5장의 자기반영적이고 세련된 서사 기법과 더불어 독자에게 읽는 재미를 더해주는 백미라 할 수 있다.

    4장 [나라의 남쪽-임투 숲의 귀신]
    네번째 귀신 이야기는 타이완에 널리 알려진 민간전설을 크게 가공하지 않고 선보인 것이다. 작가 리앙은 타이완 곳곳에서 전승되는 다양한 귀신 전설을 많이 채집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들은 그리 입체적이지 않았고 소설로 각색하기엔 어딘지 모자랐다고 한다. 그래서 전래 귀신담에 나름의 상상을 더해 새로운 귀신 판타지를 창조하게 됐다는 것이다. 4장에 수록된 이 ‘임투 숲의 귀신’은 그와 같이 작가의 개입이 거의 없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임투나무는 타이완 남부에 자생하면서 해안지대를 폭넓게 뒤덮고 있는 타이완 특유의 나무이다. 이들이 어떻게 해안지대에 숲을 이루게 됐는가를 전하며, 작가는 타이완의 정체성과 운명을 조심스레 되묻는다. 강간을 당하고 임투나무 숲에 들어가 자진을 한 순간 가랑이 사이에서 핏덩이 하나가 떨어졌다는 전설……. 그 뒤 귀신이 된 그녀는 ‘임투 언니’로 불리며 갈라졌던 숲들을 하나로 이어주었다는 이야기…….

    5장 [나라의 서쪽-여행하는 귀신]
    이 마지막 장은 작가의 역량이 드러나는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이 5장은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으며, 이 두 부분은 반복과 변주를 거듭하며 거울처럼 서로를 비춘다. 2001년 잡지 [자유시보]에 중편 [여행하는 귀신]을 게재하면서 [눈에 보이는 귀신]이 비롯됐다고 했듯이, 이 이야기는 귀신 역작의 모판 같은 것으로 서사 자체가 애니메이션처럼 아기자기하고 환상적이다. 1부는 복수 이야기, 2부는 복수 이후의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1부 복수. 여행하는 귀신은 루청 외곽 서쪽에 수백 년을 산 여자귀신이다. ‘월항/월아’로 불리는 그녀는 루청의 부유한 장인 집안에서 태어나, 중국 남부 푸젠성 탕산의 취안저우에서 타이완으로 건너온 빈털터리 남자인 ‘가성/가충’과 혼인하여 점포를 운영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그녀는 그 부유한 재산을 노린 남편 ‘가성/가충’의 손에 무참히 살해되어 귀신이 되고 만다. 억울한 그녀는 환생도 거부한 채 이승을 떠돌며 남편에게 복수할 다짐을 한다. 그녀는 어렵사리 지관의 도움을 받아 ‘검정 우산’ 속에 몸을 숨겨 탕산으로 건너간다. 그리고 결국 소원을 이룬다. 하지만 그 복수는 자신의 얼굴을 도끼로 내리찍은 것과 똑같은 형태의 복수가 아니었다. 그런 식의 무참한 보복은커녕, 남편을 재회하고 오히려 여자귀신은 심적으로 크게 갈등하고 동요한다. 혹시 남편이 자신을 죽인 것은 실수 아니었을까 하고. 한참동안 그 감정에 휩싸여 상대를 품으려 한다. 하지만 죄를 덮으려 다시 아내를 죽이려 하는 ‘가성/가충’의 살의를 느끼고, 그녀는 살해됐을 때의 흉한 몰골을 드러내어 그를 놀래어 죽게 한다. 그녀는 복수를 이루었고, 소문은 탕산과 루청에 널리 퍼져 전설이 된다.

    2부 복수 이후. 자신을 죽인 남편에게 복수한 ‘월항/월아’는 계속 환생을 거부하고 이승에 남아 있다. 하지만 그녀가 원한을 풀도록 도와준 지관은 이제 저승으로 떠나라고 권유한다. 그러나 그녀는 지관의 양귀養鬼가 되어 은혜를 갚으려 한다. ‘검정 우산’ 속에서 나와 자유롭게 움직이는 법을 익힌 그녀는 루청의 해안에 자주 출몰한다. 그리고 타이완 섬과 탕산, 이렇게 양안을 오가는 범선에도 그 모습이 자주 나타난다. 그녀는 점차 원한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자유를 만끽하는 단계에 이른다. 그녀는 공중을 난다. 범선이 사라지고 새롭게 나타난 증기선을 타 보기도 한다. 그녀는 더 높디높게 하늘을 날아오른다. 그리고 하늘 높이 날아올라 커다란 새와 마주친다. 그 커다란 새의 뱃속에는 사람들이 가득 앉아 있다. 그녀는 이제 20세기의 새로운 물질문명과 마주친 것이다. 여행하는 귀신은 언젠간 저 커다란 새를 꼭 타보리라고 다짐을 한다.

    작가는 이렇게 다섯 개의 판타지를 통해 여성의 꿈을 전한다. 그 꿈은 ‘당한 만큼 갚아주자’는 일차원적 복수가 아닌, 남자와 여자, 중국 대륙과 타이완 섬, 과거와 현재, 물질과 정신 등 인간 세상을 억압하고 구속하는 모든 상극적 질서를 초월하는 것이다. 더불어 어둠을 뚫고 맞이할 새 질서를 향한 영혼의 희구임을 보여준다. 이로써 작가는 우리가 억압을 깨고 어떻게 빛의 세계를 나아갈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 이 책 말미의 부록은 작가 리앙이 2011년 4월 28일부터 4월 30일까지 인천문화재단이 주최한 ‘제2회 AALA(아시아/아프리카/라틴)문학포럼’에 초청작가로 참석하여 발표한 강연원고이다. 작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하여, 리앙과 인천문화재단의 동의를 얻어 수록하였다.

    * 리앙은 이 글에서 ‘어둠 속의 리앙’과 ‘빛의 리앙’이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형식을 빌려, 정치적 반대자로 기성 체제에 저항하는 작가이자 금기시되는 성 문제를 작품 전면에 부각시킨 문제 작가로 살아온 지난 30년간의 시간을 솔직담백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목차

    서문
    귀신들의 나라에는 영토는 없고 귀신들의 울음소리만 음산하다

    나라의 동쪽 - 정번파의 귀신
    나라의 북쪽 - 대나무의 귀신
    나라의 중심 - 불견천의 귀신
    나라의 남쪽 - 임투 숲의 귀신
    나라의 서쪽 - 여행하는 귀신

    후기

    부록
    리앙이 리앙을 인터뷰하다

    본문중에서

    “지사 나리가 유방을 절개하여 억지로 다른 부위의 살을 쑤셔 넣게 한 것은 월진/월주의 ‘객가 떠돌이’ 출신 성분을 이용하여 수치심을 더하려는 처사였다. 유방에 메워 넣은 살과 피는 월진/월주의 하반신에서 도려낸 것이었다. 치욕의 정도를 한 단계 더 높이려는 잔혹한 의도였다.
    객가 출신 여자들의 음부는 영원히 남자들이 맘대로 물건을 넣었다 뺐다 할 수 있게 해야 하기 때문에 몇 개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지사 나리의 생각이었다. 이런 생각을 분명히 드러내기 위해 지사 나리는 회자수에게 월진/월주의 하반신에 각각 열 개의 칼질을 내고 그 부분의 살과 피를 오려 유방을 쑤셔 넣은 다음, 살을 오려내 구멍이 생긴 부분을 원래의 음부처럼 만들어놓으라고 명령했다.”
    (/ p.50)

    “여자귀신은 소금더미에 갇혀 있던 혼백이 안팎으로 드나들기 시작하면 돌처럼 딱딱해진 이 몸에 난 치욕의 상처가 수백 년이 지나도 닳아 없어지지 않는 것인가 하는 걱정이 앞섰다.
    아무튼 귀신은 제 몸에 낙인처럼 새겨져 영영 지워지지 않는 치욕의 상처가, 사람들이 추적하는 목표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상처가 대대적으로 기록되고 복권의 당첨을 약속하는 표시로 쓰이리라고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2?28사건이 있은 지 30년이 채 안 되어 해외무역과 가공업으로 점차 부유해지기 시작한 섬은 광적인 황금만능의 유희와 욕망의 추구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다쟈뤄大家樂’ ‘류허차이六合彩’ 같은 지하 도박이 섬 전체에 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즐기는 전국적인 스포츠가 되었다.
    원래 산속 오솔길 어귀의 묘당에 기거하던 여자귀신은 사람들이 음묘陰廟를 찾아와 절을 올리면서 명패明牌를 요구하는 바람에, 광적인 노름의 어지러운 조류에 빠져들게 되었다.”
    (/ pp.52~53)

    “모두가 잠이 든 깊은 밤에 ‘일시이명’의 임산부는 귀신 특유의 능력을 발휘해 바람을 일으키고, 그 바람이 마당에 쌓인 대나무 속을 일일이 다 통과하게 하여 대나무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게 했다.
    쉬쉭-휘리릭-쉬쉭-휘리릭, 아직 젓가락이 되지 못해 마당에 가득 쌓인 수백 주의 대나무들이 여기저기서 요란하게 울기 시작했다. ‘일시이명’의 임산부는 묶어놓은 대나무더미 위에 안정된 자세로 앉아 손에 긴 대나무 장대를 들고 입으로 죽신에 대고 바람을 불기 시작했다. 대나무 우는 소리가 사방으로 퍼지며 끊임없이 이어졌다.”
    (/ p.100)

    “겉으로 보기에는 텅 빈 듯한 대나무 안에 강대한 미지의 힘이 들어 있는 듯했다. 수많은 전세금생前世今生과 무상한 윤회, 끝없는 억울함과 원한이, 영원히 빈 것 같아 보이고, 영원히 뭔가가 안으로 들어와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것 같아 보이는 이 대나무 안에 숨어 있는 듯했다.
    속이 텅 빈 대나무 줄기는 아주 견고하고 서로 통과할 수 없는 마디들로 가로막혀 있었다. 전생과 이생, 이생과 또 그 다음 생의 끝없는 억울함과 원한도 이 대나무 줄기처럼 각자의 마디 속에 완전히 갇혀 영원히 서로 교류하고 교체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서로간의 용서와 속죄는 영원히 불가능했다.”
    (/ p.102)

    “여자귀신은 또다른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 혼백의 몸이라 사방팔방의 모든 것들을 보고 들을 수 있었고 어떤 비밀 이야기나 소곤거리는 밀담도 전부 그녀의 눈과 귀를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과 각방의 소식을 종합하여 여자귀신은 섬에서 발생한 온갖 크고 작은 사건들에 관한 수많은 자료를 모았고, 앞으로 이를 글로 써서 보존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귀신은 글을 쓰면서 실제로 종이와 붓이 필요치 않았다. 여자귀신은 원래 자신이 붓이 되어 밤하늘을 종이 삼고 하늘과 땅을 장막삼아 이곳에서 글을 쓸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미 써놓은 글을 정말로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마음 놓고 ‘불견천’을 덮고 있는 마죽과 가는 월도月桃 가지를 가져다가 붓으로 삼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p.195)

    “마침내 마지막 밤이 되었다.
    때는 바야흐로 1934년, 일본이 타이완을 점령한지 사십 년이 되던 해였다. ‘불견천’의 철거작업은 모든 준비가 끝났다. 하늘이 희미하게 어두워지자 여자귀신은 벌써 ‘불견천’ 지붕에 나타났다.
    다시 몇 시간이 지나면 하늘이 환해지면서 철거작업이 시작될 터였다. 기왓장이 떨어지고 그 밑에 깔려 있던 월도와 마죽의 잎, 진흙 등이 제거되면 햇빛이 비쳐들게 되리라. 햇빛을 막아주던 지붕 나무판자는 더이상 볼 수 없게 되리라. 그렇게 이백여 년에 걸쳐 완성된 문자기록은 제아무리 피눈물이 얼룩진 것이라 해도 순식간에 글자 하나하나가 재로 변해버리고 말리라.”
    (/ p.237)

    “원혼을 안에 가둘 수 있는 검정 우산은 천고 이래로 줄곧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이자 의문이었다.
    유골함에서 파생된 항아리, 옹기, 단지 등에도 혼백이 몸을 숨길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정처 없이 떠돌던 혼백들은 정착할 곳이 필요했고 적어도 몸을 편안하게 쉴 곳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항아리나 옹기, 단지 등은 모두 휴대하기가 불편했고 또한 쉽게 깨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항아리나 옹기, 단지가 깨져버리면 혼백은 흩어져버리거나 적어도 몸을 쉴 곳을 잃게 된다. 우산, 특히 검은 우산만이 펴고 접는 그 사이의 시공에 무궁무진한 비밀을 간직할 수 있었다. 우산을 크게 펼칠 때면 혼백들이 쉽게 몸을 뒤집어 날아갈 수 있기 때문에 운신에 큰 구속을 받지 않았다. 또한 우산을 접으면 순식간에 혼백이 한데 모일 수 있고 몸을 덮어 보호하고 감출 수 있었다. 그래서 줄곧 혼백이 몸을 숨기기에 가장 좋은 공간이 되었던 것이다. 더구나 우산은 휴대하기가 간편하고 쉽게 망가지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여행객들이 겨드랑이에 끼고 다니는 모든 검정 우산, 여행객들이 신중하게 품안에 안고 다니는 모든 검정 우산, 심지어 뾰족한 꼭대기에 보따리를 맬 수 있는 검정 우산이 접기만 하면 그 안에 혼귀를 안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혼귀를 숨기거나 휴대할 수도 있었다.”
    (/ pp.306~307)

    “귀신은 곧 발견될 것이었다. 자신을 축소시켜 아주 작은 모래시계 속에 감추고, 시간을 계산하기 위해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모래 속에 앉아 자신의 무게로 모래의 움직임을 더욱 빠르게 하고, 이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더 빠르게 할 수 있는지 시험하고 있는 모습으로 발견될 것이었다.
    소복에 산발을 한 여자가 발견될 것이었다. 숙연한 얼굴로 가부좌를 틀고 모래 위에 단정하게 앉아 흐르는 모래를 따라 계속해서 아래로 꺼져 들어가면서도 여전히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편안한 모습으로 발견될 것이었다. 마지막 모래알을 상대로 좁은 관으로 빨려드는 거대한 압력을 다투다가 마지막 임계점에서 몸 전체를 물려 표연하게 날아갈 수 있을지 시험하는 모습이 발견될 것이었다.
    공간에 갇힌 모래알의 함몰, 언제나 그칠 줄 모르는 유실, 여자귀신은 혼계魂界의 끝없는 시간표인 흘러감과 지나감을 조롱하고 경험했다.”
    (/ p.360)

    저자소개

    생년월일 1952~
    출생지 타이완 장화현
    출간도서 5종
    판매수 252권

    1952년 대만의 중부 장화 현 루깡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스수뚜안(施淑端). 조그만 포구도시 루깡은 창작의 기본 모티프를 형성하는데, 소설에서는 대개 루청(鹿城)이라고 표현된다. 연작소설 [루청 이야기]는 이를 배경으로 다룬 대표적인 작품이다. 타이베이의 중국문화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고, 미국 오리건 주립대학교에서 연극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훗날 문학평론가가 되는 큰언니 스수(施淑), 소설가가 되는 작은언니 스수칭(施叔靑)의 영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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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년월일 1959~
    출생지 서울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서울 출생.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타이완 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학 연구공동체인 한성문화연구소漢聲文化硏究所를 운영하면서 중국 문학 및 인문 저작 번역과 문학 교류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중국에서 문화 번역 관련 사이트인 CCTSS의 고문, 『인민문학』 한국어판 총감 등의 직책을 맡고 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풍아송』 『미성숙한 국가』 『마르케스의 서재에서』 등 100여 권의 중국 저작물을 우리말로 옮겼다. 2016년 중국 신문광전총국에서 수여하는 ‘중화도서특별공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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