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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같은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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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2009년 만해문학상을 수상하며 만개한 필력을 뽐낸 작가 공선옥의 신작 장편소설 [꽃 같은 시절]이 출간되었다. 2010년 계간 [창작과비평]을 통해 네 차례에 걸쳐 연재한 작품을 단행본으로 묶었다. 우리사회가 직면한 사회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기꺼이 대결함으로써 연재 시부터 큰 호응을 얻은 이 작품은 공선옥 문학 인생의 새로운 성취로 기대를 모은다.

꽃보다 용감한 ‘언니’들이 온다
공선옥만이 쓸 수 있는 신선한 입담과 뭉클한 감동


소설은 재개발로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젊은 부부 영희와 철수가 살 곳을 찾아 시골 마을에 흘러드는 것으로 시작한다. 복사꽃 환한 빛에 반해 빈집에 우연히 들어선 영희와 철수는 꽃이 좋으면 그냥 살라며 집세도 받지 않고 낯선 이에게 선뜻 집을 빌려주는 집주인의 선의가 꿈만 같다.

“…꼭 우리집에서 살고 싶어요?”
전화로 듣기에도 목소리가 선해서 우선 마음이 놓인다.
“예, 꽃은 예쁜데 집이 외로워 보인다고, 집사람이 자꾸……”
말을 해놓고 보니 아차, 실없는 소리를 했구나 하고 마음이 졸여졌다.
“꽃이라고요? 우리집에 꽃이 있었던가앙? 하여간, 언제까지 살으실지는 몰라도 꽃이 이뿌다며는, 살으야지요 뭐.”
갑자기 눈물이 나올 뻔했다. 무슨 세상에 이런 집주인이 있나.
“집세는……”
“세는 무슨. 그쪽에서 세를 받으시야지.”
“저희가요?”
“집 지켜주잖애요.”
(/ pp.19~20)

그렇게 간신히 다시 한번 희망을 품고 시작한 시골생활이지만 이번에도 일이 이들의 뜻대로 풀리지는 않는다. 근처에 불법 쇄석공장이 들어서면서 마을이 순식간에 쇄석기 먼지와 소음으로 뒤덮인 것. 마을 사람들은 공장과 군청에 항의해보지만 힘없는 자들의 목소리는 누구도 귀기울여주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마을에 얼마 남지 않은 젊은이들은 돈을 받고 공장과 협상하겠다며 등을 돌리고, 노인들만이 남아 보금자리를 지키기 위한 외로운 싸움을 시작한다. 눈앞에 닥친 생계 걱정과 현실적인 고민들로 동참하기를 주저하던 영희는 그러나 그저 “조용히 살다 죽고 싶”(/ p.68)다는 할머니들의 지극히 소박한 바람이 무시당하는 세상에 분노를 느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부조리한 세상을 향한 분노가 거세어질수록, 마음 한편으로는 분노보다 깊은 할머니들에 대한 애정이 샘솟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꽃 같은 시절]은 근래 보기 드물게, 지금 이 순간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의 한 지점을 정면돌파한 작품이다. 우리사회 약자들의 편에 서서 다양한 사회문제들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온 공선옥은 이번 작품에서도 성실한 취재와 올곧은 고집으로 한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투쟁 현장을 거침없이 써내려간다. 하지만 이번 소설이 정말 다른 것은 ‘취재’라기보다 ‘생활’에 가까운 작품과 작가 본인의 밀착에 있다. 군데군데 코끝을 시큰하게 만드는 애틋한 문장들을 굽이돌아 결말에서 맞닥뜨리는 가슴 찡한 감동은 무엇보다 작가 자신이 할머니들과 함께 살아냈기에, 살아버렸기에 가능한 것이다. 자칫 소설의 완결성을 해칠 수도 있는 이러한 전략이 공선옥 소설에서만큼은 오히려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강력한 매력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언니, 그게 그러니까 말야, 무엇을 반대한다고 하는 싸움이 유정면에만 있는 게 아냐. 전국이 다 그래, 다. 내 말은 그러니까, 유정면 주민들의 투쟁이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란 거지.”
“그래, 그렇다고 쳐. 그러면, 특별하지 않으면 기사로 쓸 가치도 세상에 알릴 이유도 없다는 거야, 뭐야?”
“요는, 그러니까, 그런 시시콜콜한 동네 이야기까지 기삿거리로 다루기엔 대한민국이 그리 한가한 나라가 아니란 말이지. 물불 안 가리잖아? 불만 해도 봐봐. 남대문에서, 이천에서, 광화문에서, 용산에서. 물은 또 어디야? 당장에 사대강이 있네. 언니, 근데, 사대강 중에 섬진강도 들어가나?”
“섬진강은…… 아닌 것 같애. 한강, 금강, 낙동강, 영산강인가?”
“있는 곳이 남쪽이라면 영산강 쪽이야? 섬진강 쪽이야?”
“아무 쪽도 아냐.”
“으음, 그럼 뭐 시끄러울 일도 없겠네.”
(/ p.92)

한편 이 작품의 섬세함은, 힘없는 사람들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 무분별한 개발논리를 비판하면서도 그 비판의 목소리에 밀려 더 힘없는 누군가를 소외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되묻는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이 물음은 아무리 작고 하찮은 싸움처럼 보여도 그 안에는 고통받고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다시 일깨운다. 작가의 이러한 약자에 대한 사려깊은 감수성은 작품 속 ‘지렁이 울음소리’의 이미지로 환기된다. 이 소설에는 작중인물들이,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는 귀뚜라미 소리나 다름없는 지렁이 울음소리를 듣는 장면이 되풀이해서 등장한다. 이것은 그들이 힘있는 사람들과는 반대로 작은 소리의 귀함을 안다는 증거이며 작가 자신이 세계관을 표현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자신들이 울면 지렁이 울음소리가 묻힐까봐 걱정하는 대목은 작고 보잘것없는 소리에 귀기울이는 그들의 마음이야말로 실은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 것에 닿아 있는지를 증명한다. 남성인물들은 공통적으로 지렁이 울음소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설정도 퍽 흥미롭다.

어디선가 귀에 익은 지렁이 울음소리가 띠루띠루띠루루루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돌공장에서도 다갈다갈다갈 쿵쿵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가만히 듣자 하니, 지렁이는 돌공장 소리에 결코 지지 않겠다는 듯, 간절하게, 줄기차게 울 태세였다. 철수가 그런 지렁이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고 산을 내려간 것이 안타까웠으나 할 수 없었다. 가만히 귀기울여야 들리는 지렁이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는 철수의 귀에는 오직 돌공장 소리만 들릴 거였다. 이 세상에는 돌공장 소리 말고도 지렁이 울음소리도 있다는 것을, 철수에게 어떻게 설명할까 생각하며 영희는 감자밭에 몸을 엎드리고 한참 동안 가만히 있었다.
(/ p.108)

우리는 적막한 속에서 소리 없는 것들의 온갖 소리를 들었다. 소리가 없다고 해서 소리가 없는 것이 아닌 것들의 소리다. 그래서 가슴 한쪽이 먹먹해왔다. 꼭 우리들 같아서. 우리도 소리를 안 내고 살 뿐이지 소리가 없는 것이 아닌데도 세상은 땅 파먹고 사는 아낙들은 소리가 아예 없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무슨 소리라도 낼라치면 무식한 아낙네가 뭣을 아느냐는 투였다. 그래도 우리는 울지 않았다. 우리 울음 알아주는 데도 아닌 데서 울면 우리만 설워지니 울지 않았다. 어쩌다 울 때도 놀 때나 울지, 일할 때는 힘이 들어 울지 않았다. 무엇보다 우리가 울면, 닝꽁닝꽁닝꽁, 지꾸지꾸지지잉, 띠룽띠룽띠루룽, 하는 것들이 우리 울음에 묻힐까봐 울지 않았다.
(/ p.79~80)

활달한 서사와 해학. 세대와 혈연을 초월한 공감과 연대의 가능성

천연한 이야기 솜씨로 독자들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아온 공선옥은 이번 작품에서 더욱 자유로워진 화법과 한결 풍부해진 해학을 선보인다. 계산된 플롯을 과시하기보다는 물처럼 유연하고 풀처럼 온순한 흐름으로 ‘이야기’의 본령을 충실히 따른다. 이승과 저승, 세대와 혈연 등 각종 경계를 부지런히 넘나들며 한바탕 분방한 상상력을 펼친 작가는 아흔 할머니가 ‘언니’가 되고, 베트남 며느리가 읊어준 시가 마음을 울리는 장면 등을 통해 세대와 혈연, 국가를 초월한 연대의 가능성을 긍정한다. 또한 오랜 세월 골몰해온 여성성과 모성에 대한 탐구도 완숙한 경지에 이르러 영희의 혼을 혼엄마들이 위로하는 마지막 장에서는 생과 사를 뛰어넘는 거대한 자연의 비밀마저 엿보이는 것이다.

문학과 현실이 창조적으로 만나는 수작

이렇듯 공선옥은 그간 쌓아온 작가로서의 공력을 그러모아 정치적이면서도 순하고, 유쾌하면서도 눈물겨운 수작을 완성했다. 아흔살 ‘언니’들의 소풍 같은 첫 데모를 담은 이 작품은 아무도 해치지 않는 꽃 같은 싸움이 있다고 속삭인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전라남도 어느 시골마을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이 투쟁은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패배로 끝난 이 작품의 결말은 결코 절망이나 허무함으로 남지 않고, 오히려 독자들에게 새로운 행동을 촉구하는 역할을 한다. “순하고 약한 사람들의 순하고 약한 ‘항거’”(/ p.260)가 쉽게 시들지 않도록 독자들의 지지를 구하는 작가의 간곡한 목소리는 문학의 윤리적 책임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며 문학과 현실의 긴밀한 연결고리를 환기시킨다. 이 글은 선언이 아니라 하나의 존엄한 질문으로 이제 당신에게 그 답을 요청하고 있다.

[추천사]
재개발, 철거, 투쟁 등 말만 들어도 뒷목이 뻣뻣해지는 단어들을 주물러, 물처럼 유연하고 풀처럼 생생하고 꽃처럼 아름다운 소설을 만들어낸 공선옥의 공력이 놀랍다. 분명 투쟁의 이야기는 패배로 끝났지만, 절망이나 허무함이 남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따사로움이 스멀스멀 퍼진다. 이승과 저승, 젊은 아낙과 할매들을 넘나들고, 낯모르는 이들이 피보다 진한 연대를 하며 그들은 서로에게 시가 되고 꽃이 된다. 핍진한 밑바닥 삶을 늘 애처롭고 막막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작가의 글이, 더욱 자유로워진 화법과 한결 풍부해진 해학을 선보여 봄날 한판 흐드러진 화전놀이에 참가한 느낌이다. 남들 보기엔 실패한 투쟁이지만, 그들에게는 그 투쟁이 바로 사람을 사람답게 해주는 ‘꽃놀이’다. 공선옥이 피워낸 ‘사람꽃’을 보러 가자. 임순례_영화감독

독자로 하여금 작가와 작중인물을 혼동하는 가장 초보적인 실수를 범하게 만드는 소설이 있다면, 아마도 이 땅에선 그녀의 작품이 첫번째로 꼽힐 것이다. 그것은 그녀가 자신이 만든 인물의 삶을 직접 살아버리고 마는 탓이리라. 이번에도 그녀는 한번도 꽃 같은 시절을 누려본 적 없는 사람들 틈바구니로 곧장 걸어들어가, 그들의 간고한 생애를 그냥 살아버렸다. 그녀는 그것을 부끄러워하지도 뽐내지도 않은 채, 야물디야문 손으로 기록해버리기만 했다. 이것은 결코 책으로 가공된 꽃 이야기가 아니다. 온몸으로 돌가루를 뒤집어쓰며 꽃을 피운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작가 공선옥은 그들의 진실을 다시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바꿔놓았다. 이즈음 많고 많은 작가와 소설들이 곁에 있지만, 나에게 가장 ‘본래적인’ 소설과 가장 ‘근본적인’ 작가를 꼽으라면, 바로 이 소설, 바로 이 작가일 것이다. 이기호_소설가

목차

저승길을 못 가고
영희 화났다
순수한 사람
영희는 싸우고 싶지 않았다
거미와 참새와 벌
무서운 꽃나비
화전놀이
물 같고 풀 같은
지렁이 울음소리
외롭고 괴로워서 우는 새
담배 생각
당산나무가 운다
접수는 아무나 하나
사람꽃
그녀는 예뻤다
모자를 벗지 마
아가 아가 얼뚱아가
남자라는 이유로
집 나간 정직이
불타는 신발
혼엄마의 노래

작가의 말

저자소개

생년월일 1964.12.28~
출생지 전남 곡성
출간도서 58종
판매수 28,442권

소설가. 1963년 전남 곡성 출생. 1991년 계간 [창작과비평]에 중편소설 [씨앗불]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소설집으로 [피어라 수선화], [내 생의 알리바이], [명랑한 밤길], [멋진 한세상], 장편소설로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살], [시절들], [수수밭으로 오세요], [꽃 같은 시절], [유랑가족],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영란], [붉은 포대기], 산문집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 [행복한 만찬], [공선옥, 마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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