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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송이와 부딪쳐도 그대 상처 입으리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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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신달자
  • 출판사 : 문학의문학
  • 발행 : 2011년 01월 20일
  • 쪽수 : 203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43103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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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우주를 응축한 언어 예술의 극치!
신이 내려준 축복에 흠뻑 빠지다!

‘세상의 모든 시를 다 읽을 수는 없습니다.
공허하고 무감각한 현대인들의 가슴에 감동의 파장을 불러일으킬
절정의 언어 예술을 신달자 시인이 엄선해 소개합니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 한 편을 만나는 기쁨!


세상 모든 시인은 우주에 담긴 숨은 지혜를 찾아내 알려주는 신의 메신저라 했든가. 그들이 신과의 접신을 통해 응축해 빚어 놓은 영롱한 보석들(詩)은 삶에 찌든 현대인들의 마음을 위무하고, 상처 입은 영혼들을 치유하며, 때론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위대하고 심오한 우주의 결정체를 모두 다 읽을 수는 없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 쏟아져 내리는 멀티 컨텐츠의 폭주 속에 무엇을 먼저 읽고, 무엇을 꼭 골라 봐야 하는지 선별하기 어려운 딜레마에 빠져 있다. 따라서 그 모두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순도 높은 ‘당의정’에 목말라 있기도 하다.
즉, 이 책의 출간 배경에는 적어도 그런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소시켜 준다는 소박하지만 원대한 소망이 담겨 있다.

‘토끼의 지혜’가 빛을 발한다는 2011년 신묘년 새해를 맞아, [중앙일보]에 매일 연재되고 있는 [시가 있는 아침]이 신달자 시인의 탁월한 감식안을 통해 엄선된 명시 해설집 [눈송이와 부딪쳐도 그대 상처 입으리]로 재탄생되었다.

[중앙일보]가 오래전부터 공들이고 있는 [시가 있는 아침]은 수많은 독자들의 아침의 문을 청신하고 정갈하게 물들이며 힘차게 출발케 하는 인기 코너이다.

이번에 출간된 시선집은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사회 저변에 걸쳐 두터운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는 우리 시대 명사이자 문인인 신달자 시인이 2007년 11월부터 두 달간 연재하며 뜨거운 호응을 얻은 바 있는 60편의 명시들과 아름다운 감상평, 그리고 단행본 출간을 위해 새롭게 집필한 16편을 추가해 총 76편으로 구성된 베스트 컬렉션이다.

신달자 시인은 은유와 서정을 선호하는 한국 독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고도로 응축된 감성 언어를 선보이며, 하늘도 감동시킬 만한 섬세한 감상평으로 모두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인생을 지탱하는 가장 믿음직한 시 한 편을
그대의 아침 식탁에 조용히 놓습니다!


[1_ 눈송이와 부딪쳐도 그대 상처 입으리] [2_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3_ 초승달에 걸터앉아 당신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4_ 너에게 가려고 나는 강을 만들었다] 등 총 4부로 구성된 이번 명시 해설집은 ‘사랑’ ‘그리움’ ‘가족애’ ‘희망’이라는 핵심 주제를 노래한다. 따뜻하면서도 달콤하고, 아련하면서도 은은한 시어들로 가득한 ‘신의 보물창고’ 같은 시선집이라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특히, 박목월, 서정주, 고은, 신경림, 황동규 등에서부터 정호승, 안도현, 김용택, 함민복, 김선우, 손택수, 김경주까지 우리 문단의 원로와 중견, 주목받는 젊은 시인들까지 두루 소개하고 있다.

이들 천재적 시인들이 만들어낸 궁극의 세계는 범인의 눈으로는 해독하기 어려운 인생의 비의와 진실을 쉬우면서도 명쾌한 시어로 풀어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시를 읽는 내내 그들의 숙련된 조탁 솜씨에 혀를 내두르며, 그들의 발휘하는 언어 예술의 극치이자 신들린 경지를 만날 수 있는 축복 받은 시간이 될 것이다.

참고로 이 책의 표제인 [눈송이와 부딪쳐도 그대 상처 입으리]는 황동규 시인의 [연필화] 중 마지막 구절을 인용한 것으로, 시리도록 매서운 현대를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상처 받기 쉬운 여린 감성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시라! 이 책을 모두 낭독하고 난 후엔, 그 모든 상처와 허무가 치유되는 마법의 순간을 체험하게 될 것이라 감히 권하고 싶다.

우주를 응축한 시의 향연을 만끽하는 황홀한 순간!

실험적이고 난해한 시들이 넘쳐나 독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 지금, 시는 위기에 봉착해 있다. 디지털 시대가 열리면서 ‘문학의 위기’라는 불온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 문단에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돌파구가 간절해지고 있는 시점이다. 이 책은 시 본연의 마력을 살리고 독자들과 함께 향유할 수 있게 구성되었다.
감성적인 자연 사진과 함께 수록된 76편의 주옥같은 시들은 ‘난해하다’는 편견을 깨고, 다시 한 번 모국어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99세의 할머니가 시집을 출간하면서 100만 부의 판매고를 올리며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이는 시는 더 이상 ‘위기의 장르’가 아니라 누구나 향유하고 시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또, 어떤 시선으로 어떤 접근을 하느냐에 따라 반응이 엇갈릴 수 있음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우리 시의 아름다움을 선사하며 독자에게 따뜻한 마음의 쉼터가 되어 줄 것이다.

우리 시대 최고 명시 76편을 시처럼 아름답고 쉽게,
감각적으로 풀어놓은 신달자 시인의 매혹적 감성 언어!


워즈워스와 코울리지는 ‘시인이란 자신의 사상이나 감정을 보다 쉽게, 보다 힘 있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하고 있는 사람이다’라고 정의했다 한다.

그러한 정의에 누구보다 탁월하게 부합되는 박목월, 서정주, 고은, 정진규, 황동규, 신경림, 이시영, 이재무, 김남조, 안도현, 정호승, 김기택, 고형렬, 함민복, 오탁번, 김용택, 문정희…… 등 우리 시대 대표 시인들의 베스트 중 베스트만을 엄선한 신달자 시인의 감식안도 놀랍지만, 단아하면서도 절제된 감성이 뚝뚝 묻어나는 시처럼 아름다운 감상평 역시 일품이다. 시의 이해를 돕는 동시에 또 다른 시각을 부여하며 행간 사이사이에 담긴 인생의 깊은 맛과 생의 고비 고비를 현명하게 타고 넘은 사람만이 내다볼 수 있는 우주의 오묘한 이치까지를 꿰뚫는 통찰의 순간이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목차

[시가 있는 아침]을 내면서 - 신달자

1. 눈송이와 부딪쳐도 그대 상처 입으리
소곡 - 박목월
연필화 - 황동규
연애질 - 정진규
성냥 - 김남조
비밀 - 조창환
광릉숲 - 조정권
억새 - 이근배
생선 굽는 가을 - 최동호
봄바다 - 김사인
초겨울 단상 - 한영옥
제부도 - 이재무
썰물 - 김완하
숲 - 맹문재
덜 닦인 방 - 황학주
순천만에서 - 곽효환
첫사랑 - 서정춘
긍정적인 밥 - 함민복
새들의 날개에는 그리움이 묻어난다 - 문현미
누수 - 김유선

2.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늙은 소나무 - 신경림
아지랑이 - 조오현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 김용택
말이 되지 못한 말 - 이시영
마루 - 노향림
실 - 문인수
미소론 - 유안진
멍들다 - 최문자
물방울 무덤들 - 엄원태
리필 - 이상국
연탄재 - 이은봉
돌의 배 - 문태준
나는, 웃는다 - 유홍준
절망 - 여태천
아줌마가 된 소녀를 위하여 - 김기택
가을길 - 김종해
딸꾹거리다1 - 황인숙
해수관음에게 - 홍사성
긴 질문에 대한 짧은 대답 - 이화은

3. 초승달에 걸터앉아 당신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내 아내 - 서정주
장대비 - 김윤
옥잠화 - 정호승
붉은 꽃 - 정희성
기억 - 문정희
어머니는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 - 김경주
저녁 바람은 - 최하림
민둥산 - 김선우
오가혜 - 오탁번
뭉게구름 - 최승호
고니 발에는 - 고형렬
아내 - 나태주
결혼식 - 이규리
12월 - 장석주
짙어갈수록 - 박종국
자전 - 장만호
아라베스크 - 최정례
새 - 이수익
번역해다오 - 최승자

4. 너에게 가려고 나는 강을 만들었다
무제 - 고은
기러기 행군 - 오세영
강 - 안도현
아침 - 정현종
너와집 한 채 - 김명인
벗어 놓은 스타킹 - 나희덕
강철나비 - 손택수
폭풍 지나고 - 김정인
너무 가볍다 - 허영자
입동 - 정끝별
콩나물 - 이정록
별 - 신용목
달의 우물 - 박형준
영롱한 아침 - 이경림
내 몸의 새 - 정철훈
순간의 거울1 - 이가림
좁은 자리 - 이건청
나비 - 송찬호
등신불 - 김종철

본문중에서

연필화 鉛筆畵 - 황동규

눈이 오려다 말고 무언가 기다리고 있다.
옅은 안개 속에 침엽수들이 침묵하고 있다.
저수지 돌며 연필 흔적처럼 흐릿해지는 길
입구에서 바위들이 길을 비켜주고 있다.

뵈지는 않지만 길 속에 그대 체온 남아 있다.
공기가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무언가 날릴 준비를 하고 있다.
눈송이와 부딪쳐도 그대 상처 입으리

곧 눈 내리겠다. 흐릿한 회색빛의 눈안개가 고요히 비단처럼 깔린다. 튀지 않게 가능한 한 고요히 기다린다. 그 시간이 연필화처럼 다정하다. 연필이란 단어는 우리 가슴에 진한 금을 긋는다. 그 흐릿하고 유연하고 조금은 헐렁한 공간의 침묵 속에 연필화는 옅은 안개로 스물스물 다가온다. 그대 체온이 남아 있는 그 공간, 숨이 들고나는 살아 있는 공간, 그 보이지 않는 공간 안에 하나의 생명이, 하나의 분명한 영원이 잡혀질 것 같다. 어느 길이든 그대가 있겠지만 바위가 길을 비켜 주는 그 길의 속살 속에서 눈송이와 부딪쳐도 상처 입을 그대가 있다.
(/ pp.14~15)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 김용택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나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쳐 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세상에,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
문득 들려옵니다

김용택 시인의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다. 전화를 받아 보셨는지요. 왜 그렇게 모두 무디어 강변에 달빛이 곱다는 전화가 오지 않네요. 내가 하지요, 내가 그대들에게 저 달을 하나씩 바치겠습니다.
그믐밤에는 내 마음의 달을 보내고 낮에는 희미하게 울먹이는 낮달도 보내드리지요. 달이 처연하게 밝으면 나는 달이 무서워 안 본 척 방으로 들어가 창문 사이로 눈 하나 감고 바라본 적도 있는데 전화를 왜 기다려요. 내가 먼저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 pp.64~65)

옥잠화 - 정호승

가을입니다
초승달이 떴습니다
동쪽으로 가는 사람은 동쪽으로 초승달을 가지고 가고
서쪽으로 가는 사람은 서쪽으로 초승달을 가지고 가고
나는 당신의 눈동자 속으로 초승달을 가지고 가서
초승달에 걸터앉아
옥잠화
당신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나는 오늘도 돌을 갈아 거울을 만들어드리지 못하고
돌부처님들이 흘리는 눈물도 닦아드리지 못했으나
옥잠화
당신은 아직도 못난 저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굳이 해탈의 꽃
아니 되시면 또 어떠신가요
가을이 깊어갈수록 백련암 뜨락에 고개 숙여 시들어가는
당신을 사랑하다가
나는 그만 초승달에서 떨어져 나뒹굽니다

옥잠화, 어쩜 이렇게 예쁜 이름이 있을까. 나 같아도 초승달 위에 걸터앉아 옥잠화, 옥잠화 그 이름을 부르겠네. 가슴 떨리겠네. 부정한 행위라도 좋으니 꺾어 가슴에 품겠네. 백련암 뜨락에는 나 가지 않겠네. 백련암 뜨락에 고개 숙여 시들어 가는 옥잠화를 나는 도저히 볼 수 없어 다시 초승달 위에 걸터앉아 일생 나 그렇게 옥잠화를 부르겠네. 곧 내 안에 와서 그것이 피리니 나 그때를 기다리겠네, 내내 기다리겠네. 영원히 지지 않을 옥잠화를 품겠네.
(/ pp.112~114)

강 - 안도현

너에게 가려고
나는 강을 만들었다

강은 물소리를 들려주었고
물소리는 흰 새 떼를 날려 보냈고
흰 새 떼는 눈발을 몰고 왔고
눈발은 울음을 터뜨렸고

울음은 강을 만들었다
너에게 가려고

내가 흘린 눈물이 강을 이루었지요. 그 강 다시 그대에게로 가는 강이 되었지요. 그대에게 닿으려고 험한 물길을 헤엄쳐 가노라면 이미 그대는 내 안에 와 있고 우리들의 거리는 그만큼 가까워지지 않았을까요. 그러므로 강은 물소리를, 물소리는 새 떼를, 흰 새 떼는 눈발을 몰고 오지 않았는지요. 세상의 모든 눈발은 울음을 터뜨리는 겁니다. 내가 흐느끼던 울음의 강 앞에 지금도 서 있어요. 내가 그대에게 가려는 간절한 마음입니다.
(/ pp.164~165)

제부도 - 이재무

사랑하는 사람과의 거리 말인가
대부도와 제부도 사이
그 거리만큼이면 되지 않겠나

손 뻗으면 닿을 듯, 닿지 않고
눈에 삼삼한

사랑하는 사람과의 깊이 말인가
제부도와 대부도 사이
가득 채운 바다의 깊이만큼이면 되지 않겠나

그리움 만조로 깊이 출렁거리는
간조 뒤에 오는 상봉의 길 개화처럼 열리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 말인가
하루에 두 번이면 되지 않겠나

아주 섭섭지는 않게 아주 물리지도 않게
자주 서럽고 자주 기쁜 것
그것은 사랑하는 이의 자랑스러운 변덕이라네

이재무 시인의 [제부도]다. 이 시를 읽으면 확 울고 싶어진다. 제부도 대부도에 가 봤는가. 나는 사랑이 대부도나 제부도 사이인 것을 몰랐네. 그걸 몰라서 사랑으로 울어 버렸네. 하루에 두 번이면 족한가. 아니다. 나는 하루 두 번으로는 턱없이 사랑을 만나는 일이 부족해서, 나는 사랑으로 울었다. 내 사랑은 비유법이 필요 없었네. 바다 깊이라고 해도 저 하늘 끝이라고 해도 어찌 그것을 믿겠는가. 그 어떤 비유도 내 사랑보다는 작아 보였던 것을. 미처 사랑하는 거리를 몰랐네. 깊이도 몰랐네. 그래서 나는 사랑으로 울었네.
(/ pp.36~38)

내 아내 - 서정주

나 바람나지 말라고
아내가 새벽마다 장독대에 떠놓은
삼천 사발의 냉숫물

내 남루와 피리 옆에서
삼천 사발의 냉수 냄새로
항시 숨 쉬는 그 숨결소리

그녀 먼저 숨을 거둬 떠날 때에는
그 숨결 달래서 내 피리에 담고

내 먼저 하늘로 올라가는 날이면
내 숨은 그녀 빈 사발에 담을까

서정주 시인의 [내 아내]다. 삼천 사발의 냉숫물로 정히 빌어 서정주 시인은 바람나지 않았을까. 아내의 긴긴 여운의 기도가 방방곡곡에 스며 있었으리. 삼천 사발의 냉수 속에 두 내외분이 함께 찰랑찰랑 살고 있을 것, 물론 아내가 먼저 숨을 거두고 다시 삼천 사발 냉수 속에 아내를 껴안고 숨결 달래서 피리에 담고, 그러나 시인도 곧 그 뒤를 따랐다. 눈발 날리는 2000년 12월 24일 밤 그 삼천 사발의 윙크를 받고 시인은 아내의 사발 속으로 들어가셨다.
(/ pp.106~107)

너무 가볍다 - 허영자

나 아기 적에
등에 업어 길러주신 어머니

이제는
내 등에 업히신 어머니

너무 조그맣다
너무 가볍다

너희들도 다 살아 보아라. 어른들의 말씀은 금쪽같기만 하다. 어느 날 그 무섭게 회초리 들던 어머니의 굵은 손은 어디로 갔나. 든든한 말뚝 같았던 어머니의 등은 어디로 갔나. 마치 막 흘린 것 같아 주변을 보면 아무것도 없다. 너무 가벼운 어머니를 등에 업어 보았는가. 재처럼 사그라드는 어머니를 안아 본 적 있는가. 너무 가벼워 눈물 나는 어머니를.
(/ pp.180~181)

서정춘 시인의 [첫사랑]이다. 그래, 누구나 입 안에 고여 있는 이름 하나 있다. 달작지근하게 단물이 고이는 이름, 나도 눈깔사탕 하나 깨물어 누구 입 안에 넣어주고 싶다. 둘이 함께 녹아내리겠네. 세상에 그런 작은 추억 하나가 왜 이렇게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지 모르겠네. ‘간신히 늙어버린’이라는 표현도 마음이 서늘해진다. 누구나 간신히 늙는다. 죽죽 되고 싶은 것 다 되면서 늙는 게 아니라 겨우겨우 살다 늙는 일, 그러나 시인이여! 순금이 이름 하나가 사탕처럼 지금도 입 안에서 녹고 있지 아니한가.
(/ p.48)

함민복 시인의 [긍정적인 밥]이다. 시집이 칠천 원이라 한들 소금 한 됫박이면 될 것을, 국밥 한 그릇 겨우 될 것을, 그러나 시인은 시를 쓴다. 황송해 하면서 다행스러워 하면서.
그래, 그게 어딘데…… 좀 헐타 싶다가도 그래 그게 어딘데…… 하는 시인의 자탄 같은 말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러나 시집 한 권이 꽃 한 송이 같고, 시집 한 권이 시인의 목숨에 비유된다면 더 거룩하고 거대한 작품이 될 것이다. 시인이여! 서러워 마라, 그대 시 한 편에 산이 쩡 울린다. 바다가 쩍 갈라진다, 울던 울음이 뚝 그쳐진다. 시인이여!
(/ p.50)

김경주 시인의 [어머니는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 이다. 어머니의 가슴에 꽃무늬가 있다면 어머니의 팬티에도 꽃무늬가 있을 것. 어머니의 가슴에 꽃무늬가 지워지지 않는다면 어머니의 팬티에도 꽃무늬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 여자는 꽃무늬를 스스로 수놓지 않는다. 여자에게 꽃무늬는 저절로 새겨져서 그 꽃무늬로 울음도 참고 슬픔도 참아서 사랑을 만들어 꽃이 되는 것이다.
그 꽃은 영원히 시들지 않아서, 하얗게 늙어 야윈 등의 가슴에서도 선명히 피어 있을 것이다. 그래, 이런 어머니의 수줍은 꽃을 시인 아들이 보고 시의 꽃을 보았단 말인가 피웠단 말인가.
(/ p.122)

김선우 시인의 [민둥산]이다 몸이 서늘해진다. 이 세상에선 관계할 수 없는 것이 없네. 김선우의 시는 저릿저릿해서 혼자 읽으면서 누구 손잡고 싶네.
번쩍 나이를 잊고 알몸으로 저런 민둥산 오르고 싶네. 오르고 오르면 알몸의 그대가 나타나기는 할까. 그러나 아무 상관없는 일이다. 상처를 모신 바람도 온다는 예언이니 나 젊은 날 산통으로 거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다리를 벌렸던 생각나네. 나 오늘 김선우의 시를 읽으며 겨울 풀들에게로 달겨드는 바람의 속내를 보네.
(/ p.129)

정끝별 시인의 [입동]이다. 할 일을 다 하고 떠나가는 잎들을 봐요. 할 일을 다 했으니, 더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나뭇잎들이 입동 날 떠나가는 것이 보여요. 그러나 시인은 그 잎들을 떠나보내지 않고 품어 안고 무슨 별일을 만드나 봐요. 제 할 일을 다한 것은 꼬숩겠지요. 그 뒷이야기가 저 빈 나뭇가지에 걸려 반짝이네요.
(/ p.183)

저자소개

생년월일 1943.12.25~
출생지 경남 거창
출간도서 42종
판매수 16,538권

숙명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 박사. 한국시인협회 회장, 한국문학번역원 이사 역임. 저서 [엄마와 딸], [여자를 위한 인생 10강]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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