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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황혼 : 대한제국 최후의 1년[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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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한일병합 1년 전의 풍경 속에서 망국의 징조와 기미를 읽는다!

    이 글은 2009년 8월 29일에 시작하여 국치 100주년이 되는 날, 즉 2010년 8월 29일에 끝이 났다. 1년 동안 조선일보에 연재되면서 수많은 독자들의 관심과 호평을 받았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한일병합 1년 전인 1909년 8월 29일로 되돌려 나라가 망하던 비극의 그날까지 365일간을 기록했다.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인 여섯 명의 고정 필자를 포함하여 총 열아홉 명의 저자들이 참가한 방대한 공동 프로젝트로 242편의 귀중한 글을 모았다.
    -근세사, 경제사, 문학사, 문화사, 생활사, 언론사, 의료사, 전쟁사를 전공한 전문가들이 1세기 전 역사의 잔해를 해부하여 망국의 원인을 들여다보았다. 마치 사망한 시체의 환부를 도려내어 사인을 규명하는 작업과 같았다.
    -우선 ‘1909년 8월부터 1910년 8월까지 1년’ 사이에 일어난 사건에서 주제를 찾았다.
    -그러면서 국치를 당한 원인을 ‘1세기 전의 1년 이내’라는 시간적 제약에 지나치게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관점에서 글을 썼다.

    작품의 특징

    [제국의 황혼]은 단순히 역사의 줄기만 훑은 작품이 아니다.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우리는 좀처럼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 근세사, 경제사, 문학사, 문화사, 생활사, 언론사, 의료사, 전쟁사의 전문가들이 두 팔을 걷어붙이고 재현해낸 당시의 삶을 체험할 수 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풀어놓는 1909년 당시의 소소한 이야기부터 역사책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커다란 사건까지, [제국의 황혼]은 다양한 시각으로 대한제국의 마지막 1년을 조명하고 분석하고자 했다.

    1. 망국의 그림자

    한일병합을 1년 앞둔 1909년, 흔들리는 국권 아래에서도 이 땅의 사람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라 안팎의 압력으로 망국의 그림자는 점점 짙어지기만 했다. 사회와 문화뿐 아니라, 민초들의 삶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대한제국 말기 변화의 흐름을 짚어본다.

    2. 일본의 침탈 전략

    본격적으로 한반도를 노리기 시작한 일본은 지금까지의 간접적인 침탈 전략을 버리고 노골적으로 국권 침탈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언론을 장악하는 한편, 문화재를 빼돌리는 등 문화적인 침식을 진행하며 대한제국의 국권을 하나씩 빼앗아갔다.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물밑에서 조용히 진행된 일본의 침탈 전략은 결국 1910년의 한일병합으로 이어졌다.

    3. 조선 지배층의 무능과 해이

    일본이 국권을 빼앗기 위한 전략을 하나씩 진행해가고 있을 때, 지배층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대부분의 왕족들은 일본의 꼭두각시로 전락하거나, 권력을 빼앗기고 유명무실한 존재로 남고 말았다. 백성들에게까지 무시당할 정도로 추락한 모습, 심지어 국권을 빼앗기는 그 순간에조차 허울뿐인 훈장을 수여하기에 바빴던 모습 등 600년간 이 땅을 지배해왔던 조선 왕실의 처참한 몰락은 지금도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4. 친일파의 망동

    1909년의 대한제국을 살펴보자면, 일본을 지지했던 친일파에 대한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조국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본을 지지했던 이들이 있는가 하면, 나름대로의 판단으로 일본을 지지하기는 했지만 합병에는 반대했던 인물들도 눈에 띈다. 하지만 나라를 판 대가로 일본으로부터 작위와 은사금을 수여받고, 심지어 그 은사금을 도박으로 날리는가 하면, 공사관 건물을 단돈 5달러에 팔아넘기는 등,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망동을 일삼았던 인물들도 적지 않다.

    5. 지식인들의 위기 대응

    격변하는 시대 상황 속에서도 각자의 자리에서 학문과 문화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던 이들도 있다. 일부는 ‘애국’의 깃발 아래에, 일부는 ‘매국’의 깃발 아래에 서 있었지만, 그들의 노력이 지금 우리가 누리는 문화의 바탕이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 학문의 장으로써 젊은이들을 키워내고 있는 대학들도, 우리가 읽고 쓰는 한글의 체계도 당시에 세워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열정을 가지고 살아갔던 당시의 지식인들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6. 언론의 계몽과 투쟁

    거리에 모여 글을 아는 사람이 읽어주는 신문 내용을 듣는 모습이나, 일종의 신문 열람실이었던 신문종람소에 대한 기록은 비록 100년 전이었다고는 하나, 당시의 신문은 지식인들뿐 아니라 민초들에게까지 커다란 영향을 주는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남아 있는 신문 기사들을 통해 일본의 탄압에 대항하여 백성의 계몽과 투쟁을 촉구했던 당시 신문들의 투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7. 민초들의 저항

    일본의 국권 침탈에 대한 민초들의 저항은 다양한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가장 대표적인 민초들의 저항은 의병 활동일 것이다. 비록 조국의 독립은 이루어내지 못했지만, 의병들은 전국 각지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활약을 펼쳤다. 또한 시장바닥의 상인들부터 해외 동포들까지 민초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일본에 저항하고 국권을 회복하려 애썼다.

    8. 한국을 도운 외국인들

    조국을 버리고 일본에 협력한 친일파들이 있는가 하면,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파란 눈의 항일투사’들에 대한 기록도 찾아볼 수 있다. 당시의 대표적인 민족지였던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인물인 배설에 이어, 이화학당을 설립한 메리 스크랜턴, 숭실대학교의 전신인 숭실학교를 세운 베어드 등 머나먼 타국을 지키고 사랑해준 이들의 흔적은 지금까지도 이 땅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9. 정치가와 군인들의 행보

    정치가와 군인들은 국권이 위태로운 당시의 상황에 누구보다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을사늑약의 파기를 주장하다가 자결을 단행한 시종무관장 민영환이나 머나먼 런던에서 세상을 떠난 대리공사 이한응 등 꺼져가는 조국의 운명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 인물들의 일화는 지금까지도 우리를 숙연하게 만든다.

    10. 여성들의 목소리

    여성의 목소리가 크지 않았던 당시에도 두각을 나타낸 여성들이 있었다. 한국 최초의 여의사로 기록되는 박에스터를 비롯한 신여성들은 외국의 선진 문물을 배우고 전파하려 노력하며 시대를 앞서간 여성들로 역사에 남았다.

    11. 안중근 의거

    1909년 10월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쓰러뜨리며 국민적인 영웅이 된 안중근 의사는 15세 때부터 ‘홍의장군’으로 불리며 동학 토벌군에서 활약했던 인물이었다. 비록 1910년 안중근 의사가 순국하고 얼마 되지 않아 대한제국은 일본에게 국권을 빼앗기고 말았지만, 안중근 의거는 한반도뿐 아니라 중국에까지 큰 영향을 주었다.

    12. 민족 지도자들의 독립 구상

    위기를 직감하고 조국을 구하고자 애썼던 인물은 그 밖에도 있었다. 자본주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구국 운동을 펼쳤던 이승훈이나 간도에서 활약했던 김약연, ‘상투를 자르자’며 근대화를 촉구했던 이승만 등 방향과 방법은 서로 달랐지만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고자 했던 수많은 민족 지도자들의 노력은 나라를 잃은 절망 속에서도 새 희망을 꿈꿀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13. 민족자본의 활약

    1909년 여름, 평안남도에 심각한 수재가 발생하자 신문사들이 수재의연금 모집에 나섰다. 박기종은 1989년부터 여러 차례 철도 부설을 시도했으나 일본의 방해로 실패했다. 서오순 등은 1904년 호남철도주식회사를 설립하며 호남철도 부설 운동을 펼쳤으나 결실을 맺지 못했다. 이것들은 일본의 침탈로부터 조국의 경제를 지키고자 했던 노력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건들이다. 비록 노력의 결실을 맺지 못하고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인물들도 있지만, 이와 같은 노력이 있었기에 광복 후의 눈부신 경제 발전이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14. 근대문명의 수용

    1909년은 그간 고립되어 있던 한반도가 근대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격렬한 변화를 겪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사회, 경제, 문화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밀려든 변화의 물결은 많은 사회적 혼란을 몰고 왔다. 자동차를 보고 놀라는 시민들의 모습이나, 지금 보면 어이가 없을 만한 광고를 신문에 자랑스레 싣던 사람들과, 야구를 처음 시작하던 학생들. 지금은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하고 누리는 것들이 처음 이 땅에 등장했던 순간의 풍경들은 우리를 웃음 짓게도 하고 추억에 잠기게도 한다.

    추천사

    지도층, 특히 왕실의 무능과 오판에 대해서 냉정하고 적나라한 연구가 부족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지난해 미국에서 출판된 [임페리얼 크루즈]란 책을 보면, 당시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 딸이 한국에 온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고종과 한국 정부는 미국이 이미 일본의 한국 침략을 승인했다는 사실도 모르고 루스벨트의 딸이 지나가는 도로를 보수하고 청소를 하는 등으로 국빈 대접을 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정진석

    일제 강점에 대해 국가 차원의 체계적 대응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지식인과 민중이 끝까지 독립을 쟁취하려고 노력한 것은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자발적인 사립학교 설립과 근대적 교육의 실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민족어의 재발견을 통해 지식의 수용과 확대, 민족 역사와 문화의 창조 등을 끈질기게 추구해온 과정을 강조하고 싶다.
    -권영민

    고종은 1880년부터 1884년 갑신정변 직전까지 인상적인 근대화 정책을 주도한 점은 평가할 만하지만, 갑신정변 이후부터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자주적 근대화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고종과 개화파가 힘을 합쳐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식민지화에 대해 고종에게 지나치게 무거운 책임을 지워서는 곤란하다고 본다.
    -이헌창

    19세기 이후 집권층에게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통이 없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만큼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통이 강했던 나라는 찾기 어렵다. 그러기에 나라가 망해가자 순국 자결하는 이가 속출했다. 수많은 양반 유생들이 농민, 포수, 군인들과 함께 의병에 가담해 목숨을 걸고 나라에 헌신했다.
    -김기승

    비숍 여사가 쓴 여행기를 보면, 처음에는 조선인들을 게으른 민족으로 생각했으나 만주로 간 조선인들이 매우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고, 본성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부분이 나온다. 한 나라의 지도층, 사회 시스템이 발전을 가로막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기주

    망국을 앞두고, 황실은 황실의 안위를, 문벌 양반은 가문의 안위만 생각했다. 자결한 민영환이 돋보이는 것은 지배계급의 국가 의식 부재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적어도 합방 당시만 보자면, 양반 계급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없었다.
    -전봉관

    목차

    서문-국치 100년을 앞둔 1년간의 장거리 계주

    1. 망국의 그림자
    2. 일본의 침탈 전략
    3. 조선 지배층의 무능과 해이
    4. 친일파의 망동
    5. 지식인들의 위기 대응
    6. 언론의 계몽과 투쟁
    7. 민초들의 저항
    8. 한국을 도운 외국인들
    9. 정치가와 군인들의 행보
    10. 여성들의 목소리
    11. 안중근 의거
    12. 민족 지도자들의 독립 구상
    13. 민족자본의 활약
    14. 근대문명의 수용

    저자 좌담
    저자별 수록 글

    본문중에서

    여섯 명의 고정 필자를 비롯한 집필자들의 전공은 다양했다. 근세사, 경제사, 문학사, 문화사, 생활사, 언론사, 의료사, 전쟁사를 전공한 전문가들이 각기 다른 시각에서 1세기 전에 파묻힌 역사의 잔해를 해부하여 망국의 원인을 들여다보고 꿰매는 작업에 매달렸다. 종합병원의 각 분야 전문의들이 1세기 전에 사망한 시체의 환부를 도려내어 사인을 규명하는 것과 같은 공동 프로젝트였다. 망국으로 치닫는 대한제국 마지막 1년 동안, 황제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살았으며, 무슨 희망과 목표로 투쟁했는지 돋보기로 들여다보는 작업이었다. 다시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리지 말아야 하며 건강한 나라로 영생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 p.4)

    미국 [콜리어스]지의 특파원 로버트 던은 서울을 떠날 준비를 하던 날 아침 일본인 통역 구리타에게 150달러를 바꿔 오도록 지시했다. 저녁때에야 짐꾼들이 지고 온 엽전 더미를 본 그는 놀라 나자빠질 지경이었다. [한국에서의 현금 환전]이란 제목의 기사는 미화 1센트가 종류에 따라 엽전 15~30개와 맞먹는 액수였으며 1달러를 환전하면 장정 한 사람이 지고 가야 할 지경이었다고 설명했다.
    (/ p.25)

    한말에 ‘벽돌신문’으로 불리던 지면이 있었다. 활자를 뒤집어엎어 검은 벽돌을 쌓은 모양의 지면을 일컫는다. 조판을 끝내고 인쇄 직전 검열에 걸린 기사를 삭제한 탓이다. 한자로는‘복판(覆板)신문’이라고 했다. 러일전쟁 후 일본 헌병대는 한국신문에 사전검열을 실시하여 침략에 장애가 되는 항일 기사를 깎아내도록 명령했다.
    첫 벽돌신문은 ‘한일의정서’ 조인을 보도하려다 기사가 삭제된 1904년 2월 24일자 [황성신문]이다. 제1차 한일협약 이후 침략의 발걸음이 빨라지면서 검열 강도는 더욱 세졌다. 우리말에 능통한 일본인 통역관들은 이 잡듯이 기사를 검열했다.
    (/ p.293)

    개항 전에는 오늘날 직업에 해당하는 용어가 ‘업(業)’ 또는 ‘생업’이었으나, 개항기에 ‘직업’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개항기에 귀천이 없는 근대적인 직업관이 성립하면서 자유로운 직업 선택권이 거론되었다. 박영효는 1888년 “사농공상을 구분하여 문벌을 논하는 것은 정부가 인민을 경멸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각기 원하는 직업을 구하도록 하자고 국왕에게 건의했다. 유길준은 [서유견문]에서 “상인의 사무가 비록 민간인의 직업이나 나라의 공본된 교제와 재화의 권세에 관련되어 지극히 중대하다”라고 했다.
    (/ p.685)

    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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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한 뒤, 조선일보에 입사하여 사회부, 경제부, 국제부 기자를 거쳤다. 조선일보 북경 특파원과 국제부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조선일보 중국전문기자와 동북아시아연구소 소장을 겸임하고 있다. 역서로는 [화교 네트워크][원자바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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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대학원 언론학 석사
    런던대학교 정치경제대학(LSE) 박사
    한국기자협회 편집실장
    관훈클럽 사무국장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언론중재위원회 위원
    방송위원회 방송위원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회과학대학장, 정책과학대학원장
    일본 천리대학교 조선학과 교수 역임
    현직 한국외국어대학교 명예교수
    위암장지연기념사업회 이사
    LG상남언론재단 이사
    서재필기념회 이사
    한국신문협회 정책자문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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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5년 경북 현풍에서 출생했고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경제사, 그중에서도 조선후기를 전공하고 있다. 경기대학교 경제학과 부교수를 거쳐 현재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경제사학회와 한국고문서학회의 회장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韓國經濟通史](2014,제6판), [조선시대 최고의 경제발전안을 제시한 박제가](2011) 및[民籍統計表의 해설과 이용방법](1997)이 있고 편저로는 [조선후기 재정과 시장](2010), [韓國儒學思想大系經濟思想編](2007), [화폐와 경제활동의 이중주](2006) 등이 있으며 다수의 논문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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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간도서 5종
    판매수 267권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사학과에서 문학박사를 받았다. 순천향대학교 인문과학대학장, 아산학연구소장, 스마터아카데미원장,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순천향대학교 향설나눔대학 교수이며 인문학진흥원 원장을 맡고 있다.
    주요 논저로는 [한국근현대 사회사상사 연구 – 배성룡의 진보적 민족주의론]( 1994), [21세기에도 우리문화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공저, 2003), [조소앙이 꿈꾼 세계 – 육성교에서 삼균주의까지](2003), [대한민국의 기원, 대한민국임시정부](공저, 2009), [제국의 황혼](공저, 2011), [고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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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기주(Ki Joo Park)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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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신여자대학교 경제학과 전임강사.kjpark@sungshin.ac.kr
    "1940.50년대 광공업 생산통계의 추계와 분석"(공저),[경제학연구] 58(3), 2010.
    "일본과 비교한 식민지 조선의 공장 노동생산성",[경제학연구] 55(4), 2007.
    "식민지 경성부의 영업소득 불균등",[경제사학]43, 2007.
    "1930년대 조선의 산업변화와 인구이동",[경제사학]28, 2000.

    생년월일 1971.02.25~
    출생지 부산
    출간도서 7종
    판매수 4,628권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KAIST 인문사회과학과 및 문화기술 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근대 문학을 공부하다가 그 시대 문화의 발랄함과 역동성에 매료되어 박사 학위 취득 후 본격 적으로 근대 문화 연구에 뛰어들었다. 근대 조선의 살인 사건, 스캔들, 투기, 사기·협잡, 자살 사건, 가정 문제, 애정 문제 등을 매개로 현대 한국인과 한국문화를 비판하는 독특한 형식의 글을 발표하고 있다.
    19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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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민 [편저]
    생년월일 1948.10.05~
    출생지 충남 보령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1948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객원교수, 버클리대 한국 문학 초빙교수, 일본 동경대 한국 문학 객원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서울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한국 현대문학사][우리문장강의][서사 양식과 담론의 근대성][한국 계급문학 운동사][한국 근대문학과 시대 정신][월북 문인 연구][한국 문학 50년][윤동주 연구][정지용 시 126편 다시 읽기][작은 기쁨]등이 있다. 현대문학상, 김환태평론문학상, 만해대상 학술상, 서울문화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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