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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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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임태희
  • 출판사 : 우리같이
  • 발행 : 2011년 01월 11일
  • 쪽수 : 231
  • ISBN : 9788996189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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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얼마나 더 길을 가야 사람들이 더 사람다워질까!

    나는 길 위에 서 있다!
    오늘은 기말고사 첫 날이지만, 나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어젯밤 돈을 훔치고 필요한 물건을 챙겨 집을 나왔다. 잠시 집을 떠나 있으면 복잡한 문제들이, 이대로 기말고사를 치를 수 없는 문제들이 해결될 것 같았다. 그런데 돈도 휴대폰도 도둑맞은 상태에서 수상쩍은 패거리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완전히 길을 잃은 상태에서 트럭 짐칸에 올라탔고, 고속도로로 들어가 무서운 속도로 달리기 시작한 트럭 짐칸에 꼭 붙어서 금강 휴게소까지 간다.

    [옷이 나를 입은 어느 날](2006)로 청소년 문학 활동을 시작해 [쥐를 잡자](2007),[나는 누구의 아바타일까](2007), [가족입니까](2010)에 이르기까지, 우리 청소년들이 당면한 현실을 뚜렷한 문제의식과 극적 긴장감으로 포착해 재기 발랄하게 풀어낸 임태희 작가가 2011년 새해 벽두에 [길은 뜨겁다]를 선보인다. 주인공들의 아픈 상처를 통해 청소년기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려내는 데 일가견을 보인 작가가 본격적으로 "돌아다니면서 썼다"는 [길은 뜨겁다]. 우리 청소년들이 느끼는 세상의 부조리함과 부당함을 기존 작품과 또 다른 방식으로, 더욱 치열하게, 보다 탄탄하고 성숙한 문학으로 풀어내고 있다고 한다면, 완전히 길을 잃은 열일곱 살 은우와 더불어 작가도 내내 그 뜨거운 길 위에 함께 서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좋은 사람이 되라고 말해 주는 삼촌이 어린 내게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물음표가 떨어진 지점에서 길은 시작된다. 어렸을 때 작가에겐 삼촌이 많았다고 한다. 집에서 하는 수리 센터에서 함께 먹고 자고 하는 기술자들을 모두 삼촌이라고 불렀다. "주인공 은우가 길 위에서 삼촌을 만나는 것은 순전히 우연이지만 내 소설에 삼촌이 등장하는 것은 그래서 우연이 아니다."(작가의 말) 서울 강남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은우가 트럭 짐칸에서 만나게 되는 아저씨. 언뜻 보기에도 추레한 겉모양이며 몸짓이며 말투가 자신이 접해 온 사람들과 전혀 다른 사람을 ‘삼촌’이라고 부르는 조건으로 따라다니게 되면서, 둘이 같이하는 동행 길이 자연스럽게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아아, 나도 빨리 시험을 봐야겠어. 그런데 내 자리가 어디지?’ 수시로 악몽을 꿀 수밖에 없는 은우의 헛손질을 붙잡아 주는 건 삼촌의 투박한 손이다. 자기 나이도 정확히 모르는, 등 전체에 시커먼 호랑이 문신이 새겨진 삼촌이 내밀어 준 상처투성이 손. 그 낯설고도 생경한 손을 붙잡고 만나고 부딪치게 되는 세상은 은우가 그동안 알던 세상과 사뭇 다르다. 도배 일을 하는 삼촌을 도와 정배 솔로 도배지 위에 사람 인(人)자를 그려내 새롭게 탄생시킨 집만큼이나 그렇게 새로워질 수도 있는 세상이 은우 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떠돌이 생활을 해 온 삼촌 트럭에서 함께 기거하면서 예전엔 미처 느끼지 못한 하늘도, 저 우주도 눈여겨보게 된다. 음악 소리, 바람 소리 하나도 예사롭지 않다. 틈만 나면 지역 도서관을 찾아 책을 읽는 삼촌의 손때가 묻은 [피노키오의 모험]도 다시 보게 된다. 아파트 ‘동띠기’ 일을 맡아 온 정신을 도배 일에 집중하면서, ‘바닥으로 추락한 내신 성적, 문제아라는 꼬리표, 멀어진 부모님과의 거리’ 문제도 더 이상 마냥 회피하지 않게 된다.

    그런데 ‘세상 어딘가가 깨어진 건 아닐까? 도대체 얼마나 더 길을 가야 사람들이 더 사람다워질까?’ 은우 앞에 놓인 세상은 여전히, 하나도, 만만치 않다. 학기말 시험 정답을 알게 된 그 순간부터 감당 못할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처럼. ‘올려놓으면 떨어지고 다시 올려놓으면 또 떨어지고...... 어차피 굴러 떨어질 바윗돌을 산꼭대기까지 영원히 밀어 올려야 했다는 기운 빠지는 얘기’ [시지프 신화]처럼. 결국 은우는 경찰서까지 끌려가게 되고, 은우로선 상상조차 못해 본 삼촌의 과거사가 밝혀지면서 견딜 수 없는 혼란을 더하게 되는데.......

    이 글을 쓰는 과정은 좋은 작가가 뭘까 고민하는 여정이기도 했다.
    예전부터 작가라는 사람들은 참 많이 돌아다녔다. 돌아다니는 가운데 길이 보이고 사람살이가 엿보인다고 했다. 문인이라면 길을 떠돌며 이 땅 곳곳을 노래하는 게 당연했고, 적어도 길을 노래하고자 하는 소망이 있었다. 임태희 작가 또한 그 길 위에 자신을 싣고 또 실었다고 한다. ‘갈 길은 먼데 다리가 움직여 주질 않고 잡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차는 날엔 조금만 걷고 배낭을 뒤져 쓸모없는 것은 버리면서.’ 결국 ‘스무날을 걸어 뜨거운 여름 바다를 경험하고, 그 바닷가에서 마지막 장을 쓰고 집으로 돌아온다.’(작가의 말) 읽는 내내 작가와 숨바꼭질을 하는 기분이라고 표현한, 자꾸만 굴러 떨어지는 얘기 [시지프 신화]는 우리의 은우에게 훌훌 넘겨주고.

    덕분에 은우는 삼촌을 피해 도망칠 궁리를 하는 순간까지도 [시지프 신화]를 읽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삼촌의 해명을 듣고 싶은 갈망을 따르지만, 삼촌의 입을 열게 만드는 마지막 동행 길마저도 전혀 순탄치 않다.

    결국 정답을 아는 채로 시험 보는 것을 거부했던 은우가 잃은 건 점수뿐이었을까? 상어 배 속으로 들어간 피노키오가 되어 보고, 자꾸 굴러 떨어지는 시지프가 되어 그토록 뜨거운 길 위에 서 있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은우가 그렇게 뜨겁게 잃으면서 얻은 건......?

    길은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나 있다. 그래서 더 뜨겁다.
    지난 며칠 사이에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삼촌의 해명을 듣기 위해 트럭에 올라탄 은우는 첫날과는 사뭇 다른 감상에 젖어 들기도 한다. 처음엔 다른 지역에서 보기 힘든 대나무 공방이나 대나무 제품을 파는 가게에만 눈이 갔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에나 있는 그런 친숙한 것들에 더 오랫동안 눈길이 머물렀다."

    "작가의 기능은 아무도 이 세계를 모를 수 없게 만들고, 아무도 이 세계에 대해서 ‘나는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도록 만드는 데 있다."(사르트르, [문학이란 무엇인가]) 열일곱 살의 여름, 은우가 세상을 등지고 떠난 여행길에서 만난 모든 것이 세상으로 이어진다. 세상은 삶에 대한 뜨거운 교훈으로 넘치는 곳이었다. 은우에게 길은 세계로 나가는 곳인 동시에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게 하는 곳이었다. ‘길이 사람을 밖에서 안으로 끌고 들어가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을... 길이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나 있다는 것을...’(신경림,[길]) 온몸으로 알게 된다. 그래서 그렇게 먼 길을 돌아 집으로 돌아오고도 열일곱 우리의 은우는 아직 길 위에 서 있다.

    팔도를 넘나드는 사투리, 고된 노동 끝에 맛보는 청도 복숭아의 단물,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길, 둘리 레코드에서 만나는 서태지와 아이들, 하나라는 소녀와 대나무 숲에서 가진 시간, 나어린 가장 형진이 형의 ‘쑥’과 ‘마늘’ 사랑, 장판을 기가 막히게 다루는 상만이 아저씨, 길 위에서 읽는 책 맛 등등은 문장 하나하나를 온몸으로 걸으며 써낸 뒤에 다시 수도 없이 고쳐 쓴 작가의 각고의 노력이 뒷받침된 것이다. 정배 솔을 잡고 도배지 위에 싹싹 소리 내며 사람 인(人)자를 그려내고 싶은 생각이 나는 건, 청소년 문학의 영원한 고전으로 남을, 임태희 작가표 뜨거운 길에서 생생하게 만나 볼 수 있는 덤이다.

    목차

    서울, 강남
    금강 휴게소
    청도, 황 씨 할아버지의 가게
    처음 도배를 배운 집
    복숭아밭
    어디로 갈까
    목포로 가는 길
    광주, 동띠기 현장
    담양, 대나무 숲
    히치하이크
    형진이 형네 집
    근로자 대기소
    경찰서
    광주 병원
    논산-천안 고속도로
    공주, 자동차 정비소
    다시, 서울로

    본문중에서

    서울, 강남

    나는 길 위에 서 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 공중전화 부스 앞을 서성이다 안으로 들어간다. 심호흡을 크게 한 다음 조심스럽게 번호를 누른다.
    “여보세요?”
    몇 번 신호가 가지도 않았는데 엄마가 받는다. 나는 수화기 구멍을 손바닥으로 막고 마른침을 삼킨다.
    “혹시…… 은우니?”
    엄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
    “은우 맞지?”
    “뭐? 은우? 못난 녀석!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당장 집으로 오지 못해?”
    갑자기 끼어든 아버지 목소리가 따갑게 귀에 꽂힌다.
    “여보, 진정해요. 애가 겁나서 말하겠어요? 전화 이리 줘 봐요.”
    조금 뒤 엄마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은우야, 엄마야. 지금 어디니?”
    “…….”
    “밥은 먹었니?”
    엄마의 물음에 아버지가 벌컥 역정을 낸다.
    “그만둬. 그놈은 집 나가서 고생 좀 해 봐야 해!”
    “여보, 제발…….”
    눈을 질끈 감고 전화를 끊는다. 한동안 전화 부스에서 나올 수가 없다. 완전히 길을 잃은 느낌이다.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오늘은 기말고사 첫 날이다. 그러나 학교에 가지 않았다. 어젯밤 집을 나왔다. 안방 문갑에서 20만 원을 훔치고 필요할 만한 물건은 커다란 가방에 몽땅 챙겨서 나왔다. 복잡한 문제들이 머릿속에 엉켜들었다. 밑도 끝도 없이, 그저 집을 잠시 떠나 있으면 문제들이 해결될 것 같았다.
    막상 집을 나오니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길거리를 무작정 쏘다니다가 기껏 생각해 낸 게 피시방이었다. 게임이나 하며 시간을 보내려고 했지만 불안해서 그런지 집중도 안 되고 재미도 없었다. 새벽 3시까지 꾸역꾸역 버티다가 찜질방에 가서 잠을 잤다.
    아침에 사람들이 소란을 피우는 소리에 눈을 뜨고는 아차 싶었다. 사람들은 시계나 MP3 같은 값나가는 물건이 없어졌다고 난리였다. 나도 얼른 지갑을 열어 보았다. 누군가 지폐만 쏙 빼 간 상태였다. 자기 전에 남은 돈을 세어 본 것이 화근이었다. 여기 돈이 있으니 가져가라고 광고를 한 꼴이었다. 휴대전화도 온데간데없었다. 가출 신고가 들어와 있을까 봐 경찰서에 신고도 할 수 없었다. 고스란히 당한 것이다.
    전화 부스에서 나와 발을 질질 끌며 걸었다. 수화기에서 들리던 아버지의 노여움에 찬 목소리가 떠올랐다. 왜 아버지가 화를 내지? 아버지는 화를 낼 자격이 없다.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집으론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오늘 밤만 무사히 넘기면 내일은 어떻게든 될 거야. 날이 밝으면 당장 아르바이트 거리를 찾아봐야지.’
    나는 공원 벤치 위에 축 늘어져서 한숨을 내쉬었다. 가로등 불빛이 나무에 가려서 어두컴컴했다.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다. 여름이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날씨가 추웠다면 공원에서 밤을 보내야 하는 내 신세가 더 비참했을 테니까.
    내게 돈을 빌려 줄 만한 친구들을 손가락으로 꼽아 보다가 또다시 한숨이 나왔다. 오늘을 시작으로 내리 닷새 동안 시험이 있다. 어쩌면 우리 반 아이들은 오늘 내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도 이유 따위를 궁금해 할 여유가 없었을지 모른다. 시험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지경일 테니까.
    울고 싶은 걸 간신히 참고 있는데 어둠 속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수상쩍은 패거리가 거들먹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어이, 거기!”
    탁하고 위압적인 목소리.
    “가방 좋은 거 갖고 있네?”
    한 놈이 다가오며 말했다. 다른 놈들도 킥킥거리며 거리를 좁혀 왔다.
    덜컥 겁이 났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공원에는 그들과 나 외에 아무도 없었다. 패거리 중에 부러진 큐를 들고 있는 녀석이 있었다. 죽도록 두들겨 맞고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들어가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그런 상황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나는 침착하려 애쓰며 가방 끈을 꼭 쥐었다. 그러고는 딴 데를 돌아보는 척하다가 냅다 달렸다. 놈들이 악다구니를 하며 쫓아왔다. 놈들은 그다지 일사분란하지 못했다. 자기들끼리 부딪히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놈들을 따돌리고 좁은 골목길로 들어갔다. 그 길로 200여 미터만 들어가면 도서관 건물이 나왔다. 중 3 때 공부한다고 친구들과 몇 번 와 본 적이 있어서 길이 눈에 익었다. 나는 발소리를 죽이고 도서관 쪽 골목으로 걸어 들어갔다. 도서관 근처에 거의 다다랐을 때 허름한 1톤 트럭이 시동이 걸린 채 세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트럭을 끼고 옆 골목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바로 그쪽 담장 뒤편에서 놈들이 소리를 질렀다.
    “이 새끼, 잡히면 죽는다!”
    놈들은 잔뜩 약이 올라 있었다.
    나는 우뚝 멈춰 서서 숨을 죽이고 당장 숨을 곳을 찾았다. 옆에 있는 1톤 트럭이 눈에 들어왔다. 트럭 짐칸에 잡동사니 약간이 있을 뿐 거의 비어 있었다. 나는 재빨리 짐칸에 올라타 납작 엎드렸다. 짐칸에 지붕이 없어서 여차하면 들킬 수도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어디 숨었어? 빨리 안 나와?”
    놈들이 이쪽 골목으로 들어섰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놈들이 트럭 앞까지 오면 들킬 게 분명했다.
    ‘이제 죽었구나.’
    바로 그때 굵직한 남자 어른의 목소리가 들렸다.
    “뭘 찾고들 있니?”
    누구지? 너무 무서웠지만 호기심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짐칸 밖으로 슬그머니 눈을 내놓았다. 청색 모자를 쓰고 청 조끼를 입은 작달막한 아저씨가 옆구리에 책을 서너 권쯤 끼고서 트럭 앞에 서 있었다. 불량배들 중에 가장 키가 큰 녀석이(키가 190센티미터는 족히 되어 보였다.) 손가락 관절을 뚝뚝 꺾으며 아저씨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말했다.
    “다치기 싫으면 남의 일에 신경 끄시죠.”
    부러진 큐를 들고 있던 녀석이 그걸 위협적으로 치켜들었다. 당장에라도 달려들어 내려칠 기세였다. 그러나 아저씨는 눈을 부릅뜨고 분명하게 말했다.
    “나도 신경 끄고 싶다. 근데 너희들이 너무 시끄럽잖니? 이건 내 트럭이야. 나에게 굉장히 소중한 거다. 너희가 내 트럭 근처에서 소란을 피우면 나도 가만 안 있을 거다.”
    아저씨는 놈들이 똑똑히 들었는지 확인하려는 듯 놈들을 둘러보더니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안 되겠다. 너희들 나랑 5분만 얘기하자. 뭣 때문에 그렇게 화가 났는지 듣고 싶구나.”
    “뭐야, 당신. 설교하려면 교회에나 가! 재수 없게!”
    불량배들이 아저씨에게 모욕적인 말을 퍼부었다. 그래도 아저씨는 전혀 주눅 들지 않는 기색이었다. 한 놈이 침을 뱉고는 권투 자세를 취했다.
    “덤벼! 실컷 패 줄 테니까.”
    싸움이 날까 봐 조마조마했다. 싸우면 당연히 아저씨가 불리했다. 불량배들은 예닐곱 명쯤 되었고 대부분 아저씨보다 컸다.
    그때 손전등 불빛이 골목을 비췄다. 순찰 중인 방범대원이었다.
    “방범입니다. 거기 무슨 문제 있습니까?”
    놈들이 고개를 돌리며 낮게 욕을 뱉었다. 방범대원이 놈들을 알아보고 지겹다는 투로 말했다.
    “또 니들이냐? 오늘은 또 무슨 작당들이냐?”
    “아, 아무 일도 아닙니다. 제가 도서관을 못 찾아서 길을 물어보고 있었어요.”
    아저씨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방범대원이 손전등으로 아저씨를 비췄다. 아저씨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책을 들어 보였다.
    “도서관은 이 길로 조금만 들어가면 바로 나옵니다.”
    “아,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아저씨가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방범대원은 불량배들에게 몇 마디 주의를 주고는 옆 골목으로 갔다.
    “너희들 이 동네에서 유명한가 보구나.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그땐 시간이 참 안 가더라. 너흰 뭘 하며 시간을 보내니?”
    아저씨는 놈들과 대화를 해 보려는 것 같았지만 통하지 않았다.
    “씨발, 짜증나게! 야, 가자.”
    “아저씨 오늘 운 좋은 줄 알아.”
    불량배들이 건들거리며 골목을 빠져나갔다.
    아저씨는 도서관 담장 옆에 세워진 파란색 도서 반납함에 책을 넣고 돌아와서 운전대를 잡았다. 운전석 뒤로 난 창으로 아저씨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저씨는 곧바로 출발하지 않고 한동안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어쩐지 쓸쓸해 보였다. 짐칸에 내가 타고 있는 건 모르는 눈치였다.
    차가 천천히 출발했다. 놈들이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 골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적당한 기회를 틈타 짐칸에서 뛰어내리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하지만 차는 곧장 고속도로로 들어가 무서운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바람이 온몸을 때리고 할퀴었다. 짐칸에서 떨어질까 봐 함부로 일어날 수도 없었다. 나는 엄청난 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며 팔꿈치로 엉금엉금 기어가서 운전석 뒤쪽 벽에 최대한 몸을 붙였다. 그러곤 짐칸 바닥에 꼭 붙어서 덜덜 떨었다.

    금강 휴게소

    또렷이 알 수 있는 건 콧물이 입술 위로 흐르고 있고 허리가 쑤신다는 것뿐이었다. 트럭 아저씨가 짐칸에서 나를 발견한 것은 고속도로 휴게소 주차장이었다. 나는 아저씨와 눈이 마주치고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트럭이 두 시간여를 달리는 동안 바람에 정신없이 얻어맞은 통에 얼이 반쯤 빠져 있었다.
    “아니, 어떻게…….”
    아저씨는 허둥지둥 담요를 꺼내 와 내 배에 덮어 주고는 뜨거운 음료수를 사 와서 건네주었다. 음료수를 마시니 정신이 좀 드는 듯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휴게소 이름을 확인했다. ‘금강 휴게소’였다. 휴게소 건물이 깔끔하고 세련되어 보였다.
    “지금 몇 시예요?”
    “2시쯤 되었을 거다.”
    아저씨가 내 커다란 가방을 빤히 보았다. 나는 왠지 모르게 떳떳하지 못한 기분이 되어서 고개를 푹 숙였다.
    “화장실 안 갈래? 따뜻한 물로 세수를 하면 좀 나을 거다.”
    나는 아저씨 말에 따라 화장실에 갔다가 창밖 풍경을 보고 놀랐다. 커다란 유리창으로 달빛에 비친 푸른 산과 강물이 보였다. 재빨리 세수를 하고 건물 뒤쪽 테라스로 나가자 탁 트인 풍경이 나를 맞이했다. 푸른 강물이 달빛을 반사하며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무언가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그 고요함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한적한 강가에서 밤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있었다. 트럭 아저씨가 그 사람들 쪽으로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계단을 내려가 아저씨 곁으로 슬금슬금 걸어갔다. 그러고는 옆에 다소곳이 서서 아저씨를 흘끔거렸다.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 못 보았는데 펑퍼짐한 청바지에 흰색 페인트가 잔뜩 튀어 있었다. 얼마 전부터 학교 근처 낡은 아파트 단지를 부수고 재건축 공사를 해서 등하굣길에 공사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아저씨는 그 사람들과 차림새가 무척 비슷했다. 몸 쓰는 일을 오랫동안 해 왔음을 증명하듯 아저씨의 짧은 팔다리는 무척 다부져 보였다. 나이는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쯤 되어 보였다.
    아저씨는 말없이 강가에 쪼그리고 앉아서 낚시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뭐라고 말을 붙여야 할까 망설이는데 옆에서 낚싯줄을 손질하던 낚시꾼이 아저씨에게 불쑥 말을 걸었다.
    “댁의 아들인가 보죠?”
    아저씨가 나를 흘끗 보더니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낚시꾼들은 강에서 쏘가리와 피라미들을 건져 올렸다. 낚은 고기를 집에 가져가서 매운탕을 끓여 먹을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입안에 침이 고였다.
    아저씨가 강물에 발을 씻고 일어섰다. 나는 쭈뼛쭈뼛 아저씨 뒤를 따라갔다. 아저씨는 휴게소 식당으로 들어가 모자를 벗어들고 팔뚝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치더니 메뉴판을 올려다보았다.
    “뭐 먹을래?”
    아저씨가 물었다.
    “아무거나요.”
    “햄버거 좋아하니?”
    나는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햄버거 두 개 주세요.”
    아저씨가 점원을 향해 웃자 크고 고른 이가 드러났다. 검붉은 피부색 때문에 이가 더욱 하얘 보였다. 아저씨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를 꺼내더니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 펴서 계산대에 내려놓았다.
    (/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1978~
    출생지 서울
    출간도서 12종
    판매수 15,619권

    1978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에서 아동학을 전공했다. 착하고 지혜롭고 밝은 사람과 함께 밥을 먹고 산책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가끔은 철저히 혼자가 되어서 글을 쓰지 않고는 못 배긴다. 기분이 좋을 땐 요리를 산더미처럼 해놓고, 기운이 넘칠 땐 자원봉사를 나간다. 마음이 심란할 때에는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거나 통기타를 친다. 지은 책으로 [쥐를 잡자][길은 뜨겁다][나는 누구의 아바타일까][옷이 나를 입은 어느 날] 등이 있다.

    언론사 추천 및 수상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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