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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깊이 사람의 깊이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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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세상살이에 대한 느긋한 해학과 깊은 애정에서 솟아나는 삶의 예찬

    [어느 날 문득 손을 바라본다]라는 산문집 이후 4년 만에 최일남 작가의 인품과 정신성이 빛나는 신작 에세이 [풍경의 깊이 사람의 깊이]가 출간되었다.
    최일남 작가가 2006년부터 2010년까지 [현대문학]이나 각종 언론사 등에 발표한 칼럼과 에세이들을 모은 것으로, 독서 일기나 문학 작품평, 언론인 출신 소설가답게 기자 생활 당시 함께했던 내로라하는 문장가들과의 교우와 그들의 인생과 인품 등을 되돌아보는 주옥같은 추억담이 백미이다.
    특히 최일남 작가는 뛰어난 문장력과 사색적 글쓰기로 문인들 사이에서도 손꼽히는 명문장가로 통하며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이자 명칼럼니스트이다.
    따라서 이번 에세이에 담겨진 노작가의 세상을 바라보는 빛나는 통찰력과 깊은 인간애는 가벼운 글쓰기가 범람하는 현 도서 시장에서 묵직한 파문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문학과 언론의 경계를 넘나들며 활발히 활동해온 작가의 심층적 사유는 인간으로서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인지를 사색케 하는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갈 것이다.


    세월의 연륜이 빚어낸 아름다운 켜! 삶을 바라보는 깊이가 달라진다

    [풍경의 깊이 사람의 깊이]는 문단과 언론의 거목 최일남 작가가 노년의 정력을 여지없이 발산한 신작 에세이집이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언론인으로서의 삶을 꾸려온 작가는 민국일보 문화부장, 동아일보 문화부장, 경향신문 문화부장, 한겨레신문 논설고문 등을 지내며 명칼럼니스트로 명성을 날렸다.

    또한 일찍이 단편 '흐르는 북'으로 문단의 높은 평가를 받으며 이상문학상을 수상, 소설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구축한 빼어난 문장가로도 유명하다. 그의 글쓰기는 사실 위주의 기사를 넘어 예술의 높은 벽까지 넘나들며 절정을 맞이하고 있다.

    예리한 역사적 감각, 현실 비판 의식을 함축적으로 전면에 드러내면서도 날카로운 공격이 아니라 유머와 해학 넘치는 문체로 모두가 공감하는 건전한 상식의 세계를 이야기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월탄문학상, 소설문학상, 한국창작문학상, 이상문학상, 인촌문학상 등 굵직한 문학상들을 수상하였다. 이처럼 그의 문학적 업적은 우리 문단에 확고히 자리매김하였다.

    한국 문단에서는 최일남의 작품 세계가 빠른 발전 속도를 보이는 도시보다도 낙후된 고향과 시골 출신의 도시인들에게 문학적 초점을 맞춘 것으로 평가한다. 작가의 이러한 시선은[풍경의 깊이 사람의 깊이]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노작가가 바라보는 세상, 그 세계 속에 녹아든 여유와 해학, 위트와 유머, 사람과 풍경을 통해 내면의 깊이를 통찰하는 웅숭깊은 시선이 담겨 있다. 그 능수능란한 글쓰기에는 타인과 사물, 세상을 바라보는 부드러움과 날카로움이 양날의 칼로 번뜩이고 있다.

    이 책은 문인과 언론인이라는 두 가지 큰 줄기의 삶을 살아온 작가의 사유가 잘 어우러져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기자로 활동하던 시절의 에피소드와 희대의 걸출한 기자이자 정치가였던 조세형, 김중배, 최정호, 경제학자이자 문장가인 정운영, 명칼럼니스트 이규태 선생들에 대한 추억과 필법에 관한 소고, 문단에서 소설가로 활동하며 겪은 이야기와 하근찬, 김소운 선생의 삶과 그들의 작가 정신을 되짚어 본다.

    가벼움으로 점철된 요즈음의 세태 속에서 삶의 켜를 보여주는 노작가의 웅숭깊은 글쓰기는 독자들의 가슴을 저릿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감동과 울림이 있다.
    말미에 수록된 곽효환 시인의 '그리운 청년, 최일남'은 작가의 삶을 압축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헌시이다.


    인생 60, 70을 넘어서 이 사람처럼 살고 싶다……

    그리운 청년, 최일남 / 영원한 청년, 최일남

    “역사가 공공의 재산이라면 개개인의 삶은 필경 사람에 대한 기억과 사연으로 점철되는 것이 아닐까”
    ― 최일남의 칼칼하고 야무진 ‘사람들의 이야기’


    평론가 김병익 선생에 의하면, 최일남의 창작 이력에서는 두 가지 특이한 점이 발견된다. 그 하나가 작품 발표가 후년에 부쩍 활발해진다는 점이다. 1956년 <파양 爬痒>으로 문단에 정식 데뷔 이후 이제까지 창작한 50여 편의 3분의 2 이상이 최근 몇 년 동안에 써낸 것이다. 김병익 선생은 그의 이러한 경과는 초기에 작품을 남발하다가 중년대에 들어 질량質量의 저조를 면치 못하는 대부분의 작가들과 상반된 현상을 보여 준다고 평한다.

    이 책 [풍경의 깊이 사람의 깊이]를 내며 저자는 이렇게 너스레를 푼다.

    “……형형색색의 알약을 조석으로 입에 털어 넣는 위선을 떨며 열심히 산 덕에 또 책을 내게 되었다. 산문집 [어느 날 문득 손을 바라본다]를 쓴 지 4년 만이다. 거저먹은 나이를 쿠션인 양 깔고 앉아 이 노릇이 모두 정년이 따로 없는 문학 덕분이라고 응석 부리기 무안하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이 책은 사람에 관한 책이다. 다른 여느 사람이 아니라 최일남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름을 들으면 우리도 ‘아, 그 사람’ 하고 나도 안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인물들이지만 이 책에서는 최일남의 시야에서, 최일남의 뇌리에서 재조직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저자는 이들의 이야기를 묶으면서, “애초에 작심한 건 아닌데 이번에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역사가 공공의 재산이라면 개개인의 삶은 필경 사람에 대한 기억과 사연으로 점철되는 것이 아닐까”라고 운을 떼고는, 다시 “나는 따라서 잠 안 오는 밤이 적적하지 않다. 시척지근한 회상에 갈수록 느는 능청을 입힌 까닭이다. 머릿속에 가득 저장해 둔 인물을 무작위로 골라 수작하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슬그머니 눙친다.
    그러기에 글 속의 등장인물들은 “너랑은 안 논다고 내뺀들 소용없다. 일방적 선택권이 내게만 있는 터라서 상대방은 싫어도 시간을 내줄밖에 없게” 되고 만다.

    두 번째로 김병익 평론가가 꼽은 그의 특이점은 창작 생활 30년 동안 한결같이 단편문학만을 고수해 왔다는 점이다. 그는 모든 작가들이 어렵지 않게 집필하는 장편소설은커녕 중편에도 유혹되지 않고 단편으로만 만족해 온 것이다. 김병익 선생은, 그의 이 같은 견고한 자세는 단편 중심의 우리 문학사에 더욱 꿋꿋한 자산이 되고 있고 그를 통해 최일남은 삶의 단면에 대한 통렬한 해부라는 문학적 성과를 얻는다고 논평하고 있다.

    최일남은 여기서 바느질의 달인이셨던, 너무 일찍 떠난 저세상의 어머니를 끄집어낸다. 그는, 본을 따라 혼 두 짝의 무명천을 박음질하다가 순식간에 버선목을 확 뒤집는 솜씨가 기막혔다고 하면서, 그처럼 어머니의 “매운 손끝을 본받아서도 내 글쓰기가 좀 칼칼하고 야무졌으면 싶은 헛된 소망을 웃으며 세월은 아 잘 간다. 이 앓는 소릴랑 그만 거두고 어기적어기적 가는 데까지 가보자꾸나” 하며 시들지 않는 열정과 매운 손끝에서 나오는 칼칼하고 야무진 글발로 자신의 사람 자산을 풀어놓는다.


    [길을 나서면 생각이 깊어진다] 中에서

    저자는 산이라는 풍경 속에서 사람을 발견한다. 그에게 풍경은 인간이 만날 수 있는 자연의 대상으로 존재한다.

    산 이야기도 결국은 사람 이야기의 또 다른 국면에 다름 아니라는 뜻에서 시덥잖은 경험을 몇 가지 들었다.
    산뿐인가. 나서면 고생인 길을 사람들은 갈수록 바친다. 그것도 셈에 안 차 더 깊은 곳, 더 외진 곳을 찾자고 애쓴다. 일에 치이고 빠름과 번잡에 멀미를 내는 글로벌 인생들의 자연에 대한 괄목상대로 여기면 그만이지만 즉흥적 취향이 너무 가벼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진짜 비경일랑 몸으로 마음으로 그걸 사랑해 마지않는, 바지런하고 눈 밝은 사람을 위해 제발 남겨두라는 충고를 어떤 구안지사(具眼之士)로부터 들었다.

    산속에서 만나는 비경은 신비롭게 남겨두라는 말처럼 이 책에는 삶에서 좀처럼 찾을 수 없는 비경들이 숨어 있다. 우리 삶에 진정한 의미는 저자가 말하는 비경처럼 노력하는 사람에게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이러한 노력의 중요성을 말하고, 비경을 찾는 길을 안내해 준다.


    구성

    ‘길을 나서면 생각이 깊어진다 / 열정과 서정과 자책과 / 풍경의 깊이 사랑의 깊이’ 등 총 3부로 구성되었고, 작가의 뛰어난 감식안을 통해 엄선한 19편의 주옥같은 작품들로 꾸며진 에세이집이다.

    1부 길을 나서면 생각이 깊어진다
    작가가 지나온 삶을 반추하면서 인생의 깊이를 드러내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길을 나서면서 생각의 깊이를 가늠하고, 백범의 ‘사가살 불가욕’을 언급하며 ‘선비는 죽일지언정 욕을 보이지는 않는 법’이라는 높은 선비 정신과 고매한 인격 등에 대해 되새긴다.

    2부 열정과 서정과 자책과
    신문 기자 생활 50년 경력을 지닌 김중배의 글쓰기, 걸출한 기자이자 춘추필법의 정치가였던 조세형, 경제학자 정운영, 이규태, 최정호 등이 보여준 투철한 언론 정신과 김소운, 하근찬 선생과 교우한 감동 어린 에피소드를 특유의 해학과 인간미 넘치는 문체로 풀어내고 있다.

    3부 풍경의 깊이, 사람의 깊이
    실명을 작품에 직접 거론하며 무르녹은 파격을 이룬 이시영의 시집[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와 무리 문단의 거성 김윤식 교수의 문체의 한 특징을 보여주는 ‘서문집’에 덧붙이는 말, 정통 문예지 [현대문학]창간 55년을 기념하며 문학잡지의 위상과 나아갈 방향 제시, 일본 문학 산책 등 작가의 문학적 취향과 품격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목차

    작가의 말

    1부 길을 나서면 생각이 깊어진다
    · 길을 나서면 생각이 깊어진다
    · 선비는 죽일지언정……
    · 쑥 캐는 남자
    · 노래는 흘러가는 것이 아니네
    · 그때 축사가 있었어
    · 최정호의 안경
    · ‘영맹(英盲)’을 위로 받은 [영어, 내 마음의 식민주의]
    · 오리아나 팔라치의 죽음

    2부 열정과 서정과 자책과
    · 열정과 서정과 자책과 - 신문기자 50년, 김중배의 글쓰기
    · 그는 늘 신선한 바람을 꿈꿨다 - 걸출한 기자. 춘추필법의 정치가 조세형
    · 김소운 문학의 슬픔과 성취
    · 아주 꿋꿋한 문인 하근찬
    · 다시 읽는 정운영의 글
    · ‘이규태 코너’5000회

    3부 풍경의 깊이 사람의 깊이
    · 실명으로 무르녹은 파격 - 이시영 시집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
    · 김윤식투 문체의 한 재미 - 그의 ‘서문집’에 덧붙이는 말
    · 문학 잡지의 나이
    · 어떤 일본 문학 산책
    · ‘일본 제일’의 노래 [국가의 품격]

    헌시_ 곽효환 시인 '그리운 청년, 최일남'

    본문중에서

    산 이야기도 결국은 사람 이야기의 또 다른 국면에 다름 아니라는 뜻에서 시답잖은 경험을 몇 가지 들었다.
    산뿐인가. 나서면 고생인 길을 사람들은 갈수록 바친다. 그것도 셈에 안 차 더 깊은 곳, 더 외진 곳을 찾자고 애쓴다. 일에 치이고 빠름과 번잡에 멀미를 내는 글로벌 인생들의 자연에 대한 괄목상대로 여기면 그만이지만 즉흥적 취향으로 가벼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상업성 테마여행이 또 이를 부추긴다. 좁은 강토에 인적 드문 ‘숫땅’이 있으면 얼마나 있다고, 그런 곳이 설사 남았다손 치더라도 그것마저 우르르 들이닥쳐 뭉개면 곤란하다.

    그러니까 글쟁이는, 특히 소설가는 엉덩이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진득하게 방을 지키다가도 수틀리면 바깥으로 나돌라는 따위 희떠운 소리를 하려는 게 아니다. 길을 나서면 슬며시 떠오르는 탈각의 느낌이 무엇보다 좋다. 집에 벗어두고 온 허물을 객관화시켜 멀리 바라보는 계기로 다시없다. 돌아가면 또 다시 걸칠 허물일지언정 그렇다.

    ‘선비’ 두 글자에 넘나드는 내 생각들이 어쩌면 부질없고 버겁다. 하지만 어느 세월 어느 지경을 살건, 지금보다는 훨씬 치열하게 삶을 살고 살아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 선비다. 그런 윗대들을 그리고 싶었다.

    나물보다는 향수를 캐는 사람들이지 싶다. 몸은 비록 시멘트 군락을 벗어나지 못할망정 마음은 때때로 고향을 떠돌아 행장을 차리고 나섰을 게다. 보드랍게 씹히는 맛과 쌉싸래한 향기가 입 안에 가득 퍼지는 쑥국이 그리워 식구들에게도 보시하듯 끓여 주고 싶었을 것이다. 마늘과 함께 단군할아버지를 탄생시킨 웅녀 신화는 둘째로 치고라도.
    이 풍진 세상에 무엇이 가장 보수적이니 어쩌니 해도 혀처럼 정확하고 고집불통인 감각 기능도 드물다. 저장 검색에 뛰어난 머리가 챙기지 못하는 맛일 세 치 혀는 귀신처럼 단박 알아낸다. 그러라고 달린 것 아니냐 반문하면 할 말이 없되, 어떨 적에는 대여섯 살 때 입맛까지 기억하는 신통력이 정말 무섭다.

    슬퍼도 아리랑 기뻐도 아리랑인 셈이다. 시대의 빛과 그늘을 반사하는 과정에서 굴신(屈伸)의 여유를 터득했다고 볼 수 있다. 민족 정서를 대표하는 노래 이상으로 문학 예술이나 여러 고장의 민요로 형식과 모양을 바꿔 가면서 새로운 경지를 텄다.
    나운규의 <아리랑> 영화가 일제 치하 민중의 울분을 영상으로 표현했다면, 김산의 [아리랑]은 투쟁과 고난에 찬 짧은 인생의 표상이다. 그는 자신의 구술과 자료를 토대로 책을 지은 님 웨일스에게 알렸다. ‘아리랑은 이 나라 비극의 상징이다. 죽음의 노래이지 삶의 노래는 아니다. 그러나 죽음은 패배하지 않는다. 수많은 죽음 속에서 승리가 태어날 수도 있다’고.
    하여 맨입으로 논다. 해가 갈수록 단순한 것에 끌리는 자의 이상한 청승으로 치부하면 곤란하다. 사회적으로는 가뭇없이 사라진 노래라 하더라도 내 노래의 역사 속에 기어이 살아남아 주인의 감정을 요사바사 간질이거나 위무하는 것들 가운데에는, 생김새가 멀쩡한 놈도 쌨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노래에 껴묻은 인물이라든가 당대의 상황을 줌인 수법으로 확 다가가게 만든다. 그토록 맹랑한 것이 노래다. 엊그제 생긴 일보다 예닐곱 무렵에 부른 노래가 더더욱 생생하지 말란 법 없다. 거꾸로 가는 기억력의 방정에 노년은 못 이기는 척 뇌동부화를 마음먹는다.

    모든 노래는 물레방아를 돌리고 흘러가는 물이 정녕 아니라고 믿는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꽁꽁 숨었다가 저를 알아주는 사람 앞에 나타나 제 할 일을 하고는 다시 자취를 감출 뿐이다. 그것으로 족하다. 그러면 됐다.

    그의 논설위원 16년은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과 맞물려 한층 어둡고 괴로웠다. 그것은 쓰는 자의 슬픔인가. 보람인가.
    어쨌거나 그는 피하지 않았다. 엄숙할 때 엄숙하고 단호할 때 단호한, 총체적으로 비감에 찬 글을 쓰되 유연한 필치와 높은 격을 유지하도록 유의하면서 절망하고 희망했다. 성실한 언론인의 각별한 안목과 광범한 독서를 기반 삼아서.

    나야 어차피 본업으로 돌아온 폭이되 두 분의 그 시절 수난이 참으로 컸다. 잘 견디고 이겨내는 걸 지켜보면서 그런 때일수록 본래의 바탕이 드러나기 마련인 사람 노릇의 어려움을 생각하고, 닥친 위기를 어떻게 슬기롭게 넘기느냐에 따라 타의에 의해 휜 일신(一身)의 굴절을 반듯하게 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관점에서 이 시기는 조 의원의 내구(耐久) 체질을 굳히는 데 차라리 일조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정치를 통한 인생의 대전환을 마음먹고 나서자마자 몰린 현실이 너무 엉뚱하고 참담할지언정, 드디어 정성껏 쌓은 내공과 진취적 지향이 그의 훗날을 도왔으니까. 아니 적극 개척해 나갔다.

    본인의 술회마따나 차표 없이 맨발로 걸은 그의 인생행로는 돌아온 조국에서 쓴 회상록 제목을 ‘역려기(逆旅記)’로 달 만큼 표박(漂泊)과 비분으로 시종 고달팠다.
    그러나 그것이 곧 김소운 문학의 힘이자 끈기의 원천이었다면 어쩔 텐가. 처음도 혼자요 숨이 끊어질 적에도 혼자였던 문사의 당찬 기백으로 인생파적 글쓰기를 고집하며 배산임수의 곤경을 뚫고 30여 권의 책을 생산했다. 한 번도 졸업장을 받아보지 못한 ‘도서관대학’ 출신의 익살을 떨며 태생적 페이소스를 파토스로 격상시켰다.

    훗날의 하 형은 근력이 전만 못한 까닭에도 나와 맞댄 술잔이 작고 시간도 오래 끌지 못했다. 술이 도에 넘친들 입이 걸까. 그는 줄창 문인의 할 바와 선비의 높은 경지를 읊는 게 고작이었다.
    맞다. 시조를 읊듯이 느리게 설파하던 생각이 난다. 문인들의 해외여행에 끼어 떠난 외지에서 둘이 한 방을 쓴 것 까지는 좋았으나, 선비의 품성과 문인의 금도를 밤새껏 듣느라 혼났다. 키나 작은가. 나보다 두 뼘 세 뼘쯤은 큰 만큼 빳빳한 좌고(坐高)를 의연히 세우고 거듭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음주 이전이나 이후를 불문하고 작아 견디기 수월하다. 상대방의 응답을 기대하지도 않는 독백의 격이 높았다.
    하근찬, 세상을 뜬 지 어느새 2년, 그리운 이름이다.

    하긴 글을 쓰는 주체를 어떻게 부르느냐는 따위 문제가 뭐 그리 대단하랴. 중요한 것은 내용이고 정운영은 그걸 위해 힘껏 쓰다 갔는데, 나는 그가 부수적이라고 여겼을 표현을 중심으로 이 말 저 말 늘어놓아 민망하다.
    하지만 그것도 사람이 사람에게 다가가는 방편의 하나로 중요하다. [나라 위해 우리 변절합시다]라는 글에서 그가 토로한 역지사지 사고의 당위를 절감한다. 칼럼니스트 처지를 아무도 제 편으로 끼워 주지 않는 광대의 고독에 비유한 그의 ‘탄식’을 아울러 떠올린다.
    어디에 서 있건, 세월이 어떻게 뒤바뀌건 간에 쓰는 자는 그렇게 고단하다. 하긴 그게 곧 글쓰기의 힘이다. 싫으면 못하는 짓이다. 정운영의 유서 같은 두 책을 읽으며 재삼 통감한다.

    다 늦게 얘기하기 새삼스럽지만 ‘이규태 코너’는 이 점에서 아주 특이하다. 나날의 생활 속에서 불거진 파편 같은 현실에 나름의 줄기를 세우고 가닥을 잡는다. 수백 수천 년을 종횡무진 오르내리는 가운데 오늘의 어떤 현상이나 인물의 행동이 어제와 닿아 있음을 상기시킨다. 따라서 그의 붓끝은 고릿적 신라적 송장까지 때때로 벌떡벌떡 일으켜 세운다. 일어서서 우리에게 주절주절 말을 걸게 만든다. 스러진 것들의 그런 육화(肉化) 과정에서 느끼는 재미는 말할 나위 없다.
    칼럼 본래의 속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물론 한편에 있다. 당대의 눈으로 보고 다뤄야 할 사안을 폭 삭은 옛날로 끌고 올라가 연결 규정하는 까닭에 신문의 원천적 구실과는 동떨어진다는 시각이 없지 않다. 아닌 게 아니라 동서양을 막론하고 매우 드문 필법이다. 하지만 생각하기 나름이다. 두드러진 차별화 의도는 여하간 매사를 깊고 넓게 에둘러 모두 함께 서 있는 시점을 더 좀 포괄적으로 파악하려는 노력으로 볼 만하다. 변죽을 울리는 척 하다가 문제의 핵심에 다가서자는 수법이다.

    자신이 써낸 책들의 머리말만을 모은[김윤식 서문집]은 파격도 이만저만이다. 대하느니 처음인 발상의 묘가 일단 놀랍고 희한하다. 끊임없이 펴낸 저서가 그만큼 방대한 증좌려니와, 훗날의 집대성을 미리 염두에 두었던 것처럼 문맥이 그런 대로 잘 맞아떨어져 이럴 수가 싶다. 그랬을 리는 만무인데도 연대순으로 차례차례 나열한 그때그때의 머리말을 읽노라면 문학평론으로 평생을 묶은 이의 외곬 역정이 한눈에 잡힌다. 평론 본래의 생경한 성깔에 가려 있던 글쟁이의 진솔한 자기 노출과 풍경 묘사에 공감하며, 뼈대 위주 글줄에 알맞게 살을 붙이는 넉넉함을 엿보았다. 젊은 시절의 긴장이 연륜을 쌓아가면서 느슨히 풀리는가 싶자 자신을 얼른 다잡는 기미를 느끼게도 했다. 경어체나 편지 형식으로 문체의 변화를 꾀하고 책의 성격에 따라 양을 적절히 줄이든가 늘이는 솜씨에, 그가 남을 추어올릴 때 곧잘 쓰는 ‘고수’의 경지를 떠올렸다.
    (/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1932.12.29~
    출생지 전북 전주
    출간도서 17종
    판매수 5,742권

    1932년 전북 전주에서 출생하였고, 서울대 문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53년 '쑥 이야기'가 [문예]에, 그리고 1956년에는 '파양'이 [현대문학]에 추천되어 등단하였다.
    저서로는 소설집 [서울 사람들][타령][춘자의 사계][손꼽아 헤어보니][너무 큰 나무][홰치는 소리][누님의 겨울][히틀러나 진달래][그때 말이 있었네][아주 느린 시간][석류], 장편소설 [거룩한 응달][그리고 흔들리는 배][숨통][하얀 손][덧없어라, 그 들녘][만년필과 파피루스]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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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년월일 1936~
    출생지 경기도 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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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는 우현. 1936년 경기 화성에서 출생하여 1960년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했다. 국전에서 9회에 걸쳐 특선을 수상했으며, 1974년 국전 추천 작가로 선정됐으며, 이후 초대작가와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49세의 나이에(1984) 첫 개인전을 가진 이후 세 번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1972년 인도 트리엔날레 출품 이후 국내외서 수십 차례의 초대전에 참가했다. 현재 동국대 예술대 학장을 역임하고 있다. 송영방은 산수화, 인물 및 화조에도 능할 뿐 아니라 누드화, 불화, 삽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골고루 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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