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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느긋이, 마음의 속도대로!

포도가 먹는 방법에 따라 싱싱한 맛이 다르듯 책도 읽는 방법 하나에 책 자체가 달라진다. 『천천히 읽기를 권함』은 그동안 '천천히 읽기'를 강조한 사람들, 즉 비평가이자 문학사가인 에밀 파게와 작가인 귀스타브 플로베르, 헨리 밀러, 발레리 라르보, 앙드레 지드 등의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가 그동안 아주 '천천히' 읽으면서 간혹 맛본 '황홀한 순간'들에 대해서도 담고 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무엇보다도 책을 천천히 읽자는 주장을 자신의 즐거운 체험을 통해서 섬세하게 풀어나간다. “책을 읽는 방식이 삶의 방식”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몸의 리듬과 마음의 속도에 맞추어 책을 읽고 삶을 대할 때에 두 배로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강조한다. ‘빨리’ ‘많이’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 놓고 천천히, 느긋이, 마음의 속도대로, 때로는 한 곳에 오래 머물기도 하면서 책을 읽으면 삶이 편안하고 즐거워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삶의 방식에 대한 일침이다.

“몸의 리듬, 마음의 속도에 맞춘 책읽기, 삶이 두 배로 즐거워진다”
책읽기가 일인 세상이 되어버렸다. 책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얻는 것도 일이요, 교양을 늘리거나 처세의 교훈을 얻는 것도 일이 되었다. 생산을 위한 일이 아닌 것은 무가치한 일,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선언하고 단죄하는 세상에서 휴식과 여흥 혹은 원초적인 감각과 리듬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근래 들어 ‘느리게 살기’ ‘게으르게 살기’ 같은, 다분히 반사회적이고 그래서 모반적인 느낌마저 주는 캐치프레이즈를 통해 표출되고 있다. 당연하고도 다행한 일이기도 한 이 일련의 움직임 속에 바로 이 책 《천천히 읽기를 권함》도 자리 매김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무엇보다도 책을 천천히 읽자는 주장을, 그러나 주장의 방식으로가 아니라 자신의 즐거운 체험을 통해서 곡진하게 풀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천천히 읽자는 것은 책읽기가 더이상 ‘일’이 아니게 하자는 말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러한 생각과 맥락으로, 곧 “책을 읽는 방식이 삶의 방식”이라는 관점에서 이 책을 쓰고 있다. 살아가는 리듬이 다르면 세계관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다. 책읽기의 리듬이 살아가는 리듬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저자가 그 동안 아주 ‘천천히’ 읽으면서 맛본 ‘황홀한 순간’들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소개하는 ‘황홀한 독서’의 경험은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한 구절로부터 시작한다. “무사태평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라는 구절. 그는 이 책을 세 번째 읽었을 때 비로소 이 문장의 참맛을 느낀다. “석양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집안은 쥐 죽은 듯 조용해진다. 소설도 조용해진다. 그 장면에서 위의 한 줄이 턱 하니 나온다. 이렇게 고요한 야음夜陰의 광경이, 이렇게 적막한 말이 이 소설에 있었던가. 쓸쓸하고 절실한, 그래서 오히려 행복감마저 들게 하는 깊은 마음…… 몇 분인가 그런 기분을 맛보았다. 예전에는 거기까지 마음이 미치지 못했다. 그때는 이 절절하다고도 할 수 있는 문장이 눈을 속이고 지나가 버렸었다. 읽고 감명을 받았는데 지금은 잊어버렸다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눈에는 비치지만 인상을 남기지 않았던 것이다. 왜일까? 답은 뻔하다. ‘빨리’ 읽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 책에는 책읽기의 행복한 경험담들로 가득하다. 모든 장章마다 저자 자신이 읽으며 발견한 책읽기의 즐거움이 풍부한 예문과 함께 수북히 담겨 있다. 저자의 그런 시선을 따라가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런가 하면 그는 속독과 남독의 폐해에 대한 비판과 우려에 이 책의 일정 부분을 할애한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이야기하는 ‘한 쪽 읽는 데 1초, 좀 늦더라도 2, 3초’라는 읽기 방식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서 “책을 빨리 읽어버리는 것은 나에게 책이 가져다주는 모든 행복을 포기하는 일로 보인다”는 말로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또 “신문, 잡문 또는 그 밖의 책을 남독濫讀하는 사람들을 보라. 그 사람의 눈동자는 흐트러져 있다”라는 엔도 류키치의 말을 인용해 남독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고 일본의 한 평론가는 이야기했다. 옮긴이도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책 읽는 일이 이렇게 행복한 일이라는 걸 문득 깨닫는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러한 고백들은 어쩌면 책읽기가 더 이상 일이 아니라는 고백이기도 할 것이다. ‘일’로서의 부담을 없애고 천천히, 느긋이, 마음의 속도대로, 때로는 한곳에 오래 머물기도 하면서 책을 읽으면 삶이 편안하고 즐거워진다는 것이다.
이 책의 추천문을 써준 권정생, 공선옥 두 분도 책읽기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자신들의 어린 시절 얘기와 함께 들려주고 있다. 아동문학가인 권정생 선생은 “소년 시절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이틀 만에 다 읽어버린 것이 아직도 후회스럽다. 한 열흘간 천천히 읽었더라면 《죄와 벌》의 내용을 더 많이 기억할 수 있었을 테니까. 야마무라 오사무의 이 책을 그래서 꼭 권하고 싶다”라고 하였고, 소설가 공선옥 선생도 “이 책은 바로 책 한 권을 보듬고 만지고 냄새 맡으며, 한 단어, 한 문장을 밥을 씹듯이 천천히 음미하던 시절의 행복을 강렬하게 환기시킨다. 책이 넘쳐나는 시절에도 천천히 읽으면 책은 그리도 맛있는 것이 되는 것을”이라며 이 책에 대해 극찬을 했다.

이 책이 발간되자 일본의 유수한 신문들이 이 책에 대해 앞다투어 보도했다. 대표적으로《요미우리신문》은 “독서는 양이 아니라 질이다. 자신이 읽고 싶은 것을 천천히 읽으면 된다. 속독파, 다독파가 위세를 부리는 시대에 이런 진지한 목소리가 반갑다”,《일간 겐다이》는 “천천히 읽기를 권하고 있을 뿐인데 이렇게나 농밀한 내용의 책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매력적인 세계를 보여준다”, 그리고《도쿄신문》도 “빨리 읽을 수 없다고 해서 마음의 부담을 느낀다거나 독서의 방법이 서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꼭 읽어봤으면 싶다”라고 이 책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책읽기가 ‘일’일 수 없고 또 ‘일’이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이 책처럼 간명하게, 깊이 있게, 그리고 재미있게 보여준 책은 흔하지 않을 것이다. 책읽기의 즐거움을 통해 삶도 즐거워질 수 있다는 메시지 역시 별로 접해 보지 못했다. 이것이 이 책이 지금까지의 책읽기 주장을 담은 책들과 크게 다른 점이기도 하다.

천천히 읽는다
행복한 책읽기
생활의 시간
대식과 다독
독서의 주기
책을 손에 들고

저자 후기
옮긴이의 말
참고 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