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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얼굴이 녹을 때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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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최승호 시인의 2010년 신작 시집 [북극 얼굴이 녹을 때] 출간

    최승호 시인의 2010년 신작 시집 [북극 얼굴이 녹을 때]가 문학에디션 뿔에서 출간되었다. 최승호는 197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후 ‘오늘의 작가상’, ‘김수영문학상’, ‘대산문학상’, ‘미당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한 한국의 대표 시인이다.
    3년 만에 발표하는 이번 신작 시집 [북극 얼굴이 녹을 때]에는 총 71편의 시를 수록하였다. 최승호는 이번 시집에서 현대 도시의 존재와 무(無)의 경계를 탐색하면서 고독의 순간과 허무함을 형상화하고, 신체 감각을 자극하는 것들로 범벅된 도시 욕망의 진흙탕 속으로 뛰어드는 현대인의 초상을 날카롭게 직시한다. 또한 자본주의의 타락이라는 어두운 현실 안에서 적극적 관찰과 치열한 사유, 자연에 대한 교감, 극도로 절제된 언어로써 시 세계를 선보인다. 강력한 에너지와 활력을 지닌 자연 안에서 인간의 실존적 현상에 대한 탐구는 상처 입은 우리 삶의 재생과 회복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이번 시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이미지들은 ‘동물’ 이미지들이고 심지어는 ‘칸나’의 ‘붉은 색’과 그것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뜨거운 용암’에서도 ‘동물’ 이미지가 갖고 있는 강렬함과 역동성을 찾아볼 수가 있다. 최승호 시인이 교감하고 싶어 하는 자연의 속성도 바로 이러한 것이다. (……) ‘칸나’가 간직한 강렬한 색채감, 그것도 “뜨거운 용암들이 흘러넘치는 한라산”의 배경을 간직한 ‘칸나’를 주목하는 것도 이러한 생명의 에너지와 역동성에 대한 의지를 간직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 “쩌렁쩌렁한 햇빛”이라고 시각을 청각으로 돌려놓는 마음은 ‘묵은’ 제도와 질서를 타파하려는 마음, ‘최후의 인간’의 허물을 벗기려는 마음일 것이다. 이른바 ‘비반성적인 일상성’의 껍질을 벗겨 내는 시인의 작업인 셈이다. 이러한 작업에 신뢰가 가는 까닭은 무엇보다도 시인 스스로를 질타의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시가 스스로의 삶에 대한 ‘허물’을 벗겨 주리라는 규정은 그러므로 시인 스스로의 삶과 시 쓰기에 대한 의무이자 책임처럼 여겨진다. ‘최후의 인간’을 후려치는 ‘여름’의 뙤약볕과 그에 화답하는 ‘매미 울음소리’, 그것이 최승호 시인에게 마련된 새로운 채찍이다.―이경호(문학평론가)

    존재의 공허와 고독, 실존에 대한 치열한 사유

    그는 [북극 얼굴이 녹을 때]에서 “공허와 비애와 우울과 불안, 고독과 절망감과 그리움, 그 모든 것이 하나의 가슴에 들어 있”([가슴의 서랍들])다고 운을 뗀 뒤, 그러한 심정을 품게 하는 대도시 뒤편의 적막하고 공허한 풍경과 그 속에서 생을 살아내는 인물 등을 시에 담는다. “내면의 숲을 황폐화시킨 메뚜기”는 “큰길에 우글거리는 자동차들, 앞으로도 뒤로도 빼지 못하는 차 안에서 무력하게 앉아 있는 너, 나, 그리고 우리”([병목현상])의 처지를 대변해 준다. “고독한 기관사”는 “대도시의 밤”에 “일정한 고독의 높이에서”([먼지흡입열차]) 질주하며, 나는 “늘 취해서 사는 것 같다”며 “내안의 끈질긴 괴물 허무와 싸우면서” “언젠가는 나도 흔적 없이 사라지리라”([취한 밤])라고 탄식한다.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에서는 “고독이라는 거대한 등뼈가 솟아 있”는 “밤의 바다”에서 실존에 대해 치열하게 사유하며, 그 밑에 드리워진 심원한 “공허”와 “무(無)”를 맞닥뜨리게 된다.

    가슴이 있다는 것은 고통스럽다. 공허와 비애와 우울과 불안, 고독과 절망감과 그리움, 그 모든 것이 하나의 가슴에 들어 있지 않은가. 가슴이 있다는 것은 고통스럽다. 그렇다고 가슴의 서랍들을 다 빼 버리고 텅 빈 가슴으로 살아갈 수도 없는 일. 벽돌은 가슴이 없다. 구름도 가슴이 없다. 가슴이 있다는 것은 고통스럽다. ―[가슴의 서랍들]전문

    황량한 바다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밤은 보이지 않는 것들
    이름 붙일 수 없는 것들로 파도친다
    하늘과 땅을 갈라놓았던 수평선을 뭉개며
    밤이 깊어간다
    낮의 바닥에 이글거리는 공허가 있고
    밤의 심연에는 꿈틀거리는 무가 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것]부분

    어쩌면 현대를 사는 우리는 “무(無)”를 좇는 “무의 사냥꾼”처럼 “피로와 절망감 속에서 터벅터벅 빈손으로”([무의 사냥꾼]) 돌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집창촌이 철거되는 날에는, “박쥐떼 같은 창녀들이 뿔뿔이 어디로 흩어지는지”([황혼의 시든 창녀, 혹은 박쥐들]) 짐작이나 할 수 있는지 묻는다. 꿈속에서 환영처럼 본 “부패한 인어 한 마리”, “떼죽음 당한 인어들”([황량한 해안의 하룻밤])은 기억에서 지우려 해도 지우기 힘들다 고백한다. “어쩌면 죽음이란 눈앞에서 하루가 사라지는 것”일진대, 하루를 살다가는 하루살이의 아름다운 이름을 하나씩 적어봄으로써 “하루들의 총체가 내 인생”([나도꼬마하루살이])임을 노래한다.


    현대 자본주의 도시의 타락한 현실,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에 대한 통찰

    우리의 생애는 “시간의 인질”이 되어 흐른다. 시인은 우리가 “드라마를 봐도 인질, 쇼를 봐도 인질”이 되며 “밥을 먹고 똥을 누다” “시간의 인질로 죽어”([시간의 인질])가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본다. “물질들의 사막에 불어나는 물질의 목록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것”([멕시코로 가는 버스])처럼 보이며, 그저 “러시아워”와 “스모그”([러시아워]) 속으로 걸어갈 뿐이라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맨홀에서 몸을 팔아야 했”던 살해된 “인어”에게는 “저승에서 이런 퀴퀴한 이야기를 하느니 우리 이승의 술집으로 건너가 술 한잔하는 거 어때” 하며 자조하기도 한다. “겨울비 부슬부슬 내”리고 “허공”의 “점멸등”([맨홀 속의 인어])만이 깜빡이는 현대 도시의 풍경은 어둡고 적막하다.
    러시아워 속에서 러시아워 속으로
    스모그 속에서 스모그 속으로
    욕망에 떠밀리며 욕망들 속으로 걸어갑니다

    거대한 러시아워 속에서
    나는 큰 거품들에 떠밀리는 하찮은 물거품,
    텅 빈 자들 속의 텅 빈 자,
    혹은 물귀신(物鬼神) 무리 속의 물귀신

    스모그 속에서 스모그 속으로
    러시아워 속에서 러시아워 속으로
    불안을 불안해하며 초조하게 걸어갑니다

    먼 훗날 러시아워 속의 내 인생은
    들끓는 거품들에 붙어 있던 거품의 꿈,
    “내가 아름다운 생을 살았다고 전해주시오”―비트겐슈타인!
    그런 말을 할 혀가 남아 있기나 할는지

    ―[러시아워] 전문

    텔레비전의 “채널들은 전쟁중”이어서 한쪽에서는 “개그맨들이 입 큰 개구리들처럼 정신없이 뛰”고 다른 한쪽에서는 “북극의 거대한 얼굴”([리모컨])이 녹아내리는 장면이 흘러나온다. 욕망으로 가득 찬 세계는 전쟁터를 연상케 하면서 공허함과 상실감을 품게 한다. “코피를 쏟으면서까지 왜 그 짓을 해야 하는지 모르지만”([마야 프로그램]) 그 속에 빠져 헤어 나올 수 없을 정도로 욕망의 끝을 확인하기 어렵다. “밤의 환락가는 번들”거리며 “휘황한 색계(色界)의 불빛 속으로 눈 먼 인어들이 헤엄쳐 가는 것”([야광충])이 내려다보인다. “덧없는 쾌락의 밤들이 원망스럽구나!”라는 보들레르의 고뇌가 무색할 만큼 우리는 “그걸 깜빡 잊고 또다시 미끄러”지고 “수렁 여기저기에 진흙이 반죽된 사지들이 널려”([마왕의 꿈속에서])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시인 최승호는 감각이 무감각해지도록 휘황한 세계로 성큼 들어서는 인간의 욕망을 단적으로 보여 주면서 “수정체가 흘러내리는 안구, 눈다랑어 눈”([눈다랑어])을 먹거나 “우리는 난쟁이 흡혈귀들, 고로쇠나무의 피를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 동굴벽에 거인들의 외눈알을 새기리라”라는 고백을 통해 현대인의 삶이 시각적인 욕망에 좌우되고 있음을 간파한다.

    강렬한 생명체의 활력을 통한 재생, 자연과의 소통을 통한 삶의 회복

    [칸나]에서 시인은, 지금까지 타락한 자본주의 현실을 통렬하게 읊조리다 상처 입은 “혓바닥”이 “고름들로 퉁퉁 부어올라 있는 상태”라 고백한다. 그러면서도 “시커먼 화산재들이 치솟고 뜨거운 용암들이 흘러넘치는 한라산 밑에서 나는 붉은 꽃 칸나를 보고 있었다.”라며 “제주도의 여름”의 강력한 에너지 활동, 또는 강렬한 생명체의 활력이 꽃으로 피어난 모습을 통해 자연과의 소통, 삶의 회복을 꿈꾼다.

    칸나에 대해 쓰고 싶었다. 제주도의 여름, 현무암 돌담 아래 피어 있던 칸나, 그 붉은 꽃을 본 후로 칸나에 대해 쓰고 싶었지만 쓸 수 없었다. 어쩌면 오늘도 쓰려고 애쓰다가 그만둬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칸나인 것처럼 쓰고 싶었다. 칸나 속으로 들어가서 칸도 없고 나도 없는 칸나의 마음으로 말이다. 칸나! 칸나는 말의 저편에 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글이 이렇게 갑자기 벽에 부딪힐 때가 있다.
    칸나에 대해 쓰고 싶었다. 제주도의 여름, 붉은 칸나를 보고 충격을 받았던 그날, 무슨 일인지 내 혓바닥은 고름들로 퉁퉁 부어올라 있는 상태였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나는 칸나를 보고 있었다. 시커먼 화산재들이 치솟고 뜨거운 용암들이 흘러넘치는 한라산 밑에서 나는 꽃 붉은 칸나를 보고 있었다.

    이제는 굳어버린 불의 돌, 현무암, 그 거무스름한 돌담 아래 피어 있던 칸나의 붉은 꽃, 오늘도 칸나에 대해 제대로 쓰지 못한 느낌이 든다. 다음에는 칸나에 대해 더 잘 쓸 수도 있겠지.

    ―[칸나] 전문

    [분수]에서는 “물이라는 이상한 물질의 처녀막은 너무나 투명해서 그런 게 있었는지조차 모를 정도이다. 그 막은 찢어짐과 동시에 꿰매지고 피흘림 없이 처녀성을 회복”한다면서 물이 지닌 재생력을 통해 삶의 회복 가능성을 제시한다. 또 “소금쟁이들”이 물 위를 걸어갈 때마다 이는 “물무늬”는 “물렁물렁한 점토 위에 문자를 그려나갔던 수메르인들의 숨결”과 맞닿아 “해수욕장”의 인파 속에 “물방울무늬처럼 돋아나는 밤하늘의 별들”([물무늬])로서 존재 가치를 되찾게 된다.
    시인은 [북극 얼굴이 녹을 때]에서 치유력을 지닌 자연과 물질·도시 문명에 타락한 인간이 어우러지고자 하는 바람으로 삶의 재생 가능성을 이야기하며, 시 쓰기와 삶의 방향을 자연과 교감 나눌 수 있는 곳으로 이끌어 나가고 있다.

    ‘물’ 이미지를 통하여 최승호 시인이 이번 시집에서 기약하고 싶어 하는 시 쓰기와 삶의 방향은 이렇듯 자연과의 교감을 나누는 곳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전의 시 쓰기가 자본주의의의 현실과 거리를 두고 그것을 냉정하게 관찰하고 직관하는 작업에 주력하는 것이었다면 이번 시집에 드러나는 시 쓰기의 새로운 방향은 “내가 칸나인 것처럼 쓰고 싶었다.”([칸나])라는 고백처럼 자연과 일체감을 갖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 이미지는 그렇게 자연과 소통하여 회복되고 싶어 하는 존재감의 매개체인 셈이다.
    ―이경호(문학평론가)

    저자소개

    생년월일 1954.09.01~
    출생지 강원도 춘천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시인. 춘천 출생. 『대설주의보』, 『세속도시의 즐거움』, 『아메바』, 『방부제가 썩는 나라』 등의 시집이 있다. 어린이를 위한 동시를 쓰기도 했다. 말놀이 동시집 5권, 방시혁과 작업한 동요집, 뮤지와 작업한 랩동요집, 그리고 카툰동시집 2권이 있다. 오늘의 작가상, 김수영 문학상, 대산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choip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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