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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드라마가 되다 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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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역사의 객관적 서술이 가능한가를 둘러싼 논쟁은 아마 ‘역사 자체’만큼 역사가 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역사가 자신이 그 역사의 일부로 살아왔고 현재도 살고 있는 한, 객관적 서술 자체가 불가능한 작업일지도 모른다. 긴 한국사에서 역사의 방향을 바꾼 숱한 사건들의 의미를 제3자의 시각으로 서술한 헐버트의[한국사, 드라마가 되다](1, 2권)를 우리가 주목하고 이 책의 발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헐버트 박사의[한국사, 드라마가 되다]출간을 축하하며 김동진(헐버트박사 기념사업회 회장)
    먼저, 헐버트 박사의[한국사(The History of Korea)]번역본 출간에 축하를 보낸다.[한국사]는 1886년 조선 땅 제물포(인천)에 첫 발을 내디딘 이래 20여 년 동안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파헤쳐온 헐버트 박사의 한국사 연구의 대미를 장식하는 불세출의 역작이다.
    헐버트 박사는 당시의 한국, 즉 조선을 제대로 알기 위해 내한 초기부터 열심히 공부하여 우리말과 글을 우리 한국인들처럼 구사했을 뿐 아니라, 한글의 우수성과 독창성에 매료되어 그 스스로 한글학자가 되었다. 그리고 한글 연구에 대한 많은 논문을 국내외에 발표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한글이 당시 조선에서 제대로 쓰이지 않는 데 대해 매우 안타까워했으며, 모든 백성들이 쓰기 편한 한글을 배워 문맹으로부터 해방되기를 바랐다.
    헐버트 박사의 한글 연구는 당연히 그의 한국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많은 책과 한국인 친구들을 통해 그는 한국 역사를 하나하나 배워나갔다. 그리고 그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의 진수를 알게 되면서, 한민족은 분명 그 당시 미국인들이 생각했던 미개한 민족이 아닌 미래를 창조할 수 있는 뛰어난 민족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한·중·일 세 나라 국민 가운데 창의적이고 규범을 지키는 한국인이 앵글로색슨족의 특징에 가장 가깝다고까지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당시 지배층이 자신들의 안위만을 추구하는 당파성에는 일침을 가했다. 이와 더불어 한국인은 바람직한 목표만 정해지면 뛰어난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애정 어린 예언도 빠뜨리지 않았다. 이제 그 예언이 현실화되어가는 과정에 있다. 물론 그의 인종적인 편견을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인종 간의 환경과 그에 따른 성취를 어느 정도는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있을 것이다.
    헐버트 박사는 한국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한국사 연구에 박차를 가하면서 수많은 글들을 발표했다. 1901년부터 4년에 걸쳐 그 자신이 창간하고 주필로 있던 영문 월간지 [한국평론(The Korea Review)]에 그가 직접 탐구한 한국 역사에 대해 연속으로 기고했고, 이를 바탕으로 1905년 드디어 대작[한국사]가 탄생하게 되었다.
    [한국사]야말로 헐버트 박사의 한국 사랑의 결과물이자, 한국사 연구의 결정체이다. 또한 단군시대부터 조선시대, 그리고 구한말까지 다룬 역사적으로 매우 귀중한 책이다. 더구나 각 장을 떼어놓고 보면, 각각의 장이 한 편의 드라마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묘사가 너무나 생생해 사건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하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을미사변, 청일전쟁 등은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하고 역동적이다.
    이런 점과 더불어 당시에는 현존하는 임금의 왕조를 책에 담는 것은 금기된 사항이었으나 고종 황제의 윤허를 얻어 조선왕조를 책에 실었는데, 이는 우리 역사학계의 획기적 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학계는 이 책의 역사적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서 아직 침묵을 지키고 있다. 아니, 모르거나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그 이유에는[한국사]가 영문으로 되어 있고 1,000쪽이 넘는 대작이라서 한글로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에 1차적 원인이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헐버트 박사 기념사업회는 매우 안타까워하면서 묻혀 있는 보석[한국사]의 번역본이 빨리 나오기를 고대하던 중에 이번에 마침 리베르출판사에서 번역본이 나왔다. 철저한 검증과 읽기 쉬운 편집의 노고를 넘어 무엇보다 이 책이 우리말로 반듯하게 번역된 데 대해 리베르출판사에 큰 감사와 축하의 말씀을 전한다.
    또한 이 번역본을 통해 헐버트 박사의[한국사]가 한국 사학자들에 의해 올바르게 평가되어 새롭게 태어나기를 기대한다.

    ‘역사학계의 획기적 사건’
    헐버트 박사의[한국사, 드라마가 되다]완역본 출간


    천재적 역사학자이자 고종의 밀사였던 헐버트, 그가 당대의 귀중한 사료들을 바탕으로
    현대적, 객관적 시각의 한국사 원전을 최초로 쓰다!
    “나는 어느 한국인 학자의 도움을 받았다. 그는 과거 25년간 조선왕조의 역사를 연구하며 개인이 소장한 필사본 여러 권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 학자의 간곡한 부탁 때문에 이 책에 그의 이름을 밝히지 않겠다. 또한 나는 특별히 허락을 받아 서울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자료를 많이 갖춘 사설 도서관에 출입할 수 있었다.” -호머 헐버트

    소설보다 흥미진진한 이야기 한국사의 원전! 이방인이 생생하게 풀어쓴 5천년의 디테일!
    이 책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았던 역사적 사건들의 뒷면과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역사 사료로서도 독특하고 중요한 의미를 차지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잊고 있거나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는 사건들을 사료를 바탕으로 소설처럼 서술하여 독자들에게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특히 병자호란 막바지에 인조가 남한산성 옹성을 끝내고 청 태종 앞에서 무릎을 꿇는 이른바 ‘항복 의식’을 묘사한 부분에서는 한 슬픈 역사 드라마의 대단원을 보는 것 같고,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러일전쟁의 최대 격전지였던 제물포 해전을 묘사한 대목에서는 한 편의 전쟁 영화나 드라마처럼 흥미진진하다.
    1권에는 단군조선에서부터 조선 선조 때 일어난 임진왜란 초기까지의 역사가, 2권에는 임진왜란 중기부터 청나라와의 두 차례의 전쟁(정묘호란과 병자호란), 영·정조의 정치·문화적 개혁기, 그리고 1904년의 러일전쟁까지의 역사가 왕조 순, 사건 순으로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1권에서 ‘대마도가 신라의 속국이었다’는 기록을 읽으면, 독도 논쟁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2권에서 이순신 장군의 비사를 접하면 ‘이런 사실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한국사, 드라마가 되다]는 후대의 평역이 아닌, 당대의 살아 있는 기록들의 총합이다. 일제의 분서갱유로 인해 많은 사료가 유실된 지금에 와서는 아무리 훌륭한 학자라도 헐버트를 능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후대의 평역이 당대의 기록을 넘어설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소설을 쓴다 하더라도 이처럼 드라마틱하면서도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을 엮어내기는 힘들 것이다.

    이처럼 드라마틱한 역사가 있었던가! 최도영(mbc PD, 부국장)
    이처럼 드라마틱한 역사가 있었던가!
    역사학자이자 한글학자인 헐버트는 한국사를 마치 소설처럼 눈에 보이듯이 상세하고 재미있게 기술하고 있다. 다양한 사료를 근거로 고대사를 충실히 복원해낸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특히 근대사에 관한 상세하고 정확한 서술은 독보적이다. 그는 조선 후기에 조선에서 생활한 장본인이다.
    [한국사, 드라마가 되다]는 후대의 평역이 아닌, 당대의 살아 있는 기록들의 총합이다. 일제의 분서갱유로 인해 많은 사료가 유실된 지금에 와서는 아무리 훌륭한 학자라도 헐버트를 능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후대의 평역이 당대의 기록을 넘어설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소설을 쓴다 하더라도 이처럼 드라마틱하면서도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을 엮어내기는 힘들 것이다.

    당대 지성들의 지적 성과가 녹아 있는 대작! 강태욱(중앙일보 기자, 동시통역사)
    헐버트는 한국어와 한자를 한국인보다 더 잘 구사했다. 그가 고종의 특사로서 많은 사료들을 조회할 수 있었고, 조야의 수많은 학자들과 교유할 수 있었다. 따라서 그의 방대한 한국사는 그 자신만의 작품이라기보다 수많은 당대 지성들의 지적 성과가 함께 녹아 있다고 할 것이다. 더구나 헐버트가 제3자로서 이해관계나 정파에 구애받지 않고 역사를 기술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는 점은 더욱 의미가 있다.[한국사, 드라마가 되다]를 현대적 의미에서 최초의 한국사라고 본다면, 이 책을 한국사의 원전으로 꼽아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목차

    1권

    1부 고조선에서 삼한까지
    1장| 문명의 뿌리, 단군왕검
    2장| 통치의 달인, 기자
    3장| 위만, 숙인 다음 친다
    4장| 예맥, 옥저, 읍루, 말갈, 여진
    5장| 삼한―마한, 진한, 변한

    2부 삼국에서 통일시라까지
    1장| 삼국의 건국
    2장| 삼국의 성장
    3장| 삼국의 경쟁
    4장| 극으로 치닫는 삼국의 경쟁
    5장| 삼국의 발전
    6장| 전쟁에 휩싸인 삼국
    7장| 백제와 고구려의 멸망
    8장| 삼국 통일 이후의 신라

    3부 후삼국에서 몽골 침입까지
    1장| 후삼국 최후의 승자
    2장| 고려 초기
    3장| 거란의 침입
    4장| 핏빛으로 물든 고려 조정
    5장| 고려에 드리운 몽골의 그림자

    4부 몽골 치하에서 고려 멸망까지
    1장| 몽골의 발아래 놓인 고려
    2장| 고려, 몽골이 되다
    3장| 몽골 지배하의 고려
    4장| 왕조 몰락의 전조들
    5장| 이성계의 활약과 신돈의 장난
    6장| 뜨는 명과 지는 몽골 사이에서
    7장| 고려의 네로 우왕과 카이사르 이성계
    8장| 이성계, 루비콘 강을 건너다

    5부 조선 전기
    1장| 태조, 정조, 태종, 세종, 문종
    2장| 단종, 세조, 예종, 성종
    3장| 연산군, 중종, 인종, 명종

    6부 임진왜란
    1장| 전운이 감돌다
    2장| 처절한 패배
    3장| 선조, 한양을 버리다
    4장| 밀고 밀리는 전장
    5장| 선조, 의주로 피난하다
    6장| 전세가 역전되다


    2권

    1부 정유재란
    1장| 일본군의 후퇴
    2장| 선조가 한양으로 돌아오다
    3장| 일본의 2차 침공
    4장| 임진왜란, 그 이후

    2부 병자호란
    1장| 광해군의 중립외교
    2장| 만주족에게 충성을 맹세하다
    3장|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하다
    4장| 항전이냐 항복이냐
    5장| 삼전도의 굴욕
    6장| 효종, 북벌을 꿈꾸다

    3부 끊임없는 당쟁과 천주교의 확산
    1장| 끊임없는 당쟁과 보복
    2장| 당쟁과의 싸움
    3장| 유교의 나라에서 꽃핀 가톨릭교
    4장| 가톨릭교 박해와 잇단 재난
    5장| 외세가 손을 뻗치다

    4부 개화의 물결
    1장| 외세가 손을 뻗치다
    2장| 빗장을 열기 시작하다
    3장| 개화의 물결, 혼란의 파도
    4장| 청일전쟁
    5장| 일본에 의한 갑오개혁
    6장| 혁명의 불은 꺼지고
    7장| 을미사변의 주역을 밝힌다
    8장| 을미사변을 재구성하다

    5부 외세의 소용돌이
    1장| 러시아와 일본, 어디에 붙을 것인가
    2장| 무력한 황제국가와 강인한 독립협회
    3장| 얽히는 열강들의 이해관계
    4장| 상반되는 러시아와 일본의 속셈
    5장| 러시아와 일본이 충돌하다
    6장| 영화 같은 제물포 해전, 그 이후

    본문중에서

    명 장군들, “유능한 장군(이순신)을 왕에 앉혀야 한다”
    명 황제는 송응창의 건의에 따라 왕세자가 명나라 장군인 유정과 함께 하삼도를 관장하는 관찰사의 직위에 임명할 수 있다는 칙서를 조선의 왕에게 보냈다. 왕자는 이 조치에 크게 기뻐하며 청주의 관사로 서둘러 출발했다. 그는 남부 지방에 대한 전반적인 통치권을 왕의 손에서 빼앗았으며, 심지어 왕의 고유 권한인 과거 시험을 열기도 했다.
    다른 명나라 장군들도 황제 앞에서 조선 왕의 나약한 심성과 사치심을 비난하면서 조선의 장군들 중 가장 유능한 자를 왕좌에 앉혀야 한다고 건의했다. 그러나 조선에 충성을 다했던 병부시랑 석성 장군만은 조선 왕에게 사치심을 질책하고 그것이 일본군의 조선 침략을 성공케 한 원인임을 지적하는 칙서를 보내는 선에서 사태를 마무리하자고 황제를 설득했다. 이 칙서는 유능한 군대를 육성하고, 일본군을 조선에서 쫓아내는 임무를 완수하라는 등 전반적으로 왕에게 분발을 촉구하는 내용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전공을 진린에게 돌리는 이순신의 ‘천재적 처세술’
    선조는 진린 장군에게 자신은 이순신 장군을 그다지 믿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물론 이 말은 이 명나라 장군의 생각에 영향을 주었다. 이순신 장군은 당시 전라도 연안의 고금도에 있었다. 진린 장군이 남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순신이 취한 첫 번째 조치는 그가 유능한 군인일 뿐 아니라 유능한 외교관임을 잘 드러내주었다. 그가 전부터 이 명나라 장수를 알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어떤 경우에도 그를 적대시하면 이롭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 그에 따라 행동했다. 그는 엄청난 양의 생선, 여흥 거리, 술을 모아 남하하는 함대를 맞이했다. 그는 이 명나라 장수와 함께 진지로 돌아온 뒤 큰 주연을 베풀었다. 명나라 장교들은 양껏 술을 마시면서, 이순신 장군은 충성스럽고 유능한 동지라고 단언했다. 진린 장군 자신도 이 칭찬의 대열에 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순신 장군은 20여 일본군의 목을 베는 성과를 거두었는데, 그는 그 공을 자신이 차지하지 않고 진린 장군의 것으로 돌렸다. 진린 장군의 호감을 사려는 이순신 장군의 노력은 이로써 깨끗이 마무리됐다. 그 이후 작전을 짜고 건의하는 쪽은 항상 이순신이었고, 그 작전에 동의하고 전과를 차지하는 쪽은 항상 진린이었다. 이런 행동 요령은 이순신 장군의 천재적인 솜씨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적어도 세 가지의 중요한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첫째, 그는 그 명나라 사람을 적대시했다면 잃어버렸을 자기 자리를 보존할 수 있었다. 둘째, 그는 조국이 자신을 보호해주지 못할 뻔한 시기에 조국을 위해 다행히도 자기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다. 이순신은 조국 땅에서 적군을 몰아낼 수만 있다면 칭찬을 안 받아도, 남이 공을 독차지해도 개의치 않는 사람이었다. 셋째, 그는 그 중국인들을 유능한 사람으로 돋보이게 해주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사기를 북돋워주었으며, 결과적으로 그들에게서 조국에 필요한 모든 것을 이끌어냈다. 의미심장한 조선 속담을 인용하자면, 진린은 사실상 이순신의 ‘손바닥 안에서 노는’ 신세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순신은 자신이 진린에게 아첨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개의치 않았다.
    이순신은 진린 장군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음으로써 그가 큰 실수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줄곧 감시할 수 있었다. 파병 초창기에 명나라 병사들은 귀금속을 훔치고, 훔치다 걸리면 상해를 입히는 등, 조선 백성들에게 매우 난폭하게 굴었다. 이순신 장군은 군대의 군기를 자신에게 맡겨달라고 조용히 청했다. 그리고 첫날부터 아무리 사소한 규칙 위반에도 엄하게 벌함으로써 완전한 질서를 세웠다.
    이순신의 이런 능력이 진린 장군의 눈에 안 뜨일 리가 없었다. 진린은 조선 왕에게 편지를 보내 이순신이 매우 뛰어난 인물이며 세상에 그 같은 군인이 또 없을 것이라고 칭찬했다. 어느 날 두 사람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정자에 앉아 쉬고 있을 때 일본군 함대가 먼 바다에 보였다. 진린은 대단히 흥분했고 약간 초조해 했다. 하지만 이순신은 웃으며 말했다. “제가 저 자들을 혼내줄 테니 장군은 여기 앉아 구경만 하시오.” 그는 함대를 끌고 나간 지 한 시간도 안 돼 적선 40척을 불태웠다. 나머지 일본 배들은 모두 도주했다. 진린은 이 사건 이후 이순신을 극도로 찬양했다. 그는 또 이순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전과를 올리지만 이 세상의 어떤 사람도 그런 위업을 달성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한국의 넬슨, 스스로 죽음을 택하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가장 위대한 전투의 한복판에서 이순신은 적의 흉탄을 맞았다. 병사들이 쓰러지는 그를 붙잡자, 그는 “나의 죽음을 적들이 알게 하지 말라. 그러면 전투가 엉망이 될 것이다.” 한국의 넬슨이라고 불릴 만한 이순신 장군은 이렇게 숨을 거두었다. 거의 무방비였던 이순신은 마치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 같았다. 전쟁 후 조정의 재물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일까? 그렇다면 중국이 조선의 왕으로 염두에 둔 이순신을 죽인 것은 일본군이 아니라 조정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굴욕적인 항복의 예
    전면에 꽤 거리를 두고 노란 비단 차양으로 덮여 있는 높은 제단이 설치돼 있었고, 그 밑에 청 황제가 옥좌에 앉아 있었다. 그 앞에는 한 무리의 나팔수들이 도열해 있었다. 용골대 장군과 왕은 말에서 내렸다. 황제 쪽으로 향해 있는 동쪽 출입구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세 번 절한 뒤 손으로 뒤통수를 쳤다. 그런 다음 그들은 제단이 설치된 곳으로 들어가 황제에게 절을 했다. 그들은 왕에게 제단에 올라가라고 말했다. 황제는 남쪽을 향해 앉았고, 왕은 서쪽을 바라보며 그의 왼쪽에 앉았다. 왕의 왼쪽, 역시 서쪽을 향해 청 황제의 세 아들이 앉아 있었고, 마지막으로 강화도에서 압송된 왕의 아들들이 그 아래에 앉아 있었다. 제단 아래에는 조선의 대신들이, 그리고 멀리 떨어진 곳에 평민들이 앉았다. 금을 입힌 황제의 옥좌는 제단보다 약 30센티미터 높은 곳에 설치된 연단에 놓여 있었고, 옥좌 위에는 노란 비단으로 만든 햇빛 가리개와 깃발이 꽂혀 있었다. 황제는 손으로 활을 만지작거리며 앉아 있었다. 왕에게 한 잔의 차가 건네졌다. 잠시 후 황제가 통역관을 통해 조선의 영의정에게 “이제 우리는 한집의 식구들이다. 활 솜씨를 겨뤄보자.”
    영의정은 약간 비꼬는 듯한 말투로, “우리는 글을 잘 알지만 활 솜씨는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음식이 들어와 왕 앞에 놓여졌다. 황제 앞에 놓은 음식과 질과 양이 똑같았다. 각자 술 석 잔씩 마신 다음, 음식을 물렸다. 이것은 왕을 편안하게 하려고 한 요식 행위에 불과했다. 그러자 한 시종이 황제가 키우는 개들을 데리고 왔고, 자기 손으로 고기를 썰어 개들이 고기를 물어오도록 허공에 던졌다.

    일본 공사 미우라, 왕비 시해에 직접 관여하다
    한때 왕비를 암살하기로 작정했었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억측일 것이다. 그러나 한양의 실정에 밝았던 사람들이 어떻게든 그녀의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영원히 잠재워야 하며, 그 일을 제대로 처리해서 반드시 그녀가 국정 문제에는 더 이상 관여할 수 없도록 만들어놓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은 크다. 그러나 이 과업을 달성할 방법에 관해서는 미우라가 부임해서 현장을 둘러보기 전까지는 미우라도, 그의 조언자들도 알지 못했다.
    이렇게 보면 미우라가 조선에서 그 일에 관해 맨 먼저 상의하고 싶어했던 인물이 왜 대원군이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대원군이 이 난제의 해결책으로 해줄 수 있는 말은 한마디뿐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대원군은 20년간의 경험에 비춰 미우라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고 확신했고, 미우라가 당연히 겁을 먹고 그 같은 방법을 선택하지 않는 동안 대원군도 마침내 그것이 실현 가능한 계획이란 확신이 생겼던 듯하다.

    황후 암살 사건에 대한 히로시마 법정의 판결
    피고 요코 유타로도 용산에서 사람들에 합류했다. 아사야마 겐조는 이주회를 만나, 그날 밤 궁궐에서 감행될 거사 계획을 들려줬다. 아사야마는 이주회가 다른 조선인들 몇 명을 모아 대원군 저택으로 향하는 걸 확인한 뒤, 즉시 용산으로 출발했다. 스즈키 시게모토는 스즈키 준켄과 함께 용산으로 갔다. 피고 아다치 겐조와 구니토모 시게아키라는 미우라의 선동에 따라 황후를 살해하기로 결심하고 공범들을 물색하고 있었다. 미우라의 지시에 따라, 그 밖의 24명(여기에 그 이름들이 삽입됨)이 호출에 응해, 대원군 입궐 시 그의 경호원 노릇을 하기로 약속했다. 히라야마 이와히코와 기타 열 명이 넘는 다른 남자들은 아다치 겐조 등으로부터 황후 제거 명령을 받았고, 그들 역시 그 명령에 따르기로 했다. 단순한 호기심에 참여는 했지만 세세한 작전 비밀까지는 듣지 못한 그 밖의 사람들 역시 무기를 소지하고 있었다. 구니토모 시게아키라와 다른 두 명을 뺀 피고인들 전원이 아다치 겐조와 함께 용산으로 갔다.
    피고 오카모토 류노스케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전보를 받자마자 즉시 제물포를 떠나 한양으로 향했다. 그는 가는 길에 자정쯤, 호시구치 게나이치가 마포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마포로 가서 그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을 만났다. 그는 그 자리에서 미우라 고로가 보낸, 앞에서 언급한 성명서 초안과 기타 문서들을 받았다. 그는 다른 두어 명과 함께 궁궐에 진입하는 방법을 의논했고, 이후 일행은 모두 오카모토의 지휘하에 대원군 저택으로 출발했다.
    10월 8일 새벽 3시경, 그들은 1인승 가마에 탄 대원군을 호위한 채 이주회 및 다른 조선인들과 함께 대원군 저택을 떠났다. 출발 무렵 오카모토는 모든 사람을 대원군 저택의 정문 밖에 집합시킨 뒤, 궁궐에 들어가는 대로 최대한 신속하게 ‘여우’를 처치해야 한다며, 추종자들에게 황후를 살해하는 것이 이번 거사의 최종 목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자 아직 세세한 얘기를 듣지 못했던 사카이 마라타로와 기타 몇몇 사람들은 즉석에서 그의 말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한양으로 가던 도중 서대문 밖에서 일본인들이 훈련시킨 조선인 군대와 만났다. 조선인들은 그곳에서 오래전부터 일본인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조선인 군대를 앞장세우고 빠른 속도로 궁궐 쪽으로 접근했다. 가는 도중 구니토모 시게아키라와 다른 네 명이 대열에 합류했다. 조선 군대를 지휘할 장교들을 수행하며 통역관 역할을 해달라는 우마가바라 무혼의 요청에 따라, 피고 후사모토, 야스마루, 오우라 시게히코 등이 또 대열에 합류했다. 이들은 모두 동틀 무렵에 광화문을 통과해 궁궐 안으로 들어갔고, 들어간 즉시 내실들을 향해 들이닥쳤다.
    이 대목에서 이야기는 갑자기 중단되었다. 그리고 히로시마 법정은 이같이 증거가 뚜렷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조선 왕후 시해 혐의를 받았던 그 어떤 일본인도 실제 범죄를 저질렀다는 증거가 충분치 않다면서, 모든 피고들을 무죄로 방면했다.

    영화 같은 제물포 해전
    날씨는 개었으나 옅은 안개가 끼었다. 항구에서는 일본 함대가 잘 보이지 않았다. 항구에서 거의 13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데다 앞바다를 두 개의 해협으로 갈라놓은 섬이 함대를 부분적으로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해협 가운데 동쪽에 있는 해협을 향해 곧바로 나간 2척의 러시아 전함의 항해 방향은 정남에서 서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었다.
    두 전함이 항구와 적 함대의 중간 거리까지 항진했을 때 일본 함대는 러시아 전함을 향해 경고사격을 했다. 그것은 배를 멈추고 항복하라는 신호였다. 그러나 러시아인들은 경고사격을 무시했다. 러시아 배들이 적 함대에 손상을 입힐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사정거리를 가급적 줄이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바리아크 호의 대포는 구경이 약 16센티미터밖에 안 되어 원거리에서는 쓸모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시각이 낮 12시 5분 전이었다. 일본 함대는 접근하는 러시아 선박들을 향해 일직선으로 정렬한 상태가 아니었으며, 전체 화력을 동원하여 러시아 배들을 동시에 공격할 심산이 아닌 듯했다. 일본 군함들 가운데서 아사마 호와 치요다 호 2척만 공격에 나섰다. 일본 군함들은 경고사격을 하고 나서 얼마 후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무시무시한 파괴의 기계에서 울려나오는 굉음이 바람 없는 고요한 만의 정적을 갈가리 찢었고 시내의 주택들을 뒤흔들었다.
    (/본문중에서)

    저자소개

    호머 헐버트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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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법사 엄지]의 저자 호머 헐버트는 1886년, 23세의 나이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국립학교 육영공원의 영어교사로 부임했다. 이후 20여 년간 그는 영어교사로, 또한 선교사로 우리 국민의 계몽, 그리고 우리 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헌신했다. 그는 1903년 한국 YMCA 초대회장에 선출되기도 했다.
    특히 헐버트는 지난 세기 초, 우리 겨레가 역사상 미증유의 시련을 겪을 때, 미국 지성인들 중 가장 선두에 서서 우리 입장을 대변해주었던 정말 고마운 분이다. 1905년, 그는 고종황제의 친서를 휴대하고 밀사로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나러 갔으며, 1907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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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가톨릭대학교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전문번역가로 활동하며 문학은 물론 심리학과 인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소개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가족의 죽음] [우리는 왜 빠져드는가] [유혹하는 심리학] [박쥐] [바퀴벌레] [팬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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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희대학교를 졸업하고 YBM Si-Sa, 도서출판예음, 한겨레출판사에서 편집장을 지냈다. 현재는 전문 번역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 번역서로는 《톰 소여의 모험》 《31% 인간형》 《공포》 《대충돌-달 탄생의 비밀》 《인간 지능의 수수께끼》 《43번가의 기적》 《신의 봉인》 《사탕 접시》 《뻔뻔한 출세주의자 되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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