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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드라마가 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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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역사의 객관적 서술이 가능한가를 둘러싼 논쟁은 아마 ‘역사 자체’만큼 역사가 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역사가 자신이 그 역사의 일부로 살아왔고 현재도 살고 있는 한, 객관적 서술 자체가 불가능한 작업일지도 모른다. 긴 한국사에서 역사의 방향을 바꾼 숱한 사건들의 의미를 제3자의 시각으로 서술한 헐버트의[한국사, 드라마가 되다](1, 2권)를 우리가 주목하고 이 책의 발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헐버트 박사의[한국사, 드라마가 되다]출간을 축하하며 김동진(헐버트박사 기념사업회 회장)
    먼저, 헐버트 박사의[한국사(The History of Korea)]번역본 출간에 축하를 보낸다.[한국사]는 1886년 조선 땅 제물포(인천)에 첫 발을 내디딘 이래 20여 년 동안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파헤쳐온 헐버트 박사의 한국사 연구의 대미를 장식하는 불세출의 역작이다.
    헐버트 박사는 당시의 한국, 즉 조선을 제대로 알기 위해 내한 초기부터 열심히 공부하여 우리말과 글을 우리 한국인들처럼 구사했을 뿐 아니라, 한글의 우수성과 독창성에 매료되어 그 스스로 한글학자가 되었다. 그리고 한글 연구에 대한 많은 논문을 국내외에 발표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한글이 당시 조선에서 제대로 쓰이지 않는 데 대해 매우 안타까워했으며, 모든 백성들이 쓰기 편한 한글을 배워 문맹으로부터 해방되기를 바랐다.
    헐버트 박사의 한글 연구는 당연히 그의 한국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많은 책과 한국인 친구들을 통해 그는 한국 역사를 하나하나 배워나갔다. 그리고 그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의 진수를 알게 되면서, 한민족은 분명 그 당시 미국인들이 생각했던 미개한 민족이 아닌 미래를 창조할 수 있는 뛰어난 민족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한·중·일 세 나라 국민 가운데 창의적이고 규범을 지키는 한국인이 앵글로색슨족의 특징에 가장 가깝다고까지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당시 지배층이 자신들의 안위만을 추구하는 당파성에는 일침을 가했다. 이와 더불어 한국인은 바람직한 목표만 정해지면 뛰어난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애정 어린 예언도 빠뜨리지 않았다. 이제 그 예언이 현실화되어가는 과정에 있다. 물론 그의 인종적인 편견을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인종 간의 환경과 그에 따른 성취를 어느 정도는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있을 것이다.
    헐버트 박사는 한국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한국사 연구에 박차를 가하면서 수많은 글들을 발표했다. 1901년부터 4년에 걸쳐 그 자신이 창간하고 주필로 있던 영문 월간지 [한국평론(The Korea Review)]에 그가 직접 탐구한 한국 역사에 대해 연속으로 기고했고, 이를 바탕으로 1905년 드디어 대작[한국사]가 탄생하게 되었다.
    [한국사]야말로 헐버트 박사의 한국 사랑의 결과물이자, 한국사 연구의 결정체이다. 또한 단군시대부터 조선시대, 그리고 구한말까지 다룬 역사적으로 매우 귀중한 책이다. 더구나 각 장을 떼어놓고 보면, 각각의 장이 한 편의 드라마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묘사가 너무나 생생해 사건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하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을미사변, 청일전쟁 등은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하고 역동적이다.
    이런 점과 더불어 당시에는 현존하는 임금의 왕조를 책에 담는 것은 금기된 사항이었으나 고종 황제의 윤허를 얻어 조선왕조를 책에 실었는데, 이는 우리 역사학계의 획기적 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학계는 이 책의 역사적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서 아직 침묵을 지키고 있다. 아니, 모르거나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그 이유에는[한국사]가 영문으로 되어 있고 1,000쪽이 넘는 대작이라서 한글로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에 1차적 원인이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헐버트 박사 기념사업회는 매우 안타까워하면서 묻혀 있는 보석[한국사]의 번역본이 빨리 나오기를 고대하던 중에 이번에 마침 리베르출판사에서 번역본이 나왔다. 철저한 검증과 읽기 쉬운 편집의 노고를 넘어 무엇보다 이 책이 우리말로 반듯하게 번역된 데 대해 리베르출판사에 큰 감사와 축하의 말씀을 전한다.
    또한 이 번역본을 통해 헐버트 박사의[한국사]가 한국 사학자들에 의해 올바르게 평가되어 새롭게 태어나기를 기대한다.

    ‘역사학계의 획기적 사건’
    헐버트 박사의[한국사, 드라마가 되다]완역본 출간


    천재적 역사학자이자 고종의 밀사였던 헐버트, 그가 당대의 귀중한 사료들을 바탕으로
    현대적, 객관적 시각의 한국사 원전을 최초로 쓰다!
    “나는 어느 한국인 학자의 도움을 받았다. 그는 과거 25년간 조선왕조의 역사를 연구하며 개인이 소장한 필사본 여러 권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 학자의 간곡한 부탁 때문에 이 책에 그의 이름을 밝히지 않겠다. 또한 나는 특별히 허락을 받아 서울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자료를 많이 갖춘 사설 도서관에 출입할 수 있었다.” -호머 헐버트

    소설보다 흥미진진한 이야기 한국사의 원전! 이방인이 생생하게 풀어쓴 5천년의 디테일!
    이 책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았던 역사적 사건들의 뒷면과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역사 사료로서도 독특하고 중요한 의미를 차지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잊고 있거나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는 사건들을 사료를 바탕으로 소설처럼 서술하여 독자들에게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특히 병자호란 막바지에 인조가 남한산성 옹성을 끝내고 청 태종 앞에서 무릎을 꿇는 이른바 ‘항복 의식’을 묘사한 부분에서는 한 슬픈 역사 드라마의 대단원을 보는 것 같고,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러일전쟁의 최대 격전지였던 제물포 해전을 묘사한 대목에서는 한 편의 전쟁 영화나 드라마처럼 흥미진진하다.
    1권에는 단군조선에서부터 조선 선조 때 일어난 임진왜란 초기까지의 역사가, 2권에는 임진왜란 중기부터 청나라와의 두 차례의 전쟁(정묘호란과 병자호란), 영·정조의 정치·문화적 개혁기, 그리고 1904년의 러일전쟁까지의 역사가 왕조 순, 사건 순으로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1권에서 ‘대마도가 신라의 속국이었다’는 기록을 읽으면, 독도 논쟁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2권에서 이순신 장군의 비사를 접하면 ‘이런 사실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한국사, 드라마가 되다]는 후대의 평역이 아닌, 당대의 살아 있는 기록들의 총합이다. 일제의 분서갱유로 인해 많은 사료가 유실된 지금에 와서는 아무리 훌륭한 학자라도 헐버트를 능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후대의 평역이 당대의 기록을 넘어설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소설을 쓴다 하더라도 이처럼 드라마틱하면서도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을 엮어내기는 힘들 것이다.

    이처럼 드라마틱한 역사가 있었던가! 최도영(mbc PD, 부국장)
    이처럼 드라마틱한 역사가 있었던가!
    역사학자이자 한글학자인 헐버트는 한국사를 마치 소설처럼 눈에 보이듯이 상세하고 재미있게 기술하고 있다. 다양한 사료를 근거로 고대사를 충실히 복원해낸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특히 근대사에 관한 상세하고 정확한 서술은 독보적이다. 그는 조선 후기에 조선에서 생활한 장본인이다.
    [한국사, 드라마가 되다]는 후대의 평역이 아닌, 당대의 살아 있는 기록들의 총합이다. 일제의 분서갱유로 인해 많은 사료가 유실된 지금에 와서는 아무리 훌륭한 학자라도 헐버트를 능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후대의 평역이 당대의 기록을 넘어설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소설을 쓴다 하더라도 이처럼 드라마틱하면서도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을 엮어내기는 힘들 것이다.

    당대 지성들의 지적 성과가 녹아 있는 대작! 강태욱(중앙일보 기자, 동시통역사)
    헐버트는 한국어와 한자를 한국인보다 더 잘 구사했다. 그가 고종의 특사로서 많은 사료들을 조회할 수 있었고, 조야의 수많은 학자들과 교유할 수 있었다. 따라서 그의 방대한 한국사는 그 자신만의 작품이라기보다 수많은 당대 지성들의 지적 성과가 함께 녹아 있다고 할 것이다. 더구나 헐버트가 제3자로서 이해관계나 정파에 구애받지 않고 역사를 기술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는 점은 더욱 의미가 있다.[한국사, 드라마가 되다]를 현대적 의미에서 최초의 한국사라고 본다면, 이 책을 한국사의 원전으로 꼽아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목차

    출간 축하문
    역자 서문
    들어가며
    한국에 대한 소고

    1부 고조선에서 삼한까지
    1장 문명의 뿌리, 단군왕검
    2장 통치의 달인, 기자
    3장 위만, 숙인 다음 친다
    4장 예맥, 옥저, 읍루, 말갈, 여진
    5장 삼한―마한, 진한, 변한

    2부 삼국에서 통일시라까지
    1장 삼국의 건국
    2장 삼국의 성장
    3장 삼국의 경쟁
    4장 극으로 치닫는 삼국의 경쟁
    5장 삼국의 발전
    6장 전쟁에 휩싸인 삼국
    7장 백제와 고구려의 멸망
    8장 삼국 통일 이후의 신라

    3부 후삼국에서 몽골 침입까지
    1장 후삼국 최후의 승자
    2장 고려 초기
    3장 거란의 침입
    4장 핏빛으로 물든 고려 조정
    5장 고려에 드리운 몽골의 그림자

    4부 몽골 치하에서 고려 멸망까지
    1장 몽골의 발아래 놓인 고려
    2장 고려, 몽골이 되다
    3장 몽골 지배하의 고려
    4장 왕조 몰락의 전조들
    5장 이성계의 활약과 신돈의 장난
    6장 뜨는 명과 지는 몽골 사이에서
    7장 고려의 네로 우왕과 카이사르 이성계
    8장 이성계, 루비콘 강을 건너다

    5부 조선 전기
    1장 태조, 정조, 태종, 세종, 문종
    2장 단종, 세조, 예종, 성종
    3장 연산군, 중종, 인종, 명종

    6부 임진왜란
    1장 전운이 감돌다
    2장 처절한 패배
    3장 선조, 한양을 버리다
    4장 밀고 밀리는 전장
    5장 선조, 의주로 피난하다
    6장 전세가 역전되다

    본문중에서

    단군 조선, 하나라에 치수를 가르치다
    기록에 따르면 하나라의 시조 우왕이 중국 땅에 범람한 물을 다스려줄 것을 단군조선에게 부탁하자, 단군은 아들 부루를 사신으로 보내 치수에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기원전 2187년에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다른 문헌에서는 기자가 한반도로 들어오자 부루가 북쪽으로 도망쳐 부여扶餘(북부여)라는 왕국을 세웠고, 훗날 이 부여는 가엽원으로 이주하여 동부여가 되었다고 전한다. 두 이야기 사이에는 연대 차이가 심해서 둘 다 신빙성이 떨어지지만, 두 번째 기록은 어느 정도 사실에 기초하며 부여국 건국에 관한 유일한 사료가 된다.
    훗날 단군조선에는 길을 닦고 수로 관리를 관장했다고 전해지는 팽오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믿을 만한 문헌에 따르면 황제가 팽오에게 동쪽 부족인 예맥과 조선朝鮮을 잇는 길을 끊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이로써 일부 문헌에서 조선이라는 말이 기자가 출현하기 전에 나온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신라의 속국이던 대마도
    신라가 대마도(쓰시마 섬)를 정복했는지 여부는 분명하지 않지만, 대마도가 척박한 땅 때문에 매년 신라에 의존하여 지원을 받았던 것은 사실이다. 일본이 대마도를 차지하고 일본인을 섬에 이주시킨 때는 기원후 500년 무렵이었다. 이때부터 대마도는 한반도 왕국에 종속되지 않았지만 둘의 관계는 매우 가까웠다. 지속적으로 교역이 이루어졌고 상업이나 정치면에서 활발히 교류했다. 대마도의 다이묘(大名)가 한반도 인근 해안 지역을 지배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한국 고대 문헌에는 매년 일식과 월식이 일어난 날짜가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어 신빙성 있는 사료로서 가치를 지닌다. 새로운 왕이 왕위에 오를 때마다 일식 날짜를 기록한 목록을 이들 문헌에 실었다. 예를 들어 혁거세 통치 기간의 기록을 보면, 혁거세 치세 4년, 24년, 30년, 32년, 43년, 45년, 56년, 59년에 일식이 일어났다. 그레고리력으로 환산하면 기원전 53년, 33년, 27년, 25년, 14년, 12년, 1년과 기원후 2년에 해당하는 해다. 만약 이 문헌이 후대 사람들을 속이려고 훗날에 편찬된 것이라면 일식을 기록한 목록까지 실려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문헌에는 믿을 수 없거나 신빙성이 없는 내용도 실려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기원전 48년에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언급한 최초의 역사 기록이 나왔다. 이 해에 왜는 한반도에서 노략질하던 행위를 한동안 중단했다. 이런 기록으로 볼 때 일본은 동아시아의 바이킹으로 군림하면서 배를 띄울 만한 물이 있으면 어디든지 달려갔다. 또 한반도 남단에 왜가 출몰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보아 왜가 이 지역에 정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원전 37년에 아직 작은 왕국이었던 신라는 주변 지역과 변한의 읍락에도 손을 뻗쳐 복속하기 시작했다. 신라의 정복 과정에는 무력 충돌이 거의 없었다. 변한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신라에 들어왔다. 같은 해에 금성이라고도 불리던 신라의 수도 주위에 35리(약 14킬로미터) 길이의 성벽을 쌓았다. 금성은 길이가 3,075보이고 너비가 3,018보였다.
    신라가 팽창하고 군주제로 모든 권력을 중앙에 집권하려는 경향이 뚜렷해지자 진한을 마한의 속국으로 여기던 마한 왕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 신라 왕은 기원전 19년에 마한 왕의 화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사신에게 선물을 잔뜩 들려 보냈다. 신라로 흘러 들어오던 중국 유민의 행렬이 멈추지 않은 일도 마한 왕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 문제를 그냥 내버려두면 마한이 아니라 신라가 삼한 지역의 주도권을 잡게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신라에서 보낸 사신 호공瓠公은 원래 왜인이었다고 전해진다. 마한 왕을 만나러간 호공은 몹시 화가 난 마한 왕을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뺐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마한 신하가 말리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이다. 이듬해에 마한 왕이 죽자 신라는 장례식에 사절단을 보냈다. 이 사절단은 마한을 무너뜨려 신라에 복속시킬 틈을 노렸지만, 신라 왕이 그 전해의 모욕적인 사건에 대한 복수를 금했기 때문에 행동에 옮기지는 못했다.

    일본의 지배자, 연오랑과 세오녀
    영오(연오랑)와 세오(세오녀)에 관한 흥미로운 전설은 157년의 일이기는 하지만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옛날이야기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신라 동쪽 바닷가에 영오라는 가난한 어부가 아내 세오와 함께 살았다. 어느 날 영오가 커다란 바위에 앉아 고기를 잡는데 바위가 흔들리다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영오는 깜짝 놀란 채로 바위에 실려 동쪽 바다를 건너 일본의 어느 마을에 도착했다.
    그 마을 사람들은 영오가 하늘에서 내려온 줄 알고 당장 왕으로 삼았다. 영오 부인 세오는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직접 남편을 찾아나섰다. 영오를 일본으로 실어 나른 알돌에 올라섰는데 영오를 놀라게 한 것과 똑같은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영오가 왕이 된 것을 본 세오는 왕비가 되기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영오와 세오가 떠난 뒤에 신라에는 큰 재앙이 닥쳤다. 해와 달이 없어지고 온 나라가 어둠에 휩싸였던 것이다. 점쟁이는 누군가 일본에 가버려서 생긴 일이라고 알려주었다.
    일본으로 간 사람들을 찾기 위해 급히 일본으로 떠난 사신은 신라 사람이 그곳 왕국의 왕과 왕비가 된 걸 알고는 몹시 실망했다. 사신은 자초지종을 들려주고 당장 신라로 돌아가자고 청했지만 부부는 새로운 삶에 만족한 듯 보였다.
    하지만 세오는 비단 두루마리를 사신에게 건네며 신라 왕이 두루마리를 펼쳐서 제사를 지내면 해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줬다. 결국 세오 말대로 되었는데, 신라 왕이 주문을 외우자 신라 땅에 다시 햇빛이 비췄고 온 나라가 태평해졌다. 그러나 일본이 한국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학설은 대부분 영오와 세오 이야기만큼 신빙성은 떨어지지만 무시할 수만은 없다.[고사기古事記]라는 일본의 문헌은 신라의 역사를 상세하게 다룬다.

    조선이 유약했다는 비난은 근거가 없다
    그즈음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는 정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기에 잠시 방향을 돌려 일본 국내 사정을 살펴보고 일본과 조선을 비교해보면서 일본이 처음에는 승리를 거뒀다가 곧이어 패배한 이유를 알아보자.
    조선과 일본은 발전 방향이 전혀 달랐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조선은 줄곧 명나라와 화평 관계를 유지했다. 고려 시대의 몽골이나 후대의 만주 정권과 달리 명나라는 북방 민족이 세운 나라가 아니라서 조선과 북쪽 국경에서 충돌할 일이 없었다. 명나라는 중국 본토의 한족漢族이 세운 나라로 몽골이나 만주족과 같은 북방 민족이 아니었다.
    따라서 조선이 우호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무력 도발을 일으키지 않는 한 명나라는 조선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조선 시대 말기까지도 조선은 명나라를 진정한 후원자로 생각하고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를 멀리했다. 조선은 건국 초기 왕들의 막강한 권력으로 통일된 이래로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 가끔씩 야인의 공격을 받거나 바다 건너 왜구의 노략질에 피해를 본 정도를 제외하고는 특별히 외부의 위협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으며 국방 문제로 불안해 하지도 않았다.
    조선이 군대를 양성한 유일한 이유는 야인과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였다. 평화 시대가 도래해 온 나라가 화평했기에 일각에서 주장하듯 조선이 유약한 나라였다고 믿을 만한 근거는 없다.
    오히려 강력한 국가였다고 볼 만한 근거가 충분하다. 일본의 침략을 받던 바로 그해까지 조선은 세종의 개혁 정책을 고수해왔고 그 후의 호전적이지 않은 임금들은 학문, 예술, 윤리를 발전시키는 데 힘썼다.
    역사를 통틀어보아도 백성들을 도탄에 빠트리며 나라의 중요한 자원을 향락과 사치에 써버린 군주가 도덕, 과학, 사회, 문학 연구에 힘쓴 예는 없다. 그러나 당시 조선의 왕들은 온 나라가 일본의 침략으로 신음할 때까지도 학문 연구에 매진했다. 폭정에 시달리던 백성이 왕으로서 자격이 없던 연산군을 끌어내리고 묘호를 부여하지 않은 일이 있은 지 채 100년도 지나지 않은 때였다. 그 뒤 왕위에 오른 중종은 윤리와 도덕을 강화하여 청렴을 제일의 가치로 삼았고 누구보다 학문과 예술을 장려했다. 중종의 가장 큰 업적은 백성들 학문 생활에 새로운 장을 열어준[옥편]을 편찬한 일이었다.
    중종의 뒤를 이은 인종은 학문 장려 정책을 유지해나갔으며 여러 가지 업적 중에서도 복잡한 천문 기구를 만든 것이 특기할 만하다. 그리고 그 다음 시대에 외부의 침략을 받은 것이다. 편견 없는 눈으로 보면 일본 역사가나 한국의 사료를 접하지 않은 사람들이 흔히 주장하듯이 당시 조선이 최악으로 타락의 길을 걸었다고 볼 수 없다.
    한편 조선 임금의 업적은 인정한다 해도 그 노력이 일반 백성한테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이 또한 정확한 설명은 아니다. 한국인만큼 중앙정부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민족도 없기 때문이다. 왕이 유약했던 시대에는 백성들도 힘이 없었고 왕이 진실했던 시대에는 백성들도 정직하게 살았다. 따라서 일부 학자들의 비방에 가까운 평가에 맞서서 한국 측 사료를 충분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왕실의 지시로 작성된 사료 말고 개인이 쓴 왕조사나 유명한 역사책과 같이 신뢰할 만한 사료를 참조해야 한다. 조선은 국경 지대에서 몇 차례 야인들의 침략을 받은 일을 제외하고는 수백 년 동안 평화를 누리고 살았기 때문에 점차 평화를 유지하는 능력이 무력을 쓰는 능력을 대체해왔다. 어떤 사람이 무력을 쓰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경멸해서는 안 된다. 힘을 쓰지 못한다고 업신여긴다면 토탄土炭으로 불 때고 살던 원시시대로 돌아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한양을 내줘서 결과적으로 시간을 벌었다
    일본군은 사기가 높고 선진적인 무기와 장비를 갖추었으며, 강인한 정신으로 무장하여 조선을 압도적으로 눌렀다. 조선은 큰 혼란에 빠진 채로 처음 몇 주 동안은 장군을 보내는 것은 고사하고 군사를 일으켜 적과 맞서 싸우기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병사들과 지휘관이 서로를 믿지 못하는 듯했다.
    시간이 흘러 한양을 점령한 이후 일본군의 맹렬한 기세도 한풀 꺾였다. 왕과 백성들에게 한양이 점령당한 일은 통탄할 만했지만 현실적으로 따져보면 한양을 빼앗긴 덕에 왕이 국경을 넘지 않아도 됐고 또 그 덕분에 명나라의 북경도 안전했던 것이다. 일본군은 줄곧 맹렬한 기세로 부산에서 한양까지 진격해왔다. 만약 한양에서 멈추지 않았더라면 곧장 압록강을 넘어 거침없이 휩쓸면서 북경의 대문을 두드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태한 명나라 사람들은 히데요시가 400년 전 쿠빌라이 칸의 오만한 태도를 되갚아주려고 온 줄 깨닫지 못한 채 공격당했을 것이다. 일본군이 한양에 멈춰선 덕분에 조선은 전열을 가다듬고 반격을 꾀할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조선 사람들은 일본군이 처음 들어왔을 때는 얼굴을 무섭게 칠한 도깨비 같다고 두려워했다. 그러나 일본군도 자기네처럼 살이 붙고 피가 흐르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처음에 가졌던 두려움도 점차 사라졌고, 두 나라 병사들 사이의 전투력 차이도 크게 줄어들었다.
    이전에 일본군이 가진 유일한 이점은 전투력이 월등하다는 것이었다. 반면에 인구가 조밀한 적국에서 보급로가 끊겨 전적으로 약탈에 의지해 군량을 확보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군의 처지는 점점 악화됐고, 반대로 조선의 강점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조선은 전투 중에 병력을 모두 잃는다 해도 수백만 명을 다시 보충할 수 있었지만 일본은 병력을 잃으면 회복할 길이 없었던 것이다. 일본군을 다시 바다 건너 쫓아내고 승리할 수 있었던 주된 원인은 군수품과 지원병을 신속히 지원받지 못하도록 보급로를 차단한 데 있었다.

    왜군, 평양에 눌러앉아 결정적 기회를 놓치다
    상황은 일본군에 유리하게 돌아갔다. 일본군은 배불리 아침 식사를 한 뒤 화살을 어깨에 메고 여울목으로 향했다. 무리지어 여울목을 건너서 화살을 채 열두 발도 쏘지 않고도 관군을 몰아냈다.
    두 장군은 자기네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듯이 대동강으로 난 성문을 열고 백성들에게 목숨을 부지하려면 어서 달아나라고 명했다. 병사들도 풍월수라는 연못에 무기를 버리고 보통문으로 달아났다. 일본군은 도망치는 관군을 뒤쫓지 않고 조용히 평양을 함락하고 평양에 눌러앉았다.
    여기서도 일본군은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던 것이다. 일본의 유일한 목적은 전력을 다해 밀고 올라가 명나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일본군이 평양에 머무르는 사이 관군은 일본에 대적할 병력을 모을 수 있었고, 그 사이에 일본군의 전력은 나날이 줄어들었다.

    명 장군들, “유능한 장군(이순신)을 왕에 앉혀야 한다”
    명 황제는 송응창의 건의에 따라 왕세자가 명나라 장군인 유정과 함께 하삼도를 관장하는 관찰사의 직위에 임명할 수 있다는 칙서를 조선의 왕에게 보냈다. 왕자는 이 조치에 크게 기뻐하며 청주의 관사로 서둘러 출발했다. 그는 남부 지방에 대한 전반적인 통치권을 왕의 손에서 빼앗았으며, 심지어 왕의 고유 권한인 과거 시험을 열기도 했다.
    다른 명나라 장군들도 황제 앞에서 조선 왕의 나약한 심성과 사치심을 비난하면서 조선의 장군들 중 가장 유능한 자를 왕좌에 앉혀야 한다고 건의했다. 그러나 조선에 충성을 다했던 병부시랑 석성 장군만은 조선 왕에게 사치심을 질책하고 그것이 일본군의 조선 침략을 성공케 한 원인임을 지적하는 칙서를 보내는 선에서 사태를 마무리하자고 황제를 설득했다. 이 칙서는 유능한 군대를 육성하고, 일본군을 조선에서 쫓아내는 임무를 완수하라는 등 전반적으로 왕에게 분발을 촉구하는 내용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본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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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머 헐버트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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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법사 엄지]의 저자 호머 헐버트는 1886년, 23세의 나이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국립학교 육영공원의 영어교사로 부임했다. 이후 20여 년간 그는 영어교사로, 또한 선교사로 우리 국민의 계몽, 그리고 우리 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헌신했다. 그는 1903년 한국 YMCA 초대회장에 선출되기도 했다.
    특히 헐버트는 지난 세기 초, 우리 겨레가 역사상 미증유의 시련을 겪을 때, 미국 지성인들 중 가장 선두에 서서 우리 입장을 대변해주었던 정말 고마운 분이다. 1905년, 그는 고종황제의 친서를 휴대하고 밀사로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나러 갔으며, 1907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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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희대학교를 졸업하고 YBM Si-Sa, 도서출판예음, 한겨레출판사에서 편집장을 지냈다. 현재는 전문 번역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 번역서로는 《톰 소여의 모험》 《31% 인간형》 《공포》 《대충돌-달 탄생의 비밀》 《인간 지능의 수수께끼》 《43번가의 기적》 《신의 봉인》 《사탕 접시》 《뻔뻔한 출세주의자 되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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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가톨릭대학교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전문번역가로 활동하며 문학은 물론 심리학과 인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소개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가족의 죽음] [우리는 왜 빠져드는가] [유혹하는 심리학] [박쥐] [바퀴벌레] [팬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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